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괄량이 길들이기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정유선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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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셰익스피어의 두 번째 책으로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꼽았다. 물론 그동안 읽은 책이 그것 뿐은 아니었으나 요즘 글이 좀 안 써지는 관계로 '셰익스피어 읽기'에 게을러진 것은 사실이다. 우선 <4대 비극>과 <5대 희극>을 중점적으로 읽고 있다. 원활한 리뷰 생활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서 되는데로 써보려 한다. 서론이 긴 까닭도 바로 손가락에 기름칠 좀 하려는 까닭이다. 다시 시작이다.

 

  여자를 '길들인다'는 표현에 시작부터 난관에 빠져들었다. 누가 누구를 길들인다는 표현이 요즘에는 부적절한 탓이다. 근래에 저질러지는 '데이트 폭력'과 '가스라이팅', 그리고 '스토킹'과 같은 성폭력에 끔찍한 느낌을 받고 있다면 이 책이 달갑게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고전문학>이라고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려고 해도 노력해도 말이다. 더구나 극의 결말이 누구도 못말리는 말괄량이 카타리나를 순종적인 아내인 케이트로 변신해서 수많은 남자들이 원하는 여인의 바람직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에 매우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과연 길들여진 케이트가 '우리 시대가 원하는 여인상'일까?

 

  우리가 읽어야 할 고전문학으로 '셰익스피어'를 꼽는데 주저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어린이 필독서로 '셰익스피어의 문학'을 선정하는 것에 반감을 갖는 학부모도 없기 마련이다. 그런데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 대문호의 작품속에서 교육적으로도 인성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은 내용'을 발견했을 때의 느낌은 놀라움, 그 자체가 되고 만다. 모름지기 <고전>에서는 시대를 거슬러 변하지 않은 아름다운 지혜를 배울 수 있기에 아무런 의심도, 거부감도 갖지 않는 '믿음'이 밑바탕을 깔고 있을 진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결코 바람직하지 않는 내용'이 담겨 있다니...

 

  <햄릿>에서도 셰익스피어는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이니라"라는 명대사를 남기며, 유혹에 약하고, 이성적인 사고력에 뒤쳐지는 캐릭터들이 등장하곤 했는데, <말괄량이 길들이기>에서도 꼭 같았다. 그나마 '카타리나'의 첫 등장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아버지나 구애자들에게 당당하고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피력하며, 때로는 마음에 차지 않으면 거칠게 말하고, 그에 걸맞게 당당하게 행동하는 모습 말이다. 21세기 여성의 당당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주위의 평판은 형편없다. 카타리나는 바람직한 여성의 모습과는 정반대의 대명사가 되었으며, 그녀를 자식으로 둔 아버지에게 심심한 위로를 건내며, 그녀를 아내로 맞이할 '미래의 남편감'에게 애도를 표하는 방식으로 카타리나를 '돌려까기' 하기 일쑤다. 심지어 동생인 비앙카도 언니인 카타리나를 '심술쟁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식으로 에둘러 비꼴 뿐이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카타리나는 '페미니즘(여성운동)'의 선구자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작품속 무례한 남정네들과 무지한 여인네들 덕분에 카타리나는 스스로 '여성운동의 선구자'인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물론, 오늘날의 페미니즘은 그 갈래가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관계로 단순한 '여성운동'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난 '여성운동'에 찬성하고, 진정한 '양성평등'을 지지하기 때문에 당당한 여성에게 큰 매력을 느끼며 응원하고 싶은 마음 뿐이다. 그런데도 나를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성운동을 진심(?)으로 펴 나갈 수 없다고 하고, 진정한 여성운동은 오직 순수한 '여성'만이 할 수 있다고 한계를 정해버린다면 안타깝기 그지 없다. 모름지기 '한쪽 날개'만으로는 하늘 높이 날아오를 수 없으니까 말이다. 페미니즘의 완성은 여성 뿐만 아니라 남성도 함께, 또 같이 '공감'할 수 있는 운동으로 지향되어야 할 것이다.

 

  암튼, 카타리나는 구혼자로 등장한 페트루키오에 의해 철저히 '길들여'진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육체적인 힘을 앞세워 폭력적인 행위로 길들이지는 않았다. 페트루키오를 '베로나의 신사'로 소개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그는 사회적인 지위에 걸맞는 엄청난 부를 앞세워 눈부시게 아름다운 카타리나를 아내로 맞이할 것을 많은 이들에게 맹세하며 한 치의 거짓도 없이 '순수한 사랑'을 전해서 카타리나의 마음을 얻어낼 것이라고 호언장담 한다. 카타리나의 성깔을 잘 아는 이들은 모두 페트루키오를 안쓰럽게 여길 뿐이다. 카타리나가 못말리는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을 잘 모르는 상황에서는 저럴 수 있다면서 말이다.

