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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마르 문화 - 내부자가 된 외부자 ㅣ 교유서가 어제의책
피터 게이 지음, 조한욱 옮김 / 교유서가 / 2022년 10월
평점 :
붉은 뺨을 하고 활기차게 걷는 미소년의 무한한 미적 활력과 번영처럼 보이던 한 시대의 문학, 철학, 정치, 미술, 건축 등을 아우르며, 그 표면적 화려함 이면의 비이성적 퇴행을 읽는 거대한 문화사적 비평이다. 이 위대한 문화 해독을 읽으며 어떻게 대중과 지성의 무리가 자신들 삶의 무대를 폭력과 살해가 일반화되는 전체주의 사회로 돌진케 하는지 그 상호성과 혼돈을 목격하게 된다.
책의 진술들은 그 풍성함과 우아함, 그리고 냉철함과 명료함의 지성으로 가득하다. 토마스 만, 그로피우스, 브레히트 등 강렬한 창의성을 번뜩이던 수많은 천재 예술인들이 명멸하던 시대,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1918년 제국주의를 마감하는 혁명으로 시작된 새로운 정체를 꿈꾼 바이마르 공화국의 가장 처절한 정치적 혼란, 민주주의 실험장에서 빚어졌다는 점이다. 폭넓게 대중의 마음에 침윤된 반이성과 맹목적 숭배의 종교적이라 할 독일인들의 광신적 몰입은 오늘의 우리에게 예리한 칼날처럼 다가온다.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1918년 11월 9일, 빌헬름 2세의 독일 제국의 1차 대전 패배에 따른 피로감과 적대감 속에서 새로운 독일을 향한 출발의 희망으로 시작된 바이마르 공화국의 15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분출했던 무수한 이상(理想)들의 외침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 희망, 독일 최초의 의회민주주의를 성취하려했던 바이마르공화국의 민주주의 실험의 장은 1933년 1월 30일, 정말 하찮은 키치에 불과했던 ‘아돌프 히틀러’를 수상으로 임명하면서 죽음이 창궐하는 암흑, 지옥의 개막으로 수명을 다한다.
“문화는 사회와 연속적이고 긴밀하게 상호작용을 하고 있으며,
정치 현실의 표현이자 비판이었다.” -232쪽
이 책은 제목처럼 특정한 시대의 문화를 성찰하는 문화사(文化史)이다. 그러나 주체들이 발설하는 표현 행위인 문화는 소시민 대중의 관심의 대상이며, 그것의 발흥과 열광은 곧 정치이다. 문화가 담고 있는 정신에서 정치를 배제하는 것은 실로 어불성설일 것이다. 한 무식한 정치배가 문학이 정치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는 말처럼 반지성적 언어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문화와 정치의 상호작용의 방향성은 항상 일관된 것이 아니다. 문화가 선도하고 정치가 그에 반응하는가 하면 문화가 고작 정치의 시녀가 되어 정치를 반영하는 거울에 머물기도 한다. 어쩌면 이러한 선도와 거울의 양면성의 역학 관계를 관찰하는 시선의 중요성은 하나의 의도이기도 할 것이다.
우선 바이마르 혁명 정부의 출범기인 1918년 11월부터 4 년간의 처절한 혼돈의 시대를 다루는 제 1장 「탄생의 진통」은 15년이라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시대를 이해하는 중요한 시대적 배경이다. 1918년의 혁명은 ‘그런저런 혁명(so-called revolution)’, 또는 “늙은 허깨비들”이 다수를 이루는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그 나물의 그 밥이었으며, “하나의 소극(笑劇), 허구(虛構)로 보이도록 만드는 것”에 총력을 기울이는 세력의 집요한 반동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진실과는 아주 동떨어진 왜곡인데, 사회민주주의 세력이 주축이 된 공화국 정부에 적대감을 지닌 기득권 집단의 줄기찬 반동적 선전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던 까닭에 근거한다.
군주제 지지자. 광신적 군국주의자, 반유대주의자, 외국인 혐오주의 등 수구적 사고가 폭넓게 사회를 잠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며, 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반감으로 무장된 이들의 정신이 기승을 부리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더구나 급진적 사회주의, 소비에트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로자 룩셈부르크’를 중심으로 하는 스파르타쿠스단의 극좌세력과 제국주의, 군국주의자를 세력으로 하는 극우 집단의 극심한 갈등이 놓여있었다. 이 혐오와 갈등은 극우 집단의 광범위한 암살로 인해 기득권 세력인 보수우익의 승리로 끝난다. 로자 룩셈부르크가 이들의 암살로 피살되는 것도 바로 이러한 혼란기의 한 산물이다.
