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킨지, 발표의 기술 - 맥킨지식 프레젠테이션 활용의 모든 것
진 젤라즈니 지음, 안진환 옮김, 이상훈 감수 / 매일경제신문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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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이었다. 발표나 조별 과제를 제출하는 수업은 기피 대상 일 순위였다. 자료를 수집하고 리포트를 작성하는 것도 문제지만, 프레젠테이션을 만들고 발표자로 뽑힐 때면 시쳇말로 망했다 싶다. 사회생활에 접어든 후, 아직 프레젠테이션 책임까진 맡지 않는다. 다만 보고서를 작성하고 코멘트를 해야 하면 떨리기 일쑤다. 물론 정해진 양식은 어느정도 갖춰져 있지만, 더 잘만든다고 해서 나쁠 건 없다. 보고서 잘 쓰고 프레젠테이션 곧잘 하는 직원은 그지없이 예쁘다고 칭찬받지 않는가.



그리고 프레젠테이션을 작성하고 발표할 때, 누가 먼저 무엇이 중요한지, 혹은 순서는 어떻고 만들 때 유의사항이나 견본을 보여주면서 매뉴얼을 세세히 가르쳐 준다면 천군만마를 만난 기분이다. 그런 동료나 선배 만나기가 별 따기다. 프레젠테이션 책을 찾는다.



<맥킨지, 발표의 기술>도 마찬가지다. 맥킨지는 세계적인 경영 컨설팅 회사로 정평 난 덕분인지, 경제 경영, 특히 프레젠테이션, 협상, 보고서 작성 매뉴얼은 '맥킨지' 관련자가 쓴 서적이 꽤 눈에 띈다. <맥킨지, 발표의 기술> 저자는 비주얼 커뮤케이션 디렉터를 맡고 있고, 이번에 원제 <Say It with Presentation> 번역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저자가 전문가인 덕분인지, 책 자체가 짜임새 있고 재밌는 프레젠테이션을 읽는 듯하다. 구상부터 발표까지를 단계별로 챕터화하고, 구체적인 노하우를 제시한다. 프롤로그 "청중의 권리장전", 섹션1. "상황을 정의하라", 섹션2. "프레젠테이션을 설계하라", 섹션3. 프레젠테이션을 전달하라", 에필로그로는 "성공적인 프레젠테이션의 십계명"을 담았다. 독자가 프레젠테이션 단계를 장악하고, 필요한 챕터를 찾기 쉽게 만들었다.



먼저 '청중의 권리장전'이 나온다. "이 사실을 기억하라. 프레젠테이션을 싫어하는 당신보다 프레젠테이션 내내 자리를 지켜야 하는 청중들이 프레젠테이션을 더 싫어한다. 농담이 아니다." (p.22) 기술이 필요하다. 첫째로 목표를 명확히 정해야 한다. 목표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고, 반드시 현실적인 목표를 세우며, 청중이 행동하도록 구상하는 단계가 우선이다. 대체로 목표가 불명확하면 중구난방이고 실속 없게 마련이다. 프레젠테이션 성공 여부는 당신이 목표를 달성했는가로 판단한다.



그 후 본격적인 프레젠테이션 설계로 이어진다. 정교하게 줄거리를 짜고, 서론 작성 시에는 PIP 공식(목적, 중요성, 미리 보기)을 유념한다. 결말을 계획한 다음, 상상력을 발휘해서 효율적인 전달 방식으로 프레젠테이션을 꾸민다. 적절히 활용 가능한 비유, 이미지, 예술 등 다양한 표현 방식을 세세히 나열하였다. 당장 참고 예를 모아서 도움이 되고, 시간이 된다면 '상상력은 어디서 오는가?"챕터를 읽고 아이디어 노하우를 익히면 훨씬 유용하다.



