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가격 - 뇌를 충동질하는 최저가격의 불편한 진실
엘렌 러펠 셸 지음, 정준희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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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일전에 어떻게 합리적 소비를 할 수 있을까? 같은 제품을 좀 더 싸게 구입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에 대형할인점 및 홈쇼핑의 유통 실무가가 해주는 싸게 사는 법을 익혔던 나로서는 사실 이 저술의 지적에 얼굴이 화끈 거려지는 쑥스러움이 파고든다. 제한된 재정 상태에서 같은 값이면 싸게 구입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고 유통업의 본성을 파악하여 소비자로서 유리한 위치에 선다는 것은 일견 합리적인 판단이라 위안을 삼을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진정 소비자가 할인점, 아웃렛몰 등의 유통회사의 우위에서 소비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 저작은 바로 이와 같이“저가를 추구하는 세계가 어떤 식으로 소비자들의 욕망을 충족시키며 그들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서라 할 수 있다. 유통업태의 100여년에 걸친 발전사를 통한 판매전략의 부조리한 실태를 통찰하고,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경제질서 하에서의 약자인 개발도상국 등 제3세계 국가들의 착취를 통한 저가화가 가져온 폐해를 분석하여, ‘가격’의 정의와 ‘저가(低價)’가 가져온 궁극의 문제점을 파헤치고 있다. 과연 싸게, 더 싸게라는 구호는 정당한 것인가? 또한 소비자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데 기여하고 있기는 한 것인가? 국민경제, 세계경제의 질을 제고하긴 하는가?

우선 이 저작에 인용되거나 인터뷰어로 등장하는 분야와 학자, 전문가의 숫자에서 엄청난 노고의 산물임을 짐작할 수 있다. 행동경제학, 행동심리학, 정신의학은 물론 경제학(유통경제 포함), 사회학, 경영학, 산업공학(테일러시스템 등)에 이르는 광범위한 학계, 재계, 유통전문가들의 다채로운 연구(실험)결과를 기반으로 견고한 이론으로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어, 단순한 대형판매 및 유통업의 저가화를 통한 소비자의 기만전략을 비판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지속가능한 인류의 공생과 정의로운 미래 사회를 위한 경제정책의 제안으로까지 이해 될 수 있는 저술이라 하겠다.

대형 할인점의 가격은 정말 싼 것일까? 그리고 그 가격은 어떻게 결정되는 것일까? 하버드의 사회학자 ‘제러드 잘트먼’의 “이 세상에 가격보다 더 주관적인 것은 없습니다. ~ 어디에 가격의 의미가 있습니까?”라는 가격의 불안정성과 조작성에 대한 지적처럼 금전적 가치라는 것은 매우 추상적이고 가변성을 지닌 기호임을 납득케 되는데, ‘과도한 가치폄하 효과(hyperbolic time discounting)’를 이용한 시간제한 할인전략이나, 어떤 정황 속에서 특정 제안이 제시되는가에 따라 인지적 가치에 영향을 주는 프레이밍(framing)효과를 이용한 가격제시처럼 사람들의 행동 심리를 교묘하게 적용한 가격전략을 알고 나면 우리가 확신하는 합리적 소비라는 것이 얼마나 비이성적인 것인가를 이해하게 된다. 더구나 생산업체가 제시하는 소매가격은 실질가격일까? 역시 이는 가공의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준거가격으로서 의미를 부여하여 할인가격에 대한 구매의욕을 부채질하는데 이용되는 가격일 뿐이며, 할인가로 위장한 정상가격은 물론 부풀린 준거가격을 마치 대폭 할인하는 것처럼 제시하는 할인가격이 내재하고 있는 기만성일 뿐이라는 것이다.

일용품 구매에서는 가치보다는 가격을 중요하게 판단하고, 제품의 질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제 경비가 적게 들어 가격이 싸다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며, ‘가격 대비 가치’라는 그럴듯한 언어로 싸구려를 대체하고, 감정적 반응을 일으켜 인지적 평가를 방해하는 등의 인간심리를 활용한 고도의 판매가격 정책의 실상을 보면 결국 소비자에게 감정적으로 괜찮은 가격을 곧 공정(公正)가격으로 생각하는 우리들의 비이성적 뇌에 실망하게 된다. 할인가격이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았는가? 분명 정상가격보다 싼 가격으로 팔면 판매자가 손해를 보지 않겠는가? 결코 판매자가 손해를 보면서 장사를 할 일은 없다. 다시 말해 할인가격이 존재한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그것을 정상가격에 사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내재하고 있는 것이니, 할인가격이란 누군가에겐 바가지를 쒸웠다는 의미라고도 할 수 있다. 사실 할인점이 내세우는 싸다는 가격의 의미가 이러함은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지만, 저가가 지니는 의미가 이렇게 단순히 특정 소비자들을 기만하는 데에만 있는 것이 아니기에 문제가 된다.