1차 대전, 전쟁의 야욕과 패전, 그리고 베르사이유 조약이라는 자기 영토의 상실과 막대한 배상금의 부담 등 국가적 손실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제국주의자들, 군국주의자들은 그 어떠한 죄의식이나 수치심이라는 각성은커녕 오히려 그 책임을 바이마르 정부에 넘기며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공화국의 주축 세력인 사회민주주의당이 최대다수당이긴 했으나 총 의석의 3분의 1도 갖지 못하고 군국주의자로 구성된 카톨릭중앙당, 부르주아 세력인 민주당, 제국주의자들인 국가인민당등과 연합정권을 구성하여야 했으니 실질적 지배권을 갖지 못한 것이 하나의 큰 이유였기 때문이다.
이 때의 지성의 분위기는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전하고 있다. “대학교수, 기업인, 정치 엘리트들은 제국의 가치를 민주주의와 교환하기를 꺼렸다.” 이것은 바이마르의 운명은 사실 볼 것도 없다는 말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공화국의 출현은 “역사적 필연이라 생각했음에도 공화국을 사랑하지도 않았으며, 그 미래또한 믿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지식인들의 이러한 인식은 모든 문화 엘리트들 작품의 근간을 이룬다. 문학, 사상, 건축, 연극, 영화에 이르는 당대 문화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것들이 표현하려했던 것의 본질적 형태가 드러날 것이다. 이 저작의 단연 돋보이는, 저자의 의도이자 지향점일 것이다.
■ 감상적 영웅주의, 그리고 반(反)이성의 확산
그것은 반이성이요, 반지성의 광범위한 점령, 아마 이러한 자기기만을 시대의 물결 속에서 빠져나와 바라 볼 수 있는 사람들은 설혹 존재할지라도 금세 그 조류 속에 묻혀 버리고, 관심에서 사라져 버리고 말기에 시대의 흐름을 바꾸는 목소리가 되지 못함을 발견하게 된다. 오만과 기만, 탐욕스러움과 무지가 거들먹거리며 횡행하는, 호도된 진실만이 세상의 주류가 되어 대중을 세뇌하기 때문이다. 이제 잡설은 여기서 그치기로하고 그 무진장한 문화예술의 실험장이요, 각축장이 되었던 바이마르의 일견 화려한 문화의 현장으로 들어가 본다.
그것은 먼저 책의 두 번째 장(章)인 「이성의 공동체」, 즉 지식인 집단들의 지향을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 순서가 될 것 같다. 대표적인 연구소를 중심으로 그들의 정신, 이성(理性)이 왜 그 세계의 실질적 동력이 될 수 없었는가의 문제이다. 우선 바이마르의 가장 특징적 정신으로 논의되는 ‘바르부르크 연구소’의 이성의 능력에 대한 철저한 믿음의 실천이다. 에른스트 카시러, 에르빈 파노프스키, 파울 레만과 같은 석학들로 구성된 이 연구소의 업적들이 사회의 내부에 침투하지 못하고 고립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정권의 내부에 영향을 미치는 데 한계를 지닌 기관이었음이다.
‘프로이트의 베를린 정신분석연구소’ 또한 당시 의학계와 정신병리학자들에 의해 철저하게 배제된 외부자로 적대시 되었으며,. 대중의 시선은 이러한 적대감이 더하면 더했지 결코 이에 못지않았다. 그 전도유망함에도 불구하고 외부자로 배척되었다는 것이다. 호르크 하이머, 에리히 프롬, 테오도르 아도르노 등 ‘프랑크푸르트 사회조사연구소’ 또한 강력한 지성 집단이었음에도 결코 내부자와 연결되지 못하는 외부자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 강력한 지식인 집단인 바이마르 정신의 정수들이 공무의 핵심에 있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해독하듯이 이들 지성은 실제로 내부자가 되지 못하면서 단지 그들과 관계를 쌓으면서 때때로 영향을 미치는 데 불과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중에 폭넓게 뿌리내린 반(反)유대주의적이며 반이성적 정서와 반민주주의, 반사회주의 성향 때문이랄 수 있다.
당시의 대중적 지성들, 즉 내부자인 대학과 정부관료, 주류 언론의 분위기를 묘사한 글을 보면, “전문가의 차가운 정확성보다는 우아하고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선택하겠다.”라거나, “과학적 연구의 차가운 실증주의에 경멸을 표하였고, 분석이 아니라 생동하는 직관을 통한 위인과 역사적 순간”에 대한 몰두였다는 것이다. 그들은 전설이 된 황제, 플루타르크에 등장하는 영웅들에 대한 신비의 갈망에 젖어있었음이다.
