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원전 완역판 8 : 도남
요시카와 에이지 엮음, 바른번역 옮김, 나관중 원작 / 코너스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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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 Review MDCCLXI / 코너스톤 9번째 리뷰] 유비는 형주를 얻고 촉나라를 취하기 위해 '입촉'을 서둘렀다. 마침맞게 장송이 찾아와 손수 만든 '촉 지역의 지도'를 유비에게 건내주었고, 방통까지 합류하게 된 유비일행은 드디어 '천하삼분지계'를 완성하러 유장이 다스리는 촉으로 진군하였다. 이때 유비의 나이가 쉰이 넘었다. 조조는 그보다 나이가 더 많았으나 일찌감치 천자를 끼고 승상의 지위를 누리며 성공을 누렸고, 손권은 풍요로운 강동의 이로움을 바탕으로 아버지 손견과 형 손책이 일군 나라를 비교적 어린 나이에 다스리며 군주로서 모자람이 없었다. 허나 유비는 나이 오십을 넘기고서 겨우 자신의 영지를 갖게 된 것이다. 물론 로마의 종신독재관(사실상 황제) 자리에 오른 율리우스 카이사르(줄리어스 시저)도 마흔이 되어서야 관직에 오를 수 있었고, 쉰이 넘어서야 '일인자'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으니, 유비가 못난 사람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유비가 좀더 야심차게 욕심을 부렸다면 유표가 죽고 난 뒤에 '형주 일대'를 물려받아 조조의 남하를 양양성이라는 굳건한 성벽에 기대어 '적벽대전'을 치루고 난 뒤에 보다 안정적으로 촉 지역을 취하면서 '천하삼분지계'를 구축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엎어치나 메치나 유비가 '형주'를 취하고, '촉'을 꿀꺽한 것은 매한가지였을 테지만, 적벽대전 당시 아무런 '연고'도 없이 오나라에 '형주'를 빌리는 형식을 취한 것이 끝내 유관장 삼형제가 줄줄이 죽임을 당하는 불우한 일을 치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역사의 결과'를 이미 알고 있는 독자들로서는 유비가 좀더 야욕을 부리며 '명분'보다 '실리'를 챙기는 현명함을 발휘했으면 어땠을까 싶은 심정인 것이다. 허나 만약 그랬다면 <삼국지연의>의 독자들은 유비에게 그리 큰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이른바 '촉한정통론'이라는 것도 애초에 발생하지 않았을 테고 말이다. 그저 혼란스런 시대를 살아가며 '평범한 야심가들'에 의해 천하가 어지러웠을 뿐이라고 이 시대를 평가하고 말았을 것이다. 독자들이 유비에게 이토록 애착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유비에게 '덕치'라는 명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조나 손권은 엄연히 '한나라의 신하'였기 때문에 이들이 스스로 '왕'이나 '황제'를 칭하는 것은 찬탈이자 역모다. 그러나 '한 황실의 종친'이었던 유비(물론 신빙성이 낮긴 하지만)는 '한나라를 정상을 되돌릴' 의무이자 권리를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유비는 자신의 영지를 차지하기 위해서 '야심'을 드러내지 않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느림보 작전'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또 그것이 '유비'에게 딱 어울리는 방식이었고 말이다.

  이런 유비의 '느린 행보'가 오히려 백성들에겐 환영받을 일이었다. 나라가 아무리 부강하더라도 하루가 멀다하고 '전장터'로 끌려갈까 두려움에 떨고, '전쟁물자'를 대기위해 그간 모아놓은 재산을 빼앗길까 불안해하는 조조와 손권쪽 백성들은 삶이 고달펐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마땅한 영지도 없는 '유비의 편'을 드는 백성들이라고 두려움과 불안함이 없을 순 없었다. 하지만 똑같이 빼앗긴다 하더라도 신분이 천한 자신들을 위해 '선정'을 베풀려는 따뜻한 마음씨를 지녔다는 유비에게 빼앗기는 편이 덜 억울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자신들을 지켜주기 위해 조조와 손권과 맞서 싸워준다고 하니 고마운 마음까지 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승리하고 성공한 사람'에게나 내어줄 수 있는 호평이다. 덕치를 하며 선정을 베풀다가 '야만인'들에게 짓밟히고 패망한 다음에 '착한 사람이었어'라는 평가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유비는 당시에는 별볼 일 없는 사람으로 평가 받다가 '명나라, 나관중'이라는 '시대와 사람'을 만난 뒤에야 겨우 호평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이야기로 되돌아와서, 유비에게 제갈량과 방통이라는 두 날개가 생겼다. 적벽대전에서 제갈량은 유비를 위해 손권에게 달려가 '주유'를 도발시켜 조조와 싸우도록 부추겼고, 방통은 유비를 위해 조조에게 달려가 '연환계'를 써서 효과적으로 패배할 수 있도록 부추겼다. 그리고 와룡과 봉추는 유비의 품에 들어왔다. 만약 유비가 좀더 현명한 군주였고, 사람을 다루는 능력이 조금만 더 뛰어났더라면 촉을 취하고 난 뒤에도 제갈량과 방통을 적절히 써먹으며 '형주와 한중'이라는 두 요충지를 효율적으로 다스리며 조조를 톡톡히 괴롭힐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유비는 '입촉 과정'에서 방통을 잃고 만다. 유비는 이미 실력이 '증명'된 제갈량을 우대하고, 아직 실력을 '검증'하지 못한 방통에게는 소홀히 했던 것이다. 굉장히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아직 '입지'를 굳히지 못한 군주라면 사람을 그렇게 다루면 안 되었다. 유비는 방통을 군사로 쓰면서도 끝없이 '제갈량의 지혜'를 끌어다 쓰길 좋아했고, 이것이 뛰어난 실력을 갖춘 방통으로 하여금 '초조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말았다. 달리 말해, '고용불안'에 시달렸던 셈이다. 이렇게 '고용불안'에 시달리게 되면 뛰어난 능력자라 하더라도 '성과'를 내기 위해 조급해지고, '대박'을 치기 위해 섣부른 모험을 하게 만들기 때문에 절대 금물이다. 유비는 뛰어난 능력자에게 '고용불안감'을 심어주어 큰 거 한 방을 노리게 만들었고, 그로 인해 '한 쪽 날개'를 영원히 잃어버리게 된다. 가뜩이나 인재가 부족한 유비에게 아주 큰 실책을 안겨준 셈이다.

