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거짓말 (양장)
김려령 지음 / 창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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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에 대한 신뢰감으로, 예전부터 한번 읽어보고 싶었던 같은 작가의 소설이었기에 책을 집자마자 단숨에 읽었다. 


차례가 없거나, 있더라도 1부, 2부 정도로 구분하는 다른 소설에 비하여 이 소설은 각 캐릭터들의 관점과 그에 호응되는 비유적인 소제목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 특징적이다. 예를 들어, '우박 섞인 비'라는 제목은 천지의 죽음을 무심히 대하는 수경을 보며 "우박 섞인 거친 비로 무덤에 상처를 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 선생님의 시선을, '키 큰 피에로'는 그동안 천지가 버팀목처럼 받쳐주었기에 그나마 키 큰 피에로처럼 보였던 화연이 천지의 부재로 인해 바닥으로 뚝 떨어져 주변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아픈 영혼'은 천지가 스스로를 투명 인간, 주변인들에게 보이지 않는 존재로 여겨 삶을 버리려는 다짐을, '다섯 개의 봉인 실'은 천지가 세상을 등지면서 자신을 포함한 다섯 사람에게 남긴 마지막 메세지를 각각 지칭하고 있다.


누군가를 안다는 것, 이해한다는 것. 이것은 얼마나 쉽게 남용되고 있는 생각이며 태도였던가. 과연 우리는 타인을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아니, '안다'는 것이 정말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천지의 죽음 이후에 드러나는 여러 배경들을 통하여 '관계'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보게 된다. 천지의 죽음이라는 결과에 대하여 가장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화연을 비난하는 것은 쉬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죽음이 비단 하나의 원인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누구 하나만을 죄인으로 만들어 버리는 손쉬운 비난은 단지 자기 스스로의 부담을 덜어내기 위한 회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죄인이다'는 식의 참회가 바람직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실제로는 그만큼 알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으며, 안다고 생각한 이면에 간과되어 있는 생각이나 무관심이 상대방에게는 극심한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한번 더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살이라는 결과와 이에 연결되어 있던 관계들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는 과정이 흥미롭다. 줄곧 우울한 전개가 될 법한 상황임에도 각 캐릭터들의 생각과 행동, 그리고 그들 사이의 생생한 대화(특히, 엄마와 만지)는 슬픔과 절망에 도달한 남겨진 자들의 현실적 삶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며? 근데, 엄마는 안 그런 거 같아. 그날 다 흘려보낸 것 같아."
"가슴에 묻어? 못 묻어. 콘크리트를 콸콸 쏟아붓고, 그 위에 철물을 부어 굳혀도 안 묻혀. 묻어도, 묻어도, 바락바락 기어 나오는 게 자식이야. 미안해서 못 묻고, 불쌍해서 못 묻고, 원통해서 못 묻어." - 63쪽

"지쳤지 나도. 사람 안 변하더라.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원래’라는 말이야. 걔가 원래 그런다. 원래 그러는 거 모르고 결혼했냐? 환장할 뻔했다. 뭘 해도, 원래라는 말 앞에서 다 무너지는 거야." - 166쪽

진짜를 알고 있는 자의 조롱, 눈앞의 이득과 상대를 비웃으면서 얻는 비열한 쾌감을 위해 남의 아픈 진짜를 이용하는 인간들. 묻어 두고 싶은 자신의 진짜를 타인의 진짜로 덮어 놓고 슬쩍 빠지는 인간들. 엄마는 진짜든 가짜든, 그 속에 가려진 진실을 봐야 한다고 충고했다.
"진짜 가짜가 존재하기까지의 진실을 봐. 눈에 확 보이는 진짜 가짜, 그거 완전 생날거야. 잘못 손대면 탈 난다. 진짜가 진실, 가짜가 거짓, 그러면 세상 살기는 참 편할 거야." - 222, 223쪽

"사과하실 거면 하지 마세요. 말로 하는 사과는요, 용서가 가능할 때 하는 겁니다. 받을 수 없은 사과를 받으면 억장에 꽂힙니다. 다군다나 상대가 사과받을 생각이 전혀 없는데 일방적으로 하는 사과, 그거 저 숨을 구멍 슬쩍 파 놓고 장난치는 거에요. 나는 사과했어, 그여자가 안 받았지. 너무 비열하지 않나요?" - 239쪽

"앞으로는 사람 가지고 놀지 마. 네가 양손에 아무리 근사한 떡을 쥐고 있어도, 그 떡에 관심 없는 사람한테는 너 별거 아냐. 별거 아닌 떡 쥐고 우쭐해하지 마. 웃기니까." - 251쪽

기억이라는 것은 잊으려 할수록 악착같이 제 모습을 드러내는 녀석이니, 잊을 수도 없습니다. 이제는 그 고약한 기억에 슬쩍 웃기도 합니다. 나를 지치고 쓰러지게 하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걱정하고 바라봐 주는 누군가도 있다는 걸 깨달은 날이기도 하니까요. - 작가의 말(258쪽)

어른이 되어 보니, 세상은 생각했던 것처럼 화려하고 근사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미리 세상을 버렸다면 보지 못했을, 느끼지 못했을, 소소한 기쁨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거면 됐습니다. 애초에 나는 큰 것을 바란 게 아니니까요. - 작가의 말(2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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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8-19 16: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관심이 싫은 사람은 타인의 관심을 얻으려고 종종 자해를 일으키거나 타인에게 폭력을 가할 때가 있어요.
 
20대, 나만의 무대를 세워라 - 초라한 들러리에서 연봉 10억 골드미스가 된 유수연의 성공 비법
유수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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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라"라는 투의 제목을 싫어한다. 원래가 명령조의 말을 싫어하기도 하지만, 이런 제목을 가진 책의 특징은 '~해라, 그러면 성공한다'와 같이 원인과 결과를 너무 단순화하거나, (자신을 다른 이들의 워너비쯤으로 여기고) '~해라, 그려면 나처럼 될 수 있다'며 자신의 성공스토리를 과대하게 포장한 메세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제목이 싫다면서 굳이 이 책을 읽은 이유는 도대체 20대들이 왜 이 사람의 독설에 열광하는지 알고 싶어서였다. 정신상태가 안일하다며 매섭게 몰아치고, 인생을 독하게 살라고 주문하는 말에 왜 그렇게 많은 20대들이 빠져드는 것일까, 궁금했다(그런데 정작 '독설'이라는 제목의 책이 따로 있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나 스스로에 대한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내가 도저히 20대들의 시선으로 이런 책들을 읽어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4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각 파트마다 '시작', '도전', '열정', '비전'과 같이 일반화된 자기계발서의 용어나 수준을 벗어나지 않은 정형화된 형식을 취하고 있어 다른 계발서들과 특별한 차별성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스스로 초라하다고 했던 20대 무명에서 스타강사가 되기까지의 사례를 사이사이에 포함시키고, 일반화된 자기계발 지침들을 적절히 자신의 목소리로 변환했다는 점이 특징이기는 하다. 예를 들면, '블루오션 직업을 찾아라', '기회와 행운은 움직이는 자의 것', '글로벌 시대, 해외 인턴에 도전하라', '재능보다 노력이다', '미치려면 제대로 미쳐라', '선택과 집중! 나를 완성하는 열쇠', '나만의 경쟁력을 개발하라'는 소제목들은 이미 보편하되고 흔해 빠진 이야기들이지만, 성공한 스타강사이자 독설가 유수연이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뭔가 다른 내용일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만든다. 


