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가르히(OJnutrapsu)는 지금의 러시아가 만들어진 원인과그 결과라고 볼 수 있는 존재다. 어원은 과두정을 뜻하는 그리스어 올리가르키아(buipxns)다. 정경 유착의 정점에 있는러시아식 재벌 집단이다. 아마 한국의 ‘재벌‘과 가장 비슷한의미를 지닌 말이 러시아의 올리가르히일 것이다. 국가를 등에 업고 성장하여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기업 집단. 하지만 러시아 출신인 내가 보기에는 올리가르히와 재벌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면이 있다. 특히 연구자들의 시각이 아닌러시아 출신 일반인이 보는 시각에서 그렇다. 아마 여러분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많을 수도 있지않을까 싶다.
러시아 사람들이 생각하는 올리가르히는 약삭빠른 사람들이다. 소련이 붕괴할 때 눈치 빠른 사람들이 시류를 타고 막대한 재산을 축적했다고 본다. 이 과정이 참으로 기가막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소련 말기에 사회주의 계획 경제시스템은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사실상 모든 사람들이 이를 알고 있었다. 모든 것을 책임져 왔던 국가는 손을 놓고아무것도 제공해 주지 않았다. 당장 생존의 위기를 맞은 사 - P161

람들은 몽둥이를 들고 크렘린 궁으로 달려갈 기세였다. 소련 해체가 결정됐을 때 반발하는 움직임이 크게 보이지 않았던 이유다. 문제는 해체 방식이었다. 이 이야기를 듣게 된다면 여러분은 타임머신을 타고 1990년대 러시아로 가고 싶어질지 모른다.
‘민영화‘라는 이름으로 나라를 팔아버린 러시아소련 지도자들은 사회주의를 해체하고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문제는 소련 사람들 중 누구도 자본주의가 무엇인지를 몰랐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세계 최고의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에 자문을 구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제프리 삭스(Jeffrey Sachs), 안드레이 슐라이퍼(Andrei Shleifer), 조지 고튼(George Gorton) 같은 경제 전문가들을 러시아에 파견했다. 그들이 처방한 해결책은 ‘민영화‘였다.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면 자원이 효율적으로 분배된다는 논리였다. 이에 따라 소련은 공항, 철도, 항만,
전력, 석유, 광산 같은 국가 기간산업은 물론 쓰레기 처리까지 모든 자산을 민영화하기로 했다. 하루아침에 말이다.
러시아 정부는 시간이 없었다. 하루 빨리 사람들이 먹고살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굶주린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할지 몰랐다. 그래서 정부는 국가 - P162

의 자산을 인구수로 나눈 뒤 그만큼의 가치를 가진 바우처(voucher)를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든 국민들에게 나누어 줬다. 이제 생산 수단은 국민들의 것이니 여러분이 시장을 통해 알아서 생존하라는 메시지였다. 더 이상 국가에게 의존하지 말고 자유 시장에 맡기라는 의미였다. 이게 정말이냐고? 아마 한국에서는 고등학생 정도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곧바로 예상 가능하겠지만 당시 러시아 지도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분노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가라앉히겠다며 성급하게 이런 결정을 내렸다.
바우처를 받은 사람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자본주의를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그들이 받은 바우처가 곧 기업의 지분이라는 걸 몰랐다. 그래서 시장에서 바우처를 파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올리가르히가 등장하기 전까지 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바우처를 엄청나게 모은 사람들이 나왔다. 그들은 사람들을 설득하고 어르고 속이고 죽이고 빼앗는 등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러고는 국가 기간산업의 주인이 됐다. 말 그대로 화수분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 과정은 한반도가 일제로부터 해방된 이후 진행한 적산 기업 불하와 비슷해 보이지만, 러시아는 한국과는 규모가 다른 나라다. 지하 자원 매장량만 해도 차원이 다르다.
러시아가 국가 소유 재산을 팔아치웠을 때, 그 결정을 - P163

한 정치가들조차도 이게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오로지 올리가르히들만이 알고 있었다. 그 결과 올리가르히는 순식간에 어마어마한 부자가 됐다. 소련이 붕괴한 해가 1991년인데, 1996년에 옐친이 재선할 때는 이미 올리가르히의 지원을 등에 업고 있었다. 올리가르히가 아니었다면 옐친의 재선은 불가능했을 거라고 보는 시각이 정설이다. 불과 5년 만에 정치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성장한 것이다. 겨우 7명이 러시아 전체 재산의 반 이상을 가지고 있다고 할 정도였다.
국가 기간산업을 인수한 올리가르히는 상상을 초월한 부를 축적했다. 석유와 가스 같은 에너지 자원은 물론 모든 인프라를 장악했으니 돈이 안 벌릴 수가 없었다. 생일파티에 제니퍼 로페즈 같은 세계적인 할리우드 스타를 부르는 건 평범한 일이었다. 휴가를 가는 데 비행기를 세 대씩 동원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 대는 자기가 탈 비행기, 한대는 자기 자동차들을 실어 나를 비행기, 나머지 한 대는키우는 반려 동물 한 마리를 위한 비행기, 올리가르히들은 갑작스럽게 신분이 상승한 자신들을 남들과 구분하기 위해 ‘말리노브이 비드작(MammHobbypax, 산딸기색 재킷)‘을 주로 입었다. 아무나 소화할 수 없고 튀는 색이라 러시아에서는 아무도 입지 않는 색상이었기 때문이다.
올리가르히는 세상 부러울 게 없이 잘살았지만 일반 - P164

