<시선들> 캐슬린 제이미/ '가넷 서식지'를 읽으며 드는 생각들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시인 중 한 사람인 캐슬린 제이미의 <시선들>을 읽고 있다. 지난 주부터 지금까지 내내 책이 안읽혀서 여태 끝내지를 못하고 있다. 이제 겨우 3분의 1 정도 읽었을 뿐인데 분명한 건 작가의 시선이 가 닿은 모든 것들, 그것을 글로 풀어내 흥미를 유지하게 만드는 방식도 모두 너무 좋다. 작가의 시선이 닿는 곳은 북극의 빙하 위 아름다운 오로라, 병리학 실험실, 외딴 섬 새들의 서식지, 그리고 신석기 시대의 유적 발굴지 등이다. 육아에 지치고 세상으로부터 혼자 떨어진 듯 외로워질 때면 시인은 주로 외딴 섬을 꿈꾸고 기다리면서 기어코 보러 떠난다. 보면서 갈망의 시간들을 채운다. 우리의 발걸음이 쉽게 닿지 않는 곳들을 찾아 자연과 교류하고 거기서부터 시인의 사유는 시작이 된다. 시인의 사유와 시선들의 끝에서 빚어지는 문장들은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게 만들고 공감하게 만들기도 하고, 생생하게 살아있는 듯한 감정의 표출이 전달될 때면 나도 덩달아 동화되는 기분을 느낀다.



이 책은 총 14장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북극의 오로라를 찾아 떠나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1장 오로라', '2장 병리학'은 병리학실험실에서 환자들의 절개된 조직을 현미경으로 관찰하고 보다 면밀한 검사를 하고 암세포를 찾아낸다든지 전이 여부를 알아본다든지 혹은 갑자기 사망한 남편의 사망 원인을 도저히 알 수가 없어 부검을 의뢰한 아내의 죄를 사해주는 마지막 호의를 베푼다든지 하는 일들에 시선을 맞춘다. 그 생소한 경험의 과정을 글로 썼는데 솔직히 이러한 경험을 나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글로 읽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신기하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3장 들판의 여자'에서는 박물관으로 신석기 시대의 사발을 보러 갔다가 17 세 무렵 막 학교를 졸업하고 아직은 자신의 장래에 대하여 확신이 없던 어느 날, 들판의 고고학 발굴지에서 무한 반복으로 흙을 긁어내고 퍼 나르던, 그래서 5월의 어느 날인가에는 신기하게도 땅 속의 석관 안에 누워 있는 여자의 유골을 발견한다. 이로써 유적지 발굴은 끝이 났고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으며, 나는 결국 부모님들이 권하던 비서학교에는 등록을 하지 않았다. 석관의 개봉은 내 마음 속에 깊은 여운을 남겼는데 가능성으로 충만해 있던 그 여름이 앞으로 시를 쓰며 살아갈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 주었다. 



'4장 가넷 서식지'에서는 BBC의 라디오 프로듀서이며 서로의 아이가 갓난 아이였을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인 팀과 일 년에 한 번씩 새들을 보러 떠나는, 새들의 서식지에서 일어난 일들을 적은 글이다. 둘의 대화는 버려진 밧줄을 물고기로 착각하고 삼키려 했던 불행한 '가넷(gannet, 대서양과 오세아니아 인근에 서식하는 바닷새)들'의 슬픈 날갯짓에 대하여, 거기에 더해져 새들의 생태를 위협하는 플라스틱 오물과 새들의 둥지에 엮여 들어있는 오렌지색, 파란색 나일론 끈 조각과 그물 조각들, 심지어 소포를 묶는 납작한 끈을 살짝 훔쳐가는 이웃 둥지의 가넷들 이야기로 확장된다. 그러한 가넷들을 보면서 그들도 "눈이 있는 생물인지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보고 자신이 보는 것을 원한다"는 말이 "우리 인간들과 똑같다"는 것에 공감하게 된다. '가넷 서식지'에서 가장 실감나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뜻하지 않은 순간에 마주하게 되는 기적과 같은 5마리 범고래와의 조우의 순간을 묘사해 놓은 장면들이었다. 한번의 호흡으로 적어 나간 것이 아니라 몇 문장의 텀을 두고 잠시 돌아나갔다 오는 것처럼 묘사를 해 놓았다. 마치 인기 드라마를 보다 결정적인 순간에 1분 광고를 보고 돌아오는 것처럼... 그 순간의 긴장감을 살리기 위해 1분 이라는 시간이 넘어가선 절대 안되는 것처럼, 작가도 이러한 조우의 순간에 길게 뜸을 들이지는 않고 바로 그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돌아와 묘사를 이어간다. 잔뜩 긴장하며 읽다가 그 순간 나도 크게, 물론 마음 속으로 환호하고 있었다. 시드니 여행에서 잠시 잠깐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가, 정말 잠시 잠깐 고래를 만났을 때를 생각하면서... 



