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의 힘 - 무엇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고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는가
폴 몰랜드 지음, 서정아 옮김 / 미래의창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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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뜬금없지만, '고스톱' 얘기를 좀 꺼내보려고 한다. 기본적인 규칙은 '3점'을 누가 먼저 내는지로 승부를 결정 짓는다. 하지만 상대가 아직 3점을 낼 가능성이 낮으면, 더 점수를 올리기 위해 '고'를 외칠 수 있다. 반대로 상대가 3점을 낼 가능성이 높을 경우에는, 안전하게 '스톱'을 외쳐 그동안에 얻은 점수만큼 판돈을 챙길 수 있고, 모험과 운빨을 믿는다면, 과감하게 '고'를 외쳐서 더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게임이다.


  이때, 기본으로 점수를 내는 방식을 따져보면 '광 3점(비삼광은 2점, 삼광은 3점, 사광은 8점, 오광은 15점, 광박(광이 없는 경우)일 경우엔 '광박(벌점 두 배)')', '띠 3점(청단, 홍단, 초단)', '고도리 5점', 그리고 '피 10장'부터 한 장당 1점씩(쌍피 2점, 쓰리피 3점 등) 점수를 계산하곤 한다. 이밖에도 점수를 내는 방식은 여러 가지다.


  그런데 '3점 점수'로 승부를 결정 지어 '선'을 가져갈 수 있지만, 3점 승리를 아무리 많이 가져간다고 한들 그다지 위협적인 승부를 지을 수는 없다. 2배 이상을 점수를 내기 위해선 '광박'이나 '고박', '흔들기', '폭탄', '멍텅구리' 등등 다양한 '바가지(덤터기)'가 겹치고 겹쳐야 위력적인 승부를 결정지을 수 있다. 이때 가장 위력적인 것이 바로 '피박'이다. 일단, 피로 점수를 내기 시작하면 자기가 돌아오는 차례마다 계속 '고'를 부를 수 있기 때문에 '규칙'에 따라 '원고=2배', '투고=3배', '쓰리고=4배'...그 이상도 부를 수가 있다. 물론 동네마다 '규칙(대부분은 '쓰리고'부터 2배로 친다)'이 다른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자, 이런 식으로 고스톱에서 7장의 패를 들고서 세 번째 차례만에 '피박'을 씌우게 되면 최소 8배 이상의 점수를 곱절로 부풀릴 수가 있다. 피박이 무시무시한 까닭이다.


  이 책은 '인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원천적인 힘을 이야기하고 있다. 한 국가의 흥망성쇠가 어쩌면 '인구'에 의해서 좌지우지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전제를 깔고서 '통계학'을 바탕으로 풀어낸 책이기도 하다. 앞서 '고스톱'의 이야기를 꺼낸 것도 '피박'이 점수를 엄청나게 낼 수 있다는 상황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 인구가 많으면 많을수록 국가가 발전하는 속도로 빠르고, 전쟁시에도 강력한 힘을 실을 수 있으며, 국가경쟁력에서도 굉장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뉘앙스를 엿볼 수 있다. 반대로 인구가 적어지면 그 위력도 정반대의 경우가 대단히 흔하다는 뉘앙스와 함께 말이다. 물론 '변수'가 많기 때문에 온전히 '인구의 수'만으로 일반적인 모델을 만들 수 없었지만, 그 메시지 만큼은 대단히 설득력이 높았다.


  다만, 이 책에서 보편적인 예로 설명한 것이 '유럽(서구)의 관점'에서만 쏙쏙 들어맞고, 그 이외의 지역과 국가에서는 잘 들어맞지 않는다는 점에서 살짝 아쉽긴 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에 크게 어긋나는 경우도 많지 않은 편이긴 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예측할 수 없는 변수'는 너무나도 많다. 이 책의 쓰여진 것이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퍼져 '판데믹 상황'을 겪기 전에 쓰여진 까닭에 '판데믹 이후의 상황'을 예측하는데 아무런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고 있으며, 유럽에만 집중한 데이터 분석으로 인해서 아시아나 아프리카, 남미 대륙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너무나도 단편적인 내용만 다루며 뭉뚱그린 결론을 내버린 점도 아쉽기 그지 없다. 물론, 이런 상황이 벌어진 까닭은 '데이터 부족' 때문이기 때문에 '유럽 이외의 지역'에 대한 데이터가 확보되는 시점에 '개정판'이 출간될 가능성이 많다. 그리고 그 때에는 좀더 다각도로 접근한 '인구의 힘'을 펼쳐보일 것이기 때문에 자못 기대가 된다.


