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체화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그리스의 여성화가인 코라(Kora)는 막 동트기 시작하는 아침 햇살속에서 그녀의 침실 벽에 드리운 애인의 실루엣을 목탄으로 그리고 있었다. 때는 기원전 7세기, 장소는 그리스의 코린트(Korinth)였고, 코라가 그리고 있던 것은 인간의 벗은 몸이었다.
코라는 이별의 아픔 속에서도 애인의 모습을 영원히 간직하기위해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날 아침, 그녀의 애인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를 전쟁터로 떠나야만 했다. 이것이 유럽 문화권에서 최초로 여성의 손에 의해 나체화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 이후 20세기까지 여성화가들에 의해 나체화가 그려졌지만 그 노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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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민족 신화의 세계는 여신들의 세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직조기로 옷감을
짜듯이 생명을 만들어내는 다양한 여신들은 소수민족 신화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소수민족 신화가 가지고 있는 부드러움과 온화함, 우아함과 따뜻함은 바로 그들의 신화 세계를 채우는 자애로운 여신들의 힘 덕분입니다. 그런가 하면 소수민족 신화에는 지혜나 지식에 대한 존경심이 자주 보입니다. 물질적인 자산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정신적 유산입니다. 그들은 지식이나 지혜가 없는 세상에는 희망이 없다고 말합니다. ‘경제‘라는 단어에 매몰되어 있는 현대의 우리에게 그것은 참으로 신선한 충격입니다. - 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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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친 정권은 무너져가는 소련 정부의 뒤를 이었다. 소련 소속의 공화국들이 새로운 연방을 결성하는 데 동의했다.
1991년 12월 25일에 고르바초프가 소련의 대통령직을 사임했으며, 같은 날 소련도 해체되었다.
아나톨리 솝차크가 레닌그라드의 시장으로 선출되고 블라디미르 푸틴이 국제관계 고문으로 임명된 때가 바로 이 시기다. 시민들이 투표를 통해 레닌그라드를 소련 이전의 원래 이름인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다시 바꾸는 것에 찬성한 때이기도 하다.
- P27

일단 정치적 상황이 안정되기 시작하자 마리나 살에는 감쪽같이 사라진 9000만 독일마르크어치의 육류위탁물에 대한 조사를 재개한다.
그녀는 이 거래를 협상한 남자의 이름이블라디미르 푸틴이라는 것을 밝혀낸다.
그곳의 주요 업무는 다른 나라에서 식품을 수입해서시에 공급하는 일이었다.
푸틴의 부서는 시장실 산하의 국제관계위원회라는곳이었다.
푸틴살예는 푸틴의 부서가 합법성이 의심되는 다수의수출 계약에 관여한 사실을 발견한다. - P28

당시 러시아 화폐 루블의 가치는 보잘것없었지만.
그 대신 러시아에는 기름, 금속, 목재, 면화 등거래 가능한 천연자원이 매우 풍부했다.

미심쩍은 계약서들에 적혀 있는 회사들은 천연자원을 수출하고 식료품을 수입하기로약속했다.

살에는 이런 계약서들에 법적 효력이 없다는 사실을 숙달된 법조인인 푸틴이 모를 리 없다고확신했다.

원자재들은 계약서에 적한 대로 수출된 것 같은데 들어와야 할 식료품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는 명백히 법적 하자가 있는 계약서를 꾸미고,
그런 계약서를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무턱대고 수출 면장에 허가 도장을 찍을 사람과 결탁해 벌인 사기극이 분명했다. - P29

세관은 의심 없이 국경을 열었을 것이고, 원자재는해외로 실려 나가 팔렸을 것이며, 그 돈은 누군가의주머니로 들어간게 틀림없었다.
살예는 감쪽같이 증발한 돈 9200만 달러에 대한 증거를 가지고 있었고 시청의 또 다른 공금9억 달러에 대해서도 의혹을 품었다.
증거시의회는 솝차크 시장에게 푸틴과 그의 부하직원알렉산더 아니킨을 해임할 것을 요구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모스크바에 10억 달러어치의원자재 수출을 승인받았다. 즉 살예가 찾아낸12건의 조작된 허위 계약서에 적힌 금액은 푸틴의 부서를 거쳤을 전체 액수의 10퍼센트에 불과했다.
시의회는 증거를 검토하고 나서 그 돈이 횡령당했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솝차크는 부패에 맞서 행동하는 대신 시의회를 폐지해버린다. - P30

1990년대 초 러시아에서는 극소수 사람들이 아주빠른 속도로 갑부가 되었다. 부패가 엄청나게 만연하던 시기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시민 네 명 중 세 명은 빈곤선에도 못 미칠 만큼 가난했다.

도시에 있는 대형 아파트 건물들은 엘리베이터가 작동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었다.

그러나 평범한 보통 사람들에게는 소련 해체후의 혜택이 전혀 돌아가지 않았다.

도시의 사회기반시설은 붕괴하고 있었고,
대중교통은 중단됐다.

