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정, 우리 안의 적
이재석 외 지음 / 지식너머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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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축제의 시간에 돌아본 '우리의 그늘'


"〈이범윤의 부하 김익준이라는 자가 얼마 전 간도로 와서 잠복하고 있다는 설이 있어서 밀정을 시켜 탐색하게 했습니다. 우리 밀정은 이 사람을 교묘한 방법으로 대안對岸 온성穩城으로 유인했고 헌병대가 그를 체포하였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한일병합 직후인 1911년3월 간도총영사가 고무라 주타로 외무대신에게 올린 보고서 중 일부다. 이런 식의 서술이 군데군데 흩어져 있다." "이렇게 밀정의 밀고를 토대로 작성된 내부 기밀 보고서는 일본 자료실과 공공기간 곳곳에 남아 있다. 너무 많다. 너무 많아 다 들여다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취재 기간 동지들에게 치명적인 정보를 일제에 속속 전달하는 또 다른 동지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은 매우 씁쓸한 일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이들의 세세한 밀고 덕분에(?) 독립운동가들의 활동 내역이 소상히 드러나는 역설을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밀정의 밀고가 없었다면 항일운동의 역사도 쓰일 수 없다는 전문가들의 우스갯소리가 이런 맥락에서 나오는가 싶었다."(12-4)


2장 임시정부의 얼굴, 누가 빼돌렸나?


"1919년 7월 9일, 조선군참모장 오노 도요시는 육군차관 야마나시 한조에게 사진이 송부된 보고서를 올린다. 〈이 사진은 상하이에 있는 배일 조선인 간부 및 결사자 200여 명의 사진입니다. 이 사진에 나오는 사람에게 한 명당 한 장 외에는 절대로 더 나눠주지 않았습니다. 사진을 분실할 때에는 제재를 받는다는 서약 아래 엄밀하게 보관된 것입니다.〉 1919년 4월에 상하이 임시정부가 수립됐고 이 보고서가 7월에 작성됐으로, '상하이에 있는 배일 조선인 간부 및 결사자 200여 명'은 임시정부 사람들을 말한다." "사진을 입수하기 위해 일제가 동원한 수단이 있었다. 드디어 밀정이 등장한다. 〈프랑스 조계 장안리에 있는 배일 조선인 상인 곽윤수─인삼을 팔아 모은 돈을 임시정부에 지원하고 자신의 집을 임시정부 사무실과 숙소로 제공했다. 2010년 대통령 표창이 수여됐다─의 집에 걸려 있던 것입니다. 곽윤수의 처남을 시켜 은밀히 짧은 시간 동안 밀정에게 가져오게 해서 복사한 것입니다. 이를 송부합니다.〉"(24-33)


3장 항일운동의 또 다른 서술자, 밀정


"밀정 엄인섭은 연해주 지역에서 활약한 대표적인 의병장 가운데 한 명이다. 1907년부터 반일 의병운동에 적극 가담한 그는 최재형, 홍범도, 이범윤과 긴밀했고, 안중근 의사와도 가장 가까운 동지였다. 안중근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뤼순 감옥에서 심문받을 때,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생활할 당시 엄인섭과 가장 친하게 지냈다고 진술한 바 있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1908년 안중근이 항일을 다짐하며 손가락을 끊었던 그 유명한 '단지동맹'을 할 당시, 엄인섭도 여기에 동참한 사람 중 하나라고 전해지기도 한다. 간도 15만 원 탈취 사건의 거사 주인공들 중 일부가 엄인섭에게 사건 전말을 털어놓는 것을 잠시 불안해한 것은 사실이지만, 연해주 지역을 대표하는 의병장 출신인 그를 밀정으로 의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무기를 구입하기 위해 그들은 러시아 쪽에 발이 넓은 엄인섭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은신처를 포함한 모든 정보가 엄인섭의 입을 통해 일제에 고스란히 넘어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54-5)


# 간도 15만 원 탈취 사건 : 비밀결사 철혈광복단의 임국정, 윤준희, 한상호, 최봉설 등이 조선은행의 현금 수송 행렬을 습격해 돈을 탈취한 사건. 15만 원은 현재 가치로 100억 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4장 안중근의 동지, 그가 걸어간 '다른 길'


"1909년, 안중근에게는 동지가 있었다. 마지막 격발의 순간에는 혼자서 결단하고 감행했지만, 세 명의 동지가 함께 거사를 준비했다.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가 그들이다. 역할 분담이 있었다. 안중근은 하얼빈역을 맡고, 우덕순과 조도선은 차이자거우역을 맡았다 .유동하는 중간 연락책과 통역을 맡았다." "조선인회(또는 조선인민회)는 만주 지역 독립운동을 탄압하는 보조기관이자, 독립운동가와 일반 조선인들을 떼어놓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조직이다. 일본 경찰이 배치된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지역별 조선인민회가 만들어졌고 지역별 민회에는 회장, 부회장, 주사와 서기, 대의원을 두었다. 조선인들을 대상으로 교육 사업이나 위생 관리 같은 통상적 업무를 수행하고 일본 행정기관의 명령을 하달하기도 했지만, 독립운동 탄압을 지원하고 만주 지역 조선인 사회의 동향을 감시했다. 이를 위해 상시적으로 정보를 수집하는 역할을 했다. 1925년의 우덕순은 그런 대표적 친일단체의 하얼빈지회 회장이 되어 있었다."(68-72)


5장 김좌진 최측근이 밀고한 '배신의 기록'


"그는 김좌진 장군의 막빈幕賓, 그러니까 비서이자 참모였다. 그 자신도 청산리 전투에 참가했다. 일본군을 상대로 빛나는 승전을 거뒀다. 대한민국도 마땅히 그를 인정했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수여됐다. 그는 전장에서 일기를 남기기도 했다. 1920년 청산리 전투가 있기 직전, 자신이 몸담고 있던 독립군 부대 북로군정서의 내부 상황을 적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1924년 일본 외무성이 작성한 극비 문서에도 등장한다. 1924년이면 청산리 전투가 있고 4년 뒤다. 안타깝게도 그사이 그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독립군 참모에서 일제의 밀정으로 탈바꿈했다. 그의 이름은 이정李楨이다." "그가 밀고한 내용을 토대로 작성된 외무성 기밀문서의 분량은 무려 57쪽에 달한다. 독립군 간부의 인상착의와 특징, 군자금 모금 책임자와 활동 내용, 김좌진과 김원봉의 공동 의거 계획 등 대한독립군단의 온갖 치명적 정보가 담겼다. 학계 전문가들은 이 문건을 〈일본 입장에선 최고 수준의 정보〉라고 평가했다."(86-94)


6장 얼굴 없는 밀정이 기록한 '만주벌 호랑이'


"밀정은 홍범도 개인을 검거할 수 있을 만한 단서를 일제에 세세히 밀고한다. 〈홍범도의 소재지는 혜산진 대안 일리日里에서 약 30리 떨어진 신약수동新藥水洞입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하여 일부러 이 지역 동북쪽 사헌 부락에 가옥을 짓고, 이곳에 거주하면서 대문에 조사실이라 적은 종이를 붙였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부하들과 동거하면서 망을 보게 하여 경계하고 있습니다.〉" "홍범도 부하들의 특징은 어떨까. 밀고자에게는 한솥밥 먹던 동료들일 것이다. 〈부하들은 복장도 일정하지 않고 그때그때 가명을 써서 알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타인이 있는 장소에서 부하들끼리 대화를 하고자 할 때, 또는 본명을 알고자 할 때에는 서로 오른손을 머리 높이 올려 알아보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일제는 밀고자를 이렇게 평가한다. 〈홍범도의 부하 예승준(22세)은 소양이 있을 뿐만 아니라 기억력이 매우 뛰어나고 성격이 활발합니다. 조금도 감추는 것 없이 진술했으며 대체로 사실로 보이는 점이 많습니다.〉"(123-5)


7장 김원봉을 밀고한 부하, 그에게 수여된 건국훈장


"1926년 일본 외무성 내부 보고 문건이다. 〈군자금을 모집하기 위하여 다이쇼 14년(1925) 11월 28일 의열단 단장 김원봉과 함께 한커우漢口로 왔고 김원봉은 체류 1일째에 베이징을 경유하여 광둥으로 향하였습니다.〉 누군가의 밀고다." "밀정은 누구였을까. 문서 추적을 이어갔다. 밀정의 정체와 관련한 핵심 정보가 나온다. 〈의열단 간부 중 김호라는 자가 얼마 전 출두했습니다. 그 사람 말에 따르면 자신은 상하이 주재 조선총독부 통역관 오다 미쓰루의 밀정으로 여비를 지급받아 의열단원들의 동정을 조사하려고 한커우로 왔다고 합니다. 의심할 만한 말이 없고 여비 지급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김호는 의열단원이자, 조선총독부 통역관 오다 미쓰루의 밀정이자, 도박을 조항하는 방탕한 사람이었다. 본적은 경상남도 하동, 본명은 김재영이다. 그는 국가보훈처 공훈록에서 공적 기록을 찾아볼 수 있는 독립유공자였다. 의열단 활동과 청년동맹회에 참여한 공적을 인정받아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143-9)


8장 임시정부의 비밀 자금줄, 경주 최부잣집


"김구 선생은 해방 뒤 이런 이야기를 남긴 바 있다. 〈상하이 임시정부 자금의 6할은 백산에게서 나왔다.〉 백산白山은 안희제安熙濟 선생의 호다. 그가 설립한 백산무역주식회사의 줄임말이기도 하다." "1922년 작성된 계약서를 보면 백산은 조선식산은행에서 35만 원을 대출받았다. 35만 원은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200억 원에 가까운 거금이다. 계약 조항 8조에 〈최준이 백산무역회사와 연대해 채무 이행의 책임을 다할 것을 약속한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최부잣집 종손 최준은 당시 백산무역주식회사의 대표이사였다. 문서 뒷부분에는 대출을 위해 저당 잡힌 최부잣집 부동산 목록이 수십 쪽에 걸쳐 빼곡히 적혀 있었다. 경주와 울산 지역의 논밭 785필지다. 220만 제곱미터에 달하는데, 여의도의 75퍼센트 정도에 해당하는 면적이다. 임시정부에 자금을 대느라 경영 위기에 빠진 백산무역주식회사를 살리기 위해 최부잣집이 거의 전 재산을 걸어 은행 대출 보증을 서준 것이다."(162-7)


9장 식민지 권력자가 내린 지령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파괴하라〉


"우쓰노미야 다로 조선군사령관은 1918년부터 2년 동안 조선에 머물렀다. 그는 사이토 총독에 이어 한반도 내 권력 서열 2위였다. 그의 목표는 상하이 임시정부를 초기에 무너뜨리는 것,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절붕絶崩'시키는 것이었다." "1919년 3·1운동 이후 작성된 그의 일기에는 당시 독립운동가들을 회유하려는 정황이 상세히 담겨 있다. 〈9월 6일 토요일, 맑음. 무역상 시부카와라는 사람이 찾아왔다. 내 옛 지인으로 상하이에 망명 중인 조선인 김상설(초명 김봉석)이 배일排日 거두巨頭 김복金復을 데려와 내 옛 성의에 보답하고 이로써 과거의 죄를 속죄하고 싶다고 했다 한다. 시부카와와 함께 규슈까지 와서 숨어 있다고 했다.〉" "배일 거두라고 표현된 김복, 아니 김규흥은 독립운동가로 우리 역사에 기록돼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가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기 위해 활동한 공로 등을 인정해 1998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했다. 현재 대전국립현충원에 안장돼 있다."(177-84)


10장 〈김구를 잡아라〉 특종공작에 동원된 밀정들


"김구는 《백범일지》에서 남목청 사건의 배후로 박창세를 지목했다. 그전부터 박창세가 일본과 손을 잡았다는 정황이 다수 포착돼 의심스러웠는데, 그가 반反 김구파로 불만을 품은 이운한을 부추겨 총을 쏘게 했다는 것이다. 임시의정원 의원을 지내고 한국독립당 특무대장을 맡기도 했던 박창세가 어쩌다 일제 협력자로 변절한 것일까. 단서는 일본 문건에 등장한다. 〈박창세를 회유하고 그가 김구를 처치하도록 획책하고 있습니다. [···] 김구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이런 공작에는 실로 적당한 인물입니다. [···] 그의 차남 박제건이 권투선수가 되어 형과 함께 조선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하고 있으니 총영사관과 협력해 귀국하는 데 편의를 봐주고 이를 박창세를 회유할 방법으로 삼고자 합니다.〉 가족을 볼모 삼아 밀정으로 포섭한다는 전략이다. 박창세의 둘째 아들 박제건은 전도유망한 권투선수였다. 실제로 그는 1936년 4월에 상하이를 출발해 도쿄를 거쳐 서울에 도착한다. 문건에 나오는 대로다."(217)


# 남목청 사건 : 1938년 5월 민족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들이 모인 조선혁명당 당사 남목청에 이운한이라는 자가 난입해 들어와 권총을 난사한 사건. 김구는 가슴에 총탄을 맞았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11장 3·1운동 계보도, '휘발된 사람들'을 찾아서


"일제가 수사자료로 작성한 3·1운동 계보도에 나오는 140명을 세 개의 범주로 분류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훈장을 받은 독립유공자들이다. 이들은 국가가 이미 공인한 사람들이다." "둘째, 계보도에는 주도자급 인물로 등장하지만 훗날 친일파로 변절한 사람들이다. 최린과 최남선이 대표적이다. 이런 사람들도 역사적 평가가 끝났다고 할 수 있다. 셋째, 이도 저도 아닌 사람들이다. 이들이 중요하다. 일본 경찰이 보기에 3·1운동 주도자급 인물이지만 우리 역사가 공인하지 않은 사람들, 말하자면 '역사에서 휘발된 사람들'이다. 140명 가운데 34명이 세 번째 범주로 추려졌다. 국가보훈처에 확인해본 결과 이 가운데 9명은 독립유공자 심사가 진행 중이고, 10명은 친일이나 월북 등 이상 행적이 확인된 사람들이라는 답변이 왔다. 그래도 나머지 15명이 의문으로 남았다. 이들을 3·1운동의 숨은 주역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100년이란 세월이 지났지만 지금이라도 이들을 찾아 공훈을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230-1)


12장 해방과 동시에 사라진 이름, 밀정


"해방 70년이 넘은 지금 친일파에 대한 학문적·공식적 평가와 서술은 어느 정도 누적돼온 게 사실이다. 오늘날 누구도 이광수와 최남선을 좋게 기억하진 않는다. 그러나 밀정은 어쩌면 '해방과 동시에 사라진 이름'이다. 공개적 행보를 보인 친일파와 달리 사람들은 밀정의 정체를 잘 알아볼 수 없었다. 의심의 눈초리야 보낼 수 있었겠지만 국가가 공인한 반민특위마저 와해되는 판국에 명확한 증거가 없는 밀정을 찾아내 단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은 야금야금 스며들었다. 대한민국 군과 경찰에, 정치권과 관공서에 알게 모르게 흡수되었다. 남몰래 스며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그들의 주특기이자 전공 분야였다.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 속에 밀정의 이름이 거의 없다시피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군 100명보다 밀정 한 명이 더 무섭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들이 끼친 해악은 치명적이었지만 청산은커녕 역사적 평가 측면에서도 그들은 무풍지대에서 보전될 수 있었다."(2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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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로서의 인류학자 - 레비스트로스, 에번스프리처드, 말리노프스키, 베네딕트 문학동네 인문 라이브러리 7
클리퍼드 기어츠 지음, 김병화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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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곳에 있기: 인류학과 글쓰기의 현장


"서명signature의 물음, 즉 텍스트 내부에서 저자의 존재감을 확립하는 문제는 애초부터 민족지학을 따라다녔다." "저자가 강하게 드러나는 텍스트의 표현 관습과 민족지 기획의 특수한 성질에서 비롯된, 저자가 부재하는 텍스트의 표현 관습 간의 충돌은 사물을 소유하려는 입장과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겠다는 입장 간의 충돌로 여겨졌다." "인류학자들은 민족지 서술과 관련된 중요한 방법론적 사안들이 지식 메커니즘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 '공감', '통찰력' 등이 인지 형태로서 적절한지, 타인의 생각과 감정에 대한 내재주의적 설명이 입증 가능한지, 문화의 존재론적 지위는 무엇인지 하는 것들이 검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그들은 민족지 서술을 구성하는 데서 겪는 어려움의 원인이 담론의 문제가 아니라 현지조사의 복잡다단한 문제들에 있다고 보았다. 관찰하는 자와 관찰 대상의 관계(친밀한 관계)를 통제할 수 있다면 저자와 텍스트 간의 관계(서명)는 저절로 따라올 것이라고도 생각했다."(20)


"민족지학자가 그것을 대면하든 아니면 그것이 민족지학자를 대면하든 간에, 서명에 관한 문제는 저자이기를 주장하지 않는 물리학자의 다신주의와 저자라는 의식이 넘치도록 충만한 소설가의 주권 의식을 모두 요구하지만, 실제로는 둘 중 어느 것도 허용하지 않는다. 첫번째 태도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다루고, 가사는 듣지만 음악은 듣지 못한다며 둔감하다는 취급을 받는다. 물론 민족중심주의라는 비난도받는다. 두번째 태도는 사람을 꼭두각시로 취급하며 실재하지도 않는 음악을 듣는, 인상주의적이라는 비난을 듣는다. 이때도 역시 민족중심주의라는 비난을 받는다. 민족지학자 대부분이 자신들의 저서에서 입장을 통일하지 못하거나, 혹은 한 권의 책 속에서도 갈팡질팡하는 것은 크게 놀랄 일이 아니다. 친밀한 관점과 냉정한 평가를 동시에 갖추어야 하는 텍스트에서 연구자가 어디에 서야 하는지 알아내는 것은 애당초 그런 관점을 취해 평가를 내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과제인 것이다."(21)


"(저자는 무엇을 저술하는가에 대한, 혹은 내가 담론discourse 문제라 칭했던) 또다른 예비적 질문은 롤랑 바르트의 「저자와 작가」에서 한층 종합적인 형태로 제기된 바 있다. 바르트는 '저자'와 '작가'를 구별하는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또다른 저서에서는 저자가 만들어내는 '작품work'과 작가가 만들어내는 '텍스트'를 구별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저자는 기능을 수행하고 작가는 활동을 한다. 저자는 사제 역할을 하고(그는 저자를 마르셀 모스가 연구한 주술사에 견준다) 작가는 서기 역할을 수행한다. 저자에게 '글쓰기'는 자동사이다. 〈그는 세계의 '왜'를 '어떻게 쓰는가' 안에 철저히 흡수하는 사람이다.〉 작가에게 '글쓰기'는 타동사이다. 그는 '무엇인가'를 쓴다. 〈그가 어떤 목표를 설정할 때(증거를 제시하고, 설명하고, 전달할 때) 언어는 그 목표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그에게 언어는 '실천'을 떠받칠 뿐 실천을 하지는 않는다. ······ [그것은] 의사소통 수단의 본질, '사유' 수단의 본질로 복원된다.〉"(29-30)


"이러한 '저자'와 '작가'의 구분, 혹은 담론성의 창시자와 특정 텍스트의 제작자라는 푸코식의 구분이 본질적 가치에 따른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저술했던' 전통적인 '글쓰기' 대부분이 그것의 모델을 압도적으로 능가한다." "이 '저자-작가'는 마법 같은 언어적 구조물을 창조하고 싶은 욕구, '언어의 극장'에 입장하고 싶은 욕구, 사실과 이념을 소통하게 하고 정보를 상품화하고 싶은 욕구, 이 욕망 또는 저 욕망에 대한 발작적인 탐닉 사이에 끼여 있는 전문 지식인이다. 실천으로서의 언어나 수단으로서의 언어 중 어느 한쪽을 분명하게 지향하는 것으로 보이는 철저한 문학이나 과학적 담론의 사정이 어떻든 간에, 인류학적 담론은 마치 노새처럼 이도 저도 아닌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 분명하다. 또 서명의 기준에서 볼 때 한 텍스트를 어느 정도까지 어떻게 침범하는가 하는 방식으로 나타나는 그 불확실성은, 담론의 기준에서는 그것을 어느 정도까지 어떻게 창의적으로 구성하는가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31-2)


2 텍스트 속의 세계: 『슬픈 열대』를 읽는 방법


"(믿어지지 않았던 것의 갑작스러운 현전現前과도 같은) 구조주의의 '도래advent'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그것이 본질적으로 수사학적 업적이었다는 사실이다. 수사학적이라는 말을 트집잡을 의도로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레비스트로스가 소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자신을 (해당 분야의 권위자인 수전 손택이 쓴 호칭에 따르자면) 지적 영웅으로 만든 것은 이상야릇한 사실, 또는 그보다 더 이상한 설명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러한 사실을 보여주고 설명틀을 잡기 위해 그가 발명해낸 담론 양식이었다." "인류학에 소소한 관심 정도밖에 없었을 이들을 대상으로 레비스트로스가 진행한 기획의 본질적인 특징은 과학과 예술의 어휘에서 빌려와서 개조한 전문어(기호, 코드, 변형, 대립, 교환, 소통, 은유, 환유, 신화, 구조 등)를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그가 상상의 공간을 정리해준 덕에, 흥밋거리를 찾아헤매던 세대가 그곳을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39-40)


