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의 역사 - 비너스, 미와 사랑 그리고 욕망으로 세상을 지배하다
베터니 휴즈 지음, 성소희 옮김 / 미래의창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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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nus & Aphrodite : History of a Goddess

 

"세상이 시작하기도 전 어둠이 끝없이 펼쳐진 밤으로부터 태어났다." -13

 

'아프로디테-비너스'로 상징되는 여신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불멸하는 문화적 요소임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고대 신화에서 시작된 태고의 존재가 21세기에도 여전히 인간의 삶 속에 살아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책은 6천년 전 동기시대(석기에서 청동기시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로부터 그리스와 로마, 중세 유럽, 근대서구사회에 이르는 여신에 부여된 이미지와 그 온갖 욕망 투사의 역사를 종단한다.

 

어쩌면 여신의 탄생은 위 인용문장처럼 인류의 출현과 그 시기가 같을 지도 모른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에 의해 잘려져 바다에 던져진 우라니아의 성기에서 출현하였다는 신화부터 수많은 버전으로 지중해 전역으로 전해진 이 여신의 탄생 신화는 바빌로니아 전쟁의 여신으로서 모두를 정복한 절대적 힘을 지닌 '이난다', 아카드 지역의 '이슈타르(Ishtar)', 페니키아에서는 '아스타르테(Astarte)'로 불리며 성과 흉포한 전쟁의 신으로서 숭배되었다고 한다. B.C.4,000~B.C3,000년에 이르는 당대의 유골에서 발견되는 폭력의 흔적들은 격렬한 전쟁의 시기였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격정과 욕망의 본성을 설명하기 위한 성과 폭력의 상징으로서 출현하였다는 것이다.

 


출처: 18쪽 전체 촬영

 

결국 전쟁 중심의 남성공동체가 주역이 되는 사회로 이전함으로써 여성과 남성이 혼재하는 신의 모습에서 남성 이미지는 자취를 감추고 여성의 이미지만 남게 되었다고 추정한다. 오늘날 키프러스로 불리는 사이프러스 섬은 다산과 강렬한 성적 특징을 지녔던 지역의 자연신과 동쪽에서 전해져 온 전쟁의 여신과 만남으로서 초기 아프로디테가 형태를 지니게 된다. 청동기 시대의 열기를 내뿜는 연금술은 아프로디테 숭배의 중심이 되는 요소로서 작용하여 열렬하고 과격하며 잔혹하지만 요동치는 세상의 가장 신성한 "사회적 야망의 총체"였다는 것이다. 당대 인간들의 마음 속 열정의 원리이자 욕망 충족의 후원적 존재로서 인간 욕망이 그대로 투사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리스와 동방의 여신, 자연신이 믹스되어 고대 그리스의 주요 항구였던 사이프러스에 이름 그대로 아프로디테가 탄생한다. '성애와 전쟁 + 다산과 인간관계'를 주관하는 신이 탄생한 것이다. 현대인들이 지니고 있는 나체의 균형잡힌 몸으로 관능미를 뽐내는 그런 신이 아니다. 아프로디테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절대적 믿음으로서 믿거나 믿지 않거나의 선택 사항으로서가 아닌 현실적 존재로서 당대 인간들의 삶 그 자체였다는 것이다.

 

" 이 여신은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아주 쉽게 변하는 문화적 요소다," - 209

 

절대적 믿음이라는 것이 신성함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아프로디테가 이탈리아로 넘어가자 아프로디테는 비너스가 되고 성적 메타포로 가득한 매춘의 여신이 된다. 폼페이 도처에 비너스의 프레스코화가 넘쳐난다. '아프로디테 판데모스', 모두의 아프로디테가 되어 매춘과 성교의 수호자로 불리기 시작한다. 입법가 솔론이 지은 아프로디테 판데모스 신전은 시민들의 성적 충동을 관할하는 시설이었다는 것이다. 옷을 차려입던 아프로디테-비너스는 기원전 4세기부터 옷을 벗기 시작했다. 여신은 무언의 절대적 힘의 상징이 아니라 매력적 신체로, 극단적 열망과 욕망의 변명 구실이 되었다. 로마는 절대적 힘의 신성을 탐욕과 야망의 원동력으로 변질시켰다. 결국 아프로디테-비너스란 시대의 "인간행동과 윤리적, 문화적 딜레마를 반영하는 거울(110)"이었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윤리가 지배하던 중세란 여신이 지상에 머무는 거처를 밀어내고 그 위에 거대한 예배당을 올려 여신의 기억을 억누르는데 힘을 기울이던 시기이다. 아프로디테의 조각상과 회화 작품들이 훼손되던 시기이다. 이마에는 십자가를 새겨넣고, 조각에서 젖꼭지는 도려내지고 깨어지고 불태워졌다. 아프로디시아스의 화려한 아프로디테 신전은 장엄한 미카엘 성당이 되었다. 불결한 악마의 성소가 신성하다는 유일신의 교회가 되었다. 과연 아프로디테-비너스는 이러한 천박한 교조적 신앙에 의해 사라졌을까?