  암튼, 책 내용을 정리하면, 인구가 늘어날 때 부흥하고 줄어들 때 쇠락해진다는 '기본 공식'이 성립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많은 부분을 '영국'을 예로 들고 있는데, 영국에서 일어난 '산업혁명'부터 현재까지 인구의 추이를 살펴보면, 영국이 '대영제국'으로 거듭났다가 서서히 힘을 잃고 현재의 '브렉시트'까지 처하게 된 상황이 여지없이 '인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쉽게 말해서,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던 시대에는 '높은 출산율, 높은 사망률(특히, 영아사망률)'로 인해서 인구의 수가 좀처럼 늘지 못했는데, 과학과 의료기술이 발달하면서 '높은 출산율, 낮은 사망률(특히, 영아사망률이 현저히 줄어듬)'로 인한 '인구의 증가'로 인한 국가발전이 대단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다 '이민자의 수'가 늘어나면서 엄청나게 국외로 영국인들이 빠져나가는데도 여전히 '인구'가 증가할 정도 '높은 인구증가율'을 보여줄 때, '대영제국'의 위상도 높아지더라는 얘기다. 그 이후에는 '출산율'이 낮아졌음에도 인구가 증가하는 현상을 보여주었단다. 바로 수많은 '이민자'가 유입되었기 때문이란다. 이처럼 '인구의 수'를 늘리는 변수가 여러 가지라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영국이 이처럼 '인구 증가에 의한 국력신장'을 보여줄 때, 이웃 나라인 '프랑스'는 인구의 변동이 거의 없어서 국제적으로도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고, 스페인의 경우에는 늘어난 식민지를 다스릴 '스페인의 인구'가 점점 줄어드는 바람에 그 많던 식민지를 모두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점에 방점을 찍으며 '인구의 힘'이 얼마만큼 중요한 것인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을 풀어나갔다.


  특히, '인구의 힘'을 잘 엿볼 수 있었던 것은 두 차례나 일어났던 '세계대전'이었고, 이때에도 끝내 승리를 거둔 쪽을 조심스럽게 원인분석 하면, 역시나 '인구가 많았던 쪽'이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또한, 2차 세계대전 당시에 독일이 소련과의 승부에서 결정적인 패배의 원인도 '쪽수로 밀어붙인 소련'이 수많은 희생자를 낳고도 더 많은 참전 군인의 수로 인해서 기술적으로 뛰어난 독일을 압도할 수 있었다고 분석하였다. 마치 '한국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승리의 목전에서 중공군의 개입으로 인해 '1·4 후퇴'를 했던 뼈아픈 경험이 떠오르게 하는 대목이었다. 그 당시에도 중공군의 '인해전술'이 얼마나 위협적이었는지는 어렵사리 탈환한 수도 서울을 다시 내어줄 수밖에 없었던 절박한 상황과 잘 매칭이 된다.


