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려치우기의 기술 - 행복하고 가벼운 삶을 위해 똑똑하게 손절합니다
사와 마도카 지음, 이효진 옮김 / 한빛비즈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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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제목만 보아서는, 지금 당장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나서라는 내용일 것 같다. 웃고만 살아도 짧은 삶인데 울상과 죽상을 하고서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 같은 출근길로 하루를 시작하는 삶은 당장에라도 때려치우라고 말이다. 하지만 현대인들에게 '하고 싶은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먹고 살 걱정'을 더는 일이기 때문에 더럽고 아니꼬운 직장이라하더라도 함부로 그만 둘 수는 없는 일이다. 새 직장을 구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려면 반드시 '먹고 살 걱정'부터 해결하고서 시도해야 할 일이다.

 

  물론,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무작정 일을 저지르고 보니 일이 술술 풀리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적성에 맞는 일을 하니 매 순간이 즐거워지고, 즐겁게 일을 하다보니 일의 능률이 쑥쑥 오르고, 능률이 쑥쑥 오르니 실적도 좋아지고, 좋아진 실적만큼 수익도 빵빵하게 늘어서 살림살이가 넉넉해지고, 살림살이가 넉넉해지니 삶이 한층 여유로워져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게 되는 드문 경우가 없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복을 절로 찾아오고 뭘해도 운이 따르는 사람은 드문 법이다. 그리고 겉으로는 운이 좋은 사람처럼 보이더라도 '보이지 않는 노력'으로 실력을 갈고 닦은 '준비된 능력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능력자들의 숨겨진 노력은 정녕 토가 나올 지경이라 일반인은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법이고 말이다. 그러니 이런 능력자들을 참고 삼아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과감히 사직서를 내던지는 어리석은 짓은 하덜 말아야 한다.

 

  그런데도 글쓴이가 <때려치우기의 기술>이라는 책을 써낸 것은 버려야 할 것이나 버려도 상관 없는 것들을 버리지 못해서 하고 마는 후회를 할 바에야 '과감히 버리자!'라고 조언한 것이다. 어쩌면 '때려치우기 기술'이란 '정리의 달인'으로 이해를 해도 무방할 정도다. 집안 곳곳을 둘러보면 '버려도 상관없는 것들'이 공간을 차지하고, 정리정돈을 방해하는 물건들이 한가득일 것이다. 심지어 그런 문제를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언젠간 쓸모가 있을 거라는 헛된 희망을 품은 채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물건들도 수두룩할 것이다. 쓰지도 않으면서 차마 버리지도 못하는 그런 물건 말이다.

 

  글쓴이는 이런 현상을 경제학 용어를 빌어서 '매몰비용'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매몰비용이란 지출한 비용 중에서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을 일컫는 것으로 지금까지 들인 돈과 노력, 그리고 시간이 아깝다는 핑계를 대며 더 큰 손해를 감수하게 하는 비용을 말한다. 우리는 인생에서도 '매몰비용'이 발생하고 있다면서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특히, 낡은 전자제품을 빗대면서 새로운 제품이 성능도 좋고 더 편리한 기능도 갖췄는데도 여전히 낡은 전자제품을 고집하며 '아직도 쓸만해'라는 고집을 부리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 보라고 따끔하게 일갈한다. 현재 다니고 있는 직장이 여러 모로 맞지 않아 힘겨워하고 있으면서도 새 직장을 구하기 힘들거라는 막연한 두려움과 새 직장도 지금과 별반 차이가 없을 거라는 어설픈 합리화로 자신의 재능을 꽃 피우려는 노력은커녕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더구나 '지금까지 노력한 것이 아깝다'는 생각에 다다르면 한 치 앞으로도 나아갈 수 없는 상황에 빠지고 만다.

