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를 판 사나이 열림원 세계문학 5
아델베르트 샤미소 지음, 최문규 옮김 / 열림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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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구매한지 벌써 8년 차다. 주행거리는 10만 킬로미터가 안되지만, 최근에는 정차 시 진동이 조금 심해진 느낌이다. 게다가 며칠 전 - 무더위가 심한 날 - 에어컨도 고장이 났는지 뜨거운 바람만 연신 뿜어댔다. 일단 먼저 - 차량 진동 때문에 - 연료첨가제를 처음 사서 넣어봤는데, 드라마틱 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 괜찮아진듯하다. 리뷰를 보니 두세 번 정도는 써야 한다고 하니 주기를 기억했다가 잘 넣어줘야겠다. 에어컨은 사실 많이 당황스러운데 작년에 이미 가스를 충전했음에도 벌써 이러니 뭔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다음 주에 한번 수리를 맡겨봐야 할 듯. 잘 타고 있는 내 차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확실히 자동차는 부동산이나 금, 은, 예술품에 비해 자산 가치는 없다고 봐야 한다. 세금이나 유지 비용과 같은 지출도 상당하고.

이번 주에는 부산에 내려왔다. 쉬면서 틈틈이 새 책을 읽었다. 제목은 <그림자를 판 사나이>. 프랑스 출신이지만 대부분의 삶을 독일에서 살다간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라는 작가가 쓴 중편 소설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작가인데, 몇 년 전에는 뮤지컬로도 제작되어 공연된 적이 있다고 한다.

중편 소설이라고 하면 말 그대로 단편과 장편 소설의 중간 정도 되는 분량이다. 그냥 약간 긴 단편 소설이라 보면 되는데, 내용은 장편 소설로 풀어써도 될 만큼의 내용을 담고 있어서 -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 잘 축약된 이야기를 읽는 느낌이 든다. 독일에서는 중편 소설이 하나의 출판 형태로 자리 잡았다고 하는데, 음반으로 치면 정규 앨범이냐, 미니 앨범이냐 와 같은 느낌으로 봐도 되겠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함부르크 최고 부자인 욘의 집에서 파티를 즐기고 있던 슐레밀에게 그레이맨이라는 기이한 남자가 나타난다. 그레이맨은 슐레밀에게 그림자를 팔 것을 권유하고, 약간의 실랑이 끝에 슐레밀은 그림자를 넘겨주고, 무한한 금이 나오는 행운의 자루를 손에 쥐게 된다. 하지만 엄청난 금의 행복도 잠시였고, 곧 그에게 그림자가 없다는 소문에 슐레밀은 곤경에 처한다. 다행히도 충직한 하인 벤델이 그의 곁에 있지만, 배은망덕한 라스칼의 계략에 의해 결혼을 약조한 미나와 헤어지게 된다.

다시 나타난 그레이맨은 슐레밀에게 그림자를 돌려줄 테니, 죽음 이후의 영혼을 팔라고 또다시 제안한다. 슐레밀은 이를 거절하고, 행운의 자루마저 던져버린다. 하지만 우연히 신비한 장화를 얻게 되고, 이를 가지고 전 세계를 여행하며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얻으면서 남은 삶을 살아가게 된다.

언뜻 보면 악마에게 영혼을 판다는 <파우스트>나, 젊음을 거래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 떠오르지만, 그 결은 다르다. 상세한 해제를 달아준 최문규 교수님의 글만 보더라도 오히려 자신의 영혼을 지키는 다른 결단을 내린다. 사소한 것이라 생각했던 그림자를 판 행위가 그토록 무서운 형벌이 될 줄은 몰랐을 터. 단순하게 자본주의적 가치 이상의 무언가를 판 대가를 치른다는 권선징악적 해석이 아니라, 1800년대 변화하는 시대상에서 '칼의 힘'과 '펜의 힘'을 대신한 '돈의 힘'의 등장과 함께, '집단적 가치'와 '개인적 가치'의 충돌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소속감과 연대감도 중요하지만, 슐레밀의 마지막 말에서 이 모두를 극복할 수 있는 건 - 스스로의, 니체의 말처럼 - 진정한 자아 성찰이 아닐까란 생각도 들었고.

더 정확히 말하면, 그림자처럼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소속된 사회, 집단과 일상생활을 가볍게 여긴 것이 큰 화로 다가왔다는 걸 슐레밀은 깨달았던 것. 누군가는 자본주의의 상징인 돈을 선택한 벌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오히려 돈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의 가치를 깨달았고, 결국에는 그레이맨의 또 다른 제안 - 사후 세계의 영혼을 팔라는 - 을 거절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끝으로 흥미로웠던 슐레밀에게 흥미로운 제안(?)을 건네는 그레이맨의 존재.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에 등장하는 회색 신사나, 파우스트의 악마 메피스토와도 비슷한 무언가였을까. 모두 다 비슷하게도 다 자본주의로 변해가던 시기에 독일에서 등장한 소재라는 점도 그렇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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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4-29 08: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말씀하신것처럼 <파우스트>가 생각나기도 하네요. 그림자와 관련된 아이디어는 단테의 <신곡>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말씀하신 그 무엇이 궁금해서 읽어보고 싶네요

초코머핀 2024-05-06 16:06   좋아요 0 | URL
사람마다 다르게 다가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명확한 단어라도 사람마다 느끼는 이미지는 다를테니까요. 파우스트와 신곡도 다시 읽어봐야 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