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쉬듯 가볍게 - 상처를 이해하고 자기를 끌어안게 하는 심리여행
김도인 지음 / 웨일북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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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팟캐스트 <지대넓얕>은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의 준말로, 다방면에 걸친 상식을 알차고 재밌게 풀기로 유명하다. 진행자 채사장의 저서 <지대넓얕>, <시민의 교양>은 베스트셀러다. 이번에 홍일점 김도인 씨 신간이 나왔다. <숨쉬듯 가볍게>. 팟캐스트에서 동양철학과 심리학을 접목하여 청자에게 힐링을 선사했는데, 구체적인 내용을 책으로 엮었다.



<숨쉬듯 가볍게>는 심리학과 동양철학에 기반을 둔 힐링법을 설명한다. 35살 일반인 남성 시우(時雨)가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10년간 사귄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정신적 방황과 고통을 겪는 시우. 어느 날 Light라는 발신인에게 메일이 온다. "잃어버린 마음을 찾으시겠습니까?" 시우는 Yes를 클릭한다. 여정이 시작된다.



마음의 상처를 이해하고 치유하는 과정은 힘겹다. 고통감정사(苦痛感情思). 상처는 아픔으로 그치지 않고, 감정과 생각을 지배한다. 상처와 관련된 경험, 혹은 새로운 경험을 회피한다. 고통과 감정, 그로 인한 부정적 사고방식을 자신과 동일시한다. 마음속에 빅데이터가 되어 끊임없이 반추되고 확장한다. 세상을 이해하는 틀이 된다. 정체성으로 굳어지고 미래의 선택과 행동을 좌우한다.

시우도 마찬가지다. 오래 사귀고 장래를 꿈꿨던 여자친구와 헤어진 뒤, 그는 청첩장을 받고 이별 노래가 나올 때마다 괴롭다. 새로운 경험을 회피하고 자기만의 공간으로 침전한다. 더구나 7살 무렵 엄마에게 버림받았던 시우. 무의식에 있던 불안과 외로움이 더해진다. 고통은 자동으로 합쳐지고 연합한다. 결국 시우는 고통과 부정적 감정을 자신과 동일시한다. 외로운 정체성, 고통스러운 세계관, 고립된 인생관.



삶에는 고통이 따른다. 부정할 수 없다. 책은 '예스 프로젝트"와 '인사이드 무비' 체험을 소개한다. 예스 프로젝트는 새로운 경험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No와 경험 회피로 일관하며 고통을 자신과 동일시하지 말고, Yes라는 마음가짐으로 새로운 경험에 나서는 방법이다. 마음의 상처와 나를 떨어뜨려서 탈동일시를 이룬다.



인사이드 무비는 한층 나아가 객관적 시각에서 아픔을 관찰하고 다시금 체험한다. 7살 시우는 엄마에게 버림받은 경험을 이해하지 못하고 내면에 불안과 외로움을 안고 살아야 했다. 당시 느꼈던 아픔을 떠올리며 돌이키되, 이제는 35살의 시우, 제 3자의 입장에서 당시를 반추해 본다. 5살 때 이혼한 부모님, 그를 떠났던 엄마, 키웠던 할머니. 과거의 상황들이 종합적으로 이해가 된다. 아픔을 부정하기보다 끌어안고 성숙해진다.



명상은 집중력과 자기 감각을 깨운다. 번아웃 증후군과 같은 정서적 탈진 상태는 마냥 휴식이 답이 아니다. 정신은 산만하고 부정적 생각에 쉽사리 휩싸인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명상은 효과적인 처방전이다. 특히 호흡 명상은 초심자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다. 하루 3번 정도 자기 나이만큼 호흡에 집중한다. 시간은 2분. 규칙적인 훈련은 10~15분으로 잡으면 좋다.



김도인 씨는 삶의 아픔을 부정하지 않는다. 마치 계절이 변하듯 삶은 변화하고 굴곡이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만약 추운 겨울을 맞닥뜨렸다면, 힘들겠지만 버릴 것은 버리고 멈추는 지혜도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동양고전 <장자>나 <주역>처럼 내 주관을 넘어서 삶의 변화를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힘이 진정한 지혜다.