 

  이는 단순히 '먹고 살 걱정'이라는 문제를 넘어서 아무러 변화조차 시도하지 않으면서 현재에 대한 불만만 키우고 있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따끔히 질책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을 가두고서 일생을 마치는 것이 진정 바라는 것이냐고 말이다. 더구나 시대는 늘 변하고 있다. 지금 당장은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세상의 변화에 시기적절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변화된 사회에 살아남을 수 있는 법이다. 이를 테면, 팬데믹이라는 변화된 상황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이들이 겪은 어려움을 예로 들면서 말이다. 어디 그뿐인가. 글쓴이는 '신선 식품'을 예로 들면서, 마트에서 구매하는 방법밖에 모르는 사람은 급변한 재난에 마트가 정상운영을 하지 못하게 되면 그대로 굶는 수밖에 없지만, 신선 식품을 직접 재배하거나 원산지에서 직접 구매하는 방식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마트가 문을 닫는 사태가 벌어져도 아무런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때려치우기 기술'이라는 것은 단순히 잘 다니던 직장을 일시적인 감정의 변화로 멋드러지게 때려치우고 나가는 기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적성과 재능'에 걸맞는 일을 찾아나서는 용기와 '변화된 세상'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적절히 적응하며 살아가는 지혜를 일컫는 셈이다. 그러기 위해선 가장 먼저 '버리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조언하고 있고 말이다. 어쩌면 글쓴이의 조언은 '잃어버린 30년'이라고 불리는 일본경제의 어려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슬기로운 생활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일본은 경제의 고도성장을 이루면서, 한때 '경제대국 2위'라는 위상을 보여줬지만, 버블경제의 거품이 빠지면서 서서히 가라앉는 경제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 형국이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수많은 일본인들이 '아직은 아무 문제가 없어'라고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고 있다가 결국은 경제적 어려움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문제에 봉착해서 이도저도 못하고 있는 이들이 속출한 경험과 함께, 일자리는 넘쳐나는데 일하기 싫어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경종을 울릴 목적으로 쓴소리를 아끼지 않은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쓴소리가 일본에게만 필요한 것일까? 우리가 빠르게 경제성장을 할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일본경제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참고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는 머지 않아 한국에서도 벌어질 일이라는 것은 상식일테니, 우리도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허나 이 책을 그런 용도로만 읽으면, 하나만 보고 둘은 볼 줄 모르는 어리석은 짓일 것이다. 왜냐면 한국경제는 이미 일본을 넘어서고 있는 단계에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비단 경제규모면에선 아직 일본에 비해 뒤쳐진 것처럼 보이지만 새로운 기술적인 면이나 새로운 사업적인 면에서 봤을 때 일본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들을 우리는 이미 시도해서 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타산지석의 교훈'으로만 이 책을 읽으면 안 된다.

 

  그보다는 행복한 삶을 꿈꾸고, 그 행복을 실현하는 지혜를 배우려는 목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 더 좋을 것이다. 필요없는 물건만 버릴 것이 아니라 하릴없는 인간관계까지 깔끔하게 손절하는 지혜를 터득하려고 읽으면 더 좋을 것이다. 사실, 물건보다 사람을 버리기가 더 힘들다. 하지만 아무 짝에 쓸모도 없으면서 자리만 차지하는 물건이 있는 것처럼 내 삶에 보탬은커녕 발목만 붙잡는 인간도 있는 법이다. 그런 물건과 인간을 내 삶에서 깔끔하게 치워버리는 지혜, 더 나아가 내 삶에 더는 관여하지 못하게 손절하고 범접할 수 없도록 자존감을 높이는 것이 더 중요한 법이다. 자, 이제 내 인생에서 걸리적거리는 것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러 가보자.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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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가 되어도 출근은 해야 해 - 버티기 장인이 될 수밖에 없는 직장인을 위한 열두 빛깔 위로와 공감
박윤진 지음 / 한빛비즈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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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자유로운 영혼'이 되었던 적이 있었더랬다. 갑갑한 출근길 대신에 집안에서 늘어지게 늦잠을 자면서 하루의 일과를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가 일과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서 뒹굴뒹굴하며 밤늦도록 책읽기와 글쓰기로 하루를 마감했던 시절을 말한다. 그러나 자유로운만큼 돈벌이는 시원치 않았다. 돈을 적게 벌었다는 의미보다는 월수입이 들쭉날쭉했다는 의미에 가까운 돈벌이였다. 결국 많은 이들과 같이 '코로나 여파'를 견디지 못하고 다시 '직장일'을 하러 다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벌레가 되어도 출근은 해야 해>라는 책제목이 고대로 눈에 꽂혀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모든 직장인이 그렇듯이 '때려치는 법'을 몰라서 직장을 꾸역꾸역 다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먹고는 살아야겠기에 싫어도 싫은 체를 하지 않고 좋아도 미친놈 소리 듣기 싫어서 좋은 체하지 않고 그저 그러고 다니고 있는 셈이다. 물론 그런 미친놈들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지치고 힘든데도 '직장'에 출근하려고 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글쓴이는 카프카의 <변신>에 주목했다. 어느날 갑자기 벌레가 되어버린 주인공도 처음으로 한 걱정이 '지각하면 안 되는데'였기 때문이다.

