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 온 지 오래되어서 쭈글해진 귤 까먹으며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1940년 5월 10일부터 1년 뒤인 1941년 5월 10일까지의 기간인, 윈스턴 처칠이 총리로 취임한 첫 해 동안 일어난 사건을 중심으로 쓰여졌다. 이 기간은 독일군의 런던 공습이라는 악몽 같은 시간의 기간이기도 하다.

내가 가끔 보는 tv N 프로그램 중에 <벌거벗은 세계사>가 있다. 64화 ‘처칠은 어떻게 히틀러로부터 영국을 구했나‘ 편을 보고 나서 좀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해졌었는데, 도서관에 역사 서가를 슬슬 훑어보다 갑자기 띠용~~하고 눈에 띈 것이다. 제목을 이미 알고 있었으니 눈에 띄었을 것이다. 700 페이지가 넘는 벽돌책이라 잠시 망설였지만, 기꺼이 다른 책 두 권을 다시 내려놓고 여유있게 읽어보자 싶어 대출 날짜도 바로 연장해 두었다.^^ 도서관에서는대출 권수는 14권까지 되는데 왜 기일은 3주만 될까? ㅠ.ㅠ 매일 쫓기는 기분이다.
반납의 압박에서 헤어나지 못할듯!























1장 검시관 떠나다

차들이 영국 정부청사들이 모여있는 화이트홀Whitehall 과 버킹엄궁사이로 난 대로 몰Mall 을 따라 질주했다. 조지 6세와 엘리자베스 왕비가거주하는 775칸 규모를 자랑하는 궁전의 돌로 된 정면이 저 멀리 길이끝나는 곳에 보였다. 길은 그늘이 져 어두컴컴 했다. 5월 10일 금요일이른 저녁이었다. 초롱꽃과 앵초가 사방에 활짝 피어있었고 봄의 여린 이파리들이 나무 위에서 아른거렸다. 세인트제임스 파크의 펠리컨들은봄볕을 쬐며 관광객들의 시선을 즐겼고 그다지 멀지 않은 사촌인 백조들은 그런 관심 따위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평소처럼 물 위에서 유유자적했다. 이날의 아름다움은 새벽에 벌어진 일과 충격적일 만큼 대조적이었다. 그날 독일군은 기갑부대와 급강하폭격기와 낙하산 부대를 앞세워 네덜란드와 벨기에와 룩셈부르크로 진격했다.

첫 번째 차 뒷좌석에는 영국 해군의 최고 관료인 해군장관 윈스턴S. 처칠Winston S. Churchill이 타고 있었다. 65세였다. 그는 앞선 전쟁에서도같은 직책을 한 번 맡았지만, 이번 전쟁이 선포되자 총리 네빌 체임벌린 Neville Chamberlain에 의해 다시 임명되었다.  - P25

4장 감전효과

취임한 지 첫 24시간 만에 처칠은 전혀 다른 종류의 총리로서 그진면목을 드러냈다. ‘낡은 우산‘, ‘검시관‘ 체임벌린이 침착하고 신중하게 다뤘던 문제를 신임 총리는 그의 평판에 걸맞게 현란하고 자극적이며,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처리했다. 우선 처칠은 직접 국방장관을 겸임했다. 이를 두고 어떤 퇴임 관리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하늘이시여, 우리를 도우소서." 국방장관은 신설된 자리로 이를 통해 처칠은 육군과 해군과 공군의 지휘부를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이제전쟁을 완전히 장악했고 아울러 모든 책임도 함께 떠맡았다. - P49

 다우닝가 10번지에서 그와 함께 나와 해군관저로 걸어가는 도중에 이즈메이는 곁을 지나치는 사람들이 처칠에게 뜨거운 환호로 인사하는 것을 보고 감탄했다. 10번지 입구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은 큰 소리로 축하와 응원의 메시지를 외쳤다.
 "행운을 빌어요. 위니. 신의 가호가 있기를."
처칠은 매우 감동한 표정이었다. 건물에 들어서자 처칠은 북받치는 감정을 감추지 않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불쌍한 국민들, 불쌍한 국민들. 그는 말했다. "저들은 나만 믿고있는데 내가 그들에게 줄 거라곤 한동안 재앙밖에 없을 것 같구려."

그가 그들에게 가장 주고 싶었던 것은 행동이었다. 그는 그 점을처음부터 분명히 밝혔다. 집무실이든 전장이든 어디서나 그는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 그가 특히 바랐던 것은 영국이 공세로 전환해 "그 못된 사내 that bad man"와 직접 전쟁을 벌이는 일이었다. 그는 아돌프 히틀러를 그렇게 불렀다. 처칠은 독일인들이 "피 흘리고 불에 타는"
모습을 보고 말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 - P53

 처칠은 5월 13일 월요일 하원에서 첫 연설을
할 때도 같은 메시지를 던졌다. 그렇게 자신만만하게승리를 다짐하기는 했어도 현재 영국이 처한 냉혹한 지형을 누구보다잘 아는 현실주의자이기도 했다. 특히 그런 처지를 그는 한 마디로 명확하게 드러냈다.
 "나는 피와 수고와 눈물과 땀 외에는 드릴 게 없습니다."

