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의 간접 영향권에 들어서 바람이 몹시 부는 날, 집을 나섰다.
열병식을 하듯 늘어선 모들이 자라고 있는 논과 밭, 병풍처럼 들을 감싸고 있는 산과 산, 산허리를 휘감고 있는 비구름, 그 산들을 끼고 흐르는 강, 가끔씩 모습을 드러내는 기차. 내가 살고 있는 고장의 모습이다.
읍까지는 좋아하는 노래를 두 번 정도 들으면 갈 수 있는 거리이다.
우체국에 잠깐 들러서 떨어져 있는 딸아이에게 편지를 부쳤다.
전화와 팩스, 이메일이 넘치는 세상에 편지라니. 그러나 나는 우체국에 가기를 즐긴다.
유치환의 시를 떠올리면서 우체국 창문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그 가슴 뛰는 사랑의 감정들을 상상해 보기도 한다.
남편은 이런 나를 보고 현실감이 없다고 혀를 차기도 하지만 나는 이런 나의 모습을 사랑한다.
일상에서는 근검절약하며 살아가지만 감정의 사치야 정신적인 면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는 것을 나이가 들면서 깨달았다.
책을 읽다가도 아름다운 문장을 발견하면 가슴에 보석을 품은 듯 하루 종일 흥얼거리기도 한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나무가 거의 허리를 꺾을 정도로 출렁거리고 있다.
찬거리 장을 보고, 방학이라 잠시 집에 와 있는 아들을 태우고 집으로 가고 싶어서 아들이 다녔던 중학교 운동장 한쪽 귀퉁이에 차를 댔다.
어느 어미인들 그렇지 않을까마는 나는 내 아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린다.
마음의 상처를 아는 까닭이다.
자동차 안에 앉아 아들을 기다리면서 시인이 쓴 영화에세이를 읽었다.
‘영화’ 하면 돌아가신 친정 아버지가 떠오른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부터 나는 영화 보기를 즐겨하셨던 아버지를 숱하게 따라 다녔다. <마부> <오발탄> <독 짓는 늙은이> <로맨스 그레이> <만추> 같은 영화를 본 기억이 난다.
물론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영화의 단편적인 장면들이어서 나이가 들어서야 그 영화들을 다시 보고 제목과 연결을 시켰다.
그 당시에는 영화의 내용이나 뜻을 알 턱이 없었지만 아버지를 따라 극장에 가면 평소에는 구경도 잘하지 못하던 캐러멜이나 비스킷, 사이다를 먹을 수 있었다.
그 재미로 나는 하루만 건너뛰면 ‘아버지, 극장 안가?’ 졸라대곤 했다. 아버지를 닮아서 나도 영화 보기를 좋아한다. ‘흘러간 명화’라고 이름 붙여진,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만들어진 영화를 보면서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로 간다.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는, 사람들의 살아가는 방법과 사랑과 욕망을 본다.
그리고 지금의 내 삶을 본다.
나는 사십 년하고 우수리 몇 년을 더한 세월 위에 있다.
나를 데리고 극장에 가시던 아버지보다 훨씬 더 나이를 먹었다.
나를 세상에 있게 하신 두 분은 이미 곁에 계시지 않고 내 몸을 빌어 다시 두 생명이 이 세상으로 왔으니 자연의 섭리 중에 이처럼 놀랍고 신비로운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자주 뒤를 돌아보는 건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지난날들에 대한 안타까운 향수 탓일 것이다.
가끔 얼굴을 들고 차 유리창을 사정없이 때리며 내리는 비를 바라보았다.
폭우에 잠겨버린 운동장 위로 회색하늘이 아주 낮게 드리워져 있다.
이상하리 만치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너무 바쁘게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갈래로 얽혀있던 줄들이 하나 둘 끊어지면서 마음이 낮게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고요하게 다가오는 이 평화. 잠시 그 감정에 몸과 마음을 맡긴다. 눈을 감는다.
어느 한 순간인들 마음을 바닥까지 내려놓고 쉰 적이 있었던가.
늘 나의 신경의 줄을 팽팽하게 당겨져 있어서 슬쩍 건드리기만 해도 끊어질 것만 같았다. 내 마음은 물기 하나 머금지 않은 마른 장작 같았다.
그러나 이제는 길가의 이름 모를 들꽃에게도, 무심하게 흐르는 시냇물에게도, 이른 새벽이면 낮게 내려와 있는 밤하늘의 별들에게도, 옷깃을 스치는 한 줄기 바람에게도 마음을 열고 싶다.
그전에는 부대끼며 사느라고 그런 것들은 감정의 사치인 줄 알았다.
그러나 삶의 여백이나 내면의 평화는 미래의 것이 아니라 현재의 것이 아닌가.
비로소, 그것이 오늘을 사는 힘이 아닐까 하는 자각이 들었다.
자질구레한 일상사와 몇 개의 상념, 몇 조각 감정의 무늬들이 모여서 하루를 이룬다.
