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나 개인적인>어디까지나 개인적인...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정리!
















임경선 작가 개인의, 지극히 개인적인, 무라카미 하루키 폐인적인 글이었다. 흠...^^
그런데 이유있는 폐인이라 생각해서 너무 재밌게 읽었다. 덕분에 하루키에 대해 쬐금 더 알게 되고 정리도 해보았고, 거기에 ˝인간적으로˝ 조금 더 좋아하게 되었다.
내가 하루키의 작품을 대충 따져봐도 10 권 이상 읽었지만 -하긴 누군들 안그럴까. 워낙 많은 책이 출간되어 있으니까 - 그렇다고 작가를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특히 초기작들은 진짜 싫어하기도 했다. 내가 정말 싫어하는 젊은 남자들의 s,s,s에 대한 집착적인 내용들이 너무 많아서라고 말할 수 있다.
난 차라리 그 작품들보단 난해하게 읽히는 <기사단장 죽이기>,<1Q84>를 더 좋아한다?
아닌데... 좋아한다고 쓰려니까 좀 많이 망설여진다.
아무튼 썩 좋아하는 작가는 아닌데 그가 좋아하고 번역하는 미국 작가들도 내가 그닥 좋아하지 않는 남성 작가들이기까지 하다. 역시 내 취향은 아닌데 싶다.

그런데 그의 작품에 대한 호불호와는 별개로 그가 작가로서의 사회적 책무를 다한다는 면에서는 인간적인 공감을 표할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다.
고베 대지진(1995년)과 지하철 사린 가스 사건 피해자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그들을 심층 인터뷰하였고 작가로서 충실히 정리하고자 하였다.
1996년 연초부터 사린 가스 피해자들의 달라진 삶에 대한 기록은 <언더 그라운드>로, 뒤이어 옴 진리교 신자들(사린가스 살포 사건을 일으킨 종교 집단이다)에 대한 인터뷰를 담은 <약속된 장소에서>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그는 일본의 전쟁 책임 회피와 부인을 비난하고, 일본 사회 특유의 의무나 자기 희생을 강요하는 분위기를 싫어한다. 홍콩 민주화 시위 지지를 표명하고, 일본의 핵 산업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용감하게 드높여 말한다.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저는 해야 할 말이 있으며, 해야 할 말이 있을 때 저는 명료하게 말합니다. 그 시점에서 아무도 원자력 시설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없었기 때문에 저는 제가 그 반대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167쪽)

