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 전체를 통틀어 단연코 가장 가슴 아픈 장면들이었다. 활발하고 생기 가득하게 시작했던 이야기가 갑자기 이렇게 돌변하는 내용이어서 더 그랬던거 같다. 읽다가 나도 모르게 펑펑 울 뻔했다.
‘존‘이라는 인물이 꼭 실제인 것처럼...!
그런데 작가의 후기를 읽고 정말 사실인걸 알았다.
하... 어찌나 맘이 아프던지...
버지니아에서 워싱턴까지 노예해방을 위한 전쟁에 참전을 했고, 가족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홀로 외로이 죽음을 맞이한 이 젊은이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


"존이 위독해요. 가능하면 부인을 만나고싶다고 하네요."
"이 환자가 잠들면 곧바로 갈게요. 그에게그렇게 말해줘요. 그리고 혹 내가 더 지체하면 안 되는 상황이 오면 알려주고요."
전령이 떠난 뒤 가엾은 쇼를 진정시키며 존을 생각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하루이틀 늦게 도착했다. 

어느 날 저녁 ‘슬픔의방‘에 들어간 나는 최근에 비워진 침대에 새로 배치된, 체구가 크고 흰 피부에 잘생긴 얼굴, 지금껏 본 적 없는 고요한 눈동자를 지닌 군인을 발견했다. 부상이 더 심한 전우들이 먼저 병원에 도착할 수 있도록 뒤에 남은 한 군인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도착한 다른 군인에게 여러 번 들었던 터였다. 그 둘은 다윗과 요나단* 같은 사이인 듯했다. 지치지도않고 존을 칭찬하며 초조하게 그를 기다리 (123/464)

던 그 군인은 존의 용기와 침착함, 자제심,
한결같은 마음씨 등을 늘어놓은 뒤 언제나다음과 같은 말로 이야기를 매듭지었다. "존은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훌륭한 사람이에요. 직접 보면 아시겠지만요." (124/464)

나는 호기심이 일었고 그 훌륭한 인물을직접 만나보고 싶어졌다. 그가 도착한 후 서로 가까워지기까지 나는 하루이틀 밤 그를 지켜보았다. 사실 나는 큰 키에 맞춰 침대 길이를 늘려야 했던 이 건장하고 기품 있는 군인이 약간 무서웠다. 그는 좀처럼 말하는 법이 없었으며 불평하는 일도 없었고 동정을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관찰할 뿐이었다. (124/464)

베개를 세워 머리를 높이고 누워 있을 때면 버지니아 출신의 이 대장장이는 죽어가는 그 어떤 정치인이나 전사의 초상화보다 더 완벽한 위엄을 드러냈다. 갈색 머리카락과 수염으로 싸여 있는 얼굴도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었다. 잘생겼을 뿐만 아니라 아직 고통에 무릎을 꿇지 않은 생명력이 만연해 있었던 것이다. 

사려 깊은 표정으로 주위 군인들의 고통을 지켜볼 때면 그는 자신의 고통은 완전히잊은 듯 아름다운 연민의 표정을 얼굴에 떠올리기도 했다. 주름 속에 강인한 의지와 용기를 드러내는 그의 입매는 진지하고 엄격한 인상을 주었지만 미소를 지을 때면 여자못지않게 사랑스러웠다. 눈동자는 어린아이의 그것과 같았고, 상대의 얼굴을 정면으로응시하는 그의 맑고 거짓 없는 시선은 그를신뢰하는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일이 결코없으리라는 사실을 보장하고 있었다. 삶이의무와 환희로 가득하다는 듯, 마치 충만함 (125/464)

의 비밀을 이미 깨우친 사람처럼 그는 삶을꼭 부여잡고 놓치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그가 딱 한 번 평온을 잃고 동요를 드러냈던 적이 있었다. 담당 의사가 존을 진찰하기 위해다른 의사를 데려왔던 날이었다. 존은 불안한 표정으로 두 사람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나이 지긋해 보이는 쪽을 향해 물었다.
"제가 회복될 수 있을까요, 선생님?" "그러기를 바랍니다." 존의 시선이 그의 침대를 떠나버린 의사들을 뒤따랐다. 의사들이 그 강렬한 눈빛을 보았더라면 더 분명한 대답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잠시 그의 얼굴위로 그늘이 스쳤다. 그러나 그 짧은 일식 日蝕 동안 피할 수 없는 가능성을 받아들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는 곧 평소의 평온함을 되찾았다.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지만 모든가능성을 열어둔 채 진정한 신심인 순종으로 신의 손에 문제를 맡겼다. (126/464)

