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에 다녀왔습니다
임경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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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겨울 정도로 한 곳에 틀어박혀 있는 것이 좋은 반면,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계획하며 설레어하거나 낯선 곳에서의 경험에 흥분하는 성격이 아님에도 여행서적은 꾸준히 읽어왔던 편이다. 몸으로 뛰는 것보다 눈으로 읽는 것이 더 편하기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다수의 다른 것들처럼 여행도 글로만 배우고 마는 성격이었으나, 몇 년 전부터는 그나마 있는 여행서적도 읽지 않고 있다. 여행을 하다보면 당연히 그 여행자를 둘러싼 다양한 인물과 많은 사건 그에 따른 감상이 있기마련지만, 이러한 일련의 우연들도 '발단-전개-위기-절정'순으로 정교하게 계획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책을 읽은 후부터였을 것이다. (여기서 굳이 그 책의 제목을 밝히지는 않겠지만, 그 책의 저자는 이후에도 장소를 바꾸어가며 3-4권의 여행기를 더 펴낸것으로 안다.) 


장장 열흘이나 되는 긴 연휴에도 불구하고 남들은 한번쯤 계획했다는 여행을 전혀 생각해보지 않고 있는 스스로에게 놀라며, 읽기에 부담스럽지 책 한 권으로 물리적 여행을 대신하고 싶었다. 마침, 임경선 작가의 여행기가 발간되었다는 광고를 보았고, 그가 다녀온 여행지 또한 언제고 한번은 가보고 싶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교토였기에 주저하지 않고 책을 골랐다. 책을 훑어보니 곳곳에 교토의 하늘이나 작은 상점들을 찍은 사진들이 눈에 띄었다. 여행기에 사진이 빠질 수는 없겠지만 사진집이 아님에도 필요 이상의 사진을 덕지덕지 붙여 놓는 책을 좋아하지 않는터라, 이 정도 수준이면 괜찮겠다는 안심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여행지에서 있을 법한 우연과 과장이 전혀 없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다른 여행기에 비해서는 흥미로운 요소가 떨어진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작가의 차분하고 담담한 글은 그가 독자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교토의 정서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읽다보니 이 책에는 흔한 교토의 명소보다는 오래된 서점, 식당, 카페, 빵집과 같은 가게들에 대한 탐방과 취재가 주된 내용이었다. 작가는 몇 대째 가업을 잇는 오래된 가게, 일부러 드러나지 않게 골목에 위치한 가게, 방문객에게 무뚝뚝하고 불친절한 가게들을 찾아다니며 교토 사람들의 습성이나 생각, 정서들을 읽어내고 있다. 


작가의 일본이나 하루키에 대한 애정을 익히 알고 있는 터라, 그가 교토의 장점이라고 꼽는 선대로부터 유지되어 온 가치의 보존, 그 가치에 대한 신뢰와 자부심, 그러나 그것을 무작정 드러내지는 않는 겸손함이라는 항목들에 그리 큰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교토 내 몇 곳의 특색있는 가게와 운영자들을 보여준 이 책을 다 읽은 독자들이 과연 작가가 서문에서 칭찬 일색으로 예찬하고 있는 교토와 교토인의 긍정적 덕목들 - 이를 테면 개인주의자이되 공동체의 조화를 존중하고, 물건을 소중히 하되 물질적인 것에 휘둘리지 않고, 차분하지만 단호하고, 예민하고 섬세하지만 자기만의 색을 지키고, 성실히 노력하지만 결코 무리하지 않고, 욕망보다는 절제를 겉치레보다는 본질을 선택하는 삶 - 에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서문에서의 이러한 완벽과도 같은 예찬은 작가가 그리고 있는 교토의 분위기, 본문의 어조와 내용, 이 책의 전체적인 느낌을 고려했을 때 그리 잘 어울리지만은 않는 과장은 아니었을까.