가격 결정을 실질적 생산원가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대형소매업체(할인점,아웃렛몰,백화점 등등)가 제시하는 것이 곧 가격결정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고, 엄청난 구매력을 확보한 대형유통업체가 가격결정권을 가지고 있음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싼 가격에 숨어있는‘할인차액보전금’같은 대형할인점의‘강탈전략’처럼 납품업체에 손실을 전가하거나,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소매업체들을 파괴하면서 들어서는 대형할인점이 비정규직, 단순노동자자의 싼 노동비를 토대로 하고 있음도 이미 주지하고 있는 내용이다. 결국 싼 것을 요구하는 소비자와 이러한 소비자의 주머니를 털어내기 위해서 무차별적으로 가하는 저가 공세는 내구성은 점점 상실되고 조잡한 싸구려만을 양산하게 되는 악순환의 고리에 들어서게 한다.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손해를 보지만 유통업자만 이익을 보는 이상한 순환체제 말이다.

이러한 구조의 사회적 문제는 노동의 가치를 떨어트리고, 이로 인해 저임금 근로자들은 저소득 근로자가 되어 저렴한 상품을 찾는, 즉 한 노동자 집단이 다른 노동자 집단을 잡아먹는 동안 기업의 경영진은 뒷짐을 지고 그 살육의 현장을 지켜보는 양태가 고착화 된다는 점이다.“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최저가격보다 조금 더 낮은 가격을 의미”한다는‘중국가격’이 지니는 극악한 노동착취 기반의 가격이나, 2008년9월 UN의 보고서중 9억2,500만 명이라는 세계기아인구의 통계는 인류역사 이래 유례가 없을 정도의 저가 식량이 넘쳐남에도 세계화라는 약육강식의 경제실상이 식량부족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 사 먹을 수 있을 만큼 저렴한 식량이 부족하다는 역설적 모순을 낳기도 한다.

노동을 착취하거나 노동자를 억압하여 저임금으로 만든 제품을 우리는 비난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제품이 무조건 싸야한다고 한다. 가치는 실종되고 추상의 가격만이 춤을 춰대는 현실을 우린 모른 채한다. 이 바로‘인지 부조화’의 싸구려가 자신들의 목을 조이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동안 잊혔던 그레샴의 법칙,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가 여지없이 들어맞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저렴한 식량, 저렴한 연료, 저렴한 신용, 저렴한 노동으로 이루어진 저렴한 세계가 지속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역사적 경험이다. 한국인 대부분이 생계를 위해 일하는 노동자임에도 자신들은 노동자가 아니라 소비자이자 문화적 문제에 관심을 갖는 중산층이라고 인지부조화의 현상을 보이고 있다. 쓰레기를 수거하면서‘위생기사’라 부르고, 보험모집인은‘재무설계사’로, 할인점판매원은‘어소시에이트’로 부르면서 노동자임에도 노동자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을 지지하는 어리석음을 보인다. 경제가 바닥을 칠 때 할인점은 가장 많은 이익을 올린단다. 개인의 가처분 소득이 줄 때 할인점의 매출은 증가한단다. 즉 가난은 막대한 시장 잠재력 그 자체다. 가난한 사람들이 할인산업을 이롭게 하고 있다. 자신들을 가난하게 만드는 바로 그 산업, 그 부자들을 이롭게 하는 것이 가난한 자들, 저임금자들이라는 악질적 고리다.

싸구려와 명품만 있다. 중간 제품이 없다. 거부들은 수억 원, 수십억 원대의 명품을 구매하지만 대다수의 국민은 싸구려를 구매한다. 가치대비 가격이 좋은 상품이라는 웃기는 제품을 말이다. 내구성은 갈수록 떨어지고, 조롱하듯 춤추는 엉터리 가격으로 말이다. 노동자가 노동자를 잡아먹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라도, 저렴한 가격이란 그 환상을 지우고, 현재의 필요에서 미래의 필요를 추정하는 놀라울 정도로 어려운 임무를 강요하는 쇼핑, 궁극으로 착취의 또 다른 이름인 대규모 쇼핑행위는 지양되어야 할 시민들의 임무여야 하지 않을까. 중간의 제품, 중간의 임금, 장인(숙련자)의 부활, 품질과 환경의 복원, 인간존엄성의 회복까지를 지향하는 그런 각성이 요구된다. 지적이며, 흥미롭고, 소비자에게 제안되는 가격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속살을 여지없이 까발린 秀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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