그 하루하루가 날줄과 씨줄로 엮이면서 우리의 생애가 되리니. 가족사가 되리니.
지나간 많은 날들 중에 특별할 것도 없는 어느 한 날이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아있는 경우가 있다.
바로 오늘 같은 날이다.
아무 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자동차 안에 앉아서 책을 읽다가 가끔 비 오는 학교 운동장을 바라보기도 하고, 삼십 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유년의 뜰을 거닐기도 하면서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어제도 오늘과 다를 바 없었고 내일도 오늘과 비슷할 터인데 그 지나온 세월들을 한꺼번에 펼쳐놓고 보니 참으로 많은 일들이 내 곁을 스치고 지나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문득 허리를 펴서 백미러에 얼굴을 한 번 비춰본다.
바로 중년의 내 어머니의 모습을 거기에서 본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의 끝자락에 설 때쯤이면 세월의 풍화작용으로 기쁨이나 슬픔의 감정은 모두 소멸되어 버리고, ‘아, 그런 날이 있었지’ 하며 마음에 가득 찬 평화를 느끼게 해준, 폭우에 잠긴 운동장만을 회상하게 될 터이다.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아이들은 자라 어느덧 내 품을 떠나고, 우리 부부만 남아서 느리고 고요하게, 이 세상에서 가족으로 엮여 살아온 세월을 이야기할 것이다.
일생의 굽이굽이에서 느꼈던 감격이나 환희, 또 가슴 에이는 슬픔이나 연민조차도 이 땅에서 가족으로 살면서 얻을 수 있었던 축복이리라.
뜨거운 한 잔의 차에도 온전한 위안과 감사를 느낄 때쯤이면 이마의 주름살을 세는 대신 마음의 주름살을 세는 일은 없을 것인가. 희망사항이다.
‘엄마’ 하며 아들이 차 문을 두드린다.
*** 몇 년 전에 쓴 글이다.
영화의 짧은 추억이 있는 글이어서 파일을 뒤져 골랐다.
이영도 이호우 생가가 바로 옆에 있는 아름다운 고장에서 살았드랬다.
***
마무리를 지어야 할 일이 있어서 하루에 대여섯 시간씩 컴퓨터와 씨름을 하는 중간중간 눈팅을 했더랬다. 그러다가 또 낚였다.
바로 이것이다.
지난 주말 주문을 했었는데 어제 왔다. 해야 될 분량에 훨씬 못 미치는 일을 해놓고도 얘들 말로 기념으로 한 편 때렸다. 밤 열두시가 넘은 야심한 시각에.
<로마의 휴일>
수 없이 본 영화이지만, 볼 때마다 처음 보는 영화 같다. 그레고리 팩은 참 잘 생겼다. 선하게 생겼다.




이번에 보면서 문득 한 생각...둘이 꼭 그렇게 쿨 해야만 했을까?
그전에는 이런 말을 남겼었다.
사랑이란 마음은 두고 몸은 돌아서는 것...중전어록.
아마 나이 탓이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에 남편에게 더 나이 먹기 전에 하고 싶은 일 세 가지가 있다고 했다.
그 중에 한 가지 ‘가슴 아픈 사랑’이라고 했더니 남편에게 구호가 하나 늘었다.
‘자나깨나 마누라 조심. 자는 마누라도 다시 보자!’
100편이라니...물론 거의가 다 본 영화이다. 이미 갖고 있던 것도 많다.
그러나 읽고 싶은 책을 옆에 쌓아둔 것처럼 많이 행복하다.
나는 우리 친정아버지를 닮아서 영화광이었었다.
오빠도 비록 집안의 반대에 부딪쳐 접었지만 영화감독이 꿈이었었다.
그런데 영화감상이 취미라던 남편은 결혼을 하고 보니 영화맹이었다.
같은 사람도 옷만 갈아입고 나오면 알아보지 못한다.
그래도 아주 가끔은 함께 영화를 보러가곤 한다.
근데 영화를 선정하는 기준이 가히 유년스럽다.
텔레비전에서 관객이 얼마를 돌파했다는 소리가 뜨기 시작하면 극장엘 가자고 조른다.
그래서 본 영화가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 <밀양> <해운대> 등등이다.
전부 다 내 취향은 아니다.
얼마 전 또 입질을 했다. <아저씨>를 보잔다. 젊은 친구에게 문자 날렸다.
개봉관이 어디냐고. 답장이 왔는데 ‘언니, 절대 보지마세요. 너무 잔인해.’
한 번 칼을 뽑은 남편은 절대 그냥 꽂지는 않는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내면 깊숙이 ‘잔인성’이 있다.
오래 전에 고등학교 시절, <대부>를 열 번은 봤었다.
비디오가 없는 시절이었으니 모두 다 극장에서.
그런데 이 잔인성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 같아서 마음이 좀 아팠다.
연일 태풍 소식에 마음이 좀 우울하다. 그래도 어쨌든 구월이다.
패티 킴의 <구월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