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녀들의 수첩 - 수학이 여자의 것이었을 때
이다솔 지음, 갈로아 그림 / 들녘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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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이 여자의 것이었을 때 숙녀들의 수첩>  이다솔, 갈로아 / 들녁 (2019) [영제 : The Ladi's Diary : or, Woman's Almanack]

[My Review MMCLXXIII / 들녁 8번째 리뷰] 월간 전문리뷰지 <책이 있는 구석방> 두 번째 리뷰다. 늘 쓰던 리뷰지만 이렇게 격을 맞춰서 쓰려니 막상 어색하기 짝이 없다. 좀더 자유분방하게 쓰는 것이 편하긴 하지만, 그래도 '구독자'도 늘리고 조금이라도 '수익'을 얻기 위해서 뭔가 활로를 찾아야하겠기에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하련다. 이번 책은 인문교양을 쌓을 수 있는 '웹툰 만화'책이다. 우리들에게 '곤충박사(현재 박사 학위를 취득했는지는 모르겠다)'로 널리 알려진 김도윤(갈로아)가 <수학동아>라는 잡지에 연재하던 기획물인데, 이렇게 단행본으로도 나왔었다. 평소에도 갈로아의 책은 즐겨 읽었는데 이런 책이 있었는 줄은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많이 게을러진 게 분명하다. 좀 더 부지런을 떨자는 차원에서 2026년 1월의 [이달의 작가 2 : 갈로아]를 선정하려 한다. 눈치 채신 분들도 있겠지만, 평소 한 달에 20여 편의 리뷰를 써왔기에 [이달의 작가]가 딱 한 명일리는 없다. 많게는 20도 넘을 수 있으니 너무 부담(?) 갖지 마시고, 그냥 즐겨주시면 좋겠다. 어차피 리뷰 쓰는 나만 죽어라하고 쓰면 되는 거니까..쿨럭쿨럭

<숙녀들의 수첩> 줄거리 : 엘리 캠벨이라는 소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시대적 배경은 18세기 영국 사회를 그리고 있고 말이다. 그런데 이 엘리라는 소녀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다름 아닌 '수학' 공부였다. 아니 여자아이가 수학을 좋아한다고? '특이한 여자 아이'네 싶다면 이 책의 기획의도를 제대로 짚었다. 요즘의 상식으로는 여자는 수학을 좋아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싫어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18세기 영국에는 <숙녀들의 수첩>이라는 '수학잡지'가 꽤나 유행을 했고,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여성'이 주요 독자층이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18세기에는 '수학'이 여성들의 교양이었다는 말이다. 심지어 사회에서도 '여성'에게 수학을 잘하기를 요구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지만, 사실(fact)이었다. 남성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던 현대사회에서 여성에게 '수학'을 장려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던 시절도 있었다는 사실이 의아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그럼 왜 오늘날에는 여성들이 수학을 싫어하게 되었을까 하고 말이다.

이런 의문점을 갖고서 이 책의 이야기는 빠르게 전개된다. 소녀 엘리는 <숙녀들의 수첩> 편집장의 조수가 되어 허드렛일을 도와주게 된다. 평소에도 좋아하던 '수학잡지'를 직접 만드는데 참여하게 된 것에 기쁨을 누리던 던 순간에 엘리는 또 하나의 기쁨과 만나게 된다. 바로 '여성 수학자'이자 '최초의 여성 수학교수'인 마리에 아녜시를 직접 만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둘은 함께 <숙녀들의 수첩>을 만드는데 참여하게 된다. 그러면서 엘리를 중심으로 <숙녀들의 수첩>이 만들어지게 되는 일련의 과정과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게 된다. 물론 그러는 중간중간에 인류 역사에 위대한 '여성 위인'들도 탐방할 수 있고, <두뇌는 평등하다>(론다 쉬빈저, 서해문집, 2007)라는 책과 비교분석한 내용이 첨가되면서 페미니즘적인 관점에서 수학자나 과학자 가운데 여성이 절대적으로 소수일 수밖에 없는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짚고 있다.

<숙녀들의 수첩> 관점 포인트 : 앞서 언급한 18세기에는 여성들에게 수학이 권장되었는데, 19세기 이후에는 왜 여성들에게 수학이 기피 대상이 되었는가 라는 의문을 푸는 것이다. 그럼 먼저 18세기에는 왜 여성들에게 수학이 권장되었는지부터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건 다들 아시다시피 여성의 '사회진출'이 원천적으로 가로 막혀 있었기 때문이다. 사회진출이 막혀 있기 때문에 여성에게는 '교육의 기회'마저 박탈 당했고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교육의 기회가 박탈되었는데 왜 여성들에게 수학공부를 권장했던 것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기함할 정도로 놀랐던 사실이 바로 그것이었다. 바로 '집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교육이었기 때문에 여성들에게 수학공부를 권장했다는 것이다. 오랜 옛날부터 남성들이 좋아했던 여성상은 '현모양처'였다. 지혜롭고 현명하지만 어디까지나 남성에게 순종적인 여성상 말이다. 이는 21세기를 살고 있는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이상적인 여성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으니 옛날에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기에 집안에서 예쁘게 꾸미고 탱자탱자 놀고 먹지만 말고 밖에서 뼛골 빠지게 일을 하는 남성들의 수고로움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여성에게 '지혜로움', '현명함', 이런 것들을 요구했고, 집안 살림부터 남편 사업의 손익계산을 하는 일이라도 덜어주는 차원에서 여성들에게 '수학공부'를 장려했더란 말이다. 결국 사회진출을 위한 공부는 허락할 수 없지만 '내조의 여왕(!)'이 되기 위한 공부라면 쌍수를 들고 환영하겠다는 심보에서 18세기에 여성들의 수학공부를 장려했던 것이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숙녀들의 수첩>이란 '수학잡지'는 무려 130여 년동안 꾸준히 팔려 나갔더란다. 여성들에게 '교육의 기회'가 원천적으로 차단된 상황에서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남성들 못지 않은 성취욕구가 왕성한 여성들 사이에서 <숙녀들의 수첩>이 엄청나게 인기를 끌었고, 어차피 사회진출도 하지 못하겠지만 '똑똑한 여성'을 마다 하지 않던 남성들도 <숙녀들의 수첩>에 대해서 일부분이지만 환영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참고할 만한 부분이 있다. 오늘날의 수학이나 과학이 '전부' 남성 중심적인 시각에서 기획되고 있는 점이 여성들이 수학이나 과학을 싫어하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숙녀들의 수첩>이 여성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여성의 관심사'를 수학문제에 반영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수학문제'라고 하면 로켓의 발사속도를 구하고, 야구나 축구 경기의 승률을 구하는 문제가 전부인데, <숙녀들의 수첩>에는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로맨스'나 '사랑'에 관한 수학문제가 출제되었기 때문에 여성들이 수학문제에 더 집중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다. 둘은 파티장에서 처음 만나 서로의 마음을 확인을 하고 결혼을 약속했다. 그리고 남자가 결혼 승낙을 받기 위해 여자의 집을 찾아갔다. 하지만 여자의 완고한 아버지는 결혼 허락을 하지 않으셨고, 슬픔에 빠진 남자는 허탈한 마음으로 여자의 집을 홀로 떠나게 되었다. 그 뒤 여자는 아빠에게 울면서 매달렸고 여자가 슬퍼하는 모습에 마음이 아파진 아버지는 결혼 승낙을 하게 되었다. 여자는 기쁜 마음에 얼른 남자를 뒤쫓아가려 했지만, 남자는 이륜 마차를 타고 1시간에 4Km/s의 속도로 떠난 뒤였다. 여자는 서둘러서 사륜 마차를 빌려서 30분에 5Km/s의 속도로 달린다면 여자는 얼마의 돈을 준비하면 충분할까? 단, 사륜 마차를 빌리는 값은 기본 요금이 10페니이고, 1Km당 3페니다.

실제 출제되었던 문제 유형과 유사한 문제를 재구성해봤다. 왜냐면 실제 출제문제는 오늘날의 사회관점으로 봤을 때 '여성의 인권문제'부터 시작해서 '결혼지참금'까지 담고 있기에 부적절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신선하지 않은가? 요즘 나오는 수학문제집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유형이고, 여자아이들이 봤을 때 수학문제를 풀고 싶어지는 그런 마음이 들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요즘 나오는 수학이나 과학 문제집은 좀 참고해봄직 할 것이다. 여자는 수학을 원래부터 잘 할 수 없다고 단정지을 것이 아니라 '여자들의 관심사'에 맞게 집필을 수정하게 되면 여자도 어릴 적부터 수학에 남다른 관심을 쏟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요즘에는 '너무 남성중심적'인 것이 문제의 발단이 되곤 하니 개선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바꿔나가는 것이 좋을 듯도 싶다.