 

  하지만 페트루키오도 만만찮은 성격 파탄자(?)였다. 그는 누구도 못말리는 카타리나보다 더 망나니처럼 굴면서 카타리나의 기를 꺾어버린다. 막무가내로 결혼식을 밀어붙였고, 첫날밤에는 빵 한조각도 먹지 못하게 굶겼으며, 꽃과 같이 아름다운 아내에게 어울릴만한 드레스를 준비하고서도 카타리나 눈 앞에서 형편없다며 드레스를 내다 버렸다. 또한 처댁 방문차 여행중일 때는 한낮의 태양을 보고도 달이라고 우기고, 길을 지나는 할아버지를 가리키며 아가씨라고 소개하며 카타리나에게 맹목적인 복종(!)을 강요했다. 이 모든 행위들이 괄괄한 성격의 카타리나를 길들인다는 '남편의 당연한(?) 권리'라면서 말이다.

 

  못말리는 카타리나는 어처구니 없는 남편의 성화를 견디다 못해 '바른 소리'를 말했고, 남편의 오류를 지적하며 '논리정연한 반론'을 제시하며 남편의 우격다짐을 바로 잡으려 했으나, 끝끝내 길들여지고 만다. 너른 초원을 마음껏 내달리던 야생마가 올가미에 걸리고, 갈기를 휘어잡힌 채, 함부로 등에 올라탄 사람을 떼어내려 날뛰다가 끝끝내 떨궈내지 못하고 길들여지는 것처럼 말이다. 셰익스피어는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 붙이며 페트루키오가 카타리나를 길들이는 장면을 묘사했으나, 내 눈에는 딱 '그렇게'밖에 보이질 않았다. 결국 카타리나는 '만인이 원하는 바'데로 순종적인 아내가 되고 말았다. 아니 그보다 더욱 심하게 변절(!)하여서 다른 여인들 앞에서 '순종적인 여자'가 되는 것이 얼마나 바람직한 일인지 일장 연설을 할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희곡은 수많은 남정네들이 변절한 카타리나를 극찬하면서 막을 내린다.

 

  <고전문학>을 읽을 때에는 '시대상'을 반영하며 읽어야 한다고 곧잘 말한다. 이른바 '반영론적 관점'으로 읽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나는 일개 '독자'일 뿐이기에 '효용론적 관점'으로 읽어야 마땅하다고 반론을 말하고 싶다. <고전문학>을 옛날 옛적의 '시대상'만을 고려하며 읽어야 한다면, 결코 시대를 '초월'해서 읽어야 할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그 시절에는 그랬어"라고 <고전문학>이 이야기한다면, 오늘날의 독자는 "그건 그때고, 지금은 달라졌어"라며 읽어야 한다고 말이다.

 

  분명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지금 읽어도 위트가 넘치는 대사 덕분에 미소가 지어지는 재미난 희극임에 틀림없다. 비극과는 달리 '해피 엔딩'이 넘쳐나며 극중 인물들이 벌이는 저마다의 사연을 엿보는 관객들에겐 함박웃음이 가득해질 것이 틀림없다. 허나 딱 거기까지다. 극중 초반에 카타리나의 당당한 모습에 흡족해졌다가 페트루키오의 '길들임'이 보여질수록 알게 모르게 불쾌감이 샘솟다가 완벽하게 길들여진 카타리나의 모습에 실망을 금치 못할 것, 역시 틀림없다. 남자나 여자나 똑부러진 '자기 주장'을 펼치며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 씀씀이로 인해 감동적인 나날을 보내는 것이 평범하지만 아름다운 행복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런 행복을 누구나 편견없이 누리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일 거라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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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1 - 1910-1915 무단통치와 함께 시작된 저항 (박시백의 일제강점기 역사만화) 35년 시리즈 1
박시백 지음 / 비아북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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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친일의 역사를 광복한 지 76년이 지난 지금까지 바로 세우지 못한 까닭은 무엇일까? 이 책은 출간 직후에 바로 읽었지만 쉽사리 리뷰에 옮기지 못한 까닭은 '민족배반자'들에 대한 단죄의 방법을 결단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는데도 '개인의 영달'만 추구한 매국노들에게 단죄를 속히 내리지 못한 까닭은 또 무어란 말이냐. 허나 대한민국의 역사가 그리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민주주의'가 바로 서지 못한 탓이 가장 크고, '경제적 부'를 자유로이 누리지도 공평하게 나누지도 못했던 탓이 더욱 크다. 이 땅에 민주주의와 경제적 안정이 어느 정도 갖춰진 지금에서야 겨우 '친일적폐의 단죄'를 논할 여유가 생겼으니 말이다. 늦었지만 바로 세워야 한다.

