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인생은 이해할 수 없어서 불쌍한 것이다. 문제를 푸는사람 자신이 문제의 구성 성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풀수가 없는데 그렇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풀어야 하니까 더 불쌍한 것이다.  - P6

브레히트가 주로 사용한 말은 ‘필요하다 brauchen‘였던 모양이다. ‘당신을 사랑해요‘라고 적어 보내면 ‘당신이 필요해요‘라는답장을 받게 되던 한 사람을 생각하는 일은 마음을 쓸쓸하게 한다. 베를라우가 쓴 것으로 짐작되는 다른 짧은 시 한 편에는 ‘약점‘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고 거기엔 이런 구절이 적혀 있다. "당신에겐한 가지도 없었지만 내겐 한 가지 있었지. 그건 내가 사랑했다는 것." (1951.1.28.) 이 말이 사실이라면 베를라우는 끝내 브레히트를 온전히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상호의존적인 약점이 있을 때 사랑은 성립된다. 상대를 사랑하는 사람과 상대가 필요한 사람은 대등하게 약하지 않다.  - P21

브레히트의 이 시를 받아 보고 베를라우는 자신이 할 일이 무엇인지 재확인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을 소중히 여겨야 했다. 브레히트가 나를 원하기 때문이고, 또 그 사실을 한시도 잊지 않기를원하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내 것이 아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 자기가 아니라 타인을 위한 일이 됐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의무‘가 되면 자신을 망가뜨릴 ‘권리‘를 박탈당하게 된다. 그렇게 늘 정신을 차려야 했고 빗방울까지 두려워해야 했다면 그 사람은 행복했을까.  - P23

다시 말하지만, 시인에게서 내가 배운 것은 ‘나‘에 대한 조심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는 (아이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도 새처럼 다뤄야 한다. 새를 손으로 쥐는 일은, 내 손으로 새를 보호하는 일이면서, 내 손으로부터 새를 보호하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내 삶을 지켜야 하고 나로부터도 내 삶을 지켜야 한다. 이것은 결국 아이의 삶을 보호하는 일이다. 아이를 보호할 사람을 보호하는 일이므로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아이에게 가해자가 되고 말 것이다. - P26

요컨대 이 노래는 간절한 ‘무‘를 냉혹한 ‘경‘이 무너뜨리는 구조로 돼 있다. 인생에는 막으려는 힘과 일어나려는 힘이 있다는 것. 아무리 막아도, 일어날 어떤 일은 일어난다는 것. - P34

무신론자에게 신을 받아들이는 일이란 곧 사유와 의지의 패배를 뜻할 뿐이지만, 고통의 무의미를 견딜 수 없어 신을 발명한 이들을 누가 감히 ‘패배한‘ 사람들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이 신을 발명하기 전에 먼저 인간이 인간을 구원할 생각이 없다면 말이다. - P44

내가 지금 아는 것은 지금 알 수 있는 것들뿐이어서, 내가 아는 슬픔은 내가 느낀 슬픔뿐이다.  - P48

"살며시 어루만지는 것, 그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임을. " 사랑 따위 아무 의미 없다는 말이 아니다. 격정으로서의 사랑이 덧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단지 사랑을 하고 있다고 해서 진실로 존재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 천사가 껴안으면 바스러질 뿐인 우리 불완전한 인간들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그를 ‘살며시 어루만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이 인간의 사랑이 취할 수 있는 최상의 자세일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관계 속에서 인간은 누구도 상대방에게 신이 될 수 없다. 그저 신의 빈자리가 될 수 있을 뿐. - P89

내 앞에서 엉망으로 취해 있는 사람을 바라보며, ‘나라도 곁에 없으면 죽을 사람‘이라는 말을 ‘내가 곁에만 있으면 살 사람‘이라는 말로 조용히 바꿔보았을 한 사람. 이런 순간이 있을 것이다. 이 사람을 계속 살게 하고 싶다고, 내가 그렇게 만들고 싶다고 마음먹게 되는 순간. 바로 그 순간 이 세상에는 한 인간에 의해 사랑이 발명될 것이다. - P91

가브리엘 마르셀은 말했다.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당신은 죽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듣는다는 것을 의미한다."(「존재의 신비 2』) 이 문장은 뒤집어도 진실이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 역시 죽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이제 나는 어떤 불가능과 무의미에 짓밟힐지언정 너를 살게 하기 위해서라도 죽어서는 안 된다. 내가 죽으면 너도 죽으니까, 이 자살은 살인이니까. - P96

나는 인간이 신 없이 종교적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를 생각하는 무신론자인데, 나에게 그 무엇보다 종교적인 사건은 한 사람이다른 한 사람의 곁에 있겠다고, 그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일이다. 내가 생각하는 무신론자는 신이 없다는 증거를 쥐고 기뻐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염려하는 사람이다. 신이 없기 때문에 그 대신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의 곁에 있을 수밖에 없다고, 이 세상의 한 인간은 다른 한 인간을 향한 사랑을 발명해낼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신이 아니라 이 생각을 믿는다.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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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집트 파라오의 포즈처럼 한 발을 앞으로 내밀고 서 있다. 하지만 이 젊은이는 파라오도 아니고, 왕도 아니고, 신도 아니다. 그 이전의 많은 예술품이 그랬듯이 주술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이 코우로스는 일종의 비석으로 세상을 떠난 남자의 유해 위에 놓여 그저 이사람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이었다‘고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것이다.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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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를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모든 발견의 기회를 없애버리게 되니까요." - P95

나이가 들면 역설에 환멸을 느끼기가 쉬워지지요, 하고 그는 말했다. "젊어서는 도전뿐이에요. 하지만 나이가 들면 그저 피곤해지거든요. 모든 물리학자에게는 자기 너머 수준의 사고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때가 와요. 자기가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준"이라고 그는 말했다.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들도, 보어조차도 그 지점에 도달했지요. 하고 그는 말했다. "음악과 같아요. 재능과 연습은 음악가를 멀리 나아가게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지요."  - P96

그의 얼굴은 상기됐고, 나는 나와 함께 있는데도 취할 만큼 나를 믿는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봐야 단둘이보낸 두 번째 시간이었고, 우리의 공식적인 첫 데이트였는데도 나는 그와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나 빨리 편안하고 평온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마치 평생토록 어떤 깊은 방식으로 그를 알아온 것 같았다.  - P103

이야기를 끝마치자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슬픈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당신이 언젠가 이것 때문에 나를 미워하게 될까 봐 두려워요. 헤더."
"무엇 때문에요?"
"이런 만남." 그가 말했다. "당신이 언젠가 이런 만남을 되돌아보며 나를 미워하게 될까 봐 두려워요."
나는 그를 보았다. "내가 두려운 게 뭔지 알아요, 로버트?" 나는 그의 손을 만지며 말했다. "나는 당신을 미워하지 않게 될까 봐 그것이 두려워요." - P110

돌이켜보면, 그날 밤 이후 내가 우울증에 빠졌다고 여겨질 수도 있겠으나, 나는 서서히 형성되어가고 있던 내 삶을 체념하듯받아들이게 되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 P119

무언가를 피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일 때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편을 선택하거나 아니면 강해져 그것에 대항하려 애쓴다. 그런데 나의 마음은 강해질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 P120

다른 사람이 당신을 채워줄 수 있다거나 당신을 구원해줄 수 있다고 - 이 두 가지가 사실상 다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 추정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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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 없이, 짝도 없이, 길을 잃고서. -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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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관계가 컴퓨터와 핸드폰으로만 이루어지는 세상에서 불륜이야말로 그렇지 않은 마지막 인간 관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시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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