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조한 마음 대산세계문학총서 116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이유정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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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조한 마음> 호프 밀러, 그는 과연 어디에서 멈춰야 했을까?!


어제였나 그제였나???... 츠바이크의 <초조한 마음> 읽다 잠시 쉬고 있던 시간이었는데, 어느 플친 님 글이 눈에 들어오는 거다.  '좋은 책이란 읽는 사람의 마음에서 끊임없이 생각이 솟아나게 해야 한다는, 즉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책이 좋은 책'이라는 것... 문장을 다 기억하진 못하지만 이런 취지의 말이었던 거 같다. 



그 글을 읽으면서 나는 츠바이크의 <초조한 마음>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 책을 읽을 때 나의 뇌 속에서 어떤 반응들이 나타날지! 뇌파 검사를 한다면 아마도 그래프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짧은 시간을 주기로 심하게 요동을 치지 않았을까. 어설픈 연민을 주제로 츠바이크가 보여주는 심리의 묘사는 너무나도 탁월해서 결코 짧지 않은 길이의 작품을 결국 순식간에 읽어내게 만드는 힘이 넘쳤다. 역시 하고 감탄을 했지만 읽는 내내 주인공인 호프 밀러에게 끊임없이 외칠 수 밖에 없었다. 제발 그만 둬 그만 두라고. 아 놔 정말 또... 이번엔 제발... 그만, 여기서 멈춰!!  그만 그만....!!! 마음 속에서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끝까지 책임지지 못할 어설픈 연민의 감정으로 실수를 거듭하고 오해하게 만들고 다시 두려움에 물러났다 다시 또 끌려 들어가고 다시 또 물러나고 ... 이런 유유부단한 성격의 남자를 또 옆에서 끊임없이 닥달하면서 끌어들이고 이용하고... 이러는 주위의 주인공들도 용서가 안되고...  난 자꾸만 호프 밀러의 감정에 이입이 됐다가 다시 이해가 안됐다가 하면서 마음이 널을 뛰는데 츠바이크는 일부러 더 그러는 것인지(?), 끝까지 물고 놓아주지를 않는 거다. 아 놔, 정말 츠바이크 님, 존경합니다. 정말 너무하잖아요! 내 맘도 들었다 놨다! 호프 밀러도 들었다 놨다!  물론 난 이 작품의 결말이 비극으로 끝나리란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츠바이크의 작품을 여럿 읽다보니 자연스럽게 알게 되더라는 거다.



"소설의 배경은 제 1차 세계 대전 발발 직전 오스트리아-헝가리 접경지역이다. 헝가리의 주둔지로 발령을 받은 안톤 호프밀러 소위는 무료한 생활을 하던 중, 그곳의 부유한 실업가인 라요스 폰 케케스팔바의 집으로 초대를 받는다. 그곳에서 그는 케케스팔바의 딸 에디트를 만난다. 에디트가 불구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그는 그녀에게 춤을 청하게 되고, 커다란 소동이 일어난다. 에디트의 사촌인 일로나를 통해 알게 된 그는 죄책감을 느낀 나머지 도망치다시피 그 집을 빠져나간다. 이때부터 호프밀러는 자신의 잘못을 만회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일에서 희열을 느끼게 되고, 이러한 감정은 점차 고조되어 그의 삶을 가득 채우게 된다."(468쪽, 옮긴이 해설 중에서 )



그렇다. 호프밀러는 자신 같은 보잘 것 없는 사람도 누군가에게 기쁨을 줄 수 있고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 쥐꼬리만큼의 재산도 가지지 못한 자신이 부유한 노인과 불구의 소녀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는 데서 태어나 처음으로 희열을 경험한다. 어린 시절부터 사관학교의 폐쇄된 공간에서 적은 소득으로 근근이 살아가던 순진한 청년 소위는 이러한 벅찬 경험과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자신도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점점 빠져든다. 연민으로 시작한 관계는 점점 꼬이기만 하고, 새로운 치료법으로 그녀의 다리가 곧 낫게 되리라는 헛된 희망을 품게 만들었고, 그리하여 상황은 점점 더 나빠져만 간다. 거기다 호프밀러가 전혀 예측하지 못한 당황스러운 일이 발생하는데, 그것은 바로 사랑.  호프밀러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낀 에디트는 그의 감정이 연민이라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심한 발작을 일으키고 다시 또 화해를 하는 등의 과정이 이어진다. 격한 감정을 이기지 못한 에디트는 호프밀러에게 격정적인 키스로 자신을 내보이고 이에 호프밀러의 영혼이 위험을 느끼고 뿌리치지만 다시 에디트의 절절한 사랑 고백의 편지가 당도하자 이에 과도한 책임감에 질식할 듯한 반응을 보이면서 친구의 도움을 빌어 멀리 도망가려 한다. 아무튼 그 사랑이 문제인 거다.



