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르미날의 구상과 소설의 배경
「제르미날』의 배경이 된 1866~1867년을 전후로 프랑스의 탄광들에서는 크고 작은 충돌과 파업이 잇따라 발생했다. 1862년과 1864년에는 카르뱅Carvin과 비쿠아뉴Vicoigne에서 임금과 작업 시간 단축 문제로 파업이 발생했다. 1867년에는 레 부슈뒤론es Bouches-du-Rhine지방의 퓌보 Fuveau 탄전에서 300여 명의 광부들이 국제노동자협회 지부를 결성했다. 1869년에는 오Aubin 의 광부들이 대표단의 이름으로임금과 퇴직연금, 의료 체계와 관련된 요구 사항을 적은 편지를 졸라가 기고가로 활동하던 <라 트리퀸>에 보냈다. 1870년에는 크리조Creuzot 탄전의 광부들이 파업에 실패한 후 졸라의 소설을 예고하는듯한 어조로 선언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중 몇몇 충돌 과정에서는 유혈 사태가 빚어졌다. - P381
1867년 6월 16일, 리카마리 La Ricamarie의 생테티엔 Saint Etienne 단전에서는 군인들이 파업중인 광부들에게 발포해 두 명의 여성을 포함한 열세 명의 사망자와 아홉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1869년 10월 7일, 아베롱Aveyron 지방의 오빵 탄광에서는 "제르미날의 제6부 5장서 펼쳐지는 광부들과 군인들의 대치 장면을 예고하는 듯한 유혈 충돌이 발생했다. 그 결과로 모두 열네 명의 사망자와 스무 명의 부상자가 생겨났다. 그 무렵,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의 도래에서 비롯된 사회적인 혼란과 때를 같이하여 새로운 경제적, 정치적 이론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1864년 5월에는 노동자들에게 파업과 동맹의 권리가 처음으로 부여되고, 9월 28일에는 영국 런던에서 최초의 국제적인 노동운동 조직인 국제노동자협회(제1인터내셔널)가 결성되었다. 카를 마르크스는 결성 선언문과 규약을 작성하는 등 국제노동자협회의 결성을 적극적으로 지도했다. 1867년에는 마르크스의 『자본론』 제1권이 출간되었으며, 1875년부터 프랑스어로 번역되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반대는 1883 년 출간된 라블레예Laveleye의 저서 『현대 사회주의Le Socialisme contemporain』에서 언급된 다양한 이데올로기의 흐름으로 나타났다. 졸라는 제르미날의 등장인물들인 에티엔, 라스뇌르, 수바린이 정치적 논쟁을 벌이면서 제시한 논거를 위해 이 책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1850년경부터 프랑스에서 생겨나기 시작한 좌파의 다양한 경향은 대체로 마르크스에게 영향을 받은 사회주의사상과 프루동의 이론에서 비롯된 무정부주의적 사상으로 대표되는 두 가지 이데올로기적 흐흠으로 요약할 수 있다. - P382
사회주의사상은 1881~1882년부터 두 개의 조직으로 뚜렷이 나뉘었다. 쥘 게드가 이끄는 ‘프랑스 노동당(PartiNouvrier français, 약칭 POF)‘은 집산주의를 내세워 강경하고 권위적인 태도(소설 속에서 에티엔에 의해 대변되는)를 취했으며, 브루스와 조프랭Joffrin이 이끄는 ‘프랑스사회주의노동자연맹(Fédération des travailleurs socialistes de France, FTSF)Brousse개혁은 가능한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진화론적 기능주의 정치 (라스뇌르의 주장의 근거가 되는 이론)를 구현하고자 했다. 한편 수바린에 의해 대변되는 무정부주의 운동은 19세기 말 수많은 테러를 야기했다. 1878년에는 이탈리아 왕, 1879년에는 스페인 왕에 대한 테러 시도가 있었고, 1881년에는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가 폭탄 테러로 사망하기도 했다. 