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월동 여자들>

새빨간 불빛과 웨딩드레스 중에서...


  완월玩月동의 '완玩'은 희롱하다, 가지고 놀다, '월月'은 여성을 상징하는 은유적인 표현으로 '여성을 가지고 논다'라는 뜻이다. 낮에는 조용하고 인기척이 드물어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고 밤이면 불야성을 이루는 곳이다. 성구매자, 업소 관계자. 소수의 주변 상인과 공권력을 집행하는 사람들 외에는 접근하기 힘든 곳이다. 또한 외부와 단절된 외로운 성, 은폐된 공간이며, 침묵을 강요하는 불의가 판치고, 부당한 권력과 부정의가 곳곳에 녹아들어 있는 곳이다. 한낮에 동네를 걸으면 해가 진 후의 공동묘지처럼 스산함과 을씨년스러움, 음산함이 스멀스멀 밀려오는 곳이기도 하다.(74쪽)



완월동은 내가 알기로 행정 구역상의 명칭이 아니다. '충무동'이라는 공식명칭을 두고 성매매 집결지였던 완월동이라고 부르는 저 곳은 지금은 재개발 계획으로 인하여 폐쇄가 되었지만 기록으로 남아있는 자료들, 특히 성매매 없소의 1층 유리방, 일명 미스방의 사진들을 쉽게 검색해 찾아볼 수 있다. '완월'이라는 한자어가 내포한 뜻을 읽었을 때 순간적으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유리방, 미스방이라는 것이 어떤 식으로 만들어져 있는지 실제로 본 적이 있기 때문에 그것의 비인간성과 여성을 전시해 놓은 온통 붉은 색이었던 그 골목 공간을 실제로 목격했을 때의 당혹감은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고 순간적으로 당황해서 뒷걸음질치게 만든다는 것도 안다. 

성매매 특별법이 제정된 것이 2004년 9월 23일이라고 하는데,  그 이후에도 오랜 시간 동안 버젓이 저러한 영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고 하니 '우리'의 정부가 맞는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거기다 성매수자로 단속에 걸려 교육을 받으러 온 남자들이 전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억울해하고 자신만 재수없이 걸려서 이런 성가신 교육을 받고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강사로 나선 활동가가 만약 자신의 여동생이나 가까운 사람이 이런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면 어떨거 같냐고 물으니 자신의 주위에선 그런 여자들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하는 이중적인 잣대를 가지고 있는 것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글을 읽고 나서 더 분노하게 된 거다. 여성을 전시해 놓은 그 붉은 색의 공간은 마치 마치... 마치... 어디가 연상이 되시는지...

이성을 가진 인간으로서의 품격보다는 본능이라고 우기는 그네들의 짐승과도 같은 본성을 뜯어내버리고 싶다. 





며칠 전 읽었던 리베카 솔닛의 글에서도 읽었던 크리스틴 블레이지 포드 교수의 성폭행 폭로 발언-미 합중국 대법관 브렛 캐버너의 인사 청문회에서 고등학생이었을 때 그와 그의 친구들에게 성폭행 당한 일을 폭로했다. 그럼에도 대법관으로 임명되었대서 다시 또 분노! -에 대한 내용이 시리 허스트베트의 에세이 <어머니의 기원>에서도 언급이 되어 있어 적어본다.

   

  <감정을 젠더화하기>라는 에세이에서 우테 프레베르트Ute Frevert는 "고대로부터 분노는 강자의 자질로 여겨졌다"고 쓴다. 나는 현재 미 합중국의 대법관이 된 브렛 캐버노가 눈에 눈물을 글썽거리며 불미의 사태에 분노하는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보았다. 어떻게, '내'가, 성유 바른 법의 총아가, 저 여자 교수 크리스틴 블레이지 포드에게서 성폭행으로 기소 당할 수가 있단 말인가? 분노는 강자의 특권, 미국에서는 백인 남자의 특권이다. 나머지 우리에게는 허락되지 않는다. 신중하게 가두거나 꿀꺽 삼켜버려야 한다. 여자는 부드럽고 차분하고 숙녀다운 목소리로 증언하며 겸손하게 앉아서 자신을 심문하는 사람들을 열심히 '돕겠다는' 의향을 보여야만 한다. (시리 허스트베트, '어머니의 기원', 27쪽)



분노는 고대로부터 강자의 자질이었다구???  여자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감정이라고??? 우리 집에서 주로 분노하는 사람은 난데... 지금 이 시대에 여자로 태어나서 다행인 건가. 엄마, 감사해요...땡큐...!

성 산업은 거기에 종사하지 않는 여성들을 지켜주는 방패막이의 역할을 한다는 무슨 말 같지도 않은 글을 읽거나 들은 적이 있다.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보다 더 말 같지 않지만 성은 남자들에게 있어 '억제할 수 없는 본능'이라느니 숟가락 들 힘만 있어도 남자는 그것을 추구한다느니 어쩌구 하면서 본능설을 들먹이며 굳이 자신을 짐승으로 다운그레이드하는 남성들에 대하여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지 정말 실컷 패주고 싶은 기분이다. 





어제 이 책을 받았다.

정희진 샘의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차례를 훑어보다가 '억제할 수 없는 본능?(129쪽)'이라는 소 제목이 눈에 띄어 읽어보았다.

우선 남성용 리얼돌 산업이 '단순한 인형'이 될 수는 없다는 것. 

그리고 "이성애 남성에게 여성의 성이 필요하다는 뿌리 깊은 고정관념"으로 인하여 "성매매는 '필요/악'이라는 모순어가 당연시 되고 성매매, 포르노 산업, 리얼 돌이 성폭력 발생을 줄일 수 있다는 발상이 가능한" 것이라 진단하였다.   


  선생님도 나와 같은 말을 들으셨나보다(성폭력 예방이란 말). 그만큼 널리 퍼진 말이라는 뜻이겠지. 그러나 이 발상은 "남성의 성욕은 억제할 수 없는 본능"이라는 고정관념을 강화하고 성폭력 발생률을 더 높일 뿐이다. 통념과 달리 성 산업은 성폭력 예방책이 아니라 기폭제다. 남성의 '억제할 수 없는 성욕'은 통념이지, 사실이 아니다. 남성 문화의 주장대로 성욕이 배변과 같은 생물학적 요구라면, 처리할 수 없는 넘치는 성욕이 문제라면, 비아그라가 왜 남용되겠는가. 오히려 억제제를 개발해야하지 않을까.(131~132쪽)


그러면서 결국 남성들이 말하는 성적 욕구라는 것이 단순한 삽입 섹스의 문제가 아니라 '친밀감과 정서적 유대감' 형성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성욕은 발작이나 '충동'이 아니라 생각과 감정의 작용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성욕은 문화적 산물'이라는 것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잠깐 읽었지만 고개를 끄덕끄덕... 분노가 사그라드는 기분이다^^ 다시 이성적인 나로 돌아와 기쁘다! 

얼른 읽어봐야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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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12-02 0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월동, 말은 많이 들었지만 한번도 그 근처에 들리지도 않았기에 무척 궁금했는데. 칠십대 중반 나이에 글로 만나네요.

은하수 2023-12-02 09:16   좋아요 0 | URL
아... 부산에 사시나봐요
전 완월동, 충무동은 몰라도 부산의 지명은 익숙하거든요. 어릴때 살다 온 곳이고 친가가 거기라서요.
근데 완월동은 좀 충격이었죠.

호시우행 2023-12-02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향은 대구, 서울에서 생활, 출장때 자주 부산에 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