마지막으로 전달할 차례다. 떨리는 시점이다. 사전에 전달의 기술을 숙지하고, 기기와 시각자료를 이용하고, 연습하면 대처력이 길러진다.  "이제 나는 그런 상황에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무엇이 변한 것일까? 아마도 가장 큰 변화는 더 이상 틀릴까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p.144)" 완벽한 사람은 없다. 사소한 실수까지 두려워하면 전체를 망치게 된다. 그리고 질문을 받으면 3. "대답을 생각하기 위해 잠깐 멈춰라."  4. "더도 덜도 아닌 그 질문에만 대답하라." 5. "질문자에게만 대답하지 말고 모든 청중에게 대답하라." 등은 적절한 답변에 도움을 준다. 유머 활용법은 발표 시에 윤활제가 될 것이다. "성공적인 프레젠테이션의 십계명"을 읽고 사전에 유념하고, 발표 후에 미흡한 점을 반성하는 매뉴얼로 활용하면 유용하겠다.



자기표현의 시대다. 대학에서도 프레젠테이션 수업이 늘어나고, 입사 후 조직 내 직급이 올라갈수록 표현, 연설, 발표 기술이 절실해진다. <맥킨지, 발표의 기술>은 저자가 맥킨지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디렉터로서 프레젠테이션 전문가다. 책은 독자에게 전달하는 메시지가 분명하고, 발표 단계별로 챕터를 나눠서 짜임새가 있다. 그 자체가 잘 만들어진 프레젠테이션 표본을 연상케 한다.

사족이지만, <대통령의 글쓰기>가 다시금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고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절 연설비서관을 지낸 강원국 씨의 저서로, 재직 당시 자전적 경험담과 전직 대통령들의 글쓰기, 연설 수칙, 비법을 담았다. 두 대통령은 이구동성으로 민주 시대 리더는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연설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했다. 권위주의 시대는 힘이 권력이었지만, 민주 시대는 국민에게 자기 주장을 설득하고 지지를 받는 것이 정당한 권력이다. 자기 입장만 호소하고 질문조차 용납되지 않는 연설은 권위주의 잔재다. 연설이 아니라 상명하달이다. 발표, 혹은 연설 목적이 무엇인지조차 고려하지 않은 행태다. '청중의 권리장전', 프레젠테이션 기술, 십계명'은 실무 비결이지만, 결국 목표는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이다. 설득이고 소통이다. 이런저런 생각에 그동안 발표를 꺼려왔던 사고방식이  달라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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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불멸주의자 - 인류 문명을 움직여온 죽음의 사회심리학
셸던 솔로몬.제프 그린버그.톰 피진스키 지음, 이은경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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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p.15, <시지프 신화>)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는 인간의 근본적 질문이다. 구약성경에서 에녹은 하느님과 동행하다 최초의 승천자로 이름을 남겼지만, 그것은 종교적 신화고 인간은 죽는다. 필멸성은 죽음이란 문제를 철학적으로 고민하게 한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등 메멘토 모리 문학은 인간에게 필멸성을 일깨우고, 더 가치 있고 나은 삶을 모색하도록 이끈다. "한마디로, 죽음의 공포는 인간 행동의 기저에 있는 주된 원동력이다. 이 책은 죽음의 공포가 생각하는 것보다 인간 행동에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줄 것이다."(p.9)는 심리학 관련문헌을 탐구하면 자주 접하는 연구 결과다.



그럼에도 왜 제목을 <슬픈 불멸주의자>라고 했을까.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이 어떻게 가장 고귀한 인간 행동이나 가장 비도덕적인 인간 행동 양쪽 모두의 기저를 이루는지를 밝히고, 이러한 통찰이 어떻게 개인의 성장과 사회의 진보로 이어질 수 있는지 고찰하는 것이다." (p.9) 즉, 인간은 불멸성을 추구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하며, 그것이 사회에 미치는 파장을 심리학, 인류학, 고고학 등 다양한 간 학문적 연구 성과를 토대로 밝혀낸다. 셸던 솔로몬 교수를 비롯한 저자들은 25년여간 죽음의 공포가 인간사에 미치는 영향(,p.8)을 조사했다.



인간은 어떻게 죽음의 공포를 관리했을까. '문화적 세계관'과 '자존감'을 든다. 문화적 세계관이란 세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믿음의 체계, 우주의 기원에 대한 사고와 윤리, 도덕관을 망라하는 신념 체계다. 예컨대, 신앙으로 불멸성을 꿈꾸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주 예수께서 영생을 약속하셨다는 크리스천의 믿음을 보라. 자존감은 스스로 만족하고 본인이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 감정(p.70)이다. 앞서 <시지프 신화>에 나온 카뮈의 말처럼, 실존적 불안과 부조리를 해결하기 위해 자존감이 필요하다. 인간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하는가. 낮은 자존감을 포장하려고 나르시시즘이나 인격장애 심리의 기저에는 죽음의 공포가 있을지 모른다.



