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가 온다, 메타버스>

 김성화, 권수진 지음, 이철민 그림 / 와이즈만북스

 2022년 8월





<미래가 온다> 시리즈는 꽤나 좋아하는 어린이과학교양책이다.

어린이도 쉽게 읽을 수 있으면서 누가 읽어도 재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이 책을 '청소년'에게도 적극 권장하는 편이다.


난 '독서논술선생님'이다.

'한우리독서논술선생님'으로 활동을 해오다

지금은 '고전문학'과 '인문교양서적'을 두루 섭렵하면서

독서논술의 유익함을 널리 알리고 있다.

그래서 '리뷰어'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 들이 읽으면 좋을 책들을 소개하며

책을 읽는 안목을 길러주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런 내가 '찜콩'한 시리즈니 관심을 가져주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나도 언제고 읽고 리뷰를 올릴 계획이다.

기대해주어도 좋다.



참, 책소개를 빼먹을 뻔했다.

'메타버스'는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가상현실세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냥 가상현실이 아니라 너무나도 실감나는 세계라고 설명하면 좀더 감을 잡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감을 잡아다고 한들 상상의 나래가 좀처럼 펼쳐지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면 아직 '메타버스'의 세상이 펼쳐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2045년 이후, 인공지능의 발달과 함께 찾아올

'메타버스'의 세상은 인간의 삶이 송두리채 바뀌는 경험을 갖게 할 것이다.

이런 새로운 세상에 관심이 1도 없다면 안 될 것이다.

아직도 '메타버스'를 어디서 타야하는지 모르시는 분들에게

살짝 맛보길 권한다.


혹시 '도서를 제공받아' 책소개하는 거 아니냐고?

아직까지 '와이즈만북스'가 나에게 공짜책을 준 적은 없다.

내가 일방적으로 짝사랑하는 출판사 중의 하나일 뿐이다.

오해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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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한중일 세계사 12 - 임오군란과 통킹 위기 본격 한중일 세계사 12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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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한 번, 이 책이 갖고 있는 의미를 더듬어 보련다. 그동안 '한국사'를 읊은 책들은 많지만 이 책만이 갖고 있는 매력이 다시금 엿보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국사를 '한반도 안'으로만 축소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한국에서 벌어진 사건을 한반도 안에서만 '원인'을 찾고 섣불리 '결말'을 지으려고 했고, 그런 까닭에 '한국사연표'를 아무리 읽고 또 읽어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내용투성이였다. 특히, 근현대사는 고대사와는 달리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사건들이 전세계적으로 뻥뻥 터지던 시기였다. 그런 세계적인 사건들이 어느 특정한 지역에서만 '유효'한 사건이었을리 만무하며,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진 사건 때문에 커다란 영향을 받은 '한국사'가 한둘이 아니었건 것이다.


  또한, 구한말이 되면 조선은 더 이상 '은자의 나라'가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청과 일본에 비해 서구열강의 침탈을 덜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강화도조약'을 맺은 이후에는 조선도 열강들과 조약을 맺고 '근대화'의 기지개를 펴는 등 발빠르게 변모하던 시기였던 것이다. 이런 '근현대 한국사'를 어찌 '한반도'만으로 축소해서 파악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당연히 '한국(조선)'을 중심에 두고 가까운 이웃나라의 움직임부터 면밀히 살펴보아야 하며, 멀지만 기세가 남달리 뿜뿜하던 서구 강대국들의 손발놀림 하나하나를 다 파악해야 '한국사'가 제대로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이 책이 '본격적'으로 한줄일의 역사를 세계사적인 관점으로 다시금 살펴보고자 한 것도 바로 그런 의미에서였을 것이다.


  암튼, 이번의 주제는 '임오군란'이다. 흔히 '임오군란'의 원인을 신식군대(별기군)와 구식군대의 차별에서 비롯되었으며, 결정적인 사건은 13개월이나 밀린 월급 가운데 '한달치 쌀'을 주었는데, 그 쌀에 절반 이상이나 겨와 모래가 섞여 있었으며 나머지 쌀조차 반쯤 썩어있었던 것이 빌미가 되어 폭동을 일으킨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임오군란'의 결과로 일본공사관을 불지르고 일본측 관원을 죽였으며 흥선대원군을 재집권하게 만들었다는 내용을 서술하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한국사책이 이런 식으로 서술하고 있으며, 교과서에서도 '임오군란의 원인과 결과'라는 단원에서 중요한 사건이니 달달 외우라고 하고 있다.