정작 이 책을 쓴 저자가 아니라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해서 책을 폈다고는 했지만, 카피에 뭉뚱거려진 '연봉 10억 골드미스'라는 저자의 상황은 누구라도 한번쯤은 호기심을 가질 법 한 경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해서 삶이나 성공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나 행동을 따르고 싶다는 생각은 읽는 내내 전혀 들지 않았다. 별로 가진 것도 없는 불리한 조건과 배경을 딛고 금전적인 부(富)를 얻은 것은 분명 대단한 일이다. 그러나 일부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보이는 오류를, 저자 또한 그대로 보이고 있는데, 이는 성공이 오로지 자신만의 노력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러한 자신의 경험이 모든 이들의 성공을 위한 공통적이고 유일한 분모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또한 자신과 같은 방식이 노력이 아닌 것에는 매우 배타적인 태도를 드러낸다. 


"내가 그런 그들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이유는 오직 하나다. 나는 내 힘으로 올라섰다는 것이다. 그들이 1명씩 나와 맞짱을 뜨면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다. 난 늦더라도 그렇게 1명씩 제쳐서 조금씩, 그리고 이제 상당히 많이 이 사회를 밟고 올라가오 있다. 비켜라, 거치적거린다. 뭐, 이런 것쯤이야!" 


또한 자신은 이미 성공의 맛을 보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대열에 올라섰음에도 여전히 20대들과 자신을 한 편으로 묶고 기성세대들을 비판하는 오류를 보이기도 한다. 


"그래, 우리가 한국 영어 교육을 망친다! 그런데 그거 알아? 힘없고 돈 없고 빽 없고 학벌 없는 우리는 취업부터 해야겠다. 그런데 취업하려니 토익 성적 가져 오란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쓰레기' 같은 강의라도 들어서 취업해야겠다. 외국 나가서 돈으로 영어를 발라 올 수 없어서! (...) 학벌과 토익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는 이 사회에서 한번 살아보겠다고 얼마나 발버둥 치는지 당신들이 알긴 알아?"


그러나 저자는 지금 스스로 비판하고 있는 바로 그 시스템으로 인하여 덕을 본 사람이다. 유학을 다녀오지 않았다면 강사를 할 수 있었을까? 토익 점수가 모든 20대에게 요구되는 사회가 아니었다면 저자의 성공은 가능했을까? 물론 저자가 기존의 시스템을 이용한 것이 비난받을 일은 절대 아니다. 그런데 반대로 그 혜택을 받아온 저자가 기존 시스템을 비판하는 것은 얘기가 좀 다를 수 있다. 그렇다면 사회 시스템을 경영학적 마인드로 제대로 간파하고 피나는 노력 끝에 성공한 지금 시점에서, 과연 저자는 기존에 자신이 밟아왔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회의 부조리한 시스템을 바꿀 의향이 있는 걸까? 아쉽게도 이런 생각들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자신은 독하게 마음먹고 실천하여 성공했다고 하면서도, 정작 스스로를 '이 사회를 바꿀 힘이 없'는 존재로 낮추고 있다. 그러면서 기성세대가 사회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니 약자인 20대와 자신은 강의실에서 '썩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비판은 실컷해놓고나서 보여주는 약자코스프레와 '이렇게라도 공부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무책임은 적잖이 당황스럽다. 


"이 사회가 그들의 진정한 능력을 보려 하지 않고 토익 점수와 학벌과 학점을 요구할 때 우리는 아직 이 사회를 바꿀 힘이 없어 저는 이 젊은 친구들과 함께 돈 5,000원에 9시간 동안 강의실에 틀어박혀 보냅니다. 그런데 방송은 이 젊은이들을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비판? 대안 없는 비판? 왜곡?

우리 젊은이들은 이번 여름 무더위에도 푹푹 찌는 강의실에서 썩어야 합니다. 부모님들은 자식들 뒷바라지를 하느라 허리가 휘게 일해야 하고, 강사인 저는 목이 나가도록 떠들어야 합니다. 힘없는 우리 젊은이들을..."


재미있는 것은 저자가 '우리'의 범위에 묶는 자신과 20대는, 그의 표현에 의하면 이미 이질적인 대상이라는 점이다. 그런 20대들에게 한다는 말이 헝그리 정신, 새마을운동 정신이라고? 이쯤되면 충고의 수준은 거의 노년들의 입에서 나오는 뻔한 패턴, 즉 '꼰대'수준과 다를 바 없다. 


웰빙이라는 것에는 기존의 경쟁적인 구조에서 벗어나 무엇이 진정한 성공이고 행복인지 살펴볼 수 있는 다른 관점의 시선이 포함되어 있기도 한데, 이 웰빙에 대한 저자의 이해수준은 단지 풍족한 이들이 즐기고 누리는 라이프 스타일에만 국한되어 있다. 이는 저자가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스스로의 경험을 너무 과도하게 긍정화하기 때문에 드러나는 생각이다.  


"웰빙의 유혹은 이미 20대 젊은이들의 가슴 깊은 곳까지 파고든 상태다. 사회가 20대들에게 면죄부와 자기 합리화를 주는 것이다. 성공을 꿈꾸는 20대? 야망을 좇는 20대? 패기의 20대? 그런 20대가 과연 있기는 한 것인지 의문이 생길 정도로 요즘 20대는 웰빙에 젖어 있다. 나는 그렇게 웰빙을 좇는 20대가 싫다. 그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웰빙이 아닌 새마을운동 정신이다."


어느 정도 노력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고, 성공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노력이 부족해서였다고 둘러댈 수 있으니, '노력해라'라는 말은 어찌보면 가장 쉽고 편한, 그렇지만 무책임한 조언이다. 