공포를 관리한다고 죽음을 피할 수 었다. 우리는 호모 모르탈리스(mortal : 필멸의)이기 떄문이다. 선사시대부터 각종 예술과 신화, 종교가 발생한 데는 이러한 필멸성이 작용했다. 불멸성의 추구다. 진시황이 동남동녀 삼백 명을 보내 불로장생약을 찾아오게 하거나, 염상섭의 <삼대>에서 할아버지가 어린 소녀와 동침하는 것도 '실체 불멸성'을 위해서다. 나아가 종교적 사후세계, 연금술, 도교의 양생법도 맥락을 같이 한다. 지금도 젊어지기 위해 줄기세포, 태반주사 시술을 받지 않는가. 미용 또한 인간의 육체성을 가리기 위한 심리가 기저에 있다. '육체와 영혼의 불편한 동맹(제3부 8장)'이다. 또한 '상징적 불멸성'이 있다. 유교적 방법과 비슷하다. 자신의 DNA가 담긴 자손을 낳고, 그들이 나를 기려준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기듯 부와 명성을 추구한다. 이러한 행위가 상징적 불멸성을 추구하는 방식이다.



죽음의 공포는 도리어 인간 파괴 행위로 나타나기도 한다. 공포를 관리하기 위해 문화적 세계관과 자존감은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불멸성의 욕망과 맞닿아서 집단적 존재를 확장하고 존속시키려는 열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내 신념을 남에게 강요하고, 영토와 명성, 부를 빼앗기 위해 전쟁을 일으킨다. 현대에 들어서도 나치즘이나 파시즘, 문화대혁명, 각종 전쟁과 분쟁이 일어난다. 또한 영혼 불멸성에 대한 믿음은 영혼과 육체의 이원론으로 나타났고, 육신은 저열한 단계로 취급되었다. 육신의 초라함을 꾸미기 위해 화장을 하고, 제모와 문신, 성형을 한다. 줄기세포 시술을 받고 태반주사를 맞으며, 마취제인 프로포폴 주사가 논란이 되기도 한다. 죽음의 공포는 그뿐만 아니라, 정신적 질환의 주요 원인이다. 실제 불안장애, 공황장애, 자해를 넘어서 다양한 자기애적 인격장애도 결국 기저엔 죽음의 공포로 귀결된다.



<슬픈 불멸주의자>라는 제목이 이해가 간다. '종교, 경제, 과학, 예술에서 테러까지 죽음의 두려움 앞에 드러난 인간 행동의 탐구'다. 호모 모르탈리스가 불멸성을 추구하기 위한 고군분투를 담았다. 실제로 인류사의 비극, 정신분열적 행위,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유한성이 슬프다. 슬픈 불멸주의자다. 책은 '메멘토 모리'와 슬기롭게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끝을 맺는다. 결론이 식상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호모 모르탈리우스의 슬픈 파괴 행위를 긍정하고 부추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히 심리학적 토대 위에 종교학, 인류학, 고고학을 넘나드는 서술은 흥미로웠다. 25년 간 솔로몬 교수를 비롯한 공저자 3명의 연구 성과를 한정된 서평에 담기엔 내 필력이 한참 모자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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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1-28 2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당분간 죽음을 주제로 한 책은 안 읽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저 책 표지 보자마자 읽기 시작했습니다.

캐모마일 2016-11-30 00:43   좋아요 0 | URL
아는 내용도 꽤 있었지만 기대 이상으로 흥미로운 책이었습니다.

저기압일땐고기앞 2016-11-30 0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캐모마일 2016-11-30 00:45   좋아요 0 | URL
슬픈 불멸주의자. 제목이 인상적이었는데 책을 읽고 아 이래서 슬픈 불멸주의자구나 이해가 가더군요...
 