 

수천 년간 인간에게 자극과 위안을 주던 여성을 인간은 언제나 욕망하고 있음을, 인간의 본능적 요소를 종교가 지워버릴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동정녀 마리아의 외피를 두르고 아프로디테는 재탄생한다. 마리아에게는 항시 아프로디테의 허리띠, (비둘기)가 등장하여 아프로디테와 마리아가 서로 같다는 사실을 도처에 맹백히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한다. 르네상스에 이르러 비너스는 "고대의 관념을 자극하고 전파하고 영원성을 부여하는 형이상학적 아름다움(169)"으로 재탄생한다. 15세기 화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처럼 후대에 영감을 준 작품은 없으리라. 조개 껍데기와 도금양 잔가지로 엮은 허리띠, 붉은 망토와 장미 등 작품 속 소재는 물론 그 아름다움과 사랑의 메타포는 오늘에도 여전히 모방과 패러디와 마케팅에 이용되고 있다.

 

이제 흥행보증수표가 된 아프로디테-비너스는 풍만한 몸매를 드러내고 완벽한 여성이라는 불가능한 이상성의 모델이 되었다. 성적 자극의 구실, 완벽한 신체, 몽상적 성애의 굴절된 돈으로 살 수 있는 존재로 전락하게 되었다. 18~19세기 화가들은 매춘부와 정부들을 대상으로 에로틱한 비너스를 그려대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19세기 근대 제국주의의 야만성은 아프리카 여성을 충격적이고 부도덕하게 묘사하는데 비너스를 차용하기 시작했다. 인종과 성차별의 거친 천박성과 탐욕스런 쾌락만이 남았다.

 

 

 

출처: 195쪽 부분 촬영

 

압제와 억압의 상징이 된 비너스. 현대 문명은 여신을 거세하는 데 열중하며, 파괴의 열망만 남았다. 그저 "인류가 투사할 수 있는 매력적 몸매의 소유자(202)"라는 "자기 충족과 자기 도취를 돕는 도구(207)"로 전락했다. 그럼에도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가진 힘으로서 아프로디테는 오늘에도 여전히 불멸하고 있다. '레이디가가'"조개껍데기 비키니"라고 노래하는 2013년 곡 비키니 에서, 바다와 풍요의 황금빛 여신으로 변신한 '비욘세'의 모습에 살아있는 여신으로 현현한다. 군사력과 전쟁의 광포한 절대자에서부터 오늘의 자기 도취의 도구적 대상에 이르기까지 고고학과 신화, 문학과 예술 작품을 넘나들며 여신의 역사를 되집으며 시대에 따른 인간의 욕망을 파헤치는 이 문화사적 기록은 우리와 우리 사회가 지금 무엇에 현혹되어 있는지를 살피는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로서 여신을 보여준다. 오늘 우리들이 잃어버린 가치는 무엇인가? 우리의 열정과 충동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을 떠 올리게 하는 역작(力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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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의 사물들 - 개정판
김선우 지음 / 단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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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글과 첫 인연은 2008년 장편소설 나는 춤이다에서 시작된다. 아마 작은 나비 스터커가 붙어있는 작가의 사인에서 알지 못하는 누군가인 독자에게조차 보내려했던 성심을 느꼈던 것 같다. (물론 이 나비는 소설 속 주인공인 무용가 최승희의 비유임을 안다.) 이 기억은 얼마 전 출간된 시집 내 따스한 유령들에서 시인의 따뜻한 시선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음을, 그 시선의 파동입자가 내 마음 속에 들어앉음으로서 되살아난 것이다. 그래서 찾아 든 책이 세 번째 개정판으로 출간된 이 에세이집 김선우의 사물들이다.

