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누구의 이야기인가 - 미투 운동에서 기후위기까지
리베카 솔닛 지음, 노지양 옮김 / 창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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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비교적 편하게 읽을 뿐만 아니라 읽고 나면 강한 자극을 남기는 작가 중의 한 명이 리베카 솔닛이다. 

그는 페미니스트이면서 환경, 반핵, 인권 운동에 헌신적으로 동참하는 활동가이고, 분야를 가리지 않는 다양한 저술 활동으로 다양한 수상 경력까지 보유한 작가이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를 읽고 알게 된 '맨스플레인' 현상으로 강인하게 각인되기도 했다. 그래서 도서관애 가면 굳이 찾아보는 작가이기도 하다.

얼마 전 우리 동네 작은 도서관이 내부 리모델링 공사를 마쳤다고 하길래 갔다가 눈에 띄어 바로 대출해왔다. 작은 도서관인데 왜 여태 눈에 안띄었을까 의아했지만, 의아함을 뒤고 하고 읽기 시작하니 정말 순식간에 글에 빠져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불편한 이야기를 밝혀내어 마구마구 던져주는데 어찌 아니 시원할쏘냐!



그런데 책을 읽어나가다 보니까 이 작가도 정말 나만큼이나 트럼프를 싫어하나보다 싶은 생각이 드는게 막 웃음이 나는 거다. 물론 책의 내용은 전혀 웃을 수 있는  그런 내용이 아니었다는 것은 당연하다. 리베카 솔닛은 아마 나보다 더 싫어할 뿐 아니라 그 사람의 뻘짓, 어이없는 짓, 얼토당토 않은 거짓을 가까이서 더 많이 대하고 있을 테니 그 문제의 심각성을 나보다 훨씬 훨씬 더 많이 인지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비단 리베카 솔닛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란 걸 우리 모두는 알고 있는데, 책의 첫 장,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 앞에 떡 버티고 서 있는 이상하고 신경 거슬리는 문화적 서사에는 다음과 같은 공통분모가 있다."(27쪽)  그 공통분모라는 것은 우리 중에 누가 더 중요한지, 이건 누구의 이야기인지, 그리고 누가 더 동정?을 받아야하는지에 대한 가정, 그리고 누가 연민을 더 받아야 하고 누가 더 양손에 선물을 쥐고 있으면서 더 달라고 협박하는지, 누가 더 사랑받고 싶어하는지, 궁극적으로 왕국과 권력을 누구의 영광으로 돌려야 하는 지에 대하여 말하는 그 공통분모가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우리는 아마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백인들, 특히 백인 남성들, 더 구체적으로 이성애자 백인 프로테스탄트 남성들이 그들"이라는 것을! 전형적으로 트럼프는 이 부류에 속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니까 난 트럼프를 볼 때마다 이렇게 생각되어지는 것이다. 양 손에 떡을 쥐고 더 달라고 끊임없이 떼를 쓰고 남의 손에 있는 떡 하나를 뺏지 못해 앙탈을 부리면서 응석을 부리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모습 말이다. 그러다가 이런 생각도... '아유 지겨워 적당히 좀 해라. 그러다 배 터져 ㄷㅈㄹ...!' 1964년 인권 운동가 패니 루 해머Fannie Lou Hamer는 유명한 말을 남겼단다. "나는 지치고 짜증나는 데에도 지치고 짜증난다.(176쪽)" 이 말이 딱 내 심정이다!(더 심한 욕을 했다 지움)




그런데 요즘 또 티비 뉴스에 트럼프가 자꾸 보인다. 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의 그 누구도... 땡전 뉴스도 아니고... 그래서 내가 요즘 뉴스를 안 본다. 남편이랑 뉴스 듣다 둘 중 하나의 얼굴이 보이면 차 한 잔 들고 내 방으로 쏙 들어와버린다. 물론 문을 쾅 닫고(이건 남편에 대한 반감도 포함된다! 내가 그렇게 말렸건만). 그 사람들은 세상이 자신들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할까, 분명 자신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그리고 모든 세상의 중심에는 자신들이 있으므로 역사는 자신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할까, 세상의 모든 사랑과 동정은 자신들이 받아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진정???

