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철학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45
데이비드 밀러 지음, 이신철 옮김 / 교유서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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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치철학은 왜 필요한가


"여기서 내가 언급하는 정부(government)는, 특정한 시점의 사회 속에서 권력을 지니는 사람들의 집단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어떤 것이다. 실제로 그것은 국가, 즉 그것에 의해 권력이 행사되는 내각, 의회, 법원, 경찰, 군대 등과 같은 정치 제도보다 더 광범위한 어떤 것이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우리가 사회 속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규칙과 관행 및 제도들 전체다. 누가 무엇을 누구와 함께 행할 수 있는지, 누가 물질적 세계의 어떤 부분을 소유할지 등을 알기 위해 서로 협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아마도 여기서 당연하게 여길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불가결하다는 것을 아직은 당연시할 수 없다. 정치철학의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는 왜 우리에게는 애초에 국가가, 좀더 일반적으로는 정치권력이 필요한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좋은 정부'가 과연 국가를, 혹은 관습적인 의미에서의 정부를 가질 필요가 있는지 여부는 일단 열린 물음으로 남겨놓고자 한다."(15-7)


"정치철학이라는 주제를 총체적으로 부정하는 사람들은 정치란 권력 행사에 관한 것이며, 권력을 지닌 사람들─특히 정치인들─은 정치철학의 저작들에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정치철학이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영향력을, 때로는 상당한 영향력을 지니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홉스의 시대에는 오직 소수의 극단적 급진주의자들만이 민주주의를 정부의 한 형태로서 믿었다는 점을 생각해볼수 있을 것이다. 물론 오늘날 우리는 그 밖의 정부 형태가 어떻게 정당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는지 거의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민주주의를 당연시한다. 이러한 변화에 관한 이야기는 복잡한 것일 수밖에 없지만, 거기에 내포되는 불가결한 요소로서 민주주의에 찬성하며 논의를 펼친 정치철학자들의 역할이 있었고, 나아가 그들의 관념이 받아들여지고 대중화되어 정치의 주류로 편입되어왔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진 이가 장 자크 루소일 것이다."(23-6)


"오늘날 거의 모든 정치철학자는 좋은 정부란 모종의 민주주의를 의미해야만 한다는 것을 당연시한다. 요컨대, 어떤 방식으로든 인민이 통치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전의 여러 세기 동안에는 그와 반대되는 견해가 우세했다. 좋은 정부란 현명한 군주정이나 개명한 귀족정이나 재산가들의 정부, 혹은 이것들의 혼합체를 의미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옳고 우리의 선조들은 단적으로 틀렸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민주주의가 성공적으로 기능하려면 일정한 전제조건들이 필요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부유하고 문화적 소양을 갖춘 인구, 사상이나 의견의 자유로운 교류를 위한 대중 매체, 사람들에게 경의를 살 만한 기능적인 법률 체계 등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들은 최근까지도 쉽사리 획득될 수 없었으며, 또한 하룻밤 사이에 갖춰질 수도 없었다. 민주주의적 관념들의 영향력 있는 원천이었던 루소조차도 민주주의는 인간이 아니라 신들에게만 적합한 것이라고 말했다."(34-5)


2 정치권력


"국가가 정치권력을 행사한다고 할 때,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정치권력에는 두 측면이 존재한다. 한편으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그것을 '권위'로서, 바꿔 말하면 사람들에게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명령할 권리를 가지는 것으로서 인식한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법을 지킨다고 할 때 그들이 그렇게 하는 까닭은 대개 법을 제정하는 주체는 법 제정의 권리를 가지며 자신들은 그에 상응하여 법을 준수할 의무를 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법 준수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제재라는 위협에 의해 준수를 강요받게 된다. 법 위반자들은 체포되어 처벌될 수 있다. 그리고 이 두 측면은 상호보완적이다." "그래서 정치권력은 엄밀한 의미에서의 권위와 강제되는 준수를 결합한다. 그것은 어떠한 강제도 없이 제자들이 그 가르침에 따르는 현자의 권위와 같은 순수한 권위도 아니고, 당신에게서 지갑을 빼앗는 강도의 폭력과 같은 순수한 힘도 아니며, 그 두 가지가 섞인 것이다."(42-3)