그러나 솝차크 시장은 도시가 쇠락해가는 걸 감지하지 못하는 듯 부유한 유명인사 생활을계속했고.… - P31

위급한 상황을 넘긴 솝차크는 치료를 더 받아야한다며 프랑스로 출국한다.
솝차크는 1999년까지 러시아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러시아 조사관들의 손이 닿지 않는 파리에서자진 망명 생활을 계속했다.
전직 KGB 상관들이 푸틴의 서열 상승에 어떤 영향력을 미쳤는지 알려진 바는 없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손이 관련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기는 어렵다.
구급차에서 내린 솝차크가 거의 뛰다시피 비행기에 오르는 걸 목격한 공항 직원들은그의 건강 상태가 양호해 보였다고 진술했다.
그러는 사이 그의 전 부시장이었던 블라디미르푸틴은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서도 점점서열이 높아지며 승승장구한다.
1998년에 푸틴은 대통령 행정부의 제1부부장직을 맡는다. - P33

해가 갈수록 옐친은 점점 더 술에 절어 불안정한
리더의 모습을 보였다.
촉망받던 정치인은 어느새 사라지고 비틀거리고 당혹스러운 모습으로 희화된다.
측근들을 살피던 옐친의 눈에 블라디미르 푸틴이 들어온다.
옐친은 자서전 《미드나잇 다이어리스MidnightDiaries>에서 손쉬운 스트레스 해소 방법으로 술을 가까이했다고 말했다.
그런 옐친에게 필요했던 것은 대통령직에서 물러난후 부패 혐의를 피할 수 있는 확실한 후계자였다.
옐친은 푸틴이 다른 보좌관들과 다르다는 점을기억했다. 푸틴은 러시아와 세계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제시하려 하지 않았고 옐친과 말을 섞기 위해 애를 쓰지도 않았다. 그래서 옐친은 오히려 그와 더 얘기를 나누고 싶어졌다. - P37


1998년, 푸틴은 KGB의 후신인 러시아연방보안국 FSB의 국장이 된다.
1999년, 옐친은 푸틴을 총리로 임명한다.
그해 12월 옐친은 텔레비전 생방송으로 사임을 발표하고...
총리인 블라디미르 푸틴을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지명한다. - P38

푸틴이 대통령 후보가 된 것에 분노한 마리나 살예는  공개적으로 의견을 밝힌다.
그녀는 설득력과 통찰력이 있는 글로 푸틴을 공격했고, 부패와 올리가르히와의 유착을 지적하고 비난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소외당했음을 알게 된다. 우익자유주의연합 모임에서 100명이 넘는 사람 중 푸틴에 반대하는 표를 던진 사람은 오로지 그녀와 옐친의 첫 번째 총리였던 예고르 가이다르뿐이었다.
살예는 또 다른 자유주의 정치인 세르게이 유셴코프와 연합하려 했다. 유셴코프는 민주주의와자유 시장 경제 개혁 및 인권 옹호 시위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유셴코프의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어떤 남자가 있었다. 몇 년이 지난 후에도 그녀는 그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 P39

살예는  그 남자가 거기서 뭘 하고 있었는지,
그녀가 도착했을 때 유셴코프가 그를 왜내보내지 않았는지 알 수 없었다.

정체불명의 남자가 살예에게 어떤 협박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살예는 그날 이후 종적을감췄다. 그녀는 멀리 떨어진 외딴곳으로 이사를하고 이후 10년간 어떤 기자와도 만나지 않았다.

그녀와 유셴코프가 할 얘기가 사적인내용이었음에도 남자는 자리를 비키지 않았고,
살예는 유셴코프가 그를 내보낼 수 없는상황이었다고 결론지었다.

세르게이 유셴코프는 푸틴을 지지하는동료들에게 반대하며 의회의 자유주의파벌을 탈퇴한다.

2003년 4월 17잉 유센코프는 모스크바 북쪽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로 걸어가다가 가슴에 총알 여러 발을 맞는다.…. - P40

그러나 보이는 것이 다 진실은 아니었다. 랴잔에 폭탄을 설치한 남자 두 명과 여자 한 명이 체첸의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소련 시대 KGB의 후신 기관 중 하나인 FSB 소속임이 밝혀졌다. 이 요원들이 지역경찰에 체포되자 FSB 국장 니콜라이 파트루셰프는 폭탄은 가짜였으며 훈련의 일환으로 랴잔에 설치한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실험 결과 폭탄에서 헥소겐 양성반응이 나왔다. 아파트 네 곳의 폭발에 사용된 것과 동일한 폭발물질이었다. 이러한 의혹들로 인해 아파트 폭발 사건이 사실은 "위장술책" 공격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체첸에서의 군사 작전 재개를 정당화하고 블라디미르 푸틴과 FSB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 FSB가저지른 짓이라는 것이다. - P45

푸틴은 언론에서 묘사하는 자신의 모습에 격분했고 올리가르히들을 일제 단속해 정치적 권력을 제한하겠다고 연명했다.
10월 중순, 검찰은 베레콥스키가 일부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러시아 국영 항공사 아에로플로트에서 스위스에 있는 회사로 수억대의 돈을 빼돌리고 있다는 혐의에 대한 조사를 재개했다.
베레콥스키는 즉시 러시아를 탈출해 구신스키처럼 망명했다.
베레콥스키는 푸틴과 그의 협력자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정치범으로 투옥되거나 정치적망명자 신세가 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할수밖에 없었다며 한탄했다.
베레콥스키는 채널 ORT의 지분을 또 다른 올리가르히인 로만 아브라모비치에게 팔았고,
아브라모비치는 즉시 그 주식을 나라에 되팔았다.
푸틴은 방송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지난 10년간러시아 군대를 파멸시키려 애를 써왔다고 주장했다.
또 그들이 군대를 옹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박살 내고 싶어 하며, 수십억 달러를 빼돌려 그 돈으로정치인들을 매수해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법을 만들려 한다고 비난했다.
푸틴이 권력을 잡은 지 1년도 채 안 되어 국가가연방 네트워크 3곳 모두를 장악했다. - P53