마음을 숨기는 기술
플레처 부 지음, 하은지 옮김 / 책이있는마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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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마음을 숨기는 기술>. 사회생활에 절실할 때가 있다. 상대를 읽고 내 의중을 드러내기 위해 이심전심, 공감력이 중요하지만, 협상이나 관계 시에 자기 속내를 드러내면 독이 될 경우가 많다. 바로 전략적 상황이다. 내 심리와 행동에 따라 상대방이 이익을 위한 대응을 할 때, 생각을 읽히면 상대방이 전략을 짜는 데 정보로 활용된다. 빈틈이다. 미국이 세계 각국을 도청했다는 위키리크스의 폭로만 봐도, 상대방의 의중을 읽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정보인지 알 수 있다.



<마음을 숨기는 기술>은 상대에게 심중을 숨기고 빈틈을 보이지 않는 기술이다. 반대로 땀을 흘리고, 턱을 쓰다듬는 행위, 거짓 웃음, 부자연스러운 언어가 어떤 신호인지 알려준다. 예컨대, 손이 눈썹 근처의 뼈를 만진다면 몹시 창피하다는 뜻이고, 눈동자가 왼쪽 아래를 향한다면 기억을 더듬고 있으며, 눈썹이 미묘하게 위로 올라가는 것은 알면서도 질문을 던지는 행동이다. 이러한 행동을 조심하거나, 독심술로 활용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마음을 숨기려면 마인드컨트롤이 필요하다. <마음을 숨기는 기술>이 단순히 특정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 혹은 침착하고 당황하지 말라는 당위적 수사에서 한발 나아간다. 바로 마인드 컨트롤 기술이다. 자기절제와 욕망을 다스리고, 분노를 남에게 표출하지 않고 배출하기, 공포 다스리기, 임기응변, 독립적 사고를 하고  열등감을 통제하여 남에게 휘둘리지 않는 법은 일상생활에 중요하다. 침착함과 안정감을 찾기에도 도움이 된다. 내 마음을 숨기려면 불안해서는 안 된다.



저자 플레처 부는 FBI 특수요원으로 활동하다 중화권 기업을 대상으로 관리 컨설팅 업무를 맡고 있다. FBI  재직 당시에 경험했던 사건들, 예컨대, 동료가 연쇄살인범을 심문했던 이야기나 조직 내 마인드 컨트롤 훈련법을 소개한다. 그리고 경영 환경에서 위기에 대응할 때 마인드 컨트롤이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실제 예를 통해서 다룬다. 그리고 삼국지와 중국 고사까지 인용한다. 상앙이 유세 당시에 진효공의 심중을 간파하여 기용된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아마 중화권 기업을 컨설팅하면서 중국 문화를 연구한 까닭이겠다.



<마음을 숨기는 기술>은 처세부터 독심술, 마인드 컨트롤까지 다룬다. 인간의 감정을 조절하는 변연계는 동물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마음을 그대로 표출하고 때로는 비현실적인 공포나 불안에 휘둘린다. 마인드 컨트롤, 독심술은 상대의 감정을 읽고, 내 본능을 이성적으로 제어하고 숨기는 것이 관건이다. 마치 심리학 서적을 읽는 듯하다. 남에게 심리적으로 휘둘린 경험이 많거나, 감정 조절에 실패하여 손해를 봤다면 <마음을 숨기는 기술>을 추천한다. "때로는 진실은 가면 속에 묻어두자. 오늘만큼은 이겨야 아름답기 때문이다."라는 책 표어보다 깊이 있다. 인간의 근본적인 감정 속성을 다루고, 관리하는 FBI 훈련, 리스크 관리 컨설팅 경험이 묻어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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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TH 더 패스 : 세상을 바라보는 혁신적 생각 - 하버드의 미래 지성을 사로잡은 동양철학의 위대한 가르침
마이클 푸엣.크리스틴 그로스 로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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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동양철학, 구체적으로 중국철학을 다룬 하버드 교양 도서가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과거 정의 열풍을 일으켰던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 이후 미국 명문대 교양강의를 엮은 책들이 여럿 출간되었는데, 이번엔 "하버드 최고 교수상'을 수상한 마이클 푸엣 교수의 <더 패스>가 인기다.



<더 패스(THE PATH)>란 제목은 도(道)를 일컫는다.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이자, 인간이 가야 할 바람직한 길이고, 어떻게 좋은 삶을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해답이다. 서구에서도 불교, 동양철학에서 다루는 '도'가 대안적 사고와 가르침으로 주목을 받는다.