에피소드 : 실제로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생각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남성과 여성의 '취향'을 강요하는 사회가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라는 물음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왜 남자는 울면 안 되고, 여자는 울어도 괜찮은 것일까? 왜 남자는 파란색을 좋아해야 하고, 여자는 분홍색을 좋아해냐 하냔 말이다. 남자도 아프면 눈물이 나는 인간이긴 마찬가지고, 여자가 파란색 옷을 입어도 얼마나 예쁘냔 말이다. 물론 무조건적인 평등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남녀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남자에게 치마를 입혀야 하고, 여자에게 무거운 짐을 들어서 애써 '평등'이라 우기는 것도 무식한 짓이긴 마찬가지다. 우리가 간과해선 안 될 것은 '여장'을 해도 정말 예쁜 남성도 있는 반면, 남성보다 더 강한 '피지컬'을 가진 여성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특수한 경우'를 보편화하여 천편일률적으로 적용시키려는 것이 말도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자는 '파랑', 여자는 '핑크'라고 고정불변의 선입견을 강조하고, 더 나아가 강요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이런 고민들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페미니즘'이다. 오늘날의 페미니즘 논쟁은 이보다 훨씬 심각하고 첨예하지만, 그런 심한 논쟁은 차치하고 진정으로 '양성평등'을 이해하고, '남녀차이'를 인정하고, '남녀차별'을 근절하려고 노력하는 여성운동으로 이해하고 접근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고 '억눌린 여성'들에게 더 넓은 의미에서 사회진출을 보장하여 궁극적으로 '인간차별'이 없는 사회를 만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페미니즘이란 이름을 걸고 '대결적인 양상'을 보이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물론 최초의 여성 페미니스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craft)는 그녀가 쓴 <여성의 권리 옹호>(1792)에서 여성의 교육기회와 양성평등을 주장했다. 그녀가 시초였기에 다소 과격한 주장을 폈고, 그런 까닭에 '페미니즘'은 폭력적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기도 했지만, 남성 주류사회에서 여성의 동등한 인권선언을 강렬하게 인상지어 주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행보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전통(?)이 오늘까지도 과격한 페미니스트들의 행보로 이어지고 있는 것을 우리는 어떤 입장에서 바라보아야 하는 걸까? 개인적으로는 '그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여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 우리 사회가 더 문제라고 본다.

한편, 이 책에서 <두뇌는 평등하다>는 상당히 많이 언급되곤 한다. 그 때문에 이 책이 '어린이 독자'에게 "여자도 얼마든지 수학을 잘 할 수 있단다"는 메시지만 던지는 것이 아니라 '페미니즘적 사고'를 더해서 진정한 양성평등을 위해서 우리가 해나가야 할 일이 무엇인지 개념을 확장시켜주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애초에 <숙녀들의 수첩>이 단순한 산수문제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어려운 '삼각함수'와 '미적분' 문제까지 풀이와 정답을 실었기 때문이다. 이는 당시 이 잡지를 구독하던 있던 독자들의 수준이 꽤 높다는 것을 유추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그래서 이 잡지를 여성들만 좋아한 것이 아니라 남성들도 상당히 애독해왔던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실제로 어린 소녀들뿐만 아니라 소년들도 '수학교재'로 활용할 정도로 보편적인 수학문제를 수록하였고, 독자들이 직접 '수학문제'를 만들어서 투고하고, 그 문제의 '정답'을 맞추려 활발하게 활동했다고 전해진다. 이것이 바로 이 잡지가 130여 년 동안 장기연재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그런데 왜 19세기 들어서 '수학'은 여성들에게 인기 없는 학문이 되었을까? 그건 아이러니하게도 '과학의 발달'이 원인을 제공했단다. 바로 '해부학'과 '골상학'이 주류 과학으로 전면에 서자 '남녀의 골격 차이'가 여성이 왜 남성보다 저능한 존재인지 증명하는 '과학적 증거'로 빼박이 되었고, 그 때문에 여성은 남성보다 '머리'는 작고, '골반'은 큰 골격 덕분에 공부와는 적성이 맞지 않으니 애 낳고 아이 기르는 일에 전념을 하라는 식으로 사회분위기가 바뀐 탓이 크다고 지적한다. 이는 20세기 들어서도 '기본 상식'이 되었고, 그 사이에 여성은 공부와 어울리지 않는 성향을 가지고 있으니 그냥 포기하라는 식으로 강요 아닌 강요를 요구한 셈이다. 그 덕분에 21세기에 들어서도 '여자는 수학을 못 해도 돼', '여자니까 수학을 못하는게 당연한 거 아냐'와 같은 말이 진리처럼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해부학적 차이는 지능의 차이와 아무런 상관이 없고, '골상학'은 사이비과학으로 판명이 난 오늘에도 여전히 말이다.

이제는 '여성 인력'이 너무도 절실한 시대가 되었다. 어릴 적에 특출난 재능을 선보이는 '여성 인재'를 양성해서 유용하게 쓰는 사회가 미래를 선도하는 일이 더욱 빈번해지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여자니까 수학을 못 하는 건 당연해'라는 바보같은 말에 휘둘릴 참인가? 인간은 평등하다고 믿는 사회에서 이에 어긋나는 '상식'이 만연한다면 반드시 뜯어 고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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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고타마 2 - 콜드스틸 원정대 고타마 2
이우혁 지음 / 비룡소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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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타마 2 : 콜드스틸 원정대> 이우혁 / 비룡소 (2012)

[My Review MMCLXXII / 비룡소 8번째 리뷰] 월간 리뷰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을 2026년 새해를 맞아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이 리뷰가 월간지로써 첫 리뷰가 될텐데 모쪼록 예쁘게 봐주셨으면 좋겠다. 애초에 '리뷰'의 뜻이 대강의 줄거리를 한 눈에 알아보기 쉽게 풀어쓴 글이란 뜻이기에, 먼저 책의 내용을 한 눈에 알기 쉽게 추려서 쓰는 것에 충실할 것이다. 그렇지만 '줄거리'만 대충 추려 쓰면 '스포일러'가 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기왕이면 줄거리를 요약하되 '직접 책을 읽어 보고 싶은 리뷰'를 쓰는 것에 집중하려 한다. 한편 '월간 리뷰잡지'를 표방한 김에 한 달 동안 '주제별'로 집중하는 리뷰를 쓸 작정이다. 이를 테면, [이달의 작가] 코너 같은 경우에는 '한 작가의 책들'을 연달아 읽고 집중적으로 쓸 것이다. 이 달에 '이우혁'을 읽었으면 대체로 '이우혁의 또 다른 작품'을 집중적으로 리뷰할 것이고, 못다한 작품은 '다음달'에 바통을 이어 받아 연재형식으로 꾸준히 이어 쓸 것이다. 이렇게 '첫 문단'에는 <잡지>를 읽는 느낌을 최대한 살려서 쓸 것이다. 편집자의 썰 이야기가 식상하다면, 첫 문단을 건너뛰고 책리뷰만 읽어도 좋겠다. 자, 이제 시작이다. 2026년 1월의 [이달의 작가 1 : 이우혁]이다. 작년과 재작년부터 쭉 리뷰했던 작가라서 식상할 수도 있겠지만, 이 양반이 쓴 책이 너무 많아서 그렇다. 앞으로 최대한 압축적으로 읽어서 끝내도록 하겠다. 얼마 안 남았다. <왜란종결자>, <치우천왕기>가 남았다. <뉴 퇴마록>(가제)이 나오기 전에 얼른 서두른다는 다짐도 해둔다.