 

  책제목을 관통하는 메시지에 흥분하는 현대인이 많을 것이다. 나도나도!! 라고 외치며 깊은 공감을 나타낼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어느날 갑자기 아침에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아플 때, 가장 먼저 전화를 거는 곳이 바로 '직장'이고, 가장 먼저 전화를 거는 사람도 '직장 상사'인 현대인의 애환을 고스란히 담아낸 글귀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이 당장 직장을 때려치우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속시원한 책이라 생각한다면 크나큰 오해다.

 

  책내용은 오히려 직장일이 지옥같이 느껴지더라도 다시 힘내서 잘 다녀보아요~라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유는 다른 것 없다. 아무리 직장일이 힘들더라도 직장을 박차고 나오는 순간 더 큰 어려움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속시원하게 사직서를 상사 면상에 던져버리고 때려치우고 박차고 나오는 순간은 짜릿하고 통쾌할지 몰라도 다음달 월급통장에 '들어오는 돈'은 없고 '찾으신 돈'에만 수두룩 빽빽한 글이 담겨지는 것을 보면 한숨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게 통장잔고가 바닥을 드러내면 갑갑한 출근길보다 더 답답한 생활고를 겪을 수밖에 없다. 나도 한달 평균수입 30만원으로 1년을 버티니 모아두었던 적금통장을 다 깨고 마지막 통장의 잔고가 고갈될 즈음에 한 일이 '알바천국'에 이력서를 남기는 일이었다. 꼴에 논술쌤이라고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정도는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써서 면접관들의 극찬을 받는 일은 식은 죽 먹기로 써대곤 했다. 하지만 합격여부는 또 다른 문제였다. 감동과 현실은 엄연히 다르니까.

 

  암튼, 이 책은 '다니던 직장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잘 때려치우는 스킬을 알려주는 내용이 아니라 그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는 '긍정 노하우'를 선보여주는 책내용이 담겨 있다. 카프카의 <변신>, 사르트르의 <닫힌 방> 등과 같은 고전명작을 소개하면서, 명작 속의 주인공들도 '직장인의 고민'을 똑같이 하고 있고, '직장인의 애환'을 대신 해주고 있으니, 우리는 그들의 현실을 보면서 '다르지 않다'는 위안을 얻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음에도 슬기롭게 극복하는 지혜를 배우며, 아무리 힘든 직장을 다니더라도 우리들만의 애환을 서로 나누고 공감하면서 부정을 긍정으로 바꾸는 노하우를, '자기만의 방법'으로 터득해보자고 말하고 있다.

 

  딴에는 '말이야 방구야~'라는 느낌도 들지만, 직접 책내용을 읽다보면 깊은 위로와 감동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만 힘든 게 아니었구나'라는 공감력을 키우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더러운 회사 생활속에서 고작 "버티자!!"라고 얘기하는 셈이긴 하지만, 내가 힘든 이유를 '책속의 책'에서 찾아내고, '나만 힘든 게 아니야'라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만으로 사직서를 내기 직전의 위기를 넘길 수 있게 될 것이다. 어쩌면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스킬'이 아닐까? 씁쓸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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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포스 연대기 -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한빛비즈 교양툰 16
김재훈 지음 / 한빛비즈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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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로마 신화>만큼 오래도록 읽은 고전은 없다. 잠시 나관중의 <삼국지>가 그 자리를 차지한 적도 있지만, 어린 시절부터 '별자리이야기'로 시작해서 20대엔 점성술사와 천문학도를 꿈꾸기도 했으며, 30대엔 토마스 불핀치와 이윤기를 필두로 헤시오도스와 호메로스, 그리고 오비디우스까지 섭렵하고 또, 탐독한 고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을 헤아리며 별 하나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곤 하는 감수성을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 그 별들에 담긴 이야기의 원전이 바로 <그리스로마 신화>였던 탓에 읽고 또 읽었던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같은 책'이라도 '세대마다' 느낌이 다른 법이고, '글쓴이에 따라' 내용이 다 다르다. 따라서 <그리스로마 신화>라는 책제목을 달고 나온 책일지라도 누가 썼느냐, 무슨 관점으로 써내려갔느냐에 따라 사뭇 다른 느낌을 받기 마련이다. 이는 '모든 책'에 다 해당되는 사항이지만, 특히, <고전>의 경우에는 더 특별한 법이다. 이를 테면, 같은 <논어>라 하더라도 '보편적인 내용(텍스트)'는 비슷할지라도 '글쓴이의 관점(해석)'는 제각각인 법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수천 년이 지난 지금에도 도덕군자로 살아가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고 공자를 추켜세우고, 어떤이는 오늘날에는 전혀 맞지 않은 '낡은 관점'에 불과한 까닭에 우리 안에 내재된 공자를 죽여야 나라가 산다고 외치는 것이다. 누가 옳고 그르냐는 문제는 오롯이 '독자'에게 달렸다. 오래도록 널리 읽힌 <고전>은 '다양한 해석'에서 그 가치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수많은 해석 가운데 '무엇'이 옳고 그른지 평가하는 재미가 '고전을 읽는 맛'이기도 한 까닭이다.

