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가격 - 뇌를 충동질하는 최저가격의 불편한 진실
엘렌 러펠 셸 지음, 정준희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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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일전에 어떻게 합리적 소비를 할 수 있을까? 같은 제품을 좀 더 싸게 구입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에 대형할인점 및 홈쇼핑의 유통 실무가가 해주는 싸게 사는 법을 익혔던 나로서는 사실 이 저술의 지적에 얼굴이 화끈 거려지는 쑥스러움이 파고든다. 제한된 재정 상태에서 같은 값이면 싸게 구입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고 유통업의 본성을 파악하여 소비자로서 유리한 위치에 선다는 것은 일견 합리적인 판단이라 위안을 삼을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진정 소비자가 할인점, 아웃렛몰 등의 유통회사의 우위에서 소비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 저작은 바로 이와 같이“저가를 추구하는 세계가 어떤 식으로 소비자들의 욕망을 충족시키며 그들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서라 할 수 있다. 유통업태의 100여년에 걸친 발전사를 통한 판매전략의 부조리한 실태를 통찰하고,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경제질서 하에서의 약자인 개발도상국 등 제3세계 국가들의 착취를 통한 저가화가 가져온 폐해를 분석하여, ‘가격’의 정의와 ‘저가(低價)’가 가져온 궁극의 문제점을 파헤치고 있다. 과연 싸게, 더 싸게라는 구호는 정당한 것인가? 또한 소비자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데 기여하고 있기는 한 것인가? 국민경제, 세계경제의 질을 제고하긴 하는가?

우선 이 저작에 인용되거나 인터뷰어로 등장하는 분야와 학자, 전문가의 숫자에서 엄청난 노고의 산물임을 짐작할 수 있다. 행동경제학, 행동심리학, 정신의학은 물론 경제학(유통경제 포함), 사회학, 경영학, 산업공학(테일러시스템 등)에 이르는 광범위한 학계, 재계, 유통전문가들의 다채로운 연구(실험)결과를 기반으로 견고한 이론으로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어, 단순한 대형판매 및 유통업의 저가화를 통한 소비자의 기만전략을 비판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지속가능한 인류의 공생과 정의로운 미래 사회를 위한 경제정책의 제안으로까지 이해 될 수 있는 저술이라 하겠다.

대형 할인점의 가격은 정말 싼 것일까? 그리고 그 가격은 어떻게 결정되는 것일까? 하버드의 사회학자 ‘제러드 잘트먼’의 “이 세상에 가격보다 더 주관적인 것은 없습니다. ~ 어디에 가격의 의미가 있습니까?”라는 가격의 불안정성과 조작성에 대한 지적처럼 금전적 가치라는 것은 매우 추상적이고 가변성을 지닌 기호임을 납득케 되는데, ‘과도한 가치폄하 효과(hyperbolic time discounting)’를 이용한 시간제한 할인전략이나, 어떤 정황 속에서 특정 제안이 제시되는가에 따라 인지적 가치에 영향을 주는 프레이밍(framing)효과를 이용한 가격제시처럼 사람들의 행동 심리를 교묘하게 적용한 가격전략을 알고 나면 우리가 확신하는 합리적 소비라는 것이 얼마나 비이성적인 것인가를 이해하게 된다. 더구나 생산업체가 제시하는 소매가격은 실질가격일까? 역시 이는 가공의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준거가격으로서 의미를 부여하여 할인가격에 대한 구매의욕을 부채질하는데 이용되는 가격일 뿐이며, 할인가로 위장한 정상가격은 물론 부풀린 준거가격을 마치 대폭 할인하는 것처럼 제시하는 할인가격이 내재하고 있는 기만성일 뿐이라는 것이다.