비록 이 문구는 나중에 그가 했던 말 중에 가장 멋진 발언으로 웅변의 판테온에 당당히 자리를 잡고, 몇 년 뒤 히틀러의 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Joseph Goebbels 에게도 높은 평가를 받지만, 지난 시절 그가 저지른 치명적인 실수 때문에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청중들에게는 그저 그런 또 하나의 연설에 지나지 않았다.  - P54

‘폭격기의 달‘ 이 책의 제목에 대하여

사람들은 갑자기 달의 위상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물론 폭격기는 낮에 공격해왔지만 어두워진 뒤에도 달빛에 의지해 목표물을 찾을수 있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보름달이나 상현달 하현달 같은 볼록한 달은
 ‘폭격기의 달bomber‘s moon‘이라고 불렀다. 

그나마 위안이 있다면 폭격기와 그보다 더 중요한 호위 전투기들이 독일에 있는 기지에서 날아온다는 사실이었다. 그럴 경우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에 그들의 도달거리와 타격 능력에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가정은막강한 육군과 마지노선과 강력한 해군을 보유한 프랑스가 굳게 버텨
루프트바페Luftwaffe (독일 공군)의 발을 묶고 독일이 쳐들어올 모든 길목을 차단해준다는 전제가 있어야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프랑스의 지구력은 영국 방어 전략의 초석이었다. 프랑스가 무너진다는 생각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 P20

"분위기로 말하자면 불안한 정도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얼마 뒤에 정보부 정무차관이 되는 해럴드 니컬슨Harold Nicolson 은 1940년 5월7일자 일기에 그렇게 썼다. "그것은 실질적인 두려움이다." 그와 그의아내인 작가 비타 새크빌-웨스트 Vita Sackville-West는 독일군에게 잡힐 경우 자살하기로 합의했다. 효과가 즉각 나타나고 고통이 없으면서 휴대할 수 있는 것이 있어야 해요." 5월 28일 그녀는 남편에게 편지를썼다. "오, 여보, 우리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죠?"


*비타 색빌-웨스트 -- 얼마 전 읽었던 <나, 버지니아 울프>에서 버지니아의 연인이란 걸 알게 되었다. 인도 등의 대사를 역임하기도 했던 남편의 부임지를 따라 비타가 떠나 있는 시간도 있어서 버지니아와 헤어져 있는 시기가 있었는데 버지니아는 비타를 그리워하며 우울증으로 힘들어 했었다.

프랑스가 너무 빨리 무너지고 영국 상공을 노리는 공습이 확실해지면서 달은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5월 21일 화요일, 처칠의 임기가 시작되고 처음 뜬 보름달은 런던의 거리를 양초 같은 서늘한 창백함으로 물들였다. 로테르담에 가해진 독일군의 공격은 머지않아 런던에 닥칠 일을 상기시키는 사례로 좀처럼 사람들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런 예측은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어서 사흘 뒤인 5월 24일 금요일에 조금 이지러지긴 했어도 여전히 밝은 달이 뜨자 매스옵저베이션의사회관찰 네트워크 책임자인 톰 해리슨 Tom Harrisson은 휘하의 많은 일기기록원들에게 특별 메시지를 보냈다. "공습이 시작될 경우 아무것도하지 않고 우두커니 있는 관찰자들은 없을 것입니다. ・・・ 관찰자들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대피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대피하세요. 되도록 많은사람들과 함께 있을수록 좋습니다."
인간의 행동을 여과 없이 관찰하기에 더없이 완벽한 기회였다. - P78

6장 괴링

5월 24일 금요일, 히틀러는 앞으로 치러나갈 전쟁의 기간과 성격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결정 두 가지를 내렸다.
정오에 히틀러는 신임하는 어떤 장군의 조언에 따라 영국원정군의 뒤를 쫓는 기갑사단에게 진격을 중지하라고 명령했다. 

히틀러는 탱크와 기갑병들에게 전력을 재정비할 시간을 준 다음 계획했던 대로 남쪽을 향해 진격하자는 장군의 권고를 받아들였다. 독일군은 이미 소위 서부 회전에서 큰 손실을 입었다. 2만 7,074 명의 병사가 사망하고,11 만 1,034 명이 부상당했으며, 1만 8,384명이 실종되었는데, 단기간 내에 전쟁을 깔끔하게 끝낼 것을 기대했던 독일 국민들에게는 충격적인병력 손실이었다.

 영국군의 숨통을 틔워준 이 정지 명령에 독일군 지휘관은 크게 당황했고 영국군도 어리둥절했다. 루프트바페의 원수 알버트 케셀링 Albert Kesselring은 나중에 이 명령이 "치명적인 패착이었다고진술했다.
- P79

그 주 금요일, 마법에 가까운 위력을 가졌다고 생각한 자신의 공군력을 믿은 괴링의 말에 마음이 크게 흔들린 히틀러는 전쟁 내내 내리게 될 일련의 총통작전지시 Führerbefehle 중 하나인 지령 13호를 내렸다.