<고타마 2>의 줄거리 : 1권에서 '고타마'의 도움을 받아 콜드스틸의 골렘 군단을 물리친 듀란 왕자는 악의 근원인 '크롬웰'을 물리치려 콜드스틸로 향하게 된다. 하지만 콜드스틸까지 가는 길은 꽤나 험난했다. 크롬웰을 따르는 괴물 군단이 너무도 많았고, 심지어 듀란 왕자 일행을 감시하는 범위도 넓었고, 어째서인지 듀란 왕자에 대한 소문도 빠르게 읽어나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듀란 왕자 일행은 최대한 몸을 숨기며, 감시의 손길이 닿지 않는 험난한 곳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보니 속도가 나질 않았다. 그러다 숲속에서 '거인 테트리아곤'을 만나 곤욕을 치르게 된다. 테트리아곤은 원래 착한 마음씨를 가진 거인이었으나 크롬웰의 무시무시한 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크롬웰을 돕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숲속을 몰래 지나가는 듀란 왕자 일행을 상대로 '갓 구워낸 빵'을 달라는 짓꿎은 장난을 쳤지만 원래부터 착한 거인이었던 테트리아곤은 듀란 왕자 일행을 순순히 놔준다. 하지만 듀란 왕자가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실수를 범하자 테트리아곤은 크롬웰을 돕고 있는 처지였기 때문에 듀란 왕자의 앞길을 막아서게 되는데, 숲속의 나무만큼이나 커다란 거인 테트리아곤의 맹공격을 막아내고 크롬웰이 있는 콜드스틸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


<고타마 2>의 관전 포인트 : 사실 전형적인 '판타지 소설'의 줄거리와 청소년 독자들이 읽기에 딱 좋을 '성장 동화' 스타일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책내용은 그닥 특별할 것이 없다. 하지만 1권에서 밝혀졌던 '고타마의 힘'을 발휘하기 위한 제약 조건이 <고마타>를 읽는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조건은 세 가지였다. 첫째,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힘만 원할 수 있다. 둘째, 스스로가 확실히 깨닫고 아는 힘만 원할 수 있다. 셋째, 이전에 사용했던 힘보다 강한 힘만 원할 수 있다. 이 세 가지 조건에 위배되지 않는다면 고타마는 '상상의 힘'을 발휘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첫 소원으로 '물리력'을 상상했다면, 첫째 조건에 의해 앞으로 '물리력'의 소원을 이루어지지 않게 된다. 이렇게 '물리력', '마법력', '원소력' 등등 힘의 원천이랄 수 있는 상상을 했더라도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힘'이 아니라면 둘째 조건에 의해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불의 힘을 써서 몽땅 불태워버려!'라는 두루뭉술한 소원이 아닌 '화산이 폭발하듯 뜨거운 마그마를 뿜어내고, 대지에는 용암이 흘러넘쳐서 모두를 불태워버려!'라는 식으로 구체적인 상상이어야 하고, 실제로 '화산폭발'을 머릿속에 정확하게 그리듯 알고 있어야 소원이 발휘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식의 소원은 곧 바닥이 나버리게 된다. 왜냐면 셋째 조건이 이전에 사용한 힘보다 강한 힘이란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같은 '원소력'이 아니라는 점을 이용해서 '또 다른 원소력'을 계속 써서 소원을 빈다고 했을때, 처음에 불을 이용했다면, 다음 상상은 '불'보다 강한 '물의 힘'을 사용하고, 그 다음엔 '물'보다 강한 '흙의 힘'을, 그 다음엔 '흙'보다 강한 '나무의 힘'을, 그 다음엔 '나무'보다 강한 '쇠의 힘'을, 그 다음엔 '쇠'보다 강한 '불의 힘'을 사용하는 식이 될텐데, 이렇게 되면 다시 '원점'을 되돌아와서 '이전보다 더 강한 힘'을 써야 한다는 조건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얼렁뚱땅 이전보다 더 쎈 힘이라고 우기기라도 하게 되면, 다시 '확실히 깨달은 아는 힘'이라는 둘째 조건에 위배되기 때문에 점점 까다롭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식이면 소원은 얼마 빌지도 못하고 '고타마의 힘'을 소진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듀란이 떠올린 방법은 '원한'이나 '슬픔', '우정', '사랑'과 같은 감정적인 힘을 떠올렸다. 물론 고타마는 이런 힘에도 기꺼이 힘을 빌려주었다. 하지만 이런 감정의 힘은 서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는 점 때문에 '셋째 조건'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 그렇다고 '이 감정보다 저 감정이 훨씬 더 쎄다'고 마냥 우길 수 있을까? 이런 딜레마에 빠진 듀란 왕자의 심리상태를 지켜보는 것이 첫 번째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하지만 관전 포인트가 이 정도로 그친다면 이우혁 작가답지 못한 일일 것이다. 이우혁 작가의 큰 특징은 '적'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지닌 힘이 너무 강해서 공포스러울 정도이기 때문이다. 실로 듀란 왕자 일행을 숲속에서 막아선 '거인 테트리아곤'만 해도 숲속의 커다란 나무를 이쑤시개 뽑듯 가볍게 던져버리는 엄청난 덩치를 자랑한다. 헌데 착한 거인이 나쁜 마음을 품게 된 까닭이 최종보스인 '크롬웰'이 더 강하기 때문일텐데, 크롬웰의 수하로 등장하는 '크락수스'라는 드래곤은 엘란 왕국과 나이엘 왕국을 사뿐히 내려 앉는 것만으로도 멸망시킬 정도로 '거대한 크기'를 자랑했다. 책속의 묘사를 그대로 인용하자면, 크락수스가 듀란 왕자 일행 앞에 모습을 나타내자 갑자기 밤이 찾아온 듯 하늘이 깜깜해졌고, 맹렬한 돌풍이 불어온 까닭은 크락수스가 착륙을 하기 위해 날개짓을 했기 때문이고, 크락수스가 날개를 접고 두 다리로 땅을 딛고 서자 커다란 산골짜기 4개가 만들어진 듯 했는데, 알고 보니 그 산골짜기는 크락수스의 발톱일 뿐이었다고 한다. 두 날개를 펴면 하늘을 덮고 발톱 하나가 커다란 산등성이처럼 보일 정도이니 얼마나 커다란 존재겠느냔 말이다. 그리고 그런 '크락수스'를 강아지 부리듯 데리고 노는 '크롬웰'은 또 얼마나 가공할 만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과연 이런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적을 듀란 왕자는 물리칠 수 있을까?


<고타마 2>의 주제 : 하지만 이 책의 주제는 단언컨대, '사랑'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위대한 힘이라면 '사랑의 힘' 말고는 떠올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랑의 힘이 과연 선하고 좋은 결과만을 가져올까?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저지른 엄청난 잘못을 너무도 많이 보고 경험했을 것이다. 잘못된 사랑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일도 많을 것이다. 어쩌면 그런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시작은 '사랑'인 것만은 틀림 없다. 그런 잘못 가운데 가장 큰 잘못은 '이기적인 사랑'일 것이다. 자기 자신만 충족시키는 사랑은 다른 사람의 '희생'을 담보로 삼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희생'조차 숭고한 사랑의 한 모습일 수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당사자들끼리'만 해당되는 일이고, 제삼자의 관점에서 볼 때에 그건 '사랑'이라고 할 수도, '사랑'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럼 듀란 왕자가 발휘해낼 '궁극의 힘'이자 마지막 '고타마의 힘'은 무엇일까? 그걸 이해하면 이 책을 제대로 읽은 것일테다.