일용품 구매에서는 가치보다는 가격을 중요하게 판단하고, 제품의 질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제 경비가 적게 들어 가격이 싸다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며, ‘가격 대비 가치’라는 그럴듯한 언어로 싸구려를 대체하고, 감정적 반응을 일으켜 인지적 평가를 방해하는 등의 인간심리를 활용한 고도의 판매가격 정책의 실상을 보면 결국 소비자에게 감정적으로 괜찮은 가격을 곧 공정(公正)가격으로 생각하는 우리들의 비이성적 뇌에 실망하게 된다. 할인가격이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았는가? 분명 정상가격보다 싼 가격으로 팔면 판매자가 손해를 보지 않겠는가? 결코 판매자가 손해를 보면서 장사를 할 일은 없다. 다시 말해 할인가격이 존재한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그것을 정상가격에 사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내재하고 있는 것이니, 할인가격이란 누군가에겐 바가지를 쒸웠다는 의미라고도 할 수 있다. 사실 할인점이 내세우는 싸다는 가격의 의미가 이러함은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지만, 저가가 지니는 의미가 이렇게 단순히 특정 소비자들을 기만하는 데에만 있는 것이 아니기에 문제가 된다.

가격 결정을 실질적 생산원가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대형소매업체(할인점,아웃렛몰,백화점 등등)가 제시하는 것이 곧 가격결정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고, 엄청난 구매력을 확보한 대형유통업체가 가격결정권을 가지고 있음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싼 가격에 숨어있는‘할인차액보전금’같은 대형할인점의‘강탈전략’처럼 납품업체에 손실을 전가하거나,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소매업체들을 파괴하면서 들어서는 대형할인점이 비정규직, 단순노동자자의 싼 노동비를 토대로 하고 있음도 이미 주지하고 있는 내용이다. 결국 싼 것을 요구하는 소비자와 이러한 소비자의 주머니를 털어내기 위해서 무차별적으로 가하는 저가 공세는 내구성은 점점 상실되고 조잡한 싸구려만을 양산하게 되는 악순환의 고리에 들어서게 한다.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손해를 보지만 유통업자만 이익을 보는 이상한 순환체제 말이다.

이러한 구조의 사회적 문제는 노동의 가치를 떨어트리고, 이로 인해 저임금 근로자들은 저소득 근로자가 되어 저렴한 상품을 찾는, 즉 한 노동자 집단이 다른 노동자 집단을 잡아먹는 동안 기업의 경영진은 뒷짐을 지고 그 살육의 현장을 지켜보는 양태가 고착화 된다는 점이다.“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최저가격보다 조금 더 낮은 가격을 의미”한다는‘중국가격’이 지니는 극악한 노동착취 기반의 가격이나, 2008년9월 UN의 보고서중 9억2,500만 명이라는 세계기아인구의 통계는 인류역사 이래 유례가 없을 정도의 저가 식량이 넘쳐남에도 세계화라는 약육강식의 경제실상이 식량부족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 사 먹을 수 있을 만큼 저렴한 식량이 부족하다는 역설적 모순을 낳기도 한다.

노동을 착취하거나 노동자를 억압하여 저임금으로 만든 제품을 우리는 비난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제품이 무조건 싸야한다고 한다. 가치는 실종되고 추상의 가격만이 춤을 춰대는 현실을 우린 모른 채한다. 이 바로‘인지 부조화’의 싸구려가 자신들의 목을 조이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동안 잊혔던 그레샴의 법칙,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가 여지없이 들어맞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저렴한 식량, 저렴한 연료, 저렴한 신용, 저렴한 노동으로 이루어진 저렴한 세계가 지속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역사적 경험이다. 한국인 대부분이 생계를 위해 일하는 노동자임에도 자신들은 노동자가 아니라 소비자이자 문화적 문제에 관심을 갖는 중산층이라고 인지부조화의 현상을 보이고 있다. 쓰레기를 수거하면서‘위생기사’라 부르고, 보험모집인은‘재무설계사’로, 할인점판매원은‘어소시에이트’로 부르면서 노동자임에도 노동자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을 지지하는 어리석음을 보인다. 경제가 바닥을 칠 때 할인점은 가장 많은 이익을 올린단다. 개인의 가처분 소득이 줄 때 할인점의 매출은 증가한단다. 즉 가난은 막대한 시장 잠재력 그 자체다. 가난한 사람들이 할인산업을 이롭게 하고 있다. 자신들을 가난하게 만드는 바로 그 산업, 그 부자들을 이롭게 하는 것이 가난한 자들, 저임금자들이라는 악질적 고리다.