  그런데 말이다. 구식군대가 왜 하필이면 폭동을 일으켜 '일본공사관'을 다 때려부수고, 권력에서 밀려난 흥선대원군이 재집권하는데 앞장 섰느냔 말이다. 신식군대가 '일본군 장교'에 의해 조련되고 있어서 '반일감정'이 컸다고는 해도 화풀이 대상을 삼으려면 '외교적 문제'가 커지는 '일본공사관'이 아니라 '신식군대(별기군)'에게 풀어야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겠느냔 말이다. 게다가 흥선대원군이 '구식군대(훈련도감)'의 사람들을 편들어 줄 수는 있을지언정, 자칫 외국과의 전쟁에 휩싸일 수 있는 '공사관 파괴'를 지시할 까닭은 없었을 것이며, 막상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흥선대원군은 쿠데타의 기치를 '위정척사'로 내세워 '옛날식으로 다시 되돌아가자'는 구호를 외쳤다. 이는 구식군대에게도 그닥 도움이 되는 방향이 아니었던 것이다. 한껏 군대를 강화하겠다며 고종과 민왕비가 애를 쓰고 있었는데, 이를 다시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옛것으로 되돌리겠다니 '군대강화'도 물 건너 가버리는 셈이 된다. 그러면 신식군대만 없애버리고 말겠는가? 구식군대도 대거 축출되고 임금 삭감도 피치 못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한데 말이다. 그러니 '한반도 안에서 벌어진 사건'만 파고 들어서는 '임오군란의 진면목'을 제대로 살펴볼 수 없게 되고 만다.


  그래서 역사를 살펴볼 땐, '망원경'과 '현미경'을 함께 준비해야 한다고 한다. 속사정을 자세히 살펴보기도 해야 하지만, 멀리 내다보고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숲을 분석할 때에 '한 그루의 나무'만 보고서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것처럼 '숲, 전체'를 살피며 어떤 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어느 동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숲속에 감춰진 비밀은 무엇인지 면면히 살펴보아야 진정으로 '숲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역사란 그런 것이다. 다시 '임오군란'을 보다 넓게 살펴보자.


  고종은 '강화도조약'을 맺은 뒤에 벌어진 국내의 사태를 보면서 '청과 일본의 변화'에 주목하게 된다. 그리고 크게 두 가지를 고민하게 된다. 하나는 청과 일본이 호되게 당할 정도로 '서양의 힘'이 엄청나게 강하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서양에게 호되게 당한 뒤에 청과 일본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개화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개화를 반대하는 세력이 건재하면 이룰 수 없는 꿈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인 '대원군'에게서 권력을 되찾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래서 고종은 아버지와 척을 지면서까지 아내인 '민왕비'와 손을 잡고 개화를 서둘렀다.


  하지만 권력을 되찾는 것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왜냐면 당시 조선은 심각한 재정고갈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강화도조약으로 '일본과 무관세 협정'을 맺은 관계로 조선 경제의 주축인 쌀이 일본에 헐값에 팔려나갔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조선의 쌀값은 점점 더 오르고 전체 물가까지 덩달아 오르는 '인플레이션'을 겪으며 조선의 백성들은 심각한 굶주림을 겪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개혁, 개방'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왕실의 재정난은 관원들의 녹봉 지급에도 차질을 빗게 되었다. 이런 까닭으로 '구식군대'에 임금체불이 일어난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한편, 흥선대원군은 '권불십년'에 뒷방 늙은이로 밀려난 뒤에도 재집권을 위해 필사적이었다. 마침맞게 일어난 유생들의 '위정척사운동'은 대원군에게 뒤늦은 호재였다. 고종과 민왕비의 개화정책이 유생들의 입맛에 영 맞지 않아 벌어진 운동이 대원군에게 얼마나 반가웠겠냔 말이다. 하지만 유생은 유생일 뿐이었다. 정작 쿠데타에 필요한 '군대'가 준비되지 않았던 것이다. 붓으로 싸울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그런 차에 '구식군대'들이 알아서 찾아오니 얼마나 반가운 일이겠는가. 하지만 대원군에겐 '재집권'만이 중요한 것이었고, '구식군대의 처우개선'은 나중 문제였다. 그래서 일단 '구식군대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 개혁정책을 추진하던 세력을 일순간에 몰아내고 경복궁에 다시 환궁하는데까지는 성공했다.