에피소드 : 천만 부의 판매고를 올린 <퇴마록> 작가 이우혁의 '판타지 소설'이자 '성장 소설'이기에 재미는 보장한다. 하지만 어린이가 읽기에는 너무 난해한 줄거리가 아닐까 싶다. 이우혁 작가는 '청소년 소설'이라고해서 '성인 독자'가 읽으면 안 된다는 말은 있을 수 없기에 <고타마>를 그렇게 썼노라고 해명(?)했지만, 어른이 읽기에도 살짝 난해한 판타지 소설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차라리 J. R. R. 톨킨의 <반지의 제왕>이나 J. K. 롤링의 <해리포터>처럼 장편소설로 썼으면 덜 난해했을 것 같다. 2권의 짧은(?) 분량으로 장대한 이야기를 함축하고 줄거리를 압축하다보니 '내용 전개'가 매끄럽지 못하고 이야기가 난해해진 것은 아닐지 의심해본다. 차라리 본인이 쓴 <퇴마록>의 절반 만큼만 이야기를 전개시켰더라도 어린이 독자들은 충분히 읽었을 텐데 말이다. 애초에 기획 단계에서 '청소년 소설'로 한정해놓고 무리하게 진행한 결과가 아니었겠느냐는 추론적 의심을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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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 산책 1960년대편 1 - 4.19 혁명에서 3선 개헌까지 한국 현대사 산책 6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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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한국 현대사 산책 1960년대편 1권 : 4·19 혁명에서 3선 개헌까지>  강준만 / 인물과사상사 (2004)

[My Review MMCLXXI / 인물과사상사 29번째 리뷰] 내가 좀 그렇다. 뭔가 시대의 흐름을 읽는 '신기(神技)'는 갖고 있지만 대부분 '뒷북'을 치는 경우가 많다. 유행에 첨단을 걸으며 발빠르게 쫓아가지는 못하지만 대세를 판단하는데 있어 느리지만 틀림은 없는 편이다. 이런 내 성향을 아주 잘 맞추는 증거가 바로 '개정판'이다. 왠지 꽂히는 책이 있어 남들보다 뒤늦게 '책구매'를 하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개정판'이 출간하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퇴마록>이 그랬다. 물론 30년 전에 구매해서 읽은 '초판본'이 있지만, 중간에 '개정판'이 나와 구매하지 않았다가 재작년 쯤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올해 '개개정판'이 출간했다. 이런 경험이 참 많다. 이문열의 <평역 삼국지>도 '구판'을 신나게 사모으니 '새책'이 떡하니 나왔고, 공원국의 <춘추전국 이야기>도 그런 케이스다. 그런데 이 책도 올해 '개정판'이 출간했다. 한창 구판을 읽으며 올해 신나게 구매에 열을 올렸더니 '연말'이 되어서야 '개정판'이 출간된 것이다. 단순한 '표지갈이'만 하는 수준이 아니라 출간한 지 20년이 지났으니 내용도 대폭 추가한 '개정증보판'이 출간된 듯 싶다. 이참에 '구간'과 '신간'을 함께 읽어야 겠다. 시리즈가 방대한 관계로 '개정판'을 바로 접할 수 있을지는 장담하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이제 1960년대다. 4·19 혁명으로 무너진 이승만 정권으로 새로 출발한 '제2공화국 체제'로 시작했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혁명 이듬해인 1961년 5월 6일에 박정희가 이끄는 군내부의 소장파들에 의해 '군사쿠데타'가 일어나 정치권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물론 당장 체제를 전복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곧 야심을 드러냈고 정권을 탈취해 '제3공화국'을 열었다. 박정희는 자신들이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정권을 차지했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기에 국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정권을 빠르게 안정시키기 위해서라도 '경제성장'을 달성시켜야만 했다. 그리고 그 달성목표를 향해 무조건 돌진했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점들은 잠시 묻어두고 오직 '달콤한 열매'를 따기 위해 혈안이 되었던 셈이다. 이게 대한민국의 1960년대라고 요약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이다.

그럼 강준만은 박정희 정권을 뭐라 정의했을까? '기회주의'라고 단언했다. 사전적 의미로는 '일정한 신념이나 주관이 없이, 그때그때의 형편에 따라서 되는 대로 행동하는 사람을 가리킨다'라고 설명되었다. 허나 '기회주의'는 주체나 동인(動因)에 따라서 여러 갈래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에 박정희 정권에 대한 평가가 딱 들어맞는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묘하게 잘 어울리는 것 같지 않은가? 또한 기회주의는 부정적인 관점으로 볼 수도 있지만, 긍정적인 관점으로 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 대한민국 국민들이 '박정희 정권'에 대한 상반된 평가도 잘 설명할 수 있는 대목을 엿볼 수 있다. 심지어 개인에 따라서는 '기회주의'를 싫어하기도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읽기 시작한 야마오카 소하치의 <대망>(원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주인공 '덕천가강'도 기회주의에 끝판왕으로 평가 받는 장본인 아니겠는가. 들리는 소문에는 60, 7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이 소설에 그토록 열광했다고 하던데, 그럴 수밖에 없던 이유가 바로 '기회주의'가 판을 치던 시절이었기 때문으로 이해하면 좋을 듯 싶다.

그럼 기회주의는 왜 판을 치는 것인지 강준만의 설명을 들어보자. 한국사회에 기회주의가 난무할 수밖에 없는 몇 가지는, 첫째, 역사가 격랑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 압축적 근대화와 그에 따른 '역사 지체 현상' 때문이다. 셋째, 과도한 외부 환경의 영향이다. 넷째, 공적 영역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독특한 '소용돌이 문화' 때문이다. 라고 풀어냈다. 다른 건 이해하기 쉬우니 둘째치고, '소용돌이 문화'란 무엇인가? 흔히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고 표현하는 것처럼 한 번 휘말리면 좀처럼 벗어나기 힘든 현상을 말하는 것일테다. 바로 우리 사회문화가 그랬다는 말이다. 한국 사회의 동질성과 중앙집중성은 곧잘 '극단주의'를 낳았기 때문이다. 중간이 설 자리가 없고, 대립의 양 끝단에서 첨예하게 갈등을 불지피며 어느 한 쪽이 지쳐 떨어져 나가 죽을 때까지 아귀 다툼을 벌이고 만다. '모 아니면 도'인 상황이 너무 쉽게 벌어진다. 흔히 말하는 '치킨 게임', '승자독식 게임'이 우리 나라에서 횡행한 까닭이다. 이 때문에 외국 언론에서도 한국을 '민주주의 교과서'라면서 극찬하면서도, 한편으론 '양극단'에서 첨예하게 대립하는 세력간의 알력다툼이 빈번하게 벌어지는 것을 주목하며, 21세기 한국 같은 민주국가에서 '비상계엄'이 벌어지게 된 원인이 거기에 있다며 분석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어찌보면 위태롭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런 '기회주의의 폐해'를 너무 오래 경험한 탓일까? 남북이 대치하고 아직도 '전쟁중'인 나라인데도 이렇게나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외국인들의 눈'에는 신기하게 보여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초긴장된 상태로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론 그런 숨막히는 긴장감이 대한민국이 발빠르게 성장하는 원동력이었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긴장의 끈을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 아니,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이제 다른 나라를 선도하는 국가로 발돋움했는데, 대한민국처럼 빠르게 성장하고 싶으면 '초긴장 속에서 살아가라'고 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지 않겠는가 말이다. 우리는 이를 '역사적 비극'으로 보고 있는데, 너희들도 비극적으로 살아보라고 조언을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럼 새로운 원동력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그걸 찾기 위해서라도 한국 현대사를 다시금 조명해야만 할 것이다. 철저한 반성 위에서만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암튼, 혁명 이후 세워진 '장면 내각 정부'에 대한 평가부터 시작해보자. 일단 장면 총리는 리더십이 부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한민국사에서 최초의 '의원내각제'가 시작부터 실패작이었느니, 대한민국은 '강력한 대통령제'가 더 잘 어울리느니 그런 평가는 논외로 친다. 어떤 민주제도를 따르던 중요한 것은 '주권'을 가지고 있는 국민들,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제대로 운용만 한다면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초의 의원내각제라는 불행에, 리더십 부재라는 불운이 겹쳐서 '혁명 이후' 한국 사회는 극도로 혼란스러웠고, 그로 인해 '5·16 군사정변(군사쿠데타)'는 필연이었다는 설명은 '결과론'일 뿐이다. 이는 오히려 쿠데타에 성공한 세력이 '승자의 역사'를 쓴 것에 불과하다고, 자신들이 한 행적을 '정당하게' 평가내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김대중 대통령의 당시 '장면 총리'를 평가한 이야기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장 총리는 보기 드물게 선량한 사람이었지만 심약하였고, 위기대처 능력에 있어서는 문제가 있었다."(<역사와 함께 시대와 함께 : 김대중 자서전 1>, 인동(1999), 146쪽) 많은 사람들이 평가하기를 장면은 정치인이 아니라 '성직자'에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했다. 실제로도 '천주교'에 몸담고 있다가 청렴하다는 평가를 받아 정치인이 된 케이스다. 개인적으로는 근면 성실 청렴 결백하고 깨끗한 사람이었지만, 정치를 하기에는 '리더십'이 심각할 정도로 부족했고, 심지어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킨다는 정보를 접하고도 "미국이 있는데 설마 쿠데타를 일으킬 리 없고, 일으켰다 하더라도 성공할 리 없다"는 식으로 정치적 감각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장면 내각'을 무능력하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리더십은 부족했더라도 성정이 깨끗한 사람이 지도자로 있으니 적어도 '부정부패'에서 멀리 떨어질 수는 있었다. 그 결과, 혁명 직후 쏟아져 나온 시민들의 불만과 그로 인한 시위 덕분에 혼란스러운 국면도 조금씩 잦아들고 있었다. 그러니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명분 가운데 극도의 정치적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는 대목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인 셈이다. 그보다는 저들의 '정치적 야욕'이 군사정변의 주요 목적이었다고 보는 것이 훨씬 논리에 맞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역사는 '군사정변'을 일으킨 세력이 정권을 잡는 방향으로 흐름을 틀었다. 한국에 연이어 대혼란이 찾아온 시점이었다. 그런데 왜 북한과 미국은 잠잠했던 것일까? 나중에서야 김일성은 그때가 절호의 기회였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지만, 북한은 명백히 오판을 했던 셈이다. 왜냐면 박정희가 잠시나마 '남로당 출신'이었다는 점에서 고무되었다고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쪽에 큰 혼란이 벌어졌는데도 '남로당의 봉기'를 기다렸다는 정황이 곳곳에서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북한 방송 청취'가 가능했었다고 한다. 이승만 시절은 말할 것도 없고, 박정희 정권 초기에도 남쪽 사람들이 '새 소식'을 접하는 방송으로 '북한 방송'이 늘 10~20%를 웃돌았다고 하니 말이다. 비단 남파 간첩이 많았기 때문이 아니라 정세가 극도로 불안했고, 정부를 100% 믿을 수 없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국민들도 나름의 '고육책'이었다. 물론 청취하다 들키면 '빨갱이'로 낙인 찍힐 위험이 크지만, 이승만을 믿었다가 제 발등을 찍힌 국민들의 감정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던 셈이다.