책을 다 읽고나서 저자가 과연 젊은이들의 멘토를 자처할 수 있을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스타강사로 성공한 저자의 이후 행보는 과연 무엇일지도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30대인 저자가 조금 더 나이든 기성세대가 되면 20대를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지, 조금이라도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영향력이 주어진다면 저자는 과연 무엇을 할 것인지. 저자가 호주에 어학연수를 가서 독하게 영어공부를 하고, 영국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고, 그러한 경험들을 접목하여 유명한 토익강사가 되었다는 성공 스토리는, 저자와 같이 토익강사로 성공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모를까, 모든 영역에 당연하게 적용될 수는 없는 단편적 사례일뿐이다. 개인의 성공스토리를 궁금해하는 것과 그와 같은 방식을 따르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우리는 흔히 그 사람이 가진 현재의 지위나 부(富)의 상태만을 보고 그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바람을 갖는 오류를 범하는데, 그러기 전에 상황이 바뀌면 내가 과연 그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냐는 질문을 스스로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스스로에게 맞지 않는 길이라는 걸 알면서도 따라가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으니까. 


가장 만족할 만한 점은 내가 즐기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번다는 것이다. 난 Nobody로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난 나를 통해 지식이 전달되고 있을 때, 나를 통해 같이 나아가는 사람들이 있을 때 더 자극을 받는다. 강의실에 빼곡하게 들어찬 수강생들의 시선이 모두 나에게 쏠려 있는 것을 보면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함께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나의 모든 세포들이 살아 숨 쉬는 것이 느껴진다. - 32쪽

치열하게 살라고 하면 사람들은 머릿속으로만 치열하다. 각종 고민과 답 없는 질문들로 돌다리만 두드리고 있다. 20대의 치열함은 머리가 아니라 몸에서 나와야 한다. 몸이 고달프지 않으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그런데 20대의 대부분은 몸이 아닌 머릿속이 치열하다. 그것도 하나 마나 한 쓸데없는 걱정을 하느라 가뜩이나 복잡한 머릿속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내가 20대일 때는 너무 가진 것이 없어서 고민할 것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20대는 가진 것이 너무 많아서 잃을까봐 고민인가?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해 미리 고민하지 마라. 스스로가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존재가 되기 전에 하는 고민은 나를 비롯한 모두를 더 초라하게 할 뿐이다. 결국 그것이 우리의 발목윽 잡아 불확실한 미래를 핑계로 눌러 앉게 만든다. - 44쪽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친구들이 제일 한심하다. 일단 움직여라. 사진을 배운다면 사진 아르바이트도 뛰고, 경력도 쌓고, 동호회도 나가고, 공모전에도 도전해라. 그저 방 안에서 인터넷만 뒤지고 있지 마라. 그리고 내가 선택하지 않은 길을 기웃거리지 마라. 내가 가지 못한 길에는 항상 미련이 남는다. 그 미련에 흔들리면 결국 어떤 길도 내 것이 될 수 없다. - 55쪽

하지만 운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결코 찾아오지 않는다. 그저 내가 운이 좋아서 스타 강사가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해줄 말은 한마디 뿐이다.
"Luck sometimes visits a fool, but it never sits down with him.(행운은 부족한 사람에게 올 수는 있어도 그 사람에게 오래 머무르지는 않는다.)"
나에게 운이 따랐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만큼 쉬지 않고 부지런히 시장을 분석하고 몸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낯선 외국으로 떠나는 것이 두려웠지만 주저하지 않고 떠났고, 호주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강사로 제법 입지를 굳혔음에도 애써 다진 기반을 떨치고 경영학 석사과정을 밟기 위해 또 다시 영국으로 날아갔다.
난 ‘용기란 두려운 것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두렵지만 밀고 나가는 것’이라는 말을 항상 새기고 산다. - 96쪽

사람들은 종종 수단과 목표를 혼동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영어는 수단이고 의사소통의 기술일 뿐이다. 목표를 향해 동원하는 수단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그 수단들을 가장 경쟁력 있게 써먹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 사회가 수단 중의 하나인 영어에만 집착하고 그것을 어떻게 써먹어야 하는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만약 구체적으로 영어를 잘해야 하는 현실적인 이유와 비전을 제시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실력을 요구한다면 공부하는 입장에서도 좀 더 확실하게 영어를 공부할 수 있을 것이다. - 104, 105쪽

준비를 해서, 때가 되어서는 움직일 수 없다. 준비된 자에게는 지금이 바로 그때다. 준비 없이 일단 몸으로 부딪치며 자신의 길을 열어가는 사람에게도 지금이 시작할 때다. 고민하고 준비하며 때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항상 여기에 남아 나머지들의 자리를 지켜둔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좋은 때는 바로 지금, 오늘이다. - 137쪽

나에게 공부는 생존이었다. 특별한 공부법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실망했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열심히 미쳐라’라는 것이 전부다. 어떻게 미치느냐, 얼마나 미쳐야 하는가는 각자의 몫이다. 각자의 앞에 어떤 변수가 놓여 있는지도 모르는데, 그 사람이 변수를 풀어내는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는데 가타부타 조언을 하는 것은 무의미할 뿐이다. - 148쪽

나는 어느 한 순간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대수롭지 않은 순간순간들이 모여 나를 완성한다. 우리 모두는 각자가 만들어가야 할 작품이다. 시간을 더 아껴서 쪼개 쓰고, 최선을 다한 사람이 더 훌륭한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 156쪽

‘재주 많은 사람이 굶어 죽는다’는 옛말이 있다. 얕은 재주로 어설프게 인정받다가 이도 저도 남지 않고 결국 모든 것을 놔야 하는 사람들, 어려서는 통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분야에서도 전문성이 없으니 밀려나고 결국 과거의 화려함을 입에 달고 사는 초라한 사람들, "내가 예전에는 말이지, 나도 그거 좀 아는데..." 어설프게 내 것이 아닌 것을 미리 즐기다간 바로 추월당한다.
뭐든 잘한다는 말은 거꾸로 생각하면 잘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것과 같다. 물론 어떤 일이든 소박하게 중간 이상만 할 줄 알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려면 가장 중심이 되는 일 하나에만 집중해야 한다. 나머지 어설픈 재능들을 포기할 수 있는 것도 자기 관리 능력이다. - 160, 1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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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6-08-19 17: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기계발서를 읽다 보면 이러한 자화자찬에 금세 피곤함이 오는 것 같습니다.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붉은눈님

붉은눈 2016-08-19 16:07   좋아요 1 | URL
어차피 좋은 시선으로 읽지도 못할 책을 굳이 골라 비난만 늘어놓았는데, 좋은 리뷰라고 해주시니 부끄럽습니다. 어쩌면 이 책을 찾는 이들은 배경이나 계층적 괴리감 없이도 흠모할 수 있는 인물을 찾아, 그가 전해주는 이런 단순한 메세지를 통하여 성공으로 향하는 구름다리를 꿈꾸는 것은 아닐까도 생각해봤습니다.
 