임경선 작가가 작가로서 배우고 싶고 공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것일 수 있지만 나는 작가가 아니고 독자라 그런지 오로지 작품으로만 그를 알았을 뿐이었다.
사실 난 작가들의 주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가지지 않는 편이어서 작가가 어떤 생각으로 쓰는지, 어떤 말을 했는지, 어떤 활동을 하는지에 대해 모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개인적인 관심을 가지고 오래 지속적으로 세세하게 안다는 것은 나로선 불가능하고 또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임경선 작가가 선배 작가로서 좋아하고 따라가고 있다고 말하는 이면의 ‘사랑‘을 글로까지 쓴 것을 읽다 보니 나도 그 마음을 알 것 같아서 슬쩍 스며들고 싶어진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이 언급되는 것은 그래서 자연스러운 전개일텐데, 나도 읽었던 작품들을 발견하니 반가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상실의 시대>로 읽었던 <노르웨이의 숲>,
애잔한 연애소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그리고 왜 3권으로 끝이 난 건지 도통 이해할 수도 없고 그 열린 결말이란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바보같이 계속 4권을 기다렸던 <1Q84>, 제목에 끌려 구입했던, 그러나 여자들이 떠나간 이유는 모른 채 고통을 끌어안고 사는 남자들의 이야기였던 <여자 없는 남자들>, 제목을 외울수 있을까 싶었고 읽고 나서 결말 부분에 어이없어했던 긴 제목을 가진 책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와 안보고 침, 아직 기억함^^)는 기억에 남는 작품들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쉬지 않고 작품을 출간하고 왕성하게 활동하는 원동력은 아마도 철저한 자기관리와 그의 한결같이 변함없는 인생관, 그리고 무라카미 요코(아내, 22살 학생때 결혼)에 있는거 아닐까 싶다. 30대부터 꾸준히 달리기를 해오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마라톤 대회에도 출전을 하였고 심지어 철인 3종에까지 도전.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겠지만. 글쓰기는 엄청난 지구력을 요하는 작업이고 건강해야 계속 글도 쓴다.
결혼은 ‘하고 싶을 때 하는 것‘이 최고라는게 그의 생각이라는데...^^
˝그 사람 앞에만 서면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상대가 결혼 상대로는 최고죠.˝라고 말하는 것도 멋지지만 그보다 더 현명하고 멋지단 생각이 들었던 건, 결혼 초부터 집안일을 아내와 동등하게 나눠했다는 것. 아내가 어느 날 사라진다 해도 자신의 인생을 꿋꿋이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그리 하는것이 너무도 당연하단다.
그의 아내 요코가 그렇다고 그냥 평범한 작가의 아내는 아니다. 가장 믿음직하고 든든한 편집자이기도 하다. 작품을 탈고하고 가장 먼저 아내가 읽게 하는 것은 불변의 법칙, 작품에 대해 토론한 후 통과해야만 편집자에게 넘어간다. 그러는 이유는 하루키가 아내의 공정함을 믿기 때문이란다. 남편의 소설이라도 재미가 없으면 툭 던져버리는 스타일~~이라니 제일 무서울 거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그의 삶의 태도에 관한 부분일 거 같다. 똑같은 걸 말해도 우리나라 사람과는 다른 일본인 특유의 언어가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가 언급한 하루키의 삶의 태도를 ‘소년다움‘이라고 했다. 
이 ‘소년다움‘이라는 말이 바람직한 삶의 태도임을 인정하는데 왠지 익숙하지 않게 느껴졌다.
그 ‘소년다움‘이란 말을 잠시 풀어보면...
‘일어나버린 일은 일어나버린 것이다‘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기본 태도는 고통의 ‘수용‘이라고 말한다. 일어난 일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고통을 기꺼이 품는다. 받아들임으로써 고통에서 빠져나온다.
옳은 답을 찾아 해결하기보다 깊은 생각과 고민을 통해 세상과 나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는 것!
˝사람들은 대개 고통을 통해 배운다
그것도 무척 깊은 고통으로부터˝
(임경선 작가 인용, 하루키의 ‘고통론‘)
그에게 인생은 어차피 지는 게임이다. 언젠가는 죽을 것이므로. 자신이 잃어버린 소중한 것을 찾아 방황하고 상처 입고 시간을 허비하는 고통의 삶을 살다 지는 것이 인생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만의 삶의 태도가 확고하게 서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어차피 지는 게임이라면, 기왕이면 규칙을 지키면서 제대로 지는 것이 후회없는 삶이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일단 사는 이상,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함을 어김없이 깨닫는다. 여러 가지 힘든 일이 닥쳐도 그것을 꾹 삼키고 헤쳐 나가는 ‘소년‘의 삶의 태도다.˝ (242~243쪽)

˝반듯하게˝ 살고자 애쓰는 작가의 여러 면모를 알게 되었다.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벽돌신간도 사놓고(그것도 굳이 주문해서 표지가 다른 동네서점본으로), 궁금해서 장바구니에 넣어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곧 나에게 어떠한 형태로든 올 것이다!
좋아하지 않아도 작품이 궁금할 수는 있지 않나?
난 작가를 좋아한단 말은 여간해선 못하겠더라는...! 궁금할 순 있지만.
어쨌든 오늘도 이렇게 모순적인 책읽기는 계속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