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자는 멈추지 않는다
전성철 지음 / 아이지엠세계경영연구원(IGMbooks)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저자인 전성철은 지금과 같이 미국로스쿨이나 미국변호사가 유행하기 훨씬 전에 미국에서 변호사가 되고 파트너의 지위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로 알고 있다. 우리 법조계에 이른바 미국변호사의 붐을 일으킨 개척자 정도 될 것 같다. 이 책은 <안녕하십니까 전성철입니다>와 함께 대학교 다닐 때 읽었던 책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책 표지가 다소 낯설어서 내가 읽었던 책이 맞는지 잠시 고민을 했었다. 책을 이리저리 들춰보면서 확인해봤더니 10년이 지나서 다시 개정판이 나온 것이라고 한다. 이 나이에 이제와서 또 이 책을 읽을 이유를 딱히 찾을 수는 없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름 미래에 대한 비장한 다짐을 했던 내 궁상맞은 대학시절의 모습이 떠올라 추억을 되새길겸해서 다시 책을 펴보았다(별 것으로 다 추억을...)

<꿈꾸는 자는 멈추지 않는다>라는 제목의 책은 그의 고난과 역경, 성공에 대한 일종의 회고를 담고 있는데, 책의 구성도 그의 삶의 족적을 시간적 순서대로 따라가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이야기 '너무나 야무진 꿈'에서는 리드&프리스트(Reid&Priest)라는 미국의 로펌에서 4년만에 최단기이자 최초로 파트너가 된 극적인 장면을 묘사하면서 대학생때 그가 '법적인 사고'에 매료되고 그로 인해 로스쿨에 도전하기 시작한 순간을 그려낸다. 두 번째 이야기 '불행으로 위장된 축복'에서는 무작정 미네소타에 자리를 잡고 여러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며 로스쿨 입시에 도전하여 마침내 입학하게 되는 이야기를, 세 번째 이야기 '로스쿨 이방인'에서는 로스쿨 유일의 외국인이자 한국인으로서 어떻게 미국인들 틈에서 인정받으며 성공적으로 학업을 이어 나갔는지를 그려낸다. 네 번째 이야기에서는 성적이 그리 출중하지 않던 그가 어떻게 우수한 미국인 학생들도 취업하기 힘들다는 뉴욕에서 변호사로 활동할 수 있었으며, 좌절을 딛고 자기만의 강점을 어떻게 활용하여 로펌의 파트너로 성공했는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예전에 내가 정말 이런 책을 읽고 미래를 꿈꾸었나?'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아직 내 기억속에는 긍정적으로 기억되어 있는, 스무 살의 내가 이 책을 읽었을 때의 느낌과 지금에 와서 다시 같은 책을 접했을 때의 느낌은 사뭇 달랐다. 그만큼 삶에 대한 생각이나 시선, 내가 체감하는 사회 분위기가 달려졌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성공이라는 것의 결과가 아닌 과정도 살펴볼 수 있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의 말을 빌려 그가 이 책에 언급해 놓은 성공을 향한 지난날의 경험이나 방법은 내 입장에서는 '나답게 사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저자는 가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서서 매우 크게 성공한 사람임이 분명하지만, 지금의 내 관점에서 보면 그 성공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에 대하여 마냥 긍정적인 평가만을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는 한 권의 책이 자신의 운명을 바꾸었다고 말한다. 번역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우연히 읽게 된 <법적인 사고(Legal Reasoning)>라는 책에 매료되어 법적인 사고를 가르쳐주는 미국 로스쿨을 가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굳이 그가 느낀 운명적인 순간을 제3자인 내가 부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한 권의 책이 운명처럼 다가왔고 법적인 사고를 공부하기 위하여 미국 로스쿨을 가야겠다는 쓴 것은 지난날을 너무 감상적으로 회고한 단편적인 도식화는 아닌가 생각한다. 그가 곳곳에 언급해 놓은 "미국에서도 변호사는 인기가 매우 좋은 직업이다. 힘들긴 해도 자유직업이고 사회적 지위와 상당한 수입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1972년 한국은 아직도 가난하고 닫힌 나라였으며 대학 졸업자의 대부분이 취직을 못 하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미국으로 이민을 가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간절한 꿈이었다", "다행히 번역병으로 일하게 되어 영어도 많이 배울 수 있었고, 노력하면 내 시간도 제법 만들 수 있었다", "군에 입대한 지 1년 정도 지난 후 미국의 형님에게 장문의 편지를 썼다. 나의 영주권을 신청해주십사 하는 편지였다"라고 언급한 부분을 보면, 그가 미국변호사를 도전하게 된 계기나 배경에는 법적인 사고 외에도 많은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다소 세속적인 욕망을 생략한 채 법적인 사고에 대한 순수함만을 강조한다는 점은 과거 자신의 선택을 너무 미화하는 것은 아닐까? 