  팀은 내가 소리를 지르자마자, 그를 툭툭 치며 호들갑스럽게 지느러미에 흥분하자마자 범고래를 알아보았다. 이제 세 개의 지느러미가 물 밖으로 보였다. 새까맣고 반들반들한 수컷의 지느러미, 사람 키 높이의 지느러미가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났다. 느릿한 바다의 움직임을 타고 범고래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느러미에 이어 등이 수면 위로 올라오며 바닷물을 널찍한 등 양쪽으로 쏟아냈다. 이어 범고래의 안쪽, 흰색과 검은색이 어우러진 안쪽이 보였다. 세 마리가 일치된 동작으로 몸을 젖히자 팀이 내 옆으로 오더니 소리쳤다. "두 마리가 더 있어, 바로 뒤에!" 정말 두 개의 지느러미가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수컷의 것보다 길이가 짧고 더 구부러진 형태였다. 뒤에 나온 두 마리는 뭔가 은밀하게 주고받는 분위기여서 혹시 어미와 새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래들은 차례차례 물을 뿜더니 물속으로 다시 들어갔고, 그 위로 물이 뒤덮였다.(99쪽)




작가의 섬세한 묘사들 속에, 이런 시선들 속에 죽어가는 지구의 환경을 생각하고 우리 인류의 미래에 대해서도 고민하는 문장들을 볼 수 있었는데 노골적이지 않으면서 조금씩 드러나는 작가의 그런 생각들에 한숨도 나지만 일견 재미있기도 했다. 예를 들어 이런 문장들. 



  박물학자 에드워드 O. 윌슨에 따르면 우리를 구원할 수도 있는 것은 기이한 습성이다. 우리가 이제 막 알아차리기 시작한 "인간 본성이 미래 세대에게 주는 거의 기적과도 같은 선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인간 본성은 여성의 본성을 말한다. 우리는 

'번식'하지 않는다. 여성들이 선택권과 건강과 번영의 척도를 갖게 되자 즉시 아이를 더 적게 낳거나 낳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윌슨은 이것을 "보편적이고 본능적인 선택"이라고 부른다. 그는 이어지는 세기에 여성들의 권한과 유아 의료 복지가 확대되면 인류의 숫자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다가 떨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 인류가 지구에 요구하는 부담도 줄어들어 파국을 면하고, 우리 자신과 수많은 다른 종들을 미래로 이끌 수 있게 된다. 좋은 전망이다 일종의 절약이다. 한두 자녀만 건강한 성인으로 키우고, 여러분은 자유롭게 다시 바다를 바라보는 일로 돌아갈 수 있다.(104쪽)




여성들이 아이를 출산하지 않음으로써 자연스럽게 지구의 인구가 줄어드는 문제(?)에 대해서라면 나도 일정 부분 인정하고 찬성하는 사람이라 작가의 생각을 읽었을 때 그렇지, 그렇지 하면서 동조하게 된다. 파이어스톤과 같은 급진적 임신, 출산까지는 아니어도 말이다.  