의식을 잃고 쓰러진 인질들은 의료적 조치가 필요했다. 그러나 도움을 받지 못한다.
정신이 들 때까지 회복 자세를 취해 옆으로 누워 있어야 했지만 똑바로 눕혀졌고, 그 탓에 많은 사람들이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자신의 구토물에 기도가 막혀 질식사했다. 90분이 지나서야 구급차가 도착했으나 가스중독 사상자들을 처치할 만한 기구가 갖춰져 있지 않았다. 당국은 어떤 가스인지조차 밝히지 않았다.
인질들은 건물 밖으로 실려 나온 후 그대로 극장계단에 방치됐다.
사망한 인질들의 숫자에 대해서로 다른 리포트가 나왔지만 적어도 130명 이상이었다. 대부분이 가스중독으로 목숨을 잃었다. - P58

러시아가 다시 장악하려고 시도한 구소련 공화국이체첸만은 아니었다.
우크라이나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러시아에서유럽으로 수출하는 가스의 85퍼센트가 우크라이나의 파이프라인 네트워크를 통해서 수출되었고,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다음으로세 번째로 큰 소련 공화국이었고, 우크라이나인구 30퍼센트의 모국어는 러시아어였다.
흑해에 있는 우크라이나의 크롬반도(크림반도)는여전히 러시아 해군기지의 모항이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분열 상태였다. 일부 서구 지향 정치인들은 궁극적인 EU 가입을 적극 지지했는데,
EU 가입은 푸틴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결과였다. - P60

폴리콥스카야는 기자들 사이에서 알려져 있고 인권 운동가들과 서구에도 이름이 알려졌는지 모르지만,
러시아의 정치권에 미친 그녀의 영향력은 아주 미미합니다. 그런 사람을, 더구나 여성이자 엄마인 그녀를 무자비하게 살해한 사건 그 자체가 우리나라에 대한 공격입니다. 이 살인 사건은 지금까지 그녀가 보도했던 어떤 기사들보다도 러시아와 러시아 현 정부, 체첸 현 정부에 더 많은 손상을 입혔어요.
러시아의 저널리스트는 매우 위험한 직업이다.
저널리스트 보호 위원회와 글라스노스트(개방)수호 재단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살해당하거나 의심쩍은 상황에서 목숨을 잃은 러시아저널리스트들이 수십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2009년 11월, 독립 방송인 올가 코톱스카야는 오랜 법정 투쟁 끝에 마침내 자신의 카스카드지역 텔레비전 채널을 되찾는 데 승리했으나 바로 다음 날 14층 창문에서 떨어져 숨졌다. - P73

2007년 12월, 푸틴은 자신의 뒤를 이을 대통령후계자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를 지목한다.
대통령이 되자마자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을 총리로 임명한다.
메드베데프가 처음 위기에 봉착한 것은 조지아때문이었다. 2008년 8월, 독립 영토인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를 두고 조지아와 러시아 사이에 계속된 긴장 상태가 전쟁으로 이어졌다.
2008년 3월, 메드베데프는 70퍼센트의 득표율로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다.
러시아 사람들 대부분은 푸틴과 그의 실세들이 여전히 러시아를 쥐락펴락한다고 여겼다.
조지아가 나토 가입을 추진하면서 몇 달 동안 긴장 상태가 고조되던 중에 벌어진 마찰이었다. - P88

조지아 대통령 미하일 사카쉬빌리가 군대에 남오세티야의 수도 츠힌발리 점령을 명령하자 러시아가 방어에 나섰다. 러시아군이 국경으로 이동했고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에 있는 조지아 주둔 지역을 공습했다.
미국과 영국, 나토가 휴전을 요구했지만 충돌은 5일간 계속됐다. 러시아가 재빨리 츠힌발리를 장악했고 러시아의 탱크와 군부대가 오세티야를 지나 조지아로 진격해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에서겨우 48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멈춘다.
이 싸움에서 러시아가 승리하면서 조지아에 굴욕을안겨주었다. 이 과정에서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고남오세티야에 거주하던 조지아 민족 수천 명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났다.
결과적으로 러시아군은 조지아에서 철수했지만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 분리 지역에 군대를 주둔시켰다. - P89

