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은 동서고금의 현상이지만, 오늘날 우리가 이를 ‘빈곤‘이란개념으로 문제화하고, 이에 개입하기 위한 대상으로서 ‘빈민the poor"
을 구성하게 된 것은 근대 이후다. 유럽에서는 중세 말엽부터 화폐경제가 발달하고 인클로저로 토지를 잃은 농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들었다. 당시의 지식인들은 남루한 사람들의 무리와 그 집합적 삶의 양태를 ‘사회‘라는, 개인과 국가를 매개하는 영역으로 새롭게 포착하고, 빈곤과 빈민을 (종교적•개인적 문제가 아닌)‘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 P28

의존이 인간의 생존과 실존에 있어 고유한 양태임에도 우리는 어째서 이를 말하기 꺼리거나 특정한 상황에만 적용할까? 단도직입적으로, 빈곤은 어째서 ‘의존‘ 의존성‘ ‘의존적‘과 같은 표현들이가장 명시적인 부정성을 띤채 범람하는 현장이 되었을까?
역사적으로, 빈곤에 대한 경멸과 노동에 대한 찬양은 동전의 양면인 경우가 많았다. 가난한 사람들을 기독교적 동정의 대상으로 여겼던 중세 유럽에서도 흑사병으로 노동력 부족이 심각해지자 이들의 노동 회피를 문제 삼는 정책이 등장했다. - P68

