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인류학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24
존 모나한.피터 저스트 지음, 유나영 옮김 / 교유서가 / 201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아주 짧은 소개


"인류학은 지리상의 발견과 식민주의, 자연과학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생했다. 19세기, 다윈 진화론으로 이어지는 철학 사조의 영향을 받은 최초의 인류학자들은 사회·문화적 진화의 단계를 재구성하는 데 관심이 있었다. 에드워드 타일러와 루이스 헨리 모건 같은 인물들은 문자 체계부터 결혼 관습까지, 가장 원시적인 기원부터 그것이 현대에 나타난 양상까지 모든 것을 망라한 저작을 발표하여 후대에 큰 영향을 끼쳤다. 20세기 초에 이르러 인류학자들은 가장 중요하게는 식민 관료, 선교사, 여행가, 기타 비전문가들의 기술에 의존하여 1차 자료를 얻는 데 더이상 만족하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민족지학자로서 자신만의 정보를 직접 얻기 위해 '현지(field)'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런 민족적 선구자들의 시대 이래로 인류학이 상당히 많이 변화하긴 했어도 여전히 민족지는 인류학을 다른 사회과학과 구분 짓는 요소 중 하나이며, 아마 모든 인류학자들이 민족지 기술의 중요성에 동의할 것이다."(9-10)


"20세기 초에 인류학자들은 대체로 단순한 기술을 지닌 소규모 사회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는 일부분 식민주의가 도래하면서 급속히 바뀌고 있던 생활 방식을 기록하려는 열망의 발로였고(물론 이들 사회가 서구와 접촉하기 이전에 변치 않았다고 가정하는 것은 착각이지만), 일부는 인간 제도의 '본질적' 혹은 '기본적' 형태에 다가가려는 열망의 발로였다(이들 사회가 더 '초보적'인 법이나 종교 등을 지녔다고 가정하는 것 또한 착각이지만). 20세기 후반의 주류 인류학은 자신을 자연과학 전통에 속하는 학문으로 보는 시각에서 멀어졌고, 보다 해석적이고 인문학적인 접근법을 채택했다. 또한 비서구·소규모 촌락에만 맞추었던 초점을 전환하여, 도시의 산업화된 환경에서 찾아볼 수 있는 노동조합, 사교 클럽 등 기존 사회학의 범주에 속했던 집단으로까지 대상을 넓혔다. 그럼에도 인류학은 모든 사회를 염두에 두고 그들 모두를 똑같이 중요하게 다룬다는 점에서, 그 범위에 있어 대체로 비교 연구의 성격을 띠고 있다."(10)


1 동고에서의 다툼: 현지조사와 민족지


"인류학자가 하는 일은 다른 무엇보다도 민족지(ethnography)다. 문화인류학자나 사회인류학자에게 민족지란 생물학자의 실험실 연구, 역사학자의 문헌조사, 사회학자의 설문조사와도 같다. 흔히─완벽히 정확한 용어는 아니지만─참여관찰(participatory observation)이라고도 불리는 민족지는,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를 이해하려면 그들과 장기간에 걸쳐 긴밀히 상호작용하면서 관찰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명백히 단순한 개념에 토대를 두고 있다. 전통적으로 인류학자들이 자기가 연구하는 공동체 안에서 장기간─때로는 한 번에 몇 년씩─거주하며 그 사람들과 최대한 많은 생활을 공유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현지조사에 몰입하는 과정은 사람들을 꾸준히 인류학으로 끌어들이는 독특한 경험이자 도전일 수 있다. 또한 참여관찰은 타인들이 세상을 보고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깊이 이해하며 흔히 우리 자신의 선입견과 믿음에 제동을 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것 같다."(26-8)


"민족지적 방법은 뜻밖의 발견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서베이나 통계 조사 같은 고도로 연역적인 사회과학 방법론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힘과 유연성을 지닌다. 실제로 인류학자들이 현장으로 가지고 들어가는 연구 주제들이 있는 반면에, 현장의 실제 상황과 일상적 사건들이 우리 앞에 우연찮게 떨구어놓는 주제들도 있다. 민족지에서 뜻하지 않은 발견의 임의적 성격은 훌륭한 민족지학자가 현장에서 보내는 시간의 길이를 통해 보완할 수 있다. 그래서 조사가 끝날 무렵에는 이렇게 우연한 방식으로 대부분의 중요한 사회 현상을 접하게 되리라고 기대할 수 있다." "민족지 현지조사가 제공하는 경험적 맥락이 없이는, 사회적 사건의 외견과 그 '실체' 사이의 불일치를 포착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이는 인류학자들이 자신의 연구에서 통찰을 이끌어내기 위해 전통적으로 의존해온 강점 중 하나이자, 전통적인 민족지 현지조사가 장기간의 초기 조사를 중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34-6)


"민족지학자는 사회생활의 어떤 특정한 측면을 연구할 의도를 가지고 현지에 간다. 그 주제는 생태적 적응, 토착 신앙, 성별 관계, 풀뿌리 정치 운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민족지학자는 준비 없이 모험에 뛰어들지 않는다. 대부분의 인류학자는 자신이 현지조사를 하려는 지역의 역사와 과거 민족지 문헌을 몇 년씩 공부하면서 준비를 시작한다. 인류학자들은 자신이 연구하는 사람들의 언어로 통역 없이 현지조사를 수행하는 것을 의무로 여겨왔으므로, 민족지학자 또한 몇 개 언어를 최소한 통용 가능한 수준으로 구사할 필요가 있다. 이런 일반적인 준비 외에도, 민족지학자는 자신이 조사하고자 하는 문제와 관련된 보다 전문적인 분야의 훈련을 받곤 한다. 예를 들어 아마존 원주민의 약용 식물을 조사하려는 연구자는 통상적인 식물학도 공부해야 하지만,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식물을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분류하고 이용하는지도 익혀야 한다. 인류학자는 항상 〈어떤 지역의, 무엇에 대한〉 인류학자다."(38-9)