<숨쉬듯 가볍게>는 성장기의 상처, 현재의 아픔, 그리고 긴장과 불안, 우울과 같은 정서적 고통을 치유하는 방법을 설명한다. 예스 프로젝트, 인사이드 무비, 명상, 운동화를 신어라, 인생의 깨달음을 단계적이고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치유는 자기를 부정하지 않는다.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굴곡과 변화를 인식하고 대처하는 지혜다. 서른다섯 시우의 여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깨닫는다. 시우는 마치 나, 혹은 지인 이야기같다. 공감이 가고 친근해서 울림이 크다. '숨쉬듯 가볍게' 읽지만 깊이가 느껴진다.

"'시우時雨'는 때에 맞춰 내리는 비'라는 의미로, <맹자>에 나온 말입니다. 가뭄에 메마른 초목을 살리는 큰 비를 시우라고 해요. 삶이 버거워지는 순간 시우의 여행기가 당신에게 단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p.5) 

"`시우時雨`는 때에 맞춰 내리는 비`라는 의미로, <맹자>에 나온 말입니다. 가뭄에 메마른 초목을 살리는 큰 비를 시우라고 해요. 삶이 버거워지는 순간 시우의 여행기가 당신에게 단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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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케스 찾기 2016-11-06 2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리 연관되어서가 아니라, 이 리뷰를 읽는 동안,
시우라는 이름에서 절로 떠올려진 시 한 구절,,
내내 건조하다 잠깐 내린 비를 보다, 읽게 된 리뷰를 통해 떠 올려진 시 한구절,,,
두보의 ˝호우지시절(好雨知時節)˝
`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비`,,,
그냥, 저절로, 두보의 시 `춘야희우(春夜喜雨)`의 한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
쓰신 리뷰 잘 읽고 갑니다.

캐모마일 2016-11-08 17:34   좋아요 0 | URL
아마 그 시에서 차용한 것이 맞는 거 같습니다. 춘야희우. 덕분에 좋은 시 한수 알아갑니다. 검색해봐야겠네요.
 
시진핑은 왜 고전을 읽고 말하는가 - 시진핑의 철학이 담긴, 짧지만 강렬한 한마디
장펀즈 지음, 원녕경 옮김 / MBC C&I(MBC프로덕션)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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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지도자는 고전, 시를 즐겨 인용했다. 정치, 외교 자리에서 명구를 곁들였다. 격과 품위라 여긴다고 한다. 공산당 체제에서도 마오쩌둥을 비롯한 여러 지도자가 다독가로 유명했다. 공자는 시 삼백 수를 읽고 외운들, 정치에 활용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냐고 하였다. 고전을 통해 지도자 품성을 기르고, 적절히 인용하여 자질을 드러낸다. 



중국은 중앙당 서기 국가주석이 권력 정점이다. 현재 시진핑이 맡고 있다. JTBC에서 방영했던 <차이나는 도올>이 떠오른다. 전직 후진타오는 장쩌민에게 군사권을 이양받지 못해 지도력이 제한되었다. 후진타오는 훈수 정치의 역학 구도를 청산하고자 했고, 과감하게 후임 시진핑에게 당, 정, 군 권력을 이양하는 조처를 했다. 시진핑 주석은 독재라 불릴 만큼 탄탄한 권력 기반을 갖고, 부패 척결 등 다양한 정치 개혁을 이끌고 있다.



중국 지도자 전통처럼, 시진핑은 다독가로 유명하다. 연설, 회담에서 고전 경구를 인용한다. 자도자 리더십을 연구할 때, 연설문, 축사 등의 발언은 유용한 자료로 활용된다. 사회 현안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미래 구상을 밝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우리나라 경제 교역국 1위고, 시진핑 주석은 권력 정점에서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다. 리더십에 주목하게 된다.



