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서울대 선정 인문고전 60선 51 : 미셸 푸코 지식의 고고학 NEW 서울대 선정 인문고전 60선 51
조희원 지음, 조명원 그림, 손영운 기획 / 주니어김영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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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에 대한 강의를 듣고 나면 '철학'이 그다지 어렵지 않고 '해볼만 하겠는데'라는 맘이 들어 그럴 듯한 <철학책>을 골라 읽어보곤 한다. 그럴 때마다 늘 느끼는 것은 '정말 어렵다'는 생각이다. 분명 강사가 들려준 '철학이야기'는 참 쉽고 재밌었는데, 왜 <철학책>은 쓸데없이 어렵기만 한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들곤 한다. 그렇게 '철학의 뜨거운 맛'에 홀랑 데이고 나서야 철학이야기를 쉽고 재미나게 풀어준 강사님의 위대함(?)이 새록새록 솟아나기 마련이다.

 

  그렇다. <철학책>은 어렵다.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읽어내기'조차 버거운, 솔직히 말하면, 몇 장 읽다가 냄비받침으로 쓰이고마는 '다른 쓰임새로써 매우 유용한 책'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그것도 아니면 걍 책꽂이에 장식품으로 전락하고 말거나 말이다. 그 대표적인 책이 바로 미셀 푸코가 쓴 <지식의 고고학>일 것이다. 푸코 철학의 정수를 맛볼 수 있다는 이 책은 솔직히 읽기 어려운 책이다. 정말 재미없다. 비전공자뿐 아니라 전공자들조차 '한자어투'로 뒤쳐진(번역된) 탓에 난해하기 이를 데 없다고 혀를 내두를 지경이라고 한다. 그 탓인지 '만화'로 쓰인 이 책조차 <지식의 고고학>을 설명하기 위해서 '원전의 내용'은 둘째치고, 푸코의 저서를 총동원하였을 뿐만 아니라 '푸코의 연구방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다른 책'들에 대한 소개와 부연설명을 더욱 세세하게 할 정도였다.

 

  암튼, 서론은 각설하고, 푸코 철학의 핵심은 무엇일까? 거창하게 '구조주의 철학'이니 어려운 말은 철학전공자들이 하도록 남겨두고, 내가 느낀 바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남들과 다르게 사유하기'였다. 비단 푸코만의 철학방법이 아니라 모든 철학자들의 기본소양일테지만, 푸코 철학이 남다른 까닭은 '철학'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연구하는 구조주의파 중에서도 가장 깔끔하게 '다른 시선'으로 철학적 사유를 시작하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사실 '고고학적 관점'이라는 것도 주류보다는 비주류에 가까운 접근방식이며, '목적'을 두고서 연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를 하다보니 목적에 다다르는 방식의 학문이라서 '연구의 방향성'이 대단히 자유롭기 그지 없을 수밖에 없다. 거기에 '상상의 나래'를 펼쳐서 '기존의 방식'이 아닌 색다른 접근을 선호하는 것도 푸코 철학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까닭이 되었다.

 