‘유로마이단euromaidan‘으로 알려진 정치 운동이일어난 것이다. 시위의 참가자들은 유럽연합과의 밀접한 관계 형성을 지지하며 야누코비치 추방을 요구했다.
크롬반도에서는 우크라이나 탈퇴와 러시아 연방가입을 지지하는 여러 건의 시위가 일어났다.
그러자 야누코비치의 전통적 지지기반이자 대체로친러시아권인 동부와 남부 우크라이나 일부시민들도 러시아와의 긴밀한 연합을 지지하며 시위를 시작했다.
2014년 2월, 경찰 및 보안군과의 충돌로 시위 참가자 70명 이상이 사망했고 남아 있던 야누코비치 및 그의 행정부 지지 세력도 허물어졌다.
2월 22일, 야누코비치가 이 사건을 쿠데타라고 비난하며 수도에서 도망쳤을 때 의회는 투표를 통해야누코비치를 탄핵했다. 검찰이 수도 키이우 외곽에 있는 그의 자택에 들이닥쳤고 우크라이나 정부는 대량 학살 혐의로야누코비치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 P98

야누코비치가 러시아로 도망친 후 며칠 뒤 유로마이단 운동에 반대하는 무장 괴한들이 크롬반도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이들 부대(사실은 러시아 특수부대)가 크림반도 의회를 점령한 뒤 크림반도 지도부는 우크라이나에서의 분리독립을 투표에 부친다.
그러자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우크라이나 군인과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분리주의자들 간에 분쟁이시작됐고, 2018년까지 계속됐다. 이 기간에 1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속출했다.
아무 표식이 없는 녹색 제복을 입은 러시아군인들이 곳곳에 검문소를 설치했는데 지역주민들과 여론은 이들을 ‘리틀 그린맨‘이라 불렀다.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킨 투표에 이어 2014년3월 중순, 크롬반도는 러시아 연방에 합병된다.
러시아 영토보리스 넴초프는 합병과 전쟁을 비판하는 소수의 러시아 정치인 중 하나였다. 그는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 영토의 일부로 보았고 러시아의 합병은불법이라고 생각했다. - P99

우크라이나에서 계속되는 전쟁 외에 러시아는 중동에서 발생한 전쟁에도 관여한다. 2011년 3월,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이 이끄는시리아 정부는 나라 곳곳에서 벌어진 친민주주의시위로 난관에 부딪힌다.
시리아 정부는 경찰과 군대, 의회 군까지 동원해서시위대를 잔혹하게 진압했다.
정부의 만행에도 반대 시위는 계속됐다.
2015년, 푸틴은 알아사드 대통령의 원조 요청에응답한다. - P108

2015년 9월 30일, 반군 단체에 대한 알아사드의 정식 군사 지원 요청을 받아들인 러시아는 시리아에 공습을 감행한다.
러시아의 개입을 정당화하기 위해 푸틴은 미국을 비난했다. 미국은 중동 지역에서 벌어진 전쟁에 깊이 관여했는데, 당시 러시아는 그런 개입에 대체로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민주주의와 진보의 승리 대신 폭력과 빈곤, 사회적재앙만 불러왔어요. 생존권을 포함해 인권에관심을 두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푸틴은 테러 단체인 ‘이슬라믹 스테이트 IslamicState, IS‘와 맞서 싸우는 것이 목적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외에도 알아사드에 반대하는 다른 반군들도 공격했다. 그중에는 서구의 지원을받는 반군들도 있었다.
그래서 결국 어떤 결과가 나왔습니까? 공격적인 외국(미국)의 개입으로 개혁을 이끌어내기는 커녕뻔뻔하게 국가기관의 파괴만 초래했을 뿐입니다.
시리아에도 그런 잔혹 행위가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러시아가 개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푸틴의 주장이었다. - P109

그러나 5년이 훌쩍 지난 지금, 러시아는 푸틴이 초래하지 않겠다고 장담했던 상황을 그대로 저질러 놓았고 시리아는 폭력과 가난, 사회적 재앙에 시달리고 있다.
시리아는 "뻔뻔하게 파괴‘당했고,
특히 2016년에 알레포에 김행된 잔혹한 공격이 대표적으로 보여주듯 도시는 산산조각이 났다.

인권 측면에서 보면 시위자들을 고문해서 내전을 조장한 알아사드 정권이 여전히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2020년 1월 4일, 전쟁 감시단인 시리아인권관측소는 전쟁이 시작된 후로 38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발생했다고 발표했다.
- P110

서구와 러시아 사이에 가장 큰 논란이 되는 쟁점은 시리아군이 민간인을 대상으로 화학무기를 사용한 것을 러시아가 승인하고 은폐했다는 점이다.
베를린에 있는 세계공공정책연구소CPPI 연구원들은 시리아 및 여러 나라의 협력 단체들과 함께 2011년부터 발생한, 입증되거나 확인된 345건의 화학무기 공격에 관한 자료를 발표했다. 수년간 힘들게 연구 조사한결과였다.
GPPI에 의하면 화학무기 공격의 약 98퍼센트는 알아사드 정권이 저지른 만행이며, 주로 공중에서 떨어졌고,
나머지는 IS의 책임이었다. - P112

GPPI 연구 결과에 따르면 특히 염소 폭탄 사용이알아사드 정권 군사전략의 핵심이라고 한다.
염소공기보다 무거운 염소는 이런 최후의 피난처에스며든다. 결국 사람들은 집과 터전을 버리고 도망갈 수밖에 없게 된다.
우리는 조사 결과를 통해 지상의 시리아인들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알고 있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제 화학무기는 시리아 정부의 일반 무기 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전형적인 폭탄이 터지면 시민들은 지하 터널이나 지하실로 대피하는데,
GPPI의 연구원 토비아스 슈나이더는 이렇게 말한다.
수년간 국제 사회가 지켜보는 가운데 거의아 무런 처벌도 없이 마구 사용됐고요. - P113

