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불멸주의자 - 인류 문명을 움직여온 죽음의 사회심리학
셸던 솔로몬.제프 그린버그.톰 피진스키 지음, 이은경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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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p.15, <시지프 신화>)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는 인간의 근본적 질문이다. 구약성경에서 에녹은 하느님과 동행하다 최초의 승천자로 이름을 남겼지만, 그것은 종교적 신화고 인간은 죽는다. 필멸성은 죽음이란 문제를 철학적으로 고민하게 한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등 메멘토 모리 문학은 인간에게 필멸성을 일깨우고, 더 가치 있고 나은 삶을 모색하도록 이끈다. "한마디로, 죽음의 공포는 인간 행동의 기저에 있는 주된 원동력이다. 이 책은 죽음의 공포가 생각하는 것보다 인간 행동에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줄 것이다."(p.9)는 심리학 관련문헌을 탐구하면 자주 접하는 연구 결과다.



그럼에도 왜 제목을 <슬픈 불멸주의자>라고 했을까.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이 어떻게 가장 고귀한 인간 행동이나 가장 비도덕적인 인간 행동 양쪽 모두의 기저를 이루는지를 밝히고, 이러한 통찰이 어떻게 개인의 성장과 사회의 진보로 이어질 수 있는지 고찰하는 것이다." (p.9) 즉, 인간은 불멸성을 추구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하며, 그것이 사회에 미치는 파장을 심리학, 인류학, 고고학 등 다양한 간 학문적 연구 성과를 토대로 밝혀낸다. 셸던 솔로몬 교수를 비롯한 저자들은 25년여간 죽음의 공포가 인간사에 미치는 영향(,p.8)을 조사했다.



인간은 어떻게 죽음의 공포를 관리했을까. '문화적 세계관'과 '자존감'을 든다. 문화적 세계관이란 세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믿음의 체계, 우주의 기원에 대한 사고와 윤리, 도덕관을 망라하는 신념 체계다. 예컨대, 신앙으로 불멸성을 꿈꾸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주 예수께서 영생을 약속하셨다는 크리스천의 믿음을 보라. 자존감은 스스로 만족하고 본인이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 감정(p.70)이다. 앞서 <시지프 신화>에 나온 카뮈의 말처럼, 실존적 불안과 부조리를 해결하기 위해 자존감이 필요하다. 인간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하는가. 낮은 자존감을 포장하려고 나르시시즘이나 인격장애 심리의 기저에는 죽음의 공포가 있을지 모른다.



공포를 관리한다고 죽음을 피할 수 었다. 우리는 호모 모르탈리스(mortal : 필멸의)이기 떄문이다. 선사시대부터 각종 예술과 신화, 종교가 발생한 데는 이러한 필멸성이 작용했다. 불멸성의 추구다. 진시황이 동남동녀 삼백 명을 보내 불로장생약을 찾아오게 하거나, 염상섭의 <삼대>에서 할아버지가 어린 소녀와 동침하는 것도 '실체 불멸성'을 위해서다. 나아가 종교적 사후세계, 연금술, 도교의 양생법도 맥락을 같이 한다. 지금도 젊어지기 위해 줄기세포, 태반주사 시술을 받지 않는가. 미용 또한 인간의 육체성을 가리기 위한 심리가 기저에 있다. '육체와 영혼의 불편한 동맹(제3부 8장)'이다. 또한 '상징적 불멸성'이 있다. 유교적 방법과 비슷하다. 자신의 DNA가 담긴 자손을 낳고, 그들이 나를 기려준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기듯 부와 명성을 추구한다. 이러한 행위가 상징적 불멸성을 추구하는 방식이다.



죽음의 공포는 도리어 인간 파괴 행위로 나타나기도 한다. 공포를 관리하기 위해 문화적 세계관과 자존감은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불멸성의 욕망과 맞닿아서 집단적 존재를 확장하고 존속시키려는 열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내 신념을 남에게 강요하고, 영토와 명성, 부를 빼앗기 위해 전쟁을 일으킨다. 현대에 들어서도 나치즘이나 파시즘, 문화대혁명, 각종 전쟁과 분쟁이 일어난다. 또한 영혼 불멸성에 대한 믿음은 영혼과 육체의 이원론으로 나타났고, 육신은 저열한 단계로 취급되었다. 육신의 초라함을 꾸미기 위해 화장을 하고, 제모와 문신, 성형을 한다. 줄기세포 시술을 받고 태반주사를 맞으며, 마취제인 프로포폴 주사가 논란이 되기도 한다. 죽음의 공포는 그뿐만 아니라, 정신적 질환의 주요 원인이다. 실제 불안장애, 공황장애, 자해를 넘어서 다양한 자기애적 인격장애도 결국 기저엔 죽음의 공포로 귀결된다.



<슬픈 불멸주의자>라는 제목이 이해가 간다. '종교, 경제, 과학, 예술에서 테러까지 죽음의 두려움 앞에 드러난 인간 행동의 탐구'다. 호모 모르탈리스가 불멸성을 추구하기 위한 고군분투를 담았다. 실제로 인류사의 비극, 정신분열적 행위,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유한성이 슬프다. 슬픈 불멸주의자다. 책은 '메멘토 모리'와 슬기롭게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끝을 맺는다. 결론이 식상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호모 모르탈리우스의 슬픈 파괴 행위를 긍정하고 부추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히 심리학적 토대 위에 종교학, 인류학, 고고학을 넘나드는 서술은 흥미로웠다. 25년 간 솔로몬 교수를 비롯한 공저자 3명의 연구 성과를 한정된 서평에 담기엔 내 필력이 한참 모자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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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1-28 2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당분간 죽음을 주제로 한 책은 안 읽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저 책 표지 보자마자 읽기 시작했습니다.

캐모마일 2016-11-30 00:43   좋아요 0 | URL
아는 내용도 꽤 있었지만 기대 이상으로 흥미로운 책이었습니다.

저기압일땐고기앞 2016-11-30 0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캐모마일 2016-11-30 00:45   좋아요 0 | URL
슬픈 불멸주의자. 제목이 인상적이었는데 책을 읽고 아 이래서 슬픈 불멸주의자구나 이해가 가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