 

  그럼에도 어느 정도 '타당성'을 갖춰야 옳은 해석이라고 평가받을 수 있는 법이다. 그리고 수많은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고 심금을 울리는 '보평성'을 갖춘 해석이라야 비로소 제대로 된 '고전의 맛'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로마 신화>는 어떤 해석으로 읽어야 제대로 읽었다고 할 수 있을까? 어떤이는 '서양문화'를 이해하는 두 가지 가운데 하나라면서 '필독서의 반열'로 올려놓기도 했다. 또 누군가는 신화의 상징성과 시의 함축성을 강조하면서 <그리스로마 신화>에 담긴 내용이 너무나 야하고 비도덕적인 내용이 많으므로 읽기에 부적합한 책이라고 단정 짓기도 했다. 특히, 어린아이들이 '필독서'랍시고 이 책을 읽고 무엇을 배우길 바라는 것인지 학부모들은 각성하라며 경각심을 심어주기까지 했다. 딴에는 솔깃하고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점이 없지 않다. 그래서 논술쌤인 나 역시 <그리스로마 신화>를 어린아이들이 읽기에 부적합한 책이라고 생각해서 '만화'로 된 책을 읽지 말라고 권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또 바뀌었다. <그리스로마 신화>만큼 '인간의 본성'을 잘 드러낸 이야기가 없는 탓이다. 신들의 이야기인 신화속에서 '인간의 본성'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지만, '옛 그리스인'과 '옛 로마인' 들이 상상하던 신의 모습은 다름 아닌 '인간'의 모습을 꼭 닮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화는 종교와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종교에서의 신은 '신의 형상'을 본따서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하는데, 신화에서의 신은 그 반대인 까닭이다. 또한, 다른 신화에서는 근엄하고 엄격하며 진지하다 못해 '절대적인 존재'로 전능을 가진 신을 그리는데 반해서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는 신의 능력조차 어딘가 모자른 점을 드러내는 불완전한 모습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엄근진하기는커녕 우스꽝스럽고 익살스러운 실수투성이 신들을 보여주면서 '인간의 모습'을 고스란히 빼다 박은 것처럼 그려놓았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딱 하나 완벽한 것이 있다면 바로 '신의 형상'인 육체다. 그리스로마의 조각상으로 전해지는 신들의 모습은 '인간'이 가장 바라는 육체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빚어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동작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역동성을 담아 빚어냈다. 이런 육체미를 직관하면서 '성욕(에로스)'을 불태우지 않으면 참된 인간이라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헐벗은 <그리스로마 신화>를 읽는 것 자체를 금할 필요는 없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다.