시리아에서 벌어지는 알아사드의 전쟁 범죄들에 관해 거짓 정보를 퍼뜨리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러시아의 트롤troll들과 허위 정보 매체들이었다.
그들은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알아사드 정권의 화학무기 사용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 내용에 의혹을 제기했다.
• 트롤-인터넷에서 공격적이고 불쾌한 내용의 글을 올리거나 악플을 다는 등 고의적으로 파괴적인 행동을 일삼는 사람
 
트롤과 러시아 언론들은 또 시리아 민방위대인
‘화이트 헬멧White Helmets‘ 과 같은 민간 구조대를 겨냥해 허무맹랑한 얘기들을 퍼뜨렸다. 그들이 공격을 감행했다거나 테러리스트 그룹과 결탁하고있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늘어놓는 식이었다.
이 보고서는 2015년 미국 국무부의 조사 내용을 인용했다. 조사 내용에 따르면 러시아는 국내외 정책 목표 추진을 위한 프로파간다와 싱크탱크를 지원하는 데 연간 14억 달러를 투자한다고 한다.
2018년 대서양위원회가 발표한 보고서에는 이런 내용이 실렸다. "러시아는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에 대한 서구 정책에 영향을 주고 서구 사회에 혼란을 일으키는 것을 목표로 제일 먼저 시리아 혁명에 관해 전혀 다른 엉뚱한 얘기를꾸며내 적극적으로 퍼뜨리고 있다."
대서양위원회의 또 다른 보고서는 정보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핵심 인물로 알렉산더드보르니코프 장군을 언급했다. - P114

이건 말할 수 있다. 정보 작전이 없었다면 시리아의알레포, 데이로 알주르, 구타에서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러시아 선전원들은 이런 방법으로 비주류적 의견과음모 이론에 합리성을 부여해 ‘날조된 여론‘을만들어낼 수 있었다.

구소련은 그들의 나라를 이상적인 사회로 그리는데 그쳤어요.-데이비드 파트리카라코스

이들은 선동자들의 네트워크에 힘입어 찬말아사드성향 블로거들과 대안 우파인 알트라이트 at-right언론인들, 그리고 자칭 반제국주의자라는 사람들이 무차별적으로 쏟아내는 콘텐츠들을 소셜 미디어알고리즘을 이용해 마구잡이로 퍼 나르면서 정보전을 펼쳤다.

소셜 미디어가 21세기의 전쟁을 어떻게 재구성하는지 논하는 《워 인 140 캐릭터스War in 140Characters》의 저자 데이비드 파트리카라코스는이렇게 말한다.
이런 테크닉이 바로러시아 프로파간다의 핵심입니다.
반면 지금의 러시아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수많은얘기를 꾸며내서 혼란을 일으켜 사람들이 진실을 보면서도 깨닫지 못하게 만드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 P115

러시아는 왜 시리아에서 전쟁을 벌였을까?
푸틴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그녀는 러시아가 알아사드에 대해 어떤 확신이있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본다. 푸틴이 중동문제에 개입하는 부분적인 이유는 러시아가 세계 문제에 대해 발언권을 가지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푸틴은 러시아가 무시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을 가진존재라는 걸 어떻게든 보여주고자 합니다.
런던 정치경제대학교의 국제 관계 분야명예교수인 마고 라이트는 러시아가 자기들이익만 생각할 뿐 시리아의 이해관계는 안중에도 없다고 말한다.
시리아내전의 평화 협정을 중재하려면 러시아와도 협의를 거쳐야 해요.
또 한편으로는 중동 지역이 영국이나 미국보다는러시아에 근접해 있기 때문에 그 지역이 불안정해지면러시아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지요. - P116

2016년 10월 7일, 국토안보부와 국가정보부 선거 보안팀에서 성명을 발표한다.
정보부는 최근 미국 시민과 기관들을 상대로 발생한 이메일 해킹이 러시아 정부의지시에 의한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2017년 1월 3일, 폭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어산지는 해킹한 민주당전국위원회 이메일을 자신에게 제공한 것은 러시아 정부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2016년 12월 29일, 오바마는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기 전 마지막 활동으로 해킹에 관여한 러시아인여섯 명의 이름을 밝히며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 조치를 발표한다. 추가로 러시아 외교관 서른다섯 명에게 추방 명령을 내렸다.

2017년 5월 17일, 미국 법무차관 로드 로젠스타인은전 FBI 국장 로버트 뮬러를 특별 검사로 지명하여러시아 개입 의혹에 관해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한다. - P120

뮬러가 조사할 여러 사건 중 하나는 2016년6월 9일에 있었던 일이었다. 도널드 트럼프의 아들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
트럼프의 사위 자레드 쿠슈너.
이 만남을 주선한 롭 골드스톤은 트럼프주니어에게 이메일을 보냈는데…선거캠프 본부장 폴 매너포트이 세 명이 뉴욕에 있는 트럼프 타워에서 러시아인변호사와 비밀리에 만난 모임이었다.
트럼프 주니어의 아버지가 선거에 승리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러시아 정부가 그에게 힐러리클린턴에 관한 불리한 정보를 전달하고 싶어한다는 내용이었다. - P121