 노동을 기피하고 부랑 생활을 일삼는 경멸스러운 ‘걸인‘과 노동력을 상실하여 기독교 윤리에 따른 자선으로 구제받아야 할 ‘빈민pauvre‘이 14세기 중반 프랑스 국왕 칙령에서 분명히 구분되어 있었다는 점은 흥미롭다.(홍용진 2016 : 75-77) 오늘날까지도 공공부조 체계를 갖춘 대부분의 나라에서 노동능력의 유무에 따라 수급자를 관리하는 제도나, 노동 의지에 따라 자격 있는 빈민과 그렇지 않은 빈민을 구분하는 관행은 여전히 지배적이다. 살면서 ‘어떤 의존을 하는가‘를 묻기보다, 노동을 척도로 의존이나 자립이냐‘를 판별하는 흐름이 대세가 되었다. 이때 노동이 갖는 의미는 제한적이다. 직접 물건을 만들어 팔든 자신의 노동력을 팔든, 경제적인 생산관계에 편입된 노동
‘밥벌이‘가 가능한 노동이 의존과 자립을 나누는 기준이 되었다.
노동 의지에 따라 다른 형태의 빈민 통치가 작동했다는 점은, 빈곤이 단순히 부에 대응하는 경제적 개념이 아니라 품행의 심사장이었음을 뜻한다. 조반나 프로카치는 이 점에 주목해 18-19 세기 유럽에서 사회적 빈곤에 관한 문제의식이 등장하는 과정을 살폈다. 당시 유럽에서 부의 증대에 관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던 고전적 정치경제학은 빈곤을 풍요의 대응물로 취급하면서 ‘빈곤의 정치‘가 갖는 유용성에 별반 주목하지 않았다. 반면 주변화된 영역이던 사회경제학은 빈곤을 자본주의 메커니즘이나 소유권과 연결하기보다 사회유대의 붕괴, 제도의 미비, 개인의 도덕적 결함으로 문제화하면서, 문제의 진단과 처방을 둘러싼 일련의 지식과 통치 기술을 고안했다. - P6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녀도 나왔다. 나나만이 홀로 밝은 촛불 아래에서 고개를 위로 향하고 있었다. 그것은 송장이었고, 피와 고름 덩어리였고, 쿠션 위에 던져진 썩은 살덩어리였다. 작은 고름집들이 얼굴 전체를 뒤덮었고 뾰루지들이 엉켜 있었다. 퇴색하고 문드러져서 진흙덩이처럼 회색이 된 고름집들은 형체를 알 수 없는 반죽 같은 얼굴 위에 핀 곰팡이 같았다. 거기서 옛 모습이라고는 찾을 길이 없었다. 왼쪽 눈은 완전히 곪아 푹 꺼졌다. 반쯤 뜬 오른쪽 눈은 썩은 구멍처럼 시커떻게 파여 있었다. 코에서는 아직도 고름이 흘렀다. 뺨을 덮은 불그스름한 딱지가 입 언저리까지 떨어져나왔는데, 거기에는 기분 나쁜 미소가 새겨져 있었다. 그 무섭고 끔찍한 죽음의 얼굴 위로 머리칼이 그 아름다운 머리칼이 햇빛처럼 찬란한 불꽃을 지닌 채 황금의 개울처럼 흐르고 있었다. 비너스가 썩은 것이다. 시냇가에 버려진 내성 강한 시체에서 그녀에 의해 채집된 바이러스가 그녀가 민중을 망쳐놓은 그효소가 그녀 자신의 얼굴로 옮겨와 그녀를 썩게 만든 것 같았다.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절망적인 커다란 고함소리가 큰길에서 솟아올라 커튼을 부풀렸다.
"베를린으로! 베를린으로! 베를린으로!" - P60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계를 네트워크의 생성을 통해 이해하는 행위자---네트워크 이론Actor-Network Theory의 용어를 따르자면, 이 깔때기란 해당 네트워크에 있는 행위자가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의무통과점 ObligatoryPassage Point‘이다. 다른 행위자들이 네트워크상에서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지점을 구성함으로써 행위자들을 중심 행위자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장치인 것이다. (홍성욱 2010:26) 사람도, 사물도, 제도도, 담론도 모두 가능하다. 의무통과점의 정당성이 강화되는 것도,
이 정당성에 도전하면서 다른 의무통과점을 만드는 것도 행위자들의 동맹에 따른 결과다. 수급이 빈곤 네트워크의 의무통과점이 되었다고 내가 생각하는 까닭은, 정부 정책뿐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의 자기 서사, 그리고 이들과 연대하는 사람들의 움직임 모두 수급(기초법)을 경유해 그 존재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이 공공부조의 수급자로 구획되면서 가난은 특정한 양식과 문법 안에
‘고이고 말았다. 빈곤을 우리 시대의 정치적 핵심 의제로 삼는 일은 그렇게 점차 요원해졌다. 빈곤이 ‘우리의 삶‘에서 ‘저들의 문제‘로 고립되면서 취약계층에 대한 관심을 호소하는 메시지가 빈곤을 끝장내자는 결의를 압도해버렸다. - P2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런데도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어떤 영화를 볼 것인지 선택하는 문제에서부터 립스틱을 고르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이 오로지 한 사람만을 향해 이루어졌던 그때에 머물고싶었기 때문이다. 첫페이지부터 계속해서 반과거 시제를 쓴 이유는, 끝내고 싶지 않았던 ‘삶이 가장 아름다웠던 그 시절‘의 영원한 반복을 말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예전의 기다림이나 전화벨소리, 만남을 대신하고 있는 나의 고통을 묘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 P52

(지금도 첫 페이지를 다시 읽으면 그 사람이 내 집에 머무는 동안 입고 있다가 떠날 때 벗어놓은 목욕 가운을 바라보고 만지면서 느끼는 것과 똑같은 고통이 생생히 되살아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 글은 나에게, 그리고 어쩌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항상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겠지만, 처음부터 내게만 의미가 있었던 목욕 가운은 언젠가는 나에게조차 아무 소용이 없어져 헌옷 더미 속으로 던져지리라는 것이다. 이렇게 쓰다보니목욕 가운을 버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P53