"『슬픈 열대』에 대해 제일 먼저 말해야 하는 것, 또 어떤 의미에서는 최종적인 발언일 수도 있는 것은, 그것이 동시에 여러 권의 책이라는 사실이다. 즉 서로 다른 종류의 텍스트가 하나하나 덧씌워져 무아레(물결무늬) 같은 패턴이 드러나게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덧씌워진'이라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 우리가 『슬픈 열대』에서 발견하는 것은 위계적으로 배치되어 있거나 표면에서 심층을 향해 배치되어 있는 텍스트가 아니며, 한 층 한 층 벗겨나가면서 더 깊이 파고 들어가는 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 하나의 텍스트 속에 숨겨진 또다른 텍스트 따위가 아니다.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은 동시에 발생해서 서로 경쟁하고, 때로는 같은 층위에 존재하면서 상호간섭하는 텍스트이다." "즉 로만 야콥슨이 '유사성의 평면'이라 부른 것을 따라 연속적 요소들이 계열적 체계를 이루며 수직적으로 배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불연속적 요소들이 '근접성의 평면'을 따라 통시적으로 결합되어 수평적으로 펼쳐져 있다."(47-8)


"여행서, 어쩌면 열대지방의 철 지난 관광 안내서, 또하나의 새로운 과학의 기초를 세우는 민족지 보고서, 루소의 복권, 사회계약론과 초조해하지 않는 삶이 지닌 장점의 복권을 꾀하는 철학적 담론, 심미적 근거를 들어 유럽식 팽창주의를 공격하는 개혁주의자의 글. 그리고 문학적 근거를 예시하고 그것을 전달하는 문학작품······ 이 모든 것이 전시회에 나란히 걸린 그림들처럼 병존하면서, 정밀하게 상호작용하여 무엇을 만들어내는가? 거기서 어떤 무아레가 출현하는가? 전혀 놀랄 일도 아니지만, 거기서 나타나는 것은 신화이다. 텍스트 유형들 간의 모든 통사론적이고 환유적인 밀고 당기기가 만들어내는 이 책을 아우르는 형식은 다름아닌 성배 추적 이야기다." "그곳에는 절정을 이루는 신비인 절대적 타자, 고립되어 있으며 이해하기 어려운 절대적인 타자가 있다. 그러고는 어느 정도 아쉬워하며 지친 채로 집에 돌아가, 소심하게 뒤로 물러나 있던,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이야기를 해준다."(60-1)


"물론 추적자로서의 인류학자라는 신화 역시 또하나의 환유적 텍스트로 간주될 수 있다." "즉 그가 의도한 것은 역시 다중적인 텍스트 유형을 그 구조 자체가 주제의 한 가지 사례인 하나의 단일한 구조, 즉 '신화논리학mytho-logic'으로 묶어내는 것으로서, 그렇게 함으로써 사회생활의 기초를 드러내고 더 나아가 이른바 인간 존재의 토대를 드러내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본다면 레비스트로스가 체계적으로 구축한 작업의 요체는 『슬픈 열대』의 텍스트를 저마다 굉장히 다양한 통사론적 관계 속에서 서로서로 연결하고 다시 연결하며 또다시 연결하는 긴 발언으로 보인다. 『슬픈 열대』라 불리는 어떤 집적물에서 어떤 의미에서든 신화-텍스트가 출현하여, 그것으로부터 전개된 전체 작품을 지배한다면, 그것은 요약된 완결판을 넘어 전체를 지배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이것이 레비스트로스가 신화, 음악, 수학이 실재의 가장 직접적인 표현이라고, 그것들을 연구하는 것이 유일한 참된 소명이라고 여긴 이유이다."(61-2)


"하지만 가장 흥미로운 점은, '미개인들'을 가장 잘 알기 위한 길은 그들의 삶을 공유할 수 있도록 어떻게든 그들과 개인적으로 친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문화적 표현들을 누비고 꿰매어 관계의 추상적 견본을 만드는 일이라는 확신이, 계시적인 (혹은 반反계시적이라는 편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절정의 경험을 통해 생겨났고 그것이 『슬픈 열대』에 표현되어 있다는 것이다. 쓸쓸한 일이지만 그의 탐색은 실패로 끝나고 만다. '외부인의 손이 닿은 적이 없는' 투피카와이브인을 드디어 만났을 때, 그는 그들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낯설게 보이는 생활의 기초를 꿰뚫어보는 것,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그곳에 있기'는 그들 속에 개인적으로 투입되는 방식으로는 달성될 수 없다. 그것을 달성하려면 오로지 그들의 문화적 생산물, 즉 낯설게 보이는 독특한 삶의 면모를 보편적으로 해석해 직접성을 해체시킴으로써, 그 낯섦을 사라지게 하는 수밖에 없다."(62-4)


"그리고 이것은 우리에게 레비스트로스의 모든 저작 고유의 특징─추상화된 자기 완결성이라는─을 마침내 충분히 전해준다. '냉담한', '폐쇄적인', '차가운', '진공 상태인', '지적인' 등 문학적 절대주의 주변을 맴도는 온갖 형용사가 작품 주변을 맴돌고 있다. 그의 책은 삶으 그려내는 것도, 삶을 환기하는 것도 아니며, 번역하는 것도 설명하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삶이 어떤 식으로든 남겨놓은 재료들을 배치하고 재배치하여 그에 상응하는 공식적 체계로 정비한다. 말하자면 그의 책은 재규어, 정액, 썩어가는 고기를 반대, 도치, 동형구조로 변형시키는, 유리로 둘러싸인 자기봉합적 담론인 듯하다. 신화와 기억과 마찬가지로, 세계는 인류학 텍스트가 존재하기 위한 필수조건이지만 인류학 텍스트는 세계가 존재하기 위한 필수조건이 아니라는 것, 이것이 『슬픈 열대』가 남긴 최후의 메시지이자, 그것이 밝혀낸 그의 전체 작품이 남긴 최후의 메시지이다."(64)


3 슬라이드 쇼: 에번스프리처드의 아프리카 슬라이드


"E-P(에번스프리처드)의 민족지 저술에는 토착민의 방언을 제외하면 외국어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는 매우 폭넓은 교육을 받았음에도 문학적 암시를 거의 구사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표현 영역의 전문가 중 최고의 전문가지만, 인류학 용어나 다른 분야의 전문용어를 좀처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뽐내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빈도수를 막론하고 언어 행위라고는 무난한 평서문밖에 없다. 미심쩍은 의문사, 연계된 조건문, 명상적인 돈호법 같은 것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언어를 놓고 씨름한 표시는 완벽하게 감춰진다. 말하는 것마다 모두 명료하고 자신감 있으며 호들갑 떨지 않는다. 어쨌든 언어적으로는 채워야 할 빈 곳도, 연결해야 할 점도 없다. 보이는 것 그대로 이해하면 되고, 심층적인 독해는 권장되지 않는다." "낯섦도 방해물이나 위협이라기보다는 더 흥미롭고 재미있는 요소로 느껴진다. 그것은 우리의 범주를 굴절시키지만 깨뜨리지는 않는다."(80-2)


"민족지 기록에 대한 이런 태도는 줄줄이 이어지는 깔끔하고 명석한 판단의 연쇄로, 무조건적 발언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무척이나 명료하게 소개되어 있기에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선제공격적인 자기주장은 E-P의 저작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베두인족은 확실히 독실한 신앙심을 갖고 있고 신이 자신들에게 안배해둔 운명을 믿는다.〉 (『키레나이카의 사누시 교도』) 〈엄밀한 의미에서 누에르족에게는 법이 없다.〉 (『누에르족』). … 그는 어떻게 작업하는가. E-P가 민족지 기록에 접근하는 그의 뛰어난 면모와 설득력의 주요 연원은 문화현상을 눈으로 볼 수 있는 표상, 인류학적 슬라이드로 구축하는 그의 굉장한 능력에 있다. 그는 무엇을 하는가. 마법의 등잔인 민족지학의 주된 효과, 그 주된 의도는 인류학적 슬라이드가 묘사하는 것이 얼마나 괴상하든 간에, 우리 자신이 본능적으로 의존하는 사회적 지각의 확립된 틀로 그것에 충분히 적응할 수 있음을 입증하는 데 있다."(83-4)


"삽화, 사진, 스케치, 도표, 이런 것들은 E-P의 민족지를 조직하는 힘이다. 그것은 결정적으로 영상화된 관념에 의해 움직이며, 신화(혹은 일기)보다는 풍경화와 비슷한 일관성을 지니고 있다. 또 그것은 무엇보다도 수수께끼 같은 일을 명백하게 풀어내는 데 헌신한다. 그의 세계는 정오의 세계로, 햇빛 속에서 형체의 윤곽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형체 대부분은 더없이 고유한 존재이며, 지각 가능한 배경 위에서 묘사 가능한 방식으로 움직인다. 나와는 상당히 다른 입장을 취하는 어떤 책에서 메리 더글러스는 E-P를 〈인류학계의 스탕달〉이라고 주장한다. 〈욕망들 사이의 미묘한 긴장과 균형〉을 다루는 그의 〈예리한〉 감각 때문에 그렇게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나는 그가 그런 감각을 갖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 그보다는 산세베리나 공작부인과 마찬가지로 그가 연구한 아누아크족, 아잔데족, 누에르족, 딩카족, 실루크족, 베두인족 등이 (텍스트 속에서는 그 자신도) 살아남았기 때문이다."(88)


# 산세베리나 공작부인 : 스탕달의 장편소설 『파르마의 수도원』의 여주인공


"E-P는 준비된 청중 앞에서 '그들은 우리와 똑같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가 하려는 말은, 그보다 그들과 우리의 차이가 아무리 극적으로 보일지라도 결국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아이시스 강에서든 아코보 강에서든, 남자들과 여자들은 용감하기도 하고 비겁하기도 했고, 친절한가 하면 잔인한 사람도 있었고, 합리적인 사람도 바보 같은 사람도 있었다." "〈영국에서는 가장 하찮은 남자도 남자로서 최고의 삶을 누린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었다.(이제는 여기에 여성도 추가되어야겠지만.) 그런 감정을 영국을 넘어 아프리카에까지, 그보다 더 멀리 (어렵기는 하겠지만 이탈리아까지도) 확대 적용하는 것이 E-P가 슬라이드 쇼를 보여준 목적이었다. 그 목적이 무엇이든─오만하고 낭만적인 것일 수도 있고, '영국 이데올로기가 다시 등장한다' 따위의 몹시 부적절하기만 한 것일 수도 있지만─그것은 음흉하지도, 인색하지도, 무자비하지도 않다. 또 그 문제에 관한 한, 거짓도 아니다."(91-2)


# 아이시스 강the Isis : 옥스퍼드 부근을 지나는 템즈 강 상류의 별칭


4 목격하는 나: 말리노프스키의 후예들


"정확하든 그렇지 않든, 말리노프스키는 사실에 관한 그 자신의 고집 때문에, 또는 비상한 환기 능력을 갖춘 자신의 작업 덕분에, 그 자신이 사용한 반어법을 가져와서 말해보자면, '야수 만나기join-the-brutes' 민족지라 불릴 만한 것의 수석 사도로서 우리에게 왔다. 그는 『서태평양의 항해자들』의 방법론을 다룬 저 유명한 서문에서 〈민족지학자는 카메라와 공책, 연필을 치워두고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직접 가담하는 편이 좋다. ······이것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쉬운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성공의 정도는 저마다 다르더다로 시도 자체는 누구나 해볼 수 있을 터이다〉라고 말했다. 이국적인 것은 레비스트로스가 한 것처럼 만남의 즉각성에서 물러나 사고의 균형을 찾음으로써, 혹은 E-P가 한 것처럼 그들을 아프리카 항아리에 그려진 형상으로 변형시킴으로써가 아니라, 그런 즉각성 속에서 자신을 잃고, 어쩌면 영혼까지 잃어야 포착할 수 있는 것이다."(99)


"『엄격한 의미에서의 일기』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문제, 거의 전적으로 몰입하고 있는 문제는, 민족지학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토착생활 외에도 우리가 풍덩 뛰어들어야 할 것이 아주 많다는 사실이다. 풍경, 고립, 그 지역에 사는 유럽인들, 집과 남겨두고 떠나온 것들에 대한 기억, 소명감과 각자의 지향점, 가장 불안한 것, 자기 열정의 변덕스러움, 약한 체질, 정처 없이 떠도는 생각, 말하자면 어두운 자아. 그것은 토착민 방식으로 사는 것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다중적인 삶을 사는, 여러 곳의 바다를 동시에 항해하는 것에 대한 문제다." "핵심은 '그곳'에서 겪은 것을 '이곳'에서 말하는 것으로 옮겨오는 경로의 문제가 심리학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문학적인 문제다." "즉 문제는 당신 개인을 믿을 만한 사람으로 만듦으로써 설명에 신뢰성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목격하는 나'를 이해하게 하려면, '나'를 먼저 이해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100-1)


"일기를 쓰는 사람─즉 (롤랑 바르트보다 더 광범위하기도 하고 동시에 협소하기도 한) 내 용어인 '목격하는 나' 접근법을 강경한 태도로 취하는 민족지 텍스트 구축자라면 누구든─의 과제는, 리비도적인 그의 방식대로 말하자면, 저자를 욕망의 대상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이 과제는 또한 〈작가에서 개인으로 전환시키는 일종의 회전고리를 통해 매혹하고······ '나는 내가 쓰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존재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불필요하고 불확실하고 어딘지 진정성이 떨어지는 느낌이 이러한 종류의 글에, 또 요즘은 이러한 종류의 글을 쓰는 작가들에게 달라붙어 있다. 〈이 얼마나 모순적인가! 가장 '직접적'이고 가장 '자발적'인 글쓰기 형태를 선택함으로써 나 자신이 삼류 배우 중에서도 제일 어설픈 배우임을 알게 되었으니.〉" "당장 인류학 분야의 글을 살펴보더라도, 일기를 작품으로 만드는 텍스트 구축 양식과 그것을 괴롭히는 문학적 불안의 신호들을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일기병'은 이제 고질적인 것이다."(113-4)


5 우리/우리 아닌 자: 베네딕트의 여행


"베네딕트가 주로 의존하는 수사학적 전략은 너무나 익숙한 것과 굉장히 이국적인 것의 자리를 뒤바꾸는 병치 전략이다. 베네딕트의 저작에서 문화적으로 가까운 것은 괴상하고 인위적인 것으로, 문화적으로 거리가 있는 것은 논리적이고 솔직한 것으로 그려진다. 우리 자신의 생활 형태가 낯선 민족의 낯선 습관이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실제로 있는 곳이든 상상으로 만들어낸 곳이든 멀리 떨어진 곳의 관습이 주어진 환경 속에서 예측 가능한 행동이 된다. 그곳이 이곳을 혼란스럽게 한다. 우리 아닌 자(또는 미국인이 아닌 자)가 (미국인인) 우리를 긴장하게 한다." "하지만 베네딕트의 저작을 지배하는 어조는 진지하기 짝이 없으며 그 어조에 조롱하는 기색은 전혀 배어 있지 않다. 그의 방식은 인간 권위의 전복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그러면서도 그 태도가 세속적이라는 점에서, 그러나 더없이 진지한 방식으로 구축해나간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희극적이다. 베네딕트의 아이러니는 전부 진심 어린 것이다."(134-5)


"신념과 관습들을 숨기는 데 성공한 저작에서 베네딕트는 그 업적을 근간으로 하여 저자-작가로서 '담론성의 창시자'라는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베네딕트를 유명하게 만들어 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가 타인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라'는 방식으로 일관하는 『국화와 칼』, 『문화의 패턴』이 그 저작들이다. 이러한 종류의 작업을 지칭하는 일반 명사를 고안해본다면 '자기-원주민화self-nativising'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놀라운 업적이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이것이 현지조사의 결과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베네딕트는 현지조사를 거의 하지 않았고, 조사에 흥미를 보이지도 않았으며, 체계적인 이론화 작업을 거치지도 않았고, 그런 이론화 작업에 관심도 거의 없었다. 이것은 거의 전적으로 강력한 해석적 스타일을 간결하고 자신있고 정교하게, 무엇보다도 단호하게 발전시킨 결과다. 즉 명확한 견해를 명확하게 표현한 것이다."(136-7)


"전문 인류학자로서 베네딕트의 문체는 애초부터 성숙해 있었다. 그것은 초기의 전문화된 연구들에서 이미 완성된 형태로 존재했고, 그런 연구를 토대로 그는 입문하자마자 그 분야에서 매우 일찍 인정받았다." "어떤 종류의 글이든 마찬가지다. 운동 법칙처럼 명백한 것으로 보일 때까지, 또는 법률가의 발표문처럼 날조한 것으로 여겨질 때까지, 같은 것이 계속해서 이야기되고 또 이야기된다. 예로 드는 보기만 바뀔 뿐이다. 그의 글에는 스스로 단 하나의 진리를 말하는, 진리를 말하는 사람이고자 하는 고슴도치 같은 태도가 배어 있다. 하지만 그 본질적인 진리(대평원의 아메리칸인디언들은 황홀경에 빠지기 일쑤이고 주니족은 지나치게 형식을 중시하며 일본인들은 위계적이라는, 그리고 우리는 언제까지나 그렇지 않다는 진리) 때문에 베네딕트의 전문 독자들은 그의 글을 권위 있다고 평가하는가 하면 편집증 같다고 보기도 한다. 폭넓은 독자층이 생긴 까닭 또한 여기에 있다."(137-9)


# 고대 그리스 시인 아르킬로코스가 남긴 시구인 〈여우는 아는 게 많지만, 고슴도치는 딱 한 가지 큰일에만 집중한다〉에서 비롯된 표현


"베네딕트가 쓴 (그가 전쟁 동안 맡았던 정보 업무와 선전 작업에서 시작된) 『국화와 칼』의 탁월한 독창성과 그것이 가진 힘의 토대, 준열한 비판자들조차도 느낀 그 힘의 토대는 그가 일본과 일본인들이라는 수수께끼를 푸는 방법을 괴상하게 무장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괴상하게 생긴 세계라는 느낌을 완화하는 방향에서 찾으려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는 그런 느낌을 오히려 더 강화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와 '상상 속의' 그들을 대비시키는 습관은 이 책에서 절정에 이른다." "『국화와 칼』이 예쁘게 단장된 '피도 눈물도 없는 과학정책'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은 『원래는 의사였다가 다음에는 배 여러 척의 선장이 된 레뮤얼 걸리버가 세계 방방곡곡 오지로 떠난, 4부로 구성된 여행기』가 동화책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실제로는 여행을 거의 하지 않았던 베네딕트는, 자신은 '세계를 바꾸기보다는 성가시게 하려고' 글을 쓴다고 한 스위프트처럼 글을 썼다. 세상이 그 점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꽤 애석할 것이다."(146-59)


6 이곳에 있기: 그것은 도대체 누구의 삶인가?