  물론, 그 때문에 시대적 흐름이나 앞뒤 맥락도 없이 '불연속적인 특이점'에 주목하고서 독특한 연구를 한 탓에 읽다가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아프기만 하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유발하기도 한다. 더구나 '비교대상'도 없이 독창적으로 펼쳐나가는 서술은 읽다 지쳐 돌아서면 까맣게 잊어버리는 '악순환의 반복'인 탓에 완독의 불가능성만 새삼 깨닫게 되기도 했다. 그런 탓에 '원서'는 진즉에 포기했고, 이 책 <서울대선정 인문고전60선>을 읽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지식의 고고학>뿐 아니라 푸코의 다른 저서들에 대한 내용까지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는 탓에 그 어떤 책보다 알찬 내용이 매력적이었다. 분명 이 책을 읽고 난 뒤에 '푸코 철학'에 대한 매력이 한층 더 높아질 것이고, 어려운 철학책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사실, <지식의 고고학>에서 말하는 내용은 비전공자들에겐 '통곡의 벽'과 다를 바가 없다. 구조주의 철학의 서막을 열어준 '푸코 철학의 정수'라고 소개하곤 하지만, 정작 이 책을 읽고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독자는 몇 되지 않는다. 심지어 서울대 철학교수마저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어서 '정말 어려운 언표(언어)들의 나열'만 하고 있지 않느냔 말이다. 교수님이 제대로 이해한 다음에 <지식의 고고학>을 뒤쳐냈다면 정말 쉽고 재미나게 뒤쳐냈을 것이다. 하다못해 '주석'이라도 읽으면 바로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썼을 텐데, 그러지 못하셨으니 자신도 이해하지 못한 '난해한 뒤침'을 하고 말았을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만화' 형식으로 쓰인 <지식의 고고학>이 돋보이는 것이다. '원전의 난해함'을 푸코의 다른 책을 통해서 이해시키고, 다른 저자들의 책들을 친절히 소개하면서 <지식의 고고학>의 난해함을 쉽게 풀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의 매력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푸코 철학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복잡다단해서 접근하기 힘든 <현대철학>에 '접근성'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책 한 권이면 '구조주의 철학자들'에 대한 관심이 폭발할 것이다. 세계대전 이후 철학자들은 '인간의 이성의 위대함'을 과감히 내려놓기 시작했는데, 이는 인간이라는 '자존감'을 내려놓는 계기인 동시에, 그로 인해 불행에 빠진 인간을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첫 발'을 내딛은 철학자들이 바로 '구조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과연 이들이 풀어놓은 '진실'은 무엇일까? 라는 궁금증이...나만 샘솟는 것일까(")a쩝

 

  암튼, 중요한 것은 '철학'은 암기가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의 철학자들이 무슨 이야기를 했든 그건 절대 중요하지 않다. 오늘을 살아가는 '당신들의 철학'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감히 위대한 철학자들 앞에서 명함도 내놓기 부끄럽다고 철학을 포기할 까닭은 전혀 없다. 철학을 공부하다보면 자연스레 알게 되지만, 그 어떤 철학자도 '정답'을 얘기한 적이 단 한번도 없기 때문이다. 천재라 불리는 철학자들조차 '그럴 듯한 결론'을 내놓을 뿐이고, '그 결론'은 어김없이 '반박'되어 새로운 철학에 의해 '대체'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철학은 '암기'할 필요가 전혀 없다. 그저 '이해'하고 '공감'하면 된다. 그 이후부터가 가장 중요한 데, '나만의 철학'으로 재구축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에게 정치철학이 없다면서 구구절절 욕하는 분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철학은 무엇이냐?"고 말이다. 대통령이 정치를 잘해서가 아니다. 대통령이 정치를 더럽게 못한다고 느낀다면, 분명 당신이 '바라는' 정치철학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정치철학'이 무어라고 말하기도 쉽지 않고, '나만의 철학'이 무엇인지 당당히 밝히는 이들도 별로 없다. 그저 남이 못하는 것만 지적질할 뿐,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바람직한지 말하지 못한다. 심지어 아무런 생각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즐기면 그뿐이라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선 안 된다. 우리에게 철학이 절실한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이다.

 

