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문맹 - 자전적 이야기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백수린 옮김 / 한겨레출판 / 2018년 5월
평점 :
책을 펼쳤을 때 가장 먼저 뇌리에 박히는 것은 간결하고 건조한 문체이다. 일체의 감정은 배제되고 현재형으로 쓰인 문장들을 읽는다. 그래서 더 상상하게 되는 힘이 있다.
이 작고 얇은 책으로 읽는 작가의 인생사는 암울하고 우울하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양차 대전의 사이에서 강대국의 논리에, 침략에 두 번이나 이리저리 바둑판의 돌처럼 놓여지는 헝가리에서 여자로 태어났고, 제대로 된 교육의 기회도 없이 남의 나라(러시아) 역사와 문화를 배워야했고 결혼해서 아기를 데리고 살기 위해 국경을 넘어 난민의 삶을 살아야했으니까.
그러나 생존을 위한 일에 매진하면서도 작가의 꿈은 버리지 않았고 단조로운 공장 노동 중에도 머릿 속으로 끊임없이 시를 지어냈다. 스위스에 정착했지만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지역이었기 때문에 프랑스어를 배웠고 글을 익혀야만 했다.
헝가리의 국경을 넘었을 때 그녀는 제 나라 말을 잃어버린 영혼의 난민이 된 것이고 -거기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인사도 하지 못하고 이별을 했다 - 영원히 백 퍼센트 이해하지 못할 프랑스어로 작품을 쓰게 되었다. 그녀의 첫 소설인 <비밀노트>가 파리의 쇠유 출판사에서 발매되었고 우리 나라에는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로 세 편의 소설이 한 권으로 묶여 소개가 되었다.
책을 읽고 나서 작가의 문체를 보며 든 생각..
영어를 처음 배울 때 영작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는데 간단한 4-5줄의 일기를 이런 단순한 나열 형식으로 감정 표현 없이 썼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길고 감정이 표현된 문장은 불가능했으므로. 즉 그 당시 영어에 관한 한 모든 것이 부족했으니까...
그래서 작가의 이런 감정이 일절 배제된 간결하고 건조한 문체의 배경에는 헝가리어를 잃고 프랑스어로 글을 써야했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선택해야만 했던 저간의 사정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구구절절 맘속의 감정을 능히 표현하지 못하지만 이렇게라도 서툴지만 쏟아내야만 내가 살아낼 수 있으니까.. 그래서 읽는 나는 그것이 더 절절하게 와 닿는 것이고 극도로 자제한 그 표현의 사이를 나의 상상력으로 메우게 하는 작가의 전략이 주효했다고 생각했다. 작가의 <비밀노트>에 이런 내용이 있다.
‘우리의 공부‘에 보면,
˝예를 들면 ‘할머니는 마녀와 비슷하다‘라고 써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람들이 할머니를 마녀라고 부른다‘라고 써야 한다. ‘이 소도시는 아름답다‘라는 표현도 금지되어 있다. 왜냐하면, 이 소도시는 우리에게는 아름다울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추하게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략)
감정을 나타내는 말들은 매우 모호하다. 그러므로 그런 단어의 사용은 될 수 있는 대로 피하고, 사물, 인간, 자기 자신에 대한 묘사, 즉 사실에 충실한 묘사로 만족해야 한다.˝(<존재의 세가지 거짓말>, 열린책들,2018,38면)
˝나는 태어날 때부터 프랑스어를 쓰는 작가들처럼은 프랑스어로 글을 결코 쓰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쓸 것이다.
이 언어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운명에 의해, 우연에 의해, 상황에 의해 나에게 주어진 언어다.
프랑스어로 쓰는 것, 그것은 나에게 강제된 일이다. 이것은 하나의 도전이다.
한 문맹의 도전.˝
(<문맹>, 112면)
아고타 크리스토프 <문맹> 읽고 나서 작가의 말로 작가의 자전적 에세이 읽고 나니 자연스럽게 다른 작품을 떠올렸다. 읽다 포기 했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다시 읽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