  그로 인해 형주를 지키던 제갈량이 부랴부랴 '성도(촉지역 수도) 공략'을 위해 유비에게 달려갔고, 패배한 유비를 지키기 위해 장비와 조운까지 대동해서 입촉을 떠나게 되었다. 이것만 보아도 '방통'이 얼마나 실력이 뛰어난 인재인지 알 수 있다. 방통은 장비와 조운이 없이도 '입촉'할 수 있던 군사였고, 제갈량은 장비와 조운까지 대동해야 '입촉'할 수 있는 군사였던 셈이기 때문이다. 물론 결과적으론 방통은 '실패한 책략가'였지만 말이다. 암튼 이제 형주를 지키는 것은 '관우'뿐이었다. 힘과 지혜를 갖춘 용장임에 틀림없지만, 애초에 갖고 있는 지혜가 턱없이 부족한 탓에 '공격'에는 능한 장수지만 '수비'에는 그닥 효용을 발휘하지 못하는 장수가 유비의 목숨줄과도 같은 '형주땅'을 맡게 되었다. 그래서 제갈량은 관우에게 '지혜'를 빌려주며, 조조와는 맞서 싸우고, 손권과는 화친하라 일러주었건만 끝내 일을 그르치고 만다.

  유비와 합류한 제갈량은 기이한 '용병술'을 쓴다. 이전에도 곧잘 쓰던 방식이었지만, '황충'이라는 장수를 얻고 난 뒤에 아주 노골적으로 써먹기 시작한다. 바로 '충분히 승산있는 싸움'인데도 '승률 100%'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배수진'을 쳐버리는 용병술이었다. '배수진'이란 뒤로 물러설 수 없게 만들어 죽을 힘을 다하게 만드는 진법인데, 늙은 황충에게 "당신은 늙었으니 전투에서 빠지라"고 말한 뒤에, 황충으로 하여금 "늙었음에도 젊은 장수들보다 더 실력이 뛰어남을 증명해보이겠소"라면서 "만약 지고 돌아온다면 목을 치시오"라는 필승의 각오를 확답으로 받고 난 뒤에 전장으로 내보내는 방식이다. 어찌 보면 제갈량은 장수를 아끼는 마음을 내보이면서 장수로 하여금 '죽을 각오'로 충성을 다하겠다는 열의를 보이게 만든 뒤에 승리를 거두는 지혜를 써먹은 셈이지만, 매번 이런 식이라서 문제였던 것이다. 이는 그만큼 '유비쪽에 인재'가 부족했던 탓이다. 형주 일대와 촉 지역을 차지하면서 '사람'을 많이 얻기도 했지만, 정작 '쓸만한 인재'가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물론 평화로운 시대였다면 인재가 부족해도 걱정할 일이 없었겠지만, 상대적으로 일찌감치 터를 잡고 자신의 영지를 안정시키려 여러 방면에서 인재를 등용해 부렸던 조조와 손권에 비해서 '뒤늦게 터를 잡은' 유비에겐 그렇게 안정을 시킬 수 있는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부리고, 사람을 써야 할 때마다 '적절한 인재'를 찾지 못해 애를 먹던 제갈량은 궁여지책으로 '부족한 인재들'로 애써 돌려막기를 했던 셈이다. 그래서 촉나라는 유관장 삼형제가 죽고 난 뒤에 그렇게 허망하게 패망하고 만 것이다. 물론 '유비의 아들(유선)'이 무능한 탓이 더욱 큰 원인이었겠지만...

  그럼에도 유비는 '입촉'에 성공하고, 새로 얻은 황충, 위연, 마초, 법정 등을 활용해서 '한중 공략'에 성공하고, 관우가 '형주 방어'에 성공하면서 탄탄하게 나라를 다지는 듯 싶었다. 한편, 위왕에 오른 조조는 '한중 방어'에 실패하면서 손권과 손을 잡고 '형주'를 취하고자 하는데, 그 과정에서 '장료의 활약'이 돋보이게 된다. 일찍이 조조는 적벽대전에서 패배한 뒤에 '강동 방어선'을 지키기 위해 장료를 남겨 두었다. 그리고 장료는 손권의 공격에도 끄떡하지 않고 버텼을 뿐만 아니라 '강동 공략'에 선봉을 서며 손권에게 뼈아픈 패배를 안겨준다. 이 때문에 오나라에서는 "장료가 온다(료~ 라이!)"라는 말이 두려움의 대명사였다고 한다. 우는 아이도 "료~라이"라는 말을 들으면 울음을 뚝 그칠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손권이 다스리는 오나라는 '장강'을 넘지 못하고 조조와도, 관우와도 '화친'과 '적대'를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뜸만 들이다 '노숙'이 죽고 만다. 유비와 손권이 서로 '화친'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사람이 죽었으니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 것인가?