 

  그런데도 멈칫거리는 점이 있다. 아무리 '성욕'에 충실한 인간일지라도 '불륜'만큼은 절제해야 제대로 된 인간이라고 할 수 있고, '부도덕한 짓'을 일삼고서도 벌을 받지 않는다면, 그 자체로 해로운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탓이다. 특히, 제우스의 행실 말이다. 도대체 제우스를 어찌해야 좋단 말인가. 제우스는 '최고신'이다. 그런데 '최고 바람둥이'이기도 하다. 결혼을 하기(?) 전에 벌인 애정행각까지 탓할 수는 없을지라도 헤라와 결혼을 한 뒤에도 벌인 불륜은 탓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신화라고 할지라도 '같은 아버지'의 핏줄인 여자형제, 아버지의 여자형제, 어머니(하긴 크로노스와 레아도 남매사이다)의 여자형제로도 모자라서 수많은 조카들, 종족(?)이 다른 인간까지 섭렵하였으며, 그 방법 또한 강간, 납치, 협박, 유혹 등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등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부도덕한 짓거리들을 참 잘도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리스로마 신화>는 여전히 권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스러운 고전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이 책에 '나의 고민'에 대한 답변이 담겨 있었다. 바로 '제우스를 위한 변명'이라고 부제를 붙이면 딱 좋을 내용이 말이다. 부연설명은 생략하고 결론부터 풀어보자면, 제우스가 신화속에서 바람둥이 역할을 떠맡을 수밖에 없는 까닭은 바로, 그가 '최고신'이 되었기 때문이란다. 최고신에 등극한 바람에 '이 지역', '저 지역'에서 너나할 것 없이 '최고신'과 연줄을 닿게 하기 위해 "우리 지역을 다스리는 왕은 제우스의 후손이다"라고 제 입맛에 딱 맞는 신화를 만들어서 훗날 <그리스로마 신화>로 뭉뚱그려 엮은 탓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비록 '인간의 잣대'로 보았을 때는 부도덕적일 뿐만 아니라 '비도덕'적일지라도 '최고신'과 연줄을 맺을 수만 있다면 그 어떤 수단과 방법을 망설이지 않았고, '신화'라는 이름으로 이를 품었다는 해석에 수긍할 수 있었다. 허나 그럼에도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 건, 나뿐 아닐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에 '바람직하지 못한 짓(부도덕)'과 '도덕이 아닌 것(비도덕)'을 허용하거나 일부 수용하는 일이 있어선 안 될 것이다. 특히, 자본주의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도덕'은 필수이지 선택이 될 수는 없다. 자본주의는 무한이윤을 추구하는 자유경쟁이 원동력인 까닭에 조금이라도 '도덕적 기준'을 허물어버리면 인간이 살 수 없는 세상을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지금도 '합법'이라는 탈을 뒤집어 쓰고서 몰염치한 짓을 일삼는 못된 사람들이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다. 반면에 법 없이도 살 정도로 착한 사람들은 '최소한의 도덕'조차 작동되지 않는 사회을 탓하며 신음하고 있고 말이다. 그러한 까닭에 도덕을 하찮게 여기는 사상은 절대로 이땅에 발도 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여기 '새로운 해석'이 담긴 <올림포스 연대기>는 그 자체로 재밌고 유쾌하며 뼈 때리는 해학과 풍자까지 담겨 있는 훌륭한 책이다. 하지만 새로운 해석이 '변명'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변명'이 이 책에만 담겨 있는 것도 아니다. 수많은 글쓴이들이 이미 <그리스로마 신화>를 그런 식으로 해석해놓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무리 좋은 약이라 할지라도 오남용 되었을 때 무시무시한 독이 되는 것'처럼 <그리스로마 신화>를 읽는 독자들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어떤이는 이런 말도 했더랬다. "웃자고 하는 일에 죽자고 덤빈다"고 말이다. 내가 참 많이 듣는 말이긴 한데, 나는 교육자(논술쌤)의 한 사람으로서 '만의 하나'라도 지적할 점이 있다면, '반드시' 지적하고 '널리'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을 읽으며 배꼽 빠지게 웃었던 탓에 조금더 심각하게 정색을 해보았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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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한중일 세계사 1 - 서세동점의 시작 본격 한중일 세계사 1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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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아직도 역사의 범주를 '한국사'와 '세계사'로 가르며 한국사는 '나라안의 역사'를, 세계사는 '나라밖의 역사'를 배우는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다. 이는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식민사관의 그릇된 인식'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일제는 힘으로 우리 나라를 강제병탄하면서 우리의 모든 것을 왜곡하고 축소하며 깎아내리는데 혈안이 되었다. 그래서 대한제국을 다시 '조선'이라 부르며 차별과 멸시의 대명사로 만들었으며, 우리 역사의 장면은 '한반도'로 축소되고 말았고, 외세의 위압에 자율적 대항은 꿈도 못꾸고 오직 '타율적 순응'만 하는 식민의 DNA를 갖고 있을 뿐이라며 왜곡을 일삼았다. 이런 시각은 일제의 패망과 함께 순삭했어야 마땅했는데, 안타깝게도 그러지 못했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오늘날에는 우리 역사를 '한반도'라는 작은 그릇으로만 보지 말고, '한반도'라는 세상의 중심에서 세계로 뻗어나갔던 우리 역사의 진면목을 다시금 살펴보아야만 할 것이다. 그러면 고대 4대문명과 동시대에 '홍익인간'을 건국이념으로 삼았던 고조선이 다시 보일 것이며, 중국세력이 춘추전국시대로 사분오열이 되었을 때 우리도 4국시대를 맞아 군웅할거의 쟁패를 벌였으며, 중국의 혼란을 틈타 팽창정책을 펼쳐 강력한 중앙집권국가의 면모를 선보였고, 중국이 오랜 혼란을 접고 수당시대를 맞이하자 우리도 똘똘 뭉쳐 통일국가의 면모를 보이며 세계정세의 흐름과 맞물려 역사를 꽃 피웠다는 점을 살펴볼 수 있다.