"참여관찰의 문제는 무엇보다도 민족지학자가 공동체를 일종의 시공간적으로 고립된 모습으로 재현하고픈 유혹에 빠진다는 것이다. 특히 1930~40년대의 '고전적' 기술에서 많은 민족지학자들은 '민족지적 현재'라는 것을 적용하여, 공동체와 이웃한 다른 사회나 그것을 둘러싼 국가의 존재를 언급하지 않은 채, 공동체가 마치 정지된 시간 속에, 역사적 맥락의 외부에 존재하는 것처럼 묘사했다." "실제로 자기 모험의 낭만에 휩쓸린 인류학자들이 사회의 '훼손되지 않은' 전통을 그 사회의 성원들보다 오히려 더 높이 평가하는 경우도 있다." "'민족지적 현재'에 대한 또다른 비판은 민족지학자들이─마치 자신이 제시하는 정보를 이끌어내는 데 자신이 능동적으로 관여하지 않은 것처럼─전지적 삼인칭 시점으로 글을 쓰는 경향과 관련되어 있다." "이런 문제에 접근할 때, 우리는 민족지 기술의 독특함을 상대적인 시공간적 맥락에 놓아줄 문화 상호 간의 비교가 없으면 민족지는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하게 된다."(44-6)


2 벌 유충과 양파 스프: 문화


# 문화에 대한 인류학적 정의들

1. 에드워드 타일러(1871) : 광범위한 (비교) 민족지적 의미에서 보았을 때, 문화 혹은 문명이란 지식, 신앙, 예술, 도덕, 법, 관습, 그밖에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인간이 획득한 능력과 습관들을 포함하는 복합적 총체이다.

2. 프란츠 보아스(1930) : 문화는 한 공동체의 사회적 관습의 모든 발현, 자신이 속한 집단의 관습에서 영향을 받은 개개인의 반응, 그리고 이러한 관습에 의해 결정된 인간 행동의 산물들을 포괄한다.

3. 브로니스와프 말리노프스키(1944) : 문화는 도구와 소비재로, 다양한 사회 집단의 입헌 헌장으로, 그리고 인간의 사고와 기술, 신앙과 관습으로 이루어진 통합적 총체이다. ······사람은 바로 이것에 의존하여 당면한 구체적이고 특수한 문제에 대처할 수 있다.

4. 클로드 레비스트로스(1983) : 문화는 자연적인 것도 인위적인 것도 아니다. 그것은 유전자에서 유래한 것도, 합리적 사고에서 유래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대부분 그 기능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따르는 의식적으로 고안되지 않은 행동 규칙으로 이루어져 있다.

5. 레나토 로살도(1989) : 문화는 인간의 경험을 선택하고 조직하여 그것에 의미를 부여한다. ······문화는 일상적인 것과 심오한 것, 세속적인 것과 성스러운 것, 우스운 것과 숭고한 것 모두를 포함한다. 문화 자체는 고급과 저급도 아니며 어디에나 배어들어 있다.

6. 워드 H. 구디너프(1963) : 문화는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기준, 무엇이 될 수 있을지를 결정하는 기준,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를 결정하는 기준, 그것에 대해 무엇을 할지를 결정하는 기준, 그것을 어떻게 할지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이루어져 있다.

7. 마거릿 미드(1937) : 보편 문화(Culture)는 인류가 발전시켰고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며 습득된 전통적 행동들의 총체적 복합체이며, 특수 문화(a culture)는 주어진 사회, 사회 내의 한 집단, 특정 종족, 특정 지역, 특정 시기에 특유하게 나타나는 전통적 행동의 형태를 의미한다.

8. 애덤 쿠퍼(1994) : 문화는······ 학습된, 적응 가능한, 상징적인 행동으로, 완전하게 발달한 언어를 토대로 하며, 기술적 독창성, 즉 기술의 복합과 연관되어 있고, 이러한 기술의 복합은 다시금 공동체 사이의 교환 관계를 조직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20세기 초에 프랑스의 사회이론가 에밀 뒤르켐과 그의 조카 마르셀 모스는 인간의 분류 능력이 우리가 지닌 사회적 본성의 연장이라고 주장했다. 〈사회는 단지 분류적 사고의 준거 모델일 뿐만 아니라, 분류 체계의 틀로서 기능하는 그만의 고유한 틀이었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인간의 분류는 정말로 보편적이지만, 그것이 보편적인 것은 구별하고자 하는 인간의 성향이 창출해낸 분류가 인간 정신의 이원적 본성에 의해 형성된 보다 근본적인 '심층 구조'의 표면적 재현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 뒤에 미셸 푸코의 영향을 받은 인류학자들은 문화적으로 부과된 의미 범주들이 불평등과 억압의 토대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문화적 분류의 내용을 통제하는 능력을 사회 내 권력의 주된 원천으로 보았다. 따라서 '남성'과 '여성' 같은 사회적 분류 범주들과 여기에 결부된 온갖 사회·정치·경제적 의미들의 경합(contestation)은 권위에 저항하는 주된 방식이 된다."(70-2)