 

 

 【『나는 춤이다실천문학사, 2008.7.24. 초판본 저자 사인

 


총 스무 꼭지의 에세이에서 열두 번째 걸레라는 제목을 한 에세이의 시작부분에 '사물을 소재로 글을 쓰는 일'에 대한 문장이 있다. 여기서 시인은 "사물의 속내는 그것에 말거는 내 무의식의 속내(120)"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시인이 "건넬 말을 맞아줄만한 사물을 만나야" 비로소 이루어진 언어들이다. '흩날리는 먼지 한 톨, 그저 내리는 빗방울'의 속내를 살필 수 있는 사랑, 어쩌면 "끝내 헤어질 수 없어 끊임없이 천구(天球)를 유영해가는 바람의 윤회(43)"을 헤아리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를 알아챈 티끌들의 우연한 만남, 시인의 글을 빌면 '근사한 사건'이다. 곧 이 책은 근사한 만남이 탄생시킨 "아름다운 문양(,천문의 즐거움에서)"들이라 할 수 있다.

 

촛불, 마음이 가난한 자의 노래라는 글이 있다. 나는 이 글에서 촛불을 응시하는 고양이 봄비와 함께 책상에서 한밤을 세우는 시인이 있는 하나의 회화를 본다. 촛불을 응시하는 봄비의 눈 속에 타오르는 촛불을 응시하는 그런 시인의 눈을 나는 응시한다. 시인의 시집 녹턴에 수록된 시 花飛,그날이 오면 "당신 눈동자 속 나의 눈부처를"하는 구절이 떠오른다. 무상함이 가르쳐주는 사랑, 그새 망각했던 생의 의지를 되살려내려 시도해본다. 시인은 촛불의 무욕과 무소유의 혼()을 말한다. 자신을 태워 어둠을 껴안는 스스로 영롱해지는 빛, 그 정결한 혼에 대해서.

 

젊었던 그 어느 날, 소리 없는 울음을 터뜨리며 내 입을 틀어막던 모습을 생각나게 하는 글이 있다. 못이 숫하게 박혀있는 옥탑방에 살던 시인이 하나씩 그 용도를 상상해 나가며 삶의 상처들을 "황홀한 통증의 뿌리(65)", 그 깊어진 상처로부터 피어나는 꽃을 볼 수 있게 한다. 부엌 구석 수도꼭지 위의 못의 용도를 생각하다 조그마한 사각 거울을 놓는다. 그리곤 쭈그려 앉아 양치를 하며 거울을 바라보는 젊은 날의 시인이 치솔을 입에 문 채 울고 웃는 장면을 떠올려본다. 우리네는 이렇듯 오랜동안 여기저기 박힌 상처들로 이루어져 있으리라.

 

"소라의 존재 방식은 심플하다. 그저 자기 몸 하나로 달랑 자기 거처를 삼은 이의 눈부신 가난을 들여다본다." -92, 소라껍데기, 몽유의 문에서

 

소라 껍데기를 귀에 댄 시인의 무구한 얼굴을 본다. "무소유의 개념조차 무색해지게 하는" 몸이면서 집이었던 소라 껍데기에서 고동치는 따스한 맥박을 집어내는 시인의 감각에 동화된다.

 

이 책의 글들을 사랑하게 된다. 고정관념의 위선을 드러내고 저속하고 음험한 것을 정직하게 구도하는 사물로 회복시키는 세심한 감각을 사랑한다. 더러움의 형식으로 존재하지만 정결함을 품은 '걸레' "양지를 품은 음지의 사물(121)"이라 말할 줄 아는 시인의 명민함을 사랑한다. "엄마 꽃이 비쳤어."라며 말 할 수 있도록 시인에게 연대와 보호와 축복의 느낌을 준 시인의 엄마와 가족들의 긍정과 사랑의 힘을 공유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그리고 시인 백석의 '눈알만한 잔()'의 탐미적 감각을 "치열하고 눈물겨운 생의 뒤안길이면서 최전방(150)"이라 말 하는 시인의 미학을 사랑한다.