  한편, 위왕에 오른 조조는 슬슬 후계자를 골라야 할 처지가 되었다. 첫째 '조비'와 셋째 '조식'이었다. 조조 마음에 쏙 드는 자식은 셋째였지만, 가후에게 후계구도를 묻자, 가후는 "원소와 유표를 떠올리십시오"라는 말로 조언을 대신했고, 조조도 그 말을 듣고 첫째 조비에게 왕세자의 자리를 물려준다. 그리고 드디어 '사마의'가 등장한다. 이제 한중을 놓고 제갈량과 한판 대결을 벌일 바로 그 사마의가 말이다. 이제 천하는 새롭게 짜여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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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고양이 1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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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 Review MDCCLX / 열린책들 10번째 리뷰] 아직 베르나르의 책을 모두 섭렵하지는 못했지만 다시 읽어보려 한다. 그의 대표작인 <개미>도 아직 읽어보지 않았기에 이번 기회에 접해보려고 한다. 그에 앞서 <고양이>, <문명>, <행성>을 연이어 도전하련다. 예전에 <고양이>를 접해보긴 했지만, '후속작'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고양이>도 다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읽지 않은 이유는 별로 재미가 없었기 때문인데...초반에는 '암고양이의 잘난 척'만 한가득이었고, 나는 그런 고양이가 그닥 매력적(난 강아지를 더 좋아한다)으로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양이>의 '뒷이야기'가 내 예상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다시 처음부터 읽게 된 것이다. 참, 미리 말하지만, 난 '베르나르 골수팬'도 아니다. 아직 <개미>도 읽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암튼, <고양이>에는 호기심 많은 암고양이가 등장한다. 특히 '종간 대화'를 꿈꾸는 발칙한 고양이다. 그리고 '인간 집사'를 자기가 기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기도 하다. 고작 '반려동물' 주제에 인간을 하찮게 여기고, 서로 다른 종끼리도 '(고양이 중심의) 대화'를 할 수 있다고 믿는 고양이라니...이런 내용이 뒤에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 여겨서 2권을 읽지도 않고 '재미 없는 책' 목록에 올려놔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뒷이야기'를 대략 살펴보니, 인간이 하찮게 보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 있었다. 고양이의 눈에 비친 인간들의 행태(?)라는 것이 '시위'에서 '내전'으로 번지더니, 급기야 '전쟁'을 벌이며 스스로 절멸해버리는 선택을 하는 어리석은 종족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인간들이 벌이는 갈등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전쟁'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려지지 않은 상태로 인류는 스스로 무덤을 파는 끔찍한 전쟁을 일삼더니, 끝내 스스로 건설한 '문명'조차 말살해버리고 절멸해버린 것이다. 물론 '뒷이야기'다.

  <고양이 1권>에서는 고양이와 인류가 함께 한 역사에 대해서 주로 서술하였다. 애초에 인간은 고양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뭐 그런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이 농경생활을 하면서 애써 가꾼 곡식을 축내는 '쥐떼의 공격'에 항시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쥐벼룩'으로 인해서 인류를 초토화시켜버린 질병 '페스트'를 종식시키는데에도 '고양이'란 존재가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렇게나 소중한 고양이를 인간들은 '악마화'시키며 함부로 죽이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는데, 이 책의 주인공인 '바스테트(이집트 신화에 등장하는 고양이 모습을 한 여신의 이름)'가 경악을 하는 장면이 계속 나온다.

  작가인 베르나르는 왜 이런 식으로 서술을 했던 것일까? 아무래도 '고양이'를 무척 좋았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지구 종말'을 앞당기지 못해 안달복달하는 인류의 어리석음에 크게 실망했던 모양이다. 이 둘이 결합을 하니 '고양이'가 인간을 하찮게 보는 뉘앙스로 서사를 진행시켰을 것이다. 일면 공감되는 바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생명체 가운데 '동족살해'를 서슴지 않고 하는 유일한 종이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하나 뿐인 지구'를 소중히 여기기는커녕 어떤 생명체도 살지 못하도록 황폐하게 파괴하는데 앞장 서고 있으니, 정말 어리석기 그지 없다. 여기까지 '공감'을 하게 되면 '피타고라스(샴고양이)'와 '바스테트'가 나누는 대화도 십분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고양이끼리 나눈 대화가 무에 그리 대단할까 싶지만, '피타고라스'라는 숫고양이는 '제3의눈'이라는 장치를 통해 컴퓨터 인터넷망과 접속을 할 수 있고, 그렇게 접속을 하면서 '인류의 지혜'를 터득한 고양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낱 고양이 주제에 인간보다 더욱 인간다운 '고양이'가 되었다. 이렇게 똑똑한 고양이를 사랑하게 된 '바스테트'는 그를 통해서 온갖 지식을 배우게 되고, 그렇게 배운 지식을 활용해서 인간이 망가뜨린 지구를 구해낸다는 서사를 그려냈다. 물론 <고양이>에서 이어지는 '후속작'의 줄거리다. 그렇기에 본격적인 이야기는 <고양이 2권>에서 다루려 한다.

