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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 옆 작업실 - 홍대 앞 예술벼룩시장의 즐거운 작가들
조윤석.김중혁 지음, 박우진 사진 / 월간미술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으로 말하자면 젊은이에게는 약이 되겠지만 늙은이에게는 독이 될지도 모른다. 늙은 독자의 주의를 요한다. 도전과 모험은 젊은이의 몫이요 소심과 신중은 늙은이의 차지인 까닭이다. 일과 놀이가 정녕 합방을 할 수 있을까. 땀흘려 일하고 나서야 노는 맛이 나지 주야장창 계속 놀아서야 재미가 있을라나 모르겠다. 월화수목금 오일 일하고 이틀 놀아야 노는 재미가 있지, 오일 놀고나서 또 이틀을 더 놀고,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놀라고 하면 그건 고역이 될 것이다. 진짜 그럴라나. 혹자는 그 괴로움을 말하기도 하고 혹자는 그 즐거움을 버리지 못하기도 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로 호구의 책을 견지할 수 있는 사람은 정녕 복된 사람이다. 그 복이라는 것이 나무 아래 앉아 가만히 기다리다보면 저절로 떨어지기도 하는 홍시같은 뭐 그런 것은 아니다. 인생이란 것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은 다 알고 있다. 어떤 이룸이든 그 성취 뒤에는 항상 나름의 피눈물 자국이 혹은 피똥 자국 묻어 있는 것이다.
젊어서 이런 책을 읽게 된다면, 그들의 생각과 내 꿈을 비교 해보기도 하고 새로운 희망을 가져보기도 하겠지만 나이들어서 이런 책을 읽게 되면 속이 상하고 기분이 별로 좋지를 못하다. 아침에 간신히 일어나 허겁지겁 출근하고 사무실에서는 이런저런 일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해가 떨어져도... 홈, 마이 홈, 스윗홈으로 퇴근하지 못하고 짜장만 시켜 먹으며 야근을 해야하는 그런 생활을 하고 있는 자신이 조금 한심해 지기도 하고, 내 인생이 어디서부터인가 잘못되긴 잘못되었는데 지금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새벽에 일어나서 거리의 낙엽을 쓸어야하고, 또 누군가는 자동차의 생산라인에서 똑같은 동작을 수없이 반복하며 볼트를 조이기도 해야하는 것이다. 부모님 봉양하고 자식새끼들 거두어 먹이기 위해서는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고, 아니꼬운 일도 참아야 하고, 그런거다.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원석을 갈아 목걸이를 만들거나 뜨개질을 하고 앉았거나 점토인형을 만들어서는 호구를 책임질 수 없다. 그러다가는 정녕 호구(糊口)가 호구(虎口)의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어린 시절 꿈이 아직도 이 털난 가슴속에서 벌렁거린다고 하더라도, 무작장 다니던 직장을 때려접고 사진기 하나 들고 훌쩍 세계여행을 떠날 수는 없다. (그렇고, 그런데..., 아~ 진정정녕 한번쯤은 그리 해보고 싶은 거이다. 한 일이년 마누라 손잡고 세계여행을 다녀보고 싶은 거이다. 그런 것인데, 그럴려면 직장을 때려쳐야 하고, 갔다 와서는 또 뭘 먹고 살아야 하나 깡통소리 딸그락 거리며 낙엽처럼 거리를 뒹글게 되지는 않을까 무섭다. 아!! 풍소소해여 바람은 쓸쓸히 부는데 ~ 소시민의 소심함이여......물론 세상살이가 그리 팍팍한 것만은 아니다. 하기 싫은 일이라도, 그 일이 어떤 식으로든 이 사회를 이루고 있는 한 구성요소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면 나름대로 보람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고, 또 피아 구분없는 피똥 싸흘리는 무한 경쟁시대라고 하지만 직장동료들 중에서도 마음맞는 친구나 선후배를 만날 수도 있는 것이다.)
혹자는 핑계라고도 할 것이다. 맞다. 핑계다. 어쩌면 내 가슴속에 간직한 꿈이 더 간절하고 더 절실하고 나아가 더 절절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고, 앓는 소리 죽는 시늉 하지만 그래도 봉급 받아 먹고 마누라하고 아새끼들 주무르며 꾸려가는 삶이 그럭저럭 만족스럽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파펑크는 35세이고 미혼이고 디자인도 하고 만화도 그리고 꿈이 많다. 메이저리그와 관련한 뭔가 괜찮은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세계여행 다녀와서 사진 찍어 파는 좌린과 비니는 부부다. 30대 초반이고 아직 아이는 없는 것 같다. 미미루는 원석 아티스트다 미혼이고 30대 초반인 것 같다. 다방 아가씨처럼 스쿠터를 몰고 다닌다. 빨강고양이는 뜨개질로 고양이나 원숭이 모양의 모자를 만들어 판다. 30대 중반은 된 듯한데 아줌마인 것 같다. 날개를 좋아하는 라라는 날개달린 가방을 만들어 판다. 미혼이고 20대 후반인 것 같다. 점토인형 만들어 파는 똥잼에게는 취학전 애가 둘이다. 남편이 강원도에서 요리사해서 돈 번다. 나무가 되기를 바라는 세피로트는 스테인드 글라스를 만든다. 30대초반에 미혼인 것 같다. 환하게 살기 위해 쓰레기장을 뒤지는 환생은 이름에 값하는 재활용 예술가다. 역시 30대 초반에 미혼인 듯.
책에 등장하는 그들의 면면은 젊다 그리고 대체로 혼자다. 젊다는 것의 기준이 나이만은 아니다. 그들은 생각이 젊다. 혼자라서 더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그들은 생각이 자유롭다. 그들은 모두 어떤 길위에 서있고 아직 그들의 여정은 멀다. 그 용기와 도전정신과 모험심과 삶에 대한 애정에 찬사를 보낸다. 하늘은 잊지 않고 또 그들에게 재능과 열정도 주었나 보다. 앞으로도 정진하여 일가를 이루고 간직한 꿈을 완성해내기를 바란다. 비참참담한 처지에서 출발해 어마어마한 부귀와 명성을 획득한 예술가들의 예가 수다하거니와 이들이 지금은 인디고 언더고 하지만 대중으로부터 갈채와 찬사를 받아 돈과 명성을 얻게 되면 어느날 문득 문화 권력이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는, 진실로 바라건대, 일단사 일표음으로 누항에 기거하면서도 그 즐거움을 마다하지 않았던 젊은 날들을 잊지 마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