"거의 모든 민족지학자가 이런저런 방식으로 대학에 재직하고 있다는 사실에 익숙해지다보니 그렇지 않은 경우를 생각하기가 어렵기는 하지만, 양분된 존재 양식에 내재되어 있던 균열은 최근 들어 더 첨예하게 감지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두어 해씩 목축민들이나 얌을 재배하는 농부들과 드잡이하다가, 학기가 시작되면 학생들에게 강의하고 동료들과 논쟁하는 생활방식 사이에 생긴 균열 말이다. 그들이 사는 곳에서 그들의 관심을 끄는 것과 그들이 없는 곳에서 그들을 대변하는 것 사이의, 항상 엄청났지만 잘 인지되지 않았던 간극이 갑자기 극도로 눈에 잘 띄게 된 것이다. 단지 기술적으로 어려운 것으로만 보였던, '그들이' 삶을 '우리의' 연구로 옮겨오는 일이 이제는 도덕적으로, 정치적으로, 심지어 인식론적으로 민감한 문제가 되었다. 레비스트로스의 자족성, 에번스프리처드의 자신감, 말리노프스키의 무모함, 베네딕트의 태연함은 이제 무척 먼 일이 되었다."(164-5)


"법적으로, 이데올로기적으로, 또는 실제로 일어난 변화, 즉 인류학자 대부분이 글로 다루었던 종족들이 식민주의의 대상에서 주권국가의 시민으로 변한 상황은 민족지 연구가 이루어지는 도덕적 맥락을 완전히 바꾸어버렸다. 식민지는 아니었더라도 외딴 오지나 '바다 한복판에' 고립된 황제의 영토라는 전형적인 다른 어떤 곳(레비스트로스의 아마존이나 베네딕트의 일본)들은 그 처지가 매우 달라졌다. 팔레스타인 분할, 루뭄바, 수에즈, 베트남을 둘러싸고 일어난 사건들이 세계의 정치 문법을 바꾸어버렸기 때문이다." "인류학적 글쓰기가 바로 엊그제까지만 해도 의거해온 주된 가정, 대상과 독자는 분리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무관하며, 대상은 서술되기만 할 뿐 발언할 수 없고, 독자는 통지를 받을 뿐 책임은 없다는 가정은 철저히 와해되었다. 여전히 세계는 구역화되어 있지만 그 구역들을 잇는 연결통로가 훨씬 더 많이 생겨났고, 격리되는 정도도 훨씬 더 약해졌다."(166)


"현지조사 보고서나 주제별 조사를 제외하고, 이건 매, 저건 해오라기라는 식으로 식별하는 글쓰기는 실제로는 인류학에서 매우 드물다. 이 분야가 끌었던 일반적인 관심은 앞서 다룬 저자들 같은 인류학자들이 구축한 빛나는 탑 위에 쌓인 것이다. 마치 한쪽에서만 보이는 스크린을 통해 보듯이 세계를 곧바로 바라본다는 미명, 오직 신이 바라볼 때처럼 타자를 있는 그대로 본다는 미명은 정말이지 굉장히 널리 퍼져 있다. 하지만 그런 미명 자체가 하나의 수사학적 전략이고 설득의 양식이다. 완전히 내다버리기 힘들어 여전히 읽히기도 하고, 전적으로 받아들여지기 힘들지만 여전히 믿어질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실화소설faction이, 즉 실제 장소에 실제 시간대에 살았던 실존 인물들에 대한 어떤 상상적인 글쓰기가 정확히 어떤 방법으로 교묘한 조작의 수준을 넘어서게 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인류학이 현대 문화에서 지적인 영향력을 이어가려면 그 방법을 알아내야 한다."(175-6)


"인류학적 소명의 중요한 측면이 문학적인 것이라고 보는 관점에는 위험이 따른다. 하지만 그런 위험은 감수해볼 가치가 있다. 그 까닭은, 그러다보면 타인의 생활 형태(의 무엇인가)를 대하는 한 집단의 의식이 열리며 또 그 과정에서 그들 자신의 생활 형태(의 무엇인가)도 개방적으로 보게 되어, 우리의 이해력을 철저히 검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기껏해야 완전한 실패를 면한 정도 이상으로 해낸 사람이 없었던 과제인) 그것은 현재를 새겨넣는 일, 세계의 젖줄이 흐르는 어느 특정한 장소에 있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언어로 전달하는 일이다. 파스칼의 유명한 말처럼 '그곳'보다는 '이곳'을, '그때'보다는 '지금'을 말이다. 민족지가 그 외에 달리 무엇이든─말리노프스키식의 경험 추구일 수도 있고 레비스트로스식의 질서를 향한 열광, 베네딕트식의 문화적 아이러니, 에번스프리처드시의 문화적 자신감일 수도 있다─그것은 무엇보다도 실제의 번역이고 특정한 방식으로 표현된 생명력이다."(1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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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해석 까치글방 148
클리퍼드 기어츠 지음, 문옥표 옮김 / 까치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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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제1장 중층 기술: 해석적 문화이론을 향하여


"인류학, 최소한 사회인류학의 경우, 사람들이 하는 작업은 민족지(民族誌)이다. 교과서적 관점에서 본다면 민족지 작업은 친화감 조성, 제보자 선정, 기록 복사, 족보 작성, 지도 작성, 일기 쓰기 등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종류의 기술적 문제들이 민족지 작업의 전부는 아니다. 민족지란 하나의 지적인 노력이라고 볼 수 있는데, 길버트 라일의 개념을 빌리면 그것은 〈중층 기술(thick description)〉의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현상 기술(thin description)과 중층 기술 사이에는 위계적으로 여러 층위의 의미구조가 존재한다. 가령, (눈꺼풀에) 경련을 일으키는 자, 윙크하는 자, 거짓 윙크하는 자, 흉내내는 자, 흉내를 연습하는 자 모두가 이 의미구조에 따라서 일정한 행위를 하고 의미를 부여받으며 해석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의 눈꺼풀로 무엇을 하든지 간에 그것을 받아들이고 해석하게 해주는 의미구조 없이는 그들의 행위가 하나의 문화적 범주로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14-6)


"문화는 행위로 기록된 문서이며, 따라서 흉내낸 윙크와 마찬가지로 공적인 것이다. 그것은 비록 관념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느 누군가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비록 실체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불가사의한 것도 아니다." "일단 우리가 인간의 행위(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진정한 눈의 경련이다)를 상징적 행동, 즉 말의 경우 발음 내지 발성, 회화의 경우 색채, 글쓰기의 경우 획(劃), 음악의 경우 음(音) 등이 가지는 의미를 지니는 행동으로 본다면 앞의 문제, 다시 말해서, 문화라는 것이 패턴화된 행동인가 아니면 정신적인 틀인가 또는 그 두 가지가 혼합되어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은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흉내낸 윙크에 대하여 우리가 가져야 하는 의문은 그것의 존재론적 양태에 관한 것이 아니며, 이것은 바위나 꿈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것들은 모두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며, 우리가 가져야 하는 의문은 그것의 중요성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20-1)


"인류학적 저서들은 그 자체가 이미 해석이며, 그것은 두번째 해석일 수도, 세번째 해석일 수도 있다(실상 첫번째 해석은 〈원주민〉만이 내릴 수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문화이기 때문이다). 인류학적 저서들이란 이런 의미에서 하나의 허구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은 그러한 이야기들이 사실이 아니라거나 틀린 것들이라거나 혹은 〈만일 그렇다면〉 류의 실험적 사고라는 뜻이 아니라, 〈무엇인가 만들어진〉 혹은 〈무엇인가 형태지어진〉이라는 의미에서 허구라는 것이다." "만일 민족지가 중층적 기술이며 인류학자가 그것을 담당하는 사람들이라면, 중요한 것은 그 기록이 윙크와 눈의 경련을 제대로 구별했는가 또는 진짜 윙크와 윙크 흉내를 구분할 수 있었는가 하는 점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극히 현상적 기술인 해석이 되지 않은 상태의 자료에 대해서 그 설명의 설득력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그 이방인들의 생활에 얼마나 근접시킬 수 있는가 하는 학문적 상상력의 정도에 의해서 그것을 평가해야만 한다."(27-9)


"우리가 기록하는 것(또는 기록하고자 하는 것)은 사회적 대화 그 자체가 아니다. 그 사회적 대화에서 우리 자신들은 지극히 주변적이거나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주된 행위자가 아닌 까닭에 우리는 그 사회적 대화에 직접적으로 접근할 길이 없으며, 다만 제보자들이 우리를 이해시킬 수 있는 부분만큼만 이해할 뿐이다." "모든 현실세계의 복잡성으로부터 정제된 균형 잡힌 의미의 결정체를 상정하고 그 자체가 자생적인 질서를 지니고 있는 듯이, 보편적 인간 정신의 속성을 표현하는 것인 듯이, 또는 보다 광범하게 그들의 선험적 세계관의 표현인 듯이 간주하는 것은 곧 존재하지도 않는 학문 혹은 발견될 수도 없는 실체를 상상하는 것과 다름없다. 문화 분석은 의미의 대륙을 발견하여 거기에 형상도 없는 풍경화를 그려나가는 작업이 아니라, 의미를 추측하고 그 추측이 어느 정도 정확한가를 따져보고 보다 더 나은 추측으로부터 설명을 위한 결론을 끌어내는 것이다(또는 그래야만 한다)."(34)


제2장 문화 개념이 인간 개념에 미친 영향


"계몽주의적 인간관은 간략히 말해서 뉴턴의 우주와 같이 규칙적으로 조직되어 있고, 전적으로 불변하며, 놀랍도록 단순한 인간의 본성이 있다는 것이다. 법칙 중 일부는 부분적으로 다를지 몰라도 중요한 점은 법칙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관점의 문제점은 시간과 장소 및 환경이나 학문과 직업, 일시적 유행이나 순간적 의견과는 독립된, 일관성 있는 인간 본성이 존재한다는 이미지는 환상일 수 있다는 데에 있다." "근대 인류학이 그밖의 어떤 주장을 하더라도 확고히 말할 수 있는 것은, 특정 지역의 관습에 의해서 달라지지 않는 인간은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또한 존재한 적도 없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인간의 본성상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본질적이고 보편적이며 불변하는 것과 관습적이고 국지적이며 변화하는 것 사이에 경계를 긋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사실 그런 경계를 긋는 일은 인간 상황을 오도하거나 적어도 심각하게 잘못 표현하는 것일 수 있다."(52-4)


"여기서 위험한 것은, 만일 누가 (영어의) 대문자 〈M〉을 가진 인간(Man)이 그의 관습의 〈배경에서〉, 〈그 아래에서〉 또는 〈그 위에서〉 찾아져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대문자가 아닌 인간(man)이 관습 〈속에서〉 찾아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바꾸게 되면 그는 인간의 모습을 모두 잃어버릴 어떤 위험에 처하게 된다는 점이다. 인간은 자신의 시대와 장소의 영향 속으로 남김없이 용해되어버리거나 자신의 시대에 완전히 사로잡힌 어린아이가 되어, 헤겔 이후 계속 우리를 괴롭혀온 가공스러운 역사적 결정론 내지는 그것과 유사한 것에 휘말리게 된다. 우리는 사회과학에서 이와 같은 두 가지 궤도이탈을 모두 겪어왔는데, 하나는 문화적 상대주의의 기치 하에서, 다른 하나는 문화진화론의 기치 하에서 행진해왔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보다 일반적으로 문화 패턴 그 자체 안에서 비록 표현은 동일하지 않더라도 독특한 성격의 인간 존재를 결정하는 요소를 탐구함으로써 그 궤도 이탈을 피하려고 노력해왔다."(55)


"우리는 문화가 인간성에서 본질적이고 환원 불가능한, 심지어 지고의 구성요소라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 문화가 인간에게 존재하는 모든 것이라고 우길 필요는 없다. 문화적 사실은 그것을 비문화적 사실의 배경으로 용해시키거나 혹은 거꾸로 그러한 배경을 문화적 사실로 용해시키는 일 없이, 비문화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여 해석될 수 있다. 인간은 일종의 진화적으로 누적된 산물로서 위계적으로 층화된 동물이었다. 그점에서 유기적, 심리적, 사회적, 문화적인 각각의 층은 정해전 명확한 위치를 가지고 있다. 정말 인간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인류학, 사회학, 심리학, 생물학 등 다양한 인접 학문으로부터의 발견들을 마치 물결이 여러 겹으로 파장을 그리며 퍼져나가듯이 서로에게 부가시켜야 했다. 그렇게 된 연후에야 문화적 층위의 기본적 중요성, 즉 인간에게만 특징적인 성질이 자연스레 나타나서 인간이란 정말 무엇인가를 그 자체의 고유 권한으로 우리에게 가르쳐주게 될 것이다."(56-7)


"인간 개념을 정의하는 문제가 발생할 때, 인류학자들이 문화의 특수성을 피하여 그 대신 피가 통하지 않는 보편성으로 도망치게 되는 중요한 이유는 인간 행동의 그 어마어마한 다양성에 직면하여 역사주의, 또는 어떤 확고한 기반도 완전히 제거시킬 만큼 강력한 문화 상대주의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학에서 결정적인 것은 현상들이 경험적으로 공통적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 밑에 숨겨져 있는 지속적인 자연의 과정을 밝힐 수 있느냐 없느냐이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유사한 현상들 사이의 실질적인 동일성이 아닌, 다양한 현상들 사이의 체계적인 관계를 찾을 필요가 있다. 그 일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우리는 인간 존재의 다양한 측면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층위론적〉 개념을 종합적 개념으로 대체할 필요가 있다. 즉 생물학적, 심리학적, 사회학적, 문화적 요소들이 단일한 분석체계 속에서 변수들로 처리될 수 있게 하려는 구상이다."(63-4)


제3장 문화의 성장과 정신의 진화


"비행기의 발명은 인간의 신체 변화를 유발하지 않았고 (내면적인) 정신적 능력에도 어떠한 변이를 일으키지 않았다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자갈돌 석기와 거칠게 깎은 돌도끼의 경우에는 꼭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그 결과 더욱 곧은 직립 자세와 치열(齒列)의 축소 그리고 엄지손가락이 보다 중요해진 손이 생겼을 뿐 아니라 뇌가 현대인과 같은 크기로 확대된 것같이 보이기 때문이다. 도구의 제작은 손놀림과 시야의 발달을 촉진시켰기 때문에, 그것의 시작은 사회조직과 의사소통 및 도덕적 규제의 발전에도 작용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며, 따라서 전두엽의 급속한 성장에 유리하도록 도태과정의 방향을 바꾸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정신의 진화적 성장과 관련하여 결정적인 지점은 문화의 축적은 유기체적 발전이 종료되기 이전에 이미 충분히 진행되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러한 축적은 유기체 발전이 최종 단계에 이르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이다."(90)


"지시적 사고라는 특정한 의미에서 인간의 지능은 유기체가 어떤 목적을 위해서건 필요로 하는 환경적 자극을 생산(발견, 선택)하는 것과 같은 방법에 의해서 어떤 종류의 문화적 자원을 조작하는 데에 달려 있다. 이것은 정보에 대한 탐구이다. 그리고 이 탐구는 더욱 절박한 것인데, 그것은 그 정보가 유전적 자질에 의해서 유기체가 손에 넣을 수 있는 고도의 일반성을 지니는 정보이기 때문이다. 하등동물일수록 행동을 수행하기에 앞서 환경으로부터 상세히 배울 필요가 적다. 새들은 나는 것을 배우기 전에 풍동을 만들어 항공 역학의 원리를 실험할 필요가 없다.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특이성〉은 흔히 인간이 얼마나 많이 그리고 얼마나 많은 종류의 것들을 배울 수 있는가로 나타내어졌다." "전반적으로 약체인 인간은 문화 없이는 신체적으로 생존 불가능한 동물이라고 흔히 지적되어왔다. 그러나 인간이 정신적으로도 생존 불가능하다는 것은 그다지 주목되지 않았다."(103)


"이 모든 것은 인간 사고의 지적인 측면뿐 아니라 정서적 측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인간이 가지는 엄청난 본질적 감수성을 고려할 때 그러한 압력은 지나치게 강도가 높거나, 너무 다양하거나, 너무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 감정의 파괴와 사고과정의 완전한 붕괴가 따르기 때문이다. 권태도 히스테리도 모두 이성(理性)의 적이다. 이처럼 〈인간은 가장 이성적이며 또한 가장 감정적 동물인〉 까닭에, 감정의 극단적 동요가 따르는 지속적 정서불안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금기(禁忌), 행동의 균일화, 익숙한 개념에 의한 낯선 자극의 빠른 〈합리화〉 등의 방법을 통하여 공포, 격분, 암시적 자극 등에 대하여 매우 신중하게 문화적으로 제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인간은 상당히 고도의, 비교적 지속적인 정서 활동 없이는 효율적으로 행동할 수 없는 까닭에, 그러한 활동을 유지시킬 수 있는 다양한 감각적 체험을 항상 확보해주는 문화적 장치 또한 필수적이다."(104)


제4장 문화체계로서의 종교


# 종교의 정의

(1) 작용하는 상징의 체계로, 

(2) 인간에게 강력하고, 널리 미치며, 오래 지속되는 분위기와 동기를 성립시키고,

(3) 일반적인 존재의 질서 개념을 형성하며,

(4) 그러한 개념에 사실성의 층을 씌워,

(5) 분위기와 동기가 특이하게 현실적인 것으로 보이게 한다.


"상징체계이건 상징의 복합이건 간에, 문화 패턴에 관한 한, (1)의 정의에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반적 특성은 그것이 정보의 외재적 원천이라는 점이다. 〈외재적〉이라는 단어를 통해서, 나는 오직─예컨대, 유전자와는 달리─개별 유기체의 경계 밖에, 즉 공통적 이해의 간주관적 세계에 그것들이 놓여 있다는 것을 의미하려고 했다. 모든 인간은 그 세계 속으로 태어나고, 그 속에서 각자의 개별적 경력을 쌓고, 그들이 죽고 난 뒤에도 존속한다. 〈정보의 원천〉이라는 말을 통해서, 나는 오직─유전자와 마찬가지로─그것들이 그것들 외부의 과정과 관련하여 제한된 형식을 부여할 수 있는 청사진 또는 형판(型板)을 제공한다는 것을 의미하려고 했다." "즉 문화패턴은 그 자신을 사회적, 심리적 실재에 맞게 만드는 동시에 사회적, 심리적 실재를 자신들에게 맞게 만드는 과정을 통하여 사회적, 심리적 실재에 의미, 즉 객관적 개념 형식을 부여한다."(117-8)


"혼돈─해석만이 아니라 해석 가능성이 결여된 사건의 혼란─은 적어도 세 가지 문제에서 인간에게 끼여들려고 위협한다. 그것은 인간의 분석능력의 한계에서, 인내력의 한계에서 그리고 그의 도덕적 통찰력의 한계에서이다. 당황, 고통 그리고 손댈 수 없는 윤리적인 역설의 느낌은 만일 그것들이 지나치게 심해지거나, 길게 지속되거나 하면, 모든 인생은 이해 가능하며 우리는 사고를 통해서 그 안에서 효율적으로 우리 자신을 위치짓게 할 수 있다는 명제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 된다. 존속하기를 바라는 모든 종교는 그것이 아무리 〈원시적이라도〉 그것과 같은 도전에 어떻게 해서든 대처하도록 시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적어도 어떤 사람들─필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험의 세계를 그려내고 설명하기를 호소하는 사물을 설명하기 위한 인간의 설명장치, 즉 수용된 문화 패턴(상식, 과학, 철학적 사색, 신화)의 복합이 되풀이하여 작용하지 않게 되면 깊은 근심에 빠지게 되는 경향이 있다."(126-7)


"역설적으로, 종교적 문제로서 고통의 문제는 어떻게 고통을 회피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고통을 당하느냐, 어떻게 육체적 고통, 개인적 상실, 세속적 패배, 또는 타인의 고뇌를 무기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을 참을 만하고, 견딜 만한 것─우리가 흔히 말하는 고통 당할 만한 것─으로 만드느냐이다." "베버가 말한 '의미의 문제(Problem of Meaning)'에서 보다 더 지적인 측면은 경험에 대한 궁극적인 설명 가능성을 긍정하는가의 문제이며, 보다 더 감정적인 측면은 궁극적인 인내 가능성을 긍정하는가의 문제이다. 종교의 한 측면이 현실의 전반적 형태에 대한 권위 있는 개념을 분석적으로 형성하는 우리의 상징적 자원의 힘에 닻을 내리고 있다면, 또다른 측면은 그것의 퍼져나가는 성향과 내재된 느낌 및 성질에 대한 유사한 개념을 감정─분위기, 감성, 정열, 애정, 느낌─으로 표현할 수 있는, 역시 상징적인 우리의 자원의 힘에 닻을 내리고 있다."(131)


"종교적 개념이 진실이며, 종교적 지시가 옳은 것이라는 확신이 어떤 식으로든 발생하는 것은 의례─즉 신성화된 행위─에서이다. 신성한 상징이 인간에게 일으키는 분위기와 동기, 그것들이 인간을 위해서 형성하는 존재의 질서에 대한 일반 개념이 서로 만나 강화하는 것은 어떤 종류의 의식(儀式)의 형식─비록 그것이 신화의 낭송, 신탁(神託)에 묻는 것, 또는 무덤의 장식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에서이다." "신의 개입이 신앙의 창조에서 어떤 역할을 하건 하지 않건 간에─그것이 어느 쪽이라고 말하는 것은 학자의 일이 아니다─인간의 차원에 종교적 확신이 나타나는 것은 적어도 일차적으로는 종교적 관행의 구체적 행위의 맥락으로부터이다." "그러한 의례들 안에는, 한편에서는 광범한 분위기와 동기가, 다른 한편에서는 광범한 형이상학적 개념이 결합된다. 싱어의 용어를 빌리면, 우리는 이들 성숙한 의식들을 〈문화적 연기(cultural performance)〉라고 부를 수 있다."(141-2)


제5장 에토스, 세계관 그리고 성스러운 상징의 분석


"최근의 인류학적 논의에서, 어떤 문화의 도덕적 (그리고 미적) 측면이나 평가적 요소는 보통 〈에토스(ethos)〉라는 용어로 요약되어왔다. 반면에 인지적, 존재론적 측면은 〈세계관(world view)〉이라는 용어로 표현되어왔다. 한 민족의 에토스는 그들 생활의 색조, 성격, 성질이고, 그것의 도덕적, 미적 양식이며 분위기이다. 그것은 그들 자신에 대한 그리고 생활이 반영하는 그들의 세계에 대한 근본적 태도이다. 그들의 세계관은 사물이 실제로 존재하는 방식에 대한 그들의 그림이며, 자연, 자신, 사회에 관한 그들의 개념이다. 그것은 질서에 대한 그들의 가장 포괄적 관념을 포함하고 있다. 종교적 신앙과 의례는 대립함으로써 서로가 서로를 강화한다." "이처럼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가치관과 그 안에서 스스로를 발견하는 존재의 일반적 질서 사이의 의미 있는 관계를 제시하는 것은 그러한 가치나 질서가 어떻게 생각되든 간에 모든 종교에서 본질적인 요소이다."(157-8)