  그건 그렇고, 왜 주인공이 '암컷'일까? 베르나르는 인간이 지니고 있는 '성욕구'에 있어 남성보다 여성이 훨씬 더 우월하다는 견해를 가진 듯 싶다. 그의 작품 <타나토노트>에서도 영계에서 환생 보너스를 받는 마지막 장면에서 '성별'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 주인공은 남성의 삶을 선택하지 않고 여성의 삶을 택했다. 까닭은 '성적 쾌감'이 남성에 비해 여성이 훨씬 더 높다면서 말이다. 차라리 남성의 삶은 살아봤으니 여성의 삶을 살아보겠다고 했으면 깊이 공감했으련만, 왜 '쾌감'을 언급했던 것일까? 혹시 베르나르는 '성적 불만족'을 겪고 있는 건 아닐런지 합리적인 의심을 해본다. 어쨌든 남성보다 여성의 삶이 훨씬 더 낫다는 근거를 '제대로' 설득하지 못한 베르나르의 작품은 앞으로도 깊이 공감대를 끌어내지 못할 듯 싶어 아쉽다. 혹시나 <개미>에서도 별볼일 없는 수캐미를 통해 '짜친 남성의 삶'을 비유적으로 그려낸 것은 아닌지...만약 그렇다면, 도대체 왜 베르나르의 소설이 유독 한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 암튼 '전작'을 좀 읽어본 뒤에 결론을 내려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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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멈춘 순간 진짜 음악이 시작된다 - 플라톤부터 BTS까지, 음악 이면에 담긴 철학 세계 서가명강 시리즈 19
오희숙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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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 Review MDCCLIX / 21세기북스 23번째 리뷰] 나는 예술을 쥐뿔도 모른다. 마치 입에 달아야 삼키고 쓰면 뱉는 것처럼 '내 눈'에 아름다워야 아름답게 보이고, '내 귀'가 즐거워야 좋은 음악이라고 평하는 아마추어 중에 쌩~아마추어다. 그런 내가 '음악철학'에 관한 책을 손에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이었을까? '[미학]이란 이런 것'이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반에 반쯤 이해할까 말까 그랬다. 그런데 음악이 멈춰야 '진짜 음악'이 시작된다는 제목을 완독한 뒤에 다시 읽어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학창시절에는 따분하기만 한 '교과서'가 왜 좋은 줄 몰랐다가, 제자를 가르치는 선생이 되고 보니 '교과서'만큼 좋은 책이 없다는 느낌이 새롭게 다가오는 것처럼 '좋은 음악'일수록 피날레를 장식한 뒤에 청중들의 환호와 박수 갈채가 쏟아지고, 그 환호와 갈채도 잦아들고 텅빈 객석에 앉아 홀로 남겨지고 나서야 '긴 여운'으로 감동이 밀려오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음악철학'은 들리지 않는 음악을 들으며 머리로 생각하는 '음악적 아름다움'에 대해서 논하는 학문이란 생각에 미치게 되었다. 그럼 '음악철학'이란 무엇일까?