트럼프는 러시아 게이트 스캔들에 관련된 자신의 잘못을 은폐하기 위해 줄줄이 사면해주고 4년간의 선거 의혹을 마무리했다.
트럼프가 푸틴에게 끝없이 충성하는 이유나 푸틴의 명령 아래 러시아가 어떤 만행을 저질러도독재자를 비판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없다.
이번 대통령은 크렘린에 가장 특별한 선물이었어요.
트럼프는 블라디미르 푸틴이 트럼프의 백악관 입성을 돕기 위해 2016년 대선에 개입했을 때 그들의 공격을 지원하고 사주했다.
트럼프가 미국의 최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지 못한 진정한 이유는 시간이 지나야 드러날 것이다.
세계적으로는 미국의 입지 면에서,
국내적으로는 미국의 화합 면에서…. - P128

모든 분야를 통틀어 도널드 트럼프만큼 미국에 심한 손상을 입히거나 크렘린에 많은 이득을 준 대통령은 지금까지 한 명도 없었어요 그것이 그의 유산이 될 겁니다.
세계보건기구에서 탈퇴한다고 발표했으며,
나토의 미래에 의문을 제기했고,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으로 인한 높은 사망률과 경제 침체로 미국의 도덕적 권위 또한 약화되었고,
트럼프 대통령 체제에서 미국은 국제 기존 협정과 핵무기 협정을 파기했고,
독일과 같은 동맹국을 적대시했다.

인종차별 문제로 전국이 들끓었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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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십 년간 러시아의 돈은 끊임없이 서구권으로 흘러들어 정치 체계를 간섭하고 사업가와 정치인들을 매수했으며,
정당들을 부패시키고 정국 불안을 초래하여 독재주의의 출현을 지원했다. 이런 점들이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터지고나서야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오랫동안 알고도 모르는 척 의도적으로 외면해온 영국의 매체들도 마침내보리스 존슨과 그의 보수 정당이 러시아의 올리가르히Oligarch *들과 결탁하고 있다는 증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같다. 지금 영국에는 세탁된 러시아 돈이 넘쳐나고 있다. 러시아 국민에게서 훔쳐낸 피 묻은 돈이다. 어쩌면 이번에는 영국이 금융 제도 재정비에 나설지도 모르겠다. - P5

어린 푸틴은 사방이 쓰레기 천지고 마당에 쥐가 들끓는 아파트 단지에서 자랐다. 그는 다른 아이들보다어리고 체구도 작았다. 하지만 절대 밀리지 않았다. 어린 시절 동급생이자 오랜 친구인 빅토르 보리센코의 회상에 따르면 푸틴은 누군가 자신을 깔보거나 무시하면 당장 달려들어 격렬하게 싸웠고, 물어뜯고할퀴고, 어떤 비열한 방법을 써서라도 자신을 무시한 사람에게 반드시 복수했다고 한다. - P9

전쟁이 끝난 후 푸틴의 아버지는 승객용 기차와 전철의 객차를 만드는 예고로프 공장에서 일했다. 그가 (당시는 KGB로 알려진)비밀경찰 예비 요원으로 지냈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 시기 일반적인직업에 종사하면서도 KGB를 위해 정보를 캐내 제공하고 그 대가로 돈을 받는 요원들이 수천 명에 달했다. 푸틴 일가가 상대적으로 잘 살았던 이유가 이것일 수도 있다. 푸틴의 집에는 텔레비전과 전화기가 있었는데, 보통의 소련 가정에서는 보기 드문 물건들이었다. - P10

1975년, 푸틴은 KGB에 들어간다.
KGB에 들어가기만 하면 흥미진진한 모험이 가득한 생활이 펼쳐질 거라고 기대했다면 푸틴의 실망이 매우 컸을 게 분명하다. 레닌그라드 같은 변방 지역에서의 KGB 생활은 서류 작업이 대부분이었다. 당시 푸틴은 이미 포화상태인, KGB에 넘쳐나는 특별한 목적 없는 젊은이 수천 명 중 하나에 불과했다. - P12

푸틴은 동독 비밀경찰인 슈타지와 러시아 사이의 연락책이었다.
또 KGB가 서구의 기술을 동구권으로 몰래 들여오는 데 도움을 줄 만한 과학자들과 사업가들을 포섭하는 데 관여했다. - P14

당시 KGB는 지멘스와 바이엘, 메서슈미트와 튀센을 비롯한 여러 독일 회사에 ‘자산asset‘이라고 불리는인물들 혹은 요원들을 심어놓았다.
푸틴은 또 ‘슬리퍼 에이전트sleeper agent‘들을 관리했다. 이들은 목표 국가에 심어놓은 첩자들로 활동 개시명령이 떨어지면 잠재적인 요원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다.
푸틴은 그런 요원들에게 존경심을 표했다.
소련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일념으로 사랑하는사람들과 자신의 삶을 뒤로 하고,
몇 년씩 조국을 떠나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매우 특별한 사람들이라며 오로지 엘리트만이할 수 있는 일이라고 믿었다. - P14

고르바초프는 반대 의견을 묵살하고 언론의 자유를억제하던 이전의 전체주의적인 권력 행사를 최대한자제했다.