싸구려와 명품만 있다. 중간 제품이 없다. 거부들은 수억 원, 수십억 원대의 명품을 구매하지만 대다수의 국민은 싸구려를 구매한다. 가치대비 가격이 좋은 상품이라는 웃기는 제품을 말이다. 내구성은 갈수록 떨어지고, 조롱하듯 춤추는 엉터리 가격으로 말이다. 노동자가 노동자를 잡아먹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라도, 저렴한 가격이란 그 환상을 지우고, 현재의 필요에서 미래의 필요를 추정하는 놀라울 정도로 어려운 임무를 강요하는 쇼핑, 궁극으로 착취의 또 다른 이름인 대규모 쇼핑행위는 지양되어야 할 시민들의 임무여야 하지 않을까. 중간의 제품, 중간의 임금, 장인(숙련자)의 부활, 품질과 환경의 복원, 인간존엄성의 회복까지를 지향하는 그런 각성이 요구된다. 지적이며, 흥미롭고, 소비자에게 제안되는 가격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속살을 여지없이 까발린 秀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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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위원회 모중석 스릴러 클럽 20
그렉 허위츠 지음, 김진석 옮김 / 비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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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사법체제가 정의를 실현하는 도구로서 어떤 흠결도 없는 것인가? 또는 법이 구현하지 못하는 정의를 실현키위해 보다 상위의 도덕적 신념을 우리는 인정해야하는가? 만일 그러한 신념의 행동을 방임할 경우 사회질서의 유지라는 공공의 안정성과 건강성에 어떤 위협이 되는 것은 아닌가? 사실 이 작품이 던지는 정의에 대한 파문은 실로 곤혹스러운 것이다. 정의는 공공선이라는 때론 모호하기 그지없는 집단적 질서에 우위를 인정하다가도 개인이나 가족의 연대에 대한 미덕과 충돌할 때 혼란에 빠지기도 한다.

최근‘마이클 샌델’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행복과 자유와 미덕의 이상(理想)을 통해 고민하는 바로 도덕적 딜레마에서 정의를 생각게 하는 바로 그 실제를 표현하고 있는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일곱 살 여아의 무참한 살인, 아이의 아빠인 연방법원 부집행관‘팀 랙클리’와 엄마인 군 보안관‘드레이’부부에게 자식의 죽음을 알리는 음울한 전언으로 이 작품은 시작된다.

내 아이를 잔혹하게 살해한 살인범에 대한 증오, 그리고 결코 치유될 수 없는 부모로서의 정신적 고통이 처음부터 독자의 가슴을 묵직하게 짓누른다. 완벽한 살인증거물들과 현장, 그리고 용의자의 자백으로 쉽사리 매듭 될 듯이 작품은 빠르게 전개되지만, 여기서 작가는 첫 번째로 법과 정의에 대한 시험으로 우리들의 사유를 주춤거리게 한다. 범인을 체포한 아내의 동료들인 군 보안관들이 내밀하게 직접의 복수를 가할 기회를‘팀 랙클리’에게 제공한 것이다.