 

  물론 그 와중에 중국 이외의 세력과도 연이 닿아서 활발한 외교전을 펼쳤음은 말할 것도 없다. 신라의 청해진과 고려의 벽란도는 아주 사소한 사료일 뿐일 것이다. 우리의 역사를 살펴보면 저멀리 인도와 아라비아를 넘어 유럽의 로마와도 맞닿아 있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아직은 사료가 태부족한 탓에 이들과 어떠한 역사를 맺고 풀었는지 가늠하기 힘들지만, 우리가 '우리의 시각'으로 세계를 톺아보면 분명히 우리의 영향력이 고작 '한반도' 안에서만 머물고 있지 않았을 것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전세계가 한국의 매력에 푹 빠진 것이 결코 우리 역사가 처음 경험하는 것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우리의 근대사에 깊이 영향을 끼친 중국과 일본에서 벌어진 일들을 확대경으로 깊이 들여다보는 동시에 '우리의 시야'를 확 넓혀서 좁게는 동북아시아 삼국을, 넓게는 서구열강세력까지 포함해서 '함께 읽는' 소중한 안목을 선사한 책이기에 매우 뜻깊다 할 수 있다. 그 첫 번째 책으로 '서세동점의 시작'이라는 제목이 참으로 솔깃하다.

 

  이 책의 시리즈는 '한국사' 정도는 통달했을 독자 여러분들의 지적 수준을 높이보고 풀어내고 있다. 그래서 언뜻 보면 '우리 역사'는 쏙 빼고서 '남의 나라 역사'만 주야장천 풀어내고 있는 듯한 인상마저 준다. 허나 우리가 고등학교 수준의 '한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서구열강이 동쪽으로 밀려들면서 아시아국가 곳곳이 극심한 변화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특별한 사정'을 이해해야만 한다. 그런 차원에서 서구열강이 중국에서 한 일과 일본에서 한 일을 각각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런 시기에 우리는 조금 외돌톨이처럼 따로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 까닭은 바로 '은'이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이었단다.

 

  서구열강이 동쪽으로 밀려들어와 가장 게걸스럽게 탐욕의 본성을 드러냈던 근본적인 목적 가운데 으뜸이 바로 '은'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결과 중국의 은과 일본의 은은 서양상인들의 주요 품목이 되어 활발한 무역(?)을 일으키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던 셈이다. 그런 틈바구니에서 우리는 '은화'가 아닌 상평통보라는 '동전'을 썼던 탓에 특별한 관심(!)을 덜 받게 되었던 셈이다. 암튼 서구열강은 동양의 은 경제시스템에 당당히 개입을 했고, 자기들 입맛대로 '룰'을 바꾸려 했고, 그 결과 중국은 아편전쟁을 치뤘고, 다음 책에서 다뤄지겠지만 일본은 쇄국정책을 풀고 개항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큰 홍역을 치르고 난 뒤에 '근대화'에 접어든 중국과 일본은 또 다른 결말을 맞게 된다. 물론 우리도 말이다. 그건 차차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암튼, 첫 번째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내용은 바로 '아편전쟁의 흑막'이 낱낱이 밝혀졌다는 점이다. 그동안 한국의 역사책에서 서구열강의 침탈과 근대화의 시작을 이야기하면서 '아편전쟁'은 수없이 강조되었다. 그렇지만 아편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끝맺게 되었는지는 '도식적'으로 간략히만 전할 뿐, 세세한 전개내용과 뒷이야기, 그리고 감춰진 이야기까지 속속 파헤친 책은 내 기억으로 이 책이 첫 번째 책이 분명하다. 그 전까지의 역사책에서는 그저 대략적인 내용만 반복할 뿐이었다. 더러운 영국이 중국인을 상대로 아편밀매를 했고, 이를 근절시키려는 중국의 당연한 조치에 영국이 전쟁을 일으켜 '난징조약'이라는 불평등조약을 강제로 맺게 한 것이 중국이 근대화를 시작하게 된 까닭이었다...라는 내용 말이다.