 




그런데 시인에게 시비를 걸고 싶은 하나의 글이 있다. 부채, 집 속에 든 날개에서 "다채로우며 풍부한 감성의 맛"이라며 부채의 바람을 예찬한다. 도시 속 서늘한 냉방의 욕구를 "악순환의 폐쇄성", "이기적 속물성"이라고 힐난한다. "더위에 대한 냉방의 요구는 견딜만한 수준의 것이 아닌가."라고. 도심의 뜨거운 공기는 누군가에게는 잠깐의 불편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생사를 가르는 열기로 작용한다.

 

닭장같은 좁은 공간에 갇혀 꼼짝없이 24시간을 머물러야하는 경비노동자에게 에어컨은 생사의 장비이다. 텍배기사와 건설노동자의 체험온도는 관측기온보다 평균 20도가 높다고 한다. 열스트레스가 정치적 과제가 되고 있는 현실이다. 가슴 아픈 일이다. 부채를 부치며 한가로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은 세상이다. 이기적 속물성이라고 편협하게 정의할 수만은 없는 세계에 우리는 살고 있지 않은가? 숨 쉬는 곳이 다름을 느끼게 하는 것은 곧 차별의 언어가 된다. 시인의 숨이 여기에도 다가가기를.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 설레기도 하며, 사람으로서의 동질감으로 감응의 깊은 심연으로 매 글마다 끌려 내려가곤 했다. 그래 당연시하는 사회, 평균화되는 사회는 폭력적이다. 그 폭력성이 넘어설 수 없는 저 너머에 가닿는 징검다리를 놓는 시인의 마음, 그 가득한 사랑을 느낀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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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행복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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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첫 문장부터 거부할 수 없는 지옥의 문틈을 들여다보려는 욕망을 부채질 한다. 아이의 말갛고 충실한 목소리에 실려 시작되는 묘사는 혐오스러워 어두운 저 심연에 수장되어있을 상상을 자극하며 도리질 치게 만든다.

 

엄마는 오리 먹이를 잘 만든다. (...) 필요한 도구는 다음과 같다. 첫째, 중식도, 뼈를 토막내는 칼이다. 손도끼처럼 생겼고 손도끼만큼 무겁다. (...) 두 번째로 '뼈 칼'이 있어야 한다. 뼈에 붙은 살을 바르는 길고 날카로운 칼이다. (...) 손질이 끝난 고기는 찜기 두 개에 나누어서 삶는다. (...) 다 삶은 살코기는 민서기에 간다. (...) 뼈는 믹서로 간다.”

- 9~10

 

상대의 의향에 배반하지 않는 대답을 위해 자신의 모든 신체 반응까지 살피며 신중하고 순종적 답변을 해내려는 어린아이의 고통스러운 노력, 이러한 아이의 태도로부터 한 치의 결함이라도 있는지 광휘의 눈을 번떡이는 여자의 표변하는 감정을 따라가느라 소설 초입부터 쭈볏 선 머리털과 두방망이질 치는 심장을 진정시키느라 녹초가 될 정도이다.

 

세상의 어떠한 것도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는 것을 참지 못하는 여자, "결함도 결핍도 없는 완전성의 우주(115)", 완전치 못하게 하는 불행의 가능성을 제거하는 것이 행복이라 믿는 여자가 있다.  아니. 자신의 행복을 위협하는 앎에 대해 무시와 부인, 부정의 방법을 찾는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나르시시즘은 이 자기기만과 무시, 눈감기라는 존재 인식의 부인과 결여의 다른 표현이지 않을까? 무지에 터 잡은 자기애세계는 자신을 위해서만 존재하여야 한다는 믿음, 그래서 모든 인간은 여자의 행복을 위해 소용되는 도구이며 수단에 불과하다.


여자, 신유나의 전 남편인 지유의 아빠가 사라졌다. 소설의 발단이다. 사라진 남자 준영의 여동생 민영, 재혼한 남편 은호, 관계가 단절되다시피 한 언니 신재인을 통해 한 여자의 모습이 조명된다.  집안의 경제적 상황으로 두 딸 중 어린 신유나는 본인의 의사와는 달리 은퇴한 조류 학자인 할아버지, 교사였던 할머니가 사는 외딴 시골마을로 보내진다. 자신이 부모와 떨어져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한 반감, 할머니의 강압적 훈육이 남긴 성장기의 자기 보호에 대한 집착은 불행의 원인으로 인식된 언니 재인에 대한 증오와 배제의 감정으로 키워지고, 부모 사랑의 유일한 절대 소유자가 되기를 갈구한다. 언니의 오랜 남자 친구였던 준영을 가로 채 결혼함으로써 자매의 직접적 소통의 관계는 끊어지고 만다.


