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통해 생명을 탄생시키는 작업에 불의 신의 생기가 필요했다. 창작에는 영감이 필요하다. 그런데 영감의 시간은 보르헤스의 이 소설에 의지해서 유추하자면, 광범위하게 유포된 상식적인 인식과는 달리 처음이 아니라 나중이다. 보르헤스의 이 소설은 초월자인 신의, 외부로부터의 도움이 창작자의 부단하고 필사적인 노력과 시도 다음에 왔다고 말한다. 작품을시작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하게 하는 것이 영감이라는 뜻이 아닌가. 영감은 창작의 실마리가 아니라 매듭이다. 고민하고 애쓰며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창작자의 작업실로 찾아와 한 세계를 완성하게 하는 것이 영감이다. 용 그림의 눈동자는 마지막에 찍힌다. 신은 흙으로 만들어진 형상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그 역은 아니다. 창작자의 고민과 수고의 산물인 흙의 형상이 있어야 신은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 영감에 의지해서 자동적으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는 작가의 지난한 수고의 과정 속으로 영감이, 은총처럼 임한다. - P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