  이처럼 우리에게 '인구의 힘'이 피부로 와닿는 예는 바로 '중국'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만 보았을 때에는 '중국의 힘'이라고 읽힐 정도다. 하지만 막상 책을 읽으면 '중국의 힘'은 그리 오래가지 않을 거라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현재 중국의 인구 증가율은 정점을 찍고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며, 비공식적으로 '인도의 인구수'보다 적다고 분석할 정도였다. 그런 까닭에 우리가 느끼는 '인구의 힘'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는 책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이 책을 쓴 저자가 '유럽인(영국과 독일 국적)'인 까닭에 유럽인의 시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아닐런지 합리적인 의심을 해본다. 그런 의심은 '중국의 예'보다 '일본의 예'를 더 상세히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도 해볼 수 있다. 아직까지도 서구인들의 시각에서 '아시아의 중심'은 일본인 탓이다. 그 때문에 '한국인'이 보기에 이 책의 신뢰도가 조금은 떨어지지 않는가 싶다. 적어도 '동아시아인'들의 시각에서는 일본보다 중국의 영향력을 더 높이 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주는 메시지까지 의심할 것은 못 된다. 분명 '인구'와 '역사'의 관계는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인구의 수가 늘어날수록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도 '역사적인 관점'에서 그닥 틀린 표현도 아니고 말이다. 굳이 이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룩셈부르크'가 아무리 국민소득이 높은 편이라고 해도 '인구의 수'가 현저히 낮기 때문에 '국제적인 위상'도 마찬가지로 낮다고 말이다. 아시아에서 적절한 예는 '싱가폴'이 아닐까 싶다. 싱가폴이 아무리 소득 상위 국가라고 해도 '미니국가'라는 국제적인 위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력'과 비례관계가 있는 '인구수'를 늘리는 정책을 각 나라마다 고심하고 있지만, 오늘날에는 선진국일수록 '출산율'도 낮아지는 상황이기 때문에 또 어떤 미래를 맞이하게 될런지 자못 궁금하다는 '열린 결말'을 이 책은 내리고 있다. 현재처럼 '판데믹 시대'를 겪고 난 다음에 벌어질 일도 '인구의 힘'과 얼마나 상관관계를 보여줄지 궁금한 대목이기도 하다. 인구가 많을수록 '코로나19'도 잘 극복할 수 있을지, 아니면 그 반대의 경우일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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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부자 수업 : 트렌드 편
백상경제연구원 외 지음 / 한빛비즈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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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근길 인문학 수업> 시리즈가 나오면서 '인문학 열풍'이 불었다. 오랫동안 '밥 굶어죽기 딱 좋은 학문'이란 비아냥을 들었던 인문학에 훈풍이 불면서 너나 할 것 없이 교양을 쌓는 새시대를 맞이한 셈이다. 덩달아 '퇴근길 풍경'도 사뭇 달라졌다. 제목이 주는 강렬한 끌림 덕분일까. 드문드문 책을 읽는 손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런 대박을 낸 때문일까. <출근길 부자 수업>으로 새로운 시리즈가 출간되었다. 제목대로 '경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인문학책이다. 그 첫 번째 시리즈로 '트렌드 편'이 나왔다. 경제적 안목을 키우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우선되는 것이 바로 '트렌드 읽어내는 힘'일 것이다. 주식을 사더라도 어떤 종목이 오름세이고 내림세인지 간파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투자하는 사람일수록 '트렌드'를 읽어내는 힘은 투자의 성패를 가르는 아주 중요한 능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비단 경제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에서 '트렌드'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니 더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2021년 이후의 삶을 좌우할 '경제 트렌드'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코로나19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간의 거리를 적당하게 유지하면서 일상생활을 해야 하는 방식이 우리를 '언택트 사회'로 빠르게 적응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비접촉 시대'가 펼쳐진 셈이다. 이제는 국가간의 회의도 '화상회의'로 하는 추세다. 대한민국이 선두로 선보여주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도 했다. 또한 '재택근무'도 빠르게 진척되고 있는 변화의 바람 중의 하나다. 물론, '재택근무'를 할 여건이 되지 않은 직장이나 직종도 아직은 많이 있다. 그러나 '비대면'이 일상이 된 어느날 갑자기 '재택근무'는 어른들의 세계뿐만 아니라 학교의 수업에서도 빠르게 접목시켜서 우리의 일상을 달라지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트렌드 읽기'란 이런 것이 아니다. 특히, 경제 트렌드를 읽어낸 뒤에 무엇에 투자할지 결정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에는 그런 '결정적인 조언' 같은 것은 없다. 그건 어디까지나 '읽어낸 사람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공유경제' 같은 것도 요즘 트렌드가 되었지만, 공유경제 자체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던 시스템이다. 나그네가 밤이 늦어서 어느 집 문 앞에 서서 "이리 오너라"를 외치면 집주인은 "뉘슈?"라고 묻고, "지나가는 과객인데 하룻밤 신세를 질 수 있을까 하여 실례를 무릅쓰고 주인장의 단잠을 방해하였습니다"라고 나그네가 답하면, 주인장은 의례적으로 "빈방이 있긴 한데 워낙 누추해서...그래도 개의치 않으시다면 들어오셔도 좋소"라고 답하고, 나그네는 "송구스럽지만 사양할 처지가 되지 못하니 실례를 하겠습니다"라면서 '공유경제'의 일상적인 단면을 보여주곤 했었다.


  실제로 옛날부터 이런 '공유경제'의 모습은 세계적인 트렌드였다. 그러다 '소유의 시대'를 거쳐 다시금 '공유경제'가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코로나시대'를 맞아서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이 줄어들긴 했지만, 이젠 '소유'보다는 '공유'가 더 보편적인 경제 트렌드가 될 것은 틀림없는 현상이다.