  하지만 고종도 가만 있지는 않았다. 어떻게 찾은 '권력'인데, 아버지에게 순순히 내놓을 수 있겠느냔 말이다. 그래서 청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청 조정에서도 이를 수락해 '청 군대'가 출병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보다 먼저 '일본군'이 찾아와 고종을 향해 사죄와 배상을 요구했다. 일본공사관이 불타고 공사관 직원이 죽는 등 일본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치욕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조선에 '청과 일본의 군대'가 한꺼번에 들어오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렇게 함부로 들어온 외국군대가 쉽사리 돌아갈 리는 만무했다. 뭔가 얻는 것이 있어야 했던 것이다. 청은 청대로, 일본은 일본대로 '조선'에 얻을 것을 톡톡히 얻어내고야 만다. 먼저 일본은 '일본공사관'에 일본군을 주둔시킬 빌미를 얻어냈다. 이는 훗날 조선 침략에 톡톡히 재미를 본 사안이었고, 더불어 '정한론'이 일본내에서 대세가 된 사건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일본국민들의 눈에도 '조선'따위가 감히 일본인을 죽인 것에 대한 응당한 보상으로 보였던 것이다. 청은 이 참에 아예 조선을 '속국'으로 삼으려 도장을 찍었다. 그동안엔 대외적으로 조선을 청의 속국이라 말은 했어도 '간섭'은 할 수 없었지만, 임오군란 이후에는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이라는 것을 새로 맺고 조선을 '청의 속국'으로 아예 못박아버린 것이다. 그리고 고종은 왕권을 확고히 하기 위해 '위험요소(?)'였던 아버지를 청나라로 효도관광 시켜버린다. 이로써 조선은 다시금 '개화정책'을 추진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비록 느리고 또 한참 늦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청과 일본은 조선에 군대까지 파병을 해놓고 확실한 '찜'을 찍지 않았던 것일까? 기왕 보낸 김에 '전쟁'까지 불사하고 결판을 냈을 법도 한데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훗날 '청일전쟁'을 조선을 무대로 삼아 벌이지 않았느냔 말이다. 그건 청도 일본도 아직은 전쟁을 벌일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일본대로 '국내사정(!)'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기에 신정부가 전쟁을 벌일 정도로 여유가 없었고, 청나라도 '임오군란' 즈음에 벌어진 '월남(베트남 통킹)사건'이 벌어져 프랑스와 전쟁이 벌어질 뻔 했으며, 이로 인해 나중에는 진짜로 '청불전쟁'이 벌어지게 된다. 또한, 임오군란 한참 전에는 러시아와 '신장지역'의 일리 땅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는 등 청나라의 내부사정도 바람 잘 날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또또한, 러시아도 '오스만투르크'와 오랜 힘겨루기 끝에 전쟁을 벌이르나 정신이 없어 청나라와 전면전은 피하는 등 세계사는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임오군란'은 단순히 구식군대의 불만이 팽배해져서 벌어진 헤프닝으로 손쉽게 정리해버리면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근현대사'의 변화를 따라잡을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역사적 이해도 근시안적이게 되어 '엉뚱한 결론'을 내고 '잘못된 해석'을 내리는 등 제대로 된 역사공부를 할 수 없게 만든다. 그동안 우리는 역사교육을 너무 편협하게 해왔다. <한국사>와 <세계사>로 단순구분하고 그 범주를 '한반도 안과 밖'으로 나누어 해석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른 것이다.