그는 '나답게 사는 것'을 강조한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진중한 고민이 그로 하여금 미국 변호사가 되게끔 이끌었다는 것이다. 그것만이 그가 살아갈 수 있는 방식이라는 굳은 신념을 느끼며 살았던 것 같다. 그러나 그에게 성공은 순수한 '꿈'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전통적 의미의 입신양명과 자아실현이 결합된 것으로 보였다. 서울대 출신의 우수한 인재인 그는 졸업과 동시에 굴지의 피혁회사에 취업을 하였다. 그렇게 1년을 다니다가 미국 회사의 지사에 있는 선배의 제안에 이직을 한다. 더 좋은 보수를 받는 조건임에도 그는 만족하지 못하고 고민 끝에 로스쿨을 준비한다. 여기에는 평범한 샐러리맨으로서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그의 심리가 담겨 있다. "이런 달콤함에 만족할 수 있는가, 나의 미래가 이런 것인가"라는 질문은 그가 매료되었다던 '법적인 사고'라기 보다는 전통적인 '입신양명'의 관념이 더 강하게 작용한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입신양명할 수 있는 것 중에서 자신이 매력을 느끼는 것에 뛰어든 것은 아닐까?

지금의 내 관점에서 그는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면이 많아 보였다. 꿈을 찾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야 뭐라 할 수 없지만, 그가 작고 사소한 일을 끈기 있게 해내는 장면을 나는 찾을 수가 없었다. 단돈 700달러를 들고 미네소타에 도착한 그는 '난킹(남경)'이라는 중국식당에서 버스보이(bus-boy)라 불리는 서빙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그리고 육체적 피로로 3일을 앓다가 아르바이트를 그만 둔다. 생활을 해야 하고 시험준비 할 돈도 필요한 그는 이어서 빵공장에 취직을 한다. 이 일도 얼마 하지 못하고 발전소 야적장 경비를 한다. 8시간 서서 일하는 육체노동보다는 야간 근무가 쉽고 시간활용도 좋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그것도 석 달 "밤을 꼬박 새우는 일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라며 택시 기사를 한다. 그렇게 3주 정도 일을 하다가 접촉사고를 내서 택시 기사도 그만 둔다. 그리고 은행에 취직하고, 저녁때는 와이키키라는 식당 웨이터로 취직하고, 미국인 친구와 창업하기로 하다가 우체국에 취직하고... 이런 식이다. 물론 나 역시도 성실함과 노오력만을 강조하는 꼰대소리를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럼에도 이건 좀 심하다 싶다. 큰 꿈을 위해서 이런 사소한 것들은 언제라도 버릴 수 있는 '도구'에 불과한 것일까? 그렇다면 "택시기사에서 CEO 1만명의 스승이 되기까지 꿈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가슴 벅찬 이야기"라는 카피의 정체는 무엇인가.