그럼 북한은 그렇다치고, 미국은 '군사쿠데타'를 왜 용인했던가? 미국은 애초부터 '정의로운 나라'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들에게 '정의'는 오로지 '미국 이익'이었다. 한마디로 한국 정부에 누가 권력자로 들어서던 미국의 이익에 큰 걸림돌이 없다면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이는 우리가 '혈맹'이라 부르면서 미국에 의지하고 '숭미(崇美)주의'를 가지고 있던 것에 비하면 정말 배신감과 자괴감에 빠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런 미국을 상대로 박정희 군사정권은 발빠르게 움직였다. 바로 '반공'을 국시로 못박으며 발빠르게 태세전환을 꾀했던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자신이 '남로당 출신'이었다는 사실이 작용한 결과다. 미국의 신뢰가 없으면 자신들의 정권유지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직감하고, 빠르게 '빨갱이 색출'에 나섰던 것이다. 따라서 '혁명군'은 강력한 반공국가 건설을 표명했고, '좌익 사상범들을 체포'하고, '보도연맹 관련자들을 체포'하자. 심지어 좌파 이데올로기에 물든 지식인, 사회단체 지도자, 노조 지도자 등 사회 불만세력과 좌익 활동 경력자들을 대대적으로 수색하고 체포하는 성과를 미국에 그대로 전달했고, 미국의 환심을 사는 데에도 큰 성과를 거뒀다. 박정희는 '혁명공약 제1항'대로 반공을 국시로 확고히 했다는 것으로 미국의 사상검증을 무사히 통과했던 것이다.

이로써 북한은 착각과 오판으로 절호의 기회를 날렸으며, 박정희 정권은 발빠르게 체제 안정을 구축하는 행보를 연이어 밀어붙였다. 5월 19일 계엄사령부는 <민족일보> 폐간 통보와 함께 조총련계로부터 약 1억 환의 불법도입자금으로 발간한 것을 빌미삼아 '괴뢰집단을 옹호하는 언론'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씌워서 3명을 사형을, 5명은 중형을 선고했다. 이에 국내의 언론과 문인 들이 관대한 처분을 요청하는 진정서를 박정희 앞으로 보냈으나, <민족일보> 대표였던 조용수는 그해 12월에 사형을 집행했고, 2명은 무기징역으로 감형하는 선에서 끝냈다. 당시 32살이었던 조용수는 "민족을 위해서 할 일을 못하고 가는 게 억울하다. 정규조(친구) 동지에게 돈을 꾸어다 신문 만드는 데 썼는데, 갚아주지 못하고 가게 돼 미안하다"는 유언을 남겼단다. 이게 소위 '좌익사상'에 물들고 '국가전복'을 획책하던 심대한 문제를 일으킬 만한 '용공분자의 최후 발언'이란 말인가? 그냥 '평범한 시민'이자 언론인으로서 바른 말을 하며 올곧게 살아가려는 젊은이의 목소리처럼 들리지 않느냐는 말이다.

우리가 박정희 정권의 면면을 살펴보면, 국가적인 큰 이미지로 보면 대단히 훌륭한 업적을 남긴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허나 그렇게나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위대한 성과를 만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희생양'을 자처했던 국민 개개인에게는 비극을 넘어 참극이 벌어지는 풍경을 살펴볼 수 있다. 이승만 때에도 그랬지만, '소수'를 위해서 '대다수'를 희생시켜야 했던 우울한 역사가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셈이다. 오늘날에도 '국가'를 위해서 개인의 '희생'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수구꼴통들이 많은데, 왜 '자신'이 그 희생양을 자처하지 않는지는 참으로 의문스럽다. 전광훈 목사, 전한길 열사...당신들이 가진 '목숨'까지 내놓으라고 말하진 않겠다. 허나 당신들이 가진 '전재산', 당신 가족들의 명의로 되어 있는 '모든 재물'을 대한민국 국민들을 위해서 헌액하라. 그러면 당신들의 애국심을 쬐끔 믿어줄테니 말이다. 당신들이 찬양하는 '윤어게인'이 실현된다면 바로 그런 시대로 되돌아가게 될테니 말이다.

이런 말을 들은 수구꼴통들은 이리 항변한다. 박정희가 경제성장을 했기 때문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이렇게 잘 먹고 잘 살고 있지 않느냐고 말이다. 그러니 자본주의 만세고, 반공정신에 투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북한처럼 굶어죽기 딱 좋을테니 말이다. 이건 맞는 말일까? 앞서도 말했지만, 박정희 때 경제성장을 이룩한 것은 사실이다. 허나 '박정희'가 경제성장 시킨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주체는 엄연히 '대한민국 국민들'이고, 수없이 미싱을 돌렸던 공순이를 비롯한 노동자와 땡볕에서 땀 흘려 곡식을 일궈낸 농민들이었다. 이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수출도 못했고, 먹거리 해결도 못했다. 그런데 어찌 '박정희' 혼자만의 공로냔 말이다. 물론 훌륭한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모두에 언급했던 '소용돌이 문화'도 바로 그것이 핵심이다. 구심적이 있었기에 그 중심을 향해 똘똘 뭉쳤고, 정상을 향한 일치단결이 한몫 했기 때문에 이뤄낸 '한강의 기적'이었다고 말이다. 그렇다. 그런 점도 있다. 그런데 '한강의 기적'이란 엄청난 성과조차 '소수만을 위한 잔치'에 불과했다는 지적은 어찌 대답할 것인가? 박정희 때 이룬 경제성장은 국민들의 허리띠를 졸라매서 만들지 않았느냔 말이다. 그런데 경제성장으로 얻은 열매는 누구에게 돌아갔나? 소수의 재벌들에게 '재투자'란 명목으로 대부분 돌아갔고, 국민들은 여전히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고, 반공을 위시한 공포정치로 수많은 국민들은 숨죽이며 살아야 했다.