그러다 보니 중앙 계획 경제는 계속 무너지는데정작 그것을 대체하는 민영기업은 없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는 사유권과 자유시장메커니즘으로 완전히 넘어가는 것에는 반대했다.
여기서부터 자본주의자 접근 금지변화는 퍼져나갔다. 1989~1990년 말, 동독과 폴란드, 헝가리 그리고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비공산주의 정부가 권력을 장악한다.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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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가르히(OJnutrapsu)는 지금의 러시아가 만들어진 원인과그 결과라고 볼 수 있는 존재다. 어원은 과두정을 뜻하는 그리스어 올리가르키아(buipxns)다. 정경 유착의 정점에 있는러시아식 재벌 집단이다. 아마 한국의 ‘재벌‘과 가장 비슷한의미를 지닌 말이 러시아의 올리가르히일 것이다. 국가를 등에 업고 성장하여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기업 집단. 하지만 러시아 출신인 내가 보기에는 올리가르히와 재벌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면이 있다. 특히 연구자들의 시각이 아닌러시아 출신 일반인이 보는 시각에서 그렇다. 아마 여러분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많을 수도 있지않을까 싶다.
러시아 사람들이 생각하는 올리가르히는 약삭빠른 사람들이다. 소련이 붕괴할 때 눈치 빠른 사람들이 시류를 타고 막대한 재산을 축적했다고 본다. 이 과정이 참으로 기가막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소련 말기에 사회주의 계획 경제시스템은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사실상 모든 사람들이 이를 알고 있었다. 모든 것을 책임져 왔던 국가는 손을 놓고아무것도 제공해 주지 않았다. 당장 생존의 위기를 맞은 사 - P161

람들은 몽둥이를 들고 크렘린 궁으로 달려갈 기세였다. 소련 해체가 결정됐을 때 반발하는 움직임이 크게 보이지 않았던 이유다. 문제는 해체 방식이었다. 이 이야기를 듣게 된다면 여러분은 타임머신을 타고 1990년대 러시아로 가고 싶어질지 모른다.
‘민영화‘라는 이름으로 나라를 팔아버린 러시아소련 지도자들은 사회주의를 해체하고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문제는 소련 사람들 중 누구도 자본주의가 무엇인지를 몰랐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세계 최고의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에 자문을 구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제프리 삭스(Jeffrey Sachs), 안드레이 슐라이퍼(Andrei Shleifer), 조지 고튼(George Gorton) 같은 경제 전문가들을 러시아에 파견했다. 그들이 처방한 해결책은 ‘민영화‘였다.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면 자원이 효율적으로 분배된다는 논리였다. 이에 따라 소련은 공항, 철도, 항만,
전력, 석유, 광산 같은 국가 기간산업은 물론 쓰레기 처리까지 모든 자산을 민영화하기로 했다. 하루아침에 말이다.
러시아 정부는 시간이 없었다. 하루 빨리 사람들이 먹고살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굶주린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할지 몰랐다. 그래서 정부는 국가 - P162

의 자산을 인구수로 나눈 뒤 그만큼의 가치를 가진 바우처(voucher)를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든 국민들에게 나누어 줬다. 이제 생산 수단은 국민들의 것이니 여러분이 시장을 통해 알아서 생존하라는 메시지였다. 더 이상 국가에게 의존하지 말고 자유 시장에 맡기라는 의미였다. 이게 정말이냐고? 아마 한국에서는 고등학생 정도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곧바로 예상 가능하겠지만 당시 러시아 지도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분노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가라앉히겠다며 성급하게 이런 결정을 내렸다.
바우처를 받은 사람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자본주의를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그들이 받은 바우처가 곧 기업의 지분이라는 걸 몰랐다. 그래서 시장에서 바우처를 파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올리가르히가 등장하기 전까지 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바우처를 엄청나게 모은 사람들이 나왔다. 그들은 사람들을 설득하고 어르고 속이고 죽이고 빼앗는 등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러고는 국가 기간산업의 주인이 됐다. 말 그대로 화수분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 과정은 한반도가 일제로부터 해방된 이후 진행한 적산 기업 불하와 비슷해 보이지만, 러시아는 한국과는 규모가 다른 나라다. 지하 자원 매장량만 해도 차원이 다르다.
러시아가 국가 소유 재산을 팔아치웠을 때, 그 결정을 - P163

한 정치가들조차도 이게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오로지 올리가르히들만이 알고 있었다. 그 결과 올리가르히는 순식간에 어마어마한 부자가 됐다. 소련이 붕괴한 해가 1991년인데, 1996년에 옐친이 재선할 때는 이미 올리가르히의 지원을 등에 업고 있었다. 올리가르히가 아니었다면 옐친의 재선은 불가능했을 거라고 보는 시각이 정설이다. 불과 5년 만에 정치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성장한 것이다. 겨우 7명이 러시아 전체 재산의 반 이상을 가지고 있다고 할 정도였다.
국가 기간산업을 인수한 올리가르히는 상상을 초월한 부를 축적했다. 석유와 가스 같은 에너지 자원은 물론 모든 인프라를 장악했으니 돈이 안 벌릴 수가 없었다. 생일파티에 제니퍼 로페즈 같은 세계적인 할리우드 스타를 부르는 건 평범한 일이었다. 휴가를 가는 데 비행기를 세 대씩 동원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 대는 자기가 탈 비행기, 한대는 자기 자동차들을 실어 나를 비행기, 나머지 한 대는키우는 반려 동물 한 마리를 위한 비행기, 올리가르히들은 갑작스럽게 신분이 상승한 자신들을 남들과 구분하기 위해 ‘말리노브이 비드작(MammHobbypax, 산딸기색 재킷)‘을 주로 입었다. 아무나 소화할 수 없고 튀는 색이라 러시아에서는 아무도 입지 않는 색상이었기 때문이다.
올리가르히는 세상 부러울 게 없이 잘살았지만 일반 - P164