  다시 돌아와, <지식의 고고학>을 단 한 번 읽고 '푸코 철학'을 단박에 이해했다면 천재가 틀림없다. '언표'가 무엇이고, '변환'에 대해서 속속들이 파악하고 답을 내는 경지에 다다랐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그건 그저 <지식의 고고학>을 이해한 것에 그치고 마는 것이다. 그렇게 '푸코에 대한 전문가'가 되는 것으로 그치고 만다면 아무짝에 쓸모가 없다. 어디 가서 자랑질을 할 것이냔 말이다. 아무도 '푸코 철학'에 대해 관심도 없는데 말이다. 그건 그저 '지식'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가 철학공부의 목적이 '지식암기'가 아님을 다시 한 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푸코의 연구방법'을 따라서 온갖 사물에 '과학적인 시선'을 투영하여 누구나 알 수 있는 객관적인 진실을 탐구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할까? 그렇게 지식탐구의 지평을 열어서 더 많은 지식을 이해하고 해박한 전문가가 되길 바란다면 '거기서' 만족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진정한 목적으로는 어딘가 부족해 보인다. 그보다는 '철학의 이해'를 통해서 '자신만의 철학'을 구축하는 기회로 삼는 것은 어떨까? <철학책>을 읽고 영감을 받아 '나만의 철학'으로 삼고, '나만의 철학'을 발휘해서 '모두를 위한 삶'을 살아가는 디딤돌로 삼는 것이 좀더 그럴 듯 해보이지 않는가 말이다. 무릇 '책 속에 길이 있다'는 옛말은 바로 이런 뜻으로 풀이해야 옳을 것이다. 철학을 공부한 보람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철학은 사유에서 멈추지 말고 몸소 실천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철학이 나아가야 할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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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고려사 1 - 천하 통일과 고려의 개막 박시백의 고려사 1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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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자랑하는 '반만년의 역사'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많이 하곤 한다. 왜냐면 1차적으로 '사료'가 절대 부족한 탓이다. 고대사를 직접 다룬 사료들이 '고려시대'에 쓰여졌고, 그나마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제외하곤 거의 없다시피하다. 그럼에도 우리가 고조선부터 통일신라, 그리고 발해까지 '우리 역사'로 대외적인 인정을 받는 까닭은 '대외적인 사료', 다름 아니라 이웃나라들에 '우리 역사에 관한 기록'이 오롯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를 통해서 간접적이나마 우리 역사를 고증할 수 있었고, 우리가 '직접' 쓴 것이 아니기에 객관적인 사료로 인정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쓴 것이 아닌 까닭에 '역사왜곡'과 '날조' 등등 점차 저희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며 우리의 역사를 제것인 것마냥 치부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 역사'를 연구할 뿐만 아니라 '이웃나라의 역사'도 철저히 분석해야 하며, 더 나아가 '세계사의 범주'에서 우리 역사를 새로 조명하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역사공부는 그래서 중요한 일이다.

 

  그나마 <조선왕조실록>은 세계사에서도 드물 정도로 꼼꼼하고 촘촘한 사료로 인정받고 있고, <승정원일기>와 더불어 지금도 계속 '연구'를 계속하고 있을 정도로 방대함을 자랑한다. 그런데 우리 역사에 '실록편찬'이 조선시대가 처음은 아니었다. 고려때 시작하여 조선이 이를 본받아 편찬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많은 전란으로 인해 오늘날까지 존속되지 못하고 그만 잃어버리고 말았단다. 만약 <고려실록>이 지금껏 남아 있었더라면 우리의 역사는 더욱 찬란하게 빛났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고려사'는 '조선사'보다 더욱 개방적이었고, 스스로 황제국이라 표방할 정도로 자주성을 띠었으며, 수많은 외적의 침략도 막아내고. 지금 우리나라를 일컫는 '코리아'라는 명칭도 바로 '고려'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고려사의 진면목'이 오롯이 담겨 있었을 <고려실록>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아쉽지만, 지금 우리가 '고려사'를 투영해 볼 수 있는 사료는 조선시대에 쓰인 <고려사>와 <고려사절요>다. 박시백의 고려사는 바로 이 두 책을 바탕으로 삼아 저자 나름의 생각과 요즘 역사트랜드를 감안하여 시리즈를 펼쳤다. 비록 전편인 <조선왕조실록> 20권보다 현저히 적은 분량일테지만, 교과서에서만 접할 수 있었던 '고려사'를 당시의 주변국가들의 시대정황과 더불어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일 것이다. 빗대어 표현한다면, '드라마 몰아보기'로 집중력을 높여 살펴볼 수 있는 장점을 최대한 살려낼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자, 1권에서는 후삼국시대부터 시작해 고려 성종에 이르는 대장정이 펼쳐졌다. 역사적 흐름이 다소 빠른 듯 싶은 것도 '기록'이 현저히 부족한 탓이 매우 컸다. 그나마 사료 분량이 좀 많아지는 2권부터는 좀더 세세히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니, 조금만 기다려보자.