우리는 거시적인 성과에 취해서 미시적인 문제점을 등한시 하는 경향이 아직도 여전하다. 강준만이 지적하는 '소용돌이 문화'가 그것이다. 이제 우리는 시각을 다변화해야 한다. 21세기 세계정세가 혼란할수록 우리끼리 더욱 똘똘 뭉쳐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혼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들어서 스스로의 힘으로 헤어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이럴수록 우리는 더욱 의연해져야 한다. 성과에 환호라며 기쁨은 만끽하다가도 문제에 봉착하면 조속하게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모아야 하는 것이다.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여전히 냉전시대의 전유물인 '남북대치'에 매몰되고, '정권다툼'에 혈안이 되고, '숭미주의'에 빠져서 대한민국이 당연히 누려야 할 모든 것을 '다른 나라(주변 강대국)들의 눈치'를 보면서 움추려들어야만 하는가? 이젠 당당히 어깨를 펴라. 이젠 대한민국이 '강대국'이기 때문이다. 전세계인들이 한국을 주목하고 있지 않은가? 부러워서 바라보는 것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강대국에게 눈치보는 나라가 아니라, 눈치 주는 나라임을 명심하라. 강력한 리더십에 의존하는 '구심력'에 만족하지 말고, 원대한 선도국가 되어 '원심력'을 발휘해야 할 때란 말이다.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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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 산책 1950년대편 3권 - 6.25 전쟁에서 4.19 전야까지 한국 현대사 산책 5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한국 현대사 산책 1950년대편 3권 : 6·25 전쟁에서 4·19 혁명 전야까지>  강준만 / 인물과사상사 (2004)

[My Review MMCLXX / 인물과사상사 28번째 리뷰] 2025년 현재의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을 생각하면 과거 70여 년 전의 '1950년대의 대한민국'을 상상하기 힘들다. 1948년부터 1960년까지 이승만 정부가 이끌던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고, 전쟁으로 망가질 대로 망가졌으며, '대통령 한 명'이 무능하면 얼마나 나라가 나락으로 빠져들고 마는지, 그야말로 '교과서'적으로 잘 보여줬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이런 비극적 교과서가 이승만을 필두로,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이명박, 박근혜, 그리고 윤석열까지 계속 이어져 왔다는 것을 보면 정말이지 아찔할 정도다. 그나마 박정희는 '경제 부문'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한다고 쳐도 자칭 '보수정권'이라고 부르는 대통령들이 하나같이 '민주주의 파괴자'로 등장했다는 것에 통탄을 금치 못할 정도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50년대편 3권'에서는 이승만의 장기집권 욕심 때문에 얼마나 나라꼴이 우스워지게 되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지금부터 총정리를 한다.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김구'라는 인물과 맞붙어야 했다면, 초대 대통령에 한해서 사실상 '영구집권'을 꾀했던 54년 '사사오입 개헌'을 밀어붙이는 야욕을 벌이자, 이를 막기 위해 새로 등장한 정치세력이 민주당과 진보당이었다. 그리고 56년 5·15 선거에서 조봉암은 대통령 후보로 총 투표수의 23.8%인 216만 3808표를 얻으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물론 이승만을 이기지 못해서 2대 대통령 자리도 이승만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었지만, 3대 대통령 선거에서 '조봉암'은 김구 못지 않은 경쟁자가 될 것이 자명했다. 물론 이승만은 가만 있지 않았다. 안두희를 이용해서 김구를 암살하였듯이 조봉암도 간첩으로 엮어서 '사형'에 처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조봉암 죽이기'가 실행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승만의 주장(?)대로 조봉암은 '공산주의자(빨갱이)'였던가? 이에 대해 조봉암은 '사형집행'을 당하기 직전에 유언으로 남긴 말 가운데, "이 박사는 소수가 잘 살기 위한 정치를 했고, 나와 나의 동지들은 국민 대다수를 고루 잘살게 하기 위한 민주주의 투쟁을 했다. 나에게 죄가 있다면 많은 사람이 고루 잘 살 수 있는 정치운동을 한 것밖에 없다. 나는 이 박사와 싸우다 졌으니 승자로부터 패자가 이렇게 죽음을 당하는 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다만 내 죽음이 헛되지 않고 이 나라의 민주 발전에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정태영, <한국 사회민주주의정당사>, 세명서관(1995), 476쪽)라는 대목이 있단다. 이 대목에서 이승만이 내세운 '자유민주주의'는 소수를 위한 정치 행위였고, 조봉암은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사회민주주의'를 내세워서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고르게 잘 살자는 정치 행위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많은 이들이 '모두가 잘 사는 정치행위'를 북한 공산당의 주장과 일맥상통하다며 곡해하고 조봉암을 '빨갱이'로 몰아가곤 한다. 이는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오해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우리 나라에서는 이 둘의 차이점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인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완벽한 평등'을 주장하며 '사유재산'을 절대 인정하지 않지만, 사회주의는 '사유재산'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는 점에서 완연한 차이를 보인다. 그렇기에 결론적으로 전세계적으로 완벽한 공산주의 국가는 단 한 나라도 없는 셈이다. 과거의 소련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도, 북한도 모두 '유사 공산주의'를 표방한 '사회주의 국가체제'를 운영하고 있었고, 지금도 '사회주의'를 실질적으로 하고 있으면서 '공산당 독재'로 폭망하고 있는 나라들이다. 그렇다면 조봉암도 현재의 중국과 북한과 다를 바 없는 '공산당 독재체제 아래 사회주의 국가'를 만들려 했었던가? 사실은 그렇지 않다. 조봉암이 내세웠던 '사회주의 노선'은 오늘날 북유럽 국가들이 취하고 있는 '사회당 집권' 아래 정부를 꾸리고 시민들의 사회복지를 위해서 높은 세금으로 복지자금을 확보해서 전국민이 고르게 부를 누릴 수 있는 국가를 꿈꿨던 정치인이었다.

물론, 1950년대 당시 대한민국 경제수준으로 북유럽 국가들과 맞먹는 정도의 사회복지국가를 실현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을 것이다. 허나 조봉암이 이승만을 압도하고 민주적인 방법으로 평화롭게 정권교체를 해냈다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더 빨리 안착했을 것이다. 그것으로 '한강의 기적'을 일으켰다면 우리는 그 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같은 '군사독재 시대'를 건너뛰고 발빠르게 중진국을 넘어 선진국 대열에 올라서는 기적같은 일을 성취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럴 수 있었던 증거로는 우리 나라의 높은 '교육열'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전쟁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끼니를 굶는 한이 있어도 자녀를 학교에 보내서 '신분상승'을 꾀했던 광풍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한국인들의 DNA에 원래부터 박혀 있었던 듯이 불어 재꼈으니 말이다. 그런 열의가 이념갈등으로 만들어진 '빨갱이 색출' 같은 잘못된 방향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민주화와 경제성장, 세계와 경쟁력을 갖춘 과학기술의 발달이란 옳은 방향으로 표출되었더라면 분명 '한강의 기적'은 온 국민이 고르게 잘 사는 나라를 이룩하는데 큰 업적으로 달성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시련은 조금 더 진행되어야만 했다. 진보당의 조봉암 사형집행이 이루어진 뒤에, 민주당 후보였던 '조병옥'까지 돌연사를 하고 만다. '신익희'에 이어 두 번째다.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만들려는 '자유당'만 좋은 일이 연이어 벌어진 셈이다. 이때가 1960년 2월 15일이었다. 허나 여론은 좋지 않았다. 이승만 정부의 무능함을 너무 오래 겪었기 때문이다. 이런 무능함 때문에 민주당의 선거구호였던 "못 살겠다 갈아보자"가 온 국민들의 마음을 후벼 팠던 것이다. 자유당 측에서 아무리 "갈아봤자 별 수 없다", "갈아봤자 소용없다"를 외쳐도 당시 신익후 후보를 냈던 민주당에 인기를 막지 못할 정도였다. 그래서 치졸하게도 "못 살겠으면 북으로 가라"고 외치는 수준 낮은 협잡까지 했지만 별로 잘 먹히지 않았다. 그런데 달리는 열차 안에서 신익희는 돌연사 했다. 선거 유세를 돌다 지쳐서 생긴 일이겠지만, 대한민국 민주화에는 치명타를 안겨준 셈이었다. 이때가 56년이었는데, 그 뒤 바통을 이어받을 조봉암까지 59년에 사형집행을 당하고 마니, 60년 3월에 벌어진 '3·15 부정선거'는 부패한 이승만 정권이 벌인 '최후의 발악'이었던 것이다.