다음날 밤 P 박사와 함께 회진을 돌던 나는 무심코 병실에 있는 환자 중 제일 고통 받는 이가 누구인지를 물었다. 전혀 예상치 못하게도 의사는 존을 힐끗 보았다.
"숨을 쉴 때마다 단도로 찔리는 거나 진배없어요. 포탄이 왼쪽 폐를 관통하면서 갈비뼈를 부러뜨렸고, 다 나열할 수도 없을 만큼여기저기를 건드리고 지나갔으니까요. 저불쌍한 환자는 고통을 덜 수도 잊을 수도 없어요. 상처난 등을 대고 누워 있든지 아니면숨쉬기를 그만둬야 하니까요. 고통스럽고긴 싸움이 될 겁니다, 워낙 생명력이 대단해서 더 그렇겠지요. 하지만 절제와 인내로도목숨을 구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그럼 결국 죽는다는 말씀인가요?"
"가엾게도요. 손톱만큼도 희망이 없어요.
너무 늦기 전에 존에게 이 사실을 말해주는편이 좋을 겁니다." (127/464)

"그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해주세요." 
P 박사는 참 쉽게 말했지만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것은 잔인하도록 어려운 일이었으며 그가 예의바르게 덧붙인 것처럼 "수월한" 일이 결단코 아니었다. 나에게는 아직 그런 일을 할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암울한 예언을 거스르고무엇인가 희망적인 변화가 일어나기를, 그래서 내가 그 업무를 수행할 필요가 없어지기를 남몰래 소망했다. 몇 분 뒤, 내가 새 붕대를 들고 다시 돌아왔을 때 존은 부축해주는 사람 없이 일어나 앉아 의사에게 등을 치료받고 있었다. 그때까지 한 번도 그의 등을본 적이 없었다. 나는 더 간단한 상처들을 돌보는 일을 맡았던데다 간병인의 충직함을믿었기에, 힘과 경험이 필요한 존 같은 환자는 간병인에게 맡겨두는 편이 더 안전하고 (129/464)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강인한남성이 그 주변의 더 허약한 영혼 못지않게부드러운 여성의 간호를 갈망하며 여성이지닌 연민의 힘을 고대했을지도 모른다는사실은 짐작도 하지 못했다. 의사의 말을 들은 뒤 나는 그간의 무심함을 자책했다. 실제로 의무를 무시한 것은 아닐 테지만, 향수에시달리는 이 영혼을 위로하고 지금의 힘든시간을 조금 더 편하게 견디게 해줄 작은 배려나 친절 따위에 마음을 쓰지 못한 것은 사실이었던 것이다.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무릎 위에 포개고 있던 존은 외롭고 버림받은 사람처럼 보였지만 겉으로 고통을 드러내는 신호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자 마룻바닥 위로 뚝뚝 떨어지는 커다란 눈물 방울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있던 병동에서는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나는 그동안 숱한 환자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130/464)

그렇다고 해서 그가 나약해 보인 것은 아니었다. 그저 더없이 마음이 뭉클해졌다. 그 순간 두려움이 사라진 나는 마음을 열고 아기를 안아주듯 고개 숙인 그의 머리를 두 팔로 품으며 말을 했다. 
"존, 견딜 수 있도록 제가 도와드릴게요."
사람이 그렇게 순식간에 사랑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얼굴 가득 고마움과 놀라움, 안도를 담아내는 것을 이전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 표정으로 속삭이듯 대답했다.
"고맙습니다. 한결 좋네요! 누가 좀 이렇게 해주었으면 했어요!"
"그러면 왜 한 번도 부탁을 하지 않았어요?"
"성가시게 하고 싶지 않아서요. 부인은 너무 바빠 보이고, 저는 혼자서도 어떻게든 버 (131/464)

틸 수 있으니까요."
"이제 위로에 목말라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존."
그리고 나는 그 약속을 실천에 옮겼다. 이제 내가 그의 침대에 잠깐 들렀다가 가버리거나 아니면 고개만 끄덕하고 지나갈 때 종종 내 뒤를 따르던 그 상념 어린 시선의 의미를 이해했기 때문이다. 다른 환자들이 더 다급하게 나를 찾았기 때문에 나는 그보다 더도움이 급해 보이는 환자들을 돌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다른 많은 환자처럼 존도 나를 부족하나마 어머니나 아내 또는 누이의 대역으로 여긴다는 사실을깨달았다. 그는 나를 낯선 사람이 아니라 친구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지금까지는 무심하고 냉정한 친구였지만, 그러나겸손한 그는 내가 무심했던 진짜 이유를 결코 짐작하지 못했다. (132/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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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3-05-21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제 관심도서였는데 잘 보았습니다!

은하수 2023-05-21 21:18   좋아요 1 | URL
가슴아픈 스토리가 여럿이어서
읽는 동안 참 안타까웠어요.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일단 재미는 보장할 수 있습니다^^

서곡 2023-05-21 2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그렇군요~ ㅎㅎ 제가 루이자 메이 올컷 전기 ‘고집쟁이 작가 루이자‘를 재미있게 읽었거든요 그 과정에 이 책도 알게 되었고요 루이자와 그 가족의 삶도 가슴 아픈 데가 있지요...답글 감사합니다

은하수 2023-05-22 00:11   좋아요 1 | URL
표제작이 작가 가족의 자전적 작품이라더군요. 착취가 없는 유토피아적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공동체라는데... 읽으면서 씁쓸했어요. 여자들의 고생과 고통이 어땠을지 상상이 안갈 정도여서 정말 짧은 단편인데도 여실히 느껴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