 

  친일의 대가로 오래도록 호의호식하던 이들은 늘 말한다. "그때는 다 그랬다.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니 과거는 묻고 미래만 말하자" 반론의 여지는 분명하다. '독립운동가'들이 그 근거다. 그들의 피, 땀, 눈물이 없고서 '광복'은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피, 땀, 눈물의 대가를 친일파들이 가로챈 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대다수의 국민들 목소리를 묵살하고, 기필코 대한민국을 '그들만의 천국'으로 만들어 놓고 말았다. 말할 것도 없다. 이승만이 옹호한 세력, 박정희가 구축한 세력, 그리고 둘이 만든 기득권 세력에 빌붙어서 떵떵거리며 배불린 '적폐들'만이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으로 대한민국을 만들고 말았다. 그들은 어떻게 대한민국을 '그렇게' 만들 수 있었을까? 그 물음을 풀 열쇠는 바로 '일제 35년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책은 바로 그 열쇠를 만 천하에 공개하였고 말이다.

 

  1권은 1910년부터 1915년까지의 일제시대를 밝혀 놓았다. 일제는 대한제국(조선)의 국권을 침탈하기 위해 철두철미의 작전을 짜놓았다. 자신들이 서구 열강에게 당한 방법 '그대로' 말이다. 동북아시아에서 중국과 일본이라는 '이권'을 톡톡히 챙긴 열강들은 조선에도 찝쩍거렸지만 큰 이득을 챙길 수 없을 거라 여겼는지 '두 차례의 양요' 이후에 별다른 행보를 보이지 않았다. 조선과 수호조약을 맺은 미국조차 '필리핀'이라는 이권을 챙기기 위해 일본의 조선 침탈을 묵인(가쓰라테프트 조약)한 상태였다.

 

  암튼, 일제는 1910년에 '강제병합'을 한 이후에 조선에 천인공로할 온갖 인권유린을 저지르며 가혹한 식민통치의 서막을 보여주었다. 이렇다할 전쟁이나 저항도 없이 꼴랑 '문서 나부랭이(을사늑약)'의 결과였지만, 매국노들조차 일제의 만행이 어떠할지는 아무 것도 짐작할 수 없었던 셈이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속담은 이 시절에 생긴 것인지도 모르겠다.

 

  식민지의 삶은 처참했다. 몇몇 친일 행적을 보인 이들을 제외하고 '일본인'과는 사뭇 다른 '2등 국민'으로 살게 되었고, 한순간에 삶을 유린 당한 하층민들의 절규는 어느 하나 들어주는 사람조차 없는 절박한 처지로 내몰렸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조선시대 하층민들의 삶 또한 비참하기는 마찬가지였는데, 왜 일제시대 하층민들의 삶만 처참하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말이다. 맞다. 어느 시대나 '파렴치한 무리들'이 횡행하였고, 그들의 단죄하지 못해 힘 없는 백성들의 무고함이 낯설지 않은 시대가 없다 하겠다. 허나 자기 나라 백성들이 헐벗고, 우리 나라 국민들이 못살겠다고 절규하면 모두가 나서서 구휼하고 발 벗고 도와주는 훌륭한 임금과 믿음직한 정부가 있었다. 그런데 일제시대에는 그렇지 못했다. 조선인은 매로 다스렸고, 오직 수탈의 대상일 뿐이었다. 똑같이 처참했을지언정 긍휼이 여기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인 것이다.

 

  이런 처참한 삶이 펼쳐지자 '뜻 있는 이'들이 독립운동을 발벗고 나섰으니 이들이 바로 '독립운동가'들이다. 의병항쟁, 신민회, 대종교, 대한광복회 등 굵직한 행보를 한 이들도 있었고, 국내에서 활동하기 힘들어져서 망명을 통해 독립운동에 앞장선 이들도 엄청났다. 어디 그뿐인가 국외에서도 독립의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간도, 연해주, 상하이, 만주, 중국내륙, 그리고 하와이와 멕시코 등 실로 전세계 어디서든 한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독립의 기치를 높였던 것이다. 물론, 친일파들의 활동도 만만찮았다. 이들의 대다수는 지식인이었으며, 관리들이었고, 지주들이었다. 또한 어지러운 시대를 틈타 '풍운의 꿈'을 안고 출세욕으로 가득찬 이들도 '민족배반'에 앞장서서 개인의 영달만을 위해 발에 땀나게 움직였다.

 

  박시백은 이런 독립운동가와 친일파 들의 행보를 일일이 나열하였다. 때론 현미경을 들이밀고 핀셋으로 잡아낼 듯 세세하기도 했고, 위성사진을 펼쳐놓은 듯 큰 그림을 살펴볼 수 있게 망라하기도 했다. 세세한 내용은 책 속에서 찾아보길 바란다. 특히, 1권에서 주목할 내용은 '이승만의 행보'다. 사학자들이 말하듯, 그의 행보는 "독립운동이 2할이면 친일활동은 8할이다"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승만은 도대체 왜 이랬던 것일까?

