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거짓말 (양장)
김려령 지음 / 창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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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에 대한 신뢰감으로, 예전부터 한번 읽어보고 싶었던 같은 작가의 소설이었기에 책을 집자마자 단숨에 읽었다. 


차례가 없거나, 있더라도 1부, 2부 정도로 구분하는 다른 소설에 비하여 이 소설은 각 캐릭터들의 관점과 그에 호응되는 비유적인 소제목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 특징적이다. 예를 들어, '우박 섞인 비'라는 제목은 천지의 죽음을 무심히 대하는 수경을 보며 "우박 섞인 거친 비로 무덤에 상처를 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 선생님의 시선을, '키 큰 피에로'는 그동안 천지가 버팀목처럼 받쳐주었기에 그나마 키 큰 피에로처럼 보였던 화연이 천지의 부재로 인해 바닥으로 뚝 떨어져 주변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아픈 영혼'은 천지가 스스로를 투명 인간, 주변인들에게 보이지 않는 존재로 여겨 삶을 버리려는 다짐을, '다섯 개의 봉인 실'은 천지가 세상을 등지면서 자신을 포함한 다섯 사람에게 남긴 마지막 메세지를 각각 지칭하고 있다.


누군가를 안다는 것, 이해한다는 것. 이것은 얼마나 쉽게 남용되고 있는 생각이며 태도였던가. 과연 우리는 타인을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아니, '안다'는 것이 정말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천지의 죽음 이후에 드러나는 여러 배경들을 통하여 '관계'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보게 된다. 천지의 죽음이라는 결과에 대하여 가장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화연을 비난하는 것은 쉬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죽음이 비단 하나의 원인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누구 하나만을 죄인으로 만들어 버리는 손쉬운 비난은 단지 자기 스스로의 부담을 덜어내기 위한 회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죄인이다'는 식의 참회가 바람직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실제로는 그만큼 알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으며, 안다고 생각한 이면에 간과되어 있는 생각이나 무관심이 상대방에게는 극심한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한번 더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살이라는 결과와 이에 연결되어 있던 관계들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는 과정이 흥미롭다. 줄곧 우울한 전개가 될 법한 상황임에도 각 캐릭터들의 생각과 행동, 그리고 그들 사이의 생생한 대화(특히, 엄마와 만지)는 슬픔과 절망에 도달한 남겨진 자들의 현실적 삶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며? 근데, 엄마는 안 그런 거 같아. 그날 다 흘려보낸 것 같아."
"가슴에 묻어? 못 묻어. 콘크리트를 콸콸 쏟아붓고, 그 위에 철물을 부어 굳혀도 안 묻혀. 묻어도, 묻어도, 바락바락 기어 나오는 게 자식이야. 미안해서 못 묻고, 불쌍해서 못 묻고, 원통해서 못 묻어." - 63쪽

"지쳤지 나도. 사람 안 변하더라.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원래’라는 말이야. 걔가 원래 그런다. 원래 그러는 거 모르고 결혼했냐? 환장할 뻔했다. 뭘 해도, 원래라는 말 앞에서 다 무너지는 거야." - 166쪽

진짜를 알고 있는 자의 조롱, 눈앞의 이득과 상대를 비웃으면서 얻는 비열한 쾌감을 위해 남의 아픈 진짜를 이용하는 인간들. 묻어 두고 싶은 자신의 진짜를 타인의 진짜로 덮어 놓고 슬쩍 빠지는 인간들. 엄마는 진짜든 가짜든, 그 속에 가려진 진실을 봐야 한다고 충고했다.
"진짜 가짜가 존재하기까지의 진실을 봐. 눈에 확 보이는 진짜 가짜, 그거 완전 생날거야. 잘못 손대면 탈 난다. 진짜가 진실, 가짜가 거짓, 그러면 세상 살기는 참 편할 거야." - 222, 223쪽

"사과하실 거면 하지 마세요. 말로 하는 사과는요, 용서가 가능할 때 하는 겁니다. 받을 수 없은 사과를 받으면 억장에 꽂힙니다. 다군다나 상대가 사과받을 생각이 전혀 없는데 일방적으로 하는 사과, 그거 저 숨을 구멍 슬쩍 파 놓고 장난치는 거에요. 나는 사과했어, 그여자가 안 받았지. 너무 비열하지 않나요?" - 239쪽

"앞으로는 사람 가지고 놀지 마. 네가 양손에 아무리 근사한 떡을 쥐고 있어도, 그 떡에 관심 없는 사람한테는 너 별거 아냐. 별거 아닌 떡 쥐고 우쭐해하지 마. 웃기니까." - 251쪽

기억이라는 것은 잊으려 할수록 악착같이 제 모습을 드러내는 녀석이니, 잊을 수도 없습니다. 이제는 그 고약한 기억에 슬쩍 웃기도 합니다. 나를 지치고 쓰러지게 하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걱정하고 바라봐 주는 누군가도 있다는 걸 깨달은 날이기도 하니까요. - 작가의 말(258쪽)

어른이 되어 보니, 세상은 생각했던 것처럼 화려하고 근사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미리 세상을 버렸다면 보지 못했을, 느끼지 못했을, 소소한 기쁨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거면 됐습니다. 애초에 나는 큰 것을 바란 게 아니니까요. - 작가의 말(2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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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8-19 16: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관심이 싫은 사람은 타인의 관심을 얻으려고 종종 자해를 일으키거나 타인에게 폭력을 가할 때가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