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은 이유가 없다. 권력 행동에 무슨 이유가 있겠는가. 폭력에 이유가 있다면, 그것을 가능케 하는 조건이 있을 뿐이다. 사회운동은 그 이유를 묻는 것이 아니라 조건을 파악해 그것을 제거하고 제약하는 것이다. 사랑과 폭력은 원래 같은 의미지만, 특히 상대방의 상태와는 무관하다는 점에서 더욱 비슷하다. 사랑이나 폭력은 모두 자기확신 행위이지 상대방의 매력이나 잘못과는 무관하다. 이렇게 본다면, - P274
‘묻지마 폭력‘의 이유는 단지 피해자가 ‘거기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피해자의 잘못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폭력의 시비(是非)와 정의를 분석하려는 시도에서 폭력을 둘러싼 사회적 조건을 고찰하는 시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 P275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는 원자화된 개인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시대에 살았으며, 정신도 미세한 물질로 구성되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철저한 유물론자였다.
그의 위대함은 가부장제를 인간 본성으로 보지 않고 "이기적인 남성들의 집단적 동의에 의해 탄생한 시민법의 일종인 결혼법"에 의한 ‘여성의 2차(?) 세계사적 패배‘로 인식한 점이다.
결혼 제도로 인해 여성은 만인에서 제외되었다. 홉스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전제하는 자연 상태는 개인의 탄생과 남녀 불평등의 시민사회 등장과 관련 있는 것이지, ‘동물의 왕국‘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 P281
국가는 의인화된 상징이자 그 상징성으로 인해 실제 권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국가라는 정체와 개인의 몸의 경합은 언제나 불가능한 것이었다.
"개인이 중요한가, 국가가 중요한가? 국가가 없다면 개인도 없다." 이것이 모든 언설을 침묵시키고 사고를 정지시킬 수 있는 안보 논리이다.
국가 안보는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하지 않는 국가의 상징 권력을 위한 것이다. 이 논리 구조 안에서 국가는 국민을 보호할 필요가 없다. 아니, 보호할 수 없다. - P282
".....… 그들은 귀찮고 성가신 존재들이다.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피곤하게 만드는 이 대중들을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까? 홍을 깨어버리는 이들, 거머리같이 들러붙어 피를 빨려는 이들, 꼭 필요한 자들이 되겠다고 조르며 모든 권리를 누리면서 존재하고 싶다고 성가시게 구는 이들, 이들이 없다면 얼마나 좋은 세상이 될까! 이들이 있기에 재정과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울화가 치미는 일인가! 그들만 없다면 남은 사람들끼리 정말 잘 지낼수 있을 텐데………." -비비안 포레스테, 김주경 옮김, 《경제적 공포 ㅡ 노동의 소멸과 잉여 존재》, 동문선, 1997, 59~60쪽. - P286
흔히 말하는 "의식은 바뀌었는데 몸이 바뀌지 않았다."라는 개탄은, 일상의 변화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일상을 넘거나 일상을 극복하는 정치가 아니라, 모든 정치와 운동은 일상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머리(mind)가 변하는 것이 ‘의식화‘라면, 몸(mindful body)이 변하는 것은 ‘변태‘다. 그래서 언제나 혁명보다 개혁이 어려운 거다. 혁명은 이름과 의식을 바꾸는 것이지만, 개혁(re/formation)은 몸의 형태를 바꾸는 것이다.
개혁(革)은 글자 그대로 살갗을 벗기는 것. 피가 쏟아질 수밖에 없다(때문에 어느 시대나 개혁을 외치는 지도층 스스로 피 흘리는 고통을 보여줄 때,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 - P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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