"공군은 포위된 적군의 저항을 모두 분쇄하고 영국군이 해협 건너편으로 탈출하지 못하게 막을 것." 지령에는 그렇게 쓰여있었다. 지령문은또한 루프트바페가 "충분한 병력을 확보하는 즉시 영국 본토를 총공격해도 좋다"고 허락했다. - P80

그날 저녁 5월 26일 7시 직전에 처칠은 런던에서 다이나모 작전Operation Dynamo 의 개시를 명령했다. 프랑스 해안에서 영국원정군을 철수시키는 작전이었다.

베를린의 히틀러도 영국원정군을 향해 진격을 재개하라고 기갑부대에 명령했다. 영국군은 지금 항구도시 덩케르크 해안에 집결해있었다.
독일군의 움직임이 예상보다 더뎌지자 히틀러는 괴링의 폭격기와전투기에게 당장 과제를 완수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괴링은 토미들Tommies (영국군 병사들의 별명)이 철수 준비를 하는 덩케르크 해안의 상황을 잘못 판단하고 있었다.

"어선 몇 척만 건너오고 있다."
5월27일 금요일에 괴링은 그렇게 말했다.
"토미들이 수영이나 할 줄 알면 다행이다."
- P88

처칠은 또한 영국이 히틀러와 평화를 모색하려 한다는 근거 없는추측도 완전히 단념시키기로 했다. 25명의 각료들을 놓고 연설하는 자리에서 처칠은 프랑스의 몰락이 임박한 사실을 알고 있으며 자신도 평화 협상을 잠시 고려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지금 내가 한 순간이나마 협상이나 항복을 생각하고 있다면 여러분 모두가 들고일어나 저를 이 자리에서 끌어내릴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우리의 이 오랜 섬의역사가 결국 끝나려면, 우리 각자가 땅에 쓰러져 자신의 피에 코를 박고 숨이 끊어질 때나 가능할 것입니다."

순간 전율과 함께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장관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둘러싸고 그의 등을 치면서 동의의 함성을 외쳤다. 처칠은 깜짝 놀랐고 안심했다. - P90

*아~~ 덩케르크~~~

덩케르크 탈출은 상상 이상의 성공을 거두고 끝났다. 히틀러의 진격 중지 명령과 루프트바페를 좌절시킨 해협의 악천후가 큰 도움이 되었다. 토미들은 수영하지 않아도 됐다. 선박 887척이 덩케르크 철수 작전에 동원되었지만 영국 해군 소속 함정은 4분의 1에 지나지 않았다. 91척은 여객선이었고, 나머지는 어선과 요트와 그 밖의 소형 선박이었다. 프랑스군 12만 5,000명을 포함해 모두 33만 8,226명이 탈출했다.
존 콜빌의 형 필립 Philip 을 포함한 영국군 병사 12만 명이 프랑스에 남아있었지만, 그들도 해안의 다른 탈출지점을 향해 가고 있었다.

영국원정군의 철수는 성공적이었지만 처칠은 답답하기만 했다.
그는 서둘러 공격하고 싶었다. "해안 절벽으로 달아나 그곳을 지키려쩔쩔맬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다음에 어디를 칠지 몰라 독일인들이 전전긍긍하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나." 처칠은 그의 군사수석자문인 퍼그 이즈메이에게 그렇게 썼다.
- P92

6월 4일 철수 마지막 날, 처칠은 하원 연설에서 제국 전반에 힘을북돋우기 위해 다시 웅변조로 말했다. 그는 먼저 덩케르크의 성공을 치하하면서도 냉정한 평가를 덧붙였다. 

"철군으로 전쟁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연설이 막바지에 이르자 그는 화로에 불을 지폈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그의 말은 점점 사나워지고 더욱 자신감이 붙었다.

"우리는 프랑스에서 싸울 것이며, 바다와 대양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싸울수록 자신감을 갖게 될 것이며 공중에서 더욱 힘을 키울 것이며,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우리의 섬을 지킬 것입니다. 우리는 해안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상륙지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들판과거리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언덕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린 결코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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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3-01-30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 대여 기간이 좀 늘어나면 좋겠더라구요. 이런 벽돌책은 특히나 3주 안에 읽기는 힘들죠ㅠㅠ 이 책 저도 읽고 싶은 책인데 즐겁게 읽으시길 응원합니다^^

은하수 2023-01-30 11:47   좋아요 0 | URL
매일 책 읽을 때마다 스트레스예요 물론 다른 여러분들이 기다리니 당연히 그래야하지만서두 예약자가 없다면 기간 연장이 됐으면 좋겠어요
이런 책을 쫓기듯 읽어야하다니 너무 싫어요
그래도 술술 잘 넘어가서 맘 먹고 읽으면 1주일 만에 읽을수도 있겠어요 ㅎㅎ
계산상으로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