어떤 사람들에겐 가게를 연 목적이 돈을 되도록 많이 버는 것이 아니다. 가게의 몸집을 크게 키우는 것도 아니다. 많은 손님들이 들이닥치면 오히려 곤란하다. 호리베 씨는 사람이 많이 몰리다 보면 주인이 원치 않는 유형의 사람들도 와버리고 일도 번잡해져, 자신이 바라던 서점의 모습을 잃을까 봐 우려했다. 그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와서 화제의 베스트셀러나 신간을 사가는 그런 서점을 차릴 생각이 애초에 없었다. 지나다 우연히 들르는 손님보다 이 서점의 존재를 사전에 알고 일부러 찾아와주는 손님을 편애하기로 했다. 그런 손님들이 이곳에서 호리베 씨의 엄선된 책 큐레이션을 통해 자신에게 딱 맞는 책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랐다. - 39쪽

역사가 오래된 노포일수록 그 오래됨을 전면에 내세우거나 뽐내지 않는다. 한 염색집은 230년 넘게 영업했음에도 노포임을 드러내는 어떤 수식어도 간판에 내걸지 않는다. 그 호칭은 가게가 스스로 붙이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불러주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노포가 의미하는 것은 ‘신용’이다. 한눈 팔지 않고 전통을 지켜온 가게가 있고 거기에는 일편단심인 손님들이 존재했다. 손님은 선대 때부터 거래해온 가게를 꾸준히 애용하고, 가게 주인도 손님이 대대로 찾아주는 것이 고마워서 질 좋은 제품으로 보답한다. 제대로 된 노포일수록 나만 빛나면 된다, 나만 눈에 띄면 된다 하는 오만한 태도 가 없다. 내가 원조라고 주장하는 법도 없다.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비교하지 않고 자기 가게만의 고유한 색을 지켜나갈 뿐이다. 반짝거리는 새것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낡고 약간 녹슨 듯한 세월의 흔적, 그리고 그기서 비롯하는 향수 어린 감성을 교토는 더 가치 있게 여긴다. - 45, 46쪽

오로지 교토의 총체적인 아름다움을 위해 주민들과 기업들이 기꺼이 협조한다. 나 혼자 튀기보다 주변과 조화를 이루려는 마음, 각자가 조금씩 양보하는 그런 마음들이 모여,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변함없이 유지해나간다. - 97쪽

‘내 형편에 맞지 않는 것은 사지 않는다’가 교토인의 자연스러운 감각이다. 그들은 허세를 경계한다. 자신의 경제적 상황에 걸맞지 않게 돈을 펑펑 쓰거나 고가의 물건을 몸에 걸치고 다니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 172쪽

한편, 교토 사람들은 ‘교토’라는 단어 자체에 자랑할 만한 브랜드 가치가 있음을 내심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역으로 ‘교토’라는 단어를 전면에 내세우는 가게를 신뢰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가게 간판이나 노렌에 교토를 상징하는 ‘京’이 새겨져 있다면 그것은 자기 본연의 실력 대신 ‘교토’라는 상징적인 브랜드에 의지하는 ‘가짜’로 간주한다. ‘교토 요리’라고 간판에 굳이 써 붙이는 식당도 그 행위 자체로 이미 ‘요리 솜씨에 자신 엇음’을 드러낸다고 본다. - 173쪽

교토 사람들에게는 돈보다도 가치관이나 살아가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그들은 자극적이고 화려한 생활보다는 심플하고 온화한 삶의 방식을 지지한다. 교토에서는 수억 연봉도, 고급 외제차도, 명품 브랜드도 그다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교토라는 환경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근사하기에 나답게 살아가면 그것으로 족하다. 좋아하는 일을 원하는 대로 하면서 살아가기를 바라고, 인생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나에게 깊은 충만감을 줄 수 있는지, 반면 무엇이 필요 없고 의미 없는지를 자연스럽게 깨달아간다. 그것이 ‘진짜’의 인생이니까.
‘이 삶의 방식이야말로 나한테 맞는 방식’임을 아는 것. 무리하거나 타산적이 되거나 폼 잡거나 하는 것을 멈추고 본연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 진정한 호사란 내가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 그 삶의 방식을 정할 자유일 것이다. - 1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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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오라 2017-10-11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엇보다도 여행지에서 있을 법한 우연과 과장이 전혀 없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진심이신가요? 첫10페이지까지만 읽어도 그게 느껴지는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