이승만이 85세의 고령이었지만 '대항마'로 지목되었던 야당 후보들이 연이어 사망했기 때문에 60년 대선에서 이승만 대통령 당선은 '기정사실'로 보일 정도였다. 허나 문제는 이승만을 든든히 보좌할 '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의 이기붕은 인기가 없었다. 그래서 민주당 후보였던 '장면'이 부통령 당선이 유력했는데, 고령의 대통령 유고시에 부통령이 '자동'으로 대통령이 된다는 점에서 이기붕은 안달을 냈던 것이다. 그래서 3·15 부정선거는 조직적으로 실행에 옮겨졌다. 야당 유세에는 정치깡패를 동원해서 행패를 놓기 일쑤였고, 선거벽보에서 '장면 후보의 사진'을 훼손하는 일 정도는 얌전한 방법이었다. 조직적인 '인력동원'으로 여당의 선거유세에는 참석을 유도하였고, 반대로 야당의 선거유세 때에는 온갖 명분을 갖다 붙여서 참석을 방해하기에 이르렀다. 학부모들에게 '가정방문'을 한다면서 교사들에게 특별수당을 지급하는 따위로 말이다. 이에 학생들은 "학교를 정치도구화 하지 말라"는 구호를 외치며 가두시위에 나섰고, 경북고 학생들을 시작으로 다른 학교들도 시위에 참가했다. 시민들은 학생들의 시위에 박수를 쳤지만, 이내 경찰들이 투입되면서 시위는 번번이 해산되고 말았다. 하지만 자유당은 멈추지 않았다. 투표함 바꿔치기는 말할 것도 없고, '3인조 공개투표'를 예행연습까지 시키는 바람에 '부정선거의 정황'은 발빠르게 소문이 번졌으며, 마산시의 민주당 간부들은 경찰의 제지를 뚫고 투표소 안으로 들어가 '40% 사전투표'와 '3인조 공개투표' 등의 부정선거 현장을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마산의 시민들은 민주당 의원들이 앞장 선 시위에 합류했고, 시위군중은 수천 명으로 불어났다. 경찰이 시위지도자인 민주당 의원들을 연행하며 강력 대응을 하자 시위군중은 더욱 불어나 만여 명을 넘겼다. 이에 경찰은 발포를 했고, 시위대는 분노하며 자유당 당사, 서울신문사, 파출소 등을 파괴했다. 이때 경찰의 발포로 7명이 사망하고, 870명이 부상 당했다.

이런 혼란 속에서도 개표결과가 나왔다. 이승만과 이기붕이 얻은 표가 '유권자수'를 초과한 것이다. 이 자체로 '부정선거'였던 셈이다. 그러자 득표수를 80%나 70%로 하향조정하라는 지령이 전국 개표소에 하달되었다. 그리고 서둘러 '마산 사건'을 무마하려고 했다. 허나 이기붕은 정치부 기자들과의 회견자리에서 "총은 쏘라고 준 것 아닙니까?"라고 말을 꺼냈다. 곧 실수임을 깨닫고 주워 담았지만, 이승만 정권이 국민을 대하는 자세가 어떠한 것인지는 명백하게 드러나게 된 셈이다. 마산 경찰당국은 '공산당 지하조직의 폭동'이라고 조작이라고 발표했다. 마산 경찰은 시위주모자로 잡아들인 26명을 공산당으로 몰아 혹독한 고문을 했고, 거짓 자백과 증거물 조작을 시도해 내놓았다. 심지어 경찰의 총에 맞아 죽은 학생의 호주머니에 '인민공화국 만세'라고 쓴 전단을 집어 넣기까지 했다. 이승만은 마산 사태의 책임을 지고 책임자를 문책 해임하는 선에서 무마하려 했다. 일단은 잠잠해지는 듯 싶었다.

허나 4월 11일 정오쯤에 마산 앞바다에서 교복차림의 10대 소년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눈에는 최루탄이 박힌 채였다. 이 사실이 '사진'과 함께 널리 알려지자 시민들은 분노를 참지 않았다. 마산상고 1학년 김주열 군이었다. 그는 3월 15일 시위에 참가했다가 실종되었는데, 실종 27일만에 참혹한 시체로 발견된 것이다. 그날 밤 3만여 명의 시위대는 시청과 경찰서 등을 습격했고 기물을 파괴했다. 자유당과 관련된 기관이나 개인 집까지 습격 대상이었다. 시위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갔고 15만여 명으로 불어났다. 이제 '이승만 정권 규탄 시위'로 전환된 것이다.

시위는 멈추지 않았다. 마산에서는 12일, 13일까지 계속 되었다. 이 소식을 접한 전국의 중고등학생들은 연일 시위에 동참했고, 이승만 정권을 규탄했다. 전국의 학생들은 이 소식을 어떻게 접했을까? '언론의 자유'가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권 때처럼 정부가 '언론 탄압'을 하며 통제하고 있었더라면 4·19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역사는 무능하고 부패한 이승만 정권에 준엄한 심판을 내리는 쪽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아이러니 한 것은 시위를 주도한 것은 '중고등학생'이라는 점이다. 대학생 참여는 4월 18일 고려대학생의 시위 참여가 처음이었고, 그전까진 다른 유명 대학의 동참은커녕 무력한 모습마저 보여줄 뿐이었다. 특히 지방의 시위는 점점 격해지는 대도 '서울 시위'는 잠잠했다. 무려 34일이나 지나서야 고려대학생이 나선 뒤에야 혁명의 완성일인 4월 26일까지 이어진 것이다. 오죽했으면 중고등학생들이 '선배들은 각성하라', '선배들은 썩었다'는 구호를 외쳤을까. 서울에 포진하고 있던 유명대학생들은 4·19 혁명의 주역이 절대 아니었음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한다.

이승만 정권의 최대 업적을 꼽으라면 연평균 10%에 해당하는 예산을 '교육 부문'에 쏟아부은 것이라 한다. 1인당 GNP가 100달러도 안 되는 나라의 살림으론 높은 비중이다. 그로 인해 '문자해득률'도 45년 22%에서 59년 78%로 증가했단다. 이를 긍정적으로만 평가한다면 분명 이승만 정권의 최대 치적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다른 것은 워낙 무능하였기에 보여줄 가치조차 없을 지경이다. 그러나 이조차 오로지 이승만 정권의 공으로 보기에 무리라고 한다. 우리 민족이 지닌 '교육의 한(恨)'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때 근대교육이 시작되면서 얼마나 교육열이 불타올랐던가? 조선 시대 폐쇄적인 신분제로 인해 '양반이 못된 한'을 뜨거운 교육열로 불태웠다. 일본제국주의로 인한 조선인 차별에 의해 '교육열'을 다시 불타올랐다. 해방이 된 후에도 교육열은 식을 줄 몰랐다. 이승만 정권이 '친일파 처단'에는 소극적이면서도 '빨갱이 소탕'에는 적극적인 것도 한 몫 했다. 이른바 '고학력'과 '저학력'을 나누는 기준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한국전쟁 당시 전쟁터에 끌려가는 기준도 '고학력'은 면제, '저학력'은 징병이었을 정도다. 이런 시국이니 교육열이 높지 않을 이유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일단 서울명문대에 입학하고 졸업만 하면 출세는 보장된 사회에서 뜨거운 교육열을 불태우지 않으면 이상한 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승만 정권은 그 훌륭한 학력을 소유한 이들을 포섭해서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 요인'으로 채용할 뿐이었으니, 이조차 최대 업적으로 삼을 수 없는 까닭이다.

허나 뜨거운 교육열 속에서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배운 중고등 학생들의 정의감이 '한국전쟁'의 승패를 가를 진정한 힘이었고, '4·19 혁명'에서 민주화 운동의 주역으로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에게 민주주의는 '서양의 이데올로기'였고, 그것이 '미국 숭배'에서 비롯된 점이 옥에 티일 수는 있겠으나, 그럼에도 우리가 옳다고 여긴 것이 '민주주의'였고, 이를 '실천'으로 옮길 능력이 충분했기에 대한민국은 오늘날 전세계의 민주주의 모범으로 극찬 받은 것이 틀림없다. 이런 엄청난 업적이 '이승만 정부의 무능' 덕분(?)이라는 것이 역사의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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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질서 - 의도를 벗어난 모든 현상에 관한 우주적 대답
뤼디거 달케 지음, 송소민 옮김 / 터닝페이지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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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질서 : 의도를 벗어난 모든 현상에 관한 우주적 대답>  뤼디거 달케 / 송소민 / 터닝페이지 (2025)

