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오 영감은 이처럼 부성애라는 정념에 사로잡힌 개인의 비극적인 몰락을 그린 소설이지만, 이는 동시에 사회적·정치적인 측면에서 부권이 붕괴되어 가는 과정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발자크에게 있어 가정이란 사회의 한 축도로서 사회와 동일한 법칙에 의해 지배되는 세계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권의 붕괴와 관련해, 이 인물의 의미를 정치적 측면에서 해석해 볼 수 있다.
이 소설의 사건은 1819년에서 1820년에 걸친 왕정복고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이 소설이 실제로 집필된 시기인 7월 왕조 초기와도 무관하지 않다. 작품의 밑바닥에는 은연중에 1830년 혁명의 분위기가 깔려 있는 것이다. [적과 흑]에서처럼 왕정복고 이후 프랑스 역사의 시대착오적인 흐름은 마치 대혁명이 일어난 적이 없다는 듯이 진행되고 있었다. 포부르 생제르맹의 대귀족들은 이제 머지않아 7월혁명에 의해 소멸하고 말 영광의 마지막 잔광을 향유하고 있었다. 보세앙 부인 댁이나 카릴리아노 원수 저택의 화려하지만 어딘가 김빠진 듯한 무도회는 바로 그 덧없는 불꽃놀이들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고리오 영감은 유일하게 귀족 사회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야망을 품고 상경한 시골 귀족 라스티냐크를 제외한다면, 사회 상층부의 모든 사람들은 다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 두는 불편한 존재일 뿐인 고리오가 눈앞에서 사라지기를 바란다. - P89

그들이 고리오 영감을 시야에서 삭제해버리고 싶어하는 까닭은 그 인물의 배후에서 대혁명과 나폴레옹 시절의 기억이 망령처럼 되살아나서 마음을 섬뜩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한 니콜 모제의 해석은 귀 기울여 볼 만하다.

고리오에게는 나폴레옹을 상기시키는 그 무엇이 있다. 물론 오스테를리츠의 승리자 나폴레옹이 아니라 세인트헬레나 섬의 감옥에 유폐된 채 옥지기에게 성가시게 부대끼는 나폴레옹을 두고 하는 말이지만, 구체제의 귀족 계층이 한동안 덧없고 찬란한 옛 광영을 되찾아 소생하는 것과 때를같이하여 이 늙은 제면업자가 피할 수 없는 파멸의 길을 걸어가는 과정은퇴위당한 황제가 고난의 길을 걸어가는 과정과 시기적으로 일치한다.

먼저, 대혁명 이전에 한갓 노동자에 불과했던 고리오는 1789년 대혁명으로 희생된 주인집 사업체를 손에 넣고, 1793년의 혼란을 틈타서 큰 재산을 모았다가 나폴레옹이 최초로 크게 패한 라이프치히 전투 때인 1813년 사업을 포기하고 보케르 하숙집 신세를 지게 된다.
다시 나폴레옹의 운명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는 워털루 전쟁 때, 즉 1815년에 고리오는 그 한심한 하숙의 2층에서 더욱 옹색한 3층으로 옮아감으로써 하숙 안에서도 본격적인 몰락의 길을 밟기 시작한다.
이야말로 그에게는 나폴레옹의 유배에 버금가는 고립과 냉대의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 P91

이제 영감은 황제 부인의 말처럼 "포리오", "모리오", "로리오", "도리오" 등으로 이름마저 정확히 기억되지 않을만큼 미미한 존재, 즉 그 정체성을 상실한 존재일 뿐이다. 그리고 소설 끝에 이르러 고리오가 사망하는 1821년은 나폴레옹이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사망한 해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이 늙은 고리오 영감이 보여주는 거의 병적인 부성애의 붕괴 과정이 시기적으로 정확하게 일치하는 나폴레옹의 몰락과 궤를 같이함으로써 프랑스의 정치사적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고리오와 두 딸은 당시 프랑스 사회를 구성하는 세 계층의 미묘한 상관관계를 거의 알레고리에 가까울 만큼 뚜렷하게 드러내보이고 있다. 앞에서 이미 설명했듯이 고리오는 혁명 이전에 그저 국수공장의 노동자에 불과했다가 대혁명을 계기로 부를 축적해 점차 부르주아지의 반열로 상승했다. 그러나 만년에는 다시금 명백한 하층민의 신분으로 추락해 사망한다. 반면 그의 두 딸 중 한 사람인 아나스타지는 포부르 생제르맹의 대귀족 드 레스토와 결혼했고, 둘째 딸 델핀느는 이제 상승일로에 접어드는 자본 부르주아인 은행가뉘싱겐과 결혼했다. 따라서 당시 상황으로 보아 아나스타지 드레스토 부인은 이미 득세한 귀족 계층에 편입되었고, 뉘싱겐 부인은 아직도 포부르 생 제르맹 무도회에 초대받기를 간절히 바라는 신흥 부르주아지 계층에 속해 있다. 그러나 소설의 끝에 이르러 고리오 영감을 매장하고 난 야심가 라스티냐크가 선택한 쪽은 미래에 득세할 계층인 은행가 뉘싱겐 부인 댁이다. 고리오 집안의 갈등은 이처럼 당시 프랑스 사회를 구성하는 계층간의 갈등을 거의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 P91