"문화가 통합된 총체이자 통합시키는 총체라는 생각은, 외견상 별개의 것처럼 보이는 믿음이나 행동들 하나하나의 기저에 보다 근본적인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는 거대한 모더니즘적 통찰에 일부분 기반하고 있다. 마르크스에게 현실을 결정하는 것은 생산 양식이었다. 뒤르켐에게 그것은 사회였다. 프로이트에게 그것은 무의식이었다. 그리고 보아스의 뒤를 이은 많은 인류학자에게 그것은 문화 자체였다. 그 총체의 본질에 대한 개념을 중심으로 인류학의 서로 다른 학파들이 형성되었다. 보아스의 제자였던 루스 베네딕트는 문화를 '게슈탈트(Gestalt), 즉 하나의 총체적 패턴으로 인식했다." "클리퍼드 기어츠는 마치 소설이나 시를 읽듯이 문화도 텍스트로 읽을 수 있다고 보았다. 기어츠에 따르면 이러한 트릭은 그 사회의 성원들 스스로를 사로잡는 문화적 '텍스트'를 찾아내고, 이를 그들이 보는 방식대로 이해할 뿐만 아니라 그 '텍스트'의 주제가 사회의 다른 측면을 조명하는 방식까지 들여다보기 위한 것이다."(74-6)


"그 반대편 극단에는 문화가 통합된 것임을 부인하거나, 문화란 '넝마조각 같은 것', 즉 복잡하지만 본질적으로 임의적인 역사의 산물에 불과하다는 견해가 있다. 이러한 비판에 대한 응수는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에게서 나왔다. 그는 주어진 문화에서 발견되는 요소들의 역사적 기원이 제각각이기는 해도, 이것들은 '브리콜라주(bricolage)'─문화의 잡동사니들이 애초에 의도했던 것과는 다르지만 근본적 패턴에 들어맞는 용도를 새롭게 부여받은 일종의 콜라주─로서 한데 엮여 있다고 지적했다. 보다 최근 들어서, 근본적 기반이라는 모더니즘적 가정을 부인하는 인류학자들은 이 '브리콜라주' 개념을 이용하여, 문화적 요소를 계속 뜯어고치고 던져버리고 재생시켜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복합체로 만드는 과정이 바로 문화의 본질이라고 보았다. 이렇게 봄으로써 이들은 문화의 본질화라는─문화를 역사 바깥에 존재하며 인간이 주체성을 발휘할 여지가 없는 대상처럼 취급하는─문제를 피해갈 수 있다."(78-9)


"여러 난점에도 불구하고, 인류학의 문화 개념은 우리 학문 분야가 현대 사상에 한 가장 중요한 기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 공동체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의 기반이 근본적으로 임의적이며 학습된 것임을 밝혀낸 문화 개념은, 인종주의나 민족적 쇼비니즘, 그리고 19세기 인류학의 상당 부분을 특징지었던 '과학적' 인종주의와 대적하는 막강한 무기였다." "당시 미국에는 이주민 중 특정 민족이 유전적으로 '약하고' '열등하다'는 식의 믿음이 팽배해 있었는데, 영원한 경험론자였던 보아스는 어떤 민족이든 일단 미국에 와서 건강 및 영양 상태가 개선되면 급속이 누구 못지않게 강건해진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그러한 믿음을 타파하는 연구를 수행했다. 생물학적 유전보다는 환경이 인간의 특성과 행동을 결정하는 주된 요인이라는 보아스의 확신은 그의 일부 제자들에게 계승되어 문화결정론이라는 이론으로 발전했고, 이는 우리가 아직까지도 벌이고 있는 '본성 대 양육' 논쟁에서 정점에 다다랐다."(81-2)


3 어느 짧은 만남: 사회


"우리는 자기 정체성의 많은 측면을 우리가 속한 다양한 집단으로부터 얻는다. 인류학자들은 행동을 문화가 제공한 인지 지도의 결과물로 보았다. 하지만 인간 행동이 '사회적' 종의 일원으로서 우리가 지닌 본성의 한 측면이기도 하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두가 알 듯이, 우리는 그 안팎의 관계가 '규칙'의 지배를 받는 집단들로 조직되며,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고, 이러한 기능은 개별 구성원이 죽은 뒤에도 지속된다. 우리는 문화를 '지녔지만' 사회에 '속해 있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문화에 대한 관심은 사람들이 주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알아내고 그들의 행위를 틀에 끼워맞추고 다른 이들의 행위를 해석하려는 열망에 의해 촉발된다. 사회에 대한 관심은 인간의 사회적 행동을 지배하는 규칙과 질서, 사람들이 서로 어울리는 방식, 활동이 조직되는 방식에 대한 이해와 더 관련이 있다. 이 두 접근법은 같은 복잡한 대상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 것일 뿐, 서로 전혀 배치되지 않는다."(91-2)