이 책의 최고 진술이랄 수 있는 3장 「비밀스런 독일」과, 4장 「전체성의 갈망」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 ‘토마스 만’, ‘호프만슈탈’, ‘하이데거’에 이르는 문학과 철학, 나아가 건축과 예술 전반이 시대의 원인이라기보다는 거울에 불과했음을 설득력 있게 전개한다. 즉 시류에 영합하는 문화예술이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릴케는 시대가 요구하는 우상의 필요성에 의해 조작된 인물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어른이 없는 세대의 우상”에 불과했으며, 그는 “지나친 수사, 과장된 주장, 감수성, 유사철학과 비슷한 신비주의, 직관적 방법”으로 점철된 순전히 주류 우파의 비평 덕을 입은 기이한 열정에 환호하는, 즉 대중의 실체를 증명하는 자기도취의 찬미였을 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릴케를 비롯한 당대의 시는 “독일을 파멸시킨 도구 중 하나였다(144쪽)”고 저자는 결론짓는다.
독일 사회는 이미 극도의 피로감에 젖어들고 정치적 냉소주의에 빠져든다. 우파를 이루는 군국주의, 제국주의, 부르주아 등 주류집단의 비이성주의가 몰고 온 바이마르 흔들기의 혼란은 소시민 대중에게 정치 거부, 옛 정신 습관으로의 회귀를 부르짖게 만들어내기에 이른 것이다. 1918년 토마스 만은 이를 확인하듯 “나는 비정치적 인간이며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비정치 인간의 고찰』이라는 600페이지짜리 책을 발표한다. 더구나 이러한 시류에 부응하기위해 프리드리히 대제의 영광을 칭송하는 회귀적 논문을 발표하기까지 했다.
독일과 독일문화의 이 퇴행적 행위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문명적 지성을 대표하는 정치가인 그의 형 ‘하인리히 만’의 문학의 반정치적 행위의 비판에 반발하며 이같이 반론을 쓰기도 했다. “정치는 인간을 오만하고 독선적이며 완고하고 비인간적으로 만들기 때문에 나는 정치에 대한 믿음을 혐오한다.”고. 그가 민주주의와 공화국의 지지자로 전향한 것은 때늦은 1920년대 후반의 일이다. 당시 독일 사회가 얼마나 광범위하고 깊이 반이성주의에 빠져있었는지에 대한 실증적 사례로 토마스 만이라는 지성인만큼 명료한 증거는 없을 것이다
사회 구성원이 공공의 이익을 지향해야 한다는 ‘일반의지’는 오늘에는 시민들이 지닌 당연한 이해일 것이다, 허나 1920년대의 독일인에게는 이러한 시민적 소양으로서의 일반의지는 대개 완전히 결여되어 있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모든 개개인은 저마다 완강하리만큼 편파적이었으며, 지방색과 편협성, 자기들이 속한 무리의 신념에만 몰두하는 그 반지성에 대한 각성을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하이데거나 『공동사회와 이익사회』로 알려진 퇴니스와 같은 반이성과 전체주의를 선창하던 부류들의 고의적이며 치명적인 사고를 여기서 나열하는 것은 배제하겠다. 다만 아래와 같은 하이데거의 흉측스러움을 묘사한 문장으로 갈음한다.
“피로써 사고하고, 카리스마적 지도자를 숭배하며, 살인을 찬양하고 실행하였을 뿐 아니라 죽음 자체인 삶을 취한 듯 포용함으로써 이성을 영원히 근절시키기를 희망(174쪽)” 하는 나치 찬양의 글은 역겨움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다. 이에 뒤지지 않는 당대에 명성을 떨친 슈팽글러의 글은 더욱 가관이다. “권력은 전체에 속한다. 개인은 전체에 봉사한다. 전체가 주인이다.”, 이것이 1920년대 독일사회의 시민대중과 지성이 열광하던 문장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다가오게 하고 있는지 알았을까? 아마 결코 알지 못했으며,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저 맹목적으로 열광하는 무지, 바로 반지성이다.
과거의 향수, 영웅숭배, 변명적 왜곡과 완전한 허위의 무비판적 수용, 악명 높은 자해 신화가 대중 전반의 의식을 차지한 독일 사회, 각성이 있었을까? 그러나 모두에 언급했듯 누군가의 표현을 해독하고 그것의 의지를 알아내는 일은 대중지성과는 먼 것이다. 소시민들은 이성, 즉 직관을 넘어서 앎을 추구토록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뿐더러 하지도 못한다.