 

  사료가 부족하면 '야사'의 도움을 받곤 한다. <삼국사기>가 놓친 내용을 <삼국유사>가 보충해서 우리 역사가 좀 더 풍요로워진 것처럼 말이다. 후삼국시대의 주요인물도 그렇다. 후고구려의 궁예와 후백제의 견훤(원래는 '진훤'이라 불려야 옳다고 했으나, 최근엔 '견훤'으로 통일한 듯 싶다), 그리고 고려로 삼국을 통일한 왕건, 이 세 명에 대한 '야사'가 '정사'보다 훨씬 더 널리 알려진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궁예가 애꾸눈이 된 사연, 견훤의 아버지가 지렁이(토룡)였다는 전설, 그리고 왕건의 조상이 용왕이었다는 내용 따위가 그렇다. 이는 명실공히 '영웅의 탄생'에 걸맞게 그러진 것이니 '정사'에서도 비슷한 뉘앙스가 풍긴다고 해도 그리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다.

 

  그러나 역사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시대적 상황'을 살펴볼 수 있는 안목이 중요하다. 통일신라가 왜 혼란스러워졌으며, 후삼국으로 어떻게 분열되었다가 고려로 재통일이 되었는가..하는 것들 말이다. 신라사회는 '골품제'로 인해 변화를 꾀하기 힘들어졌고, 성골에서 진골로 왕위가 넘어가면서 '왕위 정통성'은 점점 낮아졌고, 백성들의 불만은 점점 높아졌기 때문에 사회가 혼란스러워졌던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진골간 왕위다툼'은 점점 빈번해졌으며, 중앙의 지배력에서 벗어난 지역부터 스스로 성주나 장군이라 칭하던 '호족세력'들이 점차 세력을 불려나갔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호족들 가운데 후고구려의 궁예와 후백제의 견훤, 그리고 궁예의 부하였다가 궁예가 몰락한 뒤에 '고려'를 세운 왕건이 '후삼국시대'를 이끌었던 것이다.

 

  후삼국시대라면 당연히 세 나라가 되어야 하는데, 통일신라는 이미 힘과 정통성 모두 잃어버린지 오래되어 후고구려(고려)와 후백제의 '먹잇감'으로 전락해버렸다. 하지만 '후삼국시대'를 살았던 백성들은 스스로를 '신라사람'으로 생각했으니 두 나라 모두 '신라'를 함부로 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허나 이런 신라를 함부로 대한 두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궁예'와 '견훤'이었다. 궁예는 속설에 '신라왕자' 출신이었다고 하니 왕위쟁탈전에 탈락하고 추방(?) 당한 원한으로 신라를 복수의 대상으로 삼았고, 견훤은 연이은 승리에 취해 자기 잘난 맛(?)에 서라벌을 점령한 뒤 '신라왕'까지 바꾸고 백성들을 죽이고 여인들을 겁탈하는 만행을 저질르며 업신여겼던 것이다. 이에 신라는 어차피 망할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평소에 신라에 유화적이며 존경하는 태도를 보여준 왕건에게 나라를 홀랑 바쳐버리고 만다. 이런 왕건의 기세와 백성들의 바람으로 인해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고 만다.

 