안도현 잡문
안도현 지음 / 이야기가있는집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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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시인이 2013년 "박대통령 재임 중에 시(詩)를 안 쓰겠다"며 절필 선언을 했던 것을 기억한다. 무엇이 시인으로 하여금 시를 쓰지 않겠다는 마음이 들게 하였을까. 박근혜 (당시)후보가 안중근 의사의 유묵을 소장했다고 한 발언에 대하여 비방혐의로 재판 중이었던 그에게 국민참여재판 배심원들은 무죄를 선고하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를 뒤집어 '일부 유죄(허위사실에 대해서는 무죄, 비방에 대해서는 유죄)'를 선고했던 사건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당시 뉴스에 등장한 그의 절필선언에 대해서 이를 바라보는 태도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독재시절도 꿋꿋히 견디며 시를 썼던 시인이 당분간 펜을 꺾는다는 현실에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다수였으나, 혹자는 그의 태도를 재판부에 대한 반감이나 단순한 투정으로 치부해버리기도 하였다. 그의 절필선언과 관련된 사건들은 다분히 정치적이었지만, 그가 시를 쓰지 않겠다는 행위를 단순히 정치적 부당함에 호소하기 위한 투정으로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이것은 더러워서 당분간 회사에 나가지 않겠다거나, 화가 나서 더이상 누군가를 만나지 않겠다는 수준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시인이 시을 쓰지 않는 것은 그동안 쌓아왔던 시인으로서의 자리를 스스로 박탈하고, 그의 예민한 감수성을 외면한 채 언어로서의 시를 일정기간 감옥에 가두어버리겠다는 고통스러운 결단이었을테니 말이다.

      

시를 쓰지 않겠다던 그가 '잡문'이라는 형식을 빌려 세상과 소통하고자 한 변(辨)은 이러하다. "일찍이 중국의 루쉰은 잡문이라는 형식을 무기 삼아 당대의 현실을 타개해보려고 했다. 그것은 잡문스러운 문장으로 세상의 부조리에 맞서겠다는 전략적 선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책에 그런 호기 넘치는 기획 같은 것은 없다. 내 이마 위를 스쳐간 잡념들과 하릴 없는 중얼거림이 여기 들어 있을 것이다. 어떻게든 말을 걸어보고 싶은 욕망이 문장에 스며 있기도 할 것이다. 시도 아니고 제대로 된 산문도 아닌, 그러나 시와 산문의 마음 사이에서 방황하고 긴장한 흔적들을 모아 감히 <잡문>이라는 문패를 내다건다." 즉, 그는 시가 아닌 다른 형식으로 어떻게든 말을 걸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를 시로 표현하는 것까지는 감당할 수 없었기에 다른 형식을 빌려 타들어가는 속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의 책 <잡문>은 제목부터가 시가 아님을 표방하고 있다. 비록 '잡문'이라고는 하나, 형식적 모호함이도 불구하고 시인의 입과 손끝에서 빚어진 언어들은 마치 몇 구절의 짧은 시처럼 내게 전해졌다. "시인에 의해 폐기된 말도 넓은 의미에서는 시어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고 그가 밝혔듯이, 그가 트위터에 써 놓은 글 244개를 추려 모은 이 책 속에 나타나는 짧고 단순한 문장과 가끔씩 저도 모르게 드러나는 운율, 그리고 새, 매미, 꽃, 바람과 같은 다양한 소재들에 대한 감각적 시선은 마치 일본의 하이쿠를 연상시킨다. 화려한 수식으로 말을 꾸미거나 구구절절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 까닭에 문장을 통하여 바로 드러나지 않는 숨은 뜻과 배경은 의도치 않은 더 깊고 풍부한 느낌을 전달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단숨에 읽다가도 한 페이지에 인쇄되어 있는 한 두줄의 글을 한참 바라보기도 한다. 어느새 잡문은 시가 되고, 시는 시인의 목소리가 되고, 그 목소리는 내 머리와 가슴을 울려대기 시작한다.

    

너는 꽃 피고 새가 울어서 봄이라지만 나는 이유 없이 아프고 가려워서 봄이다. - 14쪽

낙엽을 보며 배우는 것 한 가지. 일생 동안 나는 어떻게 물들어가야 하는 것. 떠날 때 보면 안다. - 17쪽

절벽이 가로막아도 절망하지 않는 강물처럼, 바위가 눌러도 아파하지 않는 모래알처럼, 장대비 몰아쳐도 젖지 않는 새소리처럼. - 28쪽

매미는 한사코 울고, 가까스로 울고, 참았다가 울고, 참지 못해서 울고, 울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운다. 어떤 매미는 여름여름 울고, 어떤 매미는 씨벌씨벌 울고, 어떤 매미는 짜리릿짜리릿 우는데, 내 귀는 매미 이름을 구별도 못하고 그냥 듣는다. - 30쪽

꽃을 자주 들여다본다는 것은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이 짧기 때문인데 어쩌자고 나는 꽃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나. - 39쪽

응석을 부리고 싶을 정도로 햇볕이 좋은 날이었다. 이 햇볕을 나 혼자만 이마에 받는 게 미안한 날이었다. 하루도 미안한 마음 없이는 넘어갈 수 없는 내 조국의 맑은 하늘이 서러웠다. - 50쪽

가까이에서 산비둘기 운다. 서럽게 울다가 한참 그쳤다가 또 운다. 무슨 생각인가 하다가 다시 운다. 슬픔이 넘쳐 목멘 듯 너무나 간절한 듯 쉬었다가 운다. 울지 않고는 배기지 않을 수 없다는 듯 운다. 울지도 못하는 것들에게 들으라는 듯 자꾸 운다. - 54쪽

바다가 엎드린 채 밤을 뒤적이고 있다. - 55쪽

나는 거대하고 높고 빛나는 것들보다는 작고 나지막하고 안쓰러운 것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햇빛이 미끄러져 내리는 나뭇잎의 앞면보다는 뒷면의 흐릿한 그늘을 좋아하고 남들이 우러러보고 따르는 사람보다는 나 혼자 가만히 가까이하고 싶은 사람을 더 사랑한다. - 53쪽

시를 쓴다는 것은 말이 품고 있는 원초적인 에너지를 체득해서 시어라는 방식으로 채택하거나 폐기하는 걸 말한다. 시어는 시인에 의해 마지막으로 선택된 말의 집합인데, 시인에 의해 폐기된 말도 넓은 의미에서는 시어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 69쪽

이 못난 세상을 울음으로 들이받지 않으면 여름을 건너갈 수 없어 매미는 운다. - 98쪽

아유슈비츠의 바퀴벌레는 그곳이 아우슈비츠인 줄 모른다. - 130쪽

분명히 어두운데 왜 어두운지 모르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바로 어둠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분명히 과거로 회귀하고 있는데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바로 과거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 136쪽

미친 시간이 자신을 통과하고 있다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는 자가 바로 미친 자다. - 159쪽

사람이 다른 사람의 삶에 개입할 경우, 가장 아름다운 것을 연애라고 하고, 가장 더러운 것을 폭력이라고 한다. - 171쪽

햇볕이 한 장 한 장 쌓인다. 이걸 언제 다 정리해서 책장에 꽂지? - 2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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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9 21: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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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목소리가 들려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김영하의 소설은 <퀴즈쇼>와 <살인자의 기억법> 밖에 읽지 않았다. 얼마전 그의 산문 <보다>를 다시 한번 읽으면서 문득 그의 다른 소설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예전부터 익히 들어 익숙한 제목의 책부터 구해 읽었다. 