"그러나 의미라는 것은 십자가, 초승달 또는 깃털을 가진 뱀(땅 위의 뱀과 하늘의 새가 결합된, 고대 멕시코의 중요한 신인 케트살코아틀)과 같은 상징으로만 〈축적되는〉 것이다. 이러한 종교적 상징은 의례에서 극적으로 표현되거나, 신화에서 이야기되지만, 그것을 믿는 사람에게는 세계가 존재하는 방식에 관해서 알려진 것, 그것이 지지하는 감정적 생활의 질, 그 안에 있을 때 행동해야만 하는 방식들을 집약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따라서 성스러운 상징은 존재론과 우주론을 미학과 도덕에 연결시킨다. 그것들의 독특한 힘은 가장 기본적인 수준에서 사실을 가치에 결합시킨다고 생각되는 능력, 즉 단지 실제의 것에 불과한 포괄적인 규범적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에서 유래하고 있다." "어떤 수준에서 세계관과 에토스를 통합하려는 경향은 논리적으로 필연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경험적으로는 존재할 수밖에 없으며, 철학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실제로는 보편적이다."(158)


"성스러운 상징은 긍정적인 가치뿐 아니라 부정적인 가치까지도 극화한다. 그것들은 선이 되는 것뿐 아니라 악이 되는 것의 존재를 향해서 그리고 이 둘 사이의 갈등을 향해서도 가리킨다. 소위 악의 문제란 자신의 내부와 외부에 있는 파괴적인 힘의 현실적 본질을 세계관의 용어로 도식화하는 문제이며, 살인, 농사의 실패, 질병, 지진, 빈곤, 억압을 어떤 방법으로든 그것들에 대처하는 것이 가능해지도록 해석하는 문제이다. 악을 근본적으로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는 견해는 인도 종교와 일부 기독교 교파처럼 악의 문제에 대한 하나의 예외적 해결방식일 뿐이다. 대부분의 경우, 악에 대한 태도는 포기, 능동적 대항, 쾌락적 도피, 자기 비탄과 참회, 자비를 원하는 겸허한 기원 등 악의 본질을 인정하는 합리적이고 적절한 것이어야 할 것이 요구된다." "에토스는 단지 그들이 찬양하는 고상함에서만이 아니라 그것이 비난하는 비천함에서도 현저히 드러난다. 즉 악덕은 미덕과 더불어 양식화되는 것이다."(162-3)


"따라서 사회적 가치를 지지하는 종교의 힘은 그러한 가치가 그것의 실현에 대립하는 힘들과 마찬가지로 근본적인 구성요소가 되어 있는 세계를 형성하는 것이 가능한 종교적 상징의 능력에 달려 있다. 그것은, 막스 베버를 인용하면, 〈사건들이 그저 존재하고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의미를 지니며 그 의미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라는 말처럼 현실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상상력을 나타내고 있다." "어떤 문화에서도 단순한 인습주의는 사람들을 거의 만족시키지 못한다. 종교의 역할이 시대, 개인, 문화에 따라서 다르다고 하더라도, 종교는 에토스와 세계관을 융합시킴으로써 일련의 사회적 가치에 대하여 그것들이 강제력을 지니기 위하여 가장 필요로 하는 것, 즉 객관적인 것으로 보이게 하는 측면을 제공한다. 성스러운 의례와 신화에서, 가치는 주관적인 기호로서가 아니라 특유의 구조를 지니는 세상에 내재되어 있는 생존을 위하여 강요된 조건으로 묘사된다."(163)


제6장 의례와 사회변화: 자바의 예


"이 장의 논제는 기능주의적 이론이 ('사회변동'이라는) 변화를 다루지 못한 주요 이유 중의 하나는 사회학적 과정과 문화적 과정을 동등하게 다루지 못한 점에 있다는 것이다. 거의 필연적으로 둘 중에 하나는 무시되거나 희생되어 다른 것의 단순한 반영, 즉 〈거울에 비친 모습〉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여겨져버린다. 문화는 전적으로 사회조직의 형태에서 파생된 것─많은 미국의 사회학자뿐 아니라 영국의 구조주의자에게 특징적인 접근법─으로 간주되거나, 또는 사회조직의 형태가 문화 패턴의 행태적 구현─말리노프스키와 많은 미국의 인류학자들의 접근법─으로 간주되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어느 경우이든 종속적 항목은 역동적 요소에서 제외되며, 우리에게 남는 것은 문화의 총괄적 개념(〈······의 복합적 총체〉)이거나 아니면 사회구조라고 하는 아주 포괄적 개념(〈사회구조는 문화의 한 측면이 아니라 특별한 이론틀 속에서 조정되는 주어진 인간 문화의 전체〉)이다."(176-7)


"그러나 문화와 사회체계를 구분하는 보다 유용한 방식 중 하나─그러나 결코 유일한 것은 아니다─는 전자가 의미와 상징의 규칙화된 체계이며 그 체계를 준거로 사회적 상호 작용이 발생한다고 보고, 후자를 사회적 상호 작용의 유형 그 자체로 보는 것이다. 한편에는 사람들이 세계를 정의하고 감정을 표현하고 판단을 내리기 위한 신앙과, 표현적 상징 및 가치의 준거틀이 존재한다. 다른 한편에는 연속되는 상호 작용적 행위의 과정이 존재하는데, 우리는 그것의 지속적 형태를 사회구조라고 부른다. 문화는 인간이 자신의 경험을 해석하고, 행동의 지침으로 삼기 위한 의미의 틀이다. 사회구조는 행위의 형태이며, 실제로 존재하는 사회관계의 네트워크이다. 따라서 문화와 사회구조는 동일한 현상에서 얻어진 상이한 추상화에 지나지 않는다. 전자는 사회적 행동을 그것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가지는 의미의 관점에서 고려하며, 후자는 어떤 사회체계의 작동에 대한 기여라는 점에서 고려한다."(177-8)


"문화와 사회체계 사이의 본질적 차이는 소로킨이 〈논리-의미적 통합〉이라고 부른 것과 〈인과-기능적 통합〉이라고 부른 것 사이의 대조이다. 문화의 특징인 논리-의미적 통합은 바흐의 푸가, 천주교의 교리 혹은 일반 상대성이론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종류의 통합을 뜻한다. 즉 양식의 통일, 논리적 함의의 통일, 의미와 가치의 통일이다. 사회체계에 특징적인 인과-기능적 통합은 모든 부분들이 단일한 원인 및 결과의 그물에 결합되어 있는 유기체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종류의 통합을 뜻한다. 각 부분은 〈체계의 유지〉에 작용하는 상호 인과관계의 수레바퀴를 이루는 한 요소가 된다. 두 통합의 유형은 동일한 것이 아니고 그것들 중 하나가 취하는 특별한 형태가 다른 것이 취할 형태를 직접적으로 내포하지는 않기 때문에, 둘 사이 그리고 그것들과 세번째 요소 사이, 즉 우리가 흔히 인성구조라고 부르는 각 개인 안의 동기 부여적 통합의 유형 사이에는 내재적 불일치와 긴장이 존재한다."(178)


"사회학적 종류이든 사회심리학적 종류이든 간에, 정태론적 기능주의는 이런 종류의 부조화를 추출할 수 없다. 논리-의미적 통합과 인과-기능적 통합을 식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화의 구조와 사회구조가 단순한 서로의 반영물이 아니라, 상호 의존적이지만 독립변수라는 사실을 자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변화의 동인(動因)은 자신이 무엇인가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세상, 그 본질적 의의를 파악할 수 있다고 느끼는 세상에 살고 싶다고 하는 인간의 욕구와 기능하는 사회유기체를 유지시키려는 욕구가 일치하지 않는 일이 흔하다는 사실이 고려되는, 보다 역동적인 형태의 기능주의 이론에 의해서만 분명하게 도식화될 수 있다. 〈학습된 행위〉라는 산만한 문화 개념은 균형잡힌 상호 작용의 패턴으로 사회구조를 보는 정태론적 견해이며, 또한 문화의 구조와 사회구조가 (〈해체〉상태를 제외하고) 결국 서로의 단순한 투사상에 불과하다는 공언된, 혹은 무언의 가정은 너무도 유치한 개념장치이다."(205)


제7장 현대 발리에서의 "내적 개종"


"막스 베버는 종교학에 관한 유명한 저서에서 세계종교를 〈전통적인〉 종교와 〈합리적인〉 종교라는 두 이념형으로 구분했다." "이 두 이념형은 종교와 사회가 어떤 관계를 지니고 있는지에 따라서 결정된다. 전통적 종교(베버는 〈주술적〉이라는 용어도 사용했다)는 기존의 사회적 관행들을 엄격하게 전형화시킨다. 전통적 종교는 거의 하나하나가 연결되는 방식으로 세속적 관습과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모든 인간 활동을······상징적 주술의 범주로〉 끌어들이고, 그렇게 해서 일상적 삶이 끊임없이 고정되고 확고하게 계획된 과정을 거치도록 해준다. 그러나 합리적 종교는 일상생활의 구체적 실상과 그렇게 전적으로 얽혀 있지 않다. 합리적 종교는 일상생활과 〈떨어져서〉, 〈그 위에〉 또는 〈그 외부에〉 존재한다. 그리고 의례와 신앙의 체계와 세속적 사회와의 관계는 밀접하거나 확실하지 않고 거리감이 있다. 그러나 합리적 종교가 세속적 삶을 등한시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207-8)


"종교적 영역과 세속적 영역 사이의 관계가 이와 같이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종교적 영역 그 자체의 구조 또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전통적 종교는 매우 구체적으로 규정되고 단지 느슨하게 규칙지어진 다수의 성스러운 실체, 거의 모든 종류의 현실적 사건에 대해서 독립적이고 분절적이며 즉각적인 방식으로 스스로를 포함시킬 수 있는 상세한 의례적 활동과 생생한 애니미즘적인 이미지의 정돈되지 않은 덩어리로 존재한다." "반면, 합리적인 종교는 보다 추상적이고 보다 논리적으로 일관되며 보다 일반적으로 표현된다. 전통적 체계에서 내재적이고 분절적으로 표현되던 의미의 문제가, 여기에서는 포괄적으로 도식화되어 종합적인 태도로 접근된다. 의미의 문제는 특정의 사건과 분리될 수 없는 면보다는 보편적인 것으로, 인간 존재의 내재적 본질로 개념화된다." "베버는 바로 이런 포괄적인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 소위 세계종교(world religions)가 출현하게 되었다고 논했다."(208-9)


"전통적 종교와 합리적(이것의 반대는 불합리가 아니라 합리화되지 않은 것이다) 종교의 대비는 이론상으로는 가능하나 실제적으로는 그 차이가 명백하지 못하다. 특히, 문자를 가지지 않은 민족들의 종교는 전적으로 합리적인 요소를 결여하고 있고 문자를 가지고 있는 민족들의 종교는 완벽하게 합리화되었다고 가정되어서는 안 된다. 이른바 원시종교라고 불리는 많은 종교들도 자의식이 강한 비판을 보여주고 있으며, 종교적 사고가 고도의 철학적 정교함에 도달한 사회에서도 전통적인 종류의 민간신앙이 끈질기게 지속된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말한다면, 세계종교가 씨족, 부족, 촌락의 종교나 민간신앙에 비해서 보다 뛰어난 개념적 일반화, 보다 단단한 형식적 통합, 보다 명쾌한 교리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종교적 합리화는 전체 아니면 무(無)의 과정이 아니며, 역행할 수 없고 피할 수 없는 과정도 아니다. 그것은 경험적으로 나타나는 현실의 과정이다."(211)


제8장 문화체계로서의 이데올로기


"이데올로기의 사회적 결정요인에 관한 연구에는 현재 두 가지 주요한 접근법이 있다. 그것은 이익이론(interest theory)과 긴장이론(strain theory)인데, 전자에 의하면 이데올로기는 하나의 가면이자 무기이고, 후자에 의하면 이데올로기는 징후이자 치료이다. (마르크스주의 전통에 의해서 완성된) 이익이론에서 이데올로기적 견해는 이익을 얻기 위한 보편적인 투쟁을 배경으로 하고, 긴장이론에서는 사회심리적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한 만성적인 노력을 배경으로 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인간은 전자에서는 권력을 추구하며, 후자에서는 불안으로부터 도피하려고 한다. 물론 인간은 동시에 양쪽 측면을 지닐 수 있기 때문에─혹은 한쪽을 이용해서 다른 쪽을 취할 수도 있고─두 이론이 반드시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익이론이 가지는 경험적 난점에 대응하여 등장한) 긴장이론이 덜 단순하고, 더 날카로우며, 덜 구체적이며, 더 포괄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240)


"예나 지금이나 이익이론의 최대 강점은 문화적 관념체계의 뿌리를 공고한 사회구조의 토대 속에 두고 있다는 점인데, 이는 그러한 체계를 표방하는 사람들의 동기를 강조하고 그러한 동기가 사회적 지위, 특히 사회계급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더 나아가서 관념은 무기이고, 어떤 집단, 계급, 정당의 현실에 대한 특정한 시각을 제도화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정치권력을 획득하여 그것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지적함으로써, 이익이론은 정치이론을 정치투쟁과 결합시켰다. 이러한 공헌은 영속적인 것이었고, 만일 이익이론이 기존의 주도권을 지금에 와서 상실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이익이론의 잘못이 입증되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자신이 발견한 사회적, 심리적, 문화적 요인간의 복잡한 상호 작용에 대처하기에 이론적 장치가 너무나 원초적이었기 때문이다. 뉴턴 역학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것은 추후에 발전된 연구에 의해서 대체되었다기보다는 오히려 흡수되었다."(241)


"한편 사회적 행위는 본질적으로 끊임없는 권력에의 투쟁이라는 관점은 이데올로기를 고도의 기만으로 간주하는 과도한 마키아벨리즘에 이르게 함으로써 결국 이데올로기의 보다 포괄적이면서 덜 극적인 사회적 기능을 무시하게 한다. 주의(主義)간의 충돌로 엷게 가장한 이해관계의 충돌이라는 사회에 대한 전쟁터의 이미지는 사회적 범주의 규정(또는 모호화), 사회적 기대의 안정화(또는 불안정화), 사회규범의 유지(또는 파괴), 사회적 합의의 강화(또는 약화), 사회적 긴장의 해소(또는 고조)라는 이데올로기의 역할에 주의하지 않게 한다. 이데올로기를 필전(筆戰)에 놓여 있는 무기로 축소시키는 것은 이데올로기 분석에 호전성을 고양시키는 것이 되겠지만, 그러한 분석은 전략과 전술의 협소한 현실주의로 지적 활동을 위축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익이론의 강도는─화이트헤드의 표현을 빌면─그 자체의 편협성에 대한 보답일 뿐인 것이다."(242)


"긴장이론이 출발하는 분명하고 독특한 개념은 사회의 만성적인 불통합(不統合) 상태이다. 어떠한 사회적 질서도 그것이 필연적으로 직면하는 기능적 문제를 처리할 때 완전히 성공하지는 않으며 또한 그럴 수도 없다. 자유와 정치질서, 안정과 변화, 효율과 인도주의적인 것, 엄격함과 융통성 등 모두가 해결되지 않는 이율배반으로 되어 있다. 경제, 정치, 가족 등 사회 각 부문의 규범들 사이에는 불연속성이 존재한다." "나아가 이런 알력 또는 사회적 긴장은 개인 인성의 차원─그 자체가 갈등하는 욕구, 과거에 기인하는 감정 그리고 즉흥적 방어의 필연적인 불통합 체제이다─에서는 심리적 긴장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이데올로기적 사상은 이러한 절망에 대한 (일종의) 반응으로 간주된다. 〈이데올로기라는 것은 사회적 역할이 초래하는 패턴화된 긴장에 대한 패턴화된 반응이다.〉 그것은 사회적 불균형으로 야기된 감정적 혼란을 해소하기 위한 〈상징적 배출구〉가 된다."(243)


"사회학자들이 이데올로기를 단지 고통에 대한 정교한 울부짖음 정도로 국한시킨 것은 그러한 이론의 부재, 특히 비유적 언어를 다루기 위한 분석틀의 부재에 기인한다." "퍼시가 지적하고 있듯이, 철학자(그는 과학자를 포함시켰을 수도 있다)를 매우 성가시게 했던 은유의 특징은 그것이 〈틀렸다〉는 데에 있었다. 즉 〈은유는 어떤 것을 그것이 아닌 다른 것이라고 단언한다.〉 더구나 가장 잘 〈틀렸을 때〉 가장 효과적인 경향이 있다. 은유의 힘은 그것이 단일한 개념틀 안에 상징적으로 밀어넣은 서로 조화되지 않는 여러 의미들의 상호 작용과 그것의 강요가 심리적 저항, 즉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필연적으로 생기는 의미론적 긴장을 얼마만큼 성공적으로 극복하느냐의 정도에서 나온다. 제대로 작용되면 은유는 잘못된 동일화(예를 들면 공화당의 노동정책과 볼셰비키의 노동정책)를 적절한 유추로 변형시킬 수 있게 되며, 불발이 되면 단지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 된다."(249-51)


"여타의 차이점이 무엇이든 간에 소위 인식적 상징과 표현적 상징 또는 상징체계는 적어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이 둘 모두 생활을 패턴화시키는 정보의 외재적 자원이다. 즉 세계를 지각하고, 이해하고, 판단하고, 조작하는 초개인적 장치인 것이다. 문화 패턴─종교적, 심리적, 미학적, 과학적, 이데올로기적 패턴─은 〈프로그램들〉이다. 유전학적 체계가 유기적 과정을 조직해가면서 형판 같은 것을 제공하듯이,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사회적, 심리적 과정을 조직해가면서 형판 또는 청사진을 제공한다. … 유전적 형판은 문화적인 형판에 의해서 정확한 일련의 행동들을 조직하고 전면적인 정신물리학적인 상황을 만든다." "자기 실현의 실행자인 인간은 상징 모델을 구축하는 그의 일반적인 능력으로부터 자기를 규정하는 특정한 능력을 창출한다. 또는 사회질서에 대한 도식적 이미지, 즉 이데올로기의 구축을 통해서 인간은 좋든 나쁘든 스스로를 정치적 동물로 만들어간다."(258-9)


제9장 혁명 이후: 신생국에서의 민족주의의 운명


# 민족주의의 네 단계

1. 민족주의 운동이 형성되고 구체화되는 단계

2. 승리를 거두는 단계

3. 국가로 조직화되는 단계

4. 국가로 재편된 민족주의 운동이 다른 국가들과의 관계 및 자신의 모체였던 무질서 사회와의 관계를 규정하고 그것을 안정화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단계


"하나의 지역국가가 이제 꿈이 아닌 실제로 존재하게 되면서, 민족주의적 이념화 작업은 전면적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이제 경험상의 〈우리〉를 창조하거나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는 작업이 진행되면서, 〈토착적 생활양식〉(The Indigenous Way of Life)이나 〈시대정신〉(The Spirit of the Age)이라는 두 개의 추상적 구호의 내용과 상대적 중요성 그리고 이들의 적절한 관계에 대한 질문이 계속적으로 제기된다. 토착적 생활양식을 강조한다는 것은 새로운 정체성의 기초로서 지역적 관습이나 기존의 제도 그리고 공동의 경험─전통, 문화, 국민성, 심지어 인종─을 중요시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비해서 시대정신을 강조하게 되면 우리 시대 역사의 일반적 개요와 특히 그 시대의 전반적인 방향과 의미로 간주되는 것을 중요시한다. 이러한 두 개의 사조(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본질주의〉와 〈시대주의〉라고 할 수 있는)가 나타나지 않는 신생국은 없으며, 그 두 개가 서로 완전히 얽혀 있지 않은 곳은 별로 없다."(284)


"그러므로 본질주의와 시대주의의 상호 작용은 일종의 문화적 변증법인 추상적 사고의 병참술이 아니라, 산업화처럼 구체적이고 전쟁처럼 명백한 역사적 과정이다. 문제들이 단순한 주의나 주장의 수준에서 논의되는 것이 아니라─이런 측면이 비록 많다고 하더라도─모든 신생국의 사회구조가 겪고 있는 실질적인 전환의 수준에서 더욱 중요하게 논의된다. 이데올로기적 변화는 사회의 진행과정과 병행하여 그것을 반영하거나 결정짓는 독자적인 사상의 흐름이 아니며, 그것은 사회의 진행과정의 한 단면이다." "따라서, 비록 신생국에서는 보편적 현상이긴 하지만, 이러한 명백한 역설적 상황 하에서 국가 통일을 향한 움직임은 그들의 특수한 맥락에 의거하는 문화 유형을 그 맥락으로부터 떼어내어 그것을 일반적인 충성 대상으로까지 확대시켜서 정치화시킴으로써 사회 안의 집단들간의 긴장을 심화시켰다. 민족주의 운동이 발전할수록 그것은 여러 갈래로 분해되었다."(287-9)