■ 시대의 징후적 해석, 1924년 『마의 산』
바이마르에 대해 중요한 징후적 의미를 갖는 사실주의 소설 『마의 산』은 이 책의 각 장에서 반복적으로 소환되며 바이마르의 대중 지성을 읽는 이정표로 제시되고 있다.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주창했던 정치가 ‘하인리히 만’을 형으로 둔 토마스 만의 목소리는 대중의 시선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이기도 한 까닭이다. 오늘날 그의 작품을 해독하는 이들 사이에 서로 다른 논평이 있을 수 있겠지만, 단순한 인물 ‘한스 카스토르프’를 통해 “낭만주의와 귀족주의의 향수와 죽음에 대한 사랑”과 같은 야만성을 읽는 것은 불가피하다. 이것은 토마스 만 자신의 설명이다.
이 소설의 불쾌한 퇴행성에도 불구하고, 성장소설이라는 표면 뒤에 쓰여진 상징적 의미들은 시대정신의 세심한 묘사를 읽어내고 현재의 각성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각성’의 시대로 불리는 1924년의 문을 연 작품인 까닭이다. “잠행성 질병을 숨기기도 하고 일부러 드러내기도 하는” 힘차게 걸어 다니는 ‘붉은 뺨의 환자들’이나, 평화를 역겨워하고 죽음의 무도회가 준비되었으며, 표면적으로는 번영하는 듯하지만 속으로는 부패한 요양소처럼 당대의 현실을 상징하는 배경 속에서 자유주의자와 반이성주의자, 문명적 지식인을 대변하는 인물들이 열연케 하고 있음을 우리는 선연하게 읽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작품의 결론을 굳이 기술하지는 않겠지만 소설은 감정적 군국주의자에서 바이마르 공화국에 전념하는 길에 도착하는 인물을 통해 이성적 공화주의자가 아닌 모호한, 즉 각성은 각성이지만 미완의 무엇이라는 여지를 남겨둔다.
그러나 이러한 각성의 시대에서 왜 급격하게 다시금 반이성적 혼돈의 시대로 이전된 것일까? 이들 지성은 무엇에 저항하고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던 것일까? 왜 공화국에 반감을 떨쳐내지 못했던 것일까? 공화국은 민주주의와 과학, 합리적 이성이라는 현대성을 지향하고 있었다. 계급과 권위의 타파, 비이성과 신비주의로부터 벗어난 이성에 대한 반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시대가 내건 이러한 표상들을 피상적이고 편의적으로만 수용한 개인들의 욕망의 목소리는 곧 혼돈과 퇴행을 의미했으며, 이렇게 분열된 시민 집단은 공동체로의 통합에 대한 절박한 필요성으로 표출되어 ‘전체성의 갈망’이 되었다, 물론 이렇게 결속과 통합의 갈망이라는 퇴행이 절대 다수이기는 했지만 이성을, 과학의 사용을, 허무주의가 아니라 건설을 통해 현대성을 수용하려는 인물들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바우하우스를 창립한 그로피우스는 이 소수를 대표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내겐 반쪽짜리 추구로 보인다. “경제적 필요와 미학적 필요 모두를 충족시킴으로써 전체성을 충족해야 하며...”처럼 이들을 강박적으로 묶어놓는 것, 즉 전체성이라는 악령의 그림자를 떨쳐내지는 못했던 것으로 이해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편화의 비극은 기계나 작업의 세분화에 의해 초래된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지배적인 물질주의적 심리상태와 공동체에 대한 개인의 비현실적이고 결함 많은 관계에 의해 초래된 것(201쪽)”이라는 선언처럼 당대의 현실을 제대로 판단하고 있기도 했다.
책은 표현주의에 대해서도 비상하리만큼 분량을 할애하는 데, 노동자들의 동정을 담은 그림을 그린 ‘케테 콜비츠’, ‘오토 딕스’, ‘리프 크네히트’ 등의 일련의 표현주의 화가들만을 겨냥하여 ‘문화적 볼셰비키’운운하는 것은 조잡한 적대감일 뿐 실상은 ‘에밀 놀테’ 등 사악한 반유대주의처럼 국수주의적 전체주의도 표현주의의 대표였기에 표현주의를 어느 일방의 이데올로기로 이해하는 것은 극히 잘못된 것임을 지적한다. 표현주의는 모든 종류의 정치와 양립하는 현실의 돌파구, 신비로움에 대한 애착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 책의 주제어를 지목하라 한다면 그 답으로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반역’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것은 바이마르 시대를 관통하는 표현주의 예술 작품들의 공통 주제였다는 것이다. 1918년 11월 혁명은 부권에 대한 반역이며, 폭군같은 아버지와 자유를 갈망하는 아들의 대립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문학과 연극 작품을 통해 이 반역은 순전히 주관적이고 반이성적인 의미만 있었을 뿐이며, 한마디로 이성적 질서의 살해였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새로운 각성의 움직임이 있었음에도 왜 독일사회는 급격하게 반혁명, 반공화국, 반민주주의로 선회하였는가는 의혹을 불러일으킨다. 베르사이유의 불평등 조약의 책임을 비록 바이마르 정부에 떠넘기는 후안무치를 보였지만 보수 우익집단을 그 죄업의 족쇄로부터 풀려나게 한 1925년의 로카르노 조약 체결이다. 독일이 당당한 독립적 위치로 프랑스 및 인접국들과 대등한 협상의 지위를 지니게 한 사건이다.