더욱 황당한 것은 이 대목이다. "나는 벌어놓은 돈도 물론 없고 도와줄 부모도 안 계셨다. 그러니 결론은 간단했다. 내가 만일 공부할 생각이 있으면 우선 아내가 있어야 했다. 이른바 '마누라 장학금'이 필요한 것이었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며 내 눈을 의심했다. '마누라 장학금'이라고 하셨나? 그러면 자기는 공부하고 마누라는 돈 벌면서 자기 뒷바라지를 하라는 것인가? 70년대 한국의 삶의 방식이 다분히 가부장적이었고 가장의 성공에 모든 가족 구성원들이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노골적인 생각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 자체가 무척이나 불편했다. 이들 부부사이에 일방의 희생에 대한 어떠한 의견의 합치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처럼 남편의 성공을 위해 아내가 희생하는 일이 지금 시점에서도 훈훈한 미담으로 전달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 같다. 이 책은 간행물 윤리위원회가 지정한 '청소년 권장도서'란 말이다.

기억이라는 것, 회고라는 것이 부정적이거나 추접한 것은 감추고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것만 기억하려는 습성임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누군가에게 조언을 하기 위해서는, 더군다나 그것이 자신이 살아온 삶에 빗댄 조언이라고 한다면 더더욱 조심하고 살피고 삼가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름 20대때 좋은 기억으로 읽었던 책을 이제와서 부정하거나, 그의 성공과 업적을 비난하거나, 그의 조언에 대해 비아냥 대려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명색이 개정판이라고 한다면 현 시점의 젊은이들의 상황과 환경에 맞게 재편집했어야 하는 것은 아닐지.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그가 강조했던 이거 한 가지만은 남겨두자. 바로, 나답게 사는 것. 그의 성공 스토리에 매료될 것이 아니라, 나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끊임 없이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렇게 하였을 때에야 비로소 (사회적이 아닌) 개인적 성공의 의미도 달라질 것이다.


덧: '국제변호사'라는 용어는 잘못된 용어임이 그동안 수차례 언급되었다. international 하게 변호할 수 있는 국제변호사란 없다. '미국변호사'로 고쳐야 한다. 여전히 70년대를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사법서사', '행정서사'와 같이 지금 시대에 맞지 않는 용어는 개정판에서 고쳤어야 한다. "~할 군번은 아니다"라는 표현은 좀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대한 지 몇 십년이 지나셨을텐데, 아직도...


그러면서 삶을 사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있다면, 그건 바로 나답게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 생각은 시간이 갈수록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게 되었다. 이는 화려한 성공도 해보고, 참담한 실패도 경험하면서 이런저런 세상의 쓴맛과 단맛을 다 본 황혼의 남자의 마음속에 찾아온 깨달음이다. 마치 새벽에 동이 터오듯이 서서히 조용히 마음속을 확실하게 점령하게 된 그런 믿음 말이다. - 8쪽

마지막 날쯤 될 때 결국 이 모든 질문이 하나의 질문으로 귀착되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결국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하는 것이었다. 그것에 대한 답이 결국 내 마음을 결정지어주었다. 나는 지루한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다. 기다리는 것을 엄청나게 싫어했다. 마찬가지로 나는 편안하고 미래가 뻔한 삶에는 결코 만족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힘들더라도 꿈을 가지고 고생하며 노력하며 도전하며 살아야 행복을 느끼는 스타일이란 생각이 확실히 들었다. 그것이 나 아닌가? 나는 행복보다는 보람을, 평안보다는 도전을 더 가치 있게 여기면서 커오지 않았는가? 결론은 자연스럽게 나왔다. ‘나는 가야 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갈 수밖에 없다. 그것이 내가 사는 법이다.’ - 82쪽

나는 인생을 살면서 이 위장된 축복의 의미를 너무나 여러 번 느꼈다. 요즘도 나는 내가 특별히 게으르지도 않고 나쁜 마음도 없었는데 일이 잘못될 때면 언제나 거기에 위장된 축복이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결코 절망하지 않고 더 열심히 진지하게 나에게 닥친 고난을 감당하고자 노력한다. - 89, 90쪽