  무술에 '음공(音功)이란 것이 있다. 영화 <쿵푸허슬>에서 장님악사가 반가부좌를 하고서 내공을 모아 거문고를 튕기니 소리가 창칼이 되어 상대의 목숨을 앗아가는 등 치명상을 입히는 무서운 무공이었다. 이때 '무형'의 음공에 맞서 '유형'의 무기를 든 무술고수는 하나같이 목숨을 잃고 말았는데, '무형'의 음공에 맞서 '무형'의 사자후를 토해내니 '내공의 차이'만큼 혼쭐이 나고선 부리나케 도망가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이처럼 '무형'의 것을 '유형'의 무엇으로 표현해서 '무형의 가치'를 새롭게 창출해내는 것이 '음악철학'이라는 생각을 했더랬다. 아닌 게 아니라, 좋은 음악은 들은 뒤에 '무언가'를 분명히 느낀다. 그것을 무어라 콕 집어서 표현할 깜냥이 부족하기에 이렇게 표현해보았다. 사실 음악의 신동 모차르트가 '대위법'으로 음악을 한 단계 끌어올렸고, 음악의 천재 베토벤이 '불멸의 교향곡'을 만들어내며 음악의 정점을 찍었다는 식의 설명은 들어도 무슨 소린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음악을 들으면 '감정'이 느껴진다는 이 책의 첫 소절은 단박에 이해할 수 있었다. 음악의 이 소절에서는 '기쁨'이 느껴지고, 저 소절에서는 '설렘'이 느껴지며, 마지막 클라이맥스에서는 '환희'가 느껴지면서, 음악의 전체적인 주제는 '첫사랑'이었다는 식으로 이해를 하려니 음악이 쉽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음악을 통해 인간의 '감정'을 사로잡기 시작한 음악이 점점 복잡해지면서 '음의 대화'를 시도하게 되었다는 점도 신기했다. 마침맞게 하지은의 소설 <얼음나무 숲>에서 음악 신동 아나토제 바엘이 자신이 켜는 바이올린으로 청중들과 '음의 대화'를 시도했다는 소재를 접했기에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음의 대화'를 시도한들 '인간의 언어'처럼 명확하고 객관적인 전달은 할 수가 없었단다. 왜냐면 '소리'는 듣는 사람의 '경험'과 '사상(생각)'에 따라 주관적인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쁨'과 '슬픔'처럼 단편적인 의미(감정)은 전달할 수 있을지언정 '분에 넘치는 기쁨'이나 '달콤한 슬픔' 같은 복잡한 언어의 기능을 단지 '음악'으로만 표현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 사실이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표제음악'으로 점참 발달했단다. 다름 아니라 '제목'이 없던 악보에 '제목'을 붙여서 음악의 전체적인 주제가 잘 드러나게 표현한 것이다. 예를 들어, 비발디의 <사계>를 들으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계절적 변화'를 보다 분명히 느낄 수 있다. 청중들이 '제목'을 먼저 들었기에 더욱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을 것이고, 미처 '제목'을 알지 못했더라도 봄에 꽃이 피고, 가을에 낙엽이 지며, 여름에 활기찬 기운과 겨울에 쓸씀한 감정을 어렴풋이 느꼈다가 '제목'을 듣는 순간, 무릎을 탁 치며 옳다고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슈베르트의 <송어>도 물고기가 헤엄치는 역동적인 움직임을 '소리'로 표현해내고 있음을 확연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음악에서 '감정'을 느끼게 되면서 음악은 우리의 삶을 표현하기 시작했고, 진리를 탐구하듯 세상의 본질을 '음악적으로 구현'하려드는 경향을 선보이게 되었고, 더 나아가 '진보적인 음악'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그려나가는 등 음악이 표현하지 못할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다양하게 연주되기 시작했단다. 책의 내용이 '걸음마'를 시작한 뒤에 곧바로 '하늘을 나는 듯'한 심한 비약을 담고 있다고 오해할 정도로 '축약'해버리고 말았지만, 내 음악적 소양이 이 정도밖에 되지 못해 더는 표현할 길이 없다는 점을 감안해주었으면 좋겠다. 쉽게 말해보자면,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무궁무진하며, 그렇기에 '사회비판적인 메시지'조차 음악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다시 말해, 니체나 쇼펜하우어처럼 음악을 철학적으로 승화시켰고, BTS는 <봄날>을 발표하며 '세월호'에 대한 마음을 리얼리즘 예술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80년대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발표한 <사계>처럼 당시의 사회상을 음악이 얼마든지 반영할 수 있고,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라는 가사처럼 엄혹한 사회속에서 민중들의 삶이 얼마나 피폐했는지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책의 마무리는 'AI 작곡'과 '크로스오버(이질적인 장르가 서로 합해져서 만들어진 음악)'으로 주제를 열어내며 '음악적 표현에 한계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인간이 만든 음악보다 더 훌륭한 음악을 만든 '인공지능(AI)'의 등장은 향후 음악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아니 그 음악을 '창작'이라고 인정할 수 있을까? 라는 원론적인 비판부터, AI가 만든 음악이 너무 듣기 좋은데도 절대로 들으면 안 되는 것인가? 만약 들어도 된다면, '음원 수익'은 누가 가져야 하는가? 그렇게 '3분 창작'으로 수익을 내는 시장이 형성된다면, 과연 누가 힘들게 '고된 창작 예술'에 뛰어들겠는가? 그렇다면 '모방'밖에 할 줄 모르는 AI 작곡 때문에 음악은 쇠퇴하게 될 것이라는 끔찍한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다. 한편, 대표적 '크로스오버'의 예로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를 선보였다. 동양과 서양을 한데 어우어지게 만든 <범 내려온다>는 요즘 말로 너무나도 '힙하다'. 이른바 전통 판소리에 팝음악을 접목시켜, 앰비규어스댄스 팀의 파격적인 춤까지 합치게 되니, 그 '시너지 효과'는 엄청났다는 것이다. 전통과 현대가 한데 어울어지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면서, 이른바 'K-흥'이 전세계적으로 통한다는 것도 실감하였다. 이는 전통이라는 '익숙함'에 현대가 주목하는 '신선함'을 접목한 순간이기도 하다. 이처럼 '익숙한데 새로운 것'은 앞으로 음악이 나아갈 길이라는 말로 끝맺음을 하였다.

  예술은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조금이라도 낡은 것은 쉬이 도태되고, 대중을 사로잡지 못한 진부함은 외면받기 일쑤다. 그만큼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말이다. 그런 예술에 '철학'까지 담으려한 이 책이 주는 신선함은 대단히 매력적이었다. 물론 '음악철학(미학)'이 새로운 장르는 아니란다. 서양음악 쪽에선 아주 오래전서부터 시도되었고, 한국 음악계에서는 19세기 말 서양음악을 받아들이면서 '사실상' 시작된 셈이다. 한국 음악이 '동양적 철학사상'에 '서양적 철학사상'까지 합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21세기 지금, 전세계는 'BTS'와 '이날치' 등 한국음악에 심취하고 있다. 그렇게 다시 '한국음악'이 서양음악계에 '크로스오버' 되면서 더욱 다양한 시도를 선보일 것이 틀림없다. 학문이 이렇듯 '쉼'없이 새로움을 추구한다니, 익히 알고 있었으나 새삼 '음악, 또한 그렇다'는 사실을 깨닫고서 살짝 심취할 수 있었다. 물론 내 귀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내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겠지만, 음악이 멈춘 다음 '글'로써나마 음악철학의 지평을 넓혀 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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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조영웅전 5 - 악비의 유서
김용 지음, 김용소설번역연구회 옮김, 이지청 그림 / 김영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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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 Review MDCCLVIII / 김영사 27번째 리뷰] 5권 줄거리의 핵심은 남송의 명장 악비가 남겼다는 '무목유서'의 행방이다. 이 '무목유서'는 김용 무협 3부작인 <사조영웅전>과 <신조협려>, 그리고 <의천도룡기>까지 모든 이야기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기 때문에 알아두면 유용하다. 허나 '무목유서'는 실존하는 책은 아니다. '정충보국(精忠報國 : 사사로운 감정 없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나라의 은혜를 갚다)'는 글자를 등에 새기고 전투에 임했다는 '무목 악비'라면 아마도 그런 책을 남기지 않았을까 싶어 글쓴이가 '가상'으로 만든 아이템이다.


