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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위원회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20
그렉 허위츠 지음, 김진석 옮김 / 비채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오늘의 사법체제가 정의를 실현하는 도구로서 어떤 흠결도 없는 것인가? 또는 법이 구현하지 못하는 정의를 실현키위해 보다 상위의 도덕적 신념을 우리는 인정해야하는가? 만일 그러한 신념의 행동을 방임할 경우 사회질서의 유지라는 공공의 안정성과 건강성에 어떤 위협이 되는 것은 아닌가? 사실 이 작품이 던지는 정의에 대한 파문은 실로 곤혹스러운 것이다. 정의는 공공선이라는 때론 모호하기 그지없는 집단적 질서에 우위를 인정하다가도 개인이나 가족의 연대에 대한 미덕과 충돌할 때 혼란에 빠지기도 한다.
최근‘마이클 샌델’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행복과 자유와 미덕의 이상(理想)을 통해 고민하는 바로 도덕적 딜레마에서 정의를 생각게 하는 바로 그 실제를 표현하고 있는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일곱 살 여아의 무참한 살인, 아이의 아빠인 연방법원 부집행관‘팀 랙클리’와 엄마인 군 보안관‘드레이’부부에게 자식의 죽음을 알리는 음울한 전언으로 이 작품은 시작된다.
내 아이를 잔혹하게 살해한 살인범에 대한 증오, 그리고 결코 치유될 수 없는 부모로서의 정신적 고통이 처음부터 독자의 가슴을 묵직하게 짓누른다. 완벽한 살인증거물들과 현장, 그리고 용의자의 자백으로 쉽사리 매듭 될 듯이 작품은 빠르게 전개되지만, 여기서 작가는 첫 번째로 법과 정의에 대한 시험으로 우리들의 사유를 주춤거리게 한다. 범인을 체포한 아내의 동료들인 군 보안관들이 내밀하게 직접의 복수를 가할 기회를‘팀 랙클리’에게 제공한 것이다.
법의 판단에 앞서, 경찰력의 비호(庇護)하에 내 아이의 참담한 죽음에 직접적 복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는데 어떤 결정을 하여야 하는가? 놈의 머리에 방아쇠를 당기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가슴이 찢어들듯 울부짖는 아내의 슬픔과 사무치게 그리운 딸아이의 모습, 그리고 갈기갈기 찢긴 아이의 시신이 교차되어 이성이 마비될 것 만 같은 자신의 증오에 위로가 될까? 공공의 이성, 즉 사법부의 정의로운 판결에 맡겨야 할 것인가? 살인범을 앞에 두고 차마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고 돌아오지만 결단에 대한 갈등이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그리고 두 번째 시험이 이어지는데 아이를 추행하고 토막 살인한 살인범이 법집행절차의 흠결로 인하여 무죄판결을 받는다. 귀머거리인 범인에게 미란다수칙을 지키지 않는 수색과 체포의 결과물은 법적 증거물로 채택될 수 없다는 것이다. 살인행위와 법집행절차의 충돌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살인용의자의 인권, 그리고 제도로서의 법적장치 수호와 개인의 행복과 자유의 충돌이기도 하다. 명백한 살인자이지만 단지 집행절차의 문제로 범인이 풀려나는 것이 과연‘정의’인가? 하는 도발적인 질문인 것이다. 내 아이를 죽인 살인자가 법의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고 자유로이 살아갈 수 있게 된다면 아이의 죽음에 대해 우리사회는 더 이상 무어라 할 수 있을까?
결국 사법제도는 무능력한 것이고, 정의를 수행하지 못한다는 것일까? 법집행절차를 비롯한 사법제도의 자기갈등 요소로 인해 세상에서 격리되고 처벌되어야 할 흉악범들이 자유롭게 활보하는 것은 인간의 도덕율에 상처임이 분명하다. 표제인『살인위원회; The Kill Clause』의 등장은 그래서 소설의 구조상 적절함을 넘어 주제를 선명하게 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극악한 살인의 증거와 정황이 명료함에도 법적용의 흠결이나 하자, 오심으로 인해 풀려난 살인자들을 정의의 이름으로 척결하기 위한 은밀한 조직이 법집행을 대신하는 것이다. 이는 정의에 대한 판단을 누가하는 것인가? 인간사회가 합의한 질서를 초월하여 정의를 주장할 수 있는 존재란 가능한 것인가? 하는 어려운 질문이 된다.
사회심리 및 범죄심리학계의 유명교수가 중심이 되어 가족의 일원이 살해되는 고통을 안은 전직 FBI, 형사로 구성된‘살인위원회’의 활동이 갈등 끝에 합류한 주인공‘팀 랙클리’의 민완한 행동으로 본격화된다. 희대의 살인마들이 철통같은 보안 속에서도 살해되고 사회는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행동에 정의라는 이름으로 찬사를 보내지만, 법질서의 훼손을 방치할 경우 사회치안의 부재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법이 방치한 흉악범들에 대한 처단의 치밀한 전개가 기막힌 액션과 사실적 묘사를 통해 소설의 재미를 극한으로 치닫게 한다. 아마 책 읽는 자들의 쾌락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작가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폭력성과 보복의 처참함으로 필름 느와르적 요소를 다분히 지니고 있으나, 이보다는 고귀한 주제의식과 완벽함에 가까운 플롯으로 인해 장르소설이 지니는 주변적 시선을 완전히 극복하고 있어 여느 정통소설 못지않은 작품성을 확보하고 있다 할 수 있다.
또한 밀리터리 액션을 중심으로 한 고도의 서스펜스와 스릴, 범인 소탕을 위해 벌이는 현장감이나 세밀한 디테일에서 상당히 뛰어난 서술을 하고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초법적인 팀의 행동을 다시금 제도 내에 복귀케 함으로써 경직되고 냉정한 법 체제에 인간의 숨결을 불어넣고자 하는 작가의 인본주의적 신념이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하다. 정의는 항상 갈등하지만 장기적으로 도덕적이다. 작가는 아마도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