  여기에 '투자적인 감각'이 뒤따라야 한다. 투자의 귀재는 '정보'를 허투루 다루지 않는다. '데탕트 시대'에 소련이 붕괴하고 서방의 자본을 대거 들여올 거라는 정보를 마주한 전설적인 투자자 '앙드레 코스톨라니'는 과거 차르 시대의 빚을 어떤 방식으로든 처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보고 '차르 시대의 채권'을 대량으로 사들였다. 그 결과, 코스톨라니는 이 채권 거래로 무려 6000%라는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고 전해진다. 물론 경이적인 기록일 뿐으로 '일상적인 투자'에서 거둘 수 있는 수익률은 아니다. 하지만 '정보'를 남다르게 분석하고 과감하게 투자에 뛰어든 결과라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부자 수업'이란 바로 이런 식이다. 결론은 없지만 '트렌드'를 읽어내기 위해서 수많은 '인문학적 지식'을 쌓아야 한다는 당위성을 담아놓은 책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도 '안정적인 자산'에만 투자가 쏠리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물론 불확실한 미래에 '기본소득'도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탕진잼'에 맛들릴 수도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미래의 가치는 '효율적인 투자'에 있다는 점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를 테면, 우리 나라의 미래 항공우주사업을 위해선 과감한 투자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 나라는 '나로호 3호'까지 자력으로 쏘아올린 경험을 갖추고 있으며, 그중 한 번은 '인공위성'을 성공적으로 쏘아올린 실력을 보유하고 있다. 물론, 자체 엔진과 연료를 더 개발하는 숙제를 안고 있긴 하지만, 미국 나사와 협력을 하면서 2050년에는 우리의 자체 기술로 달착륙까지 할 수 있는 우주선을 쏘아올릴 예정이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예산확보'다. 여기에 국민적인 투자가 뒤따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선 '항공우주 분야'에서 흑자를 내고 있는 나라는 손을 꼽을 정도로 적은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현재, 미국의 인공위성을 우리 나라 우주선에 실어서 쏘아올릴 예정이고, 우리 나라는 연구개발비와 함께 '수익'을 동시에 얻어내었기 때문이다. 향후 세계적으로 인공위성을 쏘아올리는데 우리 나라의 '우주선'을 이용하겠다는 계약이 들어온다면 더욱 발전가능성이 높은 분야이기도 하다. 이런 대한민국 항공우주사업에 투자하는 것은 단순히 '수익률'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력신장에도 도움이 되는 투자이므로 일석이조가 될 것이다.


  물론, 투자는 신중해야 한다. 말 그대로 '돈을 던져버리는 것'이 투자이기 때문이다. 그 돈이 몇 배로 불어서 나에게 돌아올지, 그냥 버리게 될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래서 '트렌드를 읽어내는 힘'이 중요한 것이다. 투자의 귀재가 되는 길은 '다른 길'이 없다. 또한, 투자에는 '운'을 믿어선 안 된다. 운(運)도 여기저기 옮겨다닐 뿐이기 때문이다. 오직 '읽어내는 힘'에 따라 성공률이 좌우될 뿐이다. 그런데도 연속적으로 투자에 성공하는 '투자의 귀재'와 같은 이들이 있다. 바로 '트렌드'를 읽어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첫 번째 시리즈로 '트렌드'를 선택한 까닭일 것이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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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장각 각신들의 나날 1
정은궐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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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균관 생활을 마치고 과거에 급제를 한 '4인방'은 분관 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분관'이란 정식으로 관직을 받기 전에 관료들의 기본 업무를 배우는 기간으로 요즘 말로 하면 '신입 오리엔테이션'이라고 보면 된다. 대기업 사원으로서의 생활을 누리기 전에 '연수원'에서 츄리닝을 입고 '동기간의 단합'을 느끼는...뭐, 그런 느낌으로 보면 얼추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신병교육대'를 떠올리는 것이 더 어울릴 듯 싶다. 신병교육대에서 '4주간 교육'을 마치고 '주특기 교육'을 받으며 '자대 배치'를 막 받은 그 느낌이 딱이다. 뭘 해도 어색하고 일도 시키지 않으며 내무반에 멀뚱멀뚱 앉아서 '신병 교육'을 받고 있는 그 느낌이 딱이었다.


  그 뒤에 '정식 관직'을 받고서 '신참례'를 받는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예나 지금이나 신입을 괴롭히는 풍습이나 인사치례를 받으려는 속셈이 참으로 가관이다. 뭐, 요즘에야 이런 일들이 '인권위'에 고발조치가 되기도 하니 점점 사라지고 있겠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출세를 위해서 윗사람에게 미리미리 잘 보이려 애를 쓰는 모습은 '일상'과도 같은 일이었다. 뭐, 요즘에도 알게 모르게 다 하는 짓들일테고 말이다.