 

  이승만의 행보가 확연하게 달라진 사건으로 '105인 사건'을 빼놓고는 달리 표현할 방도가 없다. 독립운동으로 감옥에 수감되기도 했던 그가 정작 '신민회' 소속 독립운동가들이 대부분 감옥에 수감될 적에 유유히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그 뒤 미국에서 한 행보도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다. 스티븐슨 저격 사건의 변호를 거부한 것이나, 미국 대통령을 면담하고도 조선의 독립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일본의 통치를 찬성한다고 씨부린 것이나, 박용만이 주도해서 하와이에 만든 독립운동기지를 쑥대밭으로 만든 것도 모자라 '개인소유'로 유용하고서 흥청망청 써버리고서는 공중분해시켜 버린 것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보다. 이승만이 추구한 독립운동 노선이 '외교'였다고는 하나, 부국강병하지 않고 '외교의 성과'를 얻은 나라가 없다는 당연한 진리를 이승만 개인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듯 싶을 뿐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독립운동가'와 '친일파'의 행보를 모두 아우를 수 있다. 겨우 5년간 동안 있었던 일을 나열할 뿐인데도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독립운동가들의 헌신에 놀라고, 친일파들의 약삭빠름에 놀라고, 마지막으로 일제의 치밀한 잔혹함에 또 한 번 놀랄 것이다. 이 모든 놀라움을 우리는 똑바로 쳐다볼 수 있어야 한다. 무엇 하나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독립운동가의 부정할 수 없는 위대함, 친일파의 부정할 수 없는 뻔뻔함, 그리고 일제의 무단통치에 아직까지 신음하고 고통을 호소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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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나 아직 안 죽었다 - 낀낀세대 헌정 에세이
김재완 지음 / 한빛비즈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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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세대로 살아온 동질감이랄까.. 저자의 에세이가 가슴에 팍팍 꽂힐 정도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무언가 아련한 추억에 젖어들게 하는 느낌이 물씬 나는 에세이였다. 감상은 이쯤에서 끝내고, '작가'라는 부캐로 '인생 2모작'을 시작하고 있는 내용을 본격적으로 파헤쳐 보려고 한다.

 

  '투잡'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알바 하나로는 대학 등록금을 마련할 수 없는 사정이 보편화 될 적에 알바 둘을 하면서 힘겹게 사는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생겨난 말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직장인'들도 합류하면서 '헬조선에서 살아남기' 위한 호구책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뭐, '맞벌이'는 기본이고 말이다. 그런데 요즘은 '부캐'라는 말로 대신하는 듯 하다. 게임용어에서 비롯되었지만, 게임이 일상화 된 'MZ세대'들에겐 너무도 당연한 현상이다.

 

  '투잡'과 '부캐'의 차이점이 있을까? '투잡'으로 표현하면 경제적으로 어려운 느낌이 강한데 반해서, '부캐'는 경제적인 여유로움을 즐기기(?) 위해서 본캐와 더불어 여러 부캐들을 키운다는 느낌이 쎄하다고나 할까? 암튼, '부캐'라는 말에서는 뭔가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인생은 즐겨야 한다. 아등바등 살면 무슨 재미냔 말이다. 막말로 재벌이 아닌 바에야 평생 부지런히 일해서 돈을 모아봐야 치솟는 아파트값을 쫓아가지도 못하고 '집 한 채' 구매하기도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이런 세상에서는 돈을 모아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무슨 수를 쓰고 어떻게 해서든 '강남 아파트' 하나 건져서 '부동산 투기'에 탑승하고 합류하는 것이 바람직한 인생일까? 저자의 표현을 빌자면, 아파트보다 빌라(전원주택)를 구매한 것이 정말 탁원한 선택(!)이었다고 한다. 왜냐면 부를 쌓아 자녀에게 물려줄 수는 없게 되었지만 깨끗한 공기와 쾌적한 환경, 그리고 아름다운 풍경을 매일 벗으로 삼을 수 있게 되었고, 이웃과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기에 도심에서 살짝 벗어난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남는다고 하였다. 난 이 대목에서 뭔가 수지 맞은 느낌이 들었다.