[My Review MMCLXIX / 터닝페이지 2번째 리뷰] 제목에 끌려서 읽고 싶은 책이었다.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애덤 스미스도 <국부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경제를 움직이고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실제로 오늘날에도 경제학자들은 애덤 스미스의 '조언'대로 경제를 잘 굴러가게 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가급적 시장에 개입하지 말고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도록 균형을 잡는 역할만 할 뿐, 인위적으로 규제를 하고 가혹한 형벌로 적극적으로 개입을 하면 잘 굴러갈 수 있었던 경제도 폭망에 이르게 된다고 한결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결코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경제전문가들이 애덤 스미스를 거들먹거리며 '보이지 않는 손'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해주는 만능치트키라고 말한다면 경제 비전문가일지라도 그를 한물 간 사람 취급할 것이다. 왜냐면 세계경제는 애덤 스미스가 살던 시대보다 훨씬 더 복잡해졌고, '경제위기'도 더욱 고차원적인 해법을 제시하지 않으면 제대로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의학기술적인 예를 하나 더 들자면, 2차 세계대전 당시 수많은 환자들의 생명을 구한 '페니실린(항생제)'이 21세기인 현재에는 아무 짝에도 효험을 보이지 않는 '낡은 항생제'로 전락한 것을 잘 알 것이다. 질병을 일으키는 '박테리아'가 기존의 항생제에 면역이 생겨서 페니실린보다 훨씬 더 강한 새 항생제가 아니면 효험이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미 시중에 나와 있는 모든 항생제에 면역기능을 가진 '슈퍼 박테리아'가 존재한다고 밝혀지지 않았는가. 이런 슈퍼 박테리아에 의한 감염으로 생긴 질병이라면 현재의 의료진은 더는 치료를 할 수가 없다. 오직 '자연적인 면역력'을 증가시켜서 스스로 치유하는 기적이 일어나는 수밖에 기대할 것이 없는 것이다.

이 책 <보이지 않는 질서>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뭐라 할 수 있을까? 십수 년간 심리학 치료를 해온 독일의 정신요법 의사인 뤼디거 달케가 쓴 책인데, 애초에 기대했던 '인문교양책'에서는 많이 벗어난 책이었다. 그렇다고 '종교책'으로 보기에도 그렇다. '과학책'은 더더군다나 아니고 말이다. 굳이 한 가지 콕 집어서 말한다면 '의학책'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 가운데 '심리치료'에 핵심을 두었고, 우리에게 '위약 효과'로도 잘 알려져 있는 '플라시보 효과'의 아주 긍정적인 처방에 관한 깊은 조예를 선보여준 책으로 우리의 몸과 마음이 아픈 현대인들에게 '희망'과 '위안'을 주는 책이라고 소개하면 딱 좋을 듯 싶다.

이 책의 저자는 말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대립의 법칙'이 있다고 말이다. 서양인들에게는 좀 낯선 개념일 수 있지만, 동양 문화권에서는 널리 알려진 '음양 이론'으로 이해해도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낮이 있으면 밤이 있고,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선이 있으면 악이 있는 것처럼, 여자와 남자가 각각 '음'과 '양'으로 나뉘어 있는 것처럼 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이렇게 '대립적'으로 존재하고 있다고 서문을 열었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은 바로 '긍정적인 생각'이 있으면 '부정적인 생각'도 있다는 것이다. 현대인들이 딱히 질병이 있는 것 같지도 않는데 실제로 아프다고 느끼는 까닭은 바로 이렇게 한 쪽으로 치우친 '극단적인 입장'을 고집하기 때문이라고 역설했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생각이나 부정적인 생각 자체가 질병을 부르지 않지만, 각각의 대립하고 있는 '위치'를 고집하고 한 번 정한 '생각'을 바꿀 생각도 못하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여유조차 없기 때문에 고인물이 썩는 것처럼 질병에 걸린 듯 아플 수밖에 없다는 이치와 맥을 같이하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럼 이런 아픔을 어떻게 치료할 수 있을까? 다음에 전하는 메시지에 그 해법이 있다. 바로 '공명의 법칙'이다. 음과 양으로 대립하고 있는 세상이지만, 두 개념은 서로 '대립'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공명'하는 것이 대원칙이라는 것이다. 낮이었다가 자연스레 밤이 되는 것처럼, 빛과 그림자는 서로 한 쪽에만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위치를 바꾸기도 하고 서로 변하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럼 '선과 악'도 바뀐단 말인가? 우리는 하루동안에도 '착한 마음'만 품지 않는다. 때로는 악당보다 더 '나쁜 마음'을 품기도 하고, 때로는 변태처럼 심하고 이상한 '나쁜 마음'을 품기도 한다. 이런 사람이 정말 범죄자이기 때문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우리는 이런 사람일지라도 '정상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나쁜 마음을 품었을 때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경우 범죄를 저질러 나쁜 사람임이 밝혀지기도 할테지만, 대개의 경우에는 범죄를 저질렀더라도 '내면의 도덕법칙'에 해당하는 착한 마음이 작동하여 죄를 뉘우치고 진정으로 반성하는 경우도 생길 것이다. 이럴 경우에도 우리는 '대립 법칙'을 고집하게 되면 단 한 번의 실수를 저지른 사람조차 평생 범죄자로 낙인을 찍는 어리석음을 저지를 수도 있다. 그러니 어디까지나 '공명의 법칙'을 잊어선 안 된다. 이게 중요하다.

이 책에서 말하는 '공명의 법칙'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음양의 조화'를 닮았다. 넘치는 곳이 있으면 덜어내고, 부족한 것이 생기면 채워주는 방식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풍수지리' 같지 않은가? 그런데 이 책의 저자가 서양사람인 독일인이라 그런지 '프로이트 무의식 이론'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것 같다. 남녀의 조화를 위해서, 아니 '공명'을 위해서 섹스를 수차례 본보기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물론 '사랑'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중간중간에 하릴없이 자세하게 '성적인 묘사'를 하거나 '지나치게 외설적(?)인 설명'이 들어가 있어서 옥에 티로 보인다. 뭐, 책을 읽다가 지루하다 느껴질 즈음 '야한 이야기'로 교실의 분위기를 집중적으로 만드는 효과가 있긴 하지만, 점잖은 독자들이 읽기에는, 실제로 고통과 아픔을 겪는 삶을 살고 있는 환자가 이 책을 읽기에는 부적절하게 보이는 대목이다.

자, 이제 '대립'과 '공명'을 이해했다면 이 책의 내용은 다 읽은 것과 마찬가지다. '음양의 조화'를 실천으로 옮기면 그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 이 책을 잘못 읽으면 '사이비 종교'에 심취한 것과 비슷한 양상을 보일 수도 있으니 주의 해야 한다. 어디까지나 몸과 마음이 아픈 현대인들이 '통증'을 이겨내고 '건강'을 되찾을 수 있는 비결을 애둘러서 설명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헷갈릴 수 있는 까닭은 여기서부터 '고대'와 '현대'의 지혜를 오르내리는 롤러코스터를 타기 때문이다. 심지어 '비과학적'으로 판명된 고대의 자연철학자들의 주장도 곧이 곧대로 인용하고 있어서 그렇다. 그냥 다 무시해도 좋다. 그저 비유적인 표현이라도 봐도 무방하다. 중요한 것은 '플라시보 효과'다. 의료진도 포기한 말기암 환자가 '가짜약(위약)'을 복용하고, 암을 치료할 수 있는 '신약'이 개발됐다는 의사의 말만 믿고 기적처럼 완치가 되는 사례가 실제로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전원이 꺼진 냉동창고에 갇힌 선원이 '영상의 온도'속에서도 극한의 냉기에 오랫동안 노출된 듯이 꽁꽁 얼어죽은 일도 실제로 벌어진 일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무한 긍정'만이 만병통치약이고,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춘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이 책의 저자가 가장 강조한 내용은 '자연스러움'이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질서'를 원활하게 잘 돌아가는 궁극적인 비결은 바로 '사랑'이기 때문이다. 이를 좀 더 극단적으로 강조를 하다보니 '남녀 간의 섹스'를 비교 우위적으로 강조한 경향이 없지 않아 있다. 허나 이를 '사랑'으로 치환해서 읽으면 '보이지 않는 질서'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사랑'뿐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절대 '섹스'뿐이라고 읽으면 안 된다. 그럼 '사이비 종교'에서 강조하는 그것과 다를 바가 없고, 잘못된 믿음을 바탕으로 한 '광신도'만 양산할 뿐이다. 그런 어리석음을 저지르면 안 된다. 예술과 외설이 '한 끗' 차이인 것과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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