  어쩌면 통일을 이루는 비결은 '강력한 힘'을 과시하며 일거에 제압하는 방식보다는 적군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인정받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보인다. 이는 다른 나라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가까운 중국만 해도 통일의 위업을 보여준 제왕들이 대부분 '무력'을 바탕으로 적들을 제압하여서 패자의 자리에 오른 경우가 많은데 반해, 우리 역사에서는 '첨예한 갈등'을 잠시 내려놓고 '평화'를 사랑하고 '백성'의 안위를 먼저 보여준 인물이 '통일의 위업'을 보여준 예가 더 많아 보인다. 뭐, 압도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 괴물(?) 같은 위인이 등장하지 못하고 상대를 확실히 제압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포용력(?)을 발휘하는 인물이 대권을 차지하는 경우가 흔한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암튼, 왕건은 우리 민족을 다시 하나로 뭉치게 만든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임에 틀림없다. 이제 왕건에게 통일보다 더 어려운 숙제가 남았으니, 바로 '호족세력'을 잠잠하게 만드는 일이다. 왕건도 호족출신이거니와 나머지 호족세력을 모조리 제압해버리는 힘이 모자란데도 '임금의 자리'에 올랐으니 걱정할 만도 하다. 그래서 왕건은 '혼인정책'을 내세웠다. 비등비등한 세력을 갖고 있는 '호족들의 딸'을 한집안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무려 29명의 부인이다. 자식들이 많은 것은 두말 할 것도 없다. 그런 탓인지 왕건의 자식들은 '근친혼'을 많이 했다. 즉, '엄마'만 다르면 혼인을 장려(?)했던 것이다. 이는 '외척세력'을 두지 않아 '왕권'을 유지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도 했다. 조선 태종의 사례만 보아도 '외척'을 견제해야 '왕권'을 유지할 수 있는 임금의 자리는 무척 곤혹스럽기 짝이 없다. 그래서 고려는 성종 때까지 별다른 '외척세력'을 두지 않아 비교적 평온하게 왕조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평온(?)하게 2대 헤종, 3대 정종, 4대 광종까지 유지할 수 있었다. 모두 왕건의 아들들이다. 허나 광종대에 이르러서는 계속되는 호족들의 반란을 잠재울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왕권강화'를 도모한 광종은 '노비안검법'을 비롯해서 '과거제'를 시행해 호족세력을 견제함과 동시에 반란의 조짐(!)이 보이면 가차없이 제거해버리는 '숙청의 시대'가 펼쳐지게 되었다. 하지만 뒤를 이은 5대 경종, 6대 성종에 이르러서는 포악한 정치(?)는 삼가고 '유교적인 정치'를 구축하고, 전시과를 손보는 등 경제적인 면에서도 진일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게 나라의 기틀을 완성해나갈 즈음에 고려의 북방과 바다 건너 대륙에서 변화의 조짐이 보이더니, 급기야 '고려'의 안보에 일대 위기가 몰아치려 한다. 바로 '거란의 침입'이다. 2권을 기대하시라.

 

  역사는 과거를 다루는 학문이다. 그런데 지나간 옛일을 공부해서 어따 써먹을 수 있겠냐는 원론적인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분들에게 대답해줄 적절한 비유가 있으니,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다. 흔히, 역사는 미래를 들여다보는 과거라는 '거울'에 빗대어 표현하며, 그 중요성을 설파하곤 한다. 실제로 '과거사실'을 들춰보며 '미래예측'을 하기 때문이다. 허나, 그런 '과거사실'을 제 입맛대로 '해석'하는 이들이 있으니, 바로 '현재의 권력자'다. 어떤 이는 "역사란 '승자의 기록'이다"라고 말하지 않느냔 말이다. 물론 모든 역사가 다 그렇다는 말은 아니지만, 꽤나 설득력이 강한 메시지다.

 

  그렇다면 승자만이 '역사'를 기록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걸까? 거꾸로 말하면, 역사공부에 진지해지면 '승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현재의 지배자'가 되기 위해 역사공부에 진지해져야 할 것이다. 역사공부에 진지해지면 '독재자의 횡포'도 막아낼 수 있다. 독재자들은 늘 그렇듯이 아둔한 사람이 많은 곳에서 활개를 치고, 욕심에 눈이 어두워진 이들이 많은 곳에서 공포정치를 펼치곤 한다. 그러다 똑똑하고 공정하며 정의로운 민중들에게 무참히 박살이 나곤 한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인재가 '역사'에 밝은 명석하고 교양 넘치는 시민들이 아닐까 싶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과거를 퉁쳐버리고, 국민들의 이익과 쪽팔림은 헐값에 팔아버리고 '과거를 망각하게 만들어 현재를 지배하려는 무리'를 솎아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역사공부를 멈춰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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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란~ <한빛비즈> 100리뷰 달성 버튼이 도착했어요. 꺄아아~

그동안 열심히 리뷰 쓴 것밖에 없는데

이런 영광을 선사해주시다니

정말 고맙다는 말씀을 안 할 수가 없었어요.

 

아시는 분들은 아시죠.

제가 웬만한 선물에도 눈하나 깜짝 안 하고

얼마나 손가락 놀리는 걸 귀찮아하는지..

제 귀한 손가락은 오직 <한빛비즈> 도서를 리뷰할 때만 꼼지락거린ㄷ...쿨럭쿨럭

 

암튼 <한빛비즈>에 이런 상패가 존재한다는 걸 널리 알려요~

저보다 더 많이 사랑을 아끼지 않는 '한빛비즈사생팬'들이 움직이기 시작할 겁니다.