<시진핑은 왜 고전을 읽고 말하는가>는 그가 연설, 저서에서 인용한 고전 문구와 뜻을 분석하였다. 발언 일부를 수록하고, 해당 고전 맥락을 설명한다. 시진핑은 주장을 강조하고 말에 힘을 싣기 위해 고전문을 적절히 활용하였다. '전사불망, 후사지사(前事不忘, 後事之師)'라는 <전국책> 경구 "지난 일을 기억해 앞으로의 일에 교훈으로 삼는다."(p.38)처럼, 옛 일과 지혜를 앞으로 귀중한 본보기 삼기를 권한다. 직접 고전 읽기를 적극 추천한다.



반부패 정책에 앞장서서일까. 수신(修身)과 위민(爲民) 경구가 유독 눈에 띈다. 제갈량 <계자서>에 "무릇 군자의 행실은 고요함으로 몸을 닦고 검소함으로 덕을 기른다. 담박하지 않으면 뜻을 밝힐 수 없고, 안정되지 않으면 멀리 이를 수 없다,"(P.105)든지, "천하를 안정시키려면 자신부터 바로잡아라"(p.136) <정관정요>를 인용한다. 법가로 분류되는 <관자>나 다양한 유가 경서로 공산당원이 청렴하고, 일신하여 실무 능력을 더욱 함양하도록 강조했다. "가장 어려운 자리는 현령이다." <영잠>처럼 사소한 실무도 엄중히 임하는 자세를 말한다. 반면, 중국은 공산당 일당체제라서 그런지 민주(民主)보단 민본(民本)에 가깝다. 고전 경구를 다뤄서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차이나드림과 과학 인재 육성을 밝힌다. 도광양회(韜光養晦)는 80년대 전략이다. "약소국에는 공의도 외교도 없다."(p.61)는 발언. 차이나드림을 자주 거론한다. 높아진 중국의 위상과 함께 이를 뒷받침할 과학 인재 육성, 기술 혁신에 박차를 가한다. "진실로 하루가 새로워지려면 날마다 새롭고 또 날마다 새로워야 한다."(p.163) <대학> 경구를 곁들여서 말이다.



외교 석상에서도 기지를 발휘한다. 서울대학교 강연에서 허균의 시구를 인용한다. "중한 국민의 우의는 한국의 옛 시인 허균이 쓴 '간담매상조, 빙호영한월"이라는 시구에서도 잘 나타나 있습나다."(p.330) "간과 쓸개를 꺼내어 서로를 비추니, 항아리의 얼음 한 조각을 차디찬 달이 비추는 듯하네"(p.331)라는 뜻이다. "백금매옥, 천금매린(百金買屋, 千金買隣)", 좋은 이웃은 가치를 매길 수 없다고도 했다. 당시는 2014년이었다. 현재는 싸드 배치, 남중국해 문제로 한중 간 외교 분위기가 싸늘하다.



<시진핑은 왜 고전을 읽고 말하는가>는 시진핑이 "역사와 고전을 읽고 연구하는 과정을 통해 성패를 대하고 시비를 가리는 안목을 키울 수 있다. 고전을 통해 '온고지신'할 수 있음은 물론이고 '찰왕찰래'할 수 있다는 뜻이다."라고 했듯, 그가 고전을 사랑하는 이유, 인용하여 주장을 밝히고 리더십을 드러내는 발언을 모았다. 반부패 척결, 공직자로서 도리를 말하는 자세에 당당함이 서려 있다. 차이나드림을 곳곳에 밝힌다. 대국굴기(大國崛起) 국력과 자신감 이면에, 현재 남중국해 현안 등 외교 정책에서 힘을 과시하는 경향은 우려스럽다. 한때 주목받지 못했던 지역당 서기에서 중국 최고 권력자에 오른 시진핑. 그가 밝혔듯 고전에서 지혜와 처세훈을 배운 덕일까. 고전 애호가인 그가 말하는 정치 철학, 리더십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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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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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작가가 세계적으로 명망 있는 문학상, 맨부커상을 수상했다는 뉴스가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2007년 출간된 소설은 금세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채식주의자>를 읽는 것이 유행이었고, 처음으로 한강 작가의 작품을 접했다. 몽환적이고 충격적이었다. 작품은 연작 소설로, 평범한 주부 영혜가 갑자기 채식주의자 선언을 한 후에 일어나는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혜 남편, 형부, 언니 인혜의 시점이라는 관찰자 방식으로 전개한다.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 시간순으로 이어지는 연작 소설은 욕망과 억압, 상처의 변주곡이었다. 어느날 꿈을 꾼 뒤 육식을 거부하는 영혜. 그녀를 둘러싼 남성들은 욕망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남편은 그녀가 평범해서 결혼하였다. 그녀 앞에선 열등감과 불안감을 느낄 필요가 없었고, 존재는 있는 그대로 용인되었다. 이러한 관계는 일방의 받아들임, 희생과 욕망의 억압을 기초로 한다. 영혜의 아버지는 압권이다. 베트남전 참전용사로 가정 폭력을 일삼았다. 순했지만 고지식한 영혜는 가장 큰 희생양이었다. 영혜의 형부. 비디오 아트 작가로 현실 감각이 떨어지고 비상하는 날개 이미지에 천착한다. 아내 인혜에게서 처제의 몽고반점 이야기를 들은 후 야생적이고 원초적인 매력을 느끼고, 욕정과 감각이 들끓기 시작한다.