가정에서는 아버지의 권능이 국가차원에서는 절대왕권과 황제의 위용이 여지없이 무너져 가는 시대의 소설 「고리오 영감』에서 모든 하숙생이 하나씩 떠나 버리는 순간, 절망한 보케르 부인이 자신의관점에서 요약하는 프랑스 역사는 그래서 특히 주목해볼 만하다.
보케르 부인은 말한다. "우리는 루이 16세가 처형당하는 것도 보았고, 나폴레옹 황제가 몰락하고 다시 돌아왔다가 또다시 몰락하는 것도 보았다." 보케르 부인은 그런 모든 사건은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이라고 말한다. 고리오의 운명이 역사적 필연에 따른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생각을 피력한 것이다. 왜냐하면 고리오의 부성애와 부권은 어느 면에서 보면 역사 진행의 필연성과 맞물린 의미를 지니고있기 때문이다.
고리오 영감은 소설의 표제에서부터 등장해 ‘그림의 모든 조명‘을한 몸에 받았고, 그의 죽음과 더불어 소설이 종결된다는 점에서 단연이 작품의 중심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고리오 영감을 독립된 소설 자체로 해석하느냐, 아니면 《인간 희극》이라는 전체 조망속에 놓고 보느냐에 따라 작품의 의미는 달라진다. 발자크의 방대한작품 세계가 아직은 앞으로 완성해야 할 대사원의 한갓 청사진에 머물러 있던 1835년 당시의 독자들에게 《고리오 영감》의 주제는 물론 비극적인 부성애 바로 그것이었을 터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알고있는 <인간 희극》 전체의 틀 속에 놓고 보면, 고리오 영감은 오직 이 작품 한 편에만 등장했다가 결국 그 마지막 페이지에서 퇴장하는 막간의 한 인물에 불과하다. 반면에 또 하나의 주요 인물인 라스티냐크는 이 소설뿐만 아니라 《인간 희극》전체에서 무려 25편의 소설에 재등장하는 가장 핵심적인 인물 가운데 하나다. - P92

현실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1. 서론

스탕달, 발자크, 플로베르, 졸라 등 19세기에 등장한 이른바 ‘현대작가들‘은 소설이 단순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시대와 사회, 다시 말해서 변화하는 역사의 산물임을 자각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 소설이라는 장르 자체에 대한 ‘반성적 태도‘를 첨예하게 드러낸다. 이를테면 그들은 소설을 쓰는 동시에 "소설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이리하여 소설은 단순한 이야기를 넘어 삶과 어떤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을 그 구조와 스타일 속에 은연중에 반영하게 된다.

① 스탕달은 소설 장르에 대해 반성하면서, 그것이 곧 ‘부르주아 시대의 극‘이요 사회를 비추는 ‘거울‘임을 자각해 ‘정치‘ 소설을 썼다.
② 발자크는 인물의 재등장이라는 독특한 장치를 통해 <인간 희극>에서 호적부와 경쟁하며 당대 사회의 전모를 드러내는 방대한 벽화를 그리고자 한다. 그는 소설의 나폴레옹이 되려고 했다.
③ 플로베르는 ‘스타일‘을 창조하기 위한 글쓰기의 고행에 삶을 바친다. 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한 권의 ‘무‘에 관한 책이다. 그는 ‘시점‘point of view문제에 천착하면서 상대주의 세계관을 드러내 보이고, 현실의 내면과 외면의 상관관계를 소설의 형식에 투영하고자 한다 . - P141

④ 졸라의 자연주의는 과학(생리학----유전)적 야심을 가지고 실험소설론을 수립하고자 하는 한편, 새로이 떠오르는 계급인 노동자의 누추한 삶에 확대경을 들이댄다.
⑤ 프루스트는 예술로 변한 삶, 진정한 삶을 찾아 글쓰기의 장거리 고행 길을 나선다. 그에게는 예술이 곧 삶의 참모습이었다.
⑥ 카뮈는 예술, 특히 문학은 인간에게 주어진 조건, 즉 유한한 삶의 조건에 반항하는 ‘수정된 창조‘라고 생각한다. 그는 부조리 인식에서 출발해 반항과 절도와 사랑의 문학에 이르고자 한다. - P142

2. 귀스타브 플로베르


(1) 《마담 보바리》에 대하여

① 1857년 《마담 보바리》의 해

1857년은 소설 『마담 보바리』와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이 발표된 해로, 프랑스 문학사에서는 가히 ‘현대‘의 출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두 작품은 또한 "공중도덕과 종교에 위배된다"는 혐의를 받고 차례로 제2제정의 법정에 소환되었다. 역설적이게도 이 위대한 두 작품은 먼저 소송 사건을 통해서 대중의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그것은 당시 작품이 발표될 때의 한 삽화에 불과하다.
15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마담 보바리》는 현대 소설의 비켜 갈수 없는 교차로에 위치한 최대의 고전으로 인식되고 있다. -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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