  역사는 '나누어' 생각할 수가 없다. 그 흐름이 '함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오늘날 저 먼곳에서 벌어지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 보기만 할 수 없는 까닭도 바로 그 때문이다. 러시아라는 강대국이 벌인 단순한 '영토확장의 야욕'이라고 결론 내릴 수 없고, 약소국인 우크라이나가 쉽사리 항복하지도 않는 상황이다. 그리고 전쟁의 양상은 점점 '자원전쟁'으로 번져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전세계 국가를 향해 러시아의 푸틴이 '천연가스 등 온갖 자원의 수출'을 전면 금지시키는 졸렬한 행동을 벌이고 있다. 대한민국이라고 아무런 영향이 없을까? 당장 원유가격 상승으로 인해 휘발유 등 '물가상승'을 부추기고 있으며, 그로 인해 정치경제 및 사회적 이슈가 연일 터지는 등 밀접한 영향을 받고 있다. 심지어 러시아가 대한민국을 향한 불만과 보복을 노골적으로 터뜨리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이래도 '한국사'는 '한반도 안'에서만 벌어지는 일들로 해석하려 들 것인가. 우리의 역사를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다시 풀어보는 이 책에 더욱 관심이 가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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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는 처음 '기록'을 올린다.

새롭게 블로깅을 시작하는만큼 시원하게 하련다.

알라딘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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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배우는 동물의 역사 - 인류 문명을 이끈 놀랍고 신비로운 동물 이야기 한빛비즈 교양툰 18
카린루 마티뇽 지음, 올리비에 마르탱 그림, 이정은 옮김, 장이권 감수 / 한빛비즈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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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도 동물이라는 것에 의아해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동물도 인간처럼 '복지를 누릴 권리가 있다'는 것에 찬성할 수 있는가? 또는 동물과 인간이 서로 '평등한 관계'를 이룰 수 있다고 보는가? 이런 질문이 낯설기만 한 분들이 아직은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애완견'이라는 표현 대신에 '반려견'이라고 표현하는 분들이 더 많은 실정이다. 개에 불과한데도 사람 팔자보다 더 늘어지게 사는 요즘에는 '동물'인데도 불구하고 '가족'과 같이 여기고, 심지어 가족보다 더 한 존재로 느끼고 있다. 그럼 다시 묻겠다. 당신이 '개'를 사랑하는 만큼 소나 돼지, 닭을 사랑하기 때문에 기꺼이 '육식'을 포기할 수 있겠는가?

 

  요즘엔 '비건(채식주의자)'이 참 많아졌다고 한다. 그런 분들 가운데 상당수가 '동물의 권리'가 인간과 동등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래서 '동물을 살육해서 얻은 모든 것'을 온당한 일이 아니라고 여기고 '육식'을 비롯해서, 밀렵이나 밀집사육 등의 '동물학대'를 통해서 얻은 물건이나, 더 나아가 '동물실험'을 거쳐 만들어진 물건들까지도 쓰지 않겠다고 당당히 선언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물론 이들의 '선택'은 존중 받아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비건'이 아니라는 이유로 비난 받는 것에 '동의'하는 분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비건이 존중받는 만큼 '육식'을 사랑하고 즐기는 이들도 '자기 선택'을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정말 '선택'의 문제뿐일까?

 

  인류가 '육식'을 즐겨온 역사를 보면 참으로 길다. 초기 인류는 동물보다 별다른 능력이 없었기에 '포식자'들에게 사냥 당하는 '피식자'였다. 고고학자들에 의해 '검치호랑이의 이빨 자국'이 선명한 두개골이 종종 발견된 것이, 그 증거다. 하지만 인류가 불을 발견하고 도구를 사용하면서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유발 하라리도 지적했지만, 인류(호모 사피엔스)는 개별적으론 별다른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뭉치면 '최상위 포식자'조차 학살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류는 모여 살기 시작했고, 정착을 하며 농사를 짓고 살아갔다. 그리고 '가축화'를 진행시켰다. 소, 돼지, 양, 말, 닭 등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인간이 동물과 가깝게 지내면서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초창기에는 인간보다 뛰어난 '동물의 능력'을 숭배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자신들의 조상으로 삼기도 했고, 뛰어난 능력을 흠모해서 '신'으로 섬기는 종교로 발전시키는가 하면, 그 뛰어난 능력을 '모방'하면서 새로운 기술발전의 거울로 삼기도 했다. 물론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었고 말이다. 그와 함께 '인수공통 감염병'이 발생하기도 했다. 원래는 서로를 감염시키지 않았는데, 가깝게 지내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발생한 질병이었다. 이는 '가축화 과정'을 통해 생길 수밖에 없었지만, 초기에는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전체 동물 가운데 인간과 접촉하는 동물이 1%도 안 되었기 때문이다. 야생의 생태계는 건재했고, 동물의 다양성은 생태계가 건강하다는 징표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17세기 이후부터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서구에서 시작된 '과학혁명'은 동물의 생태만이 아닌 '생리학적 모든 것'을 탐구하여 지식을 쌓는 일에 맹목적이 되었다. 다시 말해, 동물을 산 채로 해부하면서 '인간'과 닮은점을 찾기도 했지만, 궁극적으로 다른점..아니 '틀린점'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그래서 '동물-기계론'이 대세를 이루게 되었다. 한마디로 동물은 인간과 달리 '기계'와 다를 바가 없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동물은 인간과 달리 '감정'도 없고, '이성'도 없으니, '고통'을 느낄 수도 없다. 그러하니 인간이 동물을 어떻게 하든 아무런 상관도 없고,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다. 왜냐면 인간은 동물보다 우월하기 때문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동물을 함부로 해도 상관 없다는 얘기다. 마치 자신의 종교와 다른 '이교도'를 대하듯 인간은 동물을 맘대로 할 수 있는 권리가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졌다는 <성서>의 사례까지 들면서 정당화시키고 말았다. 그에 대한 결과는 끔찍할 뿐이었다. 동물의 멸종이 시작된 것이다. 먼 옛날 사피엔스가 매머드를 대량학살해서 멸종시켰듯이 말이다. 동물처럼 '하등한 존재'는 그래도 상관없다면서 말이다.

