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인 앤 엘리자에게 청혼한 것이었어.
에블리나에게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니고..
그런데 왜 레미 씨는 그런 오해를 하게 행동한거냐!




하지만 래미 씨는 앤 엘리자에게 고민할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저기, 미스 버너." 그가 스툴을 계산대쪽으로 가까이 끌어당기며 말했다. "제가 오늘 여기 왜 왔는지 그냥 빠르게 말하는 게 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져 결혼하고 싶습니다."

앤 엘리자는 자정에 기도할 때마다 그 고백을 들을 것을 대비해 마음을 단단히 먹으려고 수없이 애써 왔다. 그러나 막상 그 순간이 되자 준비가 하나도 안 된 것처럼 한심하리만큼 겁이 났다. 래미 씨는 계산대에다 양쪽 팔꿈치에 대며 기댔다. 깨끗해진 손톱과 손질된 모자가 앤 엘리자의 눈에 들어왔다. 그런 신호가 있었는데도 준비를 하지 못했다니! - P66

이윽고 심장이 쿵쾅대고 목소리가 갈라지는 것을 느끼면서 그녀가 내뱉었다. "어머, 래미 씨!"
"결혼하고 싶어요." 그가 되풀이해 말했다. "져 너무 외로워요. 사람이 혼자 산다는 게 죠은 게 아니죠. 그리고 매일 찬 음식만 먹는 것도요."
"물론이죠." 앤 엘리자가 부드럽게 말했다.
"게다가 먼지를 당해낼 수가 없어요."
"아, 먼지………. 무슨 말인지 잘 알죠."
래미 씨는 뭉뚝한 손 하나를 그녀에게 불쑥 내밀었다. "져를 받아 쥬셨으면 합니다."
앤 엘리자는 여전히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녀는 머뭇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 사이에 있던 단추 바구니를 옆으로 밀어 놓았다. - P66

"저, 제가요?" 그녀는 숨이 가빠왔다.
"네, 그래요." 구혼자가 차분하게 말했다. "미스버너야말로 져에게 제격이에요. 그건 분명한 사실이에요." 
길 가던 여자가 발걸음을 멈추고 가게 창문을 들여다봤다. 앤 엘리자는 여자가 안으로 들어왔으면 싶었다. 하지만 여자는 이리저리 두서없이 둘러보더니 그냥 가버리고 말았다.
"혹시 제가 마음에 안드나요?" 앤 엘리자가 아무 대답도 하지않자 당황해서 그가 물었다.
그를 받아들이겠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입술이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어떻게든 돌려 말할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런 말은 하지 않았어요."
"져는 늘 우리 두 사람이 천생연분이라고 생각했어요." 래미씨는 잠시나마 들었던 의심이 사라지자 말을 이어 나갔다. "져는 늘 조용한 스타일이 죠았어요. 차분하고 젠체하지 않고 일하는 걸 겁내지 않는 그런 여자분 말이죠." 그는 냉정하게 그녀의 매력을 하나하나 열거하듯 말했다. - P68

"제겐 충분히 활달해 보이는데요." 그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가 차분하게 계속 밀어붙이자 그녀는 겁이 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기 결심이 확고해 보이지 않을까 봐 몸을 떨었다.
"아니, 아니에요." 그녀는 속눈썹에 눈물이 맺히는 것을 느끼며 되풀이하여 말했다.
 "래미 씨, 전 결혼할 수가 없어요. 결혼할 수가 없다고요. 전 지금 너무 놀랐어요. 전 그 상대가 항상 에블리나일 거라 생각했어요. 언제나 말이에요. 그건 저뿐 아니라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고요. 에블리나는 너무나 밝고 예쁘니까요. 그게 훨씬 자연스러워 보였어요." - P68

그녀는 다시 가게에 홀로 남자 매우 안도했다. 그녀는 자기 삶에서 결정적 순간이 지나갔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자신의 이상(理想) 아래로 떨어지지 않은 것이 기뻤다. 정말 멋진 경험이었다. 꿈에도 생각지 못한 두려움과 황홀함이 가득한 순간이었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그의 마음을 알게 된 것이 결코 나쁘지 않았다. 다만 두 가지 사실이 아쉬웠다. 첫째는 그가 가게에서 고백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녀가 검은 실크 드레스를 입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 P71

마침내 에브리나의 귀가 시간이 가까워진다는 두려움이 이러한 생각과 뒤섞이기 시작했다. 어떻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지 않고 동생과 눈을 마주칠 수 있을까? 앤 엘리자는 자기에게서 기쁨의 후광이 번쩍번쩍 빛나고 있을 것만 같아서 에블리나가 어스름이 질 때에야 돌아온 것이 천만다행이다 싶었다.
하지만 애당초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늘 자기 자신에게 빠져 있는 에블리나는 근래 들어 가게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앤 엘리자는 그날 오후 가게에서 일어났던 일을 추궁당할 일이 없다는 걸 깨닫자 수치심과 함께 안도감을 느꼈다. - P71

이 일이 다행스러우면서도 자기 가슴속에 있던 놀라운 비밀을 겉으로 보여 주지 못한다는 것이 조금 굴욕적이었다. 에블리나와 자신이 결국 동등하다는 사실을 동생이 알지 못해 김빠지기도 했고 심지어 약간 불합리하게 느껴지기도 했던 것이다.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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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5-18 15: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엇. 저도 이 책 읽으려고 준비해두었는데요!!

은하수 2023-05-18 17:39   좋아요 0 | URL
제가 먼저 읽어보겠습니다~~~
얼른 읽으셔야지요
전 뒤에 단편 먼저 읽어었어요
징구, 로마열이요.. 어느 플친님 말씀대로 버너 자매보단 뒤 단편이 더더 재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