 

  이걸 이 책에서는 서양상인들이 '은본위제도' 경제시스템에 전세계의 은을 진공청소기로 흡입하고 있던 차에 중국에서는 도리어 영국의 은을 빨아들이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는 전제를 깔아놓은 다음에, 왜 그런고 하니, 바로 영국이 자랑하는 '면직물'이 중국의 비단에 밀리고 더 값싼 면직물에 발려서 제대로 팔리지 않는 상황에서 영국인이 사랑하는 '홍차(밀크티)'를 비롯한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에 열광한 덕분에 전세계에서 흡입한 은이 중국산 제품 수입 열광에 의해 중국에 죄다 빨려 들어가버린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리고서 이를 무마하기 위해서 '아편'을 유통시켜 영국에 막대한 이득을 되돌려 놓을 수 있었다는 스토리를 알게 해주었다. 그 뒤에 벌어진 '임칙서, 아편 퐁당', '영국, 해군 출발', '아편전쟁 발발', '청나라군대, 시원하게 발림', '난징조약, 불평등조약의 시초' 등등이 저절로 이해되는 대목이다.

 

  이뿐 아니다. 이 책에는 '아편전쟁의 민낯'을 낱낱히 밝히며, 당시 청나라의 무능과 헛발질, 영국의 탐욕스런 전쟁사, 당시 무기체제의 비밀 등등 알면 알수록 역사적 흥미가 쑥쑥 올라가는 경험을 만끽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재미는 '결말을 이미 다 알고 있는데도' 재밌는 역사이야기를 즐길 수 있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심지어 '과정도 이미 다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역사적인 사건과 사건을 이어주는 '또 다른 역사의 비밀 장면'을 들여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다.

 

  딴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역사적 관점'과는 사뭇 다르다는 점이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고 의문을 품게 만들곤 한다. 하지만 역사란 '정답'이 없는 학문이다. 오직 '해석'만 있을 뿐이고, 그 해석에 '납득'이 더해지면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 '납득'이란 개인의 납득이 아닌 '모두의 납득'일 때만 그렇다. 그렇게 모두가 납득할 수 있을 만큼 '설득력'을 갖춰야 하며 당연히 학문답게 '보편타당한 근거'로 탄탄하게 역사를 풀어내야만 할 것이다. 이 책도 시리즈를 거듭하면서 설득력의 높낮이가 오르락내리락하곤 하는데, 그 역시, 현명한 독자들의 몫이 될 것이다. 다음 책은 문제의 '태평천국운동'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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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인원 - 끝없는 진화를 향한 인간의 욕심, 그 종착지는 소멸이다
니컬러스 머니 지음, 김주희 옮김 / 한빛비즈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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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설하고, 오만한 인간의 최후는 멸종뿐이라는 강렬한 메시지가 담겨 있는 책이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 이야기는 식상할 정도로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명백한 인간의 책임인데도 이를 회피하려는 사람들이 더 많고, 심지어 기후변화에 따른 혹독한 환경변화에 더는 적응하지 못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기 전까지 인류는 그 심각성을 깨닫지 못할 거라는 질책에도 눈만 깜빡이고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을 사람이 훨씬 더 많을 거라는 지적에 깊은 공감을 하게 된다. 반론마저 예상밖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원시시대로 돌아가자는 거냐?", "쥐라시 시대에는 이보다 훨씬 더 더웠는데도 생물은 번성하고 공룡은 전성기를 맞이하지 않았는냐!"는 반론을 던지며 기후변화의 책임이 인류에게 있다거나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 변명만 늘어놓기 일쑤다.