  거두절미하고, 결국 '무목유서'는 곽정이 갖게 된다. 그리고 금나라에 맞서 싸운다. 이는 <신조협려>에서도 마찬가지이며, <의천도룡기>에서는 남송도, 금나라도 멸망했기 때문에 원나라에 의해 멸시 당하는 한인들이 훗날 명나라를 세운다는 '역사적 흐름'에 발맞춰 '무목유서'가 유용하게 쓰여진다. 그렇다면 '무목유서의 등장'은 바로 한인들의 '애국심 고취'를 위해서 만들어놓은 것일테다. 아무리 '절대고수'라 하더라도 '군대'를 상대로 싸워서 이길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남송'이 멸망할 때까지 송나라 군대를 이끌고 혁혁한 공을 세운 장군은 '악비'가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래서 <사조영웅전>에서도 무림고수를 등장시켜 '금나라'를 무던히도 괴롭히지만, 결국 금나라가 망한 것은 '몽골부족'을 통일한 테무친, 즉 '칭기즈칸'에 의해서다. 남송은 칭기즈칸에게 숟가락만 얻어서 '금나라'를 멸망시키는데 일조하지만, 결국 칭기즈칸에 의해 남송도 풍전등화의 신세가 되고 만다. 그러다 <신조협려>에서 쿠빌라이칸에게 남송이 멸망하게 되는데...그건 나중의 이야기다.

  4권에서 곽정과 황용은 혼약을 하게 되지만, 주백통 때문에 산통이 깨지고 만다. 딸의 혼약이 이루어지며 우여곡절 끝에 곽정을 사위로 맞아들였지만, 곽정의 의형이 된 주백통이 자신도 모르게 '구음진경'을 익혀버린 탓에 천하오절보다 더 강한 '절대고수'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황약사도 어쩔 수 없이 주백통을 도화도에 더 묶어두지 못하고 풀어주게 되는데, 하필 '황약사의 호의'를 주백통이 무시(?)하고 '꽃배'를 선택하고 만 것이다. 이 '꽃배'는 겉모습은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사실은 배바닥을 허술하게 만들어서 바다에 몰고 나가면 반드시 침몰하고마는 '죽음의 배'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배를 주백통이 '도화도 탈출용'으로 선택하고 말았으니, 육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죽을 운명을 스스로 선택한 셈이다. 그런데 황약사도 순순히 이실직고를 하며 그 '꽃배'에 타지 못하게 했으면 좋았으련만, 그 배가 '자신의 처(황용의 어머니)'와 관련된 사연이 있는 배였던지라 차마 그 속내를 주절주절 이야기하기 싫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꽃배'애 주백통과 홍칠공, 곽정까지 모두 태워 내보냈는데, 그만 바다 한가운데서 침몰해버리고 만 것이다.

  그렇게 5권은 시작부터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무림고수들'이 등장한다. 어찌어찌 먼저 도화도를 떠난 '구양봉의 배'에 의해 세 사람은 구조되지만, 뱃전에 오르자마자 티격태격 싸움을 벌이더니 '곽정 일행'과 '구양봉 일행' 모두 바다에 빠져버리게 되고, 마침맞게 곽정을 구하기 위해 배를 몰고 왔던 '황용'도 그 싸움에 휘말려서 일행들은 모두 '외딴섬'에 표류하고 만다. 주백통만 빼고 말이다. 그렇게 '섬 생활'을 함께 하던 와중에 홍칠공과 곽정, 그리고 황용은 '구음진경'을 연마해서 무공이 상당히 높아졌고, 이를 탐한 '구양봉'은 세 사람을 계속 괴롭히게 된다. 이미 바다에 빠진 곽정 일행을 구조하는 과정에서 '구음진경'을 탈취한 구양봉은 아직 자신조차 수련하지 못했지만, 날로 무공이 높아지는 세 사람을 보고서 죽일 결심을 했기 때문이다. 까닭인 즉슨, '구음진경'을 외우고 있는 곽정과 이를 익힌 황용과 홍칠공을 죽이기만 한다면 '구음진경 필사본'을 갖고 있는 자신만이 '구음진경'의 무공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 미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나쁜 맘을 먹은 탓에 구양봉의 조카인 '구양극'은 커다란 바윗돌에 두 다리가 깔려서 망가져버리는 불우한 일을 당하고 만다. 사실 조카라고 알려져 있지만 몰래 형수와 사통해서 낳은 '친아들'이었다. 어찌어찌 뗏목을 만들어서 섬을 탈출하지만, 홍칠공은 구양봉의 독수에 의해 '독사의 독'에 중독되었고, 간신히 목숨은 건졌지만 끝내 무공을 모두 잃어버리고 만다. 다행히 '구음진경' 속에 치료법이 있었으나 너무 늦게 알아내었기에 홍칠공은 무공을 되살리지 못하고 만다. 그래서 자신의 뒤를 이어 황용에게 '타구봉법'을 전수해주며 '개방의 방주' 자리를 물려주게 된다.