  그렇지만 이 책의 백미는 바로 여기서 찾아볼 수 있다. 환영하기 위해서 치루는 '신참례'가 아니라 너무나도 잘난 '4인방'을 떨어뜨리기 위한 신참례를 벌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물 김윤식은 '여자'임을 감춰야 하기 때문에 더욱 곤혹스러운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펼쳐져서 더욱 흥미진진해질 뿐이다.


  이런 굵직한 배경을 사이로 이선준과 김윤희가 혼례를 치룬다. 애초에 선준이 그토록 과거공부에 열을 올린 것도 노론 집안에 남인 며느리를 들이기 위해서 선준이 모친과 함께 벌인 일이었던 것이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2>의 말미에 선준이 윤희를 거들떠도 보지 않고 과거공부에만 매진한 까닭이 바로 김윤희와의 혼례를 약조 받았기 때문이었던 셈이다. 이번 과거시험에 '장원급제'를 하면 김윤희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며느리로 들이겠다는 약조를 말이다.


  이미 대물 김윤식의 정체가 '여인'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모른 체하는 걸오와 여림은 몰래 치룬 선준과 윤희의 혼례장에 쳐들어와 두 사람의 초야를 방해하고 만다. 그렇게 첫날밤을 망친 두 사람은 '시댁'으로 가서 선준의 부모님과 마주하는데, 여기서 윤희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혼인은 없었던 일이 되고 만다. 남장을 한 것이 들통나는 것만으로도 경을 칠 일인데, 거기다 임금의 앞에서까지 여인임을 속였으니 이것이 대외적으로 들통이라도 나면 온 집안이 멸문되는 것은 시간문제기 때문이다. 그렇게 선준의 아버지는 남장한 윤희를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하고, 윤식에서 윤희로 변신을 하려던 계획이 임금에 의해 좌절이 된 상황에서 혼인도 없었던 셈이 되고 만다. 그래도 둘의 사랑은 변치 않지만 '임금의 농간(?)'으로 인해 두 사람은..아니 네 사람은 점점 곤혹스러운 사건의 연속을 맞이하게 된다.


  한편, 남몰래 윤희를 짝사랑하고 있었던 걸오 문재신도 장가를 가게 되었다. 윤희를 사랑하면 할수록 더욱 괴로운 걸오는 아버지가 마련한 혼례를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다. 헌데 혼례식을 치루고나서 정신을 차려보니 색시가 '반토막'이다. 나이는 열네 살이라고 하는데 겉보기에는 키도 짜리몽땅하고 모습도 어리다 못해 열 살도 채 되어 보이지 않은 어린색시였다. 걸오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의 반려자로 애기를 데려온 셈이다. 허나 어쩌겠나. 걸오가 아무리 미친 사람처럼 괴팍한 짓만 하고 돌아다닌다해도 '여자'에게만큼은 상처를 주지 않으려는 상남자 아니겠는가.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은 걸오의 색시 '반다운'이 더 성장한 다음의 이야기를 못다한 상황에서 이 시리즈가 끝나버린 것이다.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 2>에서도 어린 색시를 두고서 청나라 사신으로 다녀온다는 것으로 '마침표'를 찍었기 때문에, 걸오와 다운의 알콩달콩 사랑이야기가 영영 감춰진 셈이다. 만약에 이 책의 '세 번째 시리즈'가 출간이 된다면, 이 두 사람의 못다한 사랑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뭐,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감감무소식인 것을 보면 영영 나오지 않을 모양이지만 말이다.


  암튼, '4인방'의 신참례가 한창일 때 '또 하나의 사건'이 맥을 이어간다. 바로 '청벽서의 등장'이다. 신참례를 치루는 와중에 '청벽서'가 등장해서 '홍벽서'를 대신하여 벽서를 붙이고 다녔기 때문에 '4인방'은 청벽서가 자신들을 도와주고 있다고 안심을 하였더랬다. 그런데 뒤에 '동고놀이(양반들이 거지로 꾸미고서 가난한 백성들에게 음식과 술을 나누어주면서 노는 마을 잔치)'를 하는 와중에 '청벽서'가 진짜 홍벽서인 걸오의 앞에 나타나 자신이 청벽서이고, 홍벽서가 다시 돌아와서 기쁘다는 소식을 전하고 홀연히 사라지고 만다.