 


반면에, 영혜와 언니 인혜는 스스로 욕망을 억압한다. 상대방을 받아들이고 감내하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영혜의 내면은 트라우마와 공격성, 억눌린 욕망이 잠재하고 있었다. 평범하고 수더분한 외면에는 어릴 적 학대로 인한 학습된 무기력, 반면에 억압된 내면의 도덕적 반동이 도사리고 있다. 브래지어를 강박적으로 거부했던 행위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영혜는 고기를 칼로 썰다가 손이 베였고, 피를 본 다음 날 꿈을 꾸기 시작한다. 어두운 숲 속 헛간에서 날고기를 씹어먹는 꿈. 익숙하면서도 낯선 피 묻은 자신의 얼굴. 억눌린 것들은 우연하고 갑작스레 튀어나온다. 그녀는 충격으로 불면에 시달린다.

 


영혜는 채식주의를 선언한다. 학대를 일삼던 아버지에게 대들고 복수를 하거나, 남편에게 억눌린 감정을 쏟아내지 않는다. 억울함을 토로하지 않는다. 공격성과 욕망의 이미지를 거부한다. 육식은 이미지들의 집합이자 현실태였다. 채식은 철저한 비폭력 지향이다. 주변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녀의 "꿈을 꿨어.", "저는, 고기를 안 먹어요."에 담긴 함의를 모른다. 오히려 탕수육을 억지로 먹이기 위해 그녀를 결박하고, 뺨을 후려갈긴다. 그녀는 칼로 손목을 긋는다.

 


영혜는 나아가 식물이 되기를 꿈꾼다. 다른 개체에서 영양분을 수탈하지 않고 광합성을 하며 스스로 자립하는 식물. 땅속에 굳건히 뿌리내리는 나무를 꿈꾼다. 나체로 햇빛을 영접한다. 물구나무를 선다. 일체 음식과 저작운동을 거부하기 시작한다. 특히 그녀의 음부에서 꽃이 피는 상상을 한다. 성스러운 생명의 탄생처이자, 때로는 성적 욕망의 집결지인 여성의 회음부. 영혜는 욕망은 거부한 채 생명의 역동성만을 받아들였다. 한때 형부가 그녀에게 행위 예술을 주문했을 때, 물감으로 꽃과 줄기를 몸에 채색하고 형부의 후배 J와 정사행위를 표현하며 젖었다. 그러나 흥분의 대상은 육체가 아니라 꽃의 이미지였다. 교미가 아니라 교접이였다. 영혜는 육식의 거부, 저항 단계를 넘어서 능동적인 비폭력의 존재, 꽃을 피우는 생명의 존재, 꽃처럼 아름다운 존재를 꿈꾼다. 오히려 정신병원에서 그녀에게 강압적으로 행해지는 연명 행위들이 폭압으로 다가온다.