그런데 이제 그것들이 서서히 스러지기 시작한다. 살아 있는 텍스트였던 그것들은 결국은 찌꺼기와 작은 흔적들이 되어버릴 것이다. 언젠가 그 사람도 다른 사람들처럼 내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리겠지.
그런데도 나는 그 사람을 끊임없이 기다리고 갈망했던 지난해 봄 그 사람을 떠날 수 없었던 것처럼, 지금도 여전히 그 사람에게서 떠나지 못하고 있다. 이 글을 쓰면서 내가 바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나는 알고 있다. 글에는 자신이 남겨놓고자 하는 것만 남는 법이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글을 쓴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읽힐지도 모른다는 고통을 연장시키는 것과 같다.
하지만 내가 글을 써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한 그런 건 개의치 않는다. 그러나 그 필요성의 극에 다다른 지금, 써놓은 글을 찬찬히 읽어보니, 놀랍기도 하고 부끄럽기도하다. 열정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갈 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감정들이다. 그것은 출판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하는 세인들의
‘정상적인 가치 기준과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글은 자서전입니까?" 하는 유의 질문에 대답해야만 하고, 이것은 어떻고 저것은 어떻다는 식으로 억지로 정당화시켜야 할지도 모른다......) - P59

그러나 그 사람 덕분에 나는 남들과 나를 구분시켜주는 어떤 한계 가까이에, 어쩌면 그 한계를 뛰어넘는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
나는 내 온몸으로 남들과는 다르게 시간을 헤아리며 살았다.
나는 한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해 얼마만큼 솔직하게 말할 수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숭고하고 치명적이기까지 한 욕망, 위엄 따위는 없는 부재, 다른 사람들이 그랬다면 무분별하다고생각했을 신념과 행동,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스스럼없이 행했다. 그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세상과 더욱 굳게 맺어주었다. - P66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따위를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 - P6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리오 영감은 이처럼 부성애라는 정념에 사로잡힌 개인의 비극적인 몰락을 그린 소설이지만, 이는 동시에 사회적·정치적인 측면에서 부권이 붕괴되어 가는 과정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발자크에게 있어 가정이란 사회의 한 축도로서 사회와 동일한 법칙에 의해 지배되는 세계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권의 붕괴와 관련해, 이 인물의 의미를 정치적 측면에서 해석해 볼 수 있다.
이 소설의 사건은 1819년에서 1820년에 걸친 왕정복고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이 소설이 실제로 집필된 시기인 7월 왕조 초기와도 무관하지 않다. 작품의 밑바닥에는 은연중에 1830년 혁명의 분위기가 깔려 있는 것이다. [적과 흑]에서처럼 왕정복고 이후 프랑스 역사의 시대착오적인 흐름은 마치 대혁명이 일어난 적이 없다는 듯이 진행되고 있었다. 포부르 생제르맹의 대귀족들은 이제 머지않아 7월혁명에 의해 소멸하고 말 영광의 마지막 잔광을 향유하고 있었다. 보세앙 부인 댁이나 카릴리아노 원수 저택의 화려하지만 어딘가 김빠진 듯한 무도회는 바로 그 덧없는 불꽃놀이들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고리오 영감은 유일하게 귀족 사회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야망을 품고 상경한 시골 귀족 라스티냐크를 제외한다면, 사회 상층부의 모든 사람들은 다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 두는 불편한 존재일 뿐인 고리오가 눈앞에서 사라지기를 바란다. - P89

그들이 고리오 영감을 시야에서 삭제해버리고 싶어하는 까닭은 그 인물의 배후에서 대혁명과 나폴레옹 시절의 기억이 망령처럼 되살아나서 마음을 섬뜩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한 니콜 모제의 해석은 귀 기울여 볼 만하다.

고리오에게는 나폴레옹을 상기시키는 그 무엇이 있다. 물론 오스테를리츠의 승리자 나폴레옹이 아니라 세인트헬레나 섬의 감옥에 유폐된 채 옥지기에게 성가시게 부대끼는 나폴레옹을 두고 하는 말이지만, 구체제의 귀족 계층이 한동안 덧없고 찬란한 옛 광영을 되찾아 소생하는 것과 때를같이하여 이 늙은 제면업자가 피할 수 없는 파멸의 길을 걸어가는 과정은퇴위당한 황제가 고난의 길을 걸어가는 과정과 시기적으로 일치한다.