제10장 통합을 위한 혁명: 신생국에서의 원초적 정서와 시민정치


"하나의 사회로서 신생국은 원초적 유대에 기반한 심각한 이탈에 비정상적으로 영향을 받기 쉽다. 원초적 유대란 사회적인 존재에게 〈주어진〉 것에서 유래하는 것─더 정확하게는 문화가 불가피하게 그런 문제에 연루됨으로써 〈주어진〉 것─을 뜻한다. 주로 일차적인 접촉과 혈연적 연관이지만, 이것들을 넘어 특정한 언어, 혹은 심지어 방언을 말하고, 특정한 사회적 관습을 따르며, 특정한 종교 공동체에 태어났다는 사실에서 유래한 주어짐인 것이다." "근대화 과정에 있는 사회는 시민정치의 전통이 약하고 효율적인 복지행정을 위한 전문기관의 필요성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못하다. 이러한 사회에서 원초적 유대는 반복적으로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거의 지속적으로 자율적 정치단위의 구획짓기를 위한 아주 좋은 기반으로 널리 찬양된다. 진정으로 합법적인 권위란 그런 원초적 애착이 내포하고 있다고 인식되는 생태적인 구속력에서만 나온다는 이론은 솔직담백하게, 열정적으로 그리고 소박하게 옹호된다."(304-5)


"원초적 요소에 기반한 정치적 결속체들은 대부분 신생국들의 심층에서 끈질긴 힘을 발휘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언제나 왕성하게 그리고 즉각적으로 뚜렷하게 표출되지는 않는다. 우선, 단일한 시민국가의 범위 안에서 어느 정도 전체적으로 작용하는 헌신(충성)과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 작동해야 할 충성 사이를 분류하는 문제를 위하여 유용한 분석적 구별이 이루어질 수 있다. 또는 달리 표현하여, 인종적, 부족적, 언어적 준거집단이 기존의 시민국가에 비해서 더 작은 경우와, 반대로 그것들이 국가보다 더 크거나 최소한 어떤 형태든 시민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는 경우들을 대조적으로 놓고 볼 수 있다. 원초적 불만은 먼저 정치적 질식감에서 또 두번째는 정치적 분할에서 생기게 된다. 버마의 카렌족의 분리주의, 가나의 아샨티족이나 우간다의 간다족의 문제는 전자에 관한 예들이고, 범아랍주의, 대(大)소말리주의, 범아프리카주의는 후자의 예가 된다. 신생국의 대부분은 이 두 종류의 문제로 동시에 고통을 받고 있다."(310)


"원초적 정서와 시민정치 사이의 이 긴장은 비록 조정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완전히 해결될 수는 없다. 근본적으로 자신이 누구이고, 어느 집단에 확실히 귀속되는가에 대한 개인의 생각을 형성하는 출생지, 언어, 혈통, 외모, 생활양식이라고 하는 〈여건(與件)〉의 힘은 인성의 기반 중에서도 이성적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 그리고 이처럼 무반성적(無反省的)인 집단의 자기 상(像)은 한번 확립되면 착실히 진행되는 국가의 정치과정 속에 어느 정도 개입되는 것은 확실하며, 그것은 정치과정이라는 것이 그토록 넓은 범위에까지 관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생국─또는 그 지도자들─이 원초적 유대에 관한 한 노력해야 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현실에서 행해져왔듯이, 그것을 하찮은 것으로 여기거나 그것의 실체를 부정함으로써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바랄 것이 아니라 그러한 유대감을 길들이는 것이다."(325-6)


제11장 의미의 정치


"정당성이라는 고전적 문제─어떻게 해서 일부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는 권리를 인정받게 되는가─는 오랜 기간 동안 식민지 지배를 받음으로써 규모는 전국적이지만 실체는 그렇지 못한 정치체제를 가진 나라에서는 특히 심각하다. 국가가 대권을 장악하고 국민으로부터 그것을 지키는 것 이상을 하기 위해서는, 그 행위가 그 국가를 자신들의 것이라고 여겨지게 하고 싶은 사람들, 즉 국민들에게 밀접히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생각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단순한 합의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이 자신이 그것을 직접 수행했다는 것을 인정하기 위해서 자신의 행위를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야 할 필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그 일부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 정부의 행위에 동의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직접성의 문제이며, 국가가 〈행하는〉 것을 친숙하고 이해 가능한, 〈우리〉로부터 자연스럽게 출발하고 있는 것으로 경험하는 문제이다."(372)


"독립을 성취했을 당시 그처럼 엄청나게 생각되었던 정치적 과업들─외세(外勢) 지배의 종결, 지도체제의 창출, 경제발전의 도모, 국민적 통일감의 유지─은 분명히 엄청난 과업들이었음이 밝혀졌으며, 독립을 성취했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드러났다. 그러나 그러한 과업들 외에 또 하나의 다른 과업이 추가되었다. 그것은 당시에 덜 분명하게 드러났을 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확실히 인식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바로 근대 정부의 여러 제도들로부터 외국 냄새를 제거하는 것이다." "낙후된 것이라고 비난받는 신앙, 관습, 이상, 제도의 어느 것에 대해서도 한 가지가, 그러나 대개 같은 것이 같은 사람들에 의해서 현대성의 정수로 찬양되며, 다른 한편으로 외국의 것이라고 공격받던 어떤 것들에 대해서도 한 가지, 역시 같은 한 가지가, 민족혼의 성스러운 표현으로 환호된다. 이러한 문제에서 〈전통적〉으로부터 〈근대적〉으로의 단순한 진보는 없다."(373-5)


"보통은 부정되지만 실은 부정할 수 없는 이 사실은 근대화가 토착적이고 쇠퇴하고 있는 것을 수입된 최신의 것으로 대체하는 일로 이루어진다는 전제로부터 출발하는 어떠한 분석도 불가능하게 한다." "문화적 보수주의와 정치적 혁신주의의 긴장된 결합이 신생국의 민족주의의 중추에 있는데, 이 점에 있어서 인도네시아보다 더 극명한 곳은 없다." "즉 한 수준에서는 지극히 일반화된 합의─인도네시아는 하나가 되어 근대화의 정상으로 돌진해나가야 하며, 동시에 모두가 하나가 되어 전통 문화의 정수를 지켜야만 한다는 것─가 다른 수준에서는 어느 방향으로부터 그 근대화의 정상으로 돌진해나갈 것인가 그리고 전통문화의 정수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되어 점증하는 의견의 불일치로 저항받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가 달려간 그 부조화의 종착역은 1965년의 실패한 쿠데타와 그후의 무자비한 여파─3, 4개월 동안 25만 명의 사상자를 낸─그리고 수하르토의 집권이었다."(376-9)


제12장 과거의 정치, 현재의 정치: 신생국 연구와 인류학


"인류학이 농민사회의 일반 비교정치학에 기여할 수 있는 바를 두 가지로 정리해보면, 첫번째로, 전통적 국가들의 문화적 야심과 보통 아주 불완전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 문화적 야심을 실현시킨 사회제도를 구분함으로써 우리들은 사회학적 사실주의라고 부르는 것을 향하여 다가갈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서턴 교수가 말하는 〈기점〉이란 일종의 회고적 이념형이나 하나의 모델이 아니라 특정 공간과 시간 속에서 뿌리내리고 있는 역사적 현실이다." "나는 단지, 전통적 정치의 실제적 모습에 대한 면밀한 민족지적 연구라면 반드시 그렇게 하듯이, 지배자들의 열망, 즉 그들을 어떤 지고(至高)의 목적으로 인도하는 이상과 관념들을 그 목적 수행의 수단인 사회제도와 구별할 것을 제안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현대 국가에서 뿐만이 아니라 전통 국가에서도 정치의 힘이 미칠 수 있는 범위와 그것이 힘을 미치고 있는 범위는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시켜주는 데에 인류학이 기여하는 것이다."(397-8)


"두번째로, 우리는 사회학적 사실주의에 가까이 다가섬으로써 이 분야의 중심적 의문들─즉 신생국의 정치가 걸어가는 길과 전통적 정치가 걸어갔던 길은 서로 어떤 관계가 있는가라는 의문─을 풀어볼 수 있다." "어떤 정치 형태 속의 행위자들을 통제하는 질서의 관념과 그 행위의 무대가 되는 제도적 맥락을 개념적으로 구분한다면 과거의 상태와 현재의 상태와의 관계가 어떠한 것인가에 대해서 더 생산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현재란 온전히 과거의 유산일 따름이다〉, 〈과거라는 것은 단지 한 바구니의 잿더미일 뿐이다〉 따위의 상투적 주장들을 불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그러한 구분을 통해서 문화적 전통이 그것을 이어받은 현재의 국가에 대해서 미치고 있는 이념적 기여와 그러한 국가에 대해서 그것에 선행했던 정부체계들이 미치는 조직적 기여를 구별하기가 쉽게 된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전자가 후자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398-9)


"전통적 국가를 지탱시켜주던 문화적 기구─상세한 신화들, 정교한 의례들, 고도로 발달한 예의─가 대부분의 제3세계 국가에서 그리고 의심할 바 없이 그 나머지 국가들에서조차도 해체되어감에 따라서, 그 자리에는 정치의 성격과 목적에 관한 보다 추상적이고, 보다 의도적이며, 용어의 공식적인 의미에 있어서 보다 합리적인 관념 형태들이 들어설 것이다." "이러한 관념들은 이전 시대의 덜 세련되고 전(前)이데올로기적인 관념들을 대체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과 유사한 역할을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것들은 정치적 행위에 대한 지침과, 그 정치적 행위를 이해하기 위한 이미지와, 그 정치적 행위를 설명해주는 이론과, 그 정치적 행위를 판단할 수 있게 해주는 기준을 제공한다. 이렇게 과거에 만들어지고 전래된 태도와 관습이었던 것을 자각하고 보다 더 명시적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우리가 걱정 반 희망 반으로 〈국가 건설〉이라고 부르게 된 것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400)


제13장 지적인 야만인: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저서에 관하여


"인류학자는 두 가지 운명 중 하나는 자신의 문화가 이미 그들의 문화를 더럽혀, 〈오물, 인류의 얼굴에 던져진 우리의 오물〉로 뒤덮어버렸다는 바로 그 이유로 이해가 가능해진 사람들 사이를 여행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다지 오염되지 않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해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사람들 사이를 여행하는 것이다. 레비-스트로스는 둘 중 하나이다. 엄청난 낯설음이 자신의 삶과 그들의 삶을 갈라놓는 진짜 야만인들(어떤 경우에도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사이를 떠도는 사람이거나, 혹은 〈사라져버린 실재를 찾아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회상적 여행가이다. 〈회상적 여행가란 공간의 고고학자, 즉 여기저기의 파편 조각의 도움으로 이국적 문화를 재구성하려고 헛된 노력을 하는 고고학자이다.〉 거울 속의 사람들과 마주한 그는 그들을 만질 수는 있으나 파악할 수는 없다. 〈나는 이중적인 병약함의 희생양이다. 내가 보는 것은 나에게 상처를 주며 내가 보지 못한 것이 나를 자책하게 했다.〉"(410-1)


"그렇다고 인류학자는 절망해야만 하는가? 우리는 결코 야만인들을 알 수 없는가? (레비-스트로스에 따르면),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세계로 접근하는 데에는 개인적으로 뛰어드는 것과는 다른 길이 있기 때문이다─즉 아직도 채집 가능한(아니면 이미 채집된) 파편들로부터 사회에 대한 이론적 구조를 형성하는 것이다. 비록 실제 관찰할 수 있는 그 어떤 것과도 조응하지 않을지라도 인간 존재의 기본 토대를 이해하도록 우리를 도와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한 것은 원시인과 그들의 사회가 표면적으로 낯설음에도 불구하고 더 깊은 수준, 심리적 수준에서 그들은 결코 이방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은 근본적으로 어디에서나 동일하다. 따라서 특정의 야만인의 부족에게 접근하여, 그들의 세계에 들어가고자 시도하는 것으로는 이룰 수 없었던 것을 한걸음 물러서서 사고(思考)에 대한 일반적, 폐쇄적, 추상적, 형식적 과학의 발달에 의해서 지성의 보편적 문법을 발전시킴으로써 성취할 수 있게 된다."(411)


"야만인들은 실제에 대한 모델, 자연세계, 자아, 신화에 대한 모델을 만든다. 이런 비정통의 과학(〈우리가 '원시적[primitive]'이라기보다 '원초적[primary]'이라고 부르고 싶은〉)은 유한성의 철학을 실천하는 것이다. 개념 세계의 요소들은 미리 만들어져 주어진다. 그리고 사고한다는 것은 그 요소들을 다루는 것이다. 야생적 사고의 논리는 양(量), 양식, 색깔은 변하지 않으면서 다양한 패턴들로 분화될 수 있는 만화경과 같이 작용한다. 이런 식으로 만들 수 있는 패턴들의 수는 만약 그 만화경의 장면들이 충분히 많고 다양할수록 클 것이다. 하지만 무한한 것은 아니다. 그 패턴들은 서로 마주 보는 장면들의 배열에 따라서 구성된다(다시 말해서 그것들은 독립된 개별적 특성의 반영이라기보다는 그 장면들 사이의 관계함수이다). 그리고 변형 가능한 범위는 만화경의 구조, 즉 그 작용을 지배하는 내적 법칙에 의해서 엄격하게 결정된다. 이것은 또한 야생적 사고에서도 그러하다."(413)


"레비-스트로스가 스스로를 위해 만든 것은 문화의 부비트랩 같은 것이다. 그것은 역사를 무의미하게 만들고 감성을 지성의 그림자로 강등시키며, 특정 밀림에서 사는 특정 미개인이 가진 특별한 정신을 우리 모두에게 내재하는 '야생의 사고'로 바꾸어버린다. 그것은 그에게 브라질 여행에서 직면했던 난관─물리적 근접성과 지적 거리감─을 아마도 그가 항상 진정으로 원했던 것─지적 근접성과 물리적 거리─으로 해결하게 해주었다." "「야생의 사고」에서의 고급 과학과 「슬픈 열대」에서의 영웅적 탐험은 근본적으로 서로의 〈가장 단순한 변형〉일 뿐이다. 그 둘은 동일한 심층구조, 즉 프랑스 계몽주의의 보편적 합리주의의 다양한 표현들인 것이다. 구조언어학, 정보이론, 분류논리, 인공두뇌학, 게임 이론, 그외 다른 고급 이론들에 대한 강조에도 불구하고 레비-스트로스의 진짜 스승은 소쉬르도, 섀넌도, 불도, 바이너도, 폰 노이만도 아니고(극적 효과를 위해서 불러낸 마르크스도, 붓다도 아니고) 루소였다."(417-8)


제14장 발리에서의 사람, 시간 그리고 행동


"관념, 개념, 가치관 등은 특정한 사회적 맥락에 적응하고, 사회적 맥락에 의해서 자극되며, 사회적 맥락에 대하여 크고 작은 영향을 준다. 마르크 블로크는 「역사가의 직업」이라는 소책자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 유럽의 거상들, 즉 의류와 향신료를 파는 사람, 구리, 수은 혹은 명반(明礬)의 독점상인, 왕과 황제의 은행가들을 그들이 가진 상품만 알면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가? 홀바인이 그들의 초상화를 그렸고, 그들이 에라스무스나 루터를 읽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중세 봉신(封臣)들의 영주에 대한 태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신에 대한 태도에 관해서도 이해해야만 한다.〉 사회활동의 조직, 그것의 제도적 형태, 그것을 움직이는 관념들의 체계가 함께 이해되지 않으면 안 된다. 마찬가지로 그것들간의 관계의 성격도 이해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사회구조와 문화의 두 개념을 확실히 하려는 시도는 바로 이 이해를 목표로 하고 있다."(423-4)


"공적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행위로서의 사고의 개념, 곧 사고는 경험을 통해서 의미를 각인한 상징의 과정(의례와 도구 ; 조각된 우상과 물웅덩이 ; 제스처, 얼룩무늬, 이미지, 소리)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관점은 문화의 연구를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실증적인 과학으로 만든다. 사고의 물질적인 전달수단인 상징이 포함하고 있는 의미는 흔히 어렵고, 모호하고, 변동이 심하며, 선회한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그런 의미도─특별히 그런 의미를 지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조금만 협조한다면─수소 원자의 무게나 부신의 기능처럼 체계적인 실증적 조사를 통하여 발견할 수 있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발생하는 사건들을 이해하게 되는 것은 문화 패턴, 질서 있는 일군의 중요한 상징들을 통해서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패턴의 전체 집합체로서의 문화 연구는 바로 개인과 개인의 집단이 원래는 애매모호한 세계 가운데에서 자신의 위치를 잡아가는 장치를 연구하는 것이다."(424-5)


"이렇게 광범한 위치설정을 행할 때 필요한 사항 중 하나는, 물론 인간 개개인에 대한 특성짓기이다. 인간은 아무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지각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 범주의 개인을 특정한 범주의 대표자로서 인식하도록 도처에서 상징적인 구조를 발전시켜왔다. 어떤 경우에서도, 필연적으로 그런 구조들은 다수 존재한다." "사회학이나 사회인류학에서 소위 구조분석이라고 불리는 방법은 인간 범주의 특별한 체계를 갖춘 사회에 대해서 기능적 의미를 찾아낼 수 있고 때로는 이 체계가 특정한 사회과정의 영향을 받을 때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예측할 수 있다. 단, 이것은 이 체계─범주들, 그들의 의미, 그들의 논리적 관계─를 이미 알고 있을 때에만 해당된다." "우리가 아직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은, 특정한 시점에 특정한 사회를 대표하는 성원에 의해서 파악되는 경험(여기서는 개개인의 경험)의 의미 있는 구조를 기술하고 분석하는 진보된 방법으로, 그것은 한마디로 하면 문화의 과학적 현상학이다."(425-6)


제15장 심층 놀이: 발리의 닭싸움에 관한 기록들


"발리인들은 일순간의 활동 속에서 산다. 어떤 표현양식도 그 표현양식 자체가 창조해낸 현재 속에서만 존재한다. 발리인들이 영위하고 인식하는 그들의 삶이란 과거로부터 현재를 거쳐 미래로 향하는 하나의 방향성 있는 움직임이라기보다는 의미와 공허함 사이의 진동이며, 〈어떤 일〉(즉 무엇인가 중요한 어떤 일)이 발생하고 있는 짧은 기간과 〈아무것〉(즉 전혀 어떤 것)도 일어나지 않는 짧은 기간들이 율동적으로 교차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그들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찬〉 시간과 〈빈〉 시간들, 혹은 〈접속〉과 〈구멍〉 사이가 교차하는 것이다. 닭싸움은 단순히 일상생활에서 개체들이 우연히 만나는 것에서부터 사원에 축하를 드리기 위해서 신들을 만나는 날까지의 모든 다른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발리적인 것이다. 닭싸움은 발리인의 사회생활에서 보이는 단절성을 모방하는 것도 아니고, 그것을 묘사하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그것을 표현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주의 깊게 만들어진 사회생활의 한 표본이다."(523)


"닭싸움이 가장 효과적으로 설명해주는 것은 지위관계로, 닭싸움이 지위관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삶과 죽음의 문제이다. 위신이라는 것이 심각하게 중요한 문제라는 사실은 발리에서 보게 되는 모든 것─마을, 가정, 경제, 국가─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폴리네시아의 칭호의 위계와 힌두의 카스트가 기묘하게 융합된 자긍심의 위계서열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으로 이 사회의 도덕적인 근간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계층서열에 존재하는 감정이 그 자연스런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오로지 닭싸움에서만이다. 닭싸움 이외의 장소에서는 예의의 베일 중에, 완곡함과 의례의 두터운 구름 속에, 제스처와 암시 속에 둘러싸여 있으며, 그것은 동물의 가면이라는, 인간의 감정을 숨기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훨씬 더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지극히 얇은 가장(假裝)으로만 나타난다. 질투도 평정만큼이나, 시기심도 우아함만큼이나, 폭력성도 매력만큼이나 발리를 이루는 한 부분이다."(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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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인류학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24
존 모나한.피터 저스트 지음, 유나영 옮김 / 교유서가 / 201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아주 짧은 소개


"인류학은 지리상의 발견과 식민주의, 자연과학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생했다. 19세기, 다윈 진화론으로 이어지는 철학 사조의 영향을 받은 최초의 인류학자들은 사회·문화적 진화의 단계를 재구성하는 데 관심이 있었다. 에드워드 타일러와 루이스 헨리 모건 같은 인물들은 문자 체계부터 결혼 관습까지, 가장 원시적인 기원부터 그것이 현대에 나타난 양상까지 모든 것을 망라한 저작을 발표하여 후대에 큰 영향을 끼쳤다. 20세기 초에 이르러 인류학자들은 가장 중요하게는 식민 관료, 선교사, 여행가, 기타 비전문가들의 기술에 의존하여 1차 자료를 얻는 데 더이상 만족하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민족지학자로서 자신만의 정보를 직접 얻기 위해 '현지(field)'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런 민족적 선구자들의 시대 이래로 인류학이 상당히 많이 변화하긴 했어도 여전히 민족지는 인류학을 다른 사회과학과 구분 짓는 요소 중 하나이며, 아마 모든 인류학자들이 민족지 기술의 중요성에 동의할 것이다."(9-10)