이제 모든 SNS에서 '한빛비즈'만 가득하겠죠 ㅍㅎㅎ

저는 먼저 '200리뷰 달성'하러 갑니다((((((((((((((((((((((((((((( ")난멈추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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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세계사 1 - 인류의 등장과 고대 국가의 성립 처음 세계사 시리즈 1
초등역사교사모임 글, 한동훈.이희은 그림, 서울대학교 뿌리깊은 역사나무 감수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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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자들의 열화(?)와 같은 '세계사 수업' 요청을 수락하여 급하게 마련하였다. 무릇 역사수업이란 '암기'가 아니어야 하지만 당장 시험을 봐야 하는 학생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주입식/객관식' 수업이 아니고서는 학생들의 바람을 충족시키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일일이 '시험대비'로만 수업을 준비할 수는 없기에 '세계사의 맥락'을 빠르게 짚어보고 난 뒤에 시간이 허락한다면 '좀 더 깊이 읽기' 수업을 마련해 보려 한다. 그렇다면 하고 많은 책 중에 이 책을 선택한 까닭은?

 

  솔직히 말해 조금 시간이 많이 흘러 옛스러움마저 느껴지는 책이긴 하다. 하지만 역사는 그 내용이 방대한 까닭에 조금이라도 '익숙한 것'에서부터 수업을 시작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직접 '선택한 책'이라는 것이다. 아이들도 나름 '책을 고르는 안목'이 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해도 '선생의 관점'과는 달리 '학생들이 선호하는 책'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쉽게 읽고 친숙하게 느낄 수 있는 책이라 여겨서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1권의 내용은 '고대사'에 해당하는 '세계4대 문명'의 내용을 주로 담고 있다. 그리고 뒤를 이어 '지중해를 둘러싼 지역의 역사'를 다루며 페르시아와 그리스 문명을 정리하면서 오리엔트와 서양(옥시덴트)이 융합해서 만들어진 '헬레니즘 문화'를 소개하고 고대 중국의 통일국가인 진과 한을 다루며 끝맺었다.

 

  전반적으로 꽤나 빠르게 진행되는 느낌을 주는 까닭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물론 초등학생만 읽기에 적합한 책은 아니다. 역사의 맥락을 잡지 못한 '초보자'라면 성인들도 읽어도 무방한 책이다. 한마디로 '알아두면 쓸데있는 역사적 배경지식'이 바탕에 깔린 책이란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초등역사교사모임'에서 책을 집필하였기에 초등생이 읽어도 이해하지 못할 군더더기는 쏙 빼냈다는 점이 이 책의 장점이다. 그 덕분에 '선생의 역할'이 중요한 책이기도 하다. 기초를 마련했으니 학생들은 책을 꼼꼼히 읽고, 선생은 그 탄탄한 기초 위에 튼튼한 역사를 쌓아올릴 수 있도록 도와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을 직접적으로 비교분석하는 내용은 이 책에 수록되어 있지 않다. 개별적인 문명에 대한 '역사지식'이 알기 쉽게 정리되는 것에서 멈춰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선생은 두 문명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정리해주면 된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비교적 평탄한데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를 중심으로 사방이 뚫려있는 '개방적인 지형'이고, 이집트 지역은 나일강의 범람으로 옥토가 형성되어 있는데도 사방이 사막과 바다로 막혀 있어 외부의 침략을 막기 쉽지만 반대로 밖으로 나가기도 힘든 '폐쇄적인 지형'이 뚜렷한 차이점을 보인다고 말이다. 그로 인해 두 문명은 '고대문명'으로 성장할 수 있는 큰강 유역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지형적 영향을 받아 각각 '외향적 사고방식'과 '내향적 사고방식'을 갖게 되어 두 문명의 발전 방향이 서로 달라지게 되었다는 내용을 풀어주면 좋다. 간단한 예로는 '현세구복적인 종교관'을 가진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내세지향적인 종교관'을 지닌 이집트 문명은 지구라트와 피라미드와 같은 거대건축물이라는 점에선 공통점을 띠지만 '쓰임새'는 사뭇 다른 까닭을 알 수 있더라고 사고를 확장시켜주면 좋을 것이다.