이 부분에서 차라리 지금이라도 도망가, 도망가, 하고 몇 번이나 외쳤는지 모른다.  불구의 몸으로 힘겹게 세상의 끈을 놓고 싶어하는 소녀를 돕고 싶어하는 측은지심의 마음 연민....!  그 연민의 감정이라는 것이 한 사람의 인생을 끝까지 책임져야만 하는 감정이란 말인가!  어째서 호프밀러는 연민의 감정일 뿐이었는데... 사랑한 것이 아닌데 왜 끝까지 에디트를 책임져야만 한다는 말인가!  에디트, 에디트의 아버지 케케스팔바, 그리고 에디트를 돕기 위해 와있는 사촌인 일로나, 그리고 콘도어 박사... 이들은 호프밀러의 마음이 단지 연민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에디트에 대한 사랑의 감정은 1도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지 않았던가! 마음이 약하고 남에게 나쁜 행동을 하거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을 하지 못하는 호프밀러는 심한 갈등을 겪는다. 그런데 그 갈등을 친구들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고 케케스팔바네 사람들은 간절히 매달리면서 상황을 자꾸 이용하려 한다. 

이렇게 우왕좌왕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휘둘리는 호프밀러에게 에디트의 담당 의사이며 자신도 눈 먼 여인과 결혼한 콘도어 박사는 여러 차례 조언을 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본능적으로 위기를 느끼고 뒤로 한걸음 물러나려는 호프밀러를 다그치기도 한다. 어설픈 연민으로 에디트를 위험에 빠뜨리지 말라고. 니가 여기서 발을 빼고 멀리 달아난다면 그것은 살인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살인, 살인이라니... 이러니 호프밀러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에디트에게 살아갈 희망을 주고 걸을 수 있다고 거짓말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순수하게 인간적인 감정이었던 것이지 사랑은 결코 아니었던 건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지 호프밀러는 이해할 수 있었을까. 그 사랑을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생각이나 했겠냐구. 그러나... 그것이 면죄부가 될 순 없다고 생각한다.



콘도어 박사는 자신이 고치겠다고 약속한 환자는 그 약속을 꼭 지켰고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단 한사람이었던 눈 먼 여인과 결혼을 함으로써 끝까지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 그 사람이라면 호프밀러에게 연민으로 시작했다 해도 자신의 결정을 끝까지 책임지라고 말할 수 있겠지! 거기다 호프밀러는 경솔하게도 불구의 다리가 곧 낫게 될 것이라고 거짓을 말함으로써 자기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는 말을 한다. 그러니까 자기 무덤을 자기가 판 셈이 되는 거다. 그러니 호프밀러에게 도망가 도망가 지금이라도 도망가 하고 말하고 있지만, 꼬여만 가는 그 상황이 에디트나 콘도어 박사, 케케스팔바의 다그침으로 인한 것만은 아녀서 더 답답해지는 거다. 이러니 츠바이크 선생, 우리 독자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이러면서 끊임없이 이래야하나 저래야하나 이게 맞은가 지금이라도 도망가라고 해야 하나 어느 한 편만을 들지 못하게 만드는 거다. 결국 끝까지 책임지지도 못할 어설픈 연민이 문제가 되는 거다. 그래, 충분히 이해한다. 그것이 문제였다는 거. 어설픈 연민에다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또 약한 마음에 약혼을 당하고 다시 또 부인하고 도망치고... 그건 너무너무 비겁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가 얼마나 혼란스러웠을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젊은 소위의 심정이 다 느껴지는 거다. 내 마음도 이랬다 저랬다... 



하지만, 부유한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원하는 남자라면 누구라도 가질 수 있었을 이 에디트란 소녀는 불의의 사고로 걸을 수 없게 되었고 벌써 몇 년 간을 집안에 갇혀 인생을 허비하고 있었다. 죽으려고 여러 번 시도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실패했지만. 그런데 그런 소녀 앞에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거기다 "훤칠한 키에 젊고 건강해 보이는 얼굴, 관자놀이에 흘러내리는 매혹적인 잿빛 머리카락에 이르기까지 주위의 시선을 사로잡는 모습", "꼿꼿한 자세와 걸음걸이"를 가진, 이런 사람이라니. . .  딱 봐도 젊고 잘생긴 청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런 남자가 갇혀 지내다시피 하는 어린 소녀 앞에 어느 날 떡하니 나타난 거란 말이다. 그런데 그 청년이 자신에게 호의적인 눈빛으로 매일 찾아와 말동무도 해주고 체스도 두고 격려도 해주고 한결같이 행동한다면... 사랑이라곤 해본 적 없는 순진한 소녀가 사랑에 빠지는 것은 시간의 문제일 뿐,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을 거다. 소녀의 아버지인 케케스팔바는 어떠한가. 사랑하는 딸이, 하나뿐인 딸이, 자신의 삶의 전부인 딸이 불구가 되어 걷지도 못하고 하루하루 죽어가는데 한껏 마음이 약해져 있는 그 앞에 나타난 마음도 순수하고 넓은 듯한, 이해심 많고 한결 같은 젊은이라니... 오해하고 싶지 않았을까. 연민이라고만 믿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어찌 희망을 가지지 않겠는가! 딸이 저렇게 좋아하는데... 자신의 모든 것을 주고라고 딸 옆에 데려다 놓고 싶었을 것이다. 딸의 병을 낫게 할 수만 있다면 지옥이라도 뛰어들 아버지 앞에 나타난 젊은이가 약해져 있는 그들의 마음을 그저 연민으로만 바라보기를 바라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냐는 말이다. 그것은 아무리 의도하지 않았다 해도, 그저 연민의 감정이었고 사랑의 감정이라곤 1도 없고 무거운 책임감으로만 느껴졌다 해도 상황이 악화되는 모든 순간에 일말의 책임감도 느끼지 않는다면 그건 너무 무책임하고 또 무책임한 게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호프밀러 소위는 처음부터 그러면 안됐던 거다. 연민의 감정을 느낄 수는 있지만 그것을 계속 행동으로 옮기면서 불편한 상황을 끌고 가선 안됐던 거다. 거짓으로 그 관계를 이어가선 안됐던 거다. 대체 자신이 뭐라고 그런 믿음에 반하는 행동을 할 권리가 있다는 것인가. 호프밀러 소위와 같은 성격의 소유자라면 더더욱! 그러니까 제발 사랑을 줄 것도 아니면서 감정을 함부로 질질 흘리고 다니지 말란 말이다!!! 