"레드클리프브라운을 비롯한 '구조기능주의자' 혹은 '기능주의자'들은 사회구조라는 개념을 이용하여 개인과 집단 간 관계의 패턴을 기술했고, 이러한 패턴을 그 기능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하는 경향이 있었다. 말리노프스키 같은 일부 학자들은 이러한 기능이 그가 말한 '욕구의 원칙', 즉 식량과 주거 등 사회 개별 성원들이 지닌 기본적 욕구 충족과 관계가 있다고 보았다. 또다른 학자들은 이러한 기능이 사회 제도의 작동 및 영속성과 더 큰 관계가 있으며, 사회관계의 유지에 필요한 일종의 경비라고 보았다. 기능주의자들은 사회 제도가 '항상성 평형 상태'에서 스스로 영속하며 사회구조가 행동을 제약한다고 보았으므로, 사회 변화를 설명할 수 없는 사회관이라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기능주의자들이 기술한 많은 사회가 식민지였고 엄청난 변동과 재편을 겪고 있었음을 감안할 때 이는 특히 중대한 결함이었다. 오늘날의 우리는 사회생활의 역동적 특질과 개개인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더 기울고 있다."(99-101)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호혜성, 교환, 동맹을 본질적인 사회관계로 여겨, 사회구조가 집단 간 결혼 파트너의 흐름을 조직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보았다. 레비스트로스가 볼 때, 친족 집단 간의 다양한 동맹을 중심으로 조직된 사회와 우선혼(preferential marriage, 배우자감으로 더 우선시되는 후보는 있지만 특정 범주의 친척과 결혼해야 한다는 강제 규정은 없는 혼인 방식)을 하는 사회 간에는 중대한 차이가 있었다. 레비스트로스는 사회에 대한 우리의 사고를 유기체 모델에서 사이버네틱 모델로 바꾸어놓은 이들 중 한 사람이다. 이에 따라 사회의 부분들은 신체 기관과 유사하기보다는 정보 체계 내의 데이터 흐름을 구성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좀 더 최근의 인류학자들은 사회구조 자체의 본질에 대한 관심이 줄고, 사회에서 권력 관계가 유지되고 경합하는 방식으로 주의를 돌리는 듯하다. 그들이 볼 때, 사회구조란 순수하게 국지적인 전통의 산물인 마큼이나 글로벌한 정치·경제적 힘의 산물이기도 하다."(101-2)


"막스 베버는 합리화(rationalization) 개념으로 전통 사회와 현대 사회의 제도적 관계의 차이를 설명한다. 제도─상대적으로 독립되고 지속적이고 자율적인 행동과 이데올로기의 패턴─가 그 속의 사회적 관계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수행하는 과업을 중심으로 조직된다는 것이다. 베버에 따르면, '전통' 사회의 개인이 속한 집단은 서로 중복되는 다수의 역할을 수행하며, 그의 삶의 모든 측면과 연관된 사회적 자아를 구성한다. 반면에 '현대' 사회가 일반적으로 지닌 '합리적 제도' 내에서는 개인의 특정한 과업 수행 능력이 그의 사회적 자아의 어떤 측면보다도 중시된다." "베버와 그의 많은 추종자들에게 현대적 제도의 정수는 관료제다. 이는 '관료에 의한 지배'로 흔히 전형화되지만, 베버는 관료제를 이해하는 핵심이 개개인을 초월한 목표를 위해 대규모 집단을 조직하고 절차에 대한 명시적 규칙을 통해 구성원들의 행위를 조절함으로써 현대의 행정적 문제를 처리하는 방식에 있다고 여겼다."(102-6)


"대체로 우리가 무엇을 아름답다고 여길 때는 그것을 높이 평가하게끔 배웠기 때문이지 그것이 본질적으로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좋은 와인이나 추상표현주의 회화의 미묘한 차이를 구분하는 취향은 대다수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는, 돈과 공을 들인 교육의 일부로서 습득된다. 우리가 이런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드러낼 때는 그것을 진정으로 음미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내가 감식안이 있고, '삶의 더 좋은 것들'의 진가를 알아볼 능력이 있는 엘리트의 일원이며, 싸구려 포도주와 이발소 그림이 취향의 최대치인 이들보다는 우월하다는 메시지도 드러내고 있다. 피에르 부르디외는 이것을 '문화자본'이라고 불렀다. 부르디외는 마르크스와 베버의 통찰을 결합하여,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 사회가 전문화되고 상대적으로 자율성을 지니며 위계적으로 조직된 무수한 장(field) 또는 제도(예술, 과학, 법률, 경영, 대중 매체 등)들로 분리되어 있으며 사람들은 그 속에서 지위를 얻기 위해 끊임없는 투쟁을 벌이고 있다고 보았다."(112-3)


4 페르난도가 아내를 얻고자 하다: 성과 혈연


"누요와 도우 동고의 사례에서 우리는 결혼이 관련 집단들 사이의 부(wealth)의 이전과 결부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부의 이전은 결혼에 합법성을 부여하며 한 집단에서 다른 집단으로 (노동력이나 장래의 자녀에 대한) 권리가 이전되었음을 인정하는 역할을 한다. 신부대(brideprice)는 신랑측 집단에서 신부측 집단으로의 부의 이전이다. 신부봉사(brideservice)는 신랑측 집단에서 신부측 집단으로 노동력을 이전하는 것이다. 일부 유럽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지참금(dowry)은 신부측에서 신랑측으로의 부의 이전이라기보다는 신부가 자기 집안에서 상속받은 몫에 해당한다. 신부대는 흔히 현금으로 지불하지만 사치재인 경우도 많다. 결혼하고자 하는 젊은 남성은 신부대 지불에 필요한 사치재의 조달을 흔히 자기 친족 집단의 연장자들에게 의존한다. 집단의 연장자들이 이런 귀중품을 기꺼이 내어주는 것은 그가 책임감과 충성심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며, 그가 성인의 문턱을 넘어섰다는 자격증을 수여하는 셈이다."(124-5)