  이에 '4인방'은 '청벽서'가 자신들의 정체를 잘 알고 있으며 '진짜 홍벽서'가 다시 등장하길 바란다는 것도 알아챘다. 과연 이 사건은 '4인방'에게 어떤 결말을 안겨다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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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재생산 북클럽 자본 시리즈 10
고병권 지음 / 천년의상상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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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첫 머리는 '실러'의 작품 가운데 <인질>이라는 제목의 시로 시작한다. 시칠리아의 참주 디오니시우스는 폭군이었다. 그래서 청년 다몬은 폭군을 암살하려 했지만 실패하고 처형될 참이었다. 다몬은 죽기 전에 '누이의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처형장에 반드시 돌아오겠다며 '친구의 목숨'을 담보로 걸었다. 그러자 폭군 디오니시우스는 묘한 조건을 내건다. "좋다. 누이의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게 해주겠다. 만약, 네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친구를 너 대신 처형하고 네 죄는 묻지 않겠다"라고 말이다. 대놓고 도망을 치라고 권하는 조건이다. 하지만 다몬은 누이의 결혼식을 마치자마자 처형장을 향해 달렸고, 온갖 역경을 딛고서야 겨우 사형시간에 맞춰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지체없이 친구를 살리고 자신이 대신 처형장에 올라갔다. 친구의 목숨을 살리고 자신이 죽겠다는 당연한 결정이었다. 디오니시우스는 다몬이 돌아왔다는 사실을 보고 받고, 둘의 우정에 '인간적인 감동'을 느껴 자신도 그들과 친구가 되고 싶다는 내용으로 '실러의 시'는 마무리 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연극'을 준비한다. 디오니시우스의 역할을 '자본가'에게 맡기고, 다몬과 친구 역할은 '노동자들'에게 맡겼다. 과연 이 연극에서도 '해피엔딩'의 결말로 마칠 수 있을까? 노동자들의 '인간적인 모습'에 감동한 자본가가 노동자들과 친구가 되는 결심을 하게 될까? 마르크스는 꽤나 회의적인 감상으로 이 연극을 관람했을 것 같다. 현실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해피엔딩'이라면서 말이다.


  자본가들은 이윤을 얻어낼 수 있는 기막힌 방법을 잘도 찾아낸다. 자본가들은 하나를 내어줘도 두 개를 얻어내는 비법이라도 있는 걸까? 중세시대의 '영주와 농노 이야기'를 살펴보자. 농노는 일주일 중에 사흘은 '자신의 땅'을 개간하고, 또 다른 사흘은 '영주의 땅'을 개간하며, 주일엔 쉰다. 농노는 사흘간의 노동으로 '자신의 몫'을 챙기고, 사흘간의 세금을 치르는 '자유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영주가 농노의 땅을 강제몰수 해버렸다. 그리고 일주일 중 6일을 일하게 만들고, 그 가운데 '사흘치 임금'을 주면서 나머지는 영주가 '자신의 몫'으로 챙겼다. 하루는 쉬게 해주고 말이다. 겉으로 봤을 땐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사흘치의 몫'을 챙기는 것은 똑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르크스느 엄청나게 다르다고 말한다. 자유민일 때는 '생산자'이지만, 땅을 몰수 당한 뒤에는 임금을 받는 '고용자'가 되어 버린 셈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유민일 때나 몰수 당한 뒤나 '세금'을 내는 의무는 같다. 여기서 또 차이점이 발생한다. 생산자일 때는 '사흘치의 몫'만큼 영주의 땅에서 일한 것으로 세금을 셈했기 때문에 '사흘치의 몫'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지만, 고용자일 때는 6일을 일하고서 3일치의 임금만 받았는데도, 그 '3일치 임금'에서 세금을 또 떼이게 되기 때문이다. 달라진 것은 또 있다. 생산자일 때는 영주가 세금만 받고 간섭을 하지 않았지만, 고용주일 때는 "내 덕에 먹고 사니 고마운줄 알아"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마르크스의 지적이 옳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자본가들도 노동자들에게 툭하면 하는 말이 있다. "내 덕에 먹고 사는 줄 알아. 내가 일자리를 만들지 않았으면 너희들이 어떻게 먹고 살 수 있었겠니. 그러니 고분고분 말 좀 잘 들으란 말이야. 파업 같은 거 할 생각하지 말고!"...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정반대임을 알 수 있다. 노동자들이 일을 하지 않으면 기업이 하루라도 제대로 돌아갈 수 있느냔 말이다. 업무가 멈추는 것은 물론, 공장의 기계도 헛돌 뿐일 것이다. 그런데도 노동자들은 자본가의 눈치를 보며 쥐 죽은 듯이 시키는 일을 고분고분하게 할 뿐이다. 당장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왜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급'이 발생한 것일까? 모두가 평등하다고 주장하고 평등한 관계에서 '합법적인 계약'을 했다고 하면서도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순간부터 '사용자'와 '고용자'는 지배와 피지배적인 관계로 돌변하고 만다. 아무리 억울한 일이 발생해도 '고용자'는 마음대로 사표도 낼 수 없다. 애초의 계약과는 다르다고 항변하지도 못하고 그저 묵묵히 일만 한다. 부당한 처우를 받아도 그저 꾹 참고 버틴다. 왜냐면 이곳을 나가 다른 회사에 취직을 해도 마찬가지 푸대접을 받기 때문이다. 자본가들끼리 서로 '악덕'이 되자고 모종의 합의라도 한 것일까? 아니면 자본가라는 계급이 되면 그냥 자동으로 착취를 할 줄 아는 스킬을 습득하게 되는 것일까? 이처럼 '자본주의'에서 자본가와 노동자들 사이에 '해피엔딩'이 되기는 애저녁에 글러 먹었다.