 

  저자는 직장에서 좌천 당했다. 후배에게 발렸으며 한직으로 밀려났고 '권고사직'을 당한 셈이다. 그럼에도 꿋꿋이 버틴다. 왜냐면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다. 나도 어렵사리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병원으로 '재취직'에 성공했지만, 행복하지는 않다. 그저 먹고 살기 위해서 마지 못해 다니고 있는 셈이다. 이건 대한민국의 중년들이면 누구나 겪고 있고, '버티기 모드'로 전환한 지 꽤 오래인 분들도 부지기수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본캐'를 쉽사리 버리지는 못한다. IMF를 겪어본 이들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직장이 전쟁터라면 밖은 지옥이다" 드라마 <미생>에 나온 대사인데, '본캐'를 버리고 치킨집사장, 피잣집사장이 된 자영업자들이 노후자금까지 탈탈 털어넣고도 말라죽어가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대사라서 더욱 큰 공감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명한 이들이라면 '본캐'를 버리기보다 '부캐'를 함께 키우는 방향으로 전환하곤 한다. 게임을 하다가도 '본캐'가 망했다는 생각이 들 때 '부캐'를 새롭게 키우기 마련이다. 부캐가 어느 정도 궤도권에 진입하면 '본캐'를 버리고 '부캐'로 갈아타기도 하지만, 대개는 '함께' 키우기 마련이다. 인생도 다를 것 없다. 본캐보다 부캐가 대박이 나면 갈아타고도 남겠지만, 어지간해서는 힘이 다할 때까지 '함께' 해나가는 것이 정석인 셈이다.

 

  물론 억지로 키운 부캐라면 힘에 부쳐서 지치기 십상일 것이다. 하지만 '즐기면서 키운다'면 힘들어도 즐거울 것이다. 취미와 적성에 맞으면 기쁘고 보람찰 것이다. 그리고 '돈벌이'도 쏠쏠하다면 입이 찢어져서 귀에 걸쳐질 것이고 말이다. 저자는 이처럼 '본캐'와 '부캐'를 성공적으로 안착하였노라고 책에 몇 자 적었다.

 

  이제 '인생 2모작'은 필수인 시대다. 단순히 돈벌이를 넘어서 인생을 진정 즐길 줄 아는 사람의 현명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물론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 '인생 2모작'이 모두 쏠쏠한 돈벌이를 가져오지도 않는다. 여유로운 삶을 꿈꾸는 '도시인'에게는 이율배반적인 선택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인 것은 현실이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이 더욱 처절한 현실인 것이다. 나도 본캐(논술쌤)이 신통치 못해 부캐(계약직)를 키우고 있다. 어쩌면 다시는 본캐로 되돌아가지 못할 지도 모른다. 부캐도 언제 '강제종료'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런 불안감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이 얼마나 많겠는가.

 

  이런 각박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정책'이 나와서 먹고 사는 문제를 신박하게 해결해준다면 정말 좋겠지만, 아직은 머나먼 꿈일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에 공감이 가는 것이 아닐지 모르겠다. <나 아직 안 죽었다>는 말은 녹록치 않은 현실에 대한 '선전포고'이 아닐런지.. 본캐로 버티고 부캐로 희망을 키우는 '인생 2모작'을 시도하는 모든 이들을 응원한다. 나를 위한 응원도 함께 말이다.

 

한빛비즈에서 전자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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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으로만 일하던 김 팀장은 어떻게 데이터 좀 아는 팀장이 되었나 - 비전공자를 위한 데이터 분석 속성 스쿨
황보현우.김철수 지음 / 한빛비즈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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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터 시대란 무엇일까? 사실 데이터(정보)는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한시도 없었던 적이 없었다. 인간은 '문자'를 만들어 데이터를 차곡차곡 쌓기 시작했고, 그렇게 축적한 데이터로 '또 다른 데이터'를 만들어내서 학문을 발달시켜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컴퓨터'가 없었다. 방대한 데이터(지식)를 쌓았지만 외워서 써먹는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고, 몇몇 사람들이 컴퓨터를 능가하는 '데이터 처리능력'으로 인류의 한계를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줬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누구나 컴퓨터를 다룰 줄 알고 '간단한(?) 체계'만 익히면 누구나 방대한 데이터를 다룰 수 있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떤' 데이터를, '어떻게' 다뤄서, '누구'에게 써먹을 것인지 결정하는 능력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데이터'를 노출하며 살 수밖에 없다. 집집마다 '개인용 컴퓨터'가 있고, 심지어 '스마트폰'을 늘 가지고 다닌다. 인터넷망으로 연결된 '데이터 세상'에서는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검색'하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데이터화'할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위치추적' 기능으로 어디에 살며, 무엇을 주로 하고, '쇼핑목록'이나 '장바구니'만 들여다봐도 '소비취향'이 어떤지 바로바로 알 수 있다. 이런 시대에는 '맞춤광고'가 일상이 된다. 이를 테면, 온라인 서점 장바구니에 '추리소설'을 찜해놨다면, 그 즉시 'DM 문자'가 날아옴과 동시에 '할인쿠폰'까지 증정하고, 다음날이면 '홍보용' 추리소설이 집앞으로 배달이 되어 '구매욕구'를 샘솟게 만들 것이다. 책뿐 아니라 옷, 신발, 가정용품, 굿즈 등등 그 어떤 상품이라도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마케팅이 가능해진다.

