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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수업
수산나 타마로 지음, 이현경 옮김 / 판미동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1.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삶을 충실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어떤 모양으로 나타날까? 하루를 깨알처럼 빈틈없이 보내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놀이와 취미로 하루하루를 채우고, 트렌드와 이슈의 중심에 서는 것이 정답인걸까? 그러면 우리는 남들에게 "나의 의지대로 삶을 충실하게 보내고 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2.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던 소설들이 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외롭고도 쓸쓸한 소설들, 가브리엘 루아의 목가적이고 서사적인 배경의 소설들, 하루키만의 특별하고 환성적인 글들과 레이먼드 카버의 - 그냥 좋다... - 단편들,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까지도. 그중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이 기억에 남는데, 사건의 전개나 배경의 전환이 아닌 개인의 의식을 따라간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3. 우리의 삶은 이야기의 흐름속에 있는 사건들로 구성된다. 하지만, 더 들어가보면 결국에는 그 사건에 느꼈던 나의 감정과 의식들이 내 삶을 구성하는게 아닐까? 따스한 감정과 깨달음의 순간들은 모두 우리의 의식속에 살아 숨쉬고 있고, 이는 우리의 삶의 깊이를 더욱 깊고, 풍요롭게 한다.
4. <영원의 수업>은 마테오의 독백과 의식의 흐름으로 전개되는 소설이다. 때론 숲속에 있다가, 때론 어린 시절의 마테오로 돌아가기도 한다. 그러다가 노라와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다시 이 모든것들이 부재하고 있는 현실(?)로 돌아오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그의 아내와 아이를 잃었고, 한때 방황했으며, 다시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지만 결국에는 그녀를 보내고야 만다.
5. 숲속에 살고 있는 마테오의 명성(?)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지만 그의 목가적인 삶을 이해하려는 사람은 그리 많진 않다. 성생활을 하지 않는 그의 정체성을 의심하고, 특이함을 이용해 명성을 탐하는 사이비 지식인으로 폄하하기도 한다. 호기심에 취재 목적으로 찾아오지만 그들은 그를 바라보고 이해하려 하지 않고, 자시의 말과 생각이 맞는지만을 되묻고 답할 뿐이었다.
6. 때론 그를 이해하고, 그의 삶속에서 뭔가를 발견하려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엔 그의 마지막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을 만나게 되고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7. 아름다운 문장들이었고, 따스한(때론 슬퍼보였지만) 생각들로 가득찬 소설이었다. 이 책 어디에서도 영원함이란 무엇이라고 명쾌하게 답해주진 않지만, 책을 읽는 내내 그것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해주었다. 사랑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그것이 왜 삶의 희망이 되는지도 함께 말이다. 아쉬움의 여운이 아닌, 따스한 온기의 여운이 계속 남아 머릿속에 남게 되는 그런 소설이었다.
* 세상을 벗어나 살아간다는 건 허약한 사람들의 환상을 쉽게 자극하기도 한다.
* 처음에는 나에 대해 지속적으로 정의를 내려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정의하는 형용사 또는 명사가 없으면 존재하지 못한다. 그러한 정의가 바로 어디서든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도와주기 때문이다.
* 마음이 아니었어. 정신이 아니었어. 나의 내부에 예전에는 없던 새로운 공간이 생겼지. 그 공간은 텅 비어 있었어. 불안정하고 뭔가를 갈구하는 공간으로 새로운 존재가 필요했어. 그 존재가 바로 당신이었지.
* 내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했던 일은 교리에서 말하듯이 그날 이후 내 삶의 무언가가 완전히 달라지느냐를 아는 것이었지.
* 일상에 특성을 부여하는 건 우리가 할 일이 아니고 그 일상을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우리 몫이지. 그러니까 가장 인간적인 방법으로, 가장 고귀한 방법으로 늘 일상을 살아가야 한다. 행동 하나하나에도 존엄과 위대함이 담겨 있으니까. 삶은 때로는 폭풍우가 몰아치기도 하고, 때로는 파도가 잔잔하기도 한 바다와 같다는 점을 항상 의식하면서 절대 작아지지 말고, 절대 자신의 존엄을 손상시키지 말아야 한다. 폭풍우가 칠 때나 파도가 잔잔할 때나 모두 통제할 수 있는 위치에 똑바로 서 있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 네 공정함이 배를 다시 항구로 데려올 수 있게 해 줄 거다. 화물과 승무원과 너를 신뢰하는 승객을 안전하게 구할 수 있는 건 포기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 네 의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