"한 명의 파트너와 평생 유대를 지속하리라는 전제가 통하지 않는 사회들도 많이 있다. 한 남성이 둘 이상의 아내를 가질 수 있는 일부다처제(polygyny)는 흔하다. 반면, 한 여성이 둘 이상의 남편을 가질 수 있는 일처다부제(polyandry)는 그보다 훨씬 드물며, 티베트와 인도 북부 고산 지대의 사례가 잘 알려져 있다. 적어도 티베트의 일처다부제는 일부다처를 거꾸로 뒤집은 것이 아니고, 주로 형제들이 한 여성과 공동 결혼을 한다. 일처다부의 인구학적 결과는 일부다처의 인구학적 결과와 정반대다. 일반적으로 여성은 몇 년에 한 번씩만 출산을 할 수 있고 대개는 한 번에 한 명씩만 낳으므로, 일처다부혼은 인구 증가를 억제하고 토지와 같은 상속 가능한 유산을 보존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일부다처제는 인구 증가를 촉진하며 토지 자원을 자손들에게 빠르게 분산시킨다. 일부일처제, 일부다처제, 일처다부제는 전혀 상호배타적이지 않지만, 주어진 사회의 경제적·생태적 조건에 대한 대응으로 나타날 수 있다."(129-30)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이상화된 관점에서 볼 때 친족의 최소 단위에는 아내의 남자형제가 포함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아내의 남자형제는 아내를 그 남편에게 '준' 가족을 대표한다. 레비스트로스는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결혼은 두 남성이 여자 형제를 교환하고 이 결혼에서 생긴 자손들이 다시 사촌끼리 결혼함으로써 동맹을 갱신하는 형태의 결혼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우리에게는 조금 괴상하거나 심지어는 근친상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사촌 간의 결혼이 허용되거나 바람직하게 여겨지는 정도가 아니라 사실상 의무인 사회들도 많이 있다. 남성들이 외삼촌의 딸과 결혼하는 것이 몇 세대 계속되면, 그 남성 자손들의 두 가계 사이에 결혼 동맹이 형성된다. 또 남성들이 친삼촌의 딸과 결혼하는 것이 몇 세대 계속되면(이는 중동에서 훨씬 선호되는 패턴이다) 단일한 부계 혈통이 강하게 유지된다. 만약 이것이 유목 사회라면 그 집단이 소유한 가축 떼를 한데 모아서 유지하기가 더 쉬울 것이다."(134-5)


"전세계적으로, 피(또는 모유, 뼈, 그밖에 생식 행위를 통해 전달된다고 여겨지는 물질)를 나눈 개인들이 강한 유대에 의해 서로 결속된다는 관념은 가내 및 자녀 양육 집단의 토대를 이룬다. 하지만 이는 훨씬 더 큰 사회적·정치적·경제적 실체의 토대를 이루기도 한다. 많은 사회, 특히 아프리카 사회에서 혈통을 공유한다는 이데올로기는 사회가 조직되는 주된 방식이다. 종족(lineage)은 알려진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혈통을 이어받은 사람들의 집단이다. 그리고 씨족(clan)은 그 구성원이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혈통을 이어받았다고 인식하는 종족들의 집단이지만 여기서는 그 친족 관계를 정확히 따지기가 불가능할 수도 있으며, 이 조상이 신화적 존재나 특정한 사물이나 동물 토템일 수도 있다." "많은 경우에 결혼이란 우리 사회에서처럼 새롭고 독립된 사회 단위를 이루는, 단지 두 개인의 결합이 아니다. 세계의 아마도 대다수 사회에서 결혼은 두 집단 간의 결연이라는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136-7)


5 라 보세가 바카르가 되다: 카스트, 계급, 부족, 민족


"토템 씨족은 전세계에 걸쳐 놀라울 만큼 널리 분포되어 있다. 이러한 정체성 구분은, 출생의 우연을 제외하고는 서로 구분되지 않는 사람들이 '한 동물종이 다른 동물종과 다르듯이 나의 집단은 다른 집단과 다르다'고 선언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한다. 이런 식의 차이를 위한 차이 만들기는 현대 세계로도 그대로 옮겨진다. 그래서 크게 놓고 보면 서로 구분이 안 가는 미국의 칼리지와 대학들이, 토템 명명과 거의 같은 식으로 저마다 독특한 엠블럼과 색깔을 달고 모교의 스포츠 팀 이름을 붙이고서 자기들끼리 맹렬한 경쟁을 벌이는 것이다." "이런 일을 해서 얻는 게 무엇일까? 일부분 이는 소속감을 증진시키며, 학생과 동문들이 열광적이고 의례적인 연대감의 표출에 참여할 수 있는 많은 기회─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운동 경기─를 제공하기도 한다. 뒤르켐은 이런 종류의 경험을 '집합 흥분(collective effervescence)'이라고 일컬었다. 그는 이것을 사회적 연대의 핵심에 놓았을 뿐만 아니라 종교적 경험의 뿌리로 규정했다."(144-5)


"그런가 하면 서로 다른 무수한 부분들의 복잡한 상호의존에 기반하여 연대가 이루어지는 크고 복잡한 사회들은, 스스로가 동질적 실체라는 환상을 구축하는 데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곤 한다. 이런 과정은 20세기 식민 제국의 해체 이후에 출현한 신생 국가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그들은 국어를 제정하고 학교에서 공통의 역사를 가르치며, 공유된 역사에서 끌어온 애국적 인물과 상징들을 신생 국가의 대표로 내세웠다. 각종 국가 상징물과 국민국가를 정당화하기 위해 민족 신화를 차용한 정교한 시민 의례가, 공통된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수단으로서 만들어지고 시행되었다. 뒤르켐은 이것을 '집합 표상(collective representations)'이라고 일컬으며 사회적 연대의 상징적 속성을 인정했다. 단순하고 동질적인 사회들이 그 미미한 차이를 가지고서 차이를 만들어내는 데 열중하는 한편, 복잡하고 이질적인 사회들이 그 유기적 다양성으로부터 통일을 이루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아이러니로 느껴진다."(145-7)