처음에는 소설 속 화자인 동규가 '선택적 함구증'이라는 증상으로 말을 하지 못하게 되고, 다른 이들은 동규와 원활한 소통을 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친구인 제이만은 동규의 생각이나 감정을 알아듣고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상황을 '너의 목소리가 들려'라는 제목과 연결시키며 읽었다. 유년시절 두 소년의 깊고 유일한 관계를 일컫는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동규가 제이와의 소통이 가능하다고 느낀 이후, 얼마 가지 않아 그는 제이가 자신의 생각을 매번 제대로 읽어내는 것은 아님을 알게 된다. 그러나 이런 불통 또는 오해의 상황에서 동규는 자신의 생각을 정확히 전달하려는 시도를 접은 채, 제이가 예측한 것을 자신의 생각이라고 여기기 시작한다. 아이러니 한 것은 동규에게서 선택적 함구증이 사라지고 비로소 언어를 통한 소통이 가능하게 되었는데, 둘 사이의 소통은 말을 하지 못할 때보다 원활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였던 친구는 점차 이질적인 둘로 분리된다. 동규의 이사로 연결의 끈이 점점 얇아져만 가는 둘 사이에 예전에 살던 동네가 재개발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두 사람이 공유하고 있던 추억의 실존이 무너져버리게 된 것이다. 자신을 주워기른 엄마에게 버림받은 채로 동네를 떠나지 않고 있는 제이를 방문하는 동규는 두 개의 거울을 마주놓은 채 그곳을 지나가는 악마를 잡겠다는 제이의 낯선 행동을 보게 된다. 이 황당하고 부질없는 행동은 동규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것 같다. 마침내 몰래 동규를 미행하던 어른들에 의해 제이는 그가 악마를 잡기에 가장 적기라고 생각했던 날에 붙들려가고 만다. 본의 아니게 밀고자가 되어버린 동규는 그렇게 유년시절과 제이로부터 단절되어 버린다.

  

소설의 중반쯤으로 접어 들었을 때에는 제이가 독방에 갇힌 이후 얻게 된 신비한 깨달음 혹은 감각(그는 사육용 개들을 구하기 위하여 개장수들의 자동차 타이어를 찢다가 걸려 보육원 독방에 갇히게 된다)이 바로 사물이 갖는 느낌을 읽을 수 있는 설정이어서, '너의 목소리가 들려'라는 제목은 더이상 동규와의 관계가 아니라 이제부터 펼쳐질 제이의 능력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읽게 되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동규-제이, 사물-제이의 소통관계가 매우 닮아 있다. 동규가 말을 하게 되면서 시들어진 둘의 소통이, 제이의 신비한 감각을 통해 재편성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동규와 제이가 갖고 있던 문제도 동일하게 나타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더욱이 사물은 '말'을 할 수 없지 않은가. 제이는 그 사물의 말을 들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제이가 동규를 잘못 이해했던 것과 동일한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제이는 큐브를 부수어버림으로써 그 안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목란을 빼낸다. 그는 큐브의 목소리를, 진동을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들은 것이 정말 큐브의 목소리였을까.


목란을 매개로 하여 제이를 다시 만나게 된 동규는 뭔가 다른 분위기를 연상시키며 폭주족의 리더가 되어 있는 제이를 흠모하는 한편 질투하기 시작한다. 제이를 좋아하는 목란에 대한 양가적 감정 또한 동규의 이러한 심리를 반영하고 있다. 예전에 하나였던 친구는 이제 점점 닿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동규는 막상 제이의 곁을 떠나지도 못한 채 그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 그러다가 마침내 제이를 저버리게 된다. 삼일절 폭주에서 경찰에 그의 행방을 알리고 만 것이다. 이후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의 신변에 문제가 발생할 것을 알면서도 동규는 제이를 적극적으로 만류하지 못한다. 마침내 대교 위에 설치된 경찰의 바리케이트를 그대로 돌진하다가 제이는 대교 밖으로 사라지고 만다. 제이의 신비함은 그 장소에 있던 많은 이들이 그가 난간 밖으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하늘로 승천한 것을 목격하였다고 믿게 만든다.


소설의 말미에는 화자가 동규에서 작가로 바뀐다. 작가는 우연히 예전에 사귀었던 여자친구를 만나 이 이야기를 듣게 되고,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실제 인터뷰하면서 소설을 구성한 것처럼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 부분이 사실인지 아니면 작가의 허구적 장치인지를 논하는 것은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작가가 이 세 젊은이들의 이야기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첫부분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이 부분은 알라딘에서 미리보기로 볼 수 있다). 


1부가 시작되기에 앞서 작가는 마술사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하늘에서 밧줄이 내려온다. 마술사의 명령에 따라 내려온 밧줄을 타고 올라간 어린 조수의 몸뚱아리가 이리저리 흩어져 땅에 떨어진다. 그것을 양동이에 담은 마술사는 다시 조수를 살려낸다. 이 마술에 제대로 속은 어린 황제는 옆에 있던 내시를 토막내어 다시 살려내라 한다. 참혹한 광경을 참지 못한 마술사는 밧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 그러자 밧줄이 하늘에서 뚝 떨어져버린다. 마술사는 밧줄만 남긴 채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이 짧은 이야기의 말미에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저 구름 위로 올라간 마술사가 어디로 갔을지 궁금했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의 조수를, 마술사가 사라진 뒤 내시의 피로 흥건했을 현장에 홀로 남겨졌을 소년은 어떻게 됐을까를 생각한다." 신비로움이 사라져버린 너무나도 사실적이면서 잔혹한 현실 속에 남겨진 우리는, 그리고 동규는 어떻게 살고 있는 것일까?

