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나는 이렇지 않았다. 어떤 제안이나 부탁이 들어왔을 때 안 할 이유가 정말 많이 떠올랐다. 돌이켜보면 객관적으로 그게 정말 ‘안 할 이유였을까? 아니다. 두려움, 귀찮음, 자신 없음 모두 단지 내가 만들어낸 안 할 이유였을 뿐이다. 지금은 그것을 제삼자의 시선으로 점검한다. 정말 안 할 이유인가, 아니면 내가 만들어낸 이유인가. 그러면 답이 나온다. ‘안 할 이유가 없네? 그럼 해야지.‘ 이런 생각은 이제 내 유무의식에 단단히 자리를 잡았다. - P6

내가 좋아하는 인터뷰 영상 중에 김연아 선수의 것이 있다. 무슨 생각을 하면서 하느냐는 질문에 김연아 선수가 답한다.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 정말 완벽한 답변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출근길 작은 눈사람이 쓰러져 있는 걸 보면 그냥 일으켜 세우고 지나간다. 아무 이유 없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세우는 거다. 기찻길 선로 위로 추락한 사람을 구하려고 뛰어든 영웅들을 인터뷰하면 하나같이 똑같은 말이 나온다. 그냥 몸이 움직였다고. 난 인간의 가장 위대한 점이 바로 이런 ‘그냥‘에 있다고 생각한다. 생각하고, 고민하고, 갈등하고, 안 할 이유를 찾고할 시간에 그냥 해버리는 것 말이다. - P7

실제로 내가 글을 쓸 때 절대적으로 지키는 원칙 하나는, ‘내가 아는 건 보는 사람도 안다‘이다. 내가 아는 건 보는 사람도 다 알 테니까 가르치려 들지 말자, 뻔한 거 말고 나도 몰랐던 걸 쓰려고 노력하자. 그렇게 글을 썼더니 정말 좋은 결과가 돌아왔다.
나는 당연히 특별한 사람이지만, 생각보다는 별거 아니다. 내가 별거 아니란 생각, 남들도 나와 같다는 생각은 평화로운 삶에 꽤 도움이 된다.  - P19

귀함은 가난과 부를 차별하지 않는다. - P29

인간이 무형의 총을 쏠 수 있다면 그 총알은 의심일 거다. - P30

어떤 위치에 선다는 것은 누군가의 입장에는 무감각해지는 일인가 보다. - P51

궁금해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을 때 설명하기 위한 수단이 바로 사랑이구나. ‘사랑하니까 궁금하다‘가 유일하게 말이 되는 설명이었다. 생산성 없는 궁금증을 설명하기 위해 사랑이 쓰인다면, 사랑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생산성 없는 궁금증이 쓰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내게 사랑이란 서로를 궁금해하는 일이다. - P61

어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원래 어떤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어떤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이루어지는게 아닐까 싶다. 원래부터 어떤 사람인 사람이 이 세상에 과연 있을까. 내가 관리하고 싶은 내 이미지는 분명 내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모습일 테고, 그럼 그런 모습이 되기 위한 관리는 절대 나쁜 게 아닐 거다. 가식도 죽을 때까지행하면 진짜가 된다지 않는가. - P130

일은 원래 견디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결론지은 까닭은 평생 한 번도 일을 좋아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게 일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로 나뉠 뿐, 좋아하고 말고가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었다. 그런데 서른두 살에 기적처럼 좋아하는 일이 찾아왔다. - P151

내 꿈이 작가가 아니었는데도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건 어쩌면, 내가 작가가 되는 모습을 그분들이 꿈꾸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분들은 내가 작가가 되기를 나보다도 더 간절히 바랐고, 실질적으로 분명한 도움을 주었다. 내 책 1쇄를 사흘 만에 다 구매해줬다는 것만 봐도 증명이 되는 이야기다. 내가 작가가 되는 걸 마치 본인의 일•처럼 기뻐해주던 그분들의 모습은 분명, 내가 작가가 되는 모습을 꿈꾸었기에 나올 수 있었으리라. 그러면 모든 의문이 풀린다. 작가가 꿈이 아니었던 사람이 작가가 될 수 있을 리가 없는데, 그분들의 꿈이 내가 작가가 되는 것이었기에 작가가 될 수 있었다. 그렇게 꿈이 이루어진 거다. - P159

생각해보면, ‘망설임‘이란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는게 정말 행복한 일이다. 돈이 주는 만족의 결을 들여다보면 결국 물질보다 감정의 영역이다. 어떤 사치를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사소하게라도 무언가 소비할 때 ‘잘못사도 괜찮아‘란 마음이 정말 좋다.  - P167

금전적 여유가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만족은 실패해도 된다는 안정감과 자신에 대한 관대함이었다. 실패하면 끝장이라고만 말하는 세상에서 비록 작은 것일지언정 실패해도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는 상황이 주는 기쁨은 크다. - P16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만이 아니라 그와의 관계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탄생하는 나의 분인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나는 당신과 함께 있을 때의 내가 가장 마음에 든다. 그런 나로 살 수 있게 해 주는 당신을 나는 사랑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일이 왜 그토록 고통스러운지도 이해할 수있다. 그를 잃는다는 것은 그를 통해 생성된 나의 분인까지 잃는일이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그 사람과만 가능했던 관계도 끝난다. 다시는 그를 볼 수 없다는 것은 다시는 그때의 나로살아갈 수 없다는 뜻이다.‘ - P131