  한편, 자신의 딸이 곽정을 구하러 도화도를 빠져나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챈 황약사는 딸을 찾기 위해 배를 몰고 나갔지만 찾지 못했다. 그러다 바다 위에서 우연히 만난 '완안홍열 일행'과 마주치며 '황용'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사실 이는 '거짓말'이었지만 처음 만난 이들에게서 '거짓말'을 듣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황약사는 딸의 죽음이 '곽정' 탓이라는 억지를 부리게 되었고, 곽정이 이미 죽었다(거짓말)니 그의 스승인 '강남육괴'를 죽여서 분풀이라도 해야 겠다며 떠나버린다. 이 사실을 모르는 곽정 일행은 홍칠공의 마지막 유언을 들어주기 위해 '황궁'으로 숨어들어간다. 황궁주방에서만 만든다는 '음식(원앙오진회)'을 훔쳐먹기 위해선데, 마침맞게 '무목유서'를 찾으러 황궁에 몰래 숨어든 완안홍열 일행과 마주치며 싸움을 벌이게 되었고, 곽정 혼자서 악전고투를 벌이다가 '완안강(양강)'의 배신으로 곽정은 옆구리에 비수가 꽂힌 채 큰 부상을 입고 만다. 그리고 곽정을 살리기 위해서 또다시 '구음진경'에 수록된 '치료법'을 시행하다가 황약사를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

  김용의 소설 가운데 <사조영웅전>이 제법 등장인물이 많은 편이다. 그러다보니 줄거리가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고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 자주 전개되면서 약간의 식상함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어릴 적에 읽을 때에도 <사조영웅전>은 다른 소설에 비해서 손이 덜 가기도 했다. 그럼에도 '곽정과 황용'이라는 두 캐릭터의 매력이 담뿍 들어 있기 때문에 <사조영웅전>을 읽지 않고서 김용의 다른 작품을 논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너무 많은 등장인물 때문에 눈이 돌아갈 수도 있으니, '떼거리'로 묶어서 이해를 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일단 '곽정'을 주축으로 한 '강남칠괴', '전진칠자와 그 제자들과 주백통'으로 묶을 수 있고, '황용'을 주축으로 한 '도화도 문파(황약사, 진현풍, 매초풍, 육승풍, 곡영풍)와 자식들'을 묶을 수 있으며, '완안홍열과 그 떨거지들(구양극, 사통천, 후통해, 양자옹, 평련호, 영지상인, 그리고 완안강)'로 묶어버리며, '천하오절'에 속하는 동사 황약사, 서독 구양봉, 북개 홍칠공, 그리고 이미 죽은 중신통과 아직 등장 못한 남제를 한데 묶어버리고서 이야기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이런 '묶음들'이 세트로 함께 등장해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고 보면 보다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리고 <사조영웅전>의 초반과 후반에만 등장하는 '칭기즈칸과 몽골친구들'이 등장할 텐데, 이들은 '곽정'과 늘 함께 등장하니 그리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 번 이야기가 전개되면 '십여 명'이 함께 등장해서 줄거리를 이어나가기 일쑤라서 여전히 혼란스럽기 그지 없을 수밖에 없다. 그럴 땐 어김없이 '곽정과 황용'이 주축이 되어 있으니 너무 이야기가 번잡스러워진다 싶으면 '곽 앤 황'에게만 집중해도 무방하다. 그렇게 두세 번 탐독하다보면 어느 정도 적응하면서 '묶음세트'도 하나씩 풀어헤치며 혼란스러움을 극복하고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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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12가지 원칙 - 불안한 영혼을 위한 랄프 왈도 에머슨의 내면 수업
마크 마토우세크 지음, 이지예 옮김, 랄프 왈도 에머슨 원전 / 한빛비즈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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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 Review MDCCLVII / 한빛비즈 144번째 리뷰] 19세기 초 미국 독립사상가이자 '개척정신의 선구자'인 애머슨은 니체가 말한 '초인(위버맨쉬)'의 원형을 제시한 것으로 유명하고, 소로가 쓴 <월든>의 기초를 제공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랄프 왈도 애머슨은 낯설기만 하다. 그가 썼다는 <자기신뢰>라는 책이 미국과는 달리 우리에게 그닥 익숙한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의 책을 고대 그리스로마 철학의 한 학파인 '스토아 철학'에서 유래되었다고 이야기한다면 달라질 것이다. 스토아의 정신이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며 '덕', '의무', '공동선'을 강조하였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애머슨의 12가지 원칙'도 어렵게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스토아 학파는 헬레니즘 시대에 '제논'에 의해서 창시되었다. 아킬레우스와 거북이의 달리기 경주를 떠올리게 하는 '역설'의 입담꾼 '제논'과는 이름만 같을 뿐이다. 제논이 만든 스토아 철학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윤리적인 물음으로 시작한다. 이 물음은 자연스레 '믿고 의지할' 무엇이 사라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불안에 떨게 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가 드넓은 땅을 정복하며 곳곳에 자신의 이름을 딴 도시를 건설하며 '그리스의 위대함'을 세상에 알렸으나, 그가 33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하면서 그가 만든 제국은 곧바로 분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사람들의 '세계관(코스모폴리탄: 세계시민)'도 덩달아 허물어지게 되었다. 이렇게 혼란스런 시대에는 '진리탐구' 대신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더 많은 고민을 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 디오게네스의 '견유학파'가 유행할 즈음에 제논의 '스토아 학파'도 탄생하게 되었다. 그는 고대 그리스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에 심취하며, 올바른 도덕철학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가 가르친 장소가 '긴 복도를 따라 기둥이 늘어선 회랑(스토아 포이킬레)'이었기 때문에 '스토아 학파'라고 이름 붙여진 것이다. 그리고 믿고 의지할 것 없는 혼란한 세상을 바로 세울 수 있는 유일한 가치는 '덕'이라고 보았고, 그 '덕'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는 삶(섭리)'이었다. 제논은 만물을 구성하고 변화시키는 원천을 '불'이라 설명하면서(유물론), 이것이 우주와 세계에 '조화'와 '법칙'을 구성하는 근본적인 힘이라 믿었단다.