 

  단지, 먹거리를 마련하기 위해 멸종시킨 것만은 아니다. 차마 인간을 상대로 실험할 수 없는 끔찍한 실험을 날마다 시행했다. 뱀의 피부를 한꺼풀 벗겨내 '새로운 제품의 독성'을 실험한다. 인간의 피부에 닿아도 무해한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토끼의 눈꺼풀을 붙들어매고 '신상품'을 한 방울 넣는다. 이때 토끼가 발버둥을 치며 날카로운 비명을 질러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동물학대'가 아니라 '임상실험'일 뿐이며, 인간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행해지는 일이기 때문이란다. 이런 '동물실험'을 거쳐서 안전하게(!) 만들어진 생필품들이 날마다 쏟아진다. 인간에게는 안전하다는 이유로 말이다.

 

  물건 뿐만 아니다. 양계장 같은 곳에선 또 다른 동물학대가 펼쳐진다. 먼저 양계장에는 '암탉'만 존재한다. 현대식 부화기에서 갓 태어난 병아리들은 '감별사'들에 의해 수컷과 암컷으로 나뉘게 된다. 더욱 발전 방식으로는 달걀 상태에서 빛을 쪼여서 미리 선별하기도 한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양계장'으로 보내지는 것은 암평아리 뿐이다. 수평아리는 태어난 뒤에나 태어나기 전이나 '폐기처분'을 면할 수 없다. 깨어지거나 갈려나가거나 말이다. 암평아리들은 사료를 먹고 무럭무럭 자란다. 좁디좁은 '배터리(밀집사육장)' 안에서 말이다. 층층이 쌓인 그곳에서 자란 암탉들은 잠잘 시간도 없이 24시간 사료를 먹고 알만 낳는 일을 한다. 양계장 주인은 '노동자'들의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면 사정없이 행한다. 암탉이 '해 뜨는 아침'에 달걀을 낳는다면, 한밤중이라도 '강렬한 전등'을 밝혀서 아침이 온 것처럼 만들면 된다. 그렇게 하면 하루에 몇 번이라도 달걀을 얻을 수 있다. 고된 노동을 견디지 못한 암탉이 죽으면, 새로운 암탉으로 '대체'하면 그뿐이다. 양계장 주인은 '신선한 달걀'만 얻을 수 있다면 수천 마리가 죽은들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수익성'이니 말이다.

 

  이처럼 인간이 동물을 멸시하게 된 주된 까닭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자본주의'였다. 돈이 된다면 '동물학대'는 인간이 먹고 살기 위해 당연한 일이어야만 했고, '동물학살'이 벌어진다고 한들 수지타산만 맞다면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동물은 인간보다 못한 처우를 받으며 '인간을 위해 개량'되어야만 했고, 인간에게 불필요하다고 '낙인'이 찍힌 동물은 폐기처분을 감수해야만 했다. 대표적인 예를 들라면, 미국이 철도를 깔 무렵 '아메리카 들소(버팔로)'는 기차를 타면서 사냥을 당하는 오락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는 미국 기병대에 의해 널리 행해졌고, '버팔로 사냥'은 아메리카 원주민(인디언)을 내쫓고 땅을 빼앗기 위해서 '인디언 학살'로 자행되곤 했다.