법의 판단에 앞서, 경찰력의 비호(庇護)하에 내 아이의 참담한 죽음에 직접적 복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는데 어떤 결정을 하여야 하는가? 놈의 머리에 방아쇠를 당기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가슴이 찢어들듯 울부짖는 아내의 슬픔과 사무치게 그리운 딸아이의 모습, 그리고 갈기갈기 찢긴 아이의 시신이 교차되어 이성이 마비될 것 만 같은 자신의 증오에 위로가 될까? 공공의 이성, 즉 사법부의 정의로운 판결에 맡겨야 할 것인가? 살인범을 앞에 두고 차마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고 돌아오지만 결단에 대한 갈등이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그리고 두 번째 시험이 이어지는데 아이를 추행하고 토막 살인한 살인범이 법집행절차의 흠결로 인하여 무죄판결을 받는다. 귀머거리인 범인에게 미란다수칙을 지키지 않는 수색과 체포의 결과물은 법적 증거물로 채택될 수 없다는 것이다. 살인행위와 법집행절차의 충돌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살인용의자의 인권, 그리고 제도로서의 법적장치 수호와 개인의 행복과 자유의 충돌이기도 하다. 명백한 살인자이지만 단지 집행절차의 문제로 범인이 풀려나는 것이 과연‘정의’인가? 하는 도발적인 질문인 것이다. 내 아이를 죽인 살인자가 법의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고 자유로이 살아갈 수 있게 된다면 아이의 죽음에 대해 우리사회는 더 이상 무어라 할 수 있을까?

결국 사법제도는 무능력한 것이고, 정의를 수행하지 못한다는 것일까? 법집행절차를 비롯한 사법제도의 자기갈등 요소로 인해 세상에서 격리되고 처벌되어야 할 흉악범들이 자유롭게 활보하는 것은 인간의 도덕율에 상처임이 분명하다. 표제인『살인위원회; The Kill Clause』의 등장은 그래서 소설의 구조상 적절함을 넘어 주제를 선명하게 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극악한 살인의 증거와 정황이 명료함에도 법적용의 흠결이나 하자, 오심으로 인해 풀려난 살인자들을 정의의 이름으로 척결하기 위한 은밀한 조직이 법집행을 대신하는 것이다. 이는 정의에 대한 판단을 누가하는 것인가? 인간사회가 합의한 질서를 초월하여 정의를 주장할 수 있는 존재란 가능한 것인가? 하는 어려운 질문이 된다.

사회심리 및 범죄심리학계의 유명교수가 중심이 되어 가족의 일원이 살해되는 고통을 안은 전직 FBI, 형사로 구성된‘살인위원회’의 활동이 갈등 끝에 합류한 주인공‘팀 랙클리’의 민완한 행동으로 본격화된다. 희대의 살인마들이 철통같은 보안 속에서도 살해되고 사회는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행동에 정의라는 이름으로 찬사를 보내지만, 법질서의 훼손을 방치할 경우 사회치안의 부재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법이 방치한 흉악범들에 대한 처단의 치밀한 전개가 기막힌 액션과 사실적 묘사를 통해 소설의 재미를 극한으로 치닫게 한다. 아마 책 읽는 자들의 쾌락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작가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폭력성과 보복의 처참함으로 필름 느와르적 요소를 다분히 지니고 있으나, 이보다는 고귀한 주제의식과 완벽함에 가까운 플롯으로 인해 장르소설이 지니는 주변적 시선을 완전히 극복하고 있어 여느 정통소설 못지않은 작품성을 확보하고 있다 할 수 있다.

또한 밀리터리 액션을 중심으로 한 고도의 서스펜스와 스릴, 범인 소탕을 위해 벌이는 현장감이나 세밀한 디테일에서 상당히 뛰어난 서술을 하고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초법적인 팀의 행동을 다시금 제도 내에 복귀케 함으로써 경직되고 냉정한 법 체제에 인간의 숨결을 불어넣고자 하는 작가의 인본주의적 신념이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하다. 정의는 항상 갈등하지만 장기적으로 도덕적이다. 작가는 아마도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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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별
정미경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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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도처럼 튀어나오는 격한 증오”, “다이아몬드 같은 증오”에 휩싸이면 그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 새로운 갈망의 대상을 끊임없이 쫓아대는 사람들은 어떤 존재들일까? 이러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사막이란 대체 어떤 의미일까?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낯설다. 북아프리카 마그레브 지역의 사막풍경과 이슬람의 좁은 골목이 미로처럼 뒤엉킨 도시, 생의 열기로 가득하지만 죽은 자들의 광장이라 불리는‘자마 알프나’의 어수선한 노점시장이 보인다.