그러나 저자는 동양 철학에 대한 신비감, 서양식 해석을 곁들인 마음 챙김을 거부한다. '전통적' 혹은 '신비적' 색채를 띈 오리엔탈리즘을 벗어나, 현실 사회와 일상에 통용되는 '세상을 바라보는 혁신적 생각'으로 중국 철학을 조명한다. 푸엣 교수에게 중국철학은 형이상학적 신비보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혼란한 시대를 어떻게 바꿀 것이며, 좋은 삶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관계에 대하여 - 공자/가상의식, 결정에 대하여 - 맹자/변덕스러운 세상, 영향력에 대하여 - 노자/ 우리가 만드는 세상, 활력에 대하여 - 내업/마치 신과 같이, 즉흥성에 대하여 - 장자/변화의 세계, 인간성에 대하여 - 순자/세상 다스리기'로 이루어져 있다. 주로 중국 춘추전국 시대를 살았고, 지금도 영향력을 발휘하며 고전의 반열에 오른 철학자의 사상을 다루는데, 일상에서 부딪히는 철학 주제를 하나씩 다룬다. 그리고 현실 안주의 시대에서 가능성의 시대, 즉, 푸엣 교수가 말하는 세상을 바라보는 혁신적 생각을 끌어낸다.



예컨대, 현대인은 은연중에 고정된 자아를 상정한다. 불교의 '마음 챙김'도 진정한 자아 찾기, 내적 수용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불교에서 말하는 진여란 본디 실체가 없다. 프로테스탄티즘 전통에 따라, 세상은 안정되고 고정된 자아상 위에 동양 철학을 받아들였다. 모순이다. 동양 철학은 세상은 변화하고 상황에 따라 자아는 다르다는 점을 인식했다. 근본적 차이를 분별하지 못하면 아전인수격 해석에 머무른다.



예컨대, 공자의 예, 제사는 고리타분한 것일까. 저자는 가상의식으로 바라본다. 공자는 상황과 제자에 따라 '인과 '예' 등 여러 개념을 다르게 설명한다.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의 말처럼, "한 인간에게는 그를 알아보는 사람 수만큼이나 많은 사회적 자아가 있다."(p.81) 칸트처럼 보편 법칙이 아니라 상황에 따른 적절한 처신이고, 예와 여러 의식은 더 좋은 관계성, 더 좋은 삶을 살기 위한 가상의식이다. "나를 이기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을 행하는 방법"인 것처럼, 예로써 수양하고 수신하는 길로 '인'이라는 어질고 바람직한 의식으로 다가간다. "아직 삶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p.90)나, 생전에 괴력난신(怪力亂神), 괴이하고, 힘을 남용하고, 어지럽고, 귀신에 관한 이야기를 삼갔다는 일화가 말해주듯, 일상을 초월하는 윤리보다 현실 세계에서 더 나은 변화를 추구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고대 동양의 지혜는 변화가 심한 현대 사회에서 통찰을 제공한다. 고정된 자아, 보편적 진리보다 일상에서 비롯된 현실적 사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관과 자아상은 가능성의 영역으로 이끈다. 중국 전통 철학이 '혁신적 사고'가 될 수 있다. <THE PATH>는 마이클 푸엣 하버드대 중국사 교수가 중국 철학을 바라보고 엮는 시각에 가치가 있다. 중국 철학 교과서 성격보다 고대 철학을 어떻게 이해하고 수용할지에 대한 통찰이 새롭다. '하버드대 최고 교수상'을 받은 저자의 중국 철학 수업을 맛볼 수 있는 기회다. 왜 하버드대 수강생들이 많은 감명을 받았는지 말이다. "마이클 푸엣 교수님 덕분에 주변 세상과 소통하는 법, 감정을 처리하는 법, 나와 타인 사이에서 전에는 느껴본 적 없는 차분함을 유지하는 새로운 방법에 눈뜨게 됐어요."(p. 12) 이미 동양 철학에 조예가 있거나, 혹은 입문하고 싶은 독자뿐 아니라, 깊이 있는 자기계발서를 찾는 독자에게도 도움이 되겠다. 

