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공부는 생존이다: 우리는 매일매일
--> 여성주의도 동등하게 학교에서 배워야한다는데 찬성. 당장 우리집만해도 우리 아들은 페미에 부정적. 자신이 피해자인줄 알고 있다. 싸우다 지친다. 모르는 것보다 잘못 알고 있는게 더 문제다. 바른 인식을 다시 심어 주려니 그게 더 지치고 진 빠진다.
남자들의 지식은 전수되는데, 왜 여성은 처음부터 똑같은 질문을 반복할까. 나를 비롯해 여성도, 여성주의자도 젠더에 대해 알기어렵다. 여성주의는 과정의 사유다. 왜냐하면 여성주의는 그 자체로 모순인 사유이기때문에 매 순간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도대체 누가 여성이며, 그것은 누가 정하는가.
현실이 계급 문제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듯, 젠더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여성은 구조적 피해자"는 상식이지 논쟁거리(?)가 아니다. 젠더는 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남녀 간 권력관계로 ‘보이는‘ 젠더는, 여성들간의 차이와 남성들 간의 차이를 매개로 하여 작동한다.
이러한 여성주의의 모순과 복잡함은 사상의한계가 아니라 자원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주의적 사고방식은 가성비가 높은 공부이며 빼어난 인식론일 수밖에 없다. 여성주의는 다른 사유처럼 공부해야만 획득할 수 있는 어려운 인식이다. ‘여성(female)‘이 ‘여성(women)‘이 되는 과정 그리고 ‘우먼‘이 ‘페미니스트‘가 되는 과정 모두 엄청난 정치적 노정(路程)이다. 그 길에서 우리는 세상의 모든현실과 지식을 만나게 된다. 문제는 사상과현실의 거리가 너무 멀고 동시에 너무 가까운듯 보여서, 누구도 이정표를 제시할 수 없다는 점이다.
나는 한국의 현실 정치에서 젠더에 관심 있는 사람도, 젠더가 무엇인지 아는 이들도 없다고 본다. 여성운동 단체 출신 의원도 마찬가지다. 표 싸움일 뿐이다. 2022년 윤석열정권이 무슨 심각한 가치관이 있어서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한 것이 아니다(당선 후여가부 장관을 비롯해 몇몇 여성 장관을 임명했다). ‘여성계‘를 포함해 한국 사회는 정치권, 시민 사회, 학계 등 모든 분야에서 인식론으로서 젠더의 지위가 매우 낮다. 젠더가 문제가 될 때는 정치인의 성범죄로 상대방을 공격할 명분이 생겼을 때뿐이다. 그들은 성차별주의자가 아니다. 무엇이 성차별인지 ‘여성 우대‘인지 분별력이 없다. 그냥 젠더에 무지해도 되는 권력을 가졌을 뿐이다.
‘백래시‘라는 분석도 과분하다. 지금 한국 남성 문화는 극소수 여성 인구가 과잉 재현된 ‘서울 강남에 사는 고학력 전문직 중산층 이성애자 금수저 여성‘을 조선시대 여성과 비교하며 분노하고 있다. 한국남성은 백래시의 주체가 아니다. 좋게 말해 문화 지체 현상이고, 예전처럼 ‘기 살려주기‘를 해 달라고 보채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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