첫 문장부터 내 머리는 소설과 겉돌기 시작한다. 너무 민감해서, 그리고 지나칠 정도로 감상적이어서, 게다가 자의식이 유별나게 불거지는 주인공을 보면서 대체 감정의 선을 따라잡지 못하고, 아니 공감하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하여야 할까. 사막여행의 현지 가이드인‘승’이란 남성이 배출하는 메마르고 황폐함만이 느껴지는 감정에 대한 알 수 없는 불쾌감, 저항감 이었을까.

아랍인, 베르베르인이 얽혀 사는 사막지대의 한 뒷골목에 한국인 소녀‘보라’가 헤나로 타투를 그리며 관광객을 호객하고 있는 장면 또한 그리 용이한 모습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감성이 융화하고 교감하지 못한다. 내심 이렇듯 작품 초반에 소설을 읽어낼 자신이 없었다. 이들이 대체 왜 사막의 도시에 있는지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이 없었으니 말이다.
결국 전 재산과 아내까지 믿었던 친구 'K'에게 빼앗기고, 감당할 수 없는 채무의 그늘과 복수의 증오를 안고 허겁지겁 도망쳐 그네들을 쫓아 나선 곳이 북아프리카의 마그레브 지역, 황폐한 사막이라는 구절에 이르러서야 사하라 사막의 삭막하고 후텁지근한 모래바람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역시 인간의 욕망으로부터 파생하는 감정의 찌꺼기들, 그리고 그런 시간의 흐름이 바로 인생이고, 그러면서 마주치는 삶의 편린들이 방향을 바꾸게도 하고, 씻어내지 못할 것만 같은 앙금이 가라앉기도 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들.

“극한의 황량함에 조응하는 폐허를 가슴에 감추고 있는 사람만이 그 지독한 사막 자체를 견뎌낼 수 있다.”는‘승’의 생각은 그자신의 반영일 뿐이다. 소설에서 사막은 이처럼 메마르고 건조한 황폐함이기도 하지만, “사막이 제 안에 무엇을 품고 있는지 다 알 수 없어서 사랑”하는 인간도 등장한다. 모래에 갇혀 2000여년을 잠들어 온 고대 유물에 대한 욕망, 어떤 것에 사로잡히고 그것들을 소유하는 첫 순간의 느낌을 찾아 헤매는 사람. 운명처럼 아름다움에 대한 그 느낌의 촉발을 위해 사막에 머무는 사람이 있다. 이렇듯 황폐한 내면의 조응이든, 탐욕이든 사막은 사랑에 빠지게 하고 중독 시키는 기호로 통한다.

“누군가에게 제대로 버림받은 것들은 초라해지고 누추하며 하찮아진다. 운명이 누락시킨 자가 되어 버린다.” 이 얼마나 가슴 아픈 얘기인가! 거울을 보듯 서로에게 비친 제 모습을 바라보는 아비와 딸(승과 보라)의 상처가 사막의 풍경과 어우러져 버림받고 방황하는 이의 고통으로 짓무른 가슴을 드러내 보인다. 또한 최후의 선택, 새로운 갈망의 대상을 끝없이 쫓는 눈먼 매혹, 아름다움에의 맹목이 도달하는 궁극의 허무함에 이르기도 한다.