"그러나 우리가 왜 정치권력을 필요로 하는가 하는 물음은 여전히 남아 있다." "홉스는 정치적 통치 없는 '인간의 자연 상태'를 삶에 필요한 것들을 둘러싼 잔인한 경쟁의 상태로서 묘사했다." "홉스가 이런 비관주의적 결론에 도달한 것은 사람들이 본성상 이기적이거나 탐욕스러우며, 따라서 정치권력에 의해 제약받지 않으면 자신들을 위해 가능한 한 더 많이 움켜쥐려고 할 것이라는 그의 믿음 때문이라고 자주 언급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홉스의 진정한 논점을 놓치고 있다. 그 논점은 신뢰가 부재할 때는 사람들 사이의 협조가 불가능하며, 그 신뢰는 법을 강제할 수 있는 상위의 힘이 없는 곳에서는 훼손되리라는 것이다. 홉스가 '자연 상태'에 결여되어 있다고 묘사하는 것들은 무엇보다도 우선 많은 사람에게 남들도 스스로의 역할을 다하리라고 기대하면서 함께 일할 것을 요구하는 것들이며, 정치권력이 부재할 때 그러한 기대를 품는 것은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43-6)


"홉스를 포함하는 정치철학자들은 종종 정치권력에 대한 엄격한 복종이 없다면 그 권력은 무너지고 말 것이라고 논해왔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국가나 그 밖의 형태의 정치권력은 사람들이 (보편적이라기보다는) 대체로 권력에 복종하고 싶어하는 한에서 존속하고 효과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것은 제한된 형태의 불복종, 특히 시민 불복종─이는 불법적이지만 비폭력적인 형태의 정치적 저항이며, 그 목적은 정부에 대해 정책을 변경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데 있다─이라고 불리는 것에 문을 열어주는 것으로 보인다. 시민 불복종을 옹호하는 논의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만약 특정한 법이 매우 불공정하거나 억압적이라면, 또는 국가가 의사결정을 할 때 소수자의 관심사에 귀기울이기를 거부한다면, 법적 수단에 의한 저항이 효과적이지 않을 경우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정치적 의무가 모든 경우에 구속력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66-7)


3 민주주의


"우리가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정치 체제는 실제로는 통치에서 매우 제한된 역할만을 시민들에게 부여한다. 시민들은 주기적인 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들은 때때로 헌법상의 중대한 문제를 결정해야 할 때 국민 투표라는 형태로 의견을 표명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들과 관련된 쟁점들에 관해 자신들의 대표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단체를 조직하는 것이 허용된다. 하지만 그 정도가 그들이 가진 권력의 한계다. 민주 사회의 미래를 결정하는 진정한 힘은 극소수 사람들─정부 각료나 관료, 그리고 어느 정도의 범위로 한정된, 의회나 여타 입법 기관의 구성원들─의 수중에 있다. 그리고 왜 그렇게 되어 있는지 묻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이유로는 보통사람들에게는 정치적 결정의 배후에 놓인 쟁점들을 이해할 '능력'이 단적으로 없으며, 그래서 이러한 사안을 다루는 데 더 뛰어난 자질을 갖춘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기꺼이 결정을 맡긴다고 하는 널리 퍼져 있는 믿음을 들 수 있다."(73-5)


"우리는 평범한 시민들의 정치적 역할이 주로 선거 때 투표하고 이따금 뭔가 특별한 이해가 걸릴 때 행동하는─예를 들어 그들의 뒷마당으로 도로가 새로 뚫리거나 주택이 들어서기로 한 것에 대응하는─식으로 제한되는 가운데 우리의 민주주의가 불완전한 채로 머문다는 사실에 대해 우려해야 할까? 나는 우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천치'를 의미하는 영단어 'idiot'은 그리스어 'idiotes'에서 유래했는데, 그것은 본래 완전히 사적인 존재로 살며 도시국가의 공적 생활에 전혀 참여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현대인은 자신의 정치적 지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한, 대개는 천치들인 셈이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우리는 지방 정치에 대한 참여나, 시민 배심원단과 그 밖의 유사한 기관에 참여할 대중 구성원을 무작위로 선출하는 것과 같은 참여의 형식을 발전시킴으로써 모든 사람에게 능동적인 시민으로서의 생활 양식(citizenship)의 경험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88-9)