 

  그밖에도 그리스 문명을 대표하는 '아테네', '스파르타', '마케도니아'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과 인물을 정리해주면서 '동서양을 아우리는 헬레니즘의 탄생'까지 살펴본 뒤에 그 의미를 짚어주고,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을 딛고 진시황의 통일과 한나라의 흥망성쇠를 다루며 서양에 치우친 '세계사 수업'에 균형을 맞추어 주는 것이 좋겠다.

 

  물론 여기에 더해 '한국사'를 더해주면 금상첨화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발자취를 찾으며 구석기와 신석기 시대의 내용을 다루며 우리의 역사가 세계사의 범주에서 맥을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놓쳐선 안 된다고 아이들에게 상기시켜 주어야 한다. 동양의 역사에서는 중국과 인도에 편중되어 있고, 그나마 중동지역의 역사는 '서양사'에 편입하고마는 우를 범하곤 한다. 다시 말해, '서양의 관점'에서 동양의 역사를 서술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어디까지나 세계사를 배우는 아이들은 '대한민국 학생들'이다. 우리 학생들이 배우려면 '우리의 관점'에서 세계사를 풀어내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데 아직도 '서양의 우월감'을 밑바탕에 깔아두고 '세계사'와 '한국사'를 분리해서 가르치는 경향이 남아 있다.

 

  그래선 안 된다. 세계사 공부의 목적이 서양의 찬란한 문명에 감탄하기 위해서가 아니지 않느냔 말이다. 그런 식이라면 서양은 근대이전까지 동양에 비해 '야만의 역사'라고 폄하해도 무방할 정도다. 조선시대 초기까지만해도 서양은 코흘리개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근대 혁명' 이후부터 서양은 급작스런 대외팽창의 기회를 잡았고, 야만인들(?)답게 무력으로 전세계에 욕망을 투영했고, 그로 인해 '서구열강들의 패권시대'가 펼쳐지게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결코 아름답지 않은 '오직 힘만으로 일구어낸 업적'이었으며, 그로 인해 오늘날의 세계는 아직도 분쟁과 갈등의 연장선에 놓여 있게 되었다. 멀리 볼 것도 없이 바로 '우리나라'가 그 대표적인 희생양이었고 말이다. 제국주의에 의한 '피해국가'였는데도 '가해국(일제)'이 받아 마땅한 '분단'이라는 벌을 대신 받게 만들고서도 나몰라라 하는 몰염치함을 선보이고 있지 않느냔 말이다. 이럴진데 '서양의 우월적인 관점'을 나열한 세계사를 배우며 알게 모르게 '서양국가'들을 동경의 대상으로 삼는 수업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젠 '대한민국'을 위한, '대한민국'에 의한 <세계사>를 가르쳐야 한다. 그런 세계사 교육이 무엇인지 아리까리하다면 '대한민국의 이익'을 챙길 수 있는 모든 최상의 지식을 배우기 위해서 '세계사 공부'를 하는 것이라고 단정지어도 무방할 것이다. 실제로 전세계 역사선생님들이 감히 드러내놓고 가르치지 못하지만, 속마음은 그다지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을 감안했을 때, 우리만 젊잖게 공부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세계사'에 깊숙이 영향력을 발휘한 적(?)이 없으니 그런 식으로 가르칠 것이 없다는 변명은 때려치워라!

 