소설의 종반에 이르면 고가의 도기(陶器)를 둘러싼 쫓고 쫓기는 관계에서 욕망의 네트워크로 연결된 인간들의 적나라한 본성, 그리고 뒤늦은 삶의 각성을 보여준다. 지독한 현세성을 보여주는 바바의 아버지 무스타파, 아름다움이란 존재 자체라는 로랑, 여기에 승과 보라에서 삶의 미로를 읽는 일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우리 인간들의 초상을 보게 된다. 돌아가고 싶은데 장소가 아니고 시간이 된 사람들, 제 삶에서 도망치려 안달하는 우리네의 쓸쓸한 뒷모습을 보는 것 같다. 인생이란 결국 모두 제 마음이 만들어 낸 길을 가고 있을 뿐이었음을 깨닫는 것은 죽음을 마주하고서야 비로소 가능한 것일까?... 사실 이 소설은 느닷없는 질문처럼 무방비 상태에서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얼얼하다. 내 마음이 허공에 슬쩍 떠 있던 것도 아닌데, 소설이 나를 스르르 주저앉힌 걸 보면 무언가 알 수 없는 아름다움의 매혹이 떠다니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가본 적도 없는 사막의 허영, 그 황량한 풍경을 대고 카메라를 눌러대는 감정의 과잉들이 괜스레 싫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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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사고 잘 파는 법 - 롯데홈쇼핑 이부장이 들려주는
이상발 지음 / 지식노마드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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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인점, 홈쇼핑분야에서의 바이어 및 MD(Merchandiser;판매기획)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형제처럼, 친한 선배처럼, 삼촌처럼 들려주는 쇼핑의 비밀 이야기다. 이래저래 소비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우리네에게는 알아서 손해 볼 일 없는 요긴한 귀띔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유통업의 산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전문가적 조언들은 자신의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 대형 할인점이나 홈쇼핑방송에 진출하는데 요구되는 노하우에서 소매상을 시작하는 이들을 위한 필수적 매장 진열을 비롯한 잘 파는 지식까지 제공해주기도 한다.

사실 시장자본주의의 최선단에 있는 현장이 바로 저자가 일했던 할인점이요, 홈쇼핑방송 판매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보니 치열한 경쟁을 본성으로 하는 무대에서 생존을 위한 기예가 남다를 도리 밖에 없었을 것이고, 이는 상품(물건)에 대한 신앙심으로 이어져 물질 가치의 인식과 거래에 대한 탁월한 통찰력을 체득케 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가계소비 주체로서의 비중이 높은 주부들이나, 일반 소비자에게는 잘 사는 비법을, 제품 판매 및 도소매업을 하는 이들에게는 잘 파는 법이 더욱 실체감 넘치게 전달된다.

일례로 사는 자나 파는 자 모두에게 공히 유용한 정보인 상품 진열 전략의 설명과 같이, 진열대의 좌우, 고저의 위치에 따른 상품의 가격과 판매이윤, 상품의 성격까지 파악할 수 있게 되어, 소비자로서의 구매식견을 제고시켜 주는가하면, 판매자에게는 상품진열의 중요성을 재차 인식시켜준다. 이처럼 이 저작은 소비자와 판매자, 즉 사는 자와 파는 자 모두에게 현명한 선택을 위한 현실적 수단과 이해를 제공하기도 한다. 특히 할인점등의 매대 양쪽 끝에 있는  한두 가지의 상품을 볼륨감있게 진열한 매대인“‘엔켑’을 노려라!”는 것처럼 이는 상품을 사야하는 소비자는 물론 할인점에 입점하여야 하는 판매자 모두에게 중요한 포인트라 알려주는 것과 같다.

한편 할인점이나 홈쇼핑, 인터넷에서 동일 제품을 저렴하게 구입하는 요령에 대한 조언은 지금까지는 알지 못했던 것들이어서 책 읽기에서 의외의 소비지혜를 발견하게 해주는데, 계산대에서 캐셔에게 말만 잘하면 할인키를 눌러 계산 받을 수 있다는 것이나, 할인점에서 판매행사를 하는 도우미가 있는 상품의 경우 추가할인이나 별도의 판촉상품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으며, 상담원이 나와있는 코너의 경우에는 파격적인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월말로 갈수록 세일의 폭이 커지고, 마지막 주에 쇼핑을 해야 하는 할인점등 유통업의 실상을 통해 소비자의 알뜰한 소비지혜를 알려준다.

