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험을 나선 지 거의 12 개월여 만인 1915년 11월 21일 인듀어런스 호가 침몰했다. 남극의 얼음 위에서 대원들은 보트를 끌고 새로운 캠프를 찾아 이동해야 한다. 그 과정이 너무 고되고 힘들지만 행군을 몀출 수는 없었다. 멈춘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4부 페이션스 캠프

대원들은 부서진 배에서 약 100m 떨어진 넓고 안전한 부빙 위에 캠프를 설치했다. 다섯개의 텐트에 인원이 배정되었고, 각 대원들에게는 슬리핑백이 지급되었다. 기온은 영하39도까지 떨어졌다. 가장 가까운 육지는 600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이때의 일을 맥니쉬는 이렇게 적었다.
 "가죽 백이 18개밖에 없어 우리는 제비뽑기를했다. 난생 처음으로 내가 당첨되었다."
 대부분의 고급 대원들은 질이 떨어지는 재규어울 백을 뽑았다. 하지만 거기에선 조작의 냄새가 강하게 풍겼고, 일부 대원들은 즉시 그사실을 알아차렸다.

노련한 뱃사람인 베이크웰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제비뽑기가 약간 조작되었다. 섀클턴 대장과 와일드 부대장, 웨슬리 선장, 그리고 다른 고급 대원들 모두가 울 백을 뽑았기 때문이다. 품질이 좋고 따뜻한 가죽 백은 모두 일반 대원들의 몫이었다." - P79

10월 30일 아침, 행군 준비가 완료되었다. 일단 섀클턴, 허드슨, 헐리, 워더로 구성된 답사 팀이 먼저 출발하기로 했다. 섀클턴이 "이제 로버트슨 섬으로 간다!" 고 소리치자 모든 대원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답사 팀의 임무는 빙구와 얼음 덩어리 등 장애물을 헤치고 보트와 썰매가 지나갈 수 있는 길을 여는 것이었다.

오후 2시 55분, 강아지 세 마리와 그동안 인듀어런스 호의 마스코트였던 고양이 ‘치피 여사‘ 를 크린이 총으로 쐈다. 한 번도 썰매를 끌어본 적이 없는 강아지 시리우스의 처리는 맥클린에게 맡겨졌다. 시리우스는 총구를 빤히 쳐다보며 맥클린의 손을 핥았고, 맥클린은 손을 너무 떠는 바람에 총알을 두 방이나 쏘아야 했다. 총소리가 얼음 위로 울려
퍼지며 모두의 마음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 P83

며칠 동안 ‘회수 팀‘이 인듀어런스 호와 오션 캠프 사이를 오가며 필요한 물건을 날랐다. 비록 상당량의 물품들이 눈 속에 파묻히긴 했지만, 그래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일부를 포함하여 많은 물품들을 회수할 수 있었다. 갑판에서 조타실을 통째로 떼어와 보관창고로 사용했으며, 맥니쉬는 갑판에 구멍을 뚫고 배 밑바닥으로 내려가 무엇보다도 소중한 식량을 꺼내 왔다. 설탕과 밀가루 봉지가 나오자 모두 환호했으나 호두와 양파, 소다수가 나타나자 대부분 신음소리를 냈다. - P86

얼음이 녹으면서 주변 경치가 조금씩 변했다. 들쭉날쭉했던 병원이 조금씩 편평해졌고 곳곳에 작은 물줄기가 만들어졌다. 낮도 훨씬 길어져서 새벽 3시에 뜬 해가 오후 9시나 되어야 질 정도였다. 대원들은 물개를 사냥하고 카드놀이를 하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나오는 글을 놓고 입씨름을 하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11월 21일 저녁, 개에게 먹이를 준 뒤 텐트에서 책을 읽거나 잡담을 하고 있던 대원들에게 갑자기 섀클턴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배가 가라앉는다!"
황급히 밖으로 뛰어나온 대원들은 높은 망루 위에 서서 인듀어런스 호의 최후를 말없 - P93

이 지켜보았다. 뱃고물이 하늘 높이 치솟더니 곧 이어 뱃머리부터 서서히 물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대원들을 태우고 처녀 항해에 나섰던, 헐리에 의하면 ‘바다의 신부‘ 였던인듀어런스 호가 마침내 눈앞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모두들 아무 말도 못하고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 베이크웰은 그날의 상황을 이렇게 적었다.
 "나는 목구멍에 무엇인가 걸린 것 같았는데 삼킬 수가 없었다…….… 이제 우리는 완벽하게 외로운 처지가 되고 말았다."

