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별
정미경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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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도처럼 튀어나오는 격한 증오”, “다이아몬드 같은 증오”에 휩싸이면 그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 새로운 갈망의 대상을 끊임없이 쫓아대는 사람들은 어떤 존재들일까? 이러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사막이란 대체 어떤 의미일까?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낯설다. 북아프리카 마그레브 지역의 사막풍경과 이슬람의 좁은 골목이 미로처럼 뒤엉킨 도시, 생의 열기로 가득하지만 죽은 자들의 광장이라 불리는‘자마 알프나’의 어수선한 노점시장이 보인다.

첫 문장부터 내 머리는 소설과 겉돌기 시작한다. 너무 민감해서, 그리고 지나칠 정도로 감상적이어서, 게다가 자의식이 유별나게 불거지는 주인공을 보면서 대체 감정의 선을 따라잡지 못하고, 아니 공감하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하여야 할까. 사막여행의 현지 가이드인‘승’이란 남성이 배출하는 메마르고 황폐함만이 느껴지는 감정에 대한 알 수 없는 불쾌감, 저항감 이었을까.

아랍인, 베르베르인이 얽혀 사는 사막지대의 한 뒷골목에 한국인 소녀‘보라’가 헤나로 타투를 그리며 관광객을 호객하고 있는 장면 또한 그리 용이한 모습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감성이 융화하고 교감하지 못한다. 내심 이렇듯 작품 초반에 소설을 읽어낼 자신이 없었다. 이들이 대체 왜 사막의 도시에 있는지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이 없었으니 말이다.
결국 전 재산과 아내까지 믿었던 친구 'K'에게 빼앗기고, 감당할 수 없는 채무의 그늘과 복수의 증오를 안고 허겁지겁 도망쳐 그네들을 쫓아 나선 곳이 북아프리카의 마그레브 지역, 황폐한 사막이라는 구절에 이르러서야 사하라 사막의 삭막하고 후텁지근한 모래바람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역시 인간의 욕망으로부터 파생하는 감정의 찌꺼기들, 그리고 그런 시간의 흐름이 바로 인생이고, 그러면서 마주치는 삶의 편린들이 방향을 바꾸게도 하고, 씻어내지 못할 것만 같은 앙금이 가라앉기도 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들.

“극한의 황량함에 조응하는 폐허를 가슴에 감추고 있는 사람만이 그 지독한 사막 자체를 견뎌낼 수 있다.”는‘승’의 생각은 그자신의 반영일 뿐이다. 소설에서 사막은 이처럼 메마르고 건조한 황폐함이기도 하지만, “사막이 제 안에 무엇을 품고 있는지 다 알 수 없어서 사랑”하는 인간도 등장한다. 모래에 갇혀 2000여년을 잠들어 온 고대 유물에 대한 욕망, 어떤 것에 사로잡히고 그것들을 소유하는 첫 순간의 느낌을 찾아 헤매는 사람. 운명처럼 아름다움에 대한 그 느낌의 촉발을 위해 사막에 머무는 사람이 있다. 이렇듯 황폐한 내면의 조응이든, 탐욕이든 사막은 사랑에 빠지게 하고 중독 시키는 기호로 통한다.

“누군가에게 제대로 버림받은 것들은 초라해지고 누추하며 하찮아진다. 운명이 누락시킨 자가 되어 버린다.” 이 얼마나 가슴 아픈 얘기인가! 거울을 보듯 서로에게 비친 제 모습을 바라보는 아비와 딸(승과 보라)의 상처가 사막의 풍경과 어우러져 버림받고 방황하는 이의 고통으로 짓무른 가슴을 드러내 보인다. 또한 최후의 선택, 새로운 갈망의 대상을 끝없이 쫓는 눈먼 매혹, 아름다움에의 맹목이 도달하는 궁극의 허무함에 이르기도 한다.

소설의 종반에 이르면 고가의 도기(陶器)를 둘러싼 쫓고 쫓기는 관계에서 욕망의 네트워크로 연결된 인간들의 적나라한 본성, 그리고 뒤늦은 삶의 각성을 보여준다. 지독한 현세성을 보여주는 바바의 아버지 무스타파, 아름다움이란 존재 자체라는 로랑, 여기에 승과 보라에서 삶의 미로를 읽는 일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우리 인간들의 초상을 보게 된다. 돌아가고 싶은데 장소가 아니고 시간이 된 사람들, 제 삶에서 도망치려 안달하는 우리네의 쓸쓸한 뒷모습을 보는 것 같다. 인생이란 결국 모두 제 마음이 만들어 낸 길을 가고 있을 뿐이었음을 깨닫는 것은 죽음을 마주하고서야 비로소 가능한 것일까?... 사실 이 소설은 느닷없는 질문처럼 무방비 상태에서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얼얼하다. 내 마음이 허공에 슬쩍 떠 있던 것도 아닌데, 소설이 나를 스르르 주저앉힌 걸 보면 무언가 알 수 없는 아름다움의 매혹이 떠다니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가본 적도 없는 사막의 허영, 그 황량한 풍경을 대고 카메라를 눌러대는 감정의 과잉들이 괜스레 싫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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