"20세기 초에 인류학자들은 대체로 단순한 기술을 지닌 소규모 사회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는 일부분 식민주의가 도래하면서 급속히 바뀌고 있던 생활 방식을 기록하려는 열망의 발로였고(물론 이들 사회가 서구와 접촉하기 이전에 변치 않았다고 가정하는 것은 착각이지만), 일부는 인간 제도의 '본질적' 혹은 '기본적' 형태에 다가가려는 열망의 발로였다(이들 사회가 더 '초보적'인 법이나 종교 등을 지녔다고 가정하는 것 또한 착각이지만). 20세기 후반의 주류 인류학은 자신을 자연과학 전통에 속하는 학문으로 보는 시각에서 멀어졌고, 보다 해석적이고 인문학적인 접근법을 채택했다. 또한 비서구·소규모 촌락에만 맞추었던 초점을 전환하여, 도시의 산업화된 환경에서 찾아볼 수 있는 노동조합, 사교 클럽 등 기존 사회학의 범주에 속했던 집단으로까지 대상을 넓혔다. 그럼에도 인류학은 모든 사회를 염두에 두고 그들 모두를 똑같이 중요하게 다룬다는 점에서, 그 범위에 있어 대체로 비교 연구의 성격을 띠고 있다."(10)


1 동고에서의 다툼: 현지조사와 민족지


"인류학자가 하는 일은 다른 무엇보다도 민족지(ethnography)다. 문화인류학자나 사회인류학자에게 민족지란 생물학자의 실험실 연구, 역사학자의 문헌조사, 사회학자의 설문조사와도 같다. 흔히─완벽히 정확한 용어는 아니지만─참여관찰(participatory observation)이라고도 불리는 민족지는,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를 이해하려면 그들과 장기간에 걸쳐 긴밀히 상호작용하면서 관찰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명백히 단순한 개념에 토대를 두고 있다. 전통적으로 인류학자들이 자기가 연구하는 공동체 안에서 장기간─때로는 한 번에 몇 년씩─거주하며 그 사람들과 최대한 많은 생활을 공유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현지조사에 몰입하는 과정은 사람들을 꾸준히 인류학으로 끌어들이는 독특한 경험이자 도전일 수 있다. 또한 참여관찰은 타인들이 세상을 보고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깊이 이해하며 흔히 우리 자신의 선입견과 믿음에 제동을 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것 같다."(26-8)


"민족지적 방법은 뜻밖의 발견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서베이나 통계 조사 같은 고도로 연역적인 사회과학 방법론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힘과 유연성을 지닌다. 실제로 인류학자들이 현장으로 가지고 들어가는 연구 주제들이 있는 반면에, 현장의 실제 상황과 일상적 사건들이 우리 앞에 우연찮게 떨구어놓는 주제들도 있다. 민족지에서 뜻하지 않은 발견의 임의적 성격은 훌륭한 민족지학자가 현장에서 보내는 시간의 길이를 통해 보완할 수 있다. 그래서 조사가 끝날 무렵에는 이렇게 우연한 방식으로 대부분의 중요한 사회 현상을 접하게 되리라고 기대할 수 있다." "민족지 현지조사가 제공하는 경험적 맥락이 없이는, 사회적 사건의 외견과 그 '실체' 사이의 불일치를 포착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이는 인류학자들이 자신의 연구에서 통찰을 이끌어내기 위해 전통적으로 의존해온 강점 중 하나이자, 전통적인 민족지 현지조사가 장기간의 초기 조사를 중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34-6)


"민족지학자는 사회생활의 어떤 특정한 측면을 연구할 의도를 가지고 현지에 간다. 그 주제는 생태적 적응, 토착 신앙, 성별 관계, 풀뿌리 정치 운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민족지학자는 준비 없이 모험에 뛰어들지 않는다. 대부분의 인류학자는 자신이 현지조사를 하려는 지역의 역사와 과거 민족지 문헌을 몇 년씩 공부하면서 준비를 시작한다. 인류학자들은 자신이 연구하는 사람들의 언어로 통역 없이 현지조사를 수행하는 것을 의무로 여겨왔으므로, 민족지학자 또한 몇 개 언어를 최소한 통용 가능한 수준으로 구사할 필요가 있다. 이런 일반적인 준비 외에도, 민족지학자는 자신이 조사하고자 하는 문제와 관련된 보다 전문적인 분야의 훈련을 받곤 한다. 예를 들어 아마존 원주민의 약용 식물을 조사하려는 연구자는 통상적인 식물학도 공부해야 하지만,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식물을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분류하고 이용하는지도 익혀야 한다. 인류학자는 항상 〈어떤 지역의, 무엇에 대한〉 인류학자다."(38-9)


"참여관찰의 문제는 무엇보다도 민족지학자가 공동체를 일종의 시공간적으로 고립된 모습으로 재현하고픈 유혹에 빠진다는 것이다. 특히 1930~40년대의 '고전적' 기술에서 많은 민족지학자들은 '민족지적 현재'라는 것을 적용하여, 공동체와 이웃한 다른 사회나 그것을 둘러싼 국가의 존재를 언급하지 않은 채, 공동체가 마치 정지된 시간 속에, 역사적 맥락의 외부에 존재하는 것처럼 묘사했다." "실제로 자기 모험의 낭만에 휩쓸린 인류학자들이 사회의 '훼손되지 않은' 전통을 그 사회의 성원들보다 오히려 더 높이 평가하는 경우도 있다." "'민족지적 현재'에 대한 또다른 비판은 민족지학자들이─마치 자신이 제시하는 정보를 이끌어내는 데 자신이 능동적으로 관여하지 않은 것처럼─전지적 삼인칭 시점으로 글을 쓰는 경향과 관련되어 있다." "이런 문제에 접근할 때, 우리는 민족지 기술의 독특함을 상대적인 시공간적 맥락에 놓아줄 문화 상호 간의 비교가 없으면 민족지는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하게 된다."(44-6)


2 벌 유충과 양파 스프: 문화


# 문화에 대한 인류학적 정의들

1. 에드워드 타일러(1871) : 광범위한 (비교) 민족지적 의미에서 보았을 때, 문화 혹은 문명이란 지식, 신앙, 예술, 도덕, 법, 관습, 그밖에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인간이 획득한 능력과 습관들을 포함하는 복합적 총체이다.

2. 프란츠 보아스(1930) : 문화는 한 공동체의 사회적 관습의 모든 발현, 자신이 속한 집단의 관습에서 영향을 받은 개개인의 반응, 그리고 이러한 관습에 의해 결정된 인간 행동의 산물들을 포괄한다.

3. 브로니스와프 말리노프스키(1944) : 문화는 도구와 소비재로, 다양한 사회 집단의 입헌 헌장으로, 그리고 인간의 사고와 기술, 신앙과 관습으로 이루어진 통합적 총체이다. ······사람은 바로 이것에 의존하여 당면한 구체적이고 특수한 문제에 대처할 수 있다.

4. 클로드 레비스트로스(1983) : 문화는 자연적인 것도 인위적인 것도 아니다. 그것은 유전자에서 유래한 것도, 합리적 사고에서 유래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대부분 그 기능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따르는 의식적으로 고안되지 않은 행동 규칙으로 이루어져 있다.

5. 레나토 로살도(1989) : 문화는 인간의 경험을 선택하고 조직하여 그것에 의미를 부여한다. ······문화는 일상적인 것과 심오한 것, 세속적인 것과 성스러운 것, 우스운 것과 숭고한 것 모두를 포함한다. 문화 자체는 고급과 저급도 아니며 어디에나 배어들어 있다.

6. 워드 H. 구디너프(1963) : 문화는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기준, 무엇이 될 수 있을지를 결정하는 기준,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를 결정하는 기준, 그것에 대해 무엇을 할지를 결정하는 기준, 그것을 어떻게 할지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이루어져 있다.

7. 마거릿 미드(1937) : 보편 문화(Culture)는 인류가 발전시켰고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며 습득된 전통적 행동들의 총체적 복합체이며, 특수 문화(a culture)는 주어진 사회, 사회 내의 한 집단, 특정 종족, 특정 지역, 특정 시기에 특유하게 나타나는 전통적 행동의 형태를 의미한다.

8. 애덤 쿠퍼(1994) : 문화는······ 학습된, 적응 가능한, 상징적인 행동으로, 완전하게 발달한 언어를 토대로 하며, 기술적 독창성, 즉 기술의 복합과 연관되어 있고, 이러한 기술의 복합은 다시금 공동체 사이의 교환 관계를 조직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20세기 초에 프랑스의 사회이론가 에밀 뒤르켐과 그의 조카 마르셀 모스는 인간의 분류 능력이 우리가 지닌 사회적 본성의 연장이라고 주장했다. 〈사회는 단지 분류적 사고의 준거 모델일 뿐만 아니라, 분류 체계의 틀로서 기능하는 그만의 고유한 틀이었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인간의 분류는 정말로 보편적이지만, 그것이 보편적인 것은 구별하고자 하는 인간의 성향이 창출해낸 분류가 인간 정신의 이원적 본성에 의해 형성된 보다 근본적인 '심층 구조'의 표면적 재현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 뒤에 미셸 푸코의 영향을 받은 인류학자들은 문화적으로 부과된 의미 범주들이 불평등과 억압의 토대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문화적 분류의 내용을 통제하는 능력을 사회 내 권력의 주된 원천으로 보았다. 따라서 '남성'과 '여성' 같은 사회적 분류 범주들과 여기에 결부된 온갖 사회·정치·경제적 의미들의 경합(contestation)은 권위에 저항하는 주된 방식이 된다."(70-2)


"문화가 통합된 총체이자 통합시키는 총체라는 생각은, 외견상 별개의 것처럼 보이는 믿음이나 행동들 하나하나의 기저에 보다 근본적인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는 거대한 모더니즘적 통찰에 일부분 기반하고 있다. 마르크스에게 현실을 결정하는 것은 생산 양식이었다. 뒤르켐에게 그것은 사회였다. 프로이트에게 그것은 무의식이었다. 그리고 보아스의 뒤를 이은 많은 인류학자에게 그것은 문화 자체였다. 그 총체의 본질에 대한 개념을 중심으로 인류학의 서로 다른 학파들이 형성되었다. 보아스의 제자였던 루스 베네딕트는 문화를 '게슈탈트(Gestalt), 즉 하나의 총체적 패턴으로 인식했다." "클리퍼드 기어츠는 마치 소설이나 시를 읽듯이 문화도 텍스트로 읽을 수 있다고 보았다. 기어츠에 따르면 이러한 트릭은 그 사회의 성원들 스스로를 사로잡는 문화적 '텍스트'를 찾아내고, 이를 그들이 보는 방식대로 이해할 뿐만 아니라 그 '텍스트'의 주제가 사회의 다른 측면을 조명하는 방식까지 들여다보기 위한 것이다."(74-6)


"그 반대편 극단에는 문화가 통합된 것임을 부인하거나, 문화란 '넝마조각 같은 것', 즉 복잡하지만 본질적으로 임의적인 역사의 산물에 불과하다는 견해가 있다. 이러한 비판에 대한 응수는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에게서 나왔다. 그는 주어진 문화에서 발견되는 요소들의 역사적 기원이 제각각이기는 해도, 이것들은 '브리콜라주(bricolage)'─문화의 잡동사니들이 애초에 의도했던 것과는 다르지만 근본적 패턴에 들어맞는 용도를 새롭게 부여받은 일종의 콜라주─로서 한데 엮여 있다고 지적했다. 보다 최근 들어서, 근본적 기반이라는 모더니즘적 가정을 부인하는 인류학자들은 이 '브리콜라주' 개념을 이용하여, 문화적 요소를 계속 뜯어고치고 던져버리고 재생시켜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복합체로 만드는 과정이 바로 문화의 본질이라고 보았다. 이렇게 봄으로써 이들은 문화의 본질화라는─문화를 역사 바깥에 존재하며 인간이 주체성을 발휘할 여지가 없는 대상처럼 취급하는─문제를 피해갈 수 있다."(78-9)


"여러 난점에도 불구하고, 인류학의 문화 개념은 우리 학문 분야가 현대 사상에 한 가장 중요한 기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 공동체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의 기반이 근본적으로 임의적이며 학습된 것임을 밝혀낸 문화 개념은, 인종주의나 민족적 쇼비니즘, 그리고 19세기 인류학의 상당 부분을 특징지었던 '과학적' 인종주의와 대적하는 막강한 무기였다." "당시 미국에는 이주민 중 특정 민족이 유전적으로 '약하고' '열등하다'는 식의 믿음이 팽배해 있었는데, 영원한 경험론자였던 보아스는 어떤 민족이든 일단 미국에 와서 건강 및 영양 상태가 개선되면 급속이 누구 못지않게 강건해진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그러한 믿음을 타파하는 연구를 수행했다. 생물학적 유전보다는 환경이 인간의 특성과 행동을 결정하는 주된 요인이라는 보아스의 확신은 그의 일부 제자들에게 계승되어 문화결정론이라는 이론으로 발전했고, 이는 우리가 아직까지도 벌이고 있는 '본성 대 양육' 논쟁에서 정점에 다다랐다."(81-2)


3 어느 짧은 만남: 사회


"우리는 자기 정체성의 많은 측면을 우리가 속한 다양한 집단으로부터 얻는다. 인류학자들은 행동을 문화가 제공한 인지 지도의 결과물로 보았다. 하지만 인간 행동이 '사회적' 종의 일원으로서 우리가 지닌 본성의 한 측면이기도 하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두가 알 듯이, 우리는 그 안팎의 관계가 '규칙'의 지배를 받는 집단들로 조직되며,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고, 이러한 기능은 개별 구성원이 죽은 뒤에도 지속된다. 우리는 문화를 '지녔지만' 사회에 '속해 있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문화에 대한 관심은 사람들이 주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알아내고 그들의 행위를 틀에 끼워맞추고 다른 이들의 행위를 해석하려는 열망에 의해 촉발된다. 사회에 대한 관심은 인간의 사회적 행동을 지배하는 규칙과 질서, 사람들이 서로 어울리는 방식, 활동이 조직되는 방식에 대한 이해와 더 관련이 있다. 이 두 접근법은 같은 복잡한 대상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 것일 뿐, 서로 전혀 배치되지 않는다."(91-2)


"레드클리프브라운을 비롯한 '구조기능주의자' 혹은 '기능주의자'들은 사회구조라는 개념을 이용하여 개인과 집단 간 관계의 패턴을 기술했고, 이러한 패턴을 그 기능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하는 경향이 있었다. 말리노프스키 같은 일부 학자들은 이러한 기능이 그가 말한 '욕구의 원칙', 즉 식량과 주거 등 사회 개별 성원들이 지닌 기본적 욕구 충족과 관계가 있다고 보았다. 또다른 학자들은 이러한 기능이 사회 제도의 작동 및 영속성과 더 큰 관계가 있으며, 사회관계의 유지에 필요한 일종의 경비라고 보았다. 기능주의자들은 사회 제도가 '항상성 평형 상태'에서 스스로 영속하며 사회구조가 행동을 제약한다고 보았으므로, 사회 변화를 설명할 수 없는 사회관이라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기능주의자들이 기술한 많은 사회가 식민지였고 엄청난 변동과 재편을 겪고 있었음을 감안할 때 이는 특히 중대한 결함이었다. 오늘날의 우리는 사회생활의 역동적 특질과 개개인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더 기울고 있다."(99-101)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호혜성, 교환, 동맹을 본질적인 사회관계로 여겨, 사회구조가 집단 간 결혼 파트너의 흐름을 조직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보았다. 레비스트로스가 볼 때, 친족 집단 간의 다양한 동맹을 중심으로 조직된 사회와 우선혼(preferential marriage, 배우자감으로 더 우선시되는 후보는 있지만 특정 범주의 친척과 결혼해야 한다는 강제 규정은 없는 혼인 방식)을 하는 사회 간에는 중대한 차이가 있었다. 레비스트로스는 사회에 대한 우리의 사고를 유기체 모델에서 사이버네틱 모델로 바꾸어놓은 이들 중 한 사람이다. 이에 따라 사회의 부분들은 신체 기관과 유사하기보다는 정보 체계 내의 데이터 흐름을 구성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좀 더 최근의 인류학자들은 사회구조 자체의 본질에 대한 관심이 줄고, 사회에서 권력 관계가 유지되고 경합하는 방식으로 주의를 돌리는 듯하다. 그들이 볼 때, 사회구조란 순수하게 국지적인 전통의 산물인 마큼이나 글로벌한 정치·경제적 힘의 산물이기도 하다."(101-2)


"막스 베버는 합리화(rationalization) 개념으로 전통 사회와 현대 사회의 제도적 관계의 차이를 설명한다. 제도─상대적으로 독립되고 지속적이고 자율적인 행동과 이데올로기의 패턴─가 그 속의 사회적 관계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수행하는 과업을 중심으로 조직된다는 것이다. 베버에 따르면, '전통' 사회의 개인이 속한 집단은 서로 중복되는 다수의 역할을 수행하며, 그의 삶의 모든 측면과 연관된 사회적 자아를 구성한다. 반면에 '현대' 사회가 일반적으로 지닌 '합리적 제도' 내에서는 개인의 특정한 과업 수행 능력이 그의 사회적 자아의 어떤 측면보다도 중시된다." "베버와 그의 많은 추종자들에게 현대적 제도의 정수는 관료제다. 이는 '관료에 의한 지배'로 흔히 전형화되지만, 베버는 관료제를 이해하는 핵심이 개개인을 초월한 목표를 위해 대규모 집단을 조직하고 절차에 대한 명시적 규칙을 통해 구성원들의 행위를 조절함으로써 현대의 행정적 문제를 처리하는 방식에 있다고 여겼다."(102-6)


"대체로 우리가 무엇을 아름답다고 여길 때는 그것을 높이 평가하게끔 배웠기 때문이지 그것이 본질적으로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좋은 와인이나 추상표현주의 회화의 미묘한 차이를 구분하는 취향은 대다수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는, 돈과 공을 들인 교육의 일부로서 습득된다. 우리가 이런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드러낼 때는 그것을 진정으로 음미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내가 감식안이 있고, '삶의 더 좋은 것들'의 진가를 알아볼 능력이 있는 엘리트의 일원이며, 싸구려 포도주와 이발소 그림이 취향의 최대치인 이들보다는 우월하다는 메시지도 드러내고 있다. 피에르 부르디외는 이것을 '문화자본'이라고 불렀다. 부르디외는 마르크스와 베버의 통찰을 결합하여,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 사회가 전문화되고 상대적으로 자율성을 지니며 위계적으로 조직된 무수한 장(field) 또는 제도(예술, 과학, 법률, 경영, 대중 매체 등)들로 분리되어 있으며 사람들은 그 속에서 지위를 얻기 위해 끊임없는 투쟁을 벌이고 있다고 보았다."(112-3)


4 페르난도가 아내를 얻고자 하다: 성과 혈연


"누요와 도우 동고의 사례에서 우리는 결혼이 관련 집단들 사이의 부(wealth)의 이전과 결부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부의 이전은 결혼에 합법성을 부여하며 한 집단에서 다른 집단으로 (노동력이나 장래의 자녀에 대한) 권리가 이전되었음을 인정하는 역할을 한다. 신부대(brideprice)는 신랑측 집단에서 신부측 집단으로의 부의 이전이다. 신부봉사(brideservice)는 신랑측 집단에서 신부측 집단으로 노동력을 이전하는 것이다. 일부 유럽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지참금(dowry)은 신부측에서 신랑측으로의 부의 이전이라기보다는 신부가 자기 집안에서 상속받은 몫에 해당한다. 신부대는 흔히 현금으로 지불하지만 사치재인 경우도 많다. 결혼하고자 하는 젊은 남성은 신부대 지불에 필요한 사치재의 조달을 흔히 자기 친족 집단의 연장자들에게 의존한다. 집단의 연장자들이 이런 귀중품을 기꺼이 내어주는 것은 그가 책임감과 충성심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며, 그가 성인의 문턱을 넘어섰다는 자격증을 수여하는 셈이다."(124-5)


"한 명의 파트너와 평생 유대를 지속하리라는 전제가 통하지 않는 사회들도 많이 있다. 한 남성이 둘 이상의 아내를 가질 수 있는 일부다처제(polygyny)는 흔하다. 반면, 한 여성이 둘 이상의 남편을 가질 수 있는 일처다부제(polyandry)는 그보다 훨씬 드물며, 티베트와 인도 북부 고산 지대의 사례가 잘 알려져 있다. 적어도 티베트의 일처다부제는 일부다처를 거꾸로 뒤집은 것이 아니고, 주로 형제들이 한 여성과 공동 결혼을 한다. 일처다부의 인구학적 결과는 일부다처의 인구학적 결과와 정반대다. 일반적으로 여성은 몇 년에 한 번씩만 출산을 할 수 있고 대개는 한 번에 한 명씩만 낳으므로, 일처다부혼은 인구 증가를 억제하고 토지와 같은 상속 가능한 유산을 보존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일부다처제는 인구 증가를 촉진하며 토지 자원을 자손들에게 빠르게 분산시킨다. 일부일처제, 일부다처제, 일처다부제는 전혀 상호배타적이지 않지만, 주어진 사회의 경제적·생태적 조건에 대한 대응으로 나타날 수 있다."(129-30)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이상화된 관점에서 볼 때 친족의 최소 단위에는 아내의 남자형제가 포함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아내의 남자형제는 아내를 그 남편에게 '준' 가족을 대표한다. 레비스트로스는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결혼은 두 남성이 여자 형제를 교환하고 이 결혼에서 생긴 자손들이 다시 사촌끼리 결혼함으로써 동맹을 갱신하는 형태의 결혼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우리에게는 조금 괴상하거나 심지어는 근친상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사촌 간의 결혼이 허용되거나 바람직하게 여겨지는 정도가 아니라 사실상 의무인 사회들도 많이 있다. 남성들이 외삼촌의 딸과 결혼하는 것이 몇 세대 계속되면, 그 남성 자손들의 두 가계 사이에 결혼 동맹이 형성된다. 또 남성들이 친삼촌의 딸과 결혼하는 것이 몇 세대 계속되면(이는 중동에서 훨씬 선호되는 패턴이다) 단일한 부계 혈통이 강하게 유지된다. 만약 이것이 유목 사회라면 그 집단이 소유한 가축 떼를 한데 모아서 유지하기가 더 쉬울 것이다."(134-5)