"인종과 종족은 어떻게 구분될까? 두 범주 모두 '문화적으로 구성된(culturally constructed)' 범주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생물학적─흔히 그릇된─사실과 조금 관계가 있긴 하지만 주로 사회적인 범주로서 자신과 타자를 흔히 도덕적인 뉘앙스로 규정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종족성은 문화·언어·종교의 요소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말레이인'의 법적 정의에는 그가 무슬림이라는 항목이 포함된다. 한편, 인종은─이것 또한 문화적으로 구성된 범주이지만─쉽게 알아볼 수 있는 (이를테면 피부색 같은) 특성을 강조하며, 모든 인간 유형의 생물학적 기원에 대해 포괄적 설명을 제시하는 민속이론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이론들은 예컨대 세계의 '인종들'이 노아의 아들들에서 기원했다는 생각처럼 신화적인 토대에 뿌리박고 있다." "보아스는 인종주의 이론에 맞서는 것이 인류학의 중요한 공적 사명이라고 여겼고, 그의 제자인 루스 베네딕트는 1940년에 집필한 책에서 '인종주의(racism)'라는 용어를 고안했다."(154-6)


"우리가 종족에서 공통의 핏줄에 기반한 정체성을 본다면, 인종에서는 공통의 신체적 특성에 기반한 정체성을, 민족주의에서는 공통의 유산과 경험을 기반으로 삼은 국가를 본다. 거의 모든 현대 국가들은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을 포괄하므로, (정치적 자치를 표방하는) 민족주의는 특정한 종족이나 인종의 정치적 표현일 때가 많다. 민족주의는 현대 세계에 너무나 깊숙이 배어 있어서 우리는 '민족(nation)'과 '국가(state)'를 흔히 혼용해서 쓴다. 하지만 민족주의는 수립된 국가가 없어도(혹은 쿠르드족처럼 몇몇 국가에 분산된 상태로도) 존재할 수 있으며, 국가─중앙집중화되고 관료화되었으며 그 통제권이 주어진 영토 전역에 미치는 정치 단위─또한 민족주의가 아닌 다른 원리를 기반으로 수립될 수 있다. 국민들이 명백히 하나의 언어나 관습이나 유산을 공유하지 않는 많은 현대 국가에서도 그러한 것을 고취하는, 말하자면 공통된 전통을 '발명하는' 프로그램에 엄청난 자원이 투입된다."(156-7)


6 누요에서의 축제: 사람들의 소유물


"호혜적 거래가 언제나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것은 아니며, 언제나 주는 이와 받는 이 사이의 평등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많은 경우에는 주는 쪽이 받는 쪽보다 물질적인 면에서는 아니라도 도덕적으로 더 우월하다고 여겨지며, 준 선물과 동등하거나 (가능하다면) 보다 나은 답례가 올 때까지 그 우월한 위치를 누린다. 받은 선물에 대해 정확히 똑같이 답례하는 것은 적대적인 행위로 비칠 수도 있는데, 이는 교환으로 쌓아올린 관계를 사실상 끝내버리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호혜성의 정치를 보면, 공동의 연대 말고 다른 것도 교환의 동기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19세기 미국과 캐나다 북서부 해안의 아메리카 원주민 집단들 사이에서 행해진 경쟁적 교환이 그 적절한 사례다. 서로 경쟁 관계에 있는 집단들은 '포틀래치(potlatch)'라는 행사를 열어서 상대방이 쉽게 답례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선물을 주려고 노력했다. 이는 그들의 우월한 경제적·사회적 권력을 과시하는 수단이었다."(176-7)


"이런 식의 비대칭은 물질적 재화로 답례할 능력이 전혀 없는 의존 관계에서도 작동한다. 이런 경우에는 복종이나 경의나 충성으로밖에 보답할 길이 없다. 의존 관계가 사회경제 체제의 일부로 자리잡은 사회에서 그 결과는 '피후견 관계(clientage)', 즉 부유하거나 힘 있는 후견인과 그들에게 물적 자원이나 보호를 의존하는 이들 사이의 관계가 된다. 가장 덜 모멸적인 후견-피후견 관계에서는 후견인 측이 '노블레스 오블리주' 의식을, 피후견인측이 진정한 충성심을 유지한다. 좀더 착취적인 상황에서 피후견 관계는 후견인측의 갈취나 다름없어진다." "이렇듯 경제 관계는 정치·사회적 관계 속에 떼어낼 수 없이 묻어들어 있기 때문에, 그 사회의 수많은 다른 측면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로 실물 경제를 이야기하기란 어렵다. 문제는 우리가 자본주의 경제에 너무 깊이 매몰되어 있어서 시장에서 사고파는 행위만이 유일한 '경제' 행위이며 국민국가만이 그러한 활동의 유일한 배경이라고 가정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178-9)


"사람들이 무언가를 원할 때,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경제학자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식량, 주거 등등)를 열거하며 대답하기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소비 결정에는 다른 변수들도 개입한다. 심지어 식량 같은 인간의 필수 요소도 문화적 변수에 의해 굴절된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신세계에 처음 도착했을 때, 주변에 옥수수, 사냥감, 과일, 채소가 풍부했는데도─그들이 건강한 식단의 필수 요소라고 믿었던─포도주나 밀이나 올리브유를 구할 수 없다는 이유로 스스로 굶주리고 있다고 믿었던 건 그 때문이었다. 과시적 소비의 경우, 사람들은 자신이 남들 대다수와 다르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 특정한 물건을 원한다. 하지만 유능한 광고 회사 경영진이라면 모두 알다시피, 자신이 어느 집단의 일원이고 어느 집단의 일원이 아님을 표시하고픈 소비자의 욕망은 의복에서 자동차에 이르는 광범위한 상품의 매출을 올려주는 일등공신이다. 따라서 소비는 저절로 되는게 아니라 학습해야 하는 것이다."(181-2)