섀클턴은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오후 5시에 인듀어런스 호는 머리부터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가장 상처를 많이 받은 뱃고물이 맨 마지막으로 물 속에 들어갔다....도저히 더 이상 쓸 수가 없다." - P94

12월 21일 새클턴이 대원들에게 새로운 계획을 발표했다. "12월 23일에 다시 서쪽으로 행군을 시작한다." 하지만 많은 대원들이 이번발표를 달갑지 않게 받아들였다. "모든 면에서 지난번보다 상황이 훨씬 좋지 않다." 그린스트리트는 이렇게 적었다. "대장이 행군 생각을포기하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우리 텐트에서도 이 문제를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 - P95

먼저 18명이 줄을 연결하여 배 두 척을 끌고 조심스럽게 눈길을 헤쳐나갔고, 나머지대원들은 필요한 물품들을 정리했다. 텐트, 요리 도구, 창고, 썰매 등을 꼼꼼히 챙겼고, 남은 배 한 척은 오션 캠프에 남겨두었다. 꼬박 8시간에 걸쳐 강행군을 한 첫날, 그들은겨우 2km를 걸었다.

며칠 동안 힘들고 별 소득도 없는 행군이 계속되었다. 대원들은 충분히 쉬지도 못했고, 허기를 완전히 채우지도 못했으며, 옷은 항상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하루에 2km씩 빙구와 질퍽한 얼음 위를 걷느라 모두 파김치가 된 상태였다.
 "힘들고 희망도 없는 행군이다. 더 이상 이런 짓을 하고 싶지 않다." 베이크웰은 이렇게 적었다. - P95

섀클턴은 결국 어쩔 수 없이 행군 중단을 결정했다. 힘겨웠지만 용기 있는 결정이었다. 대원들은 단단해 보이는 얼음 위에 새로운 캠프를 만들기로 했고, 이틀간의 탐색 끝에 적당한 장소를 찾아 일렬로 텐트를 세웠다. 온갖 좌절에도 불구하고 이젠 부빙 위에서의 생활을 다시 확립해야 했다.
"캠프 이름을 ‘페이션스 캠(Patience Camp)‘로 정했다." 오들리는 기록했다.

이제 1916년 1월이었고 해빙의 조짐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바람도 거의 불지 않아 부빙의 위치는 줄곧 남위 66도 부근에 머물러 있었다. 며칠이 지나고 몇 주가 지나면서 다시 지루함과 침울함, 그리고 고통스러운 긴장이 찾아왔다. - P96

4월 8일 저녁, ‘제임스 커드 호 바로 아래에서 얼음이 삼각형으로 갈라졌다. "배를띄울 때가 다가왔다고 느꼈다."섀클턴은 이때의 상황을 이렇게 적었다. 4월 9일 아침이되자 대원들은 출발 준비를 모두 갖춘 채 마지막 식사를 했다. 그리고 오후 1시, 마침내섀클턴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명령을 내렸다.

배를 띄웠다. 각자의 위치는 이미 몇 개월 전에 정해져 있었다. ‘제임스 커드‘호는섀클턴과 와일드가 맡았으며 클라크, 헐리, 허시, 제임스, 워디, 맥니쉬, 그린, 빈센트, 맥카티가 탔다.
 ‘더들리 더커‘ 호는 워슬리가 책임졌으며 그린스트리트, 커어, 오들리, 맥클린, 치덤, 마츤, 맥리오드, 홀리스가 탔다.
 가장 작은 ‘스탠콤 윌스‘ 호에는 리킨슨,
맥클로이, 하우, 베이크웰, 블랙보로, 스티븐슨이 탔고 허드슨과 크린이 지휘했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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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3-01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에 만난 책인데,
반갑네요.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그저
존경스러울 뿐이네요.

은하수 2023-03-01 10:53   좋아요 1 | URL
읽기 전에 가졌던 그냥 건조하기까지 했던 무관심이 미안해집니다 인간의 인내란 도대체 어디까지 이어질수 있는건지 ... 인간의 위대함을 새삼 느끼게 해주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