이에 상응하여 판매자들을 위한 판매 전문적 식견으로 갈수록 짧아지는 상품의 라이프사이클로 인한 제품의 적정한 시장 진입기의 설정이나 가격설정 방법, 홈쇼핑에 진출하는 절차와 방법, 상품이 상품으로 가치를 충분하게 발휘하기 위해 구비되어야 하는 유용성, 안정성, 운반성, 대체성, 창조성 등 9가지의 상품성 특성과 더불어 제품별 핵심 소구 포인트를 예시하여 판매자들을 위한 실천적 방법들을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이 저작은 우리들의 실질적인 소비생활이나 생업으로서의 판매를 위한 방법들을 실제의 현장감을 가지고 효과적으로 전달해주고 있다. 공급과잉의 시대, 극한적 경쟁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들에게, 또한 소비자이기도 하지만 일면 생산자이자 판매자이기도 한 우리네에게‘잘 사고 잘 파는’지혜는 어쩜 생존의 절대적 지혜인지도 모르겠다. 운명을 바꾸는 큰일, 큰 목표도 중요하지만 우리들은 의외로 작은“디테일에서 무너져”내린다는 저자의 삶의 통찰처럼, 소박한 지혜들이 모여 삶을 보다 윤택하고 풍요롭게 만들어 주리라는 점에 공감한다.

비록 지나치게 자기중심적 물질지향의 관점이 다소 근본주의적 시장주의자처럼 비추어져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하지만, 생산과 소비라는 인간을 지탱하는 본질적 현상에서‘효율적’이고,‘합리적’이라는 가치를 피할 수 없듯이 저자가 알려주는 진심의 지혜와 정보는 분명 가정경제에 일조하고 있다 할 수 있다. 할인점에서도 깍을 수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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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인형 모중석 스릴러 클럽 23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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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프리 디버’의 야심찬 새로운 시리즈라 할 수 있다. ‘「링컨 라임」시리즈’에 열광하였던 독자들은 아마 신선하고 독특하기조차 한 ‘「캐트린 댄스(Kathryn Dance)」시리즈’의 시작에 매혹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캐트린 댄스란 인물은 링컨라임 시리즈 중 『The Cold Moon』에서 독자들에게 선보인 적이 있으며, 드디어 이 작품 『잠자는 인형(The Sleeping Doll)』으로 자신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내걸게 되었다. 이후 캐트린 댄스 시리즈의 본격적인 두 번째 작품이라 할 수 있는 『도로변 십자가; Roadside Crosses』가 출간되었으며, 링컨라임 시리즈『Burning Wire』에 등장해 활약하기도 한다. 사실 이 작품에도‘아멜리아 색스’와‘링컨 라임’이 살짝 등장하여 캐트린의 수사 상담에 조언을 해주기도 하는 것을 보면 두 시리즈의 주인공은 각자의 독특한 전문분야에서 협조하는 우호적 관계를 지속할 것 같다.

이 작품이 하나의 시리즈 출발을 알리는 강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고 판단 할 수 있는 것
은 주인공‘캐트린 댄스’의 전문분야가 시사(示唆)하는 참신성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동작학>이라는 “상대의 몸짓과 표정을 분석해 그들의 심리상태와 생각을 정확히 간파해 내는”범죄자 심문의 한 장을 열고 있다는 데 있다. 소설은 컴퓨터분야의 떠오르는 부자인‘크로이튼 일가’를 무참히 살인하여 복역 중인‘다니엘 펠’이라는 희대의 살인마를 캐트린이 심문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컬트 패밀리의 리더로서 사람의 마음을 마음대로 조정하는 펠과 작은 손동작이나 스트레스의 포착에서도 상대의 심리를 파헤치고 무너뜨릴 수 있는 댄스와의 취조실 대화는 이미 폭발직전의 아슬아슬한 긴장으로 몰아넣는다.