다시 질병의 징조를 숨긴 붉은 뺨이 극성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거대 산업 카르텔을 소유한 반동적인 우익 거물이 언론 산업 제국까지 거머쥐며 반혁명의 기치를 대중에 전파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중 일간지와 영화사, 출판의 판로 독점 등 모든 선전 창구를 독식하고 증오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영웅 찬미와 정치적 혼란의 의도적 조성은 민주적 역량을 갖지 못한 맹목적 소시민 대중의 정신 상태는 공화국에 대한 환멸이 더해지고 회의와 좌절, 냉소주의에 도달했다.
이제 남은 것은 극한적 정치적 분열과 극악하고 상스러운 논쟁만이 난무하는 혼돈의 시대로 접어든다. 이제 “평화를 택해야 한다는 말은 진부하고 금지된 말”이 되었으며, 죽음에 도취된 청년들은 모두가 우익이 되어 나치에 잠식된다. 이들은 부친을 살해한 아들을 자처했지만 실은 누가 아버지이고 아들인지의 문제에 이르면 극히 전도된 언어임을 100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말할 수 있다. 바이마르 공화국이 아들이며 노쇠한 전체주의적 망령, 그 퇴행 속으로 눈을 감고 돌진한 청년들이야말로 살해되어야 할 아버지였다는 것을,
영도자를 향한 맹목적 추종, 영웅숭배에 집착하였던 이들은 현실의 곤란성, 그 위험, 그 가혹한 법칙을 결코 파악하지 못했으며,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또한 알 능력도 지니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렇게 한 시대가 무능력과 무지로 야기되는 공포와 의혹, 비이성이 뒤섞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그 총체적 불협화음의 현장을 거닐다보면 어느새 21세기 한국사회, 바로 지금에 도착해 있는, 그 동일 유사성에 전율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 맺으며: “공포와 테러와 무책임과 기회상실과 수치스러운 배반의 이야기”
1920년대의 바이마르를 무수한 문화적 창조가 실험되던 황금의 시대라 부르기도 하지만 이 책은 그 문화가 정치와 어떻게 교섭하면서 충돌하는지, 그 문화가 담지하고 있었던 시대적 의미는 무엇이었는지를 포착해내는 거장의 냉철한 통찰력이 빛을 발하는 명 저술이다. 또 한편으로는 100여 년 전, 1930년 전후의 시기에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종말을 앞당긴 고질적인 대중의 어리석음이라는 질병, 소시민들의 만연한 무지가 폭넓게 그 사회를 휩쓸었을 때, 한 나라의 역사적 멸망, 세계적 최악의 사건이 어떤 토양에서 출현하는 것인지를 목격케 하는 인류사적 비평이기도 하다.
히틀러라는 보잘것없던 존재가 허위와 음모를 통해 수상에 취임하게 되고, 이후 희대의 폭력과 살해의 괴물이 되는 현장, 그 실체를 논평한 글이다. 나는 이 글에서 기시감(旣視感)에 전율하게 되었는데, 인간의 역사에서 반복되는 그 동일한 대중적 실패의 확인이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독일 사회의 언어를 21세기 한국사회의 언어로 대체하면 그 섬뜩한 미래가 그려진다.
극우의 상징, 나치의 목소리가 지금 여기서 들린다는 아이러니라니...., 입을 닫은 지성으로 불리던 자들의 기회주의만이 꿈틀대고, 겁먹은 우익 정치꾼들은 아부에 여념 없는, 게다가 맹목적으로 환호하는 몽매한 소시민들까지...역사는 끊임없이 여기저기서 그 행위를 무한 반복하며 인간을 실험한다. 21세기 한국의 대중과 지성은 독일의 1933년과 과연 다른 생각과 행동을 낳을지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