  이러한 '조화와 법칙'으로 만물을 설명하려는 스토아 학파를 미국적인 것(개척정신)과 절충하여 쓴 저서가 바로 <자기신뢰>라는 책이다. 그리고 이 책의 영향을 받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월든>을 써서 '자연속에 순응하며 사는 삶'의 고귀함을 선보였고, 부당한 것에 마땅히 '저항'하는 도덕으로 올바른 세상을 만들려고 하였다. 한편 프리드리히 니체는 그의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초인(위버맨쉬)'의 영감을 얻었고, '신은 죽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스토아 학파'는 유물론적인 사상이었기 때문에 중세시대처럼 맹목적으로 믿고 따르는 '신'은 필요없다고 말한 것이다. 그보다는 '도덕정신'에 입각한 올곧은 신념(?)만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빛내줄 것이라며, 그러한 신념을 가진 '초인'은 어디에서 찾아와 혼란한 시대에 좌절과 절망에 빠진 당신을 구원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 '당신 스스로' 초인이 되어 '스스로' 좌절과 절망을 이겨내는 것이라고 설명한 것이다.

  이 책 <인생의 12가지 원칙>도 그런 '애머슨의 정신'에 입각해서 쓰여진 책이다. 마치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것처럼 자기 내면에서 그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위대한 정신'을 끌어낼 수 있는 방법을 선보여주었다. 가장 핵심적인 사상은 바로 '덕의 깨달음'이다. 당신 자신에게서 찾을 수 있는 '거인'을 꺼낼 수만 있다면, 당신이 어디에 있든 그 '거인'이 늘 당신과 함께 한다는 사실만 깨닫게 된다면, 당신은 뭐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명료한 진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명심해야 할 것은 그 거인은 '착하다'는 사실이다. 자기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온 인류에게 무한한 이익을 선사할 정도로 '순수한 덕'이 그 거인의 핵심이다. 그러면 나머지 '원칙'들도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고 저절로 통하게 될 것이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는 대단히 '혼란스런 시대'를 살고 있다. 정치는 갈 길을 잃고 갈팡질팡하고 있으며, 경제는 세계 어디에서든 '불안정'하며, 이렇게 혼란스런 상황에서 우리는 진정 '믿고 의지할' 무엇이 무엇인지 몰라 헤매고 있을 따름이다. 이럴 때 '절대 신'과 같이 맹목적으로 믿고 따를 만한 대상이 등장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지 모르겠으나,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중세시대'처럼 맹목적인 믿음으로 위기를 타파해나갈 수 있겠느냔 말이다. 그렇게 믿을만 한 신이 없다면 우리가 그간 '옳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도덕적 올바름'을 다시금 되새길 필요가 있다. 나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해서 기꺼이 자신조차 희생할 수 있는 '옳음' 말이다. 물론 한사람 한사람의 믿음은 큰 힘을 발휘할 턱이 없다. 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방패(능력)를 내 옆사람을 지켜주는데 쓰고서, 나 자신의 몸을 지키는 방패는 '내 옆사람'을 믿음으로서 빌릴 수 있다면, 우리가 사는 사회는 쬐끔 더 '감동적'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믿음(신뢰)을 바탕으로 더 나은 '올바름'을 추구하게 된다면, 너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가 그렇게 '믿고 의지할 수 있을' 무엇을 갖추게 된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더 나아질 것이 틀림없다.

  그렇기에 '자기신뢰'는 기본이다. 나를 믿고 의지할 만한 사람으로 만든 다음, 그 믿음을 주위에 퍼뜨리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기신뢰'를 쌓아나가게 만든다면 우리가 사는 사회는 반드시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이다. 그렇게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자기신뢰'로 마주하게 된다면 어떤 어려운 문제라도 풀어낼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자기인생'을 개척해나가면 '더 많은 인생'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아주 '긍정적인 힘'으로 말이다. 이 책 <인생의 12가지 원칙>은 그런 애머슨의 '믿음'을 쉽게 풀어서 쓴 책이기도 하다. 이제 당신의 인생을 빛나게 해줄 차례다. 선한 영향력으로 온 세상을 밝게 물들이길 바란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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