내 속에는 많은 내가 있다. 고통과 환멸만을 안기는 다른 관계들 속의 나를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당신과 함께 있을 때의 내가 나를 버텨주기 때문이었다. 단 하나의 분인의 힘으로 여러 다른 분인으로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 죽을 때 나 중에 가장 중요한 나도 죽는다. - P131

그런 의미에서, 인생이라는 불에 대해 문학은 맞불이라는 것. 그렇구나. 나를 태우는 불을 끄기 위해 나는 타오르는 책들을 뒤적이는 사람이 된 것이다. - P21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많은 문학이론가에 따르면 소설은 본질적으로 패배의 기록이다. 세계의 완강한 질서에 감히 도전하는 개인이 있는데, 그는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끝내 포기하지 않아서, 그 비타협의 결과로 그는 패배하고 말지만, 그 순도 높은 패배가 오히려 주인공의 궁극적 승리가 되는 아이러니의 기록, 그것이 바로 소설이라는 것. 그러므로 ‘위대한 개츠비‘라는 말이 성립될 수 있다면, ‘위대한 양생/이생‘이라는 말도 가능하다. 비록운명에는 패배했으나 사랑에 관한 한 타협하지 않았으니까. - P120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기왕 살 것이라면 편안하게 살고 싶다는 끔찍한 욕망이 내 안에 있다는 발견에서도 올 것이다. 세상이 생육신의 지조를 칭송하면 할수록 그는 제 안의 잠재적 배신자와 지긋지긋한 싸움을 해야 했으리라. 싸우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자기혐오의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 P12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리고 성년이라는 것이 그 자체로 여정이라기보다는 그동안 추구하던 성장과 변화를 마무리 짓는 최종 목적지 같은 시기라 생각하는 쪽이 편했다. 형보다 더 나이 든 사람이 된 지금이 이상하고 부자연스럽다. 어릴 적 올라가서 놀던 나무보다 키가 더 커지면 이런 느낌일까. 그러나 이제는 내 삶이 지금 보이는 지평선 너머까지 뻗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 정도의 관록은 갖추게 되었다. 삶은 휘청거리고 삐걱거리면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갈 테고, 그 방향을 나 스스로 잡는 편이 낫다는 것도 알게 됐다. 다시 말해 내 삶은 여러 개의 챕터로 되어 있고, 그 말은 현재의 챕터를 언제라도 끝낼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 P305

빈센트의 <붓꽃>을 보고 있자면 가난과 자신을 괴롭히는 상념들에서 벗어나 그 생기 넘치는 단순함 속에서 영원히 살고 싶은 화가의 염원이 느껴진다. 그러나 몸을 돌려 우리 앞에 놓인 것을 직면해야 하는 시간은 오고야 만다. 빈센트의 이야기가 슬픈 것은 그가 삶을 살아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보다 운이 좋다는 사실에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이 감사하다. 내 이야기는 행복한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P315

"그런 다음 은퇴를 해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으로 갈 거야. 가나에 있는 마을인데 우리 어머니의 고향이지. 거기서 뭘 할 거냐고? 잠에서 깨면 어부들이 뭘 잡았는지 보고, 마음에 드는 물고기가 있으면 사고, 그렇지 않으면 사지 않을 거야. G구역에 있는 윈슬로 호머 그림 알지? 뗏목 위에 누워 있는 흑인. 뗏목 주변으로 상어들이 빙빙 돌고 있고, 저 멀리서 태풍이 불어닥치고 있지만 그 사람은 이미 최악을 경험한 사람이라 그냥 이렇게 하고 편히 쉬고 있잖아." 조셉이 그의 포즈를 따라 하며 말한다. "그게 바로 나야. 너무 오랫동안 안전하게만 살아왔어. 케세라 세라 Que sera, sera하지만 우리 젊은 친구, 패밀리 맨, 자네는 세상으로 나가서 큰돈을 벌어. 혹시 그렇게 못 한다 하더라도 뉴가 뭐라 하겠어?" - P316

디테일로 가득하고, 모순적이고, 가끔은 지루하고 가끔은 숨 막히게 아름다운 일상. 아무리 중차대한 순간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기저에 깔린 신비로움이 숭고하다 할지라도 복잡한 세상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돌아간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고, 삶은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 P32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제 이런 순간들은 예전만큼 자주 오지 않고 그 사실을 인정하며 슬퍼진다. 위대한 그림은 경외감, 사랑 그리고 고통 같은 잠들어 있던 감정들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은 메자닌의 골동품들에 대한 호기심과는 다르다. 이상하게도 나는 내 격렬한 애도의 끝을 애도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내 삶의 중심에 구멍을냈던 상실감보다 그 구멍을 메운 잡다한 걱정거리들을 더 많이생각한다. 아마도 그게 옳고 자연스러운 것이겠지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 P25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