졸라는 특히 1871년에 발생한 피비린내 나는 파리코뮌을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정치적‘인 색채를 띤 두번째 노동자(민중) 소설을 써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처음에는 파리를 배경으로 구상되었던 두번째 민중 소설은 1880년경 탄전 지역에서 발생한 중대한 파업들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게 되었다. 1878년 프랑스 북부 앙쟁Anzin에서 파업이 발생했고, 그에 관한 기사가 1878년 7월 23~28일자 <르볼테르>에 상세하게 실렸다. 1882년에는 몽소레민의 노동자들이 파업을 감행했고, 의회에는 탄광법에 관한 법안들이 날로 쌓여갔다. 그리고 마침내 1883년, 프랑스 광부들의 청원서 Les Cahiers de doléancesdes mincurs français가 발표되었다. - P383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보며 졸라는 제2제정기(1852~1870)에 발생했던 피비린내 나는 파업들에 대한기억을 떠올리게 되었고, 1880년 모리스 탈메르Maurice Talmeyr의 『갱내 가스Le Grisou』를 비롯해 광부들의 세계에 관한 몇몇 소설의 출간에 주목하기도 했다. 졸라가 탄광에 관한 소설을 진지하게 구상한 것은 1883년 무렵부터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때까지만 해도 졸라는 소설의 배경으로부르고뉴 지방에 있는 크뢰조 탄전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러다1883년 여름, 졸라는 휴가차 떠난 브르타뉴의 베노데Bénodet에서 우연히 발랑시엔의 사회주의자 하원의원 알프레드 지아르Alfred Giard를 만나게 된다. 그는 졸라에게 프랑스 북부 탄광에 관한 자료 수집차 자신의 집에 머물 것을 권유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후 1884년 2월앙쟁에서 또다시 파업이 발생했다. 1만 2천 명의 광부가 참여해 두 달씩이나 이어진 역사상 가장 길고 거대한 규모의 파업 중 하나였다. 알프레드 지아르는 졸라에게 편지를 보내 다시 그를 초대했고, 졸라는 며칠 후 발랑시엔을 방문했다. 졸라는 지아르의 집에 머물면서, 그의 비서로 자신을 소개해 탄광촌과 탄광회사 건물들과 갱들을 방문하고 조사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그리하여 드냉 부근에 있는 르나르Renard 갱을 방문해, 극심한 폐소공포증에도 불구하고 675미터아래 땅속까지 내려가 갱도 내의 상황을 세밀하게 살펴보았고(졸라는이러한 체험을 "지옥으로의 하강"이라고 표현했다), 탄광촌을 방문해 그곳의 실상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며 그 모든 사실을 하나도 빠짐없이 적어나갔다. 이처럼 치밀한 현장 답사와 상세한 기록으로부터 제르미날』의 집필을 위한 가장 중요한 자료 중 하나이자 작가의 상상력의 원천이 된 <앙쟁에 관한 노트>가 탄생했던 것이다. - P384
‘제르미날‘은 말 그 자체로 역사적이고 혁명적인 울림을 담고 있다. 제르미날은 공화력의 일곱번째 달(3월 21(22) 일~4월 19(20) 일로서 ‘싹트는germer 달‘을 의미하며, 굶주린 민중이 국민공회에 빵을 요구한 것도 혁명력 3년, 제르미날의 열두번째 날(1795년 4월 1일이었다. 배고픔과 반란을 상징하는 ‘제르미날‘은 소설 『제르미날』을 혁명의 위대한 신화가 되게 했다. 또한 ‘제르미날‘이라는 말은 그것이 포함한 암시적인 의미 외에도 단어 구성의 특별함을 지니고 있다. ‘Germinal‘이라는 단어에는 싹이 튼다는 의미의 ‘germer‘, 탄광을 뜻하는 ‘mine‘, 그리고 공화력을 의미하는 ‘al (almanach)‘이 포함되어있다. - P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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