 



여자에게 결혼이란 어떤 완전성, "'행복'이라는 신화를 이루는 불가침의 왕국(235)" 건설이다. 자기 행복을 방해하는 모든 것은 없애버려야 할 대상이다. 재혼한 남편의 어린 아들 역시 여자에게는 제거해야 할 불행의 한 요인에 불과하다. 아버지도, 연인도, 남편도, 자식도, 그 어느 것도 여자를 위해 존재하기를 멈추면 그녀에게 그것은 존재 의미를 지니지 못하게 된다. 여자에게 만물은 오직 자신의 필요를 위한 일시적 수단이지 그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다. 연락도 하고 지내지 않던 언니에게 불쑥 아이를 맡기고 사라졌다가는 뒷일까지 내맡겨 버리고, 어느 순간에 나타나 적반하장의 난장을 치고 사라지는, "이 아이는 인간의 외피를 가진 후피 동물인가 싶었다.(177)"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 하는 인간이다.

 

"유나에게 한 번 '제 것'은 영원한 '제 것'이었다. '제 것'이 남의 손에 넘어가는 일은 용납하지 않는다. 차라리 없애버릴지언정. " -430


소설의 초입에서부터 옥죄던 긴장감은 마지막 장에 이르기까지 죽음의 신음 소리같은 되강 오리의 짖음과 안개 낀 반달 늪의 음침한 전경이 어우러져 마치 "지옥의 세계로 통하는 들창을 열어버린 기분(285)"에 휘말려 옴짝달싹 못하게 한다. 준영의 소재를 다그치던 재인이 유나로부터 듣게되는 말은 이미 소설의 무수한 암시들에 의해 알고 있음에도 "눈을 가리고 있던 무의식의 막이 한 손에 찢겨나갔다. '설마'라는 저항의 벽이 한 방에 무너졌다.(366)"는 급류처럼 쏟아져 내리는 갇혀있던 상상력 바로 그것의 끔찍함이다. 아마 작가가 펼치는 이 압도적 서사로부터 풀려나는 길은 에필로그 519쪽 마지막 문장을 읽는 순간이 되어야 가능해진다.

 

작가의 말처럼 자존감만 높은 텅 빈 자아만을 가진 나르시시스트들이 넘쳐나는 세계이다.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무시, 그리고 존재 의미에 대한 인식의 결여인 무지. 오늘 우리네 사회를 무지와 무시의 시대라 부르지 않는가?  무지에 무지할 때 악은 끝없이 이어지게 되는 것 같다이들 주변의 사람들과 세계가 얼마나 황폐화되는지, 소설 속 여자와 우리는 과연 얼마나 다르다고 말 할 수 있을까?...

 

"언제부턴가 사회와 시대로부터 읽히는 수상쩍은 징후가 있었다. 자기애와 자존감, 행복에 대한 강박증이 바로 그것이다. 미덕이지만 온 세상이 '너는 특별한 존재'라 외치고 있다는 점에서 이상하기 그지없었다."

- ‘작가의 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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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따스한 유령들 창비시선 461
김선우 지음 / 창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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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깊은 시인이구나. 한 점 티끌에서 바스락 소리내는 새싹과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나뭇잎, 그리고 금잔화 심던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시인의 따뜻한 시선은 미치지 않는 데가 없다. 흩날리는 먼지 한 톨, 그저 내리는 빗방울, 그리고 보이지 않지만 느껴지는, 아니 느낄 수 있는 감각을 지닌 기운에서조차 따스함, 속내를 살필 수 있는 사랑을 품고 있다.