 

  물론 아직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상상한 것일 뿐이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많다. 왜냐면 '개인정보'는 소중히 다뤄야 하며, '사생활'은 존중되어야 하며, 원치 않는 광고나 홍보, 그리고 마케팅은 모두 '쓰레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쓰레기는 유형이든 무형이든 가리지 않고 무조건 줄여야할 '대상 1호'다. 암튼 '데이터 시대'가 되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세상이 변하게 될 것이다. 이미 변하기 시작했고 말이다.

 

  가장 큰 변화는 바로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이제는 예측이나 감으로 사업을 하던 시절은 저물어 가고 있다. 사소한 것까지도 '데이터화'하고 '데이터 기반'으로 수요를 추론하고 사업을 시작한다. 왜냐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면 '사업실패'를 현저히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사업에 민감한 요소들을 '데이터화'한 뒤에 시뮬레이션을 시행하여 사업의 실패와 성공을 미리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를 정교하게 다루면 다룰수록 '결과값' 또한 놀랄만큼 정확하게 도출되기 때문에, 이젠 '데이터'를 다루지 않는 현장이 없을 지경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현장에선 '데이터 분석'이 가능한 인재들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현실에서는 그런 인재들이 아직 많지 않다는 점이고, 팀장급 이상의 '고위간부들' 가운데 '데이터 분석'에 능한 인물이 그닥 없다는 사실이 시급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다시 말해, '결정권'을 가진 이들은 '데이터'를 다룰 줄 모르고, 데이터를 다룰 줄 아는 인물들은 '사회초년생들'이라는 괴리감이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데이터 분석'을 할 줄 아는 간부급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데 세대가 다르기 때문에 '데이터 분석'을 뒤늦게 배우는 이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40대 이상의 기성세대들은 '스마트폰'의 기능이 점점 복잡해지는 걸 원치 않는다. 왜냐면 '새로운 기능'이 있어도 쓸 줄 모르기 때문이다. 아니, 배우는 걸 귀찮아 한다. 두툼한 메뉴얼은 거들떠 보지 않은 지 오래 되었다. 이런 세대들은 '최신 기능'을 배우기보다 그저 전화와 문자만 특화된 폰이면 충분하다고 주장할 정도다. 암튼,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는 것보다 '기존의 것'이 그대로 변함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이는 현장에서도 고스란히 답습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와중에 '데이터 분석'을 코칭해주는 책들이 시중에 계속 나오고 있지만 대다수는 읽어도 뭔 내용인지 알 수 없는 책들이 훨씬 더 많다. 하지만 새로운 스마트폰이 출시되어도 '웬만큼만 다룰 줄 알면' 새 스마트폰을 쓰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듯이, '데이터 분석'도 전문적인 프로그래밍과 알고리즘, 소프트웨어를 어렵게 배워서 익히고 능수능란하게 쓸 줄 알아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알맞게 해석하고 적용해서 의사결정에 반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법이다. 특히 팀장급 이상이라면 '데이터 분석'을 직접 시연하기보다는 '그 결과'를 해석하고 적용시켜서 성과를 내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장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데이터 분석법'을 익혀야 마땅하다.

 

  이 책은 '데이터 분석'의 입문부터 심화, 응용, 그리고 Q&A까지 담아 놓았다. 책 내용도 '현장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예시'를 들어서 아주 쉽게 설명하고, 데이터 분석 활용법을 소개하면서 바로바로 익힐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그런 까닭에 '데이터 분석의 문외한'이어도 얼마든지 쉽게 배울 수 있는 책이다.

 