"현대 민주주의 체제에서 실제 결정을 내리는 것은 다수자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헌법상의 장치는 소수자가 다수자에 의해 고통당하지 않도록 보장하는 중요한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시민을 평등하게 처우할 것을 목표로 하는 민주주의 체제는 더 멀리 나아가야만 한다. 그러한 체제는 기본권이 문제가 아닌 경우들에서도 다수자가 최종적인 결정에 이르기 전에 소수자의 관심을 적절히 고려할 수 있도록 보장하려고 해야 한다. 이를 위한 열쇠가 공개 토론이다. 거기에서 양측은 서로의 입장에 귀기울이고, 가능한 한 양측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해결책을 찾으려고 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다수자를 형성하는 사람들은 토론을 하기 전 단계부터 자신들이 가장 선호하는 해결책에 찬성 투표만 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대신에 그들은 상대편의 주장을 들어보고 나서 판단을 형성하려고 해야 한다. 때때로 그들은 서로 동의할 만한 일반적 원리를 발견해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95)


4 자유와 정부의 한계


"정부가 더 많은 것을 할수록 민중의 자유는 그만큼 점차 감소한다는 일반적으로 견지되는 견해는 잘못된 것이다. 정부는 종종 자유를 제한하기도 하며, 때로는 정당하게, 때로는 정당하지 않게 그러하다(예를 들어 안전띠와 관련된 법률은 자동차 이용자의 자유를 제한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그 법률이 구하는 생명에 의해 그것이 정당화된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활동이 관련 조처가 없었으면 비용 때문에 불가능했을 선택지를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방식으로 자유를 증대시키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다만 정부가 자유의 내적 측면, 즉 어떤 사람이 자신에게 열린 선택지 중에서 참다운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과 관련해서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비교적 적다. 이 자유는 이 자유는 종종 (이사야 벌린이 「자유의 두 개념」이라는 강의에서 명명한 바대로) '적극적 자유'라고 불리는데, 그것은 외적 요인에 의해 방해받지 않는 선택지를 갖는다는 의미의 '소극적 자유'와는 구별되는 것이다."(110-1)


"우리는 (개개인이 모종의 독립성을 바탕으로) 참다운 선택을 할 수 있는 내적 자유를 어떻게 증진할 수 있는가? 한 가지 방법은 사람들에게 폭넓은 선택지를 제시함으로써 그들이 어떤 일련의 믿음이나 하나의 삶의 방식만을 올바른 것이라고 당연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반대로 자기네 구성원들의 선택을 통제하고자 하는 종교 교과나 정치 체제는 자신들이 상찬하는 삶의 방식에서 벗어난 것을 그 구성원들이 보거나 경험하지 못하도록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그래서 선택의 자유를 증진하고자 하는 정부는 (사람들을 새로운 삶의 방식이나 새로운 형태의 문화 등을 접하게 함으로써) 사회적 다양성을 키워가면 된다." "그러나 외적 자유와는 달리 내적 자유는 보장될 수 없다. 독립적인 성향을 타고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순종적인 성향을 타고난 사람도 있다. 정치로 가능한 것은 그저 자기 나름의 삶의 방식을 선택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는 좀더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는 것일 뿐이다."(113)


"존 스튜어트 밀은 어떤 사람의 행위가 본인을 제외하고 누구의 이익도 침해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자기 관계적'일 때, 그 행위에 결코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밀은 이 원리가 사상 및 표현의 자유와 개인이 스스로 원하는 방식대로 살 자유, 즉 어떻게 입고, 무엇을 먹고 마시며, 어떤 문화적 활동을 추구하고, 어떤 성적 관계를 맺으며, 어떤 종교를 따를 것인지 등등의 자유를 정당화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경계선을 긋는 것은 가능할까?" "표현의 자유는 중요하지만, 모든 표현에 똑같은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예배드리고 정치 토론에 참여하며 예술적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일터에 (불쾌한) 포스터를 붙이거나 조야한 인종차별적 구호를 외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즉, 우리는 서로 다른 종류의 행동이 지니는 가치를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부과할 수 있는 비용과 비교하고, 숙고하여 판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114-9)


5 정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해 제시된 아주 오랜 정의에 따르면, 〈정의(正義)란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 주고자 하는 항구적이고 영속적인 의지〉인 것이다. 이것은 그 자체로는 그리 유용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우리에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기는 한다. 첫째, 정의란 개개인이 올바른 방식으로 대해지는 것에 관한 문제임을 강조한다. 그러니까 정의란 사회 전체가 부유한지 가난한지, 문화적으로 풍성한지 불모인지 등과 같은 문제가 아니다." "둘째, 앞에서 제시된 정의의 〈항구적이고 영속적인 의지〉라는 부분은 사람들이 자의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대해져야만 한다는 것이 정의의 중심적 측면임을 우리에게 상기키셔준다. 한 사람의 인간을 통시적으로 대하는 데서는 일관성이 있어야만 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역시 일관성이 있어야만 한다. 그래서 만약 내 친구와 내가 같은 자질을 가지고 있거나 같은 방식으로 행동했다면, 우리는 상황에 따라 같은 혜택이나 같은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135)