지금까지 인생을 살면서 한 가지 확실하게 느낀 것이 있다면, 내가 그런대로 열심히 성실하게 사는데도 어떤 나쁜 일이 생긴다면 그것은 반드시 어떤 뜻이 있고 도리어 무엇인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계기라는 것이다. 도둑질을 한다든지 남을 해친다든지 마약을 한다든지 하는 나쁜 짓을 한 결과로 좋지 않은 일이 생기는 것은 예외로 치자. 그러나 나름대로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생긴 나쁜 일들은 대부분의 경우 미래를 위해 더 좋은 것을 준비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 된다. - 127쪽

나는 로스쿨에 다니면서 체르니 교수의 이 말을 얼마나 여러 번 떠올렸는지 모른다. 정말 지독하게 맞는 말이었다. 로스쿨은 머리를 뜯어고치는 곳이었다. 많은 사람은 로스쿨이 법을 배우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로스쿨에서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 법을 찾는 법을 배울 뿐이다. 로스쿨을 졸업할 즈음에 학생들 중 실제 물권법, 채권법 등 각 분야의 법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대충 골격 정도 밖에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필요하면 법을 찾으면 되기 때문에 법에 대해 모르는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로스쿨은 쉽게 이야기해서 3년 동안 머리를 수술한다고 해도 그리 과언이 아니다. 소프트웨어를 바꿔 끼우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갈망하던 법적인 사고를 하는 방향으로 머리를 수술하는 것이다. 그곳이 로스쿨이다. - 173, 174쪽

나는 이 소크라테스식 교수법에 한 달쯤 노출되고 나서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체르니 교수가 우리의 머리를 ‘뜯어고친다’고 한 말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생존을 위해 머리를 뜯어고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을 분석적, 논리적으로 보기 시작하고 순식간에 닥치는 가혹한 질문에 즉각즉각 두뇌 회전을 극대화하여 순발력 있게 논리적으로 답하는 법을 배워나가는 것이다. 매일매일 3년 동안 이런 식으로 훈련을 받으면 어지간한 사람도 강심장이 되면서 머리도 뜯어고쳐진다. 그러지 못하면 한마디로 살아남지를 못하는 것이다. - 182, 183쪽

그렇다면 ‘변호사 같이 쓴다(write like a lawyer)’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한마디로 한다면 단어 수를 줄인다는 의미, 즉 할 말은 다 하지만 최소한의 단어로 한다는 것이다. 불필요한 단어가 많을수록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고 의미가 애매하기 때문이다. - 204, 205쪽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확실히 느낀 것 중의 하나는 이 세상의 모든 가치 있는 것은 다 엄청난 노력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모든 좋은 것, 화려한 것, 영광스러운 것, 빛나는 것, 그 모든 것의 뒤안에는 엄청난 고통과 눈물과 땀이 있다는 것을 나는 확실히 믿는다. - 218쪽

나는 이 세상에는 절대 공짜가 없다고 생각한다. 얼핏 보면 공짜 같은데 자세히 보면 절대 공짜가 아니다. 나는 인생은 진지하게, 열심히, 대가를 치르며 살아야 제대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 219쪽

나는 내 적성에 맞는 길을 택했다. 내가 어떤 일을 하면서 그토록 희열과 만족을 느낀다면 나는 무조건 그쪽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 때문에 어떤 희생과 대가를 치르게 되더라도, 또 아무리 늦어지더라도 나는 그쪽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나의 삶을 신나게, 경쟁력 있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생의 가장 큰 축복 중의 하나는 자기의 적성에 맞는 직업을 택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성공의 비결이다. 불행히도 너무나 많은 사람이 자기의 적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하며 사는데, 그것은 많은 경우 그것을 알기 위해 진지하게 노력하지 않은 데서 온다. - 2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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