"전세계적으로, 피(또는 모유, 뼈, 그밖에 생식 행위를 통해 전달된다고 여겨지는 물질)를 나눈 개인들이 강한 유대에 의해 서로 결속된다는 관념은 가내 및 자녀 양육 집단의 토대를 이룬다. 하지만 이는 훨씬 더 큰 사회적·정치적·경제적 실체의 토대를 이루기도 한다. 많은 사회, 특히 아프리카 사회에서 혈통을 공유한다는 이데올로기는 사회가 조직되는 주된 방식이다. 종족(lineage)은 알려진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혈통을 이어받은 사람들의 집단이다. 그리고 씨족(clan)은 그 구성원이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혈통을 이어받았다고 인식하는 종족들의 집단이지만 여기서는 그 친족 관계를 정확히 따지기가 불가능할 수도 있으며, 이 조상이 신화적 존재나 특정한 사물이나 동물 토템일 수도 있다." "많은 경우에 결혼이란 우리 사회에서처럼 새롭고 독립된 사회 단위를 이루는, 단지 두 개인의 결합이 아니다. 세계의 아마도 대다수 사회에서 결혼은 두 집단 간의 결연이라는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136-7)


5 라 보세가 바카르가 되다: 카스트, 계급, 부족, 민족


"토템 씨족은 전세계에 걸쳐 놀라울 만큼 널리 분포되어 있다. 이러한 정체성 구분은, 출생의 우연을 제외하고는 서로 구분되지 않는 사람들이 '한 동물종이 다른 동물종과 다르듯이 나의 집단은 다른 집단과 다르다'고 선언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한다. 이런 식의 차이를 위한 차이 만들기는 현대 세계로도 그대로 옮겨진다. 그래서 크게 놓고 보면 서로 구분이 안 가는 미국의 칼리지와 대학들이, 토템 명명과 거의 같은 식으로 저마다 독특한 엠블럼과 색깔을 달고 모교의 스포츠 팀 이름을 붙이고서 자기들끼리 맹렬한 경쟁을 벌이는 것이다." "이런 일을 해서 얻는 게 무엇일까? 일부분 이는 소속감을 증진시키며, 학생과 동문들이 열광적이고 의례적인 연대감의 표출에 참여할 수 있는 많은 기회─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운동 경기─를 제공하기도 한다. 뒤르켐은 이런 종류의 경험을 '집합 흥분(collective effervescence)'이라고 일컬었다. 그는 이것을 사회적 연대의 핵심에 놓았을 뿐만 아니라 종교적 경험의 뿌리로 규정했다."(144-5)


"그런가 하면 서로 다른 무수한 부분들의 복잡한 상호의존에 기반하여 연대가 이루어지는 크고 복잡한 사회들은, 스스로가 동질적 실체라는 환상을 구축하는 데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곤 한다. 이런 과정은 20세기 식민 제국의 해체 이후에 출현한 신생 국가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그들은 국어를 제정하고 학교에서 공통의 역사를 가르치며, 공유된 역사에서 끌어온 애국적 인물과 상징들을 신생 국가의 대표로 내세웠다. 각종 국가 상징물과 국민국가를 정당화하기 위해 민족 신화를 차용한 정교한 시민 의례가, 공통된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수단으로서 만들어지고 시행되었다. 뒤르켐은 이것을 '집합 표상(collective representations)'이라고 일컬으며 사회적 연대의 상징적 속성을 인정했다. 단순하고 동질적인 사회들이 그 미미한 차이를 가지고서 차이를 만들어내는 데 열중하는 한편, 복잡하고 이질적인 사회들이 그 유기적 다양성으로부터 통일을 이루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아이러니로 느껴진다."(145-7)


"인종과 종족은 어떻게 구분될까? 두 범주 모두 '문화적으로 구성된(culturally constructed)' 범주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생물학적─흔히 그릇된─사실과 조금 관계가 있긴 하지만 주로 사회적인 범주로서 자신과 타자를 흔히 도덕적인 뉘앙스로 규정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종족성은 문화·언어·종교의 요소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말레이인'의 법적 정의에는 그가 무슬림이라는 항목이 포함된다. 한편, 인종은─이것 또한 문화적으로 구성된 범주이지만─쉽게 알아볼 수 있는 (이를테면 피부색 같은) 특성을 강조하며, 모든 인간 유형의 생물학적 기원에 대해 포괄적 설명을 제시하는 민속이론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이론들은 예컨대 세계의 '인종들'이 노아의 아들들에서 기원했다는 생각처럼 신화적인 토대에 뿌리박고 있다." "보아스는 인종주의 이론에 맞서는 것이 인류학의 중요한 공적 사명이라고 여겼고, 그의 제자인 루스 베네딕트는 1940년에 집필한 책에서 '인종주의(racism)'라는 용어를 고안했다."(154-6)


"우리가 종족에서 공통의 핏줄에 기반한 정체성을 본다면, 인종에서는 공통의 신체적 특성에 기반한 정체성을, 민족주의에서는 공통의 유산과 경험을 기반으로 삼은 국가를 본다. 거의 모든 현대 국가들은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을 포괄하므로, (정치적 자치를 표방하는) 민족주의는 특정한 종족이나 인종의 정치적 표현일 때가 많다. 민족주의는 현대 세계에 너무나 깊숙이 배어 있어서 우리는 '민족(nation)'과 '국가(state)'를 흔히 혼용해서 쓴다. 하지만 민족주의는 수립된 국가가 없어도(혹은 쿠르드족처럼 몇몇 국가에 분산된 상태로도) 존재할 수 있으며, 국가─중앙집중화되고 관료화되었으며 그 통제권이 주어진 영토 전역에 미치는 정치 단위─또한 민족주의가 아닌 다른 원리를 기반으로 수립될 수 있다. 국민들이 명백히 하나의 언어나 관습이나 유산을 공유하지 않는 많은 현대 국가에서도 그러한 것을 고취하는, 말하자면 공통된 전통을 '발명하는' 프로그램에 엄청난 자원이 투입된다."(156-7)


6 누요에서의 축제: 사람들의 소유물


"호혜적 거래가 언제나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것은 아니며, 언제나 주는 이와 받는 이 사이의 평등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많은 경우에는 주는 쪽이 받는 쪽보다 물질적인 면에서는 아니라도 도덕적으로 더 우월하다고 여겨지며, 준 선물과 동등하거나 (가능하다면) 보다 나은 답례가 올 때까지 그 우월한 위치를 누린다. 받은 선물에 대해 정확히 똑같이 답례하는 것은 적대적인 행위로 비칠 수도 있는데, 이는 교환으로 쌓아올린 관계를 사실상 끝내버리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호혜성의 정치를 보면, 공동의 연대 말고 다른 것도 교환의 동기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19세기 미국과 캐나다 북서부 해안의 아메리카 원주민 집단들 사이에서 행해진 경쟁적 교환이 그 적절한 사례다. 서로 경쟁 관계에 있는 집단들은 '포틀래치(potlatch)'라는 행사를 열어서 상대방이 쉽게 답례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선물을 주려고 노력했다. 이는 그들의 우월한 경제적·사회적 권력을 과시하는 수단이었다."(176-7)


"이런 식의 비대칭은 물질적 재화로 답례할 능력이 전혀 없는 의존 관계에서도 작동한다. 이런 경우에는 복종이나 경의나 충성으로밖에 보답할 길이 없다. 의존 관계가 사회경제 체제의 일부로 자리잡은 사회에서 그 결과는 '피후견 관계(clientage)', 즉 부유하거나 힘 있는 후견인과 그들에게 물적 자원이나 보호를 의존하는 이들 사이의 관계가 된다. 가장 덜 모멸적인 후견-피후견 관계에서는 후견인 측이 '노블레스 오블리주' 의식을, 피후견인측이 진정한 충성심을 유지한다. 좀더 착취적인 상황에서 피후견 관계는 후견인측의 갈취나 다름없어진다." "이렇듯 경제 관계는 정치·사회적 관계 속에 떼어낼 수 없이 묻어들어 있기 때문에, 그 사회의 수많은 다른 측면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로 실물 경제를 이야기하기란 어렵다. 문제는 우리가 자본주의 경제에 너무 깊이 매몰되어 있어서 시장에서 사고파는 행위만이 유일한 '경제' 행위이며 국민국가만이 그러한 활동의 유일한 배경이라고 가정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178-9)


"사람들이 무언가를 원할 때,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경제학자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식량, 주거 등등)를 열거하며 대답하기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소비 결정에는 다른 변수들도 개입한다. 심지어 식량 같은 인간의 필수 요소도 문화적 변수에 의해 굴절된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신세계에 처음 도착했을 때, 주변에 옥수수, 사냥감, 과일, 채소가 풍부했는데도─그들이 건강한 식단의 필수 요소라고 믿었던─포도주나 밀이나 올리브유를 구할 수 없다는 이유로 스스로 굶주리고 있다고 믿었던 건 그 때문이었다. 과시적 소비의 경우, 사람들은 자신이 남들 대다수와 다르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 특정한 물건을 원한다. 하지만 유능한 광고 회사 경영진이라면 모두 알다시피, 자신이 어느 집단의 일원이고 어느 집단의 일원이 아님을 표시하고픈 소비자의 욕망은 의복에서 자동차에 이르는 광범위한 상품의 매출을 올려주는 일등공신이다. 따라서 소비는 저절로 되는게 아니라 학습해야 하는 것이다."(181-2)


"신디 로퍼가 말했듯이, '돈이 모든 걸 바꾼다'. 단순한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호혜와 교환의 정치에서 거래의 '경제적' 가치는 거래로 맺어지는 사회관계에 종속된다. 어떤 (중요한) 의미에서 각각의 거래는 교환에 참여하는 개개인만큼이나 독특하다. 말리노프스키는 트로브리안드제도 사람들이 다른 멜라네시아 섬사람들과의 복잡한 교환 '고리(ring)'에 참여하는 것을 관찰했다. 이 고리에 참여하는 개인들은 평생토록 맺어진 교역 파트너와 모종의 재화를 교환하기 위해 먼 거리를 여행한다. 이 '쿨라 고리(kula ring)'를 따라 물품들이 순환하면서 그것이 거래되어온 역사와 그 이전 소유자들의 내력도 함께 순환하므로, 각각의 교환과 각각의 물품은 독특한 생애사를 지니게 된다. 현대 경제의 주춧돌인 화폐와 시장 교환은 정확히 그 반대의 효과를 띠며, 이는 매우 의도적인 것이다. 가치를 공통의, 규격화된, 태환 가능한 표준으로 환원하면 교환의 효율이 그 속도와 총량 면에서 현저히 증대하기 때문이다."(183-4)


7 비마에서의 가뭄: 사람들이 믿는 신


"비록 그 연관성이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종교와 사회는 서로를 반영하는 모델인 동시에 서로를 형성하는 모델이다. 우주론적 명제와 사회 구조 사이의 이런 유사성은 종교와 사회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암시해왔다. 종교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은 종교의 일상적 실천에, 그리고 이것이 다른 사회생활과 연결되는 방식에 관심을 기울이는 경향이 있다. 뒤르켐은 사회적 범주화의 기본 형태를 종교에서 찾을 수 있으며 사람들은 우주론을 통해 사회를 표상하므로 사회와 종교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있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종교적 의례가 '사회가 그 자신을 숭배하는' 한 예라는 말은 이 개념을 투박하게 표현한 것이다. 이보다 덜 결정론적인 접근 방식을 취하여, 종교가 집단과 개인을 동원해 위기와 난관을 헤쳐나가는 방식을 강조한 학자들도 있다 일례로 통과의례(rites of passage)에서, 개인이 한 사회 정체성을 벗고 다른 정체성으로 옮겨가는 위태로운 이행은 흔히 사회의 가장 정교한 의례를 통해 이루어진다."(196)


"유럽의 민속학자인 아르놀드 방주네프는 사람들이 사회를 방이 많이 있는 큰 집으로 상상한다고 했는데, 여기서 각각의 방은 서로 다른 사회적 지위를 상징한다. 통과의례는 사람들을 한 방에서 다른 방으로 옮겨놓음으로써 그들이 낡은 지위를 벗고 새 지위를 얻을 수 있게 해준다. 그러한 이행 중에 개개인을 옛 지위로부터 들어내어 새로운 지위의 휘장을 수여하기 위해 고안된 의식이 치러지며, 의식에서 이 과정은 흔히 죽음과 재생의 은유로 묘사된다. '문턱에' 선 개인은 이쪽도 저쪽도 아닌 특별한 지위를 가지며, 이 지위는 흔히 특별한 의복을 입음으로써, 신체 외관을 변화시킴으로써, 혹은 금욕을 견딤으로써 표시된다." "우리는 그리스도교의 세례식처럼 태중에서 유년으로, 유대교의 미츠바처럼 유년에서 성년으로, 결혼식처럼 미혼에서 기혼으로, 장례식처럼 산 상태에서 죽은 상태로 옮겨다주는 종교적 의례에 익숙하다. 졸업식이나 취임식 같은 세속적 통과의례 또한 우리에게 익숙하다."(196-7)


"기존에 확립된 믿음이 삶의 문제에 대해 더는 적합한 설명을 제공하지 못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 식민 정부나 신식민 정부에 종속된 사회들은 이런 갑작스럽고 압도적인 변화를 겪는 일이 많은데, 그로 인한 혼란을 전통 종교의 믿음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강렬한 종교 운동이 발생할 수 있으며, 사회가 직면한 문제에 대한 설명과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하는 어떤 선지자가 이런 운동을 이끌곤 한다. 이를 천년왕국 운동(millenary movement)이라 하는데, 이런 운동을 이끄는 개인들은 성스러운 권위를 가지고 발언하며, 그러한 권위에 힘입어 삶의 온갖 위기에 대한 해결책의 일부로서 광범위한 종교적·세속적 변화를 도입하기도 한다." "세계의 많은 대형 종교들도 시작은 일종의 부흥 운동으로부터, 즉 자신의 문제에 대해 기존의 신앙이 제시하는 것보다 더 포괄적인 해답을 갈구하는 사람들의 상상력에 카리스마적 선지자의 예지가 불을 붙이면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199-203)


8 냐뉴 마리아가 벼락을 맞다: 사람들의 자아


"내가 누구이고 무엇인가에 대한 개념, 상식의 기본 토대를 이루는 듯 보이는 개념처럼 우리 삶의 경험의 대단히 본질적인 측면들도 실은 문화들 간의 엄청난 차이에 좌우된다." "서구인들은 인격으로서의 자신을 볼 때, 자신을 '자율적인' 개인으로서 보는 경향이 있다. 우리 자신─그리고 우리의 자아─에 대한 이런 식의 관념에서 나온 것이 바로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인식이다. 예컨대, 미국의 어린이들은 초등학생 때부터 '누구나 커서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역사적·정치적 현실은 일단 접어두고, 이런 관념은 우리 모두가 똑같이 지닌 역량과 권리에 토대를 둔 인격(personhood)─여기서 우리는 자아에 대한 관념이 더 포괄적인 정치 이데올로기를 표명하는 방식을 가리키기 위해 '인격'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의 개념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서, 이 맥락에서의 인격은 우리를 서로 다르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같게 만드는 것에 의거하여 정의된다."(212-3)


"그러나 인격에 대한 이데올로기가 거의 정반대인 듯한 사회들도 있다. 중앙아메리카의 또다른 민족인 마야인의 언어에는 '비니크(vinik)'라는 단어가 있다. 초기의 스페인인 관찰자들은 이 단어를 처음에 '개인(individual)'으로 번역했지만, 좀더 면밀히 들여다보니 이 단어는 보다 미묘한 다른 의미들을 띠고 있었다. 1699년 스페인의 사제이자 언어학자인 프란시스코 바레아 신부는 '비니크'가 〈인격(person)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언어에는 '나의 인격'이라든지 '당신의 인격'이라는 말이 없다······ 그보다 이는 '나의 족속(people of my nation)'이라는 뜻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마야어의 '비니크'는 또 '스물(20)'을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이데올로기에 따라 인간에게는 스무 가지의 기본 유형이 존재하며, 이 유형들은 서로를 보완하고 뒷받침한다." "따라서 마야어의 '비니크' 개념은 이른바 '관계적 인격 개념'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여기서 인격이란 인간 개인에게 고착된 지위가 아니라 집단의 속성인 무엇이다."(213-5)


"중앙아메리카 달력은 태양년(360일)을 20일씩 18개월로 나누었는데 한 해의 마지막 닷새는 이름 없는 날 혹은 불길한 날이었다. 이때는 일종의 시간 바깥에 놓인 시간으로 여겨졌고(많은 지역에서는 오늘날까지도 그렇게 여긴다), 온갖 나쁜 일─특히 세상의 종말─이 일어날 수 있다고 두려워했기 때문에 금기, 단식, 의례를 엄수하면서 근신했다. 이 시기에 태어난 불운한 아이들은 운명을 갖지 못했다─다시 말해서 정체성의 가장 근본적인 측면이 결여되어 있었다. 일부 민족지 자료와 사료는 이 이름 없는 닷새 동안에 태어난 아이들이 명확한 신체적 형태를 갖추지 못했으며, 아파도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죽도로 방치되었다고까지 기술하고 있다. 그러니까 당시 중앙아메리카에서는 모든 인간이 저절로 인격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것이다. 집단 내에서 자기 자리를 얻지 못하고 사회 밖으로 완전히 추방된 이 불운한 아이들의 사례는 앞에서 논의한 관계적 인격 개념과 일치한다."(218)


"인격과 자아의 개념은 인류학자들 말마따나 문화적으로 구성된다. 한 문화의 구성원들에게는 너무 당연하고 정상으로 보이는 관념이 실은 특수한 역사적 전통의 산물이며 문화에 따라서 다르다는 말이다." "의료인류학자들은 신체 각부와 그 기능에 대한 관념이 '문화 특이적 증후군'을 초래하는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 이런 관점을 적용해왔다. 사람의 몸은 세상 어디에서나 기본적으로 같기 때문에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아파야 할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여기서의 핵심은 자신의 몸과 환경에 대한 지각이 그의 상대적인 건강 상태와 아주 큰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가령, 거식증과 폭식증은 신체적 아름다움에 대한 비현실적 지각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문화 특이적 증후군으로서의 자격을 갖추고 있다. 또한 이런 섭식 장애는 성별, 연령, 계급에 민감하여 특히 젊은 백인 중산층 여성에게서 두드러지게 많이 나타나는데, 이는 신체 생리와 사회 간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보여주는 또하나의 지표다."(218-20)


후기: 우리가 배운 몇 가지 것들


"'사람 사는 건 어디나 같지만 간혹 다를 때도 있다.' 어떤 중요한 의미에서 보면 바로 이것이야말로 지난 한 세기동안 인류학자들이 우리에게 전해준 가르침이며, 좀더 면밀히 들여다보면 전혀 사소한 것이 아니다. 우선 이는 인간의 어떤 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말라는 가르침을 준다. 누가 '그러나 자고로 인간의 본성이란······' 식으로 일장 연설을 시작하면 일단 나가는 문이 어디 있는지부터 찾아라!" "인류학자들이 인간 행동의 보편법칙을 일반화하려 할 때마다 그 법칙들은 경험적으로 틀렸거나 시시하리만치 하찮은 것으로 드러나곤 했다. 이는 인간에게 진정으로 보편적인 것을 알아내려는 시도들을 폄하하거나 우리가 그런 시도 덕분에 많은 걸 배웠음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사회생활에서 인간 문화가 낳은 모든 변이를 포괄할 만큼 광범위하면서 그런 변이들을 낳은 특수한 문화적 맥락에 부합하는 패턴을 식별하려는 시도가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 위험한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다."(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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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45
데이비드 밀러 지음, 이신철 옮김 / 교유서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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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치철학은 왜 필요한가