  우리 역사를 우리 스스로 '반만년의 역사'라고 하지 않느냔 말이다. 그렇다면 4000년 전의 인류 최초의 문명인 '수메르 문명'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실제로 만주지역과 요동 일대에서 고대 중국 황하문명보다 앞선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그 지역에서 '고조선'이 건국되었다는 사실을 왜 우리 스스로 부정한단 말인가. 동양 최대의 제국 '당나라'의 침략을 막아낸 고구려와 신라의 역사를 왜 '한국사'라고 좁혀 배운단 말인가. 우리를 '코리아'라고 부르는 까닭은 무엇인가. 개방적인 고려가 세계적인 무역항 벽란도를 통해 문물을 주고 받은 덕분이다. 고려는 강했다. 거란을 끝내 몰락시켰고 몽골의 침략도 부지기수로 막아낼 정도였다. 오히려 조선시대가 '폐쇄적'이었다. 왜냐면 중국땅을 차지한 원과 명, 그리고 청나라가 거대해져서 블랙홀처럼 빨아들였기 때문이다. 물론 조선인들도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굴었다. 그 덕분에 우리의 근대가 뒤늦게 찾아왔고, 우리 스스로 뭘 하기도 전에 '외세의 간섭'이 심해져 끝내 나라를 잃어버리기까지 했다. 그런 모진 역경을 극복하고 '대한민국'이 다시금 세계로 향하고 있다. 이러한 적기를 맞아 '어떤' 세계사를 가르쳐야 하겠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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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년간 잘 써오던 '독서기록'을 바꿀 때가 되었다.

더할나위 없이 좋았던 기록장이었는데

잉크앱이 '전면개편'에 들어가면서

더는 독서기록앱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한다.

2005년부터 2022년까지 나의 독서기록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앱인데 말이다.

이걸 모두 기록하는데만도 무려 3주가 걸렸었다.

그런데 '수익'을 앞세워 없애버린다고하니...

온라인과 디지털에 대한 배신감이 또다시 새겨지게 되었다.



그래서 여기저기 '나의 독서기록'을 남기기로 했다.

한 곳에만 남기다가는 어느 한 순간에 사라져버린다고 원망할 수도 없게 될테니 말이다.

그간 1537권의 리뷰를 남겼다고 적혀 있지만,

잉크앱은 '여러 번 리뷰'를 남겨도 오직 '1권'만 기록으로 남기기에

실제로는 1600여 편에 다다를 것으로 예상된다.

월평균 128.1권인데, 주로 '하반기'에 몰아서 읽고 썼던 흔적이 보인다.

잉크앱이 좋았던 것은

'작가', '출판사', 그리고 '장르'에 대한 나의 취향이 차곡차곡 쌓여서

한 눈에 보여진다는 것이었는데...

이젠 '나의 취향'을 제대로 알기 힘들게 되었다.



그래서 새로운 독서기록장을 마련했다.

'북플립'이라는 앱이다.

우선, 2023년부터 이후의 기록을 남기려고 한다.

나중에 맘에 쏙 들면 1600편을 몽땅 올릴지도 모르겠지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독서현황'이다.



23년 1월과 2월의 기록인데, 역시나 '인문학(8권)'으로 가장 많았다.

그 뒤를 이어 '소설(문학, 6권)'이 바짝 쫓아왔는데,

확실히 예전과는 달라진 독서취향이 반영된 탓일게다.

예전에는 '어린이/청소년' 분야의 책들이 주를 이루었고,

'과학/역사' 분야의 책들로 가득한 취향이었을텐데,

부족했던 '문학 분야'에 치중한 덕이 크게 작용한 것일테다.

확실히 달라진 '카테고리'에 나름 만족하고 있다.



이제 막 시작한 '기록장'이라서 '1년동안의 기록'만 보여줄 것인지

아니면 해마다 차곡차곡 쌓이는 '또 다른 기록'이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연간독서기록'을 중점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아쉬운 것은 '출판사 카테고리'가 따로 없어서

내가 사랑하는 출판사를 가늠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잉크앱을 좋아했던 가장 큰 이유도 바로 '출판사 데이터'였는데 말이다.



앞으로는 '나의 독서기록'이 이런 모양새를 띨 것이다.

'책의 표지'로 장식되고 '내가 준 별점'까지 드러나니...나름 좋긴 하다.

근데 뭐랄까..'여백의 미'가 강조되어 좀 휑한 느낌이 들어 허전하다.

별점기록을 없애는 기능도 있긴 한데,

그러면 '책표지'가 커지는 것이 아니라 달력의 세로 길이가 줄어든다.

가로의 공백은 여전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짜리몽땅해지고 너부대대해지니...

별로다.

암튼 새친구 '북플립'을 만나서 반갑다. 좀더 데이타가 쌓이면 분명 좋아하게 될 거다.

내 풍성한 '독서기록'은 어딜 내놓아도 멋질테니까(--)뻔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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