많은 백인 남성들은 힘은 애초에 평등하게 분배되지 않으며, 늘 그래왔듯이 자신들이 가진 힘을 자랑스레 떠벌리고 자신들의 의견에는 주관적인 편견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지극히 객관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고 말하면서 임신중지 반대 법안을 만들고 여성을 협박하고 폭행하고 성폭력과 성추행을 일삼으면서도 처벌받지 않는다. 법과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일삼는 폭력에 다름 아닌데도 말이다. 그러니까... 투표를 제대로 해야하는 건데... 싶었지. 그래서 특히 이 책의 '투표 억압은 집에서부터 시작된다'를 읽으면서 충격을 좀 받았는지 모르겠다.




생각보다 흔한 가정 내 폭력으로 인한 투표 방해 행위에 대하여 다루고 있었는데 나는 이러한 예시들이 극히 일부의 일화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기도 하다. "남편이 우리집의 결정권자라서요."라고 말하는 여성들이 사는 나라가 과연 미국이라는 것을 믿어야 하는지...  미국에서 여성의 참정권 운동의 역사를 돌아보면 여성을 기본적으로 남편의 사유 재산이나 가축으로 제한했던 당시의 법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남편은 기본적으로 아내의 신체, 노동, 수입과 자산을 통제할 권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러한 관습이 현재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저 밑바닥에서부터 소름이 올라오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 "유권자 위협, 다른 말로 '투표권 도둑질'이라 부를 수 있는 많은 방식이 있고", 우리와 다르게 선거 운동원이 유권자를 만나는 미국의 방문 선거 운동원들에게서 수집한 사례를 보면 나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사실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자신이 투표할 후보를 남편에게 물어봐야 하고, 아예 아내의 의견은 묻지도 못하게 하고, 자신의 의견을 밝히기도 전에 남편을 두려워하거나, 소리를 지르면서 아내의 의견을 가로채는 남편들의 모습은 남편과 아내의 모습이 아니라 주인과 노예의 삶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지배당하고 조종당하고 외부와 차단된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차단 당하는 상황은 투표권 행사에서도 적용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심각하다. 선거 감독관인 대니얼 루트라는 사람의 글을 인용해보면,


  "가정 폭력범들이 생존자들에게 사용하는 가장 흔한 전략은 피해자를 가족, 친구, 지역사회 주민들로부터 고립시키는 것이다. ( ...) 학대자들은 바깥세상으로 통하는 창구인 전화와 인터넷 사용을 제한하거나 검열하기도 한다. 투표를 하고자 하지만 친밀한 파트너에게 폭력을 경험한 개인들에게 고립은 특히 심각한 문제가 되기도 한다."(89쪽) 




하워드 진이나 긴즈버그의 글을 읽으면서 미국의 임신중지 반대 법안의 폐해가 얼마나 심각한 지, 그 법이 여성들의 몸에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는지, 그리고 임신중지가 여성들을 묶어 놓는 부당한 편견과 거짓말들이 어떤 식으로 선전되고 있는지 - 예를 들어 임신중지를 하려는 여성은 부주의하고 아이를 혐오하는 난잡한? 여성이라는 거짓말. 뿐만 아니라 2019년 4월 말 위스콘신주에서 열린 공화당 집회에서 도널드 트럼프는 이렇게 말했다. "아기가 태어나죠. 엄마가 의사를 만나요. 둘이 아기를 보겠죠. 그런 다음 아기를 강보에 곱게 싸서 의사와 엄마가 이 아기를 죽일지 살릴지 결정을 합니다."(96쪽) 이런 정신 나간 거짓말을 사실인 것처럼 날조해서 공표하듯 말한다. - 알고 있었지만 리베카의 글을 읽으면서 더 많이 알게 되고 분노(요즘 책 읽다 이 감정을 가장 많이 느끼는 거 같다!) 하고 그 여성들의 처지에 깊이 공감하지만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막연한 불안감은 맘 속 깊이 내가 어쩌지 못하는 트라우마처럼 남아있다. 아마 많은 여성들이 이런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포드 박사님, 당신이라는 지진을 환영합니다'  에서 읽었던 크리스틴 블레이시 포드 박사의 용기있는 증언에 나도 조금 힘을 얻었다. 포드 박사는 미국 대법관 후보 브렛 캐버노의 성폭력을 폭로한 최초의 여성으로서 그의 증언은 