한편으로 드는 다른 생각의 방향은 역시 나와는 너무 다른 먼 세계에 사는 작가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신석기 시대의 여인, 가넷과 범고래, 그리고 고래의 뼈들로 이루어진 고래 박물관이 있고, 그 글의 전개 방식과 내용을 읽다 보면 재미있지만 느껴지는 거리감은 작은 것이 아니다. 이런 생각이 든 게 처음은 아니고... 문득 작년과 재작년에 흥미를 가지고 재미있게 읽었던 다른 책들이 생각이 나는데, 그러면서 난 왜 이런 글들이 재밌을까? 내가 느끼는 재미는 내가 가지게 된 거리감과는 또 별개의 감정이다.내가 절대 경험해 보지 못할 분야의 글이어서 그런 걸까??? 아님 너무 부러운 여행의 경험이어서 그런 걸지도...! 잔홍즈의 <여행과 독서>는 2017년에 읽었던 책인데 거기에 수록된 여행기가 사실 하나하나 너무 럭셔리해서 언젠가는 그 중 하나라도 따라해 보고 싶을 정도여서 긴 시간 마음 속에 저장해 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젠 안다. 결코 그런 여행은 내가 할 수 있는 여행은 아니라는 것을. 오랜 시간 부러워했던 여행기였기 때문에 문득 떠올랐을 것이다. 




















난 고고학자가 되고 싶었을까??? 아니아니. 동물 행동을 연구하는 학자가 되고 싶었을까?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한 적은 없었는데 <시선들>, <잠자는 죽음을 깨워 길을 물었다>, <코끼리도 장례식장에 간다>를 읽었을 때 나도 문득 이 사람들처럼 무언가 목적이 있는 여행, 학술적인 목적을 가진 여행에 대한 동경이 있었나 보다. 너무 멋져 보이는 건 사실이니까. <여행과 독서>를 쓴 잔홍즈, 그리고 캐슬린 제이미처럼 여행을 하고 글로 써낸 이런 책들을 보면서 내가 평소 즐겨 읽는 소설과는 또 다른 재미, 차원이 다른 흥미를 느끼는 것은 내가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동경이나 아쉬움이 커서 그런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했다. 글 잘 쓰는 사람은 언제나 부러움의 대상이니까 멋져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생각을 더 이어가지는 말자. 이 이상으로 발전하면 그들과 비교해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것 같은 내 자신에 대한 자괴감에 슬플지도 모르니까. 난 나대로 지금 행복하다고 되뇌어 본다. 오늘도 난 우리 집 현관 데크에 앉아 생각한다. 나는 결코 떠나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리고 떠나지 않아도 행복하다는 것을...

멀리멀리 떠난 사람은 떠난 거고 난 안 떠나도 우리 집 데크에 앉아 정원에 저 난초며 플록스며 작약들이 내일이면 활짝 필 텐데 뭔 비가 온다고 난리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런 책들은 찾아 읽을 수 있다~~!^^




오늘... 해외에서 살고 있는 하나 뿐인 내 동생이 연락을 해왔다. 6월 마지막 주에 한국 들어와서 6주 정도 있다 갈 건데 우리 집 근처에 있을만한 방을 구할 수 있는지 알아봐 주면 안되냐고. 중,고등학교 다니는 조카 두 녀석과 같이 온다는데 내가 이사하고 아직 우리 집도 안 와 본 상태인지라 우리 집에 초대하고 싶지만.. 그리고  재작년엔 우리 아들이 나가 살고 있었기 때문에 언제라도 오라고 했었는데 갑자기 아들이 집으로 다시 들어오는 바람에 방도 없고... 다락방에 재울 수도 없고... 아쉬움만 가득이다. 동네에 깨끗한 원룸이 있을지 아는 부동산 중개소 사장님께 전화 드려 놨다. 하나 뿐인 여동생이자 지금은 유일한 동생인데... 왜 속상하지... 다 해주고 싶은데... 적당한 방이 나오면 정말 좋겠다. 나 혼자 동생이 오면 하고 싶은 일, 보여주고 싶은 거, 같이 가고 싶은 곳, 맛있는 음식점 어디가 좋을까 생각하면서 하루 종일 설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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