  그렇다면 자본가들은 어떻게 자본가가 되었을까? 태어날 때부터 자본을 두 손 가득 쥐고 태어나는 걸까? 그건 아니다. 그들도 애초엔 '없었다'. 그래서 악착같이 절약을 했다. 1세대 자본가들은 '수전노'와 다를 바가 없다. 그들은 '들어오는 돈'보다 '나가는 돈'을 줄이는데 노력했다. 그렇게 돈을 모은 다음에는 자신이 '돈을 버는 기술'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면서 돈을 벌기 시작한다. 이른바 '2세대 자본가'다. 이들은 자신의 일을 '도제'에게 대신 시키면서도 일(기술)을 가르친다고 생색을 냈다. 그래서 고용을 했음에도 임금을 주기보다 수업료를 챙겼다. 그렇게 돈을 벌고 또 번 셈이다. 그러다 어느 정도 '자본축적'이 이루어지면 '돈이 돈을 벌어오는 구조'를 만들어서 돈이 알아서 모이도록 만든다. 그게 바로 '자본주의'다. 정확히 말하면 '자본이 돈(자본)을 벌어오는 시스템'이다. 이것이 바로 '3세대 자본가'의 완성형 모습이다.


  이런 전통(?) 때문인지 자본가들은 '절약'이 몸에 베어 있다. 절약을 잘 했기 때문에 자본가가 될 수 있었다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절약은 노동자들이 아껴쓰는 것과는 다른 '절약'이다. 자본가들이 즐겨하는 '절약의 실체'는 바로 노동자들의 몫을 주어야 하는데도, 그 몫에서도 또 절약을 해서 빼앗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노동자들에게 제공하는 '한 끼 식사(점심)'의 재료를 값싼 재료로 바꿔치기 하면서 '비용 절감'을 유도하는 것이다.


  실제로 영국의 자본가들이 영국 노동자들의 식사에 대해서 논평한 대목이 있다. "영국의 노동자들은 호화로운 식사를 한다. 프랑스의 노동자들은 더 값싼 재료를 절반만 먹고도 영국의 노동자들보다 곱절이나 더 생산을 해낸다(이책, 146쪽)"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무슨 빵까지 먹으려 하나. 귀리와 소금만으로도 배가 부를 텐데(이책, 146쪽)"라면서 자신의 불룩나온 배를 추켜올렸다고 한다. 이들이 피골이 상접한 노동자에게 한 말이라고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심정이 들었다.


  노동자들은 건강해야 한다. 자신의 유일한 '생산수단'이 맨몸뚱이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건강을 잃는 순간 '생산도구'를 잃어버려 굶어죽는 수밖에 남지 않으니 어떻게 해서라도 건강을 잃으면 안 된다. 그런데 집도, 옷도, 먹을 것도 마련하기가 쉽지 않아 늘 춥고 배고픈 이들이 '영국의 노동자'다. 이런 처지에 놓인 노동자들의 몫에서 더 많은 '절약'을 해야만 할까?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짓거리다.


