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좋은 장면은 없다 - 마음을 움직이는 시각코드의 비밀 20
신승윤 지음 / 효형출판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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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올해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가 개봉했다. 홍보 당시 여배우의 노출 수위가 화제가 되었다. 관객의 평은 엇갈렸지만, 대체로 미장센(Mise-en-scene)이 뛰어났다는 후기는 비슷했다. 미장센이란 화면을 구성하는 방식이다. 가끔은 백 마디 대사보다 한 화면이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표현한다. 관객의 뇌리에 남는다. 인상 깊은 장면은 이유가 있다. 말 그대로 그냥 좋은 장면은 없다.



<그냥 좋은 장면은 없다>는 부제 '마음을 움직이는 시각코드의 비밀 20'이다. LINE(선), SHAPE(모양), SPACE(공간), RELATION(관계), LIGHT SHADE & COLOR(명암과 색상), RHYTHM & TIME(리듬과 시간)이란 카테고리로 20가지 다양한 시각 구성을 쉽게 설명한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미션', '그랑 블루',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식스 센스', '여인의 향기', '레옹', '아메리칸 뷰티' 등 익숙한 명작 영화를 소재로 다룬다. 감독이 장면을 배치한 의도, 그것이 왜 관객에게 감동을 주는지를 '수평선', '사각형', '원형', '소실점', '대칭', '명암'과 같은 단순한 시각 코드로 풀어낸다.

예컨대,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서 '수평선'의 의미를 설명한다. '미션'에서 가브리엘 신부가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는 장면은 '상승하는 수직선'의 이미지로, 인간이​ 가진 이념과 의지를 표현했다. 반면에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 수평선은 마츠코가 살아왔던 고단한 삶, 사랑을 갈망하고 주었지만 결국 실패를 거듭한 뒤 혐오스럽다는 표식이 붙은 삶과 대비된다.

"수평선은 힘겨웠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탕자를 감싸 안아주는 어머니의 품과 같습니다. 무한정 수용하고 이해하는 지지선입니다. 수직선이 역동적인 힘을 가졌다면 좌우를 연결하는 수평선은 포용의 힘이 있습니다.....어릴 적 삶을 가득 채웠던 기대가 사라지고 의욕조차 잃었을 때, 수평선은 희망, 의지, 두려움 모두 있는 그대로 내려놓고 걸어가도록 아래에 머물며 담담히 마츠코의 삶을 지지해줍니다." (p.23~24)



'그랑 블루의 하강하는 수직선'은 주인공 자크에게 바다로 가는 길이자 무의식과 안식처를 상징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곡선은 인간이 만든 직선 문명과 대비된다. 자연 그대로의 것, 살아 움직이는 것을 그려낸다. 영화 속 오물 신이 알고 보니 유명한 강의 신이었고, 몸속에 박혀 있던 쓰레기들을 빼내자 용과 같은 본연의 모습으로 구불구불 날아가는 장면은 살아있음과 통쾌감을 느끼게 한다. '여인의 향기'에서 사각형 프레임에 있는 프랭크(알 파치노)는 무기력하고 갇혀 있다. 답답하다. 그러나 검은 드레스를 입은 미녀와 원형 홀에서 춤추는 프랭크는 정열과 매력을 발산한다. 에너지와 생명력이 느껴진다. 이처럼 영화는 시각 코드를 통해서 의미를 함축하고, 강렬한 정서를 보여준다.