"신디 로퍼가 말했듯이, '돈이 모든 걸 바꾼다'. 단순한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호혜와 교환의 정치에서 거래의 '경제적' 가치는 거래로 맺어지는 사회관계에 종속된다. 어떤 (중요한) 의미에서 각각의 거래는 교환에 참여하는 개개인만큼이나 독특하다. 말리노프스키는 트로브리안드제도 사람들이 다른 멜라네시아 섬사람들과의 복잡한 교환 '고리(ring)'에 참여하는 것을 관찰했다. 이 고리에 참여하는 개인들은 평생토록 맺어진 교역 파트너와 모종의 재화를 교환하기 위해 먼 거리를 여행한다. 이 '쿨라 고리(kula ring)'를 따라 물품들이 순환하면서 그것이 거래되어온 역사와 그 이전 소유자들의 내력도 함께 순환하므로, 각각의 교환과 각각의 물품은 독특한 생애사를 지니게 된다. 현대 경제의 주춧돌인 화폐와 시장 교환은 정확히 그 반대의 효과를 띠며, 이는 매우 의도적인 것이다. 가치를 공통의, 규격화된, 태환 가능한 표준으로 환원하면 교환의 효율이 그 속도와 총량 면에서 현저히 증대하기 때문이다."(183-4)


7 비마에서의 가뭄: 사람들이 믿는 신


"비록 그 연관성이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종교와 사회는 서로를 반영하는 모델인 동시에 서로를 형성하는 모델이다. 우주론적 명제와 사회 구조 사이의 이런 유사성은 종교와 사회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암시해왔다. 종교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은 종교의 일상적 실천에, 그리고 이것이 다른 사회생활과 연결되는 방식에 관심을 기울이는 경향이 있다. 뒤르켐은 사회적 범주화의 기본 형태를 종교에서 찾을 수 있으며 사람들은 우주론을 통해 사회를 표상하므로 사회와 종교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있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종교적 의례가 '사회가 그 자신을 숭배하는' 한 예라는 말은 이 개념을 투박하게 표현한 것이다. 이보다 덜 결정론적인 접근 방식을 취하여, 종교가 집단과 개인을 동원해 위기와 난관을 헤쳐나가는 방식을 강조한 학자들도 있다 일례로 통과의례(rites of passage)에서, 개인이 한 사회 정체성을 벗고 다른 정체성으로 옮겨가는 위태로운 이행은 흔히 사회의 가장 정교한 의례를 통해 이루어진다."(196)


"유럽의 민속학자인 아르놀드 방주네프는 사람들이 사회를 방이 많이 있는 큰 집으로 상상한다고 했는데, 여기서 각각의 방은 서로 다른 사회적 지위를 상징한다. 통과의례는 사람들을 한 방에서 다른 방으로 옮겨놓음으로써 그들이 낡은 지위를 벗고 새 지위를 얻을 수 있게 해준다. 그러한 이행 중에 개개인을 옛 지위로부터 들어내어 새로운 지위의 휘장을 수여하기 위해 고안된 의식이 치러지며, 의식에서 이 과정은 흔히 죽음과 재생의 은유로 묘사된다. '문턱에' 선 개인은 이쪽도 저쪽도 아닌 특별한 지위를 가지며, 이 지위는 흔히 특별한 의복을 입음으로써, 신체 외관을 변화시킴으로써, 혹은 금욕을 견딤으로써 표시된다." "우리는 그리스도교의 세례식처럼 태중에서 유년으로, 유대교의 미츠바처럼 유년에서 성년으로, 결혼식처럼 미혼에서 기혼으로, 장례식처럼 산 상태에서 죽은 상태로 옮겨다주는 종교적 의례에 익숙하다. 졸업식이나 취임식 같은 세속적 통과의례 또한 우리에게 익숙하다."(196-7)


"기존에 확립된 믿음이 삶의 문제에 대해 더는 적합한 설명을 제공하지 못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 식민 정부나 신식민 정부에 종속된 사회들은 이런 갑작스럽고 압도적인 변화를 겪는 일이 많은데, 그로 인한 혼란을 전통 종교의 믿음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강렬한 종교 운동이 발생할 수 있으며, 사회가 직면한 문제에 대한 설명과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하는 어떤 선지자가 이런 운동을 이끌곤 한다. 이를 천년왕국 운동(millenary movement)이라 하는데, 이런 운동을 이끄는 개인들은 성스러운 권위를 가지고 발언하며, 그러한 권위에 힘입어 삶의 온갖 위기에 대한 해결책의 일부로서 광범위한 종교적·세속적 변화를 도입하기도 한다." "세계의 많은 대형 종교들도 시작은 일종의 부흥 운동으로부터, 즉 자신의 문제에 대해 기존의 신앙이 제시하는 것보다 더 포괄적인 해답을 갈구하는 사람들의 상상력에 카리스마적 선지자의 예지가 불을 붙이면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199-203)