"마이클 푸엣 교수님 덕분에 주변 세상과 소통하는 법, 감정을 처리하는 법, 나와 타인 사이에서 전에는 느껴본 적 없는 차분함을 유지하는 새로운 방법에 눈뜨게 됐어요."(p.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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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16-11-28 1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캐모마일님 서재에도 자주 놀러와야겠네요. 좋은 책들이 많이 소개되어있네요^^

캐모마일 2016-11-28 14:33   좋아요 1 | URL
저야말로 좋은 책 추천받고 있습니다. ^^
 
그냥 좋은 장면은 없다 - 마음을 움직이는 시각코드의 비밀 20
신승윤 지음 / 효형출판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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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올해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가 개봉했다. 홍보 당시 여배우의 노출 수위가 화제가 되었다. 관객의 평은 엇갈렸지만, 대체로 미장센(Mise-en-scene)이 뛰어났다는 후기는 비슷했다. 미장센이란 화면을 구성하는 방식이다. 가끔은 백 마디 대사보다 한 화면이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표현한다. 관객의 뇌리에 남는다. 인상 깊은 장면은 이유가 있다. 말 그대로 그냥 좋은 장면은 없다.



<그냥 좋은 장면은 없다>는 부제 '마음을 움직이는 시각코드의 비밀 20'이다. LINE(선), SHAPE(모양), SPACE(공간), RELATION(관계), LIGHT SHADE & COLOR(명암과 색상), RHYTHM & TIME(리듬과 시간)이란 카테고리로 20가지 다양한 시각 구성을 쉽게 설명한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미션', '그랑 블루',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식스 센스', '여인의 향기', '레옹', '아메리칸 뷰티' 등 익숙한 명작 영화를 소재로 다룬다. 감독이 장면을 배치한 의도, 그것이 왜 관객에게 감동을 주는지를 '수평선', '사각형', '원형', '소실점', '대칭', '명암'과 같은 단순한 시각 코드로 풀어낸다.

예컨대,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서 '수평선'의 의미를 설명한다. '미션'에서 가브리엘 신부가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는 장면은 '상승하는 수직선'의 이미지로, 인간이​ 가진 이념과 의지를 표현했다. 반면에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 수평선은 마츠코가 살아왔던 고단한 삶, 사랑을 갈망하고 주었지만 결국 실패를 거듭한 뒤 혐오스럽다는 표식이 붙은 삶과 대비된다.

"수평선은 힘겨웠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탕자를 감싸 안아주는 어머니의 품과 같습니다. 무한정 수용하고 이해하는 지지선입니다. 수직선이 역동적인 힘을 가졌다면 좌우를 연결하는 수평선은 포용의 힘이 있습니다.....어릴 적 삶을 가득 채웠던 기대가 사라지고 의욕조차 잃었을 때, 수평선은 희망, 의지, 두려움 모두 있는 그대로 내려놓고 걸어가도록 아래에 머물며 담담히 마츠코의 삶을 지지해줍니다." (p.23~24)



'그랑 블루의 하강하는 수직선'은 주인공 자크에게 바다로 가는 길이자 무의식과 안식처를 상징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곡선은 인간이 만든 직선 문명과 대비된다. 자연 그대로의 것, 살아 움직이는 것을 그려낸다. 영화 속 오물 신이 알고 보니 유명한 강의 신이었고, 몸속에 박혀 있던 쓰레기들을 빼내자 용과 같은 본연의 모습으로 구불구불 날아가는 장면은 살아있음과 통쾌감을 느끼게 한다. '여인의 향기'에서 사각형 프레임에 있는 프랭크(알 파치노)는 무기력하고 갇혀 있다. 답답하다. 그러나 검은 드레스를 입은 미녀와 원형 홀에서 춤추는 프랭크는 정열과 매력을 발산한다. 에너지와 생명력이 느껴진다. 이처럼 영화는 시각 코드를 통해서 의미를 함축하고, 강렬한 정서를 보여준다.