 

  이런 모든 만행은 '문명화'라는 미명으로 행해졌다. 서구 열강들이 식민개척을 하면서 지껄였던 말이기도 했다. 미개한 것에서 탈피시켜주기 위해 '위대한 백인'이 기꺼이 나서주니 고맙게 여기라고 말이다. 그나마 식민지인들은 '문명화 작업(?)'을 거치면 인간대접이라도 받았지만, 동물은 그럴 가능성조차 박탈 당하고 말았다. 그 결과, 인류가 '가축화'를 시행했을 당시에 '가축화 된 동물'이 1%에 불과하던 수치가 21세기 오늘날에는 66%가 '가축화된 동물'이고 33%는 '인간'이며, 나머지 1%가 '야생동물'이라는 놀라운 변화를 보여주고 있단다. 이는 지구상의 동물 생태계가 망가져버렸다는 증거다. 더구나 현재 77억 인구는 2100년 즈음에는 100억이 돌파할 것으로 전망한다. 생태계가 망가져버린 인간이 지구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제2의 지구'를 찾아 우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고, '인공지능 로봇'을 개발해 인간의 신체와 뇌를 '기계화'할 수 있도록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며, 그렇게 발전한 과학기술로 '멸종한 동물'을 복원하거나 '동물로봇'으로 대체해서 생태계를 유지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호언장담을 하곤 한다. 정말 그 '호언장담'이 안전하고 건강한 생태계를 복원시킬 수 있을지 '허언'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이제 인류에게 남은 미래는 '두 가지' 뿐이란다. 하나는 '동물 생태계'가 이대로 무너져서 '인간조차' 살 수 없는 미래를 만드는 것이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인간과 동물이 평등한 관계'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생태계를 보전하고 사이좋게,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미래를 만드는 것이란다.

 

  이제는 팬데믹을 넘어 '위드 코로나 시대'라고 부르고 있다. 야생에 살아 마땅한 동물들을 '서식지 파괴'를 일삼으며 인간이 사는 곳과 경계를 나누지 못했기에 벌어진 현실이다. 다시는 옛날처럼 마스크를 벗고 살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기후변화는 인간이 벌인 끔찍한 재앙임에 분명하다. 그렇다면 인간이 막아야만 한다. 애꿎은 동물들은 그런 변화를 '맨몸'으로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에서도 인간은 '육식'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현대식 '대형양식장'이 제공하는 '무한 육식의 제공'은 더 많은 동물의 학살을 부르고, 더 많은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파괴하며, 그로 인한 기후변화를 겪어야 하며,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 '문명화'된 인간의 터전마저 빼앗을 것이며, 끝내 '인수공통 감염병'은 코로나보다 지독하게 창궐해서 인간이 살아갈 수 없게 만들 것이다.

 

  이제 다시 묻고 싶다. '비건'은 선택인가? 아니 '육식'을 포기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동물복지'나 '동물평등'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여지가 있는가? 이제는 '선택'할 수 있는 항목조차 삭제되었다. 왜냐면 '인간의 절멸'이란 새로운 항목이 '그 자리'에 대신 나타났기 때문이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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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머리 앤 한빛비즈 문학툰
루시 모드 몽고메리 지음, 쿠마 찬 그림, 양지윤 옮김, 크리스털 챈 각색 / 한빛비즈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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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툰> 세 번째 책은 '빨강머리 앤'이다. 너무나 유명해서 안 읽어본 사람이 없을 것 같지만 'MZ세대'들에겐 낯선 작품인 모양이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 중에 '빨강머리 앤'을 아는 친구들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몇몇 아는 아이들조차 '엄마가 좋아하는 책'이라고만 할뿐, 자신들의 취향은 아니라고 말할 정도다. 그럼에도 팬층은 대단히 두터운 편이다. 아마도 그 팬층이 호주머니가 든든한 4~50대이기 때문일 것이고, 이들이 어릴 적에 보았던 '애니메이션'이 추억을 돋우고 있기 때문일 것으로 짐작한다. 하긴 그 당시 남자아이들은 '미래소년 코난'에 열광했고, 여자아이들은 '앤'과 '캔디'에게 푹 빠졌더랬다. 그러고 보니 '들장미소녀 캔디'도 비슷한 설정이었다. 고아소녀였던 것이 말이다. 하지만 캔디는 외로워도 쓸퍼도 울지 않는 씩씩함이 매력이었던 반면에 앤은 '다른 면모'로 사랑을 받았다.