먼저, 대혁명 이전에 한갓 노동자에 불과했던 고리오는 1789년 대혁명으로 희생된 주인집 사업체를 손에 넣고, 1793년의 혼란을 틈타서 큰 재산을 모았다가 나폴레옹이 최초로 크게 패한 라이프치히 전투 때인 1813년 사업을 포기하고 보케르 하숙집 신세를 지게 된다.
다시 나폴레옹의 운명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는 워털루 전쟁 때, 즉 1815년에 고리오는 그 한심한 하숙의 2층에서 더욱 옹색한 3층으로 옮아감으로써 하숙 안에서도 본격적인 몰락의 길을 밟기 시작한다.
이야말로 그에게는 나폴레옹의 유배에 버금가는 고립과 냉대의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 P91

이제 영감은 황제 부인의 말처럼 "포리오", "모리오", "로리오", "도리오" 등으로 이름마저 정확히 기억되지 않을만큼 미미한 존재, 즉 그 정체성을 상실한 존재일 뿐이다. 그리고 소설 끝에 이르러 고리오가 사망하는 1821년은 나폴레옹이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사망한 해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이 늙은 고리오 영감이 보여주는 거의 병적인 부성애의 붕괴 과정이 시기적으로 정확하게 일치하는 나폴레옹의 몰락과 궤를 같이함으로써 프랑스의 정치사적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고리오와 두 딸은 당시 프랑스 사회를 구성하는 세 계층의 미묘한 상관관계를 거의 알레고리에 가까울 만큼 뚜렷하게 드러내보이고 있다. 앞에서 이미 설명했듯이 고리오는 혁명 이전에 그저 국수공장의 노동자에 불과했다가 대혁명을 계기로 부를 축적해 점차 부르주아지의 반열로 상승했다. 그러나 만년에는 다시금 명백한 하층민의 신분으로 추락해 사망한다. 반면 그의 두 딸 중 한 사람인 아나스타지는 포부르 생제르맹의 대귀족 드 레스토와 결혼했고, 둘째 딸 델핀느는 이제 상승일로에 접어드는 자본 부르주아인 은행가뉘싱겐과 결혼했다. 따라서 당시 상황으로 보아 아나스타지 드레스토 부인은 이미 득세한 귀족 계층에 편입되었고, 뉘싱겐 부인은 아직도 포부르 생 제르맹 무도회에 초대받기를 간절히 바라는 신흥 부르주아지 계층에 속해 있다. 그러나 소설의 끝에 이르러 고리오 영감을 매장하고 난 야심가 라스티냐크가 선택한 쪽은 미래에 득세할 계층인 은행가 뉘싱겐 부인 댁이다. 고리오 집안의 갈등은 이처럼 당시 프랑스 사회를 구성하는 계층간의 갈등을 거의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 P91