 


영혜의 언니인 인혜. 또다른 희생자다. 생활력이 강하고 자수성가형 인물이지만, 아버지, 남편에게 희생했다. 전문직이 다수인 시댁 분위기, 남편의 예술적 기질은 살림꾼 그녀가 갖추지 못한 일종의 동경거리였다. 남편의 취향을 존중했다. 가족이 내놓은 동생을 끝까지 책임진다. 아버지에게 술국을 끓여주는 맏딸 노릇을 하며 상대적으로 가정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그녀. 한편으론 비겁했다며 동생에게 부채의식을 갖는다. "막을 수 없었을까. 영혜의 뼛속에 아무도 짐작 못할 것들이 스며드는 것을." (p.192) 과거를 하나하나 반추하며 이랬다면 어땠을까. 저랬다면 어땠을까를 되뇐다. 영혜가 "꿈을 꿨어"라고 한다면, 인혜는 "시간은 흐른다",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고 한다. 그녀에게 삶과 시간은 책임감의 연속이다. 책임감은 반성을 요구한다. 도덕적 자학자로 보일 지경이다. 인혜는 말한다. 동생이 변하지 않았다면 변한 것은 바로 자신이었을지 모른다고.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는 문장이 너무나 아프다. 인혜가 무거운 현실의 짐을 지고 가야 하는 여정, 쉼이 없다.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을 타지 않았다면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을까. '채식주의자'란 제목의 이미지와 다르게, 몽환적이고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 명망 있는 상을 받은 덕분에 나 같은 독자도 읽을 기회를 얻게 되었다. 소설을 읽을 당시 큰 여운이 없었다. 정작 다음날 가슴이 먹먹하고 저려왔다. 폭력과 비폭력, 욕망과 억압의 표상들이 다가왔다. 상처와 욕망, 억압이 없는 인간이 어디 있으랴. 영혜의 이야기는 절절했지만 내심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인혜에게선 생활인의 연민과 떠나지 못하는 자의 설움이 다가왔다. 인혜에게 공감이 갔다. 우리네 삶은 영혜보다 인혜에 가깝지 않던가. 상처와 억압, 욕망을 독특하고 충격적인 변주곡으로 풀어낸 작품 <채식주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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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0-11 1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솔직히 말하면, 저는 맨부커상 수상 소식을 들은 이후에 이 소설을 읽었습니다. 한강이 맨부커상 후보에 들지 않았으면 전 이 책을 영영 안 읽었을 겁니다. ^^;;

캐모마일 2016-10-11 12:05   좋아요 0 | URL
멘부커상 수상 전에는 사실 이름 독특한 작가로만 알고 있었어요. 알고보니 영화화도 돼서 봤네요.^^
 
술로 만나는 중국.중국인
모종혁 지음 / 서교출판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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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꼬치엔 칭따오." 배우 정상훈씨의 유행어다. 정작 예능에선 양꼬치엔 칭다오(靑島) 맥주보다 연태고량주가 어울린다며 너스레를 떤다. 중국 국주로 불리는 '마오타이주'.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일탈의 술이다. 신산(神算) 이창호 9단을 모티브로 한 바둑 천재 택이 역 박보검이 중국 대국을 마치고 올 때면, 으레 동네 고등학교 친구 무리와 몰래 한 잔 하는 술이다. 여주인공 덕선은 호기롭게 원샷하고는 높은 도수에 자지러졌다. 이과두주와 공부가주는 익숙하다. 웬만한 중국집에선 맛볼 수 있다. 공부가주는 성현 공자 가문의 전통주라 하여 <논어>를 읽은 독자에겐 향취를 더한다.

속칭 바이주(白酒​), 혹은 수수로 빚었다 하여 고량주(高粱酒)로 대중에게 유명한 중국술. 실은 대륙이 큰만큼 술도 다양하다. 대륙은 지역이 넓어 기후, 지대 조건이 다르고, 오십 여섯 민족이 살고 있다. 칭다오 맥주뿐 아니라 많은 주종과 고유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품종이 넘친다. 시선 이백과 루쉰처럼 대문호와 얽힌 일화. 제갈량, 조조, 유관장 삼국지 영웅들을 마케팅한 지역주. 황비홍, 엽문의 고향술 '주좡쐉정', 쓰촨·충칭, 중원, 강남, 소수민족 자치구와 실크로드처럼 지역 특색과 풍토에 따라 달라지는 제조법과 술맛. 현대에 이르러 마오쩌뚱을 비롯한 걸출한 지도자들과 국공내전 당시 대장정을 함꼐 한 역사주들이 가득하다. 동네 중국집에서 마시는 이과두주는 베이징 서민술로 명주 반열에 들지도 못한다.