국민들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살던 어린 시절, 정전으로 공부를 못했다고 핑계를 댈 정도였고, 물이 안 나와서 씻지 않아도 됐다. 민영화된 쓰레기처리 회사가 쓰레기를 치우지 않아 거리에는 쓰레기가 넘쳐 났다. 그러자 팔뚝만한 쥐들이 들끓으며 사람들까지 공격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렇게 된 데에는 주 정부와 민간기업 간의 알력이 있었다. 주 정부와 시장 같은 정치인들은 그때까지도 자본주의 원리를 몰랐다. 블라디보스토크시장이 "전기, 수도, 쓰레기 같은 건 정부가 책임져야 하는데 왜 너희들에게 돈을 주고 써야 하냐"고 반발하자, 기업에서는 "그럼 서비스를 끊겠다"라고 대응한 게 이유였다. 일반 국민 입장에서는 어찌 됐든 지옥 같은 경험이었다. 적어도 소련 시절에는 이런 일이 없었다는 비교가 곧바로 나왔다. 자본주의 체제는 사람들의 삶을 나락으로 빠뜨린다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퍼졌다.
올리가르히의 등장을 보면 의문이 하나 생긴다. 자본주의 선진국인 미국이 어떻게 이런 조언을 한 것일까. 저런식으로 국가 자산을 국민들에게 균등하게 분배하면 올리가르히 같은 존재가 탄생하리라는 것을 몰랐던 것일까. 경제학을 조금만 공부한 사람이라도 미국이 순수한 의도로 조언했다고는 믿을 수 없을 터다. 러시아인들은 올리가르히의 등장을 보고 속았다는 걸 깨달았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 P166

올리가르히를 숙청하고 그 자리를 친구로 채운 푸틴

푸틴의 등장은 올리가르히들의 운명을 바꾸었다. 푸틴은 올리가르히를 없애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대통령 선거에 나왔고 당선됐다. 그러고는 실제로 올리가르히를 손보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가 한때 러시아 최대의 민영 기업이었던 석유 회사 유코스(OJSC)의 오너를 숙청한 것이었다.
2004년 이 회사를 소유했던 미하일 호도르콥스키는 조세포탈의 혐의로 275억 달러를 추징당했다. 2021년 한국과 러시아 교역량이 약 265억 달러였으니 추정 금액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2000년대 고유가로 한창 잘나가던 석유 회사가 순식간에 파산했고 국유화까지 되자 러시아 국민들은 푸틴을 신뢰하게 됐다.
이를 지켜본 올리가르히들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푸틴에 반대하던 올리가르히는 더 이상 러시아에 있을수 없었다. 결국 올리가르히 집단은 ‘푸틴의 친구들‘로 물갈이되어 버렸다. 러시아인들은 푸틴이 올리가르히를 숙청하고 그 자리를 자기 친구들로 채우는 데 대해 별 관심이 없다. 푸틴이 집권한 뒤로 올리가르히들은 1990년대처럼 말도 안 되는 사치를 과시하지 않는다. 튀면 진짜 죽을 수도 있다는 걸 배워서다. 그리고 너무 사치를 부리면 국민들의 눈총을 받는다. 푸틴의 친구가 해먹는 건 용인해도, 대놓고나대는 것까지 좋다고 해 줄 수는 없는 일이다. - P167


한국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한국 사람들은 보통 두가지 측면에서 충격을 받는다. 소련이 사회주의 국가였으니 러시아도 여성의 인권에 대한 인식이 높을 줄 알았는데 아니라는 점, 나머지 하나는 여성들도 이런 남녀 역할 구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오히려 옹호하고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인들은 사회적 평등과 성 역할은 다르다고 인식한다. 두 가지가 하나의 가치로 수렴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다. 밖에서 같은 일을 하고 같은 급여를 받는 것과 가정에서 해야 할 일은 별개라고 보는 것이다.
배경은 이렇다. 사회주의 소련은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가혹했다. 아니 여성에게 오히려 더 가혹했다고 하는 게 맞다. 사회주의 혁명으로 시스템은 바뀌었다. 문화적으로 가부장제는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는 올라갔고, 정치적 권리도 보장받았다. 그러나 이 시스템에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전혀 녹아 있지 않았다. 소련 시절여성들은 국가에서 원하는 노동을 수행해야 했다. 남녀의 신체적 차이는 상관없었다. 남자와 똑같이 공장에서, 건설현장에서 일해야 했다. 남자들도 힘들다고 꺼리는 일을 똑같은 할당량을 받아 몸을 갈아가며 해치우고 집에 와서는 또 집안일을 해야 했다. -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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