  멀지 않은 미래에 'AI 시대'가 도래하면 데이터 분석은 '인공지능'이 대신해줄 것이다. 쉽게 말해, 복잡한 계산은 '계산기'가 해준다는 말이다. 그때,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결과값'을 다룰 줄 아는 능력이다. '변수값'을 선정해서 입력해주는 능력도 필요하다. 정교하고 적확한 데이터값은 '탁월한 변수값 선정'과 '현명한 결과값 해석'으로 좌우될 것이다. 데이터 시대에도 여전히 인간의 결정권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결정을 잘 하기 위해선 뭐든 알아야 한다. 데이터 시대에는 당연히 '데이터 분석 능력'이 중요하고 말이다. 아직도 데이터 분석이 어색하다면 이 책을 권한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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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야 판다 - 수출기업을 위한 글로벌 마케팅 필살기
강대훈 지음 / 스틱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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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자영업자였다. 사업자등록까지 마치고 자택에 교습소를 차리고 아이들을 가르쳤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정말 소소한 금액을 벌고 있지만 한때는 잘 나가던 때도 있었다. 2005년에 다니던 은행을 퇴사하고 '교육사업'에 뛰어들었다. IMF때 취직해서 8년간 비정규직으로 머물다 적지만 '사업자금'을 모아 과감히 시작했었더랬다. 하지만 초기 자금은 2년만에 탕진하고 말았다. 난생 처음 '사업'이라는 것을 하니 잘될 턱이 없었고, 영업대상이 아이 딸린 아줌마들인데 여자 앞에만 서면 얼굴이 뻘개지는 병에 걸렸었기 때문이다. 그저 '교육사업'이라면 아이들만 열심히 가르치면 되는 줄 알았던 게 사업을 말아먹은 원인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초기 자금을 탈탈 털어먹고 나서야 겨우 '영업'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다. 명함을 만들어서 돌리고, 홍보지에 사탕을 넣어 뿌리고, 집집마다 팜플릿을 스카치테이프로 붙이며 동네방네 부지런히 뛰어다닌 결과, 아이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게 차츰차츰 입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어느 정도 사업 궤도에 안착을 하자 홍보를 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모여 수업이 넘쳐났더랬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탄력(!)을 받았을 때, 더욱 가열차게 홍보를 했었어야 했는데, 모든 것은 영업쪽으로 전혀 감이 없었고, 사업마인드 역시 제로였던 탓이다.

 

  그럼에도 성심성의껏 '교육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수업에 임했던 탓에 '나의 교육철학'에 진심을 파악하신 학부모들 덕분에 지금도 근근히 수업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사업확장'이 힘들어져서 지금 당장은 '다른 일'을 하며 먹고 살고 있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아마도 '천직'으로 삼고, 죽는 날까지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시 화려하게 재기하는 그날을 기다리며 나는 오늘도 독서를 한다.

 

  이 책은 '영업사원의 필독서'라고 소개하는 것이 가장 좋을 듯 싶다. 영업의 기초부터 심화까지 조목조목 '전문 영업마인드'를 키워주기 때문이다. 더구나 망해가는 회사의 원인을 파악해서 '원포인트 레슨'은 물론, '국외시장으로 확장할 수 있는 노하우'까지 수록되어 있다. 그래서 이 책의 부제를 [세상에 이런 영업책이 있다니]로 쓰면 좋을 듯 싶다.

 

  한편, 이 책의 노하우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바로 '국외시장으로 영업을 확장하라'다. 국외시장은 국내시장의 반댓말로 보통은 '해외시장'이라고 한다. 우리에겐 '해외시장'이라는 말이 더 익숙할 테지만, 우리 나라는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나라가 아닌데 굳이 '바다밖'이란 뜻의 해외라는 말을 쓸 필요는 없다. 북한이라는 장벽이 있어서 대륙국가이면서도 섬나라처럼 고립된 듯 싶지만, 바다를 건너기 힘들었던 옛날도 아니고, 세계 1위 '조선업'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에서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바다로 뛰쳐나가 세일즈를 할 수도 있으며, 하늘을 날아서 팔고, 조만간에는 우주밖에서도 국익을 챙길 '우주강국 대한민국'이 해외시장이라는 말을 써서야 되겠냔 말이다. 국내시장이 좁으니 국외시장으로 넓히면 된다. 내수만으로 먹고 살기 힘들다면 당연히 세계를 상대로 사업을 펼쳐야 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외국 바이어들과 '소통'이 되어야 물건을 사든 팔든 할 것 아닌가? 세계는 넓은데 '소통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인재'가 드물다는 하소연을 쉽게 듣는다. 여기서 저자는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번뜩이는 노하우를 전수한다. 바로 '외국인 채용'이다. 뭔소린고 하니, 한류열풍을 타고 우리 나라를 찾아오는 세계인이 한둘 아니란다. 그들 가운데 한국을 사랑해서 눌러 앉은 '대한외국인(?)'들이 부지기수로 많다. 이들을 직원으로 채용해서 '현지인'과 소통하는 어려움을 해소하고 사업을 국내에서 국외로 확장하는 '일석이조'의 아이디어를 발휘할 수 있다고 한다.

 

  그동안 우리는 '영어'만 죽어라 공부해서 중국에 가서도 영어을 쓰고, 중동에 가서도 영어를 쓰고, 유럽을 비롯해서 아프리카 현지에 가서도 오직 영어로 소통하려고 애썼다. 물론 소통은 가능할 것이다. 세계공용어의 위력은 대단하다. 하지만 외국인이 대한민국에 와서 사업을 하려고 하는데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나불나불 댄다면 어떻겠냔 말이다. 조금은 어눌하고 서툴더라도 '한국어'로 물건을 팔고, '한국문화'에 호감을 보이는 바이어가 더 매력적이지 않겠냔 말이다. 마찬가지다. 중국시장을 뚫으려면 '중국어'를 할 줄 알고 '중국문화'를 꿰뚫고 있어야 한다. 중동국가에서 장사를 하려면 '아랍어'를 쓰며 '아랍의 문화'를 존중하고 추켜세울줄 알아야 한다.