 

우주먼지로 만들어진 내가

우주먼지로 만들어진 당신을 향해

사랑한다,

말할 수 있어

말할 수 없이 찬란한 날

- 작은 신이 되는 날에서

 

그런데 우주먼지인 ''들을 인정치 못하는 무수한 아무개들은 마치 특별한 존재나 되는양 거드름을 피운다. 자신이 무엇인지를 알아채지 못한 존재는 끝없이 아무를 쫓는다. 영속해야만 존재할 수 있는 자본주의의 환영을 실재라 믿는 우매함이란..., 시인은 그래서 반성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현실의 식탁과 보이는 식탁과 보여지고 싶은 식탁 사이

품위 있게 드러내기의 기술 등급에 관하여

관음과 노출 사이 수많은 가면을 가진 신체에 관하여

곁에 있는 것 같지만 곁을 내줄 수 없는 곁에 관하여

비교가 천형인 네트에서 우울에 빠지지 않기 위해 지불해야하는 노력에 관하여

- 일반화된 순응의 체제3 ; 아무렇지 않은 아무의 반성들에서

 

사랑을 아는 시인은 그래서 이렇게 노래한다. 티끌인걸 알게되면 유랑의 리듬이 생긴다고, 그리고 서로를 알아챈 티끌들은 그 알아챔의 근사한 사건을 축복한다. 이 티끌들에게 일어나는 우연한 만남은 "가끔 유난히 아름다운 탄생의 문양(천문의 즐거움에서)"을 만들어낸다. 마르크스의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들을 생각나게 한다. 수직으로 낙하하던 원자의 무한히 작은 편의에 의한 마주침의 유발, 즉 인간의 본질은 '사회적 관계의 앙상블'이란 구절이.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역사는 시야에서 증발되어비리고 말것이라는 지적이리라. 대체 사랑할 줄 모르는 존재가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이겠는가!

 

그렇기에 시인은 '오늘은 없는 날'을 꿈꾸는지 모르겠다. "말많고 현란한 매체들, 돈이든 권력이든 세력 불리는 일에 중독된 사람들, (...) 조용히, 더 조용히 오늘은 없는 날(오늘은 없는 날에서)"이라고 부른다.


 



150년전 1871년은 프랑스 내전이 있었던 해이다. 60일간의 시민들의 완전한 자치가 이루어졌던 짧은 파리코뮌의 시대가 있었다. "일체의 억압과 지배가 종결된 자유로운 공동체 (철학 VS 실천, 강신주 , 31, 오월의 봄 )"였다. 시인은 시(), 지구 평의회가 만들어진다면에서 "만약 그럴 수 있다면"이라며 포문을 열고, "그럴 수 있을까, 인간이?"라고 회의적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자본교에 장악당한지 불과 이백년 만에 멸망의 시간을 카운트 중"인 것을 알거나 모르거나. 사랑 깊은 사람, 시인의 마음을 가진 이들의 실천에 기댈 수 밖에.

 

아주 신랄한 시도 있다. 민주주 의 꽃이 선거? 정말 그런가? 투표 후 인증 숏을 찍는 것이 교양이라면 시인은 사절한다. 이것이 민주시민의 교양이라면 거부한다. 차악과 최악의 사이를 되풀이하는 결국 최악의 놀이, 정당 만들어 국고 보조금 챙겨가는 꽃패놀이, 시인은 "들판의 정치가 시작될 때" 꽃에게 투표할 거라고. 그럼에도 시인은 서로 얼싸안자고 제안한다. 우리가 될 수 있다고.

 

내가 너와 만난 것으로 우리가 되지 않는다

내가 남긴 얼룩이 너와

네가 남긴 얼룩이 나와

다시 만나 서로의 얼룩을 애틋해할 때

너와 나는 비로소 우리가 되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사랑은, 꽃피는 얼룩이라고에서

 

