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듀어런스: 어니스트 섀클턴의 위대한 실패]
섀클턴의 위대함은 탐험 전반에서 보이지만 책 속에서는 ‘5부 보트여행‘, ‘6부 제임스 커드 호의 항해‘, ‘7부 사우스 조지아 섬‘에서 특히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실패한 남극대륙 탐험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을 꼽으라면, 엘리펀트 섬에 상륙한 대원들을 구하기 위해 떠난 제임스 커드 호 항해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보트 정도 크기의 배를 타고 차가운 바다를 건너 16 일간, 1,000km의 거친 바다를 항해했던 그 여정은 흡사 영웅서사의 한 장면과도 견줄만한 위대한 여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사우스조지아 섬까지는 무려 1,000km.
지금까지 온 거리의 10배가 넘는다. 그토록 멀고 까마득한 곳을, 겨우 6m 길이의 갑판도 없는 배를 타고, 지구에서 가장 험난한 바다 위로, 그것도 겨울에 지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 바다에는 시속 100km의 바람이 불고 20m 높이의 거대한 파도가 기다리고 있다. 운이 따르지 않으면 훨씬 심한 상황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112면)
평소라면 이런 미친 항해는 생각할 수도 없고 감히 시도해볼 수조차 없었을 것이지만, 섀클턴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항해가 성공하지 못한다면 제임스커드호에 함께 오른 6 대원과 엘리펀트 섬에서 이들을 간절히 기다리는 22 명의 대원들의 목숨은 미래를 보장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우스 조지아 섬의 포경기지까지의 여정도 그렇지만 대원들을 구하러갈 배를 구하는 것도 어려웠다. 세계대전에 휩싸여 있었던 각국은 섀클턴에게 배를 제공하기 힘들었고, 그나마 구조선이 부빙에 갇혀 되돌아오기도 하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 섀클턴이 제임스 커드 호를 타고 떠난 1916년 4월24일로부터 4개월여가 지난 8월30일이 되어서야 엘리펀트 섬의 22명 대원 모두를 무사히 구해내는 쾌거를 이룬다.
˝옐코호가 엘리펀트 섬에 이르렀을 때 워슬리는 섀클턴과 함께 갑판 위에 있었다. 동료들이 깃발을 흔들어대는 모습을 보자 문득 가슴이 뭉클해졌다. 섀클턴은 쌍안경을 들고 초조한 모습으로 대원들의 숫자를 헤아렸다. 해안에 있는 인원은 정확히 22명이었다.
그는 쌍안경을 집어넣고 나에게 돌아섰다. 수많은감정들이 뒤섞인,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얼굴이었다. 크린이 다가왔고 우리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159면)
그 후 섀클턴은 새로운 탐험대를 꾸려 1921년 9월 17일 런던을 떠나 사우스 조지아 섬에 도착했고 옛 친구들을 만났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갑작스런 심장발작이 그를 덮쳤고 이때 그의 나이 47세였다.
실패한 탐험대의 대장이었지만 아직 우리 시대에도 기억되는, ˝위기상황에서 그가 발휘했던 탁월한 리더십의 핵심에는 평범한 사람이라도 상황이 닥치면 영웅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일 것이고, 리더로서의 섀클턴은 평시에는 감히 상상하지 못할 인내와 힘을 대원들로부터 이끌어냈다. 또한 그는 모든 대원들을 똑같이 존중했다. 목숨을 건 탐함대는 ‘배‘라는 좁은 사회인만큼 리더의 존중은 대원들의 분열을 막고 하나의 힘을 만드는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섀클턴은 남극 대륙 탐험에 성공한 스콧이 받았던
영예는 얻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1차 대전 이후 침체되어 있는 영국 국민들에게는 엄청난 희망의 메세지였을 것이다.
섀클턴의 탐험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유물인 제임스 커드 호는 섀클턴의 옛 학교인 ‘덜위치 칼리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도서 반납 전에 리뷰를 남기니 맘이 편안~~
정말 도서관의 반납 톡은 리뷰를 남기게 만드는 요물 같은, 그리고 기분 좋은 긴장감 서린 힘을 발휘한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