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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누의 집 이야기
이지누 지음, 류충렬 그림 / 삼인 / 2006년 4월
평점 :
이선희가 불렀던가 아~옛날이여어~ 지난 시절 다시 올수 없나 그으 나알~ 어쩌고 저쩌고. 중국으로 말하자면 요순우탕의 시대가 진정한 태평성세였고 지금은 암담한 난세지만 옛 성현들의 말씀을 열심히 쫓아 사람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 그러니까, 그래도 옛날이 정말 좋았다는 생각을 황금사관이라고 한다고 어데선가 들었다. 요순시대는 역사적으로 말하자면 청동기시대일 것인데, 움집에서 살며 비파형 동검으로 전쟁치고, 반달형 돌칼이니 하는 석제 농기구로 이제 겨우 농사를 짓기 시작했던(청동제 농기구는 없었다. 이거 시험에 많이 나왔다) 시절이 무에 그리 인의가 득세하는 태평세월이었겠는가 이 말이다.
지금이 살기 어렵고 고달프니까 옛날에는 좋았는데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당시에 아무리 쌩똥 피떵을 싸고 흘리며 고생을 했다고 하더라도 세월 흘러 돌아보면 왠지 그 시절이 그리워지고 그래도 그때가 좋았어!! 하는 생각이 들고 하는 법이니 바로 추억의 힘이고 위력이다. 흔히 하는 말로 제대하고는 군대가 있던 쪽으로 오줌도 누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술만 처마셨다 하면 군대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박터져도 박통때가 좋았지. 민주주의가 어쩌고 해도 우리가 이만큼 먹고 살게 된게 누구 덕인데....전통때는 그래도 깡패는 없었잖어...그때가 좋았지 그랴...그런거다.
부엌에서의 일과 밥상을 들고 마루나 안방으로 오는 동선은 매우 합리적이다.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는가 하면, 계단을 오르듯 마당으로 올라서고 잠시 평지를 걷는가 싶으면 어느새 댓돌에 올라서야 하니 이는 지금의 부엌구조보다 합리적인 동선임을 부정할 수 없다. 분명 힘이 드는 일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당시의 노동구조나 노동의 양을 따져 보았을 때 이는 스트레칭에 가까운 것이고 그렇게 단련되지 않은 몸으로는 당시의 노동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p 170)
부엌에서 밥상을 들고 마루나 안방까지 오는 동선이 매우 합리적이라니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다. 작가가 그리움 속에 추억하고 있는 당시는 우리의 어머니가 부엌일은 물론이요, 논일, 밭일을 남정네 못지 않게 해야하는 처지였을 것이고 그런 처지에 부엌에서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해야하고 계단을 오르듯 마당으로 올라서고 다시 내려와야 하고 하는 그 동선이 합리적이라니..... 그것도 매우 합리적이라니 도대체가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다.
보통 부모님모시고 삼사남매 키우는 집안으로 볼때 부엌에서 군불때고 반찬하고 밥푸고 국뜨고 수저놓고 상차리는 것과 한끼 식사 설거지 꺼리만으로도 씻고 헹구고 허리가 휘어질 판일 것이며, 그 집구석이 명색이 반가(班家)라고 한다면 사대봉사에 명절 차례까지 한달에 한번꼴로 제사상을 차려내고 친지손님들 접대해야 할 것인데, 부엌에서 마루로 안방으로 앉았다 일어서고 마당으로 올라서고 부엌으로 내려 앉고 하는 그 동선이 무에 그리 합리적이라는 말인지 알 수가 없다.
또 그렇게 단련된 몸이라야 당시의 노동을 견딜수 있다니, 하루의 밭일, 논일, 들일, 집안일, 부엌일, 빨래일 등으로 이미 단단히 단련되었을 터인데 그것으로는 부족하니 부엌에서 쪼그려 뛰기도 하고 댓돌 올라섰다 내려서기도 해서 좀 더 단련을 해야 무슨 일이든 잘 해낼 수 있다는 말인지 도대체가 알 수가 없고, 당시의 노동구조와 노동의 양이 어떠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구조와 양을 따져보았을 때 부엌에서의 가사노동이야 가벼운 스트레칭 정도이며, 정말 고된 논일 밭일을 하기 전에 이정도의 준비운동은 해야 된다는 이야기인지 도대체가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내 왜 흥분하는고 하니, 우리 엄마의 평생의 소원이 아파트로 이사가서 허리좀 펴고 편하게 사는 것이었는데, 칠십 가까이 되어서야 그 소원을 이루었으나 허리는 이미 완전 90도로 꼬부라진 이후였다. 장성한 아들들이 있으나 서울이나 객지로 나가있어 그 연세에 아직 당신 진지를 당신이 차려 드시는 형편을 생각하니 저자의 생각에 공감하기 실로 난감했다는 말이다.
본인의 언사가 침소봉대의 면이 많다는 것을 내 안다. 책의 내용 중에 좋은 이야기도 많았는데 ‘스트레칭’ 하나에 너무 집중하여 후벼 판 점이 인정된다. 우리의 옛것에는 작가의 말대로 선조들의 슬기로운 지혜가 담겨있는 것도 많지만 후대에 물려주기 답답한 악습도 적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자꾸 들으면 질리기 마련이고 맹목적인 애국주의, 전통주의, 복고주의가 결국은 나라를 망치는 법이다. 물론 이 책이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너무 옛것에 꽃단장을 입혀 미화하는 것 같고, 결정적으로 스트레칭 운운에 배알의 일부가 배배 꼬이고 꼴렸던 것이다. 저자의 우리 것에 대한 사랑이나 관심을 폄하하고자 하는 것이 결코 아님을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