 

  물론, 그렇다. 인간은 과학문명의 이기를 절대로 내려놓지 못할 것이다. 그로 인해 온실가스는 더욱 빠르게 증가할 것이고, 지구환경은 인간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방향으로 빠르게 변화할 것이다. 그러면 인간은 과학문명을 더욱더 발전시켜서 지구환경조차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안일한 낙관을 펼치곤 한다. 여태까지의 인류는 '그런 사고방식'으로 지구의 모든 생명 위에 군림하고 '최종포식자의 지위'로 살아왔더랬다. 그리고 언제나 과학이 해결해줄 거라는 '과학만능주의'가 당연한 해결책인냥 마련해왔다. [이 또한 인류는 극복해냈습니다]라는 문구로 거대한 자연재해 앞에 우뚝 선 자랑스런 인류의 이미지를 창출해내고 말이다.

 

  그러나 지구는 그동안 '다섯 번의 대멸종'을 선보이며 지구상의 생물들을 최대 98%까지 절멸(페름기 대멸종)시키는 위엄을 보여왔다. 또한 여러 차례의 빙하기를 겪으며 기존의 생물군이 대다수 멸종하고 새로운 생물군으로 바뀌어 왔다는 지질학적인 근거만 봐도 '기후변화의 끝자락'에서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는 낙관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과연 인류의 과학기술이 대멸종과 빙하기까지 이겨내고 '지구의 주인'으로서 톡톡히 이름값을 할 수 있을까? 끝끝내 인류가 살아남는다고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안락한 현대생활과 편리한 문명의 이기를 누리며 살아남을 수는 없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반성의 기미는커녕 개선의 의지를 요만큼도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런 엄청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 정녕 인류는 '죽음으로 향하는 열차'에 올라탄 것처럼 숙명처럼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일까? 적어도 점점 빨라지는 지구온난화를 늦추거나 인간이 망친 지구의 자연을 지구 스스로 정화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낮추려는 노력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일까? 이를 테면, 가까운 거리는 자동차를 타지 않고 자전거 타기나 더운 여름철에 에어콘 대신 손부채를 이용하고, 추운 겨울철에 난방보다 내복을 껴입는 방식으로 에너지 소비를 확 줄여서 온실가스 배출을 최소한으로 하고 지구온난화의 속도를 점점 줄이고 기후변화에 보다 현명하게 대처하는 삶으로 바꿔나가는 것 말이다. 우리는 이미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있다. 코로나 팬데믹이 전지구를 강타하자 거의 모든 비행기와 배가 일시에 멈추니 일시적이지만 공해가 사라진 푸른 하늘을 다시 볼 수 있었고, 도시봉쇄로 인적이 끊긴 도심에까지 동물들이 찾아와 가장 자연스런 풍경을 볼 수 있었다. 그 잠깐의 '일시멈춤'으로 우리는 색다른 경험을 해본 셈이다.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지구를 오염시키고 살고 있는지 생생히 경험할 수 있었고 말이다.

 

  이 책은 강력하게 주장한다. 지구의 주인은 절대로 '인간'이 아니라고 말이다. 지구 생물의 '최종진화'가 인간이라는 망상에서 깨어나야 한다고도 말한다. 모든 생명체 가운데 가장 '지능'이 발달한 생물이 인간이라는 사실은 틀림없지만, 그것이 지구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위'를 쥐어준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진리를 제발 말로만 하지 말고 몸소 실천하라고 간절히 말하고 있다. 정말 이해하기 쉬운 진리 아닌가. 그런데도 인류는 고도의 지능으로 지구를 아주 빠른 속도로 파괴하는 재능을 십분 발휘하고 있다. 그 재능이 인간의 멸종을 앞당기고 있는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얼마나 장렬하게 최후를 맞이할 것인가라는 스릴 넘치는 짜릿한 감동을 선사할 비극을 연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비극'을 이해할 지구생명체는 이미 멸종한 인류 이외에는 단 하나도 없을 것이다. 도대체 그런 비극을 왜 스스로 자초하려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정녕 당신들의 후손에게 지구라는 아름다운 행성을 선보여주기 싫은 것인가? 그 마지막 후손이 지금 당신의 뱃속에 있는 아기일 수도 있는데도 말이다. 정녕 인류의 미래는 깜깜할 뿐이련가.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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