 

  '빨강머리 앤'이 오래도록 사랑받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같이 있는 사람'에게 무한한 생동감을 불어넣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앤은 잠시도 쉬지 않고 상상력을 뿜어낸다. 남들에겐 평범해 보이는 것들에 '매력적인 이름'을 붙여주어 상상력을 공유하는 독특한 능력을 앤은 갖고 있다. 심지어 자신의 이름조차 'Ann'으로 밋밋하게 부르지 말고, 꼭 'e'자를 붙여 'Anne'이라고 불러 달라고 한다. 더 좋은 이름은 '코딜리아'라는 낭만적인 이름이었다. 그 이름이 어째서 낭만적인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앤이 '그렇다'고 하니, 그 순간부터 낭만적일 따름이다. 이토록 쉼없이 쫑알거리는 소녀가 우리 곁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분명할 것이다.

 

  물론, 앤에게도 결점이 많다. 빨강머리에 대한 편견이 지나쳐서 '자격지심'으로까지 심화되었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서 하는 일마다 실수투성이에, 덜렁거리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린 소녀라고는 하지만 '허영심'이 너무 많은 편이긴 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결점조차 '상상력'에서 비롯되었다. 자신의 장점이 너무 커질 때 앤에게 부정적인 효과를 낳기도 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결점은 커가면서 점점 작아지고 철이 들면서 자중할 줄 아는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없어지게 된다. 그리고 결점이 줄어드는 대신에 '상상력'은 수많은 사람들을 공감시키는 능력으로 극대화 되어서 '시 낭송'과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아주 탁월한 능력으로 발휘되곤 한다.

 

  이런 앤 같은 친구가 우리 주위에 한 명쯤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매슈와 마릴라의 삶의 변화가 바로 그 증거일 것이다. 무뚝뚝하고 고집이 센 두 남매의 집에 앤이 함께 살게 되면서 '사람 사는 집'처럼 바뀌었기 때문이다. 친구인 다이애나는 어땠는가. 평생을 함께 할 소중한 또래 친구를 얻음과 동시에 삶의 활력을 얻고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절은 가장 아름답게 보낼 수 있었다. 이는 앤과 함께 다니던 학교 친구들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요즘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앤과 같은 친구가 꼭 필요하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점점 꿈을 꾸는 친구들이 줄어들고 있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나 어릴 적만해도 '문학소녀'들이 잔디밭에 모여앉아 예쁜 꿈들을 쫑알거리는 모습을 종종 보곤 했다. 우리 세대가 기억하는 '여고시절'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물론 그 내용이 시집 잘 가서 행복하게 살겠다는 '현모양처의 꿈'이었을지언정, 그 시절에는 그런 꿈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는 힘겨운 시절이었기에 더욱 소중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현모양처'를 꿈꾸던 소녀가 어머니가 되었다. 그리고 그 어머니의 딸들이 또다시 꿈꾸는 시절이 도래했건만, 그 꿈들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그저 명문고, 명문대, 그리고 대기업 사모님을 꿈꾸는 것으로 바뀔 뿐이란 말인가? 이젠 여성들도 얼마든지 '사회적인 역할'을 맡아 더 큰 꿈을 꿀 수도 있는 시절이 왔는데 말이다.

 

  만약, 앤처럼 상상력이 풍부한 친구가 오늘의 대한민국에 살았다면 달랐을 것이다. 뛰어난 '상상력'을 발휘하여 자신의 능력을 맘껏 뽐내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공감력을 발휘하여 '멋진 꿈'을 함께 꾸게 만드는 위대한 인물로 성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뛰어난 위인이 아니어도 좋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는 따뜻한 사람이 되고, 언제 어디서라도 사랑받는 사람이 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우리 주위에 그런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생동감 넘치는 삶의 영감을 받게 되어 살맛 나는 시절을 함께 할 것이다.