내가 선택적 함구증이라는 일종의 불안장애를 겪고 있다는 것을,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 훗날 그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내 고통에 이름이 있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구원을 받은 느낌이었다. 나 말고도 그런 병을 앓는 사람들이 있다는 뜻이니까. - 26쪽

말을 못하는 나와 그런 나를 이해하는 제이 사이에는 다른 아이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특별한 유대가 있었다. 내 마음속에서 굳어가는 말, 입밖으로 뛰쳐나가지 못한 채 종유석처럼 굳어가는 그 무엇을 제이는 즉각 알아차렸다. 제이는 나를 대신해 사람들에게 말해주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염력으로 물체를 움직이는 것과 비슷한 경험이어서, 처음에는 신기했지만 나중에는 아주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다. 제이가 내 모든 심증을 단번에 알아차린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두세 번 안에는 알아맞힐 수 있었다. 가끔 제이가 바보처럼 엉뚱한 예측을 계속하면 내 쪽에서 의지를 접거나 내가 원했던 것을 제이가 원하는 쪽으로 바꿔치워버렸다. 그랬다. 자신을 속인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제이가 알아차려준다는 것의 달콤함에 취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 환상을 깨고 싶지 않았다. 그래, 그거. 나는 고개를 끄덕여 제이가 원하는 것을 그냥 내가 원했던 것인 양 믿어버리곤 했다. 제이는 내 욕망의 수신자가 아니라 통역자였다. - 33, 34쪽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보다 더 나쁜 게 있어요."
"그게 뭐냐?"
"고통을 외면하는 거에요. 고통의 울부짖음을 들어주지 않는 거에요. 세상의 모든 죄악은 거기서 시작돼요."
"고통은 피할 수 없는 거야."
"피할 수는 없지만 노력은 할 수 있죠. 인간이든 동물이든 자기 이익을 위해 불필요한 고통을 줘서는 안 돼요."
"세상일이 네 말대로 간단하다면 좋겠지."
"뭐가 복잡한가요?"
"그렇다면 고통의 경중은 누가 가리지? 네가 가리나? 우리에 갇혀 있는 개들만 고통받는 줄 알아? 개장수들도 먹고사느라 힘들다고. 그 사람들에게도 가족이 있어. 네가 타이어를 펑크냈기 때문에 그 집의 아이들이 하루를 굶어야 할지도 모르잖아?"
"그렇게 따지기 시작하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잖아요?"- 73쪽

"너는 우선 어른이 돼야 한다. 그럼 자연히 알게 돼. 세상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지금 판단하지 못한다면 어른이 돼도 마찬가지일 거에요. 저는 제 판단으로 행동한 거고, 그러니까 아무 후회가 없어요."
"너는 세상에 원한을 품고 있어. 그래서 네 알량한 정의의 이름으로 그걸 심판하고 싶은 거야. 그건 위험해."
제이는 마치 전자제품 사용에 대한 안내를 들은 소비자처럼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위험하죠. 저도 알고 있어요." - 73쪽

"신은 원래 그런 존재야. 신은 비대칭의 사디스트야. 성욕은 무한히 주고 해결은 어렵도록 만들었지. 죽음을 주고 그걸 피해갈 방법은 주지 않았지. 왜 태어났는지 알려주지 않은 채 그냥 살아가게 만들었고." - 134쪽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나무를 베기 전에 나무에게 용서를 구했대. 그들은 나무가 사라진다는 것이 뭘 의미하는지 알았던 거야. 나무에게 용서를 구함으로써 그들은 나무의 부재를 받아들일 수 있게 돼. 평생 보던 나무를 없앤다는 것은 자기 마음의 일부를 잘라버리는 것과 같아. 그들에겐 화폐가 없었어. 사물과 그들은 직접적으로 맺어져 있었어. 돈을 받고 일을 한다는 의식이 너의 참인식을 가로막았고 그 때문에 너는 큐브를 느낄 수 없었을 거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마음의 눈을 열고 주변을 깊이 살펴. 사람들이 하는 뻔한 말을 믿지 마. 그래야 너 자신을 구할 수 있어. 넌 소중하니까." - 138, 139쪽

제이는 바다의 기이함을 단숨에 파악했다. 바다, 그것은 거대한 없음이었다. 제이는 자신이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와 존재하지 않게 될 미래를 떠올렸다. 그 순간 제이가 느낀 감정은 공포에 가까웠다. 시작도 끝도 없는 우주의 시간이 바다라는 형태를 빌려 나타난 것만 같았다. - 160쪽

어린 수컷들은 가슴을 내밀어 용기를 과시하고자 한다. 용기, 그것은 죽음의 가능성을 일소에 부치는 허세에서 온다. 그런데 그들은 아직 허세와 광기를 구별할 나이가 아니었다. 그래서 광기의 제이가 그들 위에 설 수 있었다. - 160, 1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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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자는 멈추지 않는다
전성철 지음 / 아이지엠세계경영연구원(IGMbooks)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저자인 전성철은 지금과 같이 미국로스쿨이나 미국변호사가 유행하기 훨씬 전에 미국에서 변호사가 되고 파트너의 지위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로 알고 있다. 우리 법조계에 이른바 미국변호사의 붐을 일으킨 개척자 정도 될 것 같다. 이 책은 <안녕하십니까 전성철입니다>와 함께 대학교 다닐 때 읽었던 책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책 표지가 다소 낯설어서 내가 읽었던 책이 맞는지 잠시 고민을 했었다. 책을 이리저리 들춰보면서 확인해봤더니 10년이 지나서 다시 개정판이 나온 것이라고 한다. 이 나이에 이제와서 또 이 책을 읽을 이유를 딱히 찾을 수는 없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름 미래에 대한 비장한 다짐을 했던 내 궁상맞은 대학시절의 모습이 떠올라 추억을 되새길겸해서 다시 책을 펴보았다(별 것으로 다 추억을...)