"한 가지 지적해둘 것은 정의가 사람들이 받는 처우뿐만 아니라 그러한 결과에 도달하기 위해 따라야 할 절차와도 관련되는 바가 많다는 점이다. 형사상의 정의에 관해 생각해보면 이 점을 알 수 있다. 물론 문제가 되는 것은 죄를 범한 사람이 그 범죄에 비례하여 처벌되고 무고한 사람은 풀려나는 것인데, 이것이야말로 정의로운 결과가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판결에 이르기까지 적절한 절차가 지켜지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양측은 각각 자신의 주장을 진술할 수 있어야 하고, 판사는 어느 한쪽을 편들고자 할 만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아야 한다. 이런 절차가 중요한 것은 부분적으로 그것이야말로 올바른 판결에 도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며, 나아가 법정에서 자신의 주장을 진술할 기회를 얻고자 하고 다른 피고인에게 적용되는 것과 똑같은 규칙이 자신에게 적용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그런 절차에 의해 응당한 존중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140)


"아마도 사회 정의─사회 전체에 걸쳐 편익과 비용의 공정한 분배를 보장해야 한다는 관념─에 관한 가장 영향력 있는 해석은 존 롤스에 의해 전개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신의 저작인 『정의론』에서 정의로운 사회가 충족시켜야 하는 세 가지 조건을 논하고 있다. 첫째, 정의로운 사회는 개개의 구성원에게 그 밖의 모든 구성원을 위한 똑같은 자유와 양립하는 한, 가장 광범위한 일군의 기본적 자유(투표권과 같은 여러 정치적 자유를 포함)를 부여해야만 한다. 둘째, 더 큰 이익을 가져다주는 사회적 지위─예를 들어 고소득 일자리─는 기회의 평등에 기초하여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어야만 한다. 셋째,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 정당화되는 것은 그것들이 사회에서 가장 형편이 나쁜 구성원들의 이익이 되도록 작용하는 것으로 보일 때, 다시 말하면 그것들이 사회 전체의 생산성을 높일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더 많은 자원이 사회의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에게 흘러들 가능성이 있는 경우다."(155-7)


6 페미니즘과 다문화주의


"오늘날 상당한 정치적 관심을 받고 있는 페미니스트와 다문화주의자들은 종종 자신들과 관련되는 쟁점들, 즉 개인의 정체성의 본성, 공적인 삶과 사적인 삶의 구분이 가능한지 여부, 문화적 차이에 대한 존중 등을 둘러싼 쟁점들이 앞에서 검토한 권력, 민주주의, 자유와 정의에 관한 물음들을 대체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정치 자체의 본성이 변해버렸다." "그들은 사람들이 서로 정치적 관계를 맺고 있는 공적 영역과 그 관계가 비정치적인 사적 영역을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 문제의 여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정치를 훨씬 더 편재적(遍在的)인 현상, 즉 우리 삶의 모든 측면에 간섭하는 현상으로 바라본다. 이러한 도전은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이다'라는 구호로 요약된다. 그 경우 정치권력에 관해 말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국가가 그 국민에 대해 행사하는 권력에 관해서뿐만 아니라 남성이 여성에 대해 행사하는 권력에 관해서도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다."(162-7)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이제부터는 이러한 관계를 정치적인 것으로서 생각하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정치는 권력에 관한 것, 즉 누가 권력을 쥐어야 하고, 권력은 어떻게 통제되어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지만, 모든 권력관계가 정치적 관계인 것은 아니다."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 대한 페미니스트의 지적은 본래적으로 정치적인 본성을 둘러싼 것이라기보다는 그 관계를 다루는 데서 보이는 '정치의 태만'을 둘러싼 것이다." "즉, 여성에게 적절한 신체적 안전, 특히 가정 내 폭력으로부터의 보호를 보장하지 못했으며, 여성이 삶의 여러 중요한 영역에서 남성과 평등한 권리를 누리도록 보장하지 못했고, 여성에게 개인으로서의 자유를 충분히 제공하지 못했다. 바로 이런 정치의 태만에 의해 개인적 삶의 공간에서 남성이 여성에게 권력을 행사하게 된 것이며, 그렇게 된 명백한 이유의 하나가 여성이 여러 세기 동안 관습적 의미에서의 정치로부터 거의 전적으로 배제되어왔다고 하는 것이다."(168-71)