 

  물론, 대한민국에서 '고아소녀'로 살아간다면 운명은 좀 달라질 것이다. 왜냐면 대한민국은 아직도 '고아수출국'으로 손꼽히는 나라인 탓이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이긴 한데, '핏줄'이 아니면 사랑받을 자격도 행복할 권리도 모두 빼앗긴 것마냥 '고아'에게 냉담한 것이 우리 사회의 현주소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빨강머리 앤'처럼 상상력이 뛰어나고 무엇이든 생기를 불어넣는 초월적인 힘의 소유자라고 해도 대한민국에서는 그 힘을 발휘하지도 못하고 '다른 나라'로 입양되어 버리고 말 것이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 위대한 인물로 성장해 고국을 그리워하는 엉뚱한 헤프닝이나 벌일 것이고 말이다. 그도 아니면 만 18세가 되어 고아원에서 내쫓기고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한탄하며 안타까운 생을 마감할지도 모를 일이고 말이다.

 

  아름다운 문학작품을 '현실'에 대입하는 실례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지 않으면 절대로 달라질 수 없다. 우리 나라보다 경제적 후진국인 동남아 국가들조차 '고아'에 대한 처우가 이렇게까지 박하지는 않다. 자국의 고아를 '다른 나라'에 보내는 비율도 적고, 어려운 경제상황에도 훌륭한 인재로 키워 나라에 보탬이 되는 멋진 일원으로 품에 안아주는 정책을 실행한다. 그러면서 놀라워 한다. 대한민국처럼 멋진 선진국에서 '고아에 대한 정책'조차 제대로 마련하지 않고 있다는 현실을 말해주면 믿지 않을 정도로 놀라곤 한단다. 이젠 우리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선거철만 되면 양로원에는 문턱이 닳도록 정치인들이 양손 가득 선물을 들고 찾아가지만, '고아원'은 찬밥신세를 면치 못한다고 한다. 연말에나 겨우 찾아가 '사진찍기'만 하고서 하릴없는 훈계나 늘어놓고 돈 몇 푼 쥐어주는 게 고작이다. 이제는 정신 좀 차릴 때가 되지 않았으려나.

 

  그동안 살펴본 <제인 에어>, <주홍 글자>, 그리고 <빨강머리 앤>까지 모두 여성이 주인공인 문학이었다. 비록 만화형식이지만 '원작의 내용'을 크게 훼손하지 않게 각색을 한 덕분에 '원작의 맛'을 새롭게 느낄 수 있었기에 모두 훌륭한 책이었다. 그리고 '문학툰'이라는 새로운 장르였기에 여성이 극복해야 할 '시대적 한계'를 더욱 뚜렷하게 엿볼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인 탓이다.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어린 친구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시대적 배경'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홍 글자>는 17세기 미국 메사추세츠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제인 에어>는 19세기 영국을, 그리고 <빨강머리 앤>은 19세기 캐나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시대의 여성들은 '종교적 박해' 뿐만 아니라 '가부장적 사회'에서 남성에게 종속된 삶을 살도록 억압받는 것이 당연시되던 암울한 시대였다. 당연히 여성에겐 '선거권'도 없었고, 사회적 활동을 일절 금하던 시절이었단 말이다. 그런데도 이 작품의 여성들은 하나 같이 '진취적인 사상'을 품고 있다. 여성이 '할 수 없는 일'을 거뜬히 해내면서 말이다.

 

  오늘날이라고 다를까? 우리 사회는 완전한 '양성평등 사회'로 탈바꿈한 것일까? 그러기엔 아직도 미흡한 점이 너무도 많다. 심지어 꼴통대통령이 등장해 '실력우선주의'를 내세우며 여성인권을 박탈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장모와 마누라 말씀을 잘 듣는 강아지처럼 굴면서 말이다. 여성은 굴레에 종속되어야 마땅하고 굴종적인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헛소리는 집어치우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기에 당당한 인간으로서 '온전한 삶'을 살아가려 애쓴 여성이 등장하는 작품을 두루 섭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시대적 배경 이해가 힘들다면 <문학툰>을 먼저 읽으며 이해를 돋우고 상상력을 키워는 것도 좋은 선택일 것이다. 앞으로 더 많은 <문학툰>을 만날 수 있길 바란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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