나의 로도스는 여기도 거기도 아니고 '저기'있다고 말한다. 삶이 우리를 춤추게 하는 곳, 그런 곳을 향한 실천, 사랑의 울림이 시집을 가득 채우고 있다. 시인의 맹렬한 사랑이 세상을 뒤덮는 그런 날이 언젠가 오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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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쓴 것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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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소설들은 여성 서사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평론가 김미현의 말처럼  진행중인  "이 세계의 다양한 여성의 삶을 담아내기 위한 '천일 야화'엮기"의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이 변론적 해설이 조남주의 소설을 긍정하게 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그럼에도 비판적 시선을 배제할 수도 없습니다.  비록 '다양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일지언정 내겐  여성의 삶이라는 동어 반복적인 피로감을 피하기 어려웠으니까요.  그런데 이 작품집의 두 번째 수록작인 작가의 경험적 소재를 차용한 듯한 1인칭 소설인 오기 읽다가 문득 2021년 여름호 창작과 비평통권 192호에 실린 팬데믹 시대의 목소리를 함께 듣는 일이라는 김태선 문학평론가의 글 중 한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타자의 목소리, 특히 고통을 듣는 일은 타자의 삶에 참여하며 나를 개방하는 가운데 서로가 의존하는 연결된 존재라는 걸 느끼고 배우는 과정이다어떤 감정이입은 배워야만 하고그 다음에 상상해야 한다."     

창작과 비평통권 192팬데믹 시대의 목소리를 함께 듣는 일51,김태선

 

 

그것은 내 마음을 열어 놓지 않고서는 타인의 고통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는 글이었죠. 열려야 그 목소리가 발하는 문제가 나의 것이 될 여지가 생기는 것이라는 의미였습니다내가 마음을 닫아놓았으니 감정이입이 될 여지가 없었던 것이고, 더구나  '어떤 감정이입'은 배워야만 한다는 지적에  한참을 내 속을 들여다봐야 했습니다.

 

읽고 지나쳤던 작품들을 다시 처음부터 읽어야 했습니다. 그렇다고 단박에 어떤 감응으로 소설 속 그녀들의 목소리가 내면에 속속들이 울려 퍼졌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적어도 문제로서 인식하려는, 문제로 수용하려는 준비된 마음은 갖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그리곤 이 작품집의 구성이 눈이 들어왔습니다.  

 

첫사랑 2020의 초등학생 소녀에서 가출의 미혼 여자여자아이는 자라서와 같은 학부형이 된 여자오로라의 밤의 주인공인 50대 중년 여자,  매화나무 아래의 노년의 여자에 이르기까지 연령과 세대에 따른 그녀들이 마주한 여성으로서의 삶의 문제들이 이야기되고 있다는 발견이지요. 그래서 각 작품마다 그 고유의 문제의식이 다른 감응을 불러일으킵니다. 즉 각각에 대응하는 책임의 문제를 생각케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그 분량적 속성으로 인해 단편 소설이 지니기에 수월치 않은 서사적 재미가 있습니다.

 

책의 마지막 수록 단편인  첫사랑 2020 초등학교 5학년이 되는 서연의 첫 사랑이 코로나 팬데믹이  어른들의 세계인 경제적 타격으로 다치게 되는 그 연결성이 그려지고 있는데요코로나-19가 초등생의 사랑에 미치는 영향이란 발칙한 소재로 사회의 많은 이들이 지금 겪는 고통의 현실을 경쾌한 필치로 풀어냅니다. 일본관광 여행업을 아빠 사업의 어려움으로 서연은 사귀기로 약속한 승민과 카톡도, 학원도 같이 하지 못하게 됩니다. 두 아이의 사랑 전선에 먹구름이 끼는 것이죠"코로나 때문에 몇 번 만나지도 못했는데, (...) 얘가 헤어지재요!" 소년은 소녀의 마음을 읽지 못해요. 타자의 문제 자체를 모르는 것이죠. 아니 타자의 삶에 참여하는 방법을 아직은 모를 때여서가 아니었을까하고 생각해 봅니다.

 

소설집을 여는 첫 번째 단편은 치매요양병원에 있는 큰언니를 보러 다니는, 다 늙어 '말녀'라는 이름을 '동주'로 개명한 여인의 이야기를 담은  매화나무 아래입니다금주, 은주, 그리고 말녀로 이어지는, 작명에 있어서도 여성에 대한 전통적인 남녀차별의 인식이 배어있습니다. 그런 그녀가 이런 푸념을 합니다.  "아버지의 그늘도, 남편의 굴레도 참 지긋지긋해놓고 그래서 도망친 게 아들의 어깨였다."고 말이죠이러한 가부장적 질서의 억압적 삶에 대한 반성적 사유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환경에 익숙한 삶을 살았던 자신의 한계 또한 직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이 더욱 풍성한 의미로 다가오게  하는 것은 병원 휴게실 창 너머 매화나무 가지의 자줏빛 겨울눈에서 시작되는 무한한 순환의 깨달음이 주는 숙연함 같은 것이었습니다돌봄의 문제, 가부장적 굴레, 생명에 대한 견고한 믿음 등 정말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어요.