"여기서 내가 언급하는 정부(government)는, 특정한 시점의 사회 속에서 권력을 지니는 사람들의 집단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어떤 것이다. 실제로 그것은 국가, 즉 그것에 의해 권력이 행사되는 내각, 의회, 법원, 경찰, 군대 등과 같은 정치 제도보다 더 광범위한 어떤 것이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우리가 사회 속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규칙과 관행 및 제도들 전체다. 누가 무엇을 누구와 함께 행할 수 있는지, 누가 물질적 세계의 어떤 부분을 소유할지 등을 알기 위해 서로 협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아마도 여기서 당연하게 여길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불가결하다는 것을 아직은 당연시할 수 없다. 정치철학의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는 왜 우리에게는 애초에 국가가, 좀더 일반적으로는 정치권력이 필요한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좋은 정부'가 과연 국가를, 혹은 관습적인 의미에서의 정부를 가질 필요가 있는지 여부는 일단 열린 물음으로 남겨놓고자 한다."(15-7)


"정치철학이라는 주제를 총체적으로 부정하는 사람들은 정치란 권력 행사에 관한 것이며, 권력을 지닌 사람들─특히 정치인들─은 정치철학의 저작들에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정치철학이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영향력을, 때로는 상당한 영향력을 지니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홉스의 시대에는 오직 소수의 극단적 급진주의자들만이 민주주의를 정부의 한 형태로서 믿었다는 점을 생각해볼수 있을 것이다. 물론 오늘날 우리는 그 밖의 정부 형태가 어떻게 정당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는지 거의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민주주의를 당연시한다. 이러한 변화에 관한 이야기는 복잡한 것일 수밖에 없지만, 거기에 내포되는 불가결한 요소로서 민주주의에 찬성하며 논의를 펼친 정치철학자들의 역할이 있었고, 나아가 그들의 관념이 받아들여지고 대중화되어 정치의 주류로 편입되어왔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진 이가 장 자크 루소일 것이다."(23-6)


"오늘날 거의 모든 정치철학자는 좋은 정부란 모종의 민주주의를 의미해야만 한다는 것을 당연시한다. 요컨대, 어떤 방식으로든 인민이 통치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전의 여러 세기 동안에는 그와 반대되는 견해가 우세했다. 좋은 정부란 현명한 군주정이나 개명한 귀족정이나 재산가들의 정부, 혹은 이것들의 혼합체를 의미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옳고 우리의 선조들은 단적으로 틀렸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민주주의가 성공적으로 기능하려면 일정한 전제조건들이 필요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부유하고 문화적 소양을 갖춘 인구, 사상이나 의견의 자유로운 교류를 위한 대중 매체, 사람들에게 경의를 살 만한 기능적인 법률 체계 등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들은 최근까지도 쉽사리 획득될 수 없었으며, 또한 하룻밤 사이에 갖춰질 수도 없었다. 민주주의적 관념들의 영향력 있는 원천이었던 루소조차도 민주주의는 인간이 아니라 신들에게만 적합한 것이라고 말했다."(34-5)


2 정치권력


"국가가 정치권력을 행사한다고 할 때,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정치권력에는 두 측면이 존재한다. 한편으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그것을 '권위'로서, 바꿔 말하면 사람들에게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명령할 권리를 가지는 것으로서 인식한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법을 지킨다고 할 때 그들이 그렇게 하는 까닭은 대개 법을 제정하는 주체는 법 제정의 권리를 가지며 자신들은 그에 상응하여 법을 준수할 의무를 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법 준수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제재라는 위협에 의해 준수를 강요받게 된다. 법 위반자들은 체포되어 처벌될 수 있다. 그리고 이 두 측면은 상호보완적이다." "그래서 정치권력은 엄밀한 의미에서의 권위와 강제되는 준수를 결합한다. 그것은 어떠한 강제도 없이 제자들이 그 가르침에 따르는 현자의 권위와 같은 순수한 권위도 아니고, 당신에게서 지갑을 빼앗는 강도의 폭력과 같은 순수한 힘도 아니며, 그 두 가지가 섞인 것이다."(42-3)


"그러나 우리가 왜 정치권력을 필요로 하는가 하는 물음은 여전히 남아 있다." "홉스는 정치적 통치 없는 '인간의 자연 상태'를 삶에 필요한 것들을 둘러싼 잔인한 경쟁의 상태로서 묘사했다." "홉스가 이런 비관주의적 결론에 도달한 것은 사람들이 본성상 이기적이거나 탐욕스러우며, 따라서 정치권력에 의해 제약받지 않으면 자신들을 위해 가능한 한 더 많이 움켜쥐려고 할 것이라는 그의 믿음 때문이라고 자주 언급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홉스의 진정한 논점을 놓치고 있다. 그 논점은 신뢰가 부재할 때는 사람들 사이의 협조가 불가능하며, 그 신뢰는 법을 강제할 수 있는 상위의 힘이 없는 곳에서는 훼손되리라는 것이다. 홉스가 '자연 상태'에 결여되어 있다고 묘사하는 것들은 무엇보다도 우선 많은 사람에게 남들도 스스로의 역할을 다하리라고 기대하면서 함께 일할 것을 요구하는 것들이며, 정치권력이 부재할 때 그러한 기대를 품는 것은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43-6)


"홉스를 포함하는 정치철학자들은 종종 정치권력에 대한 엄격한 복종이 없다면 그 권력은 무너지고 말 것이라고 논해왔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국가나 그 밖의 형태의 정치권력은 사람들이 (보편적이라기보다는) 대체로 권력에 복종하고 싶어하는 한에서 존속하고 효과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것은 제한된 형태의 불복종, 특히 시민 불복종─이는 불법적이지만 비폭력적인 형태의 정치적 저항이며, 그 목적은 정부에 대해 정책을 변경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데 있다─이라고 불리는 것에 문을 열어주는 것으로 보인다. 시민 불복종을 옹호하는 논의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만약 특정한 법이 매우 불공정하거나 억압적이라면, 또는 국가가 의사결정을 할 때 소수자의 관심사에 귀기울이기를 거부한다면, 법적 수단에 의한 저항이 효과적이지 않을 경우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정치적 의무가 모든 경우에 구속력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66-7)


3 민주주의


"우리가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정치 체제는 실제로는 통치에서 매우 제한된 역할만을 시민들에게 부여한다. 시민들은 주기적인 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들은 때때로 헌법상의 중대한 문제를 결정해야 할 때 국민 투표라는 형태로 의견을 표명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들과 관련된 쟁점들에 관해 자신들의 대표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단체를 조직하는 것이 허용된다. 하지만 그 정도가 그들이 가진 권력의 한계다. 민주 사회의 미래를 결정하는 진정한 힘은 극소수 사람들─정부 각료나 관료, 그리고 어느 정도의 범위로 한정된, 의회나 여타 입법 기관의 구성원들─의 수중에 있다. 그리고 왜 그렇게 되어 있는지 묻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이유로는 보통사람들에게는 정치적 결정의 배후에 놓인 쟁점들을 이해할 '능력'이 단적으로 없으며, 그래서 이러한 사안을 다루는 데 더 뛰어난 자질을 갖춘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기꺼이 결정을 맡긴다고 하는 널리 퍼져 있는 믿음을 들 수 있다."(73-5)


"우리는 평범한 시민들의 정치적 역할이 주로 선거 때 투표하고 이따금 뭔가 특별한 이해가 걸릴 때 행동하는─예를 들어 그들의 뒷마당으로 도로가 새로 뚫리거나 주택이 들어서기로 한 것에 대응하는─식으로 제한되는 가운데 우리의 민주주의가 불완전한 채로 머문다는 사실에 대해 우려해야 할까? 나는 우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천치'를 의미하는 영단어 'idiot'은 그리스어 'idiotes'에서 유래했는데, 그것은 본래 완전히 사적인 존재로 살며 도시국가의 공적 생활에 전혀 참여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현대인은 자신의 정치적 지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한, 대개는 천치들인 셈이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우리는 지방 정치에 대한 참여나, 시민 배심원단과 그 밖의 유사한 기관에 참여할 대중 구성원을 무작위로 선출하는 것과 같은 참여의 형식을 발전시킴으로써 모든 사람에게 능동적인 시민으로서의 생활 양식(citizenship)의 경험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88-9)


"현대 민주주의 체제에서 실제 결정을 내리는 것은 다수자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헌법상의 장치는 소수자가 다수자에 의해 고통당하지 않도록 보장하는 중요한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시민을 평등하게 처우할 것을 목표로 하는 민주주의 체제는 더 멀리 나아가야만 한다. 그러한 체제는 기본권이 문제가 아닌 경우들에서도 다수자가 최종적인 결정에 이르기 전에 소수자의 관심을 적절히 고려할 수 있도록 보장하려고 해야 한다. 이를 위한 열쇠가 공개 토론이다. 거기에서 양측은 서로의 입장에 귀기울이고, 가능한 한 양측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해결책을 찾으려고 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다수자를 형성하는 사람들은 토론을 하기 전 단계부터 자신들이 가장 선호하는 해결책에 찬성 투표만 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대신에 그들은 상대편의 주장을 들어보고 나서 판단을 형성하려고 해야 한다. 때때로 그들은 서로 동의할 만한 일반적 원리를 발견해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95)


4 자유와 정부의 한계


"정부가 더 많은 것을 할수록 민중의 자유는 그만큼 점차 감소한다는 일반적으로 견지되는 견해는 잘못된 것이다. 정부는 종종 자유를 제한하기도 하며, 때로는 정당하게, 때로는 정당하지 않게 그러하다(예를 들어 안전띠와 관련된 법률은 자동차 이용자의 자유를 제한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그 법률이 구하는 생명에 의해 그것이 정당화된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활동이 관련 조처가 없었으면 비용 때문에 불가능했을 선택지를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방식으로 자유를 증대시키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다만 정부가 자유의 내적 측면, 즉 어떤 사람이 자신에게 열린 선택지 중에서 참다운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과 관련해서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비교적 적다. 이 자유는 이 자유는 종종 (이사야 벌린이 「자유의 두 개념」이라는 강의에서 명명한 바대로) '적극적 자유'라고 불리는데, 그것은 외적 요인에 의해 방해받지 않는 선택지를 갖는다는 의미의 '소극적 자유'와는 구별되는 것이다."(110-1)


"우리는 (개개인이 모종의 독립성을 바탕으로) 참다운 선택을 할 수 있는 내적 자유를 어떻게 증진할 수 있는가? 한 가지 방법은 사람들에게 폭넓은 선택지를 제시함으로써 그들이 어떤 일련의 믿음이나 하나의 삶의 방식만을 올바른 것이라고 당연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반대로 자기네 구성원들의 선택을 통제하고자 하는 종교 교과나 정치 체제는 자신들이 상찬하는 삶의 방식에서 벗어난 것을 그 구성원들이 보거나 경험하지 못하도록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그래서 선택의 자유를 증진하고자 하는 정부는 (사람들을 새로운 삶의 방식이나 새로운 형태의 문화 등을 접하게 함으로써) 사회적 다양성을 키워가면 된다." "그러나 외적 자유와는 달리 내적 자유는 보장될 수 없다. 독립적인 성향을 타고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순종적인 성향을 타고난 사람도 있다. 정치로 가능한 것은 그저 자기 나름의 삶의 방식을 선택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는 좀더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는 것일 뿐이다."(113)


"존 스튜어트 밀은 어떤 사람의 행위가 본인을 제외하고 누구의 이익도 침해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자기 관계적'일 때, 그 행위에 결코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밀은 이 원리가 사상 및 표현의 자유와 개인이 스스로 원하는 방식대로 살 자유, 즉 어떻게 입고, 무엇을 먹고 마시며, 어떤 문화적 활동을 추구하고, 어떤 성적 관계를 맺으며, 어떤 종교를 따를 것인지 등등의 자유를 정당화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경계선을 긋는 것은 가능할까?" "표현의 자유는 중요하지만, 모든 표현에 똑같은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예배드리고 정치 토론에 참여하며 예술적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일터에 (불쾌한) 포스터를 붙이거나 조야한 인종차별적 구호를 외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즉, 우리는 서로 다른 종류의 행동이 지니는 가치를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부과할 수 있는 비용과 비교하고, 숙고하여 판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114-9)


5 정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해 제시된 아주 오랜 정의에 따르면, 〈정의(正義)란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 주고자 하는 항구적이고 영속적인 의지〉인 것이다. 이것은 그 자체로는 그리 유용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우리에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기는 한다. 첫째, 정의란 개개인이 올바른 방식으로 대해지는 것에 관한 문제임을 강조한다. 그러니까 정의란 사회 전체가 부유한지 가난한지, 문화적으로 풍성한지 불모인지 등과 같은 문제가 아니다." "둘째, 앞에서 제시된 정의의 〈항구적이고 영속적인 의지〉라는 부분은 사람들이 자의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대해져야만 한다는 것이 정의의 중심적 측면임을 우리에게 상기키셔준다. 한 사람의 인간을 통시적으로 대하는 데서는 일관성이 있어야만 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역시 일관성이 있어야만 한다. 그래서 만약 내 친구와 내가 같은 자질을 가지고 있거나 같은 방식으로 행동했다면, 우리는 상황에 따라 같은 혜택이나 같은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135)


"한 가지 지적해둘 것은 정의가 사람들이 받는 처우뿐만 아니라 그러한 결과에 도달하기 위해 따라야 할 절차와도 관련되는 바가 많다는 점이다. 형사상의 정의에 관해 생각해보면 이 점을 알 수 있다. 물론 문제가 되는 것은 죄를 범한 사람이 그 범죄에 비례하여 처벌되고 무고한 사람은 풀려나는 것인데, 이것이야말로 정의로운 결과가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판결에 이르기까지 적절한 절차가 지켜지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양측은 각각 자신의 주장을 진술할 수 있어야 하고, 판사는 어느 한쪽을 편들고자 할 만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아야 한다. 이런 절차가 중요한 것은 부분적으로 그것이야말로 올바른 판결에 도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며, 나아가 법정에서 자신의 주장을 진술할 기회를 얻고자 하고 다른 피고인에게 적용되는 것과 똑같은 규칙이 자신에게 적용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그런 절차에 의해 응당한 존중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140)


"아마도 사회 정의─사회 전체에 걸쳐 편익과 비용의 공정한 분배를 보장해야 한다는 관념─에 관한 가장 영향력 있는 해석은 존 롤스에 의해 전개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신의 저작인 『정의론』에서 정의로운 사회가 충족시켜야 하는 세 가지 조건을 논하고 있다. 첫째, 정의로운 사회는 개개의 구성원에게 그 밖의 모든 구성원을 위한 똑같은 자유와 양립하는 한, 가장 광범위한 일군의 기본적 자유(투표권과 같은 여러 정치적 자유를 포함)를 부여해야만 한다. 둘째, 더 큰 이익을 가져다주는 사회적 지위─예를 들어 고소득 일자리─는 기회의 평등에 기초하여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어야만 한다. 셋째,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 정당화되는 것은 그것들이 사회에서 가장 형편이 나쁜 구성원들의 이익이 되도록 작용하는 것으로 보일 때, 다시 말하면 그것들이 사회 전체의 생산성을 높일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더 많은 자원이 사회의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에게 흘러들 가능성이 있는 경우다."(155-7)


6 페미니즘과 다문화주의


"오늘날 상당한 정치적 관심을 받고 있는 페미니스트와 다문화주의자들은 종종 자신들과 관련되는 쟁점들, 즉 개인의 정체성의 본성, 공적인 삶과 사적인 삶의 구분이 가능한지 여부, 문화적 차이에 대한 존중 등을 둘러싼 쟁점들이 앞에서 검토한 권력, 민주주의, 자유와 정의에 관한 물음들을 대체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정치 자체의 본성이 변해버렸다." "그들은 사람들이 서로 정치적 관계를 맺고 있는 공적 영역과 그 관계가 비정치적인 사적 영역을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 문제의 여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정치를 훨씬 더 편재적(遍在的)인 현상, 즉 우리 삶의 모든 측면에 간섭하는 현상으로 바라본다. 이러한 도전은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이다'라는 구호로 요약된다. 그 경우 정치권력에 관해 말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국가가 그 국민에 대해 행사하는 권력에 관해서뿐만 아니라 남성이 여성에 대해 행사하는 권력에 관해서도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다."(162-7)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이제부터는 이러한 관계를 정치적인 것으로서 생각하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정치는 권력에 관한 것, 즉 누가 권력을 쥐어야 하고, 권력은 어떻게 통제되어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지만, 모든 권력관계가 정치적 관계인 것은 아니다."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 대한 페미니스트의 지적은 본래적으로 정치적인 본성을 둘러싼 것이라기보다는 그 관계를 다루는 데서 보이는 '정치의 태만'을 둘러싼 것이다." "즉, 여성에게 적절한 신체적 안전, 특히 가정 내 폭력으로부터의 보호를 보장하지 못했으며, 여성이 삶의 여러 중요한 영역에서 남성과 평등한 권리를 누리도록 보장하지 못했고, 여성에게 개인으로서의 자유를 충분히 제공하지 못했다. 바로 이런 정치의 태만에 의해 개인적 삶의 공간에서 남성이 여성에게 권력을 행사하게 된 것이며, 그렇게 된 명백한 이유의 하나가 여성이 여러 세기 동안 관습적 의미에서의 정치로부터 거의 전적으로 배제되어왔다고 하는 것이다."(168-71)


"여기서 민주주의의 문제로 옮겨가자. 보통선거제를 시행하는 사회에서 페메니스트와 다문화주의들 모두에게 중요한 문제는 입법부인 의회 내에서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 및 문화적 소수자들의 대표가 상대적으로 소수라는 것이다." "대표의 수가 인구수와 엄밀하게 비례해야 한다는 것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각각의 의미 있는 관점이 입법 기관에서 적절한 방식으로 대표되는 것이다." "여기서는 당사자가 반대편의 주장에 기꺼이 귀기울이고, 공정함이라는 기준에 의해 주장을 평가하며, 그에 따라 자신의 견해를 바꾸는 것도 마다치 않는다는 것이 전제된다. 특히 소수자 집단들의 경우에는 민주주의가 가능한 한 그렇게 작동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은 단적으로 소수자다. 만약 모두가 오로지 자신의 분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투표할 뿐이라면, 소수자들은 질 수밖에 없다. 논쟁의 힘은 그들에게 유일한 무기이다."(179-82)


7 국민, 국가, 그리고 전 지구적 정의


"사제인 윌리엄 윙은 일찍이 〈국민이라는 것은 그 선조에 관한 망상과 그 이웃사람에 대한 공통의 증오에 의해 결합된 사회〉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국민적 정체성이라는 것은 단순한 환상이 아니며, 나쁜 목적뿐만 아니라 선한 목적을 위해서도 유용하다. 우리가 국민이라고 부르는 집단들은 대개의 경우 공통의 언어, 오랜 시간에 걸쳐 함께해온 역사, 문학적 형식뿐만 아니라 물리적 환경─마을이나 도시의 건설 방식, 경관의 양식, 기념물, 종교 건축물 등과 같은─을 통해서 표현되는 문화적 특징 등을 공유한다. 이러한 문화적·물리적 환경 속에서 새로운 세대가 자라날 때, 그들은 분명 이런 공통의 유산에서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비록 그런 유산의 여러 측면에 반항하는 경우가 있을지라도 말이다." "국민국가는 정치적 단위로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어왔다. 즉, 국민국가는 제국의 군대에 압도되지 않을 정도로 충분한 크기를 갖지만, 동시에 저항이 필요할 때 그 구성원들의 충성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200-3)


"사회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지각된 유사성'이라는 개념이 있다. 우리는 우리와 이런저런 형태로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이와 관련된 설명에 대해 고찰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것은 사람들이 확장된 친족 집단 안에서 서로 협력하며 내부자와 외부자를 구별할 줄 알아야 했던 인간 진화의 초기 단계로부터 물려받아온 특성일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외모나 발화 면에서 저마다 각양각색인 거대 규모의 사회에서는 신뢰가 문제다. 그러나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국민이라는 정체성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의견이 갈리는 상대와 정치적인 불화를 겪을지도 모르며, 심지어 그런 사람들이 치켜세우는 것을 경멸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여전히 제법 많은 것(언어, 역사, 문화적 배경)을 우리와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이 적어도 민주적 통치의 규칙이나 정신을 존중하기는 할 것이라고 믿을 수 있는 것이다."(205-6)


"현재 이러한 통치 형태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되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국민국가에 대한 무수한 추도문들은, 그 대안으로 코즈모폴리터니즘(세계시민주의)을 가리키고 있다."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코즈모폴리터니즘은 실현 가능성이 낮고 매력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정치철학자들은 종종 세계 시민의 이념을 다르게, 즉 정부의 한 형태로서가 아니라 개인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지에 관한 제안으로서 해석한다. 그 제안이란 우리가 품고 있는 국민적인 것이나 그 밖의 애착과 같은 좁은 마음을 극복해서 마치 자기 자신이 세계 시민인 듯이, 바꿔 말하면 어디에서든 동료인 인간 존재에 대해 동등한 책임을 지는 사람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정치적 권위는 여전히 특정 국민국가에 국한되어 있을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전 지구적 정의를 증진하기 위해 사용해야 하며, 자신이 속한 정치 공동체 내부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우선권을 주려고 하는 것을 그만두어야 한다."(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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