가정에서는 아버지의 권능이 국가차원에서는 절대왕권과 황제의 위용이 여지없이 무너져 가는 시대의 소설 「고리오 영감』에서 모든 하숙생이 하나씩 떠나 버리는 순간, 절망한 보케르 부인이 자신의관점에서 요약하는 프랑스 역사는 그래서 특히 주목해볼 만하다.
보케르 부인은 말한다. "우리는 루이 16세가 처형당하는 것도 보았고, 나폴레옹 황제가 몰락하고 다시 돌아왔다가 또다시 몰락하는 것도 보았다." 보케르 부인은 그런 모든 사건은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이라고 말한다. 고리오의 운명이 역사적 필연에 따른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생각을 피력한 것이다. 왜냐하면 고리오의 부성애와 부권은 어느 면에서 보면 역사 진행의 필연성과 맞물린 의미를 지니고있기 때문이다.
고리오 영감은 소설의 표제에서부터 등장해 ‘그림의 모든 조명‘을한 몸에 받았고, 그의 죽음과 더불어 소설이 종결된다는 점에서 단연이 작품의 중심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고리오 영감을 독립된 소설 자체로 해석하느냐, 아니면 《인간 희극》이라는 전체 조망속에 놓고 보느냐에 따라 작품의 의미는 달라진다. 발자크의 방대한작품 세계가 아직은 앞으로 완성해야 할 대사원의 한갓 청사진에 머물러 있던 1835년 당시의 독자들에게 《고리오 영감》의 주제는 물론 비극적인 부성애 바로 그것이었을 터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알고있는 <인간 희극》 전체의 틀 속에 놓고 보면, 고리오 영감은 오직 이 작품 한 편에만 등장했다가 결국 그 마지막 페이지에서 퇴장하는 막간의 한 인물에 불과하다. 반면에 또 하나의 주요 인물인 라스티냐크는 이 소설뿐만 아니라 《인간 희극》전체에서 무려 25편의 소설에 재등장하는 가장 핵심적인 인물 가운데 하나다. - P92

현실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1. 서론

스탕달, 발자크, 플로베르, 졸라 등 19세기에 등장한 이른바 ‘현대작가들‘은 소설이 단순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시대와 사회, 다시 말해서 변화하는 역사의 산물임을 자각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 소설이라는 장르 자체에 대한 ‘반성적 태도‘를 첨예하게 드러낸다. 이를테면 그들은 소설을 쓰는 동시에 "소설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이리하여 소설은 단순한 이야기를 넘어 삶과 어떤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을 그 구조와 스타일 속에 은연중에 반영하게 된다.

① 스탕달은 소설 장르에 대해 반성하면서, 그것이 곧 ‘부르주아 시대의 극‘이요 사회를 비추는 ‘거울‘임을 자각해 ‘정치‘ 소설을 썼다.
② 발자크는 인물의 재등장이라는 독특한 장치를 통해 <인간 희극>에서 호적부와 경쟁하며 당대 사회의 전모를 드러내는 방대한 벽화를 그리고자 한다. 그는 소설의 나폴레옹이 되려고 했다.
③ 플로베르는 ‘스타일‘을 창조하기 위한 글쓰기의 고행에 삶을 바친다. 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한 권의 ‘무‘에 관한 책이다. 그는 ‘시점‘point of view문제에 천착하면서 상대주의 세계관을 드러내 보이고, 현실의 내면과 외면의 상관관계를 소설의 형식에 투영하고자 한다 . - P141

④ 졸라의 자연주의는 과학(생리학----유전)적 야심을 가지고 실험소설론을 수립하고자 하는 한편, 새로이 떠오르는 계급인 노동자의 누추한 삶에 확대경을 들이댄다.
⑤ 프루스트는 예술로 변한 삶, 진정한 삶을 찾아 글쓰기의 장거리 고행 길을 나선다. 그에게는 예술이 곧 삶의 참모습이었다.
⑥ 카뮈는 예술, 특히 문학은 인간에게 주어진 조건, 즉 유한한 삶의 조건에 반항하는 ‘수정된 창조‘라고 생각한다. 그는 부조리 인식에서 출발해 반항과 절도와 사랑의 문학에 이르고자 한다. - P142

2. 귀스타브 플로베르


(1) 《마담 보바리》에 대하여

① 1857년 《마담 보바리》의 해

1857년은 소설 『마담 보바리』와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이 발표된 해로, 프랑스 문학사에서는 가히 ‘현대‘의 출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두 작품은 또한 "공중도덕과 종교에 위배된다"는 혐의를 받고 차례로 제2제정의 법정에 소환되었다. 역설적이게도 이 위대한 두 작품은 먼저 소송 사건을 통해서 대중의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그것은 당시 작품이 발표될 때의 한 삽화에 불과하다.
15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마담 보바리》는 현대 소설의 비켜 갈수 없는 교차로에 위치한 최대의 고전으로 인식되고 있다. - P14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