 

아마 내 삶의 세계와 가장 친근했던 작품은 오로라의 밤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아내와 소설 속 쉰일곱 살 주인공의 연령적 공감 때문이었을 것 같은데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더 이상 타인과 생활습관, 태도, 취향, 성벽같은 것을 맞추고 이해하고 양보할 여력이 없는 지금 내게 남은 가족이 어머니라서 다행이다."라고 말이죠.  시아버지도 남편도 모두 죽고 시어머니와 며느리인 ''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는 직장 여성인 딸의 아이를 봐줄 것을 거절합니다그리곤 시어머니와 둘이 캐나다 옐로나이프로 오로라를 보기 위해 여행을 떠나죠.

 

이 소설은 세 세대에 걸친 여성의 삶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여성에 부과되고 강요된 질서가 각기 다른 세대의 사람들임에도 여자여서 지녀야했던 속박, 그 굴레에 대한 공감이 일치하고 있어요.  ''가 시어머니와 함께 이국에서 밤하늘의 영롱한 오로라의 빛에 감탄하며 기억을 나눌 수 있는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하나 아쉬운 점이 있어요. 딸의 아이를 돌보는 것이 딸 부부의 문제라는 극히 개인적 책임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 같은 인상 때문입니다. 물론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의 희생을 요구하라는 퇴행적 요구가 아니라  사회적 장치와 연결망을 필요로 하는 공동의 작업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졌으면 하는 것이죠.

 

단편 오기에 대한 감상으로 마쳐야겠습니다아마 짐작컨데  여성주의의 문제작인 82년생 김지영이후 그녀 이름은의 발표에 이르러 작가의 소설에 대한 무성한 비판적 시각들이 있었던 것에 대한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된 작품이란 인상을 받았습니다소설가인 주인공 초아는  "소설은 너무 많은 말들에 휩싸였다."고 기억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소설가 작품으로서 표현하려 했다는 점에 공감할 수 있습니다

 

작중 소설가 초아의 작품에 대한 악플 사건과 관련하여 고교시절 선생님이었던 지방대 문학교수의 요청으로 진행했던 초빙강의 후 허물없이 들려주었던 선생님의 성장기 가부장의 폭력등에 얽힌 얘기를 듣게 됩니다. 그리고 이 얘기는 초아의 가족사와도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문제가 된 것은 이 얘기가 발단이 되어 써진 소설이 발표된 것이고, 선생님은 이것에 대해 "어떻게 남의 얘기를 고스란히 훔쳐다가 쓸 수가 있어?"라고 초아를 비난합니다. 초아는 흔한 일이라고 답변하죠이에  선생님은  "세상 여자들의 삶이 모두 다르다는 것, 제각각의 고통이 버티고 있다는 걸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라며 초아의 무지를 힐난하죠여기에는 작가 조남주의 목소리가 끼어들어 있다는 인상입니다.

 

허구인 소설이 현실의 엄혹함 앞에서 무력해진 경험 때문이었을 것 같은데요, 그러나  왠지 여성의 삶의 문제에 대한 다양성이라는 이 문제의 환기에도 불구하고 1인칭 세계의 주관성 탓에 윤리적 정당성에 대한 믿음이 흔들린다는 것이죠. 막연하지만 독자인 저는 어떤 새로운 자기, 새로운 삶의 기대를 보여주는 초아를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이번 작품집은 소설가 조남주의 작품에 대해 낯설고 새롭게 읽기를 시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실 여성의 삶에 대한 문제들에 대해 제 마음의 문이 제대로 열리기 시작했다고 해야 할까요? 

 

어머니와 딸의 관계에서 덮고 지나가기 쉬운 돌봄과 희생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직시에서부터 여성들 스스로 가부장적 주체가 되는 마음에 숨은 기만과 허위의 응시와  자신의 삶의 조건에 구속되지 않고 그 너머의 삶을 꿈꾸는 주체의 형상을 제시하는 것과 같은 진중한 문제제기와 해법의 가능적 사유들이 가득한 작품집이라 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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