 

  이처럼 영업은 '사업'이 전부가 아니다. 설령 계약이 성사되지 않았다고 한들 '연락처'와 '이메일'을 꼭 알아두고서 시시때때로 연락을 주고 받는 사이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다음'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친구관계'를 넘어 '형제관계'를 맺는 것이다. 사업을 하다보면 '친하게' 지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게 된다. 부족한 실적을 메우기 위해 사정을 하고 비빌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친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업을 하다보면 간, 쓸개 따위는 필요에 따라 넣었다 뺄 수 있는 마술 하나쯤은 필살기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 친구관계보다 더 끈끈한 사이가 바로 '형제관계'다. 사업을 하다 주기적으로 연락을 취하고 서로 어려운 상황을 함께 극복해나가는 경험을 쌓아가곤 하는데, 그런 경험을 통해 '형제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형제끼리' 사업을 하다보면 왕왕 기적이라는 것이 통하게 된다. 엄청난 커디션과 이득을 준다고 해도 마다하던 구매자가 '형제'로 통하는 이의 전화 한 통으로 원래 구매액의 10배, 아니 100배 넘게 성사시키는 일이 왕왕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영업인의 자세'다. 어쩔 수 없이 '을'이 되어야만 하는 영업이지만, 마인드만큼은 갑보다 우위에 있어야, 다시 말해, 갑을 '감동'시켜야 계약을 따낼 수 있기 때문이다. 감동을 주기 위해서 영업인은 어떤 스팩을 쌓아야 할까? 일류대? 명문대? 자격증? 그딴 건 없어도 영업을 할 수 있다. 왜냐면 바로 '상대방에게 귀를 기울이는 스킬'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상대방의 취향을 간파하고 단숨에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을 장착해야 하는데, 그 매력이란 것이 다름 아니라 '인문학'이다. 좀더 풀어 설명하자면 '척척박사'가 되란 말이다. 자동차를 팔고 싶으면 자동차에 대한 인문학적 지식이 차고 넘쳐야 한다. 그 나라의 문화를 간파해서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호감을 쌓을 수 있다. 단순히 팔아재끼려는 속셈으로 '성능'이 어쩌구, '가성비'가 저쩌구 침 튀기며 설득해봐야 씨알도 먹히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한국에서 온 바이어가 '홍삼'을 들고 가서 계약에 앞서서 선물을 뿌리는 스킬이 종종 먹히는 까닭도, 그들이 '한류'에 관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좀더 뒷조사(?)를 해서 외국구매자의 딸이 '아미'라는 것을 간파했다면 'BTS 최신 굿즈'를 계약서 뒷면에 깔아두는 센스도 좋을 것이다.

 

  이젠 대한민국이 좁다. 세계무역 10위권의 대한민국이 '내수시장'만 바라보고 장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제는 당당히 글로벌시장을 섭렵해야 한다. 더는 대한민국 청년들을 '스팩'이라는 감옥에 가두지 않았으면 한다. 대입에 열을 올리는 것은 십분 이해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아이들이 공부해야할 엄청난 부담의 실체가 고작 '20세기 낡은 지식나부랭이'라는 사실을 명심했으면 싶다. 이제 우리는 변화해야 한다. 세계를 무대로 누벼야 할 때다. 영어공부에 열을 올리기보다는 외국친구를 사귀는데 열성을 다하는 것이 더 낫다는 얘기다. 영어를 굳이 잘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사귈 수 있는 것이 친구다. 심지어 외국친구들이 한국에 반해서 '한국어'를 배워서 찾아오는 일도 흔하다. 다시 말해, 외국어 한마디 할 줄 몰라도 외국시장을 넘볼 수 있다는 얘기다.

 

  1명의 외국친구가 한 나라의 외국시장을 열 수 있다는 진리가 '상식'이 되어야 한다. 10명의 외국친구라면 열 나라의 외국시장을 점유할 수 있게 된다. 외국친구를 어떻게 사귀냐고? 피씨방에서 게임하면서 졸라 욕하고 다구리 치던 외국유저가 참 많았을텐데, 아닌가? 게임승부에만 열을 올리며 진상을 떨지 말고 쓸만한 아이템이라도 몇 개 챙겨주면서 '연락처'랑 '이메일' 받아두면, 10년 뒤에 멋진 사업파트너가 되어 떼돈을 불려줄 수도 있지 않을까? 이건 책에도 없는 노하우다.

 

STICK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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