<술로 만나는 중국, 중국인>은 모종혁 중국 전문 저널리스트가 발로 뛴 중국술과 중국 문화 탐방이다. 지역별로 술 특징, 제조법, 맛에 대한 묘사를 넘어, 지역과 술에 얽힌 역사, 인물전, 문화를 소개한다. 입심의 힘일까. 300여 페이지를 한 자리에서 읽었다. 이백은 천재적인 재기로 늦은 출사에도 당현종의 총애를 받았지만, 정치적 풍파로 뜻을 펼치지 못한 채 술을 벗삼아 방랑했다. 정약용 선생이 유배지에서 실학을 집대성했듯, 시인의 안타까운 삶은 월하독작(月下獨酌)같은 명시를 남겼다. 특히 쓰촨성 주변엔 그의 발자취가 여러 곳에 남겨져 있다. 영화 <와호장룡> 촬영지 촉남죽해는 원래가 죽통주 산지다. 소수민족주는 다채롭다. 장미주, 구기자주, 샹그릴라 '칭커주', 아이돌 차오루, 영화 <동방불패>로 유명한 묘족의 '미주'. 이야기는 끝이 없다.



중국은 지역구, 자치구별로 주류 산업 부흥에 힘쓴다. 앞서 다양한 일화나 인물, 문화를 브랜드화하여 치열한 매출 경쟁을 벌인다. 사회주의 정권 이후 국영 공장으로 통합되기도 했지만, 지역 경제에 이바지하는 상품으로 인정받았고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도 민족 술문화는 훼손하지 않았다고 한다. 바이주, 황주뿐만 아니다. 중국은 스페인 다음가는 세계 2위의 와인용 포도 재배산지로, 와인소비량은 다섯 번째 국가다. 보리 최대 경작국으로, 북방 중국인이 "노후는 칭다오에 정착해 사는 것이 소원이다."(p.425)라고 칭찬하는 청도의 천혜자연과 만나 '칭다오 맥주'를 생산한다. 영국, 독일을 비롯한 서구 열강이 지역을 침략할 당시 융성한 맥주 산업이지만, 미국 국제맥주대회, 각종 주류박람회, 주류엑스포에서 수상 실적을 만들었다. 역사의 상처와 천혜자원이 맥주로 거듭난 것이다.



예전에 TV 프로그램<요리보고 세계보고>, <오감만족 세상은 맛있다> 애청자였고, 이웃나라 중국 이야기는 특히 즐겨 보는 소재였다. 올밴 유승민이 갔던 윈난성 5부작은 여러 번 돌려 봤다. <술로 만나는 중국, 중국인>은 심화편이다. 중국 고대사부터 중국의 현재까지 역사, 문화, 인물사를 종횡무진 넘나드는 입담에 취한다. 무엇보다 애주가라면 지나칠 수 없다. 술 이야기에 취한다.



중국이 시장 개방 이후로 경제가 활성화되자, 지역구 별로 고급주 전략을 내세워 주류 산업이 흥성하였다. 그러나 현재 국가주석 시진핑이 대대적인 반부패 정책을 이끄는 바람에 꽌시나 접대문화에 쓰였던 고급주가 직격탄을 맞았다. 한창 우리나라 이슈였던 김영란법이 떠오른다. 중국술은 이렇듯 역사와 문화, 사회 배경을 빼놓고는 다룰 수 없는 장대한 이야깃거리다. <술로 만나는 중국, 중국인> 책이 두터우면서도 술술 넘어가는 이유다. 입심에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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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거 - 행동의 방아쇠를 당기는 힘
마셜 골드스미스.마크 라이터 지음, 김준수 옮김 / 다산북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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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자기계발 계획을 세우고, 삶을 바꾸려고 결심한다. 자신만만하게 스타트를 끊지만, 작심삼일로 끝나기 일쑤다. 스케줄은 미뤄진다. 일정을 짤 때는 의지대로 생활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현실은 녹록치 않다. 변화는 멀기만 한 걸까. 의지를 탓하며 나는 그냥 이렇게 살련다 포기해야 하는 걸까. 지혜가 절실하다.