<꿈꾸는 자는 멈추지 않는다>라는 제목의 책은 그의 고난과 역경, 성공에 대한 일종의 회고를 담고 있는데, 책의 구성도 그의 삶의 족적을 시간적 순서대로 따라가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이야기 '너무나 야무진 꿈'에서는 리드&프리스트(Reid&Priest)라는 미국의 로펌에서 4년만에 최단기이자 최초로 파트너가 된 극적인 장면을 묘사하면서 대학생때 그가 '법적인 사고'에 매료되고 그로 인해 로스쿨에 도전하기 시작한 순간을 그려낸다. 두 번째 이야기 '불행으로 위장된 축복'에서는 무작정 미네소타에 자리를 잡고 여러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며 로스쿨 입시에 도전하여 마침내 입학하게 되는 이야기를, 세 번째 이야기 '로스쿨 이방인'에서는 로스쿨 유일의 외국인이자 한국인으로서 어떻게 미국인들 틈에서 인정받으며 성공적으로 학업을 이어 나갔는지를 그려낸다. 네 번째 이야기에서는 성적이 그리 출중하지 않던 그가 어떻게 우수한 미국인 학생들도 취업하기 힘들다는 뉴욕에서 변호사로 활동할 수 있었으며, 좌절을 딛고 자기만의 강점을 어떻게 활용하여 로펌의 파트너로 성공했는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예전에 내가 정말 이런 책을 읽고 미래를 꿈꾸었나?'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아직 내 기억속에는 긍정적으로 기억되어 있는, 스무 살의 내가 이 책을 읽었을 때의 느낌과 지금에 와서 다시 같은 책을 접했을 때의 느낌은 사뭇 달랐다. 그만큼 삶에 대한 생각이나 시선, 내가 체감하는 사회 분위기가 달려졌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성공이라는 것의 결과가 아닌 과정도 살펴볼 수 있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의 말을 빌려 그가 이 책에 언급해 놓은 성공을 향한 지난날의 경험이나 방법은 내 입장에서는 '나답게 사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저자는 가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서서 매우 크게 성공한 사람임이 분명하지만, 지금의 내 관점에서 보면 그 성공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에 대하여 마냥 긍정적인 평가만을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는 한 권의 책이 자신의 운명을 바꾸었다고 말한다. 번역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우연히 읽게 된 <법적인 사고(Legal Reasoning)>라는 책에 매료되어 법적인 사고를 가르쳐주는 미국 로스쿨을 가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굳이 그가 느낀 운명적인 순간을 제3자인 내가 부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한 권의 책이 운명처럼 다가왔고 법적인 사고를 공부하기 위하여 미국 로스쿨을 가야겠다는 쓴 것은 지난날을 너무 감상적으로 회고한 단편적인 도식화는 아닌가 생각한다. 그가 곳곳에 언급해 놓은 "미국에서도 변호사는 인기가 매우 좋은 직업이다. 힘들긴 해도 자유직업이고 사회적 지위와 상당한 수입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1972년 한국은 아직도 가난하고 닫힌 나라였으며 대학 졸업자의 대부분이 취직을 못 하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미국으로 이민을 가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간절한 꿈이었다", "다행히 번역병으로 일하게 되어 영어도 많이 배울 수 있었고, 노력하면 내 시간도 제법 만들 수 있었다", "군에 입대한 지 1년 정도 지난 후 미국의 형님에게 장문의 편지를 썼다. 나의 영주권을 신청해주십사 하는 편지였다"라고 언급한 부분을 보면, 그가 미국변호사를 도전하게 된 계기나 배경에는 법적인 사고 외에도 많은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다소 세속적인 욕망을 생략한 채 법적인 사고에 대한 순수함만을 강조한다는 점은 과거 자신의 선택을 너무 미화하는 것은 아닐까? 

그는 '나답게 사는 것'을 강조한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진중한 고민이 그로 하여금 미국 변호사가 되게끔 이끌었다는 것이다. 그것만이 그가 살아갈 수 있는 방식이라는 굳은 신념을 느끼며 살았던 것 같다. 그러나 그에게 성공은 순수한 '꿈'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전통적 의미의 입신양명과 자아실현이 결합된 것으로 보였다. 서울대 출신의 우수한 인재인 그는 졸업과 동시에 굴지의 피혁회사에 취업을 하였다. 그렇게 1년을 다니다가 미국 회사의 지사에 있는 선배의 제안에 이직을 한다. 더 좋은 보수를 받는 조건임에도 그는 만족하지 못하고 고민 끝에 로스쿨을 준비한다. 여기에는 평범한 샐러리맨으로서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그의 심리가 담겨 있다. "이런 달콤함에 만족할 수 있는가, 나의 미래가 이런 것인가"라는 질문은 그가 매료되었다던 '법적인 사고'라기 보다는 전통적인 '입신양명'의 관념이 더 강하게 작용한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입신양명할 수 있는 것 중에서 자신이 매력을 느끼는 것에 뛰어든 것은 아닐까?

지금의 내 관점에서 그는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면이 많아 보였다. 꿈을 찾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야 뭐라 할 수 없지만, 그가 작고 사소한 일을 끈기 있게 해내는 장면을 나는 찾을 수가 없었다. 단돈 700달러를 들고 미네소타에 도착한 그는 '난킹(남경)'이라는 중국식당에서 버스보이(bus-boy)라 불리는 서빙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그리고 육체적 피로로 3일을 앓다가 아르바이트를 그만 둔다. 생활을 해야 하고 시험준비 할 돈도 필요한 그는 이어서 빵공장에 취직을 한다. 이 일도 얼마 하지 못하고 발전소 야적장 경비를 한다. 8시간 서서 일하는 육체노동보다는 야간 근무가 쉽고 시간활용도 좋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그것도 석 달 "밤을 꼬박 새우는 일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라며 택시 기사를 한다. 그렇게 3주 정도 일을 하다가 접촉사고를 내서 택시 기사도 그만 둔다. 그리고 은행에 취직하고, 저녁때는 와이키키라는 식당 웨이터로 취직하고, 미국인 친구와 창업하기로 하다가 우체국에 취직하고... 이런 식이다. 물론 나 역시도 성실함과 노오력만을 강조하는 꼰대소리를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럼에도 이건 좀 심하다 싶다. 큰 꿈을 위해서 이런 사소한 것들은 언제라도 버릴 수 있는 '도구'에 불과한 것일까? 그렇다면 "택시기사에서 CEO 1만명의 스승이 되기까지 꿈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가슴 벅찬 이야기"라는 카피의 정체는 무엇인가.

더욱 황당한 것은 이 대목이다. "나는 벌어놓은 돈도 물론 없고 도와줄 부모도 안 계셨다. 그러니 결론은 간단했다. 내가 만일 공부할 생각이 있으면 우선 아내가 있어야 했다. 이른바 '마누라 장학금'이 필요한 것이었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며 내 눈을 의심했다. '마누라 장학금'이라고 하셨나? 그러면 자기는 공부하고 마누라는 돈 벌면서 자기 뒷바라지를 하라는 것인가? 70년대 한국의 삶의 방식이 다분히 가부장적이었고 가장의 성공에 모든 가족 구성원들이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노골적인 생각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 자체가 무척이나 불편했다. 이들 부부사이에 일방의 희생에 대한 어떠한 의견의 합치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처럼 남편의 성공을 위해 아내가 희생하는 일이 지금 시점에서도 훈훈한 미담으로 전달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 같다. 이 책은 간행물 윤리위원회가 지정한 '청소년 권장도서'란 말이다.