국민들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살던 어린 시절, 정전으로 공부를 못했다고 핑계를 댈 정도였고, 물이 안 나와서 씻지 않아도 됐다. 민영화된 쓰레기처리 회사가 쓰레기를 치우지 않아 거리에는 쓰레기가 넘쳐 났다. 그러자 팔뚝만한 쥐들이 들끓으며 사람들까지 공격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렇게 된 데에는 주 정부와 민간기업 간의 알력이 있었다. 주 정부와 시장 같은 정치인들은 그때까지도 자본주의 원리를 몰랐다. 블라디보스토크시장이 "전기, 수도, 쓰레기 같은 건 정부가 책임져야 하는데 왜 너희들에게 돈을 주고 써야 하냐"고 반발하자, 기업에서는 "그럼 서비스를 끊겠다"라고 대응한 게 이유였다. 일반 국민 입장에서는 어찌 됐든 지옥 같은 경험이었다. 적어도 소련 시절에는 이런 일이 없었다는 비교가 곧바로 나왔다. 자본주의 체제는 사람들의 삶을 나락으로 빠뜨린다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퍼졌다.
올리가르히의 등장을 보면 의문이 하나 생긴다. 자본주의 선진국인 미국이 어떻게 이런 조언을 한 것일까. 저런식으로 국가 자산을 국민들에게 균등하게 분배하면 올리가르히 같은 존재가 탄생하리라는 것을 몰랐던 것일까. 경제학을 조금만 공부한 사람이라도 미국이 순수한 의도로 조언했다고는 믿을 수 없을 터다. 러시아인들은 올리가르히의 등장을 보고 속았다는 걸 깨달았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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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가르히를 숙청하고 그 자리를 친구로 채운 푸틴

푸틴의 등장은 올리가르히들의 운명을 바꾸었다. 푸틴은 올리가르히를 없애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대통령 선거에 나왔고 당선됐다. 그러고는 실제로 올리가르히를 손보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가 한때 러시아 최대의 민영 기업이었던 석유 회사 유코스(OJSC)의 오너를 숙청한 것이었다.
2004년 이 회사를 소유했던 미하일 호도르콥스키는 조세포탈의 혐의로 275억 달러를 추징당했다. 2021년 한국과 러시아 교역량이 약 265억 달러였으니 추정 금액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2000년대 고유가로 한창 잘나가던 석유 회사가 순식간에 파산했고 국유화까지 되자 러시아 국민들은 푸틴을 신뢰하게 됐다.
이를 지켜본 올리가르히들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푸틴에 반대하던 올리가르히는 더 이상 러시아에 있을수 없었다. 결국 올리가르히 집단은 ‘푸틴의 친구들‘로 물갈이되어 버렸다. 러시아인들은 푸틴이 올리가르히를 숙청하고 그 자리를 자기 친구들로 채우는 데 대해 별 관심이 없다. 푸틴이 집권한 뒤로 올리가르히들은 1990년대처럼 말도 안 되는 사치를 과시하지 않는다. 튀면 진짜 죽을 수도 있다는 걸 배워서다. 그리고 너무 사치를 부리면 국민들의 눈총을 받는다. 푸틴의 친구가 해먹는 건 용인해도, 대놓고나대는 것까지 좋다고 해 줄 수는 없는 일이다. - P167


한국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한국 사람들은 보통 두가지 측면에서 충격을 받는다. 소련이 사회주의 국가였으니 러시아도 여성의 인권에 대한 인식이 높을 줄 알았는데 아니라는 점, 나머지 하나는 여성들도 이런 남녀 역할 구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오히려 옹호하고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인들은 사회적 평등과 성 역할은 다르다고 인식한다. 두 가지가 하나의 가치로 수렴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다. 밖에서 같은 일을 하고 같은 급여를 받는 것과 가정에서 해야 할 일은 별개라고 보는 것이다.
배경은 이렇다. 사회주의 소련은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가혹했다. 아니 여성에게 오히려 더 가혹했다고 하는 게 맞다. 사회주의 혁명으로 시스템은 바뀌었다. 문화적으로 가부장제는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는 올라갔고, 정치적 권리도 보장받았다. 그러나 이 시스템에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전혀 녹아 있지 않았다. 소련 시절여성들은 국가에서 원하는 노동을 수행해야 했다. 남녀의 신체적 차이는 상관없었다. 남자와 똑같이 공장에서, 건설현장에서 일해야 했다. 남자들도 힘들다고 꺼리는 일을 똑같은 할당량을 받아 몸을 갈아가며 해치우고 집에 와서는 또 집안일을 해야 했다. -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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