<트리거>의 저자 마셜 골드스미스는 낯설었다. <더 타임즈>, <월스트리트 저널>, <포브스>, <이코노미스트> 같은 저명한 언론과 경영학계에선 지난 80년간 손꼽는 50인 중 한 명, 위대한 경영 사상가로 대접한다. 저서 7권 중 6권은 하버드 경영대학원 필독서로 선정되었고 '리더십의 그루(정신적 스승)'로 극찬한다는데, 사실 이번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저자가 말하는 문제는 간단하다. 계획과 실행은 틈이 넓기 때문이다. 기존 환경과 관성은 강력하고 여러 변수가 생긴다. 계획가는 자신감이 앞서서 목표를 만들지만, 막상 실행가가 되면 난관에 부딪힌다. 이 점을 간과한다. 생활 속에는 알게 모르게 수많은 자극과 동기가 있다. 거기에 반응한다. 긍정적인 동기보다 부정적인 유혹에 쉽게 노출된다.



트리거(trigger)의 사전적 정의는 '계기, 방아쇠, (사건이나 반응 따위를) 일으키다, 유발하다'라는 뜻이다. 저자는 '일과 삶에서 우리를 뒤흔드는 심리적 방아쇠'이자, '트리거란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주는 모든 자극이다'(p.64)라고 정의한다. 정해진 유형이 없고,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원인을 가리지 않는다. 충동을 일으키고 알게 모르게 자각한다. 선택은 행동으로 이어진다. 선행 사건이 되어 또다시 루프에 빠진다. 트리거는 사람의 행동을 좌우한다. 계획가는 야심만만하지만, 실행가는 트리거에 노출된 연약한 인간일 뿐이다. 지친 나머지 백기를 흔든다.

사회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는 '자아고갈(ego depletion)'이라 설명한다. '자아강도(ego strength)'는 심리적 자원이다. 자기를 규제하고 규칙을 지키면서 욕망과 유혹에 저항한다. 사람은 슈퍼맨이 아니다. 자아강도는 한계가 있고, 유혹과 부정적 트리거에 지속적으로 노출될수록 고갈된다.(p.229)



트리거로 통칭하는 자극을 적절히 분류하고 대처하는지에 성패가 갈린다. 긍정적 변화는 트리거를 얼마나 제대로 인지하고, 적절한 반응을 만들어서 목표에 지속적으로 전념하는가에 달려 있다. '원한다 vs 원하지 않는다, 격려해줌 vs 단념시킴'의 설문이나 '변화의 수레바퀴' 틀을 통해 트리거를 파악하는 단계를 거친다.

이후 ​저자는 능동적인 목표를 설정하여 삶의 체계를 세우기를 권한다. 집단 실험을 통해서 밝혀진 바로는 수동적인 질문보다 능동적인 질문이 변화를 끌어낸다. 예컨대, '당신은 오늘 얼마나 행복했습니까?' 보다 '당신은 행복하려 최선을 다했습니까?'라는 물음이 행동 개선에 두 배가량의 효과를 발휘하였다. 개선이 순환고리로 정착하면, 삶의 체계가 된다. '트리거 → 충동 → 인지 → 선택 → 행동 → 트리거'라는 참여의 순환고리가 바뀐다.



거창한 변화일 필요는 없다. 개인의 습관 변화부터 자기계발, 다이어트(사실 어려운 목표다), 인간관계까지 두루 통용된다. 나아가 리더십, 기업 성과 증진 등 조직 차원의 변화를 끌어내는 유용한 틀이다. 책 <넛지>가 사회 설계를 이야기했듯, 보건, 복지 등 정책 다방면에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일단은 나부터. "이 책을 덮으면서 딱 하나의 변화, 딱 한 가지 트리거가 될 수 있는 행동을 떠올려보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일 말이다. 여기서 기준은 단 하나, 그 행동에 후회하진 않아야 한다." "그리고 행하라."(p.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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