"언제나 작동하는 '느낌' 덕분에 우리는 시각코드를 한순간에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시각코드는 마음을 전하는 힘을 가진 감성 언어니까요. 우리는 이미지를 읽고 해석하는 방법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하쿠처럼 기억을 못할 뿐이죠."(p.291)

명장면은 감동이다. 하지만 막연한 감동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시각코드와 언어를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면, 혹은 블로그에 멋진 리뷰를 써보고 싶다면 <그냥 좋은 장면은 없다>를 참고해도 좋다. 대중에게 익숙한 영화를 설명 소재로 주로 인용했지만, 다양한 예술, 문화 작품 속 시각코드, 나아가 건축과 같은 일상적인 공간도 다룬다. 시각적 매체를 보는 안목을 종합적으로 넓히는 계기를 마련한다. 제목에 공감이 간다. 그냥 좋은 장면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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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케스 찾기 2016-11-16 01: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끔 영화 평론가들이 영화를 쪼개어 이래서 저래서 좋다며 가이드라인을 그어 버리는 리뷰가 싫었습니다ㅋ
그냥 좋은 것이 최고로 좋은 것이다며,, 저는 그저 ˝이런 영화도 있다˝고 제목만 알려 줬죠ㅋㅋ 볼 녀석들은 볼 테고, 보고 좋다고 말하는 녀석도 있을테고,, 별로다고 말하는 녀석도 있을텐데, 그 모든 건 ˝취향˝의 탓일 뿐. 지식이나 경험따위의 깊이 차이는 아니라고, 깊이라는 건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쳤는 데,,, 그럴 수도 있겠네요ㅋㅋ 그냥 좋은 장면은 없을 수도,,,있는,,,

1년을 1년으로 나누는 건 무의미하다고ㅋ 늘 이어지는 연속의 시간을 왜 그리 선을 그어 의미를 부여하여 쪼개야만 하는 가,,, 그냥 12월 31일을 9월의 어느 한 일없이 나태하게 보낸 날과 동일하게 보고 그날을 그날과 동일하게 묘사하되, 무조건 좋았다고 써내라,, 했더니ㅋㅋ 햇살이, 비가 온 하루가, 심지어 숙취로 하루죙일 누운 그날이,, 그냥 좋았던 날이었죠ㅋㅋ

아,, CGV에서도 실관람객 평을 하면서 ost, 스토리, 연출, 연기, 영상미,, 이래저래 쪼개어 놨던 데,,, 전 그게 잘 안되더라구요ㅋㅋ 그냥 좋았고, 그냥 좋아서 제목만 알려줬고,,, 나머진 관람한 사람의 취향의 차이일뿐이랬는 데,,,

저는 현란한 말과 세세히 쪼개어 지식과 상식으로 버무린 현학적인 평론이 와닿지 않았어요.

이 기회에 이 책도 읽어서 저의 편협한 생각을 넓혀도 봐야 겠습니다ㅋㅋ
인생의 명장면은 순간이 아니라,,
그 한장면으로 치닫는 모든 이어지는 장면들이다,, 영화든 책이든 한장면 한구절이 꽂히게 하기 위해선 수많은 장면과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깔여 차근차근 우리를 ˝설득˝해낸 결과일 뿐. 명장면 한 컷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거다,,,니,,

˝아가씨˝도 감독판이 더,,
두 여인의 감정선이 잘 스며들어 좋았어요. 20분이라는 시간의 차이가 전혀 지겹지 않고,, 더 좋았습니다 ^^ 한장면으로 이끄는 감정의 선들이 러닝타임으로 잘려나갔더군요.
˝여인의 향기˝에서의 탱고 씬도,
˝센과치히로˝의 오물 신이 강렬했던 것도,,, 깔린 장면의 위대함이 아닐까,, 하는,,,

이 책이 급 관심을 끄네요ㅋ
저와 다르다는 느낌 덕에 편협할 수도 있는 제 생각을 넓힐 수도 있겠다는,,,, 읽어 봐야 겠어요ㅋ

캐모마일 2016-11-17 11:44   좋아요 0 | URL
말씀에 공감합니다. 현학적인 담론으로 작품을 재단하고 심지어 취향의 급수를 나누는 평론은 눈쌀이 찌푸려집니다. 반면에 명장면에 감동을 받았는데 그것이 왜 감동을 줬는지 알려주거나, 제가 지나쳤던 부분을 짚어주는 이야기는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2016-11-17 07: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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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17 07: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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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17 12: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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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17 12: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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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17 12: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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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17 22: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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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17 22: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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