8 냐뉴 마리아가 벼락을 맞다: 사람들의 자아


"내가 누구이고 무엇인가에 대한 개념, 상식의 기본 토대를 이루는 듯 보이는 개념처럼 우리 삶의 경험의 대단히 본질적인 측면들도 실은 문화들 간의 엄청난 차이에 좌우된다." "서구인들은 인격으로서의 자신을 볼 때, 자신을 '자율적인' 개인으로서 보는 경향이 있다. 우리 자신─그리고 우리의 자아─에 대한 이런 식의 관념에서 나온 것이 바로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인식이다. 예컨대, 미국의 어린이들은 초등학생 때부터 '누구나 커서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역사적·정치적 현실은 일단 접어두고, 이런 관념은 우리 모두가 똑같이 지닌 역량과 권리에 토대를 둔 인격(personhood)─여기서 우리는 자아에 대한 관념이 더 포괄적인 정치 이데올로기를 표명하는 방식을 가리키기 위해 '인격'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의 개념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서, 이 맥락에서의 인격은 우리를 서로 다르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같게 만드는 것에 의거하여 정의된다."(212-3)


"그러나 인격에 대한 이데올로기가 거의 정반대인 듯한 사회들도 있다. 중앙아메리카의 또다른 민족인 마야인의 언어에는 '비니크(vinik)'라는 단어가 있다. 초기의 스페인인 관찰자들은 이 단어를 처음에 '개인(individual)'으로 번역했지만, 좀더 면밀히 들여다보니 이 단어는 보다 미묘한 다른 의미들을 띠고 있었다. 1699년 스페인의 사제이자 언어학자인 프란시스코 바레아 신부는 '비니크'가 〈인격(person)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언어에는 '나의 인격'이라든지 '당신의 인격'이라는 말이 없다······ 그보다 이는 '나의 족속(people of my nation)'이라는 뜻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마야어의 '비니크'는 또 '스물(20)'을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이데올로기에 따라 인간에게는 스무 가지의 기본 유형이 존재하며, 이 유형들은 서로를 보완하고 뒷받침한다." "따라서 마야어의 '비니크' 개념은 이른바 '관계적 인격 개념'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여기서 인격이란 인간 개인에게 고착된 지위가 아니라 집단의 속성인 무엇이다."(213-5)


"중앙아메리카 달력은 태양년(360일)을 20일씩 18개월로 나누었는데 한 해의 마지막 닷새는 이름 없는 날 혹은 불길한 날이었다. 이때는 일종의 시간 바깥에 놓인 시간으로 여겨졌고(많은 지역에서는 오늘날까지도 그렇게 여긴다), 온갖 나쁜 일─특히 세상의 종말─이 일어날 수 있다고 두려워했기 때문에 금기, 단식, 의례를 엄수하면서 근신했다. 이 시기에 태어난 불운한 아이들은 운명을 갖지 못했다─다시 말해서 정체성의 가장 근본적인 측면이 결여되어 있었다. 일부 민족지 자료와 사료는 이 이름 없는 닷새 동안에 태어난 아이들이 명확한 신체적 형태를 갖추지 못했으며, 아파도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죽도로 방치되었다고까지 기술하고 있다. 그러니까 당시 중앙아메리카에서는 모든 인간이 저절로 인격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것이다. 집단 내에서 자기 자리를 얻지 못하고 사회 밖으로 완전히 추방된 이 불운한 아이들의 사례는 앞에서 논의한 관계적 인격 개념과 일치한다."(218)


"인격과 자아의 개념은 인류학자들 말마따나 문화적으로 구성된다. 한 문화의 구성원들에게는 너무 당연하고 정상으로 보이는 관념이 실은 특수한 역사적 전통의 산물이며 문화에 따라서 다르다는 말이다." "의료인류학자들은 신체 각부와 그 기능에 대한 관념이 '문화 특이적 증후군'을 초래하는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 이런 관점을 적용해왔다. 사람의 몸은 세상 어디에서나 기본적으로 같기 때문에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아파야 할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여기서의 핵심은 자신의 몸과 환경에 대한 지각이 그의 상대적인 건강 상태와 아주 큰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가령, 거식증과 폭식증은 신체적 아름다움에 대한 비현실적 지각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문화 특이적 증후군으로서의 자격을 갖추고 있다. 또한 이런 섭식 장애는 성별, 연령, 계급에 민감하여 특히 젊은 백인 중산층 여성에게서 두드러지게 많이 나타나는데, 이는 신체 생리와 사회 간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보여주는 또하나의 지표다."(218-20)


후기: 우리가 배운 몇 가지 것들


"'사람 사는 건 어디나 같지만 간혹 다를 때도 있다.' 어떤 중요한 의미에서 보면 바로 이것이야말로 지난 한 세기동안 인류학자들이 우리에게 전해준 가르침이며, 좀더 면밀히 들여다보면 전혀 사소한 것이 아니다. 우선 이는 인간의 어떤 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말라는 가르침을 준다. 누가 '그러나 자고로 인간의 본성이란······' 식으로 일장 연설을 시작하면 일단 나가는 문이 어디 있는지부터 찾아라!" "인류학자들이 인간 행동의 보편법칙을 일반화하려 할 때마다 그 법칙들은 경험적으로 틀렸거나 시시하리만치 하찮은 것으로 드러나곤 했다. 이는 인간에게 진정으로 보편적인 것을 알아내려는 시도들을 폄하하거나 우리가 그런 시도 덕분에 많은 걸 배웠음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사회생활에서 인간 문화가 낳은 모든 변이를 포괄할 만큼 광범위하면서 그런 변이들을 낳은 특수한 문화적 맥락에 부합하는 패턴을 식별하려는 시도가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 위험한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다."(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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