호프밀러가 자신의 입으로 작가인 나에게 직접 고백하는 형식으로 시작하는 이 이야기의 결말은 그래서 결국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치달을 수 밖에 없었다.  그 모든 일은 결국 어리석은 행동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하는 호프밀러의 첫 고백의 말이 모든 것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감상적인 연민이라고 하는, 가능한 빨리 벗어나고 싶어하는 초조한 마음, 함께 고통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자신의 영혼을 방어하는 마음이 들게 하는 연민이라는 감정은 처음부터 자라나면 안되는 거였다. 처음이 잘못 되었기 때문에 달리는 말에 올라타고 있는 것처럼 멈추지 못하고 파국을 향하여 달려갈 수 밖에 없었다. 사실이 이러할진데 호프밀러가 자신의 죄가 어디서부터 성립되는지 그 경계를 알지 못한다는 그 말이 너무 안타까웠고 그래서 꽤 오래 가슴에 남을 거 같다. 



   "모든 일은 어리석은 행동에서 비롯되었다. 아무런 악의가 없는 서투른 행동, 프랑스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가프gaffe'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물론 나는 곧바로 내 어리석은 행동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했지만, 고장 난 시계 속 톱니바퀴를 급하게 고치려다 보면 대개 시계 전체를 망가뜨리는 법이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어디까지나 나의 단순한 실수이고 어디서부터 나의 죄가 성립되는지 그 경계를 구분 짓지 못한다. 아마 앞으로도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19쪽) 



   "오전에 동료들과 말을 타고 나가도, 근무수칙에 따라 꼼꼼하고 정확하게 일을 처리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오후가 되어서 어쩔 수 없이 케케스팔바 저택으로 향하는 내 어깨는 마치 귀신이 올라타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묵직했다. 그것은 이제부터 내가 짊어지게 될 짐이, 그 책임감이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무겁다는 것을 예감했기 때문이다. 그날 밤 공원에서 노인에게 딸아이가 곧 치료될 거라고 말했을 때만 해도 나는 그저 연민에 사로잡혀 진실을 숨긴 것이었다. 그것은 의도적인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내 의지에 반하는 행동이었다." (246쪽)



   "연민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그중 하나인 나약하고 감상적인 연민은 그저 남의 불행에서 느끼는 충격과 부끄러움으로부터 가능한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하는 초조한 마음에 불과하며, 함께 고통을 나누는 대신 남의 고통으로부터 본능적으로 자신의 영혼을 방어한다. 진정한 연민이란 감상적이지 않은 창조적인 연민으로, 이것은 무엇을 원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힘이 닿는 한 그리고 그 이상으로 인내심을 가지고 함께 견디며 모든 것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연민을 말한다." (17쪽)



우리는 흔히 츠바이크가 말하는 '진정한 연민',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힘이 닿는 한 그리고 그 이상으로 인내심을 가지고 함께 견디며 모든 것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그 연민을 '사랑'이라고 말하는 거 아닐까.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끝까지 한 여인을 책임지는 콘도어 박사가 보여주는 아내에 대한 연민?사랑? 내 눈에는 그것이 그저 연민으로만 보이지 않았다. 결코 꾸며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분명 진정한...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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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09-18 13: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초조한 마음>보다 <감정의 혼란>에 한표~!! 초조한 마음도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만 ㅋ

한번 시작했다면 멈추기는 쉽지 않은거 같아요 ㅎㅁ

은하수 2023-09-18 16:40   좋아요 1 | URL
전... 음. .. 뭘 선택할지 망설여져요. 두 작품의 개성이 너무 강하니까요. <감정의 혼란>도 말로 표현하기 어렵죠! 츠바이크 소설은 단편, 중편, 장편이 모두 뛰어나게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