"여기서 민주주의의 문제로 옮겨가자. 보통선거제를 시행하는 사회에서 페메니스트와 다문화주의들 모두에게 중요한 문제는 입법부인 의회 내에서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 및 문화적 소수자들의 대표가 상대적으로 소수라는 것이다." "대표의 수가 인구수와 엄밀하게 비례해야 한다는 것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각각의 의미 있는 관점이 입법 기관에서 적절한 방식으로 대표되는 것이다." "여기서는 당사자가 반대편의 주장에 기꺼이 귀기울이고, 공정함이라는 기준에 의해 주장을 평가하며, 그에 따라 자신의 견해를 바꾸는 것도 마다치 않는다는 것이 전제된다. 특히 소수자 집단들의 경우에는 민주주의가 가능한 한 그렇게 작동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은 단적으로 소수자다. 만약 모두가 오로지 자신의 분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투표할 뿐이라면, 소수자들은 질 수밖에 없다. 논쟁의 힘은 그들에게 유일한 무기이다."(179-82)


7 국민, 국가, 그리고 전 지구적 정의


"사제인 윌리엄 윙은 일찍이 〈국민이라는 것은 그 선조에 관한 망상과 그 이웃사람에 대한 공통의 증오에 의해 결합된 사회〉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국민적 정체성이라는 것은 단순한 환상이 아니며, 나쁜 목적뿐만 아니라 선한 목적을 위해서도 유용하다. 우리가 국민이라고 부르는 집단들은 대개의 경우 공통의 언어, 오랜 시간에 걸쳐 함께해온 역사, 문학적 형식뿐만 아니라 물리적 환경─마을이나 도시의 건설 방식, 경관의 양식, 기념물, 종교 건축물 등과 같은─을 통해서 표현되는 문화적 특징 등을 공유한다. 이러한 문화적·물리적 환경 속에서 새로운 세대가 자라날 때, 그들은 분명 이런 공통의 유산에서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비록 그런 유산의 여러 측면에 반항하는 경우가 있을지라도 말이다." "국민국가는 정치적 단위로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어왔다. 즉, 국민국가는 제국의 군대에 압도되지 않을 정도로 충분한 크기를 갖지만, 동시에 저항이 필요할 때 그 구성원들의 충성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200-3)


"사회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지각된 유사성'이라는 개념이 있다. 우리는 우리와 이런저런 형태로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이와 관련된 설명에 대해 고찰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것은 사람들이 확장된 친족 집단 안에서 서로 협력하며 내부자와 외부자를 구별할 줄 알아야 했던 인간 진화의 초기 단계로부터 물려받아온 특성일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외모나 발화 면에서 저마다 각양각색인 거대 규모의 사회에서는 신뢰가 문제다. 그러나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국민이라는 정체성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의견이 갈리는 상대와 정치적인 불화를 겪을지도 모르며, 심지어 그런 사람들이 치켜세우는 것을 경멸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여전히 제법 많은 것(언어, 역사, 문화적 배경)을 우리와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이 적어도 민주적 통치의 규칙이나 정신을 존중하기는 할 것이라고 믿을 수 있는 것이다."(205-6)


"현재 이러한 통치 형태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되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국민국가에 대한 무수한 추도문들은, 그 대안으로 코즈모폴리터니즘(세계시민주의)을 가리키고 있다."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코즈모폴리터니즘은 실현 가능성이 낮고 매력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정치철학자들은 종종 세계 시민의 이념을 다르게, 즉 정부의 한 형태로서가 아니라 개인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지에 관한 제안으로서 해석한다. 그 제안이란 우리가 품고 있는 국민적인 것이나 그 밖의 애착과 같은 좁은 마음을 극복해서 마치 자기 자신이 세계 시민인 듯이, 바꿔 말하면 어디에서든 동료인 인간 존재에 대해 동등한 책임을 지는 사람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정치적 권위는 여전히 특정 국민국가에 국한되어 있을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전 지구적 정의를 증진하기 위해 사용해야 하며, 자신이 속한 정치 공동체 내부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우선권을 주려고 하는 것을 그만두어야 한다."(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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