"언제나 작동하는 '느낌' 덕분에 우리는 시각코드를 한순간에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시각코드는 마음을 전하는 힘을 가진 감성 언어니까요. 우리는 이미지를 읽고 해석하는 방법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하쿠처럼 기억을 못할 뿐이죠."(p.291)

명장면은 감동이다. 하지만 막연한 감동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시각코드와 언어를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면, 혹은 블로그에 멋진 리뷰를 써보고 싶다면 <그냥 좋은 장면은 없다>를 참고해도 좋다. 대중에게 익숙한 영화를 설명 소재로 주로 인용했지만, 다양한 예술, 문화 작품 속 시각코드, 나아가 건축과 같은 일상적인 공간도 다룬다. 시각적 매체를 보는 안목을 종합적으로 넓히는 계기를 마련한다. 제목에 공감이 간다. 그냥 좋은 장면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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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케스 찾기 2016-11-16 01: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끔 영화 평론가들이 영화를 쪼개어 이래서 저래서 좋다며 가이드라인을 그어 버리는 리뷰가 싫었습니다ㅋ
그냥 좋은 것이 최고로 좋은 것이다며,, 저는 그저 ˝이런 영화도 있다˝고 제목만 알려 줬죠ㅋㅋ 볼 녀석들은 볼 테고, 보고 좋다고 말하는 녀석도 있을테고,, 별로다고 말하는 녀석도 있을텐데, 그 모든 건 ˝취향˝의 탓일 뿐. 지식이나 경험따위의 깊이 차이는 아니라고, 깊이라는 건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쳤는 데,,, 그럴 수도 있겠네요ㅋㅋ 그냥 좋은 장면은 없을 수도,,,있는,,,

1년을 1년으로 나누는 건 무의미하다고ㅋ 늘 이어지는 연속의 시간을 왜 그리 선을 그어 의미를 부여하여 쪼개야만 하는 가,,, 그냥 12월 31일을 9월의 어느 한 일없이 나태하게 보낸 날과 동일하게 보고 그날을 그날과 동일하게 묘사하되, 무조건 좋았다고 써내라,, 했더니ㅋㅋ 햇살이, 비가 온 하루가, 심지어 숙취로 하루죙일 누운 그날이,, 그냥 좋았던 날이었죠ㅋㅋ

아,, CGV에서도 실관람객 평을 하면서 ost, 스토리, 연출, 연기, 영상미,, 이래저래 쪼개어 놨던 데,,, 전 그게 잘 안되더라구요ㅋㅋ 그냥 좋았고, 그냥 좋아서 제목만 알려줬고,,, 나머진 관람한 사람의 취향의 차이일뿐이랬는 데,,,

저는 현란한 말과 세세히 쪼개어 지식과 상식으로 버무린 현학적인 평론이 와닿지 않았어요.

이 기회에 이 책도 읽어서 저의 편협한 생각을 넓혀도 봐야 겠습니다ㅋㅋ
인생의 명장면은 순간이 아니라,,
그 한장면으로 치닫는 모든 이어지는 장면들이다,, 영화든 책이든 한장면 한구절이 꽂히게 하기 위해선 수많은 장면과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깔여 차근차근 우리를 ˝설득˝해낸 결과일 뿐. 명장면 한 컷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거다,,,니,,

˝아가씨˝도 감독판이 더,,
두 여인의 감정선이 잘 스며들어 좋았어요. 20분이라는 시간의 차이가 전혀 지겹지 않고,, 더 좋았습니다 ^^ 한장면으로 이끄는 감정의 선들이 러닝타임으로 잘려나갔더군요.
˝여인의 향기˝에서의 탱고 씬도,
˝센과치히로˝의 오물 신이 강렬했던 것도,,, 깔린 장면의 위대함이 아닐까,, 하는,,,

이 책이 급 관심을 끄네요ㅋ
저와 다르다는 느낌 덕에 편협할 수도 있는 제 생각을 넓힐 수도 있겠다는,,,, 읽어 봐야 겠어요ㅋ

캐모마일 2016-11-17 11:44   좋아요 0 | URL
말씀에 공감합니다. 현학적인 담론으로 작품을 재단하고 심지어 취향의 급수를 나누는 평론은 눈쌀이 찌푸려집니다. 반면에 명장면에 감동을 받았는데 그것이 왜 감동을 줬는지 알려주거나, 제가 지나쳤던 부분을 짚어주는 이야기는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2016-11-17 07: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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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17 07: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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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17 12: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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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17 12: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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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17 12: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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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17 22: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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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17 22: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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