기억이라는 것, 회고라는 것이 부정적이거나 추접한 것은 감추고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것만 기억하려는 습성임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누군가에게 조언을 하기 위해서는, 더군다나 그것이 자신이 살아온 삶에 빗댄 조언이라고 한다면 더더욱 조심하고 살피고 삼가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름 20대때 좋은 기억으로 읽었던 책을 이제와서 부정하거나, 그의 성공과 업적을 비난하거나, 그의 조언에 대해 비아냥 대려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명색이 개정판이라고 한다면 현 시점의 젊은이들의 상황과 환경에 맞게 재편집했어야 하는 것은 아닐지.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그가 강조했던 이거 한 가지만은 남겨두자. 바로, 나답게 사는 것. 그의 성공 스토리에 매료될 것이 아니라, 나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끊임 없이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렇게 하였을 때에야 비로소 (사회적이 아닌) 개인적 성공의 의미도 달라질 것이다.


덧: '국제변호사'라는 용어는 잘못된 용어임이 그동안 수차례 언급되었다. international 하게 변호할 수 있는 국제변호사란 없다. '미국변호사'로 고쳐야 한다. 여전히 70년대를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사법서사', '행정서사'와 같이 지금 시대에 맞지 않는 용어는 개정판에서 고쳤어야 한다. "~할 군번은 아니다"라는 표현은 좀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대한 지 몇 십년이 지나셨을텐데, 아직도...


그러면서 삶을 사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있다면, 그건 바로 나답게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 생각은 시간이 갈수록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게 되었다. 이는 화려한 성공도 해보고, 참담한 실패도 경험하면서 이런저런 세상의 쓴맛과 단맛을 다 본 황혼의 남자의 마음속에 찾아온 깨달음이다. 마치 새벽에 동이 터오듯이 서서히 조용히 마음속을 확실하게 점령하게 된 그런 믿음 말이다. - 8쪽

마지막 날쯤 될 때 결국 이 모든 질문이 하나의 질문으로 귀착되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결국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하는 것이었다. 그것에 대한 답이 결국 내 마음을 결정지어주었다. 나는 지루한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다. 기다리는 것을 엄청나게 싫어했다. 마찬가지로 나는 편안하고 미래가 뻔한 삶에는 결코 만족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힘들더라도 꿈을 가지고 고생하며 노력하며 도전하며 살아야 행복을 느끼는 스타일이란 생각이 확실히 들었다. 그것이 나 아닌가? 나는 행복보다는 보람을, 평안보다는 도전을 더 가치 있게 여기면서 커오지 않았는가? 결론은 자연스럽게 나왔다. ‘나는 가야 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갈 수밖에 없다. 그것이 내가 사는 법이다.’ - 82쪽

나는 인생을 살면서 이 위장된 축복의 의미를 너무나 여러 번 느꼈다. 요즘도 나는 내가 특별히 게으르지도 않고 나쁜 마음도 없었는데 일이 잘못될 때면 언제나 거기에 위장된 축복이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결코 절망하지 않고 더 열심히 진지하게 나에게 닥친 고난을 감당하고자 노력한다. - 89, 90쪽

지금까지 인생을 살면서 한 가지 확실하게 느낀 것이 있다면, 내가 그런대로 열심히 성실하게 사는데도 어떤 나쁜 일이 생긴다면 그것은 반드시 어떤 뜻이 있고 도리어 무엇인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계기라는 것이다. 도둑질을 한다든지 남을 해친다든지 마약을 한다든지 하는 나쁜 짓을 한 결과로 좋지 않은 일이 생기는 것은 예외로 치자. 그러나 나름대로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생긴 나쁜 일들은 대부분의 경우 미래를 위해 더 좋은 것을 준비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 된다. - 127쪽

나는 로스쿨에 다니면서 체르니 교수의 이 말을 얼마나 여러 번 떠올렸는지 모른다. 정말 지독하게 맞는 말이었다. 로스쿨은 머리를 뜯어고치는 곳이었다. 많은 사람은 로스쿨이 법을 배우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로스쿨에서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 법을 찾는 법을 배울 뿐이다. 로스쿨을 졸업할 즈음에 학생들 중 실제 물권법, 채권법 등 각 분야의 법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대충 골격 정도 밖에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필요하면 법을 찾으면 되기 때문에 법에 대해 모르는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로스쿨은 쉽게 이야기해서 3년 동안 머리를 수술한다고 해도 그리 과언이 아니다. 소프트웨어를 바꿔 끼우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갈망하던 법적인 사고를 하는 방향으로 머리를 수술하는 것이다. 그곳이 로스쿨이다. - 173, 174쪽

나는 이 소크라테스식 교수법에 한 달쯤 노출되고 나서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체르니 교수가 우리의 머리를 ‘뜯어고친다’고 한 말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생존을 위해 머리를 뜯어고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을 분석적, 논리적으로 보기 시작하고 순식간에 닥치는 가혹한 질문에 즉각즉각 두뇌 회전을 극대화하여 순발력 있게 논리적으로 답하는 법을 배워나가는 것이다. 매일매일 3년 동안 이런 식으로 훈련을 받으면 어지간한 사람도 강심장이 되면서 머리도 뜯어고쳐진다. 그러지 못하면 한마디로 살아남지를 못하는 것이다. - 182, 183쪽

그렇다면 ‘변호사 같이 쓴다(write like a lawyer)’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한마디로 한다면 단어 수를 줄인다는 의미, 즉 할 말은 다 하지만 최소한의 단어로 한다는 것이다. 불필요한 단어가 많을수록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고 의미가 애매하기 때문이다. - 204, 205쪽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확실히 느낀 것 중의 하나는 이 세상의 모든 가치 있는 것은 다 엄청난 노력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모든 좋은 것, 화려한 것, 영광스러운 것, 빛나는 것, 그 모든 것의 뒤안에는 엄청난 고통과 눈물과 땀이 있다는 것을 나는 확실히 믿는다. - 218쪽

나는 이 세상에는 절대 공짜가 없다고 생각한다. 얼핏 보면 공짜 같은데 자세히 보면 절대 공짜가 아니다. 나는 인생은 진지하게, 열심히, 대가를 치르며 살아야 제대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 219쪽

나는 내 적성에 맞는 길을 택했다. 내가 어떤 일을 하면서 그토록 희열과 만족을 느낀다면 나는 무조건 그쪽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 때문에 어떤 희생과 대가를 치르게 되더라도, 또 아무리 늦어지더라도 나는 그쪽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나의 삶을 신나게, 경쟁력 있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생의 가장 큰 축복 중의 하나는 자기의 적성에 맞는 직업을 택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성공의 비결이다. 불행히도 너무나 많은 사람이 자기의 적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하며 사는데, 그것은 많은 경우 그것을 알기 위해 진지하게 노력하지 않은 데서 온다. - 2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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