이에 더해 소설의 또 하나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데, 사이코패스와 연쇄살인범, 그리고 컬트 범죄의 백과사전이라 할 정도로 세기적인 살인마들의 사건 프로파일이 등장하여 작중 인물들의 행동예측이나 낯선 전문수사내용의 이해를 돕기도 한다. 물론 함정과 복선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지만, 리얼리티를 제고하여 더욱 작품에 몰입하게 해준다. FBI의 추정으로 200여명을 살인한 사이코패스의 전형인 ‘테드 번디’나, 20세기 최악의 살인자로‘맨슨 패밀리’라는 컬트를 조직하여 거장‘로만 폴란스키’감독의 임신한 아내와 가정부를 살해한‘찰스 맨슨’까지 등장하여 수사 진영과 다니엘 펠의 대립에 숨소리가 들릴 정도의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다니엘 펠의 죄목은 크로이튼 일가족 살인이지만 사건은 이러한 펠의 탈옥으로부터 시작된다. 두 명의 교도관을 순식간에 살해하고 수사관까지 중태에 빠뜨린 채 유유히 사라지면서, 캘리포니아 연방수사국 수석수사요원인‘캐트린 댄스’가 현장에서 바로 수사지휘의 책임을 맡게 된다. 외부 조력자를 통한 탈출에 수사의 초점을 맞추고 수사하지만 좀처럼 흔적을 찾지 못한다. 여기에 크로이튼 사건 당시 펠이 구성한 컬트의 구성원들을 수소문해 사건의 작은 단서라도 확보하기를 기대한다. 취조과정에서 오고간 한 마디 한 마디, 그리고 미세한 표정의 변화까지도 범죄자의 행동 예측에 결정적인 실마리가 되고, 사건의 수사는 컬트집단 범죄의 전문가인 FBI 요원‘켈로그’가 가세하면서 속도감을 높이고 활기를 띤다.

사건은 컬트의 특성에 집중되고, 크로이튼 사건당시의 멤버인 리더 펠과 린다, 레베카, 사만다의 관계성을 조명한다. “이슈를 분극화시키고 멤버들을 흑백논리로 몰아 갈등을 유발하며, 리더 자신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끊임없이 시험하여 절대복종과 다른 생각을 품지 못하게 한다”는 컬트 리더의 보편적 조직운영 행태를 넌지시 흘리고, “리더는 자신을 제외한 그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습니다.”라고 펠의 컬트 내 권위에 대해 확인시켜준다. 작가의 세련된 트릭이 여기에도 숨겨져 있었음에 나중에 아~하고 탄식을 할 정도가 된다. 신비스럽기만 한 소설의 제목‘잠자는 인형’은 아빠와 엄마, 형 제들이 살해될 때 침대에서 잠든 어린 소녀로서 죽음을 피하였기에 붙여진‘테레사 크로이튼’의 별명이다. 철저하게 비밀리에 보호되고 있던 이 소녀의 등장과 사건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지만 수사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제프리 디버’의 존경할 만한 상상력과 기지는 아마 여기서부터 시작되었을 것만 같다. 펠과 무관한 살인이 있던 이전의 시간에 대한 기억에서와 같이 사고의 혀를 찌른다.

논리적 우연성이나 모호한 상황인식 등처럼 석연찮은 반전으로 찝찝한 기운을 주는 그런 이류의 반전이 아니다. 기막힐 정도로 정교한 논리와 서사에 내재한 완벽하다는 이상의 표현이 불가능한 극적 대반전에 이르면 그만 제프리 디버를 숭배하고픈 심정이 된다. 지금까지의 수많은 스릴러 작품들이 있지만 이 작품은 그야말로 서스펜스의 품질을 몇 단계 올려놓은 작품이라 칭송하는데 주저할 이유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상상력의 한계를 초월한 작품이다! 후속작인‘도로변 십자가(roadside crosses)'의 조속한 출간을 재촉하고 싶을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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