  암튼, 자본가들의 '자본축적'은 이와 같은 '근검절약'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미 노동자들의 '잉여생산'을 통해서 이윤을 챙긴 자본가들은 '자본을 재생산'하는 방법을 통해서 또 한 번의 '자본축적'을 시행한다. 돈이 돈을 벌어오는 시스템이라는 것이 이렇게 '누군가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참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 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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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2 - 개정판
정은궐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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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물 김윤희와 가랑 이선준의 로맨스가 더욱 뜨거워졌다. 아직 가랑은 대물의 본모습이 '여자'인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뜨거워지는 몸'만이 사랑의 화살표를 정확히 가리키고 있지만, 가랑의 이성은 '남색(男色: 동성애)이면 안 된다'고 경고등을 밝히고 있는중이다. 한편, 대물 김윤희는 여전히 가랑에게 향하는 자신의 마음을 오롯이 지키고 있다. 하지만 본모습을 감추고 있는 실정이라 그 애뜻한 마음을 속시원히 밝히지 못하고, 그저 가랑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어차피 '당색(선준은 '노론', 윤희는 '남인')'이 서로 달라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핑계로 좋아한다는 마음만 감춘 채 좋아한다는 티는 내고 다녔던 것이다.


  선준과 윤희의 사랑이 무르익어갈 즈음에 여림 구용하와 걸오 문재신은 우연찮은 계기로 대물 김윤식이 '여자'임을 알게 된다. 놀라움도 잠시 그간 허물없는 동무지간으로 지냈던 터라 나름의 우정 때문이라도 대물의 정체를 밝힐 생각은 없었다. 도리어 김윤희로 인해서 서로의 당파가 다름에도 친우지간으로 지냈을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하며 누구에게도 알릴 수 없는 비밀이 되어 버린 셈이다. 그 비밀은 정작 '대물' 자신도 알지 못했다. 이미 자신의 본모습이 여자인 것을 들통났는데도 계속 남자행세를 하는 것을 그저 귀엽게 바라볼 뿐이었다.


  물론 달라진 점도 있었다. 걸오가 어느새 '대물'을 짝사랑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다른 이에게는 여전히 '미친 말' 걸오였지만, 대물에게만은 살랑살랑 얌전한 조랑말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대물의 사랑은 이선준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서 자신의 마음을 전하지 않을 뿐이다. 사랑하는 이를 곁에 두고도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 아픔은 무엇으로 달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 '사랑의 화살표'가 잘못 방향을 잡은 이들은 더 있다. 바로 대물을 짝사랑하는 초선과 선준을 짝사랑하는 부용화다. 이들은 자신들의 사랑이 변함없음을 확고히 보여주지만, 그 사랑의 주인공들인 선준과 윤희는 자기들끼리 서로 사랑하느라 애달프기만 하다. 더욱 괘씸한 것은 선준과 윤희가 자기들끼리의 사랑을 '확신'하지 못하면서 초선과 부용화를 헷갈리게 만든다는 점이다.


  사랑의 감정에 있어서 '노선'을 확실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법이고, 가장 중요시 하는 예의일텐데, 선준과 윤희는 그 확실한 노선을 스스로 밝힐 수 없는 '사정' 때문에 그 옆에서 '사랑의 깜빡이'를 켜고 있는 초선과 부용화를 더욱 불쌍하게 만든다.


  이런 '엇갈린 사랑'은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지켜보는 관중이나 재밌지, 당사자들은 피말리는 상황의 연속일 뿐이다. 어디 그뿐이면 다행이다. 사랑의 감정이 크면 클수록 '틀어진 사랑'만큼 무서운 복수로 되돌아오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초선에게 이별을 고하는 윤희는 '없는 꼬추'를 잘릴 형국에 빠지고, 선준은 마음에도 없는 혼사를 거절했다가 '홍벽서'로 모함을 받아 고초를 겪게 된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선준과 윤희는 서로의 마음과 본모습을 확인하고 사랑을 맺게 되는데...과연 그 둘의 사랑이 아무 탈없이 맺어지게 된 것인가. 두둥~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에서는 둘의 사랑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원작 소설'에서 보여준 애달픈 사랑이야기를 느낄 수가 없다. 다만 '비주얼'적인 면에서 잘생기고 어여쁜 두 남녀가 보여주는 로맨스에 푹 빠질 수 있었기에 드라마는 드라마대로 재밌게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랑의 감정'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선 '영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로 전해 듣는 것이 더 감질나고 애간장을 녹이기 마련이다. 이제 무대는 '성균관'에서 '규장각'으로 옮겨간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로맨스는 또 어떤 맛일지...이미 알고 있지만, 새삼스레 모른 척 엿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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