피해자로서 엄청난 비난을 견뎌야함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낸 것이었다. 캐버노는 현재 대법관으로 검색이 되고 있으니 성폭력을 고발한 세 명의 여성이 있었음에도 백인 남성, 프로테스탄트 보수성향이라는 견고한 성은 무너지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포드 박사의 증언에 힘입은 여성들은 이후 직장 내 '성희롱'을 고발한 애니타 힐로 이어지고 수많은 목소리가 공명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용기에는 전염성이 있다"는 포드 박사의 증언처럼 여성들이 고분고분하길 원하는 세상으로부터 분노하고 미투 운동으로 변화를 이끌어낸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용기를 배운다. 버스 보이콧 운동을 벌인 로자 파크스,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운동의 공동 설립자인 알리시아 가자, 아이다. B. 웰스, 오드리 로드, 테리 맥밀런, 그리고 힐러리 클린턴 같은 여성들을 언급하면서 그들의 분노의 이면에 깔린 건 정의에 대한 사랑, 평등에 대한 사랑, 잘못을 바로잡고 진실을 말하고자 하는 태도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한다. 나도 이 말에 깊이 공감한다.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공통분모들의 성폭력, 성희롱 사건 폭로를 보면서 우리 여성들은 생각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 여성들은 더 많은 사람, 더 많은 목소리, 더 많은 가능성이 함께하는 미래로 나아갈테고, 어떤 사람들은 뒤쳐질텐데 미래가 그들을 참아주지 않아서가 아니고 그들이 미래를 참을 수 없어져서 도태되고 말 것이라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 하는 주류 문화 속 '이성애 백인 남성 프로테스탄트들'만이 주인공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화자가 될 것이라고.  왜냐하면 "백인 프로테스탄트는 이미 소수이고 2044년 전후로 비백인이 투표권을 가진 주류가 될 것"이기 때문에.... 나도 그러한 세상을 꿈꾼다. 여성이 여성의 이야기를 하는 세상을... 남의 나라 이야기일수도 있지만 비백인이 주류가 된다는 상상만으로도 왠지 통쾌한 기분도 든다. 거기에 물론 여성들도 포함이어야 한다. 




"오늘을 가로질러 흐르는 힘과 가능성"이라는 문장은 리베카 솔닛이 '어린 기후 운동가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쓴 것을 인용하였다. "2019년 3월 15일 세계 50여개국의 청소년 수십만명이 기후변화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책을 요구하는 등교 거부 시위(Global Strike for Future)를 벌이고 거리 집회를 열(270쪽,옮긴이 주)"었을 즈음 가디언 지에 발표한 글인데 거기 마지막 장에 이 문장이 나온다. 청소년들에게 보낸 글이지만 수신인을 우리 여성 동지들에게라고 해도 딱히 나쁘지 않은 글이란 생각이 들었다. 관심을 기울이고 글을 찾아 읽고 용기를 내어 앞으로 한발 내딛는 발걸음이 모여 현재를 가로질러 가는 발걸음이 된다면 언젠가 반드시 길이 생길테니까. 솔닛도 말했다. 관심을 기울이고 글을 찾아 읽는 것만으로도 반기를 드는 것이라고. 나는 앞으로도 계속 글을 찾아 읽을 것이니까 행동하는 여성들에게 기氣를 모아주는 것이라고 믿고 싶다. 아... 소심한 나여! 이것이 나의 한계인가...


   "오늘의 여러분 또한 지금 일어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힘을 앞으로 모두 느끼게 될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행동은 중요해요. 여러분 개인은 그저 몇몇 사람들과 함께, 혹은 수백명과 함께 일어났다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전세계의 수백수천만명의 사람들과 같이 일어난 것입니다.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서도 일어난 것이고 아직은 보이지 않는 수천만명의 사람들도 여러분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현재를 가로질러 흐르는 힘과 가능성이며 이는 사막에 흐르는 강과 같습니다.(2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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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3-11-27 2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하.............................................. 은하수님.......... 하.... 그러니깐요....

은하수 2023-11-27 20:40   좋아요 2 | URL
반가워요~~쟝님!
요즘 제가 너무 분